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의 고전적 논의를 소개하거나 최근 흐름을 다루는 문고판 서적들이 요즘들어 강세다. 책세상문고(책세상), 살림지식총서(살림), 하룻밤의 지식여행(김영사)과 같은 시리즈들은 3000-5000원대의 저렴한 가격에 100여쪽 안팎의 알찬 내용으로 호평을 받으며 상당한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책세상문고나 살림지식총서 같은 시리즈들은 시사성을 담은 여러 쟁점들을 놓고 국내 필자들을 발굴해 집필을 맡기는 보기드문 시도를 감행했고, 각각 100권 내외의 시리즈를 이미 출간했다. 1990년대 초반에도 사회과학 문고판 서적들이 제법 나오긴 했었지만 당시에는 외국 책의 번역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커다란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문고판 시리즈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 가운데 하나는, 그 중에서 과학기술(내지는 넓은 의미의 STS적 쟁점)에 대해 다룬 책들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간혹 그런 책이 있더라도 이는 거의 대부분 통상적인 과학대중화 서적 ― 전파과학사의 블루백스 시리즈 같은 ― 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을 둘러싼 쟁점들이 어떤 중요성을 지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크게 아쉽게 느껴지는 점이다. 아마도 이런 현상이 빚어진 배경에는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공학간의 '두 문화' 문제가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둘간의 접점을 고민하기보다는 인문·사회과학자들과 자연과학자·엔지니어들이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출판 문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다. 한국공학한림원의 후원을 받아 출간되고 있는 '공학과의 새로운 만남' 시리즈를 보면 그런 생각이 점점 짙어지는 느낌이 든다.

2002년부터 이제이북스라는 신생 출판사에서 발간하기 시작한 '아이콘 시리즈'는 비록 외국 책을 번역한 것이긴 하지만, 이런 아쉬움을 달래 줄만한 미덕을 갖추고 있다. 이 시리즈는 원래 작은 포켓형 단행본을 전문적으로 출간하는 영국의 아이콘북스(Icon Books) 사(주1)에서 1999년부터 나오기 시작한 '포스트모던한 만남(Postmodern Encounters)' 시리즈를 우리말로 옮긴 것인데, 각 권은 조금 긴 논문 한 편 정도의 분량이며 여러 분야의 중요한 사상가들과 요즘 주목을 끌고 있는 사회적 쟁점 하나씩을 서로 묶은 참신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리즈에서 과학기술(내지 넓은 의미의 STS)과 관련된 책들이 거의 절반에 달하며 이 책들이 대체로 단순한 과학대중화의 영역을 넘어서 '두 문화' 사이의 접점을 모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 이 점만으로도 이 시리즈에 주목해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시리즈는 현재 24권까지 나와 있는데, 여기서는 이 중 현대사회에서의 과학기술 문제와 깊은 연관을 갖는다고 생각되는 것들만 골라서 들여다볼까 한다. 그 책들은 『토머스 쿤과 과학전쟁』, 『도킨스와 이기적인 유전자』, 『다윈과 근본주의』, 『호킹과 신의 마음』, 『아인슈타인과 거대과학의 탄생』, 『생태학과 포스트모더니티의 종말』, 『도너 해러웨이와 유전자 변형 식품』, 『하이데거, 하버마스, 그리고 이동전화』이다. 이 중에서 『토머스 쿤과 과학전쟁』은 예전에 평자와 김환석 교수가 함께 번역해 ≪시민과학≫에 실었던 적이 있고 출간된 책의 역자후기에서 이미 대략적인 평가를 내린 바 있으니 여기서의 논의는 피하고 나머지 7권의 책에 대해 평해 보도록 하겠다. 아마도 서'평'이라기보다는 독서일기 정도에 가까운 내용이 되겠지만.
 

『도킨스와 이기적인 유전자』, 『다윈과 근본주의』
 

먼저 『도킨스와 이기적인 유전자』부터 보자. 개인적으로 이 책은 전체 시리즈 중 가장 실망스럽게 느껴졌던 단행본이었다. 우선 제목부터가 중요한 사상가와 최근의 (사회적) 쟁점을 묶는 전체 시리즈의 컨셉과 썩 잘 맞는 편이 못된다('이기적인 유전자'는 유전자가 자연선택이 작용하는 [유일한] 단위라는 리처드 도킨스의 논쟁적인 이론을 가리키는 용어이니 말이다). 그리고 내용에 있어서도 도킨스의 주장을 '소개'하고 이를 '방어'하는 데(저자의 표현대로 하자면 도킨스에 대한 '오해'를 제거하는 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어 이 주제에 대한 균형잡힌 서술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예컨대 이 책의 말미에는 도킨스에 대해 제기되었던 여러 가지 비판들이 소개되는데, 저자는 비판이 타당성을 갖는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도 도킨스의 이론이 여전히 유효성을 갖는다는 점을 강조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주2) 특히 저자는 도킨스에 대한 비판 중 많은 수가 '사실("is")로부터 가치("ought")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간단한 진리를 망각한 데서 나왔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지나치게 안이하고 한가한 현실 인식이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과학자들은 이 문제에 있어 종종 이중적 태도를 취한다. 즉, 자신의 주장을 사회에 관철시키고 싶을 때는 현대사회에서 과학이 지닌 인식적 권위에 기대어 이 둘간의 구분을 흐려놓는 반면, 과학 연구가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될 때는 사실과 가치가 엄격하게 구분된다는 것을 자기변명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사실을 고려에 넣지 않고 사실과 가치의 구분에 대한 철학적 논변에만 의지하는 것은 오늘날 과학과 사회의 지배적 관계를 충분히 성찰한 결과라고 볼 수 없다.

이 점에 있어 『다윈과 근본주의』는 좀더 만족스럽다. 이 책은 오늘날 과학계와 근본주의 기독교 사이에 나타나고 있는 대립을 다루고 있는데, 이 대립은 특히 미국에서 공립학교에서의 진화론 교육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부각되고 있다. 저자는 이 쟁점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다윈 이전의 사상적 흐름과 다윈 진화론의 형성과정을 살펴본 후, 20세기 초의 스콥스 재판(일명 '원숭이 재판')과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나타난 창조과학 운동 등 20세기에 나타난 진화론 대 창조론의 주요 사건들을 간략히 정리한다.

이 책에서 주목할 점은, 저자가 이 쟁점을 다루는 사람들이 흔히 취하는 비대칭적인 접근방법, 즉 진화론을 옹호하는 과학계는 '합리적'이므로 별도의 설명이 필요없는 반면 창조론(내지 창조과학)을 옹호하는 근본주의 기독교는 '비합리적'인 주장을 내세우고 있으므로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사회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는 식의 접근방법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대신 저자는 이 둘간의 대립을 서로 다른 종류의 근본주의 사이의 대결로 파악하면서, 현재의 논쟁이 극단적인 양 진영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바꿔말해 창조론을 과학의 위치에 올려놓으려 하는 근본주의 기독교에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현재 받아들여지고 있는 과학만이 진리라는 '과학 근본주의'적 입장 ― 도킨스와 같은 과학자들이 대변하고 있는 ― 도 문제라는 것이다. 이 책은 창조론-진화론의 대립을 과학자들과 창조과학자들(성경 직해주의자들) 사이의 사적인 논쟁으로부터 구출해 내어 현대사회에서 작동하는 과학적 권위를 둘러싼 문제로 재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호킹과 신의 마음』, 『아인슈타인과 거대과학의 탄생』
 

천체물리학자인 피터 콜스가 쓴 이 두 권의 책은 다른 책들과 비교해 볼 때 통상적인 과학대중화 서적에 가장 가까우며, 20세기 물리학의 발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먼저 『호킹과 신의 마음』은 16-17세기 과학혁명 이후 물리학의 역사를 주마간산격으로 훑어보면서 20세기 초에 나타난 두 가지 혁명, 즉 양자역학과 (특수)상대성이론의 등장을 논의의 배경으로 살펴본다. 이어 저자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네 가지 기본 힘을 소개한 후, 이를 서로 통합해 하나의 이론체계를 만들려는 물리학자들의 노력 ― '집착' 혹은 '강박관념'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지만 ― 에 대해 서술하고, 그 속에서 호킹의 이론물리학적 기여가 실제로 어떤 것이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반면 『아인슈타인과 거대과학의 탄생』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의 형성과정과 빛휨 현상에 대한 관측을 통해 이를 입증하려 했던 1919년 영국의 에딩턴 원정대의 활동을 기술하는 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주3) 그리고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일반상대성이론이 인정받은 이후 아인슈타인이 이론물리학의 세계를 넘어 일반대중이 우러러보는 우상이자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되었음을 보여주면서,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가에 관해 나름의 생각을 제시한다.

평자가 이 분야의 전문 연구자는 아닌만큼, 짧은 지면에 20세기 물리학이 밝혀낸 많은 사실들을 압축적으로 정리해 놓은 본문 내용이 얼마나 이론적으로 충실한지에 대해 가늠해볼 수 있는 처지는 못된다. 그러나 평자에게 흥미롭게 여겨졌던 몇 가지 점을 짚어볼 수는 있을 듯하다. 먼저 저자가 과학자의 대중적 이미지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내용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아인슈타인과 호킹의 대중적 이미지가 매우 흡사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대중매체가 이들을 일반인들의 이해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우주의 신비, 신의 영역을 탐구하는 일종의 '성직자'로 그려냄으로써 이들을 우상시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어 그는 이러한 이미지에 편승해, 앞으로 자연계에 존재하는 네 가지 기본 힘을 통합한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이 만들어지면 우리가 '신의 마음'을 알게 될 거라는 식의 수사를 동원하는 호킹과 같은 물리학자들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좋게 말해도 무의미한 말에 지나지 않으며, 나쁘게 말하면 신성모독"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종교와 형이상학을 모든 자연법칙이 녹아들어 있는 수학적 이론으로 대치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그는 보고 있다. 이는 분명 귀담아 들을 만한 대목이며, 마거릿 버트하임의 저서 『피타고라스의 바지』가 내세우고 있는 입장과도 서로 통한다고 하겠다.

이와 관련해 또하나 눈여겨볼 부분은 과학의 본성과 대중매체의 역할에 관한 저자의 입장이다. 그는 과학이 "옳고 그름"에 관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유용하거나 유용하지 않은 기술(記述)"이라고 보고 있다. 그의 입장에서 현재 존재하는 이론 내지 모형은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며, 언젠가 다른 이론 내지 모형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과학활동에서 도출된 관측이나 실험의 결과는 잠정적인 성격을 띠며, 그것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대중매체는 과학을 각기 서로 다른 단서조항을 달고 있는 여러 견해들의 각축장으로 보기보다는 애매함 없이 진리를 규명해 내는 성직자의 영역으로 보고 있다. 그는 이러한 보도 행태가 "과학자들이 하는 일과 그들이 하는 일이라고 대중이 믿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틈을 잇는 다리가 되어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거대과학에 필요한 연구 자금을 할당받기 위해 연구 결과를 언론에 흘리면서 위험한 게임을 벌이고 있는 과학자들의 행태 역시 결과적으로 과학과 사회에 나쁜 영향만 끼치게 될 거라고 비판한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The Golem(1993)과 The Golem at Large(1998)에서 과학사회학자 해리 콜린스와 트레버 핀치가 표방했던 견해와 많은 부분 일치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생태학과 포스트모더니티의 종말』, 『도너 해러웨이와 유전자 변형 식품』, 『하이데거, 하버마스, 그리고 이동전화』
 

끝으로 영문학자인 조지 마이어슨이 쓴 세 권의 책에 대해 짧게 살펴보기로 한다. 앞서 소개한 책들과는 달리 이 세 권의 책은 과학대중화 서적으로서의 색깔은 거의 없고, 최근 부상하고 있는 특정한 사건이나 쟁점을 예로 들어 비중있는 사상가들의 핵심 주장을 '해설'하는 내용에 더 가깝다. 다소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음을 의식해서인지, 저자는 최근의 일간지나 인터넷 신문 등에서 짧은 인용을 자주 해가면서 논의를 끌어가고 있다. 이는 내용을 다소 말랑말랑하게 해주는 효과는 있지만, 논의 전개가 다소 산만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게 한다.

핵심적인 내용을 먼저 간단히 추려 보자. 『생태학과 포스트모더니티의 종말』은 탈정당화와 거대서사의 종말이라는 관점에서 근대성을 진단하고 포스트모더니티의 도래를 선언했던 리오타르의 논의를 소개하는 것으로 책을 시작한다. 이어 근대 과학기술 문명의 문제점과 한계를 지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생태학이 오늘날 지구온난화와 광우병 같은 전지구적 위기와 함께 '새로운 거대서사'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근대성이 종언을 고했다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주장은 잘못되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도너 해러웨이와 유전자 변형 식품』은 제목에서 볼 수 있듯, 현시대의 주도적인 페미니즘 사상가이자 과학·문화 이론가 중 한 사람인 해러웨이의 최근 저서인 Modest_Witness@Second_Millenium.FemaleMan^ⓒ_Meets_OncoMouse^TM(1997)의 논지 소개에 역점을 둔 책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다국적 생명공학 기업들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함과 동시에 '가자미의 유전자를 이식받은 토마토' 같은 새로운 생명공학적 존재들에 "각별한 관심"을 느끼는 해러웨이의 이율배반적(?) 잡종 철학이 지닌 의미를 짚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이데거, 하버마스, 그리고 이동전화』는 의사소통의 미래에 관한 두 가지 전망(개인 중심­명령과 통제로서의 커뮤니케이션­돈이 매개 vs. 상호작용 중심­상호 이해 및 숙의­민주적 전망)을 서로 대비시키면서 이동전화 광고의 담론을 전자에, 하버마스 같은 독일 비판철학자들의 저작을 후자에 각각 연결시킨다. 이 책은 오늘날의 '이동전화화(mobilization)' 현상이 곧 전자의 득세를 의미한다는 다소 어두운 전망을 제기하고 있다.

이 세 권 역시 해당 도서의 내용이 리오따르, 벡, 해러웨이, 하버마스의 주장을 얼마나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평자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그러니 독자로서의 감상만 한두 가지 얘기해 볼까 한다. 평자는 세 권 모두를 비교적 재미있게 읽었고, 사상가와 쟁점의 짝짓기도 흥미롭게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의 논지를 따라가기 어렵거나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대목이 몇 군데 있었다. 『생태학...』에서는 후반부에서 프로이트의 논의를 빌어 소개하는 '생태병리학'에 관한 내용이 전반부의 흐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얼른 이해하기 힘들었다(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없게 읽은 부분이기도 했다). 『하이데거...』에서는 이동전화가 명령과 통제로서의 커뮤니케이션과 연결된다는 주장에는 공감이 갔지만, 과연 이동전화의 쓰임새는 한 가지밖에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예컨대 이미 널리 보급되어 있는 이동전화를 새로운 숙의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도나 해러웨이...』는 읽으면서 가장 헷갈렸던 책이었다. 이 책은 유전자 변형(GM) 식품에 대한 사람들의 혐오를 인종적 순수성에 대한 무의식적 집착과 연결시키는 해러웨이의 주장을 설명하고 있는데, 솔직히 이 주장 자체부터가 썩 공감이 가질 않았다. GM 식품에 대한 거부감이 자연/인공을 마구 뒤섞어 놓으면서도 개념적으로는 이를 철저하게 구분하는 근대적 사고방식에서 부분적으로 비롯되었다는 점은 수긍이 가지만, 그것을 나찌즘 같은 과거 서구 사회의 '악령'과 연결시키는 것은 다소 비약이 아닌가 싶다(물론 이는 서구 사회의 문화적 심층에 대한 필자의 무지에서 비롯된 판단일 수 있다). 또한 그런 식의 논리는 아시아나 아프리카처럼 GM 식품의 영향권으로 점차 빠져들고 있는 비유럽 지역들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맹점도 아울러 갖는다. 평자로서는 GM 식품에 대한 거부감이 이런 무의식적 측면보다는 그것이 담지하고 있는 구체적 위험이나 불확실성에 기인하는 바가 더 크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아이콘 시리즈'의 과학도서들은 과학의 내용 전달에만 치중하는 과학대중화 위주의 기존 과학도서 시장에서 상당히 이색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위에서 각각의 책들에 대한 평자 나름대로의 감상이나 불만 등을 얘기했는데, 전반적으로 이 시리즈는 다소의 편차에도 불구하고 해당 사상가나 최근 쟁점에 대한 개략적인 지식이나 쟁점 정리, 참고 문헌 등을 얻고자 하는 독자에게 괜찮은 읽을거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짧은 분량에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 그리고 번역투의 문장이 지니는 딱딱함 등을 감안하면 해당 주제에 대한 사전지식이 거의 없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런 한계는 책세상문고나 살림지식총서 같은 문고판 시리즈를 통해 국내 STS 필자들에 의해 집필된 책들이 더 많이 나온 이후에야 비로소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 각  주 >

주1. 아이콘북스 사의 여러 시리즈들은 이 외에도 국내에 상당수 번역되어 있다. 예컨대 이 출판사의 'Introducing...' 시리즈 중 일부는 김영사에서 '하룻밤의 지식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있고, 과학사적 내용을 주로 다루는 'Revolutions in Science' 시리즈 역시 몸과마음의 '과학문화총서'로 현재 나오고 있는 중이다.

주2. 만약 도킨스의 이론을 둘러싼 논쟁에 더 관심이 있다면 이 책보다는 킴 스티렐니가 쓴 『유전자와 생명의 역사』(몸과마음, 2002)를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스티렐니의 책은 도킨스의 오랜 논적이었던 스티븐 제이 굴드와 도킨스의 입장 차이를 여러 가지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주3. 여기서 『아인슈타인과 거대과학의 탄생』이라는 책 제목이 독자에게 잘못된 인상을 심어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지적해두고자 한다. 이 책에서는 에딩턴의 일식 원정대를 일종의 '거대과학'으로 보고 있는 듯하지만, 통상적으로 거대과학(big science)이라고 하면 이는 2차대전기의 군사연구, 특히 원자탄개발을 위한 맨해턴 프로젝트를 그 시발점으로 잡는 것이 보통이다.
 
 
 
 

출전: 『시민과학』 53호 (2005.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