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진, 『할리우드 사이언스』(사이언스북스, 2013)
 


 
 

< 목  차 >
 

서문


1부 핵, 우주, 컴퓨터 - 20세기 거대과학 기술의 명암
 

01「뎀!」 핵 실험과 핵전쟁의 그늘에 숨은 죄의식과 공포

02「아이언 자이언트」 ‘정치’와 ‘기술’에 대한 엇갈린 태도

03「핵전략 사령부」 핵무기, 인류 절멸에 대한 강력한 경고

04「차이나 신드롬」 핵 발전소 사고 속의 무기력한 과학 기술자

05「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 “What-If”의 세계, 순진한 우주 비행의 열망

06「필사의 도전」 냉전, 마초주의, 유인 우주 비행의 미혹

07「콘택트」 과학과 종교, 과학과 비과학의 흐릿한 경계

08「명왕성 파일」 과학의 역사성이 지닌 무게

09「누가 전기 자동차를 죽였나」 ‘순결’한 기술, ‘오염’된 사회

10「시리아나」 석유: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11「극비 계획 로지」 여성 과학 기술자가 역사에서 지워지는 방식

12「에이아이」 60년대적인, 너무나 60년대적인

13「컨버세이션」 감시 기술 속에 갇힌 과학 기술자의 자화상

14「인사이더」 비밀주의 과학 속, 공익 제보자의 고단한 삶

15「매트릭스」 3부작 참신한 발상과 확장된 전개, 그리고 안이한 결말


2부 환경과 생명 - 21세기 과학 기술의 과제


16「프레데릭 백의 선물」 생태주의 담론이 주는 감동과 한계

17「미래소년 코난」 거대한 독재적 기술 vs. 소규모의 민주적 기술

18「정글 속의 고릴라」 과학을 하는 ‘여성적 방식’은 과연 존재하는가?

19「시빌 액션」 독성 폐기물 유출 피해에 맞서는 지역 주민의 활동

20「투모로우」 유용한 ‘교육적 도구’인가, 현실 도피적 왜곡인가

21「리애니메이터」 “미치고, 나쁘고, 위험한” 과학자의 전형

22「뇌엽 절제술사」 사회 문제에 대한 ‘기술적 해결책’의 한계

23「천성적으로 집착이 강한」 과학(자)은 어떤 일을 하는가?

24「브라질에서 온 소년」 대중적 상상력 속의 인간 복제

25「아일랜드」 ‘세속화’된 과학, 신비감이 거세된 복제 인간

26「블루프린트」 ‘현실적’ 인간 복제의 근(近)미래상

27「가타카」 다가올(온) 미래, 다가오지 않을 미래

28「플라이」 과학자, 괴물, 유전 공학

29「미믹」 통제를 벗어나 진화하는 괴물

30「카우보이 비밥 극장판」 새로운 프랑켄슈타인, 나노 기술


 
 

< 서  문 >
 

오늘날 영화는 대중예술 장르로서, 인기있는 오락거리로서, 또 하나의 문화산업으로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는 대중매체이다. 영화는 백여년 전 그것이 탄생한 시점부터 과학기술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 왔다. 이는 영화라는 매체가 당대의 첨단 과학기술에 의해 발명되었을 뿐 아니라 이후의 발전 과정에서도 여러 기술적 변화(토키, 컬러, 특수효과 등)가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기 때문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대중영화가 20세기의 숨가쁜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성찰을 그 속에 담아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간 국내외에서는 영화와 과학기술의 관계를 다룬 수많은 책들이 출간되었다. 이 중에서 영화 기술의 발전을 다룬 책들을 일단 논외로 한다면, 영화 속에 나타난 과학기술의 이미지를 다룬 책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과학자나 과학교사들의 관심사를 반영한 것으로, 영화 속에 과학기술이 어떻게 ‘잘못’ 재현되고 있는지를 지적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런 책들은 영화의 줄거리나 설정에서 과학 이론이나 개념을 활용할 때 그것이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폭로하고, 영화 속에 나타난 과학(자)의 모습이나 연구 환경이 현실 속의 과학과는 크게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는 과학대중화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철학자들의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주로 SF영화를 대상으로 해서 개인의 정체성, 삶의 의미, 가상과 현실의 관계, 인간과 기계의 차이 등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책들에서 초점은 대체로 철학 이론과 개념에 맞추어져 있고, 영화는 그러한 이론과 개념을 해설하기 위한 ‘화두’로서의 역할만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런 책들을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그 속에 뭔가가 빠져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영화 속의 과학기술 이미지를 과학자나 철학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대신, 현대과학사나 과학기술학(STS) 전공자의 관점에서 보면 훨씬 더 흥미로운 시각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영화를 과학의 (오)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하거나 철학 이론을 해설하는 수단으로 삼는 것을 넘어서, 오늘날의 과학기술이 밟아온 길과 그것의 현재 모습을 이해하는 매개로 삼을 수 있을 터였다. 이 책은 내가 지난 십수 년 동안 품어 왔던 그런 문제의식을 담은 결과물이다.


이 책에서 나는 20세기의 대표적인 과학기술 분야들인 핵, 우주, 컴퓨터, 환경, 생명공학, 나노기술 등을 다룬 30편의 영화들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선정된 작품들은 매우 다양해서 널리 알려진 블록버스터 흥행작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그리 알려지지 않은 컬트영화도 있으며, 영화 장르와 형식의 측면에서도 SF뿐 아니라 호러, 드라마,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등을 망라하고 있다. 이 모든 작품들을 하나로 묶는 키워드가 있다면, 그것이 현대사회와 과학기술이 맺고 있는 관계의 한 측면을 각각 나름대로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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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화 속의 과학기술 이미지’라는 주제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중이던 1996년 봄에 서강대 학생들이 마련한 ‘제2대학’ 프로그램에서 이 주제로 처음 강연을 했던 17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강연은 아직 내용이 정제되지도 못했고 이런저런 아이디어의 단초들을 담은 수준에 불과했지만, 이렇게 한번 시작된 인연은 쉽사리 나를 놔주지 않았다. 주제 자체가 대중적 친화력이 있다고 여겨져서인지, 그 이후에도 이 주제로 계속해서 강연과 원고 집필 요청이 이어졌고, 문제의식을 좀더 다듬어 관련 학회에서 발표를 할 기회를 갖기도 했다.


이 책은 그런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개인적으로 문제의식을 확장해 보고자 지난 10여년 동안 간간히 집필한 글들을 묶은 것이다. 이 중 두세 편을 뺀 나머지 대부분은 2003년 봄부터 시민과학센터에서 발간하는 소식지 『시민과학』에 ‘과학기술영화 DVD파일’과 ‘과학기술다큐 DVD파일’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것이다. 연재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못해서, 한두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글을 썼던 시기가 있었는가 하면 몇 달, 심지어 몇 년 동안 아예 손을 놓고 있었던 시기도 있었다. 그래도 천성이 게으른 내가 이만한 분량의 원고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거의 전적으로 매월 내지 격월로 연재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이 존재했기 때문이었으니, 이 책이 탄생하게 된 일등공신을 꼽으라면 단연 『시민과학』이라는 매체를 들어야 할 것 같다.
선정된 영화들과 글의 형식에 대해 한두 가지 미리 언급해 둔다. 먼저 여기서 다룰 영화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는 원칙적으로 국내에 정식으로 DVD가 출시된 적이 있는 작품으로 한정했다. 개인적으로 예전에 영화 관련 책들을 보면서, 아주 매력적으로 소개가 되어 있는데 정작 국내에서는 구해볼 수 없는 작품인 것을 알고 좌절했던 기억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큐멘터리의 경우에는 국내에 출시된 쓸만한 작품 자체가 너무 적어서 어쩔 수 없이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도 몇 편 포함시켰다. 앞으로 출시사들이 과학기술의 역사적, 사회적 주제들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들도 다양하게 출시해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글의 형식에 있어서는, 수록된 글들이 분량이 비교적 짧은 칼럼임에도 굳이 인용주를 포함한 각주를 넣기로 했다. 조금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2003년에 칼럼 연재를 시작할 때 개인적인 목표로 삼았던 것 중 하나가 ‘각주달린 영화 칼럼을 쓰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영화를 보면서 그냥 떠오른 감상이나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뭔가 ‘공부’를 해서 내실있는 칼럼을 써 보겠다는 소박한 다짐의 소산이었다. 과연 애초의 그런 목표가 글의 형식뿐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관철되었는지 여부는 독자들이 판단할 몫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칼럼을 연재하고 책으로 묶어 내는 과정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을 떠올려볼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먼저 『시민과학』에 칼럼을 연재하는 과정에서 (무언의) 관심과 격려를 보내 주신 시민과학센터의 여러 선생님들과 지인들, 그리고 칼럼을 가장 먼저 읽어 준 독자인 시민과학센터 회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앞서도 썼듯이, 『시민과학』이라는 매체가 없었다면 이 책은 애초에 햇빛을 볼 기회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2007년 봄부터 시민과학센터 회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과학기술 영화보기 모임’은 이 책에서 다룬 많은 영화들을 처음(혹은 다시) 보고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최근까지 100여 차례에 걸쳐 진행된 영화보기 모임에 꾸준히 참여해 주신 여러 회원들께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시민과학』 연재 원고를 책으로 묶을 것을 제안하고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원고의 최종 완성을 기다려 주신 사이언스북스의 여러 분들께 감사드린다. 여기 소개된 영화들을 보고 내가 제시하는 분석을 읽으면서 독자들이 현대사회 속에서 과학기술의 위상과 역할, 문제점, 앞으로의 방향 등에 대해 조금이나마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된다면 개인적으로 더할나위없는 보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