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다수의 일반 시민들은 필요한 과학기술 정보를 얻는 데 있어 직접적인 경험이나 공식 교육보다는 신문이나 방송 같은 과학언론의 역할에 크게 의존한다. 많은 경우 과학언론은 사실상 유일하다시피 한 정보의 원천으로 군림하고 있다. 따라서 과학기술과 관련된 지식을 전달하고 그것이 미칠 수 있는 사회적 영향에 대해 짚어주는 과학언론의 역할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올해 5월 20일에 발표된 황우석 교수의 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는 즉시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고 황 교수는 일약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8월 4일의 세계 최초 개 복제 성공 발표는 황 교수의 성가를 더욱 드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연구들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일반 시민들이 황 교수의 연구의 내용이나 그것이 지닌 함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고 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특히 초기의 보도에서 국내 언론들은 해당 연구의 장·단점과 윤리적 함의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곧장 '열광 모드'로 돌입했고, 그럼으로써 이후의 논의 구도를 협소화시키고 왜곡시킨 측면이 크다.
 

배아복제 연구, 지나친 낙관과 협소한 윤리적 관점
 

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된 보도에서 두드러진 것은 "극적 성취(breakthrough)" 내지 "혁명"에 대한 강조와 과학자 '스타' 만들기의 경향이었다. 국내 언론은 황 교수의 연구를 "중대한 진전", "혁명"으로 그려낸 외신(특히 경제지) 기사를 집중적으로 인용 보도했고, 이후에는 황우석 교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스토킹'하다시피 하면서 황 교수 '스타' 만들기에 치중했다. 이러한 보도태도 속에서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중·장기적 전망과 윤리적 함의에 주목한 외신 보도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먼저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언제쯤 실제로 환자를 치료하는 데 쓰일 수 있을지에 대한 예측에서 국내 언론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발표 당일에 일부 언론은 줄기세포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의 말을 빌어 실제 치료에 이르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언론은 '대문 네 개를 한번에 열어젖혔고 이제 사립문 몇 개 남았다'는 황 교수의 표현을 여과없이 옮기면서 난치병 치료가 당장 눈앞에 다가온 듯한 장미빛 미래상을 그려냈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한 외국 언론의 시각은 어땠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훨씬 더 조심스럽고 판단을 유예하는 태도를 보였다. <네이처>는 5월 26일자 보도기사에서 이번 연구가 실제 치료법에까지 이르려면 수 년 이상이 걸릴 것이고 아예 그런 가능성이 도래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썼다. <뉴욕 타임즈>는 5월 29일자 기사에서 '치료용' 배아복제가 그 자체의 결함에 의해 중단될 것이라는 비판적 시각을 소개했다. 복제동물에서 나타나는 결함, 복제 조직에서 암 발생의 가능성, 그리고 윤리적 부담이 없는 성체줄기세포의 성공 등이 복제를 이용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악재로 작용할 거라는 예측이었다. <사이언스> 역시 6월 10일자에서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전망에 관한 장문의 분석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배아줄기세포의 임상시험 '시도' ― '치료 성공'이 아니다! ― 까지 적어도 5-10년 이상이 걸릴 거라는 대다수 연구자들의 예측을 소개하면서, 배아줄기세포 치료에 대한 환자들의 기대가 과도하게 높아진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과학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이런 기사들을 보면 배아줄기세포 치료법의 개발 전망이 극히 불확실하며 무엇이 언제쯤까지 가능하게 될지를 판단하기에도 아직 이른 시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립문 몇 개 남았다"는 식으로 환자들에게 과도한 기대를 품게 만드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이와 같은 외국 언론의 보도내용은 국내 언론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다.

황우석 교수 연구의 윤리적 함의에 관한 보도 역시 피상적이었다. 대다수 언론은 '배아의 생명이 우선인가, 난치병 환자의 생명이 우선인가' '인간복제의 위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하는 형이상학적 구도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이 때문에 난자 추출의 대상이 된 여성의 건강권 문제나 연구절차의 윤리적 정당성(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동의가 과연 이루어졌는지, 기관심사위원회[IRB]의 심사는 제대로 진행되었는지 등) 문제는 시민사회단체와 환경단체들이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연구 과정에서의 배아 파괴 문제 역시 심도있는 논의가 이루어진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잔여배아를 이용하건 복제배아를 이용하건 간에)는 기본적으로 줄기세포를 추출하고 나면 배아는 죽기 때문에 생명 파괴를 둘러싼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 그러나 황우석 교수는 5월 31일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아무런 생명도 파괴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폈다. 어떻게 이런 '신기한' 주장이 가능할까? 그것은 황 교수가 난자와 정자가 수정해 만들어진 배아와 난자의 핵을 제거하고 체세포의 핵으로 치환해 만든 복제 배아가 질적으로 서로 다르다고 강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후자의 경우 난자와 정자가 합쳐진 것이 아니므로 '배아'가 아니며 단순한 세포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연구의 본질에는 아무런 변화도 주지 않고 용어만 다시 정의함으로써 배아 파괴를 둘러싼 윤리적 논쟁을 돌파해 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복제 배아 역시 자궁 속에 이식되면 똑같이 개체로 성장할 잠재력을 갖춘 존재라는 점에서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뉴욕 타임즈>는 5월 29일자 기사에서 황 교수의 전략을 '이름붙이기 게임(name games)'이라고 부르면서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이러한 태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들을 소개했다. 그러나 국내 언론은 자신이 아무런 생명도 파괴하지 않았다는 황 교수의 주장만 여과없이 그대로 옮겼을 뿐, 그 뒤에 숨은 미묘한 쟁점들은 파악하려는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개 복제, 또 한 번의 넌센스
 

배아복제 줄기세포에 관한 보도에서 나타난 문제점들 ― 외신 보도의 선별적 인용, 난치병 치료의 적용가능성에 대한 낙관, 윤리적 함의에 대한 피상적 이해 ― 은 8월 4일의 개 복제 관련 보도에서도 그대로 되풀이되었다. 국내 언론은 개 복제의 성공이 숱한 기술적 난관을 뛰어넘어 '세계 최초'로 이뤄낸 '쾌거'라는 데 초점을 맞추었고, 개가 인간과 많은 질병을 공유하기 때문에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 전기'를 제공할 수 있고 멸종위기 동물의 복원에도 큰 도움을 줄 거라는 연구진의 설명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그러나 사실 개 복제가 인간의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 전기를 제공할 거라는 주장에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개가 인간의 질병 모델로 종종 쓰여 온 것은 사실이지만, 개의 '복제'가 그러한 질병 치료와 어떻게 연관되는지가 썩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개의 복제와 인간의 난치병 치료를 굳이 연결짓자면 먼저 개의 복제 배아로부터 배아줄기세포주를 확립한 후 이를 다시 원하는 종류의 세포로 분화시켜 개를 치료하는 방법을 알아내야 하는데, 이는 사람의 배아줄기세포로 난치병을 치료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과제이다. 그리고 설사 이런 방식으로 개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을 곧바로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가 유용한 모델이긴 하지만 인간과 동일하지는 않으므로 사람에 대해서는 여전히 장기간에 걸친 별도의 임상시험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멸종위기 동물 복원에 복제기술을 사용할 수 있을 거라는 주장은 더욱 당혹스럽다. 멸종의 근본 원인인 생태계 파괴를 도외시한 채 기술적인 대증요법만으로 멸종위기 동물이 복원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보면 황 교수팀이 개 복제를 인간의 난치병 치료나 멸종위기 동물 복원과 연결지은 것은 상업적인 애완견 복제에 대한 서구사회 일반의 거부감을 의식해 그와 다른 차원의 의미부여를 하려다 나온 무리하고 궁색한 설명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듯싶다(참고로 황 교수팀의 짧은 논문이 실린 <네이처> 8월 4일자의 사설은 개 복제의 의미에 대해 상당히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물론 그 속에는 난치병 치료라는 숭고한 대의를 계속해서 연구의 후광 효과로 누리려는 의도도 녹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 언론은 개 복제가 지닌 의미의 이면을 차분히 들여다보기보다는 '세계 최초'라는 형용사에 현혹되어 그것의 의미를 다분히 부풀리는 모습을 보였다.
 

황우석 신드롬, 앞으로의 과제
 

두 사건에 대한 언론보도를 종합해 보면, 국내 언론은 황우석 교수의 연구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과 그 속에 내포된 한계 및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하지 않았고, 그런 점에서 사람들이 황 교수의 연구를 이해한 후 제대로 된 이유에서 지지 내지 반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했다고 결론내릴 수밖에 없다.

이를 감안해 볼 때 현재 필요한 것은 줄기세포 연구가 제공해줄 수 있는 혜택에 대한 기대치를 현실적인 수준으로 맞추고, 이에 근거해 해당 연구의 가능성과 한계, 문제점을 냉정하게 짚어볼 수 있는 논의의 장을 복원하는 것이 될 터이다. 황 교수의 연구를 "기적의 치료법"으로 떠받들거나 "악마의 기술"이라며 비난하는 것은 어느 쪽이건 바람직한 사회적 논의과정의 일부가 될 수 없다.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지지는 불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열광이나 막연한 반감이 아니라 해당 연구의 전망과 윤리적 쟁점에 대한 이해와 숙고로부터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출전: <함께사는길> 2005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