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녹색혁명은 혁명이 아닌가
 
 

기술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성공사례가 미국의 맨해턴 프로젝트 - 3년간에 걸친, 전무후무한 강도의 연구개발 끝에 원자폭탄을 만들어낸 - 와 인간의 달 착륙이라는 것에는 이제 거의 보편적인 동의가 이루어진 것 같다. 이러한 성취들은 자연을 굴복시켜서 우리의 목적에 들어맞게 만드는 우리의 능력을 보여주는, 기념비적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이들은 물질세계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의 깊이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대단히 복잡한 물리적 계의 작동을 이용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예시해 주었다. 이러한 성공들은 우리가 기술로부터 얻을 수 있는 미래의 이익들에 대해서 엄청난 낙관주의를 불러왔다. 만약 원자 에너지의 본질이 이해되고 그것이 실제로 이용될 수 있게 되었다면, 그리고 인간이 달에 발을 디딜 수 있는 단계에까지 나아갔다면, 대체 기술진보에 어떤 장애물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지평선은 무한한 듯 보였다 - 필요한 것은 오직, 앞서와 같은 거대한 성취들을 본받아 성공하기 위한 조직과 숙련, 헌신성, 끈기, 그리고 적극성을 갖추는 것뿐인 것 같았고, 인간의 목적을 충족시키는 것에 있어 기술의 능력에는 장애물이 있을 수 없었다. 질병을 치료하고,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식량을 제공하고, 에너지를 풍족하게 제공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부(富)를 제공하는, 이 모든 것을 방해하는 것이라곤 오직 의지와 조직의 부족 문제뿐인 것처럼 보였다.

높은 산출을 가져오는 밀이나 귀리, 벼의 품종들을 도입한 녹색 혁명(Green Revolution)의 배후에도 기술의 능력에 대한 바로 이러한 확신이 자리잡고 있었다. 맨해턴 프로젝트와 인간의 달 착륙이 응용물리학의 개가였듯이, 이러한 곡식들의 변종을 개발하는 것과 이러한 특질들을 그 곡식이 자랄 곳의 지역적 조건에 맞게 적절히 적응시키는 것은 응용생물학이 낳은 최대의 성과일 수도 있었다. 이러한 식물들의 유전적 측면에 대한 이해의 깊이는 분명 전통적인 농업과 작물 경작에서 이용되었던 주먹구구식의 생물학적 원리들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녹색 혁명의 목적은 개발도상국 인구 중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충분한 식량, 이 중에서도 특히 단백질을 공급하는 것에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가 식량과 단백질의 총 산출을 증가시키는 것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 에컨대 인도가 곡물의 새로운 수출국으로 등장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녹색 혁명은 그것이 상정했던 가장 기본적인 목표의 성취에는 실패했다. 곡물 생산이 분명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내에서 가난한 이들의 식사의 질은 향상되지 않았고, 종종 그 질이 오히려 하락하기까지 했다. 왜 이런 결과가 생겨야 했는가?

녹색 혁명에서 높은 산출을 내는 새로운 품종을 도입한 것은 단순히 기존의 품종을 다른 품종으로 교체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새로운 씨앗은 잡종이었기 때문에 이를 매년 새로 사들여야만 했다. 농부들이 전년도의 씨앗을 보존해 두는 것이 더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품종의 유전적 측면으로부터 이익을 보기 위해서는 이 품종에 적합한 비료와 살충제, 관개의 통제와 새로운 농업기계의 도입이 요구되었다. 따라서 녹색 혁명은 이러한 새로운 품종을 도입한 농업공동체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녹색 혁명의 혜택은 재정적 대출을 받을 수 있고, 추가적인 토지와 기계 및 여분의 노동을 끌어들일 수 있는 이들, 즉 가난한 것과는 거리가 먼 집단에게 돌아가 버렸다. 많은 지역들에서 가난한 이들은 부채를 상환하는 과정에서 대기업농들에게 토지를 잃었고, 이는 무토지 농업노동자들의 증가와 이들의 임금 하락을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중 대규모 기업농들의 부의 증대는 이들의 욕망의 증가에 의해 성취되었는데, 이는 식량 가격의 상승을 동반하여 가난한 이들의 음식물 섭취를 악화시켰다. 그리고 새로이 도입된 곡식들은 콩 과의 곡식들을 대체하여 재배됨으로써, 식물성 음식물의 섭취에 크게 의존하던 가난한 이들의 균형잡힌 단백질 섭취까지 가로막았다. 또 식량 자급자족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변종을 이용하려는 개발도상국 정부의 시도는 토지 가격의 상승을 초래함으로써 가난한 이들의 토지 보유를 악화시켜 콩 과 식물의 생산을 더욱 감소시켰다.

녹색 혁명의 결과를 리뷰하는 글에서, 폴린 마르스탠드는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정확히 서술하고 있다:
 

곡물 산출의 생산성 증가는 개량된 농업의 요구에 부응하는 더 좋은 변종의 개발을 포함해야만 한다. 하지만 새로운 종자의 도입이 자동적으로 생산성의 증가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만약 정부가 사회집단간의 불평등을 증가시키는, 어떤 신기술이 내포하는 경향을 접했을 때, 재정적 대출과 생산 가격, 토지의 집적 등을 통제하고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서서 행동함으로써 이에 의도적으로 대처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신기술의 도입은 식량 생산을 증가시킬 수는 있어도 영양실조나 기근을 막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맨해턴 프로젝트와 인간의 달 착륙이 보여 준 엄청난 성공과 녹색 혁명이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겠다는 애초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실패한 것, 이 둘을 서로 비교함으로써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새로운 곡물 변종의 개발은 그 성취에 있어서 원자 폭탄의 개발이나 인간의 달 착륙에 그다지 뒤떨어지지 않는다. 원자 폭탄은 성공적으로 폭발했고, 인간은 달에 착륙하여 여기저기 걸어다니다가 지구로 귀환했으며, 새로운 곡물들은 이전의 종자들보다 훨씬 많은 소출을 내었다.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차이는 엔지니어들이 기술적인 계산을 잘못한 것에서 나온 것이 결코 아니다. 여기서 핵심적인 차이는, 성공으로 판명된 계획의 경우 그 목표가 애초부터 순전히 기술적인 것이었다는 점이다. 맨해턴 프로젝트의 경우, 성공의 기준은 특정한 폭발력 이상으로 폭발하는 폭탄의 제조였다. 달 착륙 프로그램에 있어 성공이란, 인간을 그 속에 실은 한뭉치의 기계덩어리를 달에 착륙시킨 후 이를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녹색 혁명의 경우는 매우 다르다. 그것의 목적은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이었다. 녹색 혁명의 목적은 높은 소출을 내는 작물의 개발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녹색 혁명은 그것의 기술적인 성취의 측면에서는 엄청난 성공이었으나, 전체적으로 보아서는 완전한 실패였다. 왜냐하면 그것의 방대한 노력이 완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가 버렸기 때문이다. 마르스탠드가 관찰한 바와 같이, 더 많은 곡물의 산출로부터 나오는 이익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사회적 조건이 바뀌지 않는 이상에는 더 많은 곡물을 생산해 봐야 가난한 이들에게 이것이 돌아가지는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녹색 혁명의 성공을 향한 노력을 강탈해간 주범이다; 즉, 녹색 혁명의 기술적 산물이 그것을 이용하는 사회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가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대단히 값진 것이다: 우리가 사는 물리적 생물학적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대단히 높은 수준이며, 이는 우리에게 모든 종류의 기술적인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적'들이 어떻게 사회와 상호작용하는가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대단히 빈약하며 심지어 위험스럽기까지 하다. 예컨대 엔지니어들에게 엄청난 힘으로 폭발하는 모종의 장치나 인간을 달까지 데려갈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해 보라. 충분한 재원과 노력, 조직만 갖추어진다면 아마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가난한 이들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사람들이 원하는 여행을 위한 여객운송 시스템을 개발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면서도 그것을 다루는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는 기계를 발명하고, 전쟁으로부터 안전과 정신적 스트레스로부터의 해방을 제공하해 달라고 - 즉, 기술적인 하드웨어들이 사람들이나 사회와의 상호작용을 거쳐야만 그 기능을 충족시킬 수 있는 그 어떤 것들을 구현해 달라고 - 요구해 보라. 성공은 결코 보장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기술적인 능력과, 이런 능력의 결과 나타난 산물이 인간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 사이의 이런 엄청난 불균형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는 기술에 대한 광범위한 적대감이 퍼져 있다. 비판자들은 이에 대한 예를 수도 없이 들고 있다. 현대적인 의학과 위생학은 개발도상국에서의 사망률을 낮추었지만, 그 과정에서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의 인구증가를 낳았다. 오늘날의 기술은 선진국의 국민들에게 전례가 없는 생활의 수준을 가져다 주었지만, 이는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될 정도의 환경파괴와 자원고갈을 댓가로 치름으로써 비로소 가능했던 것이었다. 기술적인 진보의 결과 노동자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재화를 생산해 낼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모든 사회성원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게 되었지만, 이는 노동으로부터 모든 개성을 제거하고 이를 무의미한 반복작업으로 바꾸어 버린 결과였다. 핵무기 기술은 몇십 년 정도 전쟁을 방지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마침내 전쟁이 도래하는 순간에는 엄청나게 거대한 파괴를 불러올 것이었다. 각종 화학물질의 사용을 통해 곡물 생산은 증가되었지만, 이는 토양의 손실과 이를 부양하는 생태계의 파괴로 인해 미래의 농업이 붕괴할 수 있다는 점을 그 댓가로 요구하였다. 오늘날의 여행은 그 비용이 매우 낮아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세계의 아름다운 곳들에서 여가를 즐길 수 있게 해 주었지만, 이는 동시에 지역 주민들을 외지인에 대한 봉사의 위치에 밀어넣었고, 이들의 생활 환경을 호텔 프론트의 지긋지긋한 단조로움으로 바꾸어 버렸다...(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