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브라운 & 캐더린 라이언
1970년대 초, 미국 정부는 다수의 초음속 제트 여객기(supersonic jets, SST)를 새로 건조(建造)할지의 여부를 놓고 평가를 진행하고 있었고, 에어로졸(aerosol) 산업은 매년 29억 개의 분사제 깡통을 판매하고 있었다. 얼핏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런 행위들은, 이 둘 모두가 지구의 오존 보호층을 교란시켜 공공보건과 환경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를 과학자들이 제기함에 따라 서로 연결되었다. 미국 정부는 SST 편대를 건조하려는 계획을 결국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그러나 [분사제로 쓰이는] 에어로졸과 냉장고에서 단열재에 이르는 다양한 제품에 이미 쓰이고 있던 화학물질 부류인 염화불화탄소(chlorofluorocarbons, CFCs)는 이후 길고도 격렬한 논쟁의 초점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지구 상공의 성층권에는 얇은 오존의 층이 있는데, 오존은 무색의 불안정한 기체로 태양에서 오는 과도한 자외선 노출로부터 생태계와 인간을 보호해 준다. 비록 [자연 상태에서도] 적은 양의 자외선이 지구 표면에 도달하긴 하지만, 이 노출량이 증가할 경우 피부암의 증가, 농업생산성의 감소, 해양생태계의 심대한 교란 등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CFCs가 어떤 환경적 영향을 야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초기의 평가들은 CFCs에 대해 별로 걱정할 이유가 없다고 보았다. 스모그 발생이나 직접 노출에 의한 건강상의 악영향 같은 전형적인 영향의 존재 유무에 주목한 연구자들은 이 화학물질에 별다른 독성이 없고 쉽게 분해되지도 않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확신했다.
어빈 소재 캘리포니아대학에 있던 두 명의 대기화학자 마리오 몰리나(Mario Molina)와 셔우드 롤랜드(F. Sherwood Rowland)는 CFCs가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한 물질이라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하고 대기 중의 CFCs에 장기적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를 연구했다. CFCs를 대기 최하층부(대류권)로부터 제거하는 알려진 메커니즘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 화합물이 오랜 기간을 거치면서 성층권에까지 올라가게 되고 거기서 높은 수준의 자외선에 노출되어 분자의 화학결합이 끊어질 것이라고 추정했다. 몰리나와 롤랜드는 자유 염소 원자와 오존의 친화력이 높기 때문에 이들간에 일련의 복잡한 화학반응이 생겨 결국 성층권의 오존의 양이 줄어들게 될 거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그간의 CFCs 생산량을 분석했고, 이로 미루어 볼 때 오존의 손실량과 이로 인해 지표면에 도달하게 될 자외선의 증가량이 엄청난 수준일 것으로 내다보았다. 1974년 중반쯤에 발표된 그들의 연구 결과는 오존층 감소와 CFCs의 문제를 곧바로 1면 톱기사로 만들었다.
이에 과학자들은 필수적이지 않은 용도에 쓰이는 CFCs의
사용 금지를 요구했지만, 산업체측은 제기된 위험이 이론적인 것에 불과하다며
조롱했고 CFCs가 산업경제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정책결정자들은
환경적 관심사와 경제적 관심사를 조화시키면서 복잡한 과학기술 문제에 관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어려운 정치적 선택에 직면하게 되었다. 몰리나와 롤랜드의
발견에 대한 초기의 정책 대응은 몇 나라에만 국한되었고 그나마도 에어로졸
분사제 용도의 CFCs 사용을 제한하는 데 그쳤다. 오존층 감소가 다시한번 국가적·국제적
정책의제의 중심부로 부상한 것은 1980년대 후반에 가서였다. 그 사이에 낀
15년간의 정책 변화는 수많은 쟁점들을 반영한 것이었는데, 여기에는 과학적
담론의 성격, 기술발전과 경제적 고려의 영향, 전지구적 외교,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에 대한 비용과 편익 등이 포함되었다.
정책적 난제
그 이전까지 정책결정자들은 오존층 감소 문제와 유사한 성격을 지닌 환경 쟁점에 맞닥뜨린 적이 없었다. 이는 정책이 [사고에서의] "피해자 수"나 당장 측정가능한 오염량이 아니라 과학의 예측능력에 근거할 것을 요구하는 쟁점이었다. 예컨대 산성화된 호수나 산성비는 측정이 가능했고, 대기오염은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었으며, 암 발병률은 숫자로 헤아릴 수 있었고, 독성물질 노출의 역학적 증거를 평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오존층 감소의 경우, 1980년대 중반까지 정책결정자가 이용할 수 있었던 유일한 "데이터"는 과학 이론과 컴퓨터 모델뿐이었다.
또한 이 쟁점은 독특한 시·공간적 특성을 갖고 있었다. 몰리나와 롤랜드는 CFCs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고 나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오존층 감소에 대한 영향 측정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 결과, 현재 세대는 [CFCs를 사용함으로써] 경제적 이익과 삶의 질에서의 편익을 누릴 수 있는 반면, 그로 인한 피해는 미래 세대가 겪게 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어떤 한 지역에서 방출된 CFCs는 지구 전역으로 확산되어 전세계적인 현상을 빚어낼 수 있었다. 미국에서 방출된 것이 호주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고 인도에서 방출된 것이 미국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게 되었다. 조건이 이러했기 때문에 한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법적 규제조치를 취하는 것은 자국민들에 대한 건강상의 위험을 크게 줄이는 효과를 가져오기 힘들었다. CFC의 생산능력과 사용이 산업세계 전반에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었으며 심지어 개발도상국에도 뻗쳐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중반까지는 미국과 몇몇 유럽 국가들, 구 소련, 그리고 일본이 전세계 CFCs 생산량의 거의 대부분을 생산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부터 몇몇 개발도상국들에서 CFCs의 생산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개발도상국들은 냉장고나 발포고무(자동차 시트나 침구류에 쓰는) 같은 소비재를 생산하고, 상공업을 위한 공간들에 냉방 장치를 설치하고, 전자제품이나 여타의 첨단기술 제품을 제조하는 공장을 설립하고자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존층 감소를 이유로 CFCs의 생산을 규제하는 것은, 자국의 생활수준을 높이고 세계 경제에서 중요한 경쟁자로 나서려는 개발도상국들(특히 인도와 중국)의 능력을 제한하기 위해 선진산업국가들이 부리는 술책으로 보일 수 있었다.
이런 독특한 과학적 쟁점들을 더 복잡하게 만든 것은 CFCs의 상업적 매력 ― CFCs가 많은 응용분야에 있어 이상적인 물질이라는 ― 이었다. 냉매로서 CFCs는 열전도나 안전성에서 우수한 특성을 지니고 있었고, 유사한 특성 때문에 단열 용도의 발포고무에 쓰일 때도 가능한 대체물질에 비해 더 우수했다. CFCs 중 어떤 것은 효율적인 산업 용제였는데, 다양한 물질들과 잘 융화(融和)하고 상대적으로 독성이 낮다는 이점까지 지니고 있었다. CFCs의 생산업체들은 대체물질을 개발하는 비용이 엄청날 거라고 주장했고, 사용자들은 재설계된 냉장고와 냉방 시스템의 에너지 효율성과 안전성에 대해 우려했다. 정책결정자들은 환경, 에너지, 경제에 대해 중요하면서도 명확하게 정의된 결과를 가져온다는 보장이 없는 기술혁신을 요구할 수 있을까?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과연 [잠재적] 위험이 단기적 손실을 감수할 정도로 큰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정책결정자는 어떤 절차에 의존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모든 쟁점들은 서로 복합적으로 작용해 오존층
감소 논쟁을 둘러싼 복잡성과 논쟁의 강도를 증가시켰다. 이 글에서 우리는
이러한 과학기술 논쟁을 염두에 두고 [오존층 감소에 관한] 국가적·국제적
정책의 진화과정을 논해 보려 한다. 우리는 오존층 감소 논쟁이 지구온난화와
같은 다른 전지구적 환경 문제에 어떤 함의를 갖는지에 대해 우리의 견해를
밝히는 것으로 글을 끝맺을 것이다.
과학과 예측
인간의 활동이 지구 대기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불과 2, 3일 후의 날씨를 예측하는 것조차도 상당히 어렵다. 과학자들이 장기적인 기후 변화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천 가지의 화학 반응들을 파악해 내고, 전지구적 대기 순환 패턴을 정의하고, 태양 플레어(solar flare, 태양면의 일시적 폭발 ― 옮긴이)에서 화산 폭발에 이르는 다양한 영향을 고려에 넣어야 한다. 그 때문에 모든 대기 변화 모델에서 불확실성이 남아 있게 되고, 이는 CFCs의 생산과 같은 인간 활동이 미치는 영향에 관한 예측을 엄청나게 복잡하게 만든다.
과거 전지구적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를 품었던 과학자들은 전지구적 대기 패턴을 추적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화학물질이 필요함을 깨닫고 이를 찾아나섰다. CFCs는 그것이 가진 화학적 안정성으로 인해 추적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화학물질이었다. 1973년,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 박사는 CFCs의 분산 상태를 분석하여 당시까지 생산된 거의 모든 CFCs가 대기 최하층부에 존재하는 듯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러브록의 발견은 몰리나와 롤랜드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그들이 연구에 착수하도록 만들었다. 만약 CFCs의 사용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이 화학물질이 전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는 사실은 중대한 함의를 지니게 될 것이었다.
몰리나와 롤랜드는 CFCs가 성층권으로 매우 천천히 올라간다는 가정에 기반해, 설사 CFCs의 대기 중 방출이 1974년 시점에서 완전히 중지된다고 하더라도 1980년대 중반이 되면 CFCs로 인한 오존층 파괴가 자연적인 파괴 수준을 넘어설 것이며, 1990년에 정점에 이르고, 이후 200년 동안 이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몰리나와 롤랜드의 주장을 놓고 이내 논쟁이 일어났는데, 논쟁의 한편에는 CFCs가 오존층 파괴의 촉매 구실을 한다고 확신하는 대기화학자들이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전지구적 대기 운동이 성층권의 CFCs 농도를 증가시키지 않을 것이며 다른 반응들 역시 결과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주장한 기상학자들이 있었다.
만약 생태와 공공보건에 미치는 손상의 가능성이 덜 심각한 것이었다면 불확실성을 줄이는 문제는 학계에서나 논의될 법한 과제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오존층 감소로 인해 입을 것으로 추정되는 피해규모가 너무나 엄청났기 때문에 정책결정자들은 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학적 불확실성이 지배했던 1970년대의 상황에서 정책결정자들은 불확실하지만 놀라운 예측에 근거해 행동에 나서거나, 아니면 논란의 여지가 없는 증거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이는 유난히도 어려운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과학자들이 오존층 감소를 실제로 측정할 수 있을 때쯤에는 이미 너무 많은 양의 CFCs가 생산되어 심각한 수준의 감소를 피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연방 특별 조사팀의 보고에 따라 연방 정부는 미국과학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이 문제를 철저하게 분석해 줄 것을 요청했다. 화학산업측이 그 이론의 가치를 훼손하기 위한 맹렬한 로비 활동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가 1976년에 내놓은 보고서들은 몰리나-롤랜드 가설의 결론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아카데미의 위원회는 CFCs에 대한 금지조치를 요청하는 데 있어서는 주저하는 태도를 보였고, 화학산업을 규제하기에 앞서 더 많은 연구를 해보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 보고서들은 자신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지키려는 화학산업과 신속한 행동을 촉구하는 과학자 및 환경운동집단 사이에서 커져 가고 있던 갈등을 해소하는 데 거의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한 의회 과학자문위원은 당시의 의견불일치를 이렇게 묘사했다. "[산업체 대표자들은] 그것[오존층 감소 이론]에 대해 말할 때 멸시하는 태도로 '그 이론'이라고 불렀다. 과학자에게 있어서 하나의 이론은 지적 성취의 정점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산업체의 입장에서 이론이란 너의 추측 대 나의 추측, 그 이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존층 감소 논쟁을 통해 줄곧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은 화학산업의 경제적 측면이었다. 1974년 시점에서 CFCs 및 연관 제품은 미국의 연간 무역에서 80억 달러를 차지하고 있었고, 심지어 백악관조차도 이 산업의 중요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세계 최대의 CFCs 생산업체인 듀퐁(DuPont)은 과학 모델에 대한 공격을 조직하는 데 힘을 보태었고, 풍부한 자금에 바탕한 광고와 로비 활동을 벌였다. 산업체의 대변인들은 CFCs로 인한 오존층 감소를 보여주는 경험적 증거가 없고 대기의 흐름이나 화산 활동과 같은 자연 현상이 결론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보증도 없는 상태에서 규제조치를 취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1978년 미국에서는 에어로졸 용도의 CFCs 사용이 금지되었지만, CFC 생산업체들은 이론의 타당성에 대해 계속 회의적인 입장이었고 에어로졸 외의 다른 용도에 대한 마케팅을 강화해 나갔다. 추가적인 연방 규제조치가 없었던 기간 동안 생산업체들은 생산을 늘려 나갔고 1980년대 중반이 되자 전세계의 CFC 생산량은 에어로졸 금지조치 이전의 생산량을 넘어서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기간 동안 대체물질에 대한 연구는 거의 중단되다시피 했다. 화학산업측에서 규제조치의 확대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하고 있긴 했지만, 이론을 뒷받침하는 경험적 증거가 여전히 없었고 오존층 감소에 대한 예측치가 들쭉날쭉했기 때문에 산업체들의 태도는 여전히 미온적이었다.
전환점은 1984년에 찾아왔다. 이 해에 영국 과학자들은 기상위성 자료를 재해석해 겨울 동안 남극 상공의 오존층에 커다란 구멍 ― 40%의 오존 감소 ― 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산업체 내외의 몇몇 과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경쟁 이론들을 계속 제시했지만,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이를 기초 이론을 지지하는 최초의 증거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CFCs와 남극 상공의 오존 구멍 사이의 결정적인 연관관계를 밝히지도 못했고 겨울에 오존 감소가 증가하는 현상에 대한 설명도 제공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이후에도 논쟁은 계속되었고 산업체측은 오존층 감소가 CFCs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불확실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남극에서의 연구 시도가 계속되는 동안, 실험실의 과학자들은 CFCs의 역할에 대한 메커니즘을 제시해 주는 증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1987년 NASA의 비행남극오존실험(Airborne Antarctic Ozone Experiment)을 수행하던 과학자들은 오존의 수준이 가장 낮게 측정된 곳에서 염소 원자가 높은 수준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몰리나-롤랜드 가설의 입증은 1988년, CFCs의 생산을 통제하기 위한 국제 조약(몬트리올 의정서)이 체결된 직후에 이루어졌다. NASA가 후원한 오존변화추세위원회(Ozone Trends Panel)는 전지구적 오존 수준이 연평균 2.4%의 감소를 나타내고 있다고 밝히고 염소를 포함한 화학물질을 그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CFCs와 오존층 감소를 연관짓는 증거에 대한 의심을 거듭 표출했던 듀퐁은 저항을 중단했고 대체물질의 개발에 따라 CFCs 생산을 단계적으로 줄여 가겠다고 공표한 최초의 생산업체가 되었다.
CFCs 및 연관 화학물질과 오존층 감소 사이의 연결고리는 밝혀졌지만, 오존 감소에 대한 측정치는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 1991년 초, 미 환경보호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EPA)이 내놓은 새로운 자료는 감소 수준이 예상보다 더 높음을 보여 주었고, 그 결과 미국에서 20만 명이 추가로 피부암에 걸릴 것이고 그 중 2만 명은 치명적일 거라고 예상했다.
연구자들은 오존의 감소 수준을 측정하는 방법을 개선하고
있고, 발표된 지 15년이 지난 몰리나와 롤랜드의 이론은 이제 굳건한 위치를
획득했다. 그러나 과학이 그 이론을 뒷받침하거나 논박하기 위해 더 빨리 움직일
수도 있었는지, 혹은 정책결정자들이 더 적은 증거에 근거해 진작에 행동을
취했어야 했는지와 같은 문제에 확실한 답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CFCs의 대체물질이
마땅히 없었기 때문에 이론을 둘러싼 불확실성의 비중이 커졌던 것이다.
기술적 해결책
1930년대 초 듀퐁 사가 CFCs를 개발하자 이는 빠르게 상업적 용도로 응용되었다. 처음에는 몇몇 CFCs 물질들이 냉매로서 갖는 성질이 냉장고, 냉동고, 에어컨 설비 등의 용도로 이용되었다. 이 화학물질족이 갖는 특성이 더 잘 이해됨에 따라 용도는 플라스틱 발포고무, 에어로졸 분사제, 세척 용제 등으로 확대되었다. 통상적이지 않은 용도, 예컨대 상하기 쉬운 과일이나 야채류의 급속 냉동, 병원에서 상처부위를 차게 하는 냉각제, 거품을 낸 얼린 과자(whipped frozen topping) 같은 것들도 시장에 선을 보였다.
1970년대 중반이 되면 오존층을 파괴하는 화학물질들은 24개국 이상에서 생산되고 있었다. 1973년의 생산량은 미국에서만 9억 파운드, 전세계적으로는 최소 17억 파운드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실제 값은 이보다 훨씬 높았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미국의 CFCs 생산량의 50-60% 정도가 에어로졸에 쓰이고 있었고 30% 정도가 냉매로, 10%가 플라스틱 발포고무로, 그리고 5%가 채 안되는 양이 세척 용제로 사용되었다.
1978년 미국이 필수적이지 않은 에어로졸 용도의 CFCs
사용을 금지한 후 생산[의 초점]은 극적으로 이동했고 생산량은 1/3 정도가
줄었다. 에어로졸 용도의 금지에서 미국의 입장을 따른 국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전세계 생산은 크게 성장했는데, 증가는 주로 비에어로졸 용도에서 나타났다.
1985년에 미국은 거의 10억 파운드를 생산했고,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 생산량은
단 두 종류의 CFCs만 치더라도 최소 20억 파운드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었다.
생산 증가 추세가 둔화되면서 감소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89년 몬트리올
의정서가 발효되고 나서부터였다.
CFCs의 용도
CFCs가 개발되기 전에 기계 냉장에 쓰이던 화학물질은 불붙기 쉽거나 폭발하기 쉽거나 독성이 있어 냉매가 시스템에서 새어나오게 되면 매우 위험했다. 1946년 이후 가정용 냉장고는 CFCs만을 냉매로 쓰게 되었다. 지금도 상업용 냉장 창고 같은 곳에서는 CFCs를 쓰지 않는 냉장 시스템을 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가스의 누출이 좀더 엄격하게 통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운송수단에 설치된 에어컨은 1940년대에 고급 차에서 처음 선을 보였다. 그 이후 CFCs에 기반한 에어컨 장치는 승용차, 트럭, 덮개가 있는 농업용 차량, 버스, 기차, 비행기 등에서 표준 설비가 되었다. 주거용, 상업용, 산업용 건물의 에어컨 설치 역시 기대 표준이 되었다. 가정용 에어컨이나 소형 상업용 에어컨과 같은 일부 용도에는 CFCs보다 오존에 영향을 덜 주는 HCFC(수소염화불화탄소) 화합물이 사용된다. 대규모 시설의 에어컨에는 다른 냉각 방법을 쓸 수 있지만, 대부분은 오존 파괴 가능성이 큰 CFCs에 의존하고 있다.
시트나 침구류, 포장재 등의 쿠션이나 냉장고, 건축자재, 포장재 등 단열 용도로 쓰이는 발포고무 제품들은 1950년대 이후 CFCs를 가지고 만들어졌다. 에어컨이나 기계 냉장처럼 20세기 초 이전에는 해당 제품 범주가 존재하지 않았던 용도와는 달리, CFCs로 만든 발포고무의 경우에는 대신 쓰이고 있던 다양한 제품들을 대체했다. CFCs가 갖는 사용상의 편이와 인체 안전성, 열 효율성, 가벼운 무게로 인해 유사 제품군에서의 시장 점유율은 엄청나게 뛰어올랐다.
CFCs를 비롯한 오존층 파괴 화학물질들은 냉장과 발포고무 제조 용도 외에 다양한 응용분야에서의 용제로도 널리 사용되었다. 그 효과성과 안전한계 내의 낮은 독성으로 인해 CFCs 연관물질들은 옷감의 드라이클리닝, 전자부품과 금속 부품의 유지 성분 제거, 컴퓨터 회로 기판의 오염물질 제거, 플라스틱으로 된 의료 용구의 세척 등의 용도로 쓰이게 되었다. 이 물질은 스모그의 형성에 기여하지 않기 때문에 휘발성 유기화합물(VOC) 성분이 많이 든 용제의 사용이 금지된 지역에서도 대기오염 규제의 대상이 아니었다. 사용상의 편이와 세척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에 미 국방부는 계약을 맺은 청부업체들에게 CFCs와 같은 오존층 파괴 화학물질들을 가지고 세척할 것을 요구했고, 미 식품의약청(FDA)도 이런 물질들의 사용에 기반한 것을 훌륭한 제조 관행으로 규정했다. 이와 같은 정부의 요구조건으로 인해 다양한 민간산업 분야들은 다른 세척 표준이 없을 때 오존층 파괴 화학물질들을 사용하도록 명시하게 되었다.
플라스틱과 전자 부품을 사용하는 의료 장치들이 개발되면서 산업체, 병원, 의사 진료실 등에서는 증기 소독 대신 산화에틸렌을 쓰게 되었다. 그런데 산화에틸렌은 폭발성이 있었기 때문에 CFC와 섞어서 쓰는 것이 보통이었다. 전통적인 관행에 따라 소독 용기를 비울 때 나오는 산화에틸렌/CFC 혼합물은 그냥 대기 중으로 배출시켰다.
또한 CFCs를 비롯한 오존층 파괴 화학물질들은 소비재에서
널리 쓰였는데, 특히 에어로졸 캔 형태로 판매되는 상품이 대표적이었다. CFCs는
불이 붙을 위험이 없었고 독성이 낮았으며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았기 때문에
이소부탄이나 펜탄과 같은 가연성 분사제를 대체하게 되었다. 헤어스프레이나
탈취제 같은 개인 용품들, 사진용 먼지제거 스프레이와 같은 특수 용도 상품,
그리고 파티에 쓰는 도색 스프레이와 같은 장난감들이 모두 CFCs를 사용했다.
여타의 오존층 파괴 화학물질들도 얼룩제거용 스프레이나 다양한 페인트 및
도장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었다.
오존층 파괴 화학물질에 대한
대안
몰리나와 롤랜드의 논문 출간 이후 등장한 분석의 대부분은 오존층 파괴 이론, 자외선 증가로 야기될 수 있는 잠재적 영향, 그리고 오존층 파괴 화학물질의 용도에 초점을 맞추었다. CFC 에어로졸 분사제와 에어로졸 제품들에 대한 대체물질은 쉽게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규제를 위한 분석은 이 영역에 집중되었다. CFC를 냉장과 에어컨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는 대체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되었고, 산업체들은 이런 용도에 대해서는 아예 대체물질을 찾아보려는 수고조차 하지 않았다.
CFCs의 비(非)에어로졸 용도에 대한 대체물질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EPA는 이 산업의 현재 상태를 반영한 보고서를 썼던 랜드 연구소의 견해에 주목했다. 랜드 연구소는 이 보고서에서, 현저한 기술 진보가 이루어질 전망은 그리 밝지 않으며, 다양한 용도에 있어 CFCs의 이용이 유일하게 가능한 방안으로 남게 될 거라고 결론지은 바 있었다.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1980년 이후 EPA는 오존층 파괴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산업체들은 이에 편승해 대체물질 개발을 계속 미루었다. 기업들이 대체물질을 찾는 데 상당한 자원을 투입하게 된 것은 1980년대 중반쯤에 오존층 파괴 문제에 대한 관심이 부활하고 난 다음부터였다.
연방 규제기구들의 활동이 사실상 정지된 상황에서도 소수의 학자 집단과 환경운동가들, 주(州) 기구들은 "생산에서의 변화를 통해서건, 아니면 환경적으로 유해한 물질에 대한 의존도 감소를 통해서건 간에, 오염을 그 원천부터"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새로운 태도는 산업체들 사이에서 점차 확고해졌다. 회사들은 유독성 용제 폐기물을 내놓는 공정에 대한 대안 개발에 나섰다(오존층 파괴 화학물질에 대한 대체품을 찾는 데 특히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었다). 세척, 유지 성분 제거, 그리고 금속, 플라스틱, 전자 부품과 조립 부품의 건조(乾燥) 등을 위한 새로운 방법들이 생산 현장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이 되면 대체로 규모가 작은 수십 개의 회사들이 다양한 산업 활동에서 오존층 파괴 화학물질을 쓰지 않아도 되는 제품들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소규모 회사들이 이들 화학물질을 쓰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제품을 찾아내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안, 개별 제조업체들은 자체 생산 공정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고 화학 회사들은 CFCs에 대한 대체물질을 찾아내기 위해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제조업체들은 전자 부품 생산에서 세척 공정의 필요성을 다시 평가했고, 몇몇 거대 화학회사들은 기존의 기술과 함께 쓸 수 있으면서 오존층을 덜 파괴하는 화학물질의 개발을 추진했다.
발포고무나 냉매 같은 다른 응용분야의 경우는 이와는
다른 경로를 따랐다. 식품 포장에 쓰는 스티로폼 제조업체와 사용자들은 대중적
압력에 대응해 CFC에 의존하지 않는 제품으로 전환했지만, 단열재와 같은 발포고무
제품은 그것이 갖는 열전도에서의 우수성 때문에 계속 CFCs에 의존했다. 가정용·상업용
냉장고와 에어컨 제조업체 및 서비스 제공자들은 냉매를 회수해서 재활용하는
쪽으로 대응 노력을 집중했다. 몇몇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경우에는 수 년 이내에
CFC를 쓰지 않는 에어컨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는 가운데, 냉장고와
에어컨 제조업체들은 에너지 효율성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으며 1990년대 중반까지는 대체 제품을 만들어낼 수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술적 절충
CFCs의 사용과 배출을 최소화하고 이를 대체하는 제품과 생산 공정을 도입하는 데 있어 이를 가로막는 심각한 제약요건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생산 비용의 증가, 에너지 효율의 저하, 독성의 증가, 작업장 보건 및 환경 문제의 증가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불이익에 대한 대처방안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것이다. 대체물질 중 일부는 그 정도만 약해졌을 뿐 여전히 오존층을 파괴하는 물질이다. 결국 기껏해야 오존층 파괴 물질이 전지구적으로 보건과 환경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제거하는 것과 경제적 혼란, 환경 및 작업장보건에서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 사이에서 모종의 절충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작업장 보건 기준이나 대기오염물질 제한과 같은 규제상의 제약요건 때문에 CFCs에 대한 특정 대체물질의 사용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 어떤 대체물질은 노동자들과 인근 지역공동체에 심각한 위험을 야기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정책결정자들은 [오존층 파괴가 가져올 전지구적 위험과 대체물질 도입에 의한 지역공동체에 대한 위험 중에서] 대체 어떤 종류의 위험을 용인해야만 하며 누가 그 위험을 부담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어떤 지역에서는 서로 다른 규제기구들이 서로 다른 목표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도시 지역의 스모그를 줄이기 위해 애쓰는 대기오염 규제기구의 경우, 몇몇 오존층 파괴 물질들을 배출 제한조항에서 면제해 주고 그것의 산업적 이용을 오히려 장려하기도 한다. [다양한 환경오염 문제들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전일론적 접근을 하지 않는다면, 어떤 지역공동체에서는 오존층 파괴로 인한 총체적 위험이 줄어듦과 동시에 공공보건상의 위험은 증가하게 될지도 모른다.
공공보건상의 우려 외에도, 대체물질에 대한 탐색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시장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공공정책상의 목표와 충돌한다. 냉장과 단열 시스템에서 현재 이용가능한 모든 CFCs 대체물질들은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불이익을 안고 있다. 신기술에 대한 연구를 통해 효율 향상이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상당한 경제적 비용을 수반할 가능성이 크다. 제조 공정에서 CFC의 사용을 제한함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불행한 결과 중 하나는 경쟁력의 감소이다. 소규모 기업들은 대체물질을 찾아내 시험해 볼 수 있는 충분한 자원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대안적인 세척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자본도 없다. 이러한 대안적 시스템 중 일부는 설비를 갖추는 데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지만, 일단 갖추고 나면 CFCs에 기반한 시스템에 비해 운영 비용이 훨씬 덜 든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초기투자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대기업들은 비용절감을 이룸으로써 새로운 설비비용을 부담할 능력이 안되는 소규모 경쟁기업들을 시장에서 몰아낼 수 있게 된다.
한편, 대안적인 기술과 연관된 비경제적 비용도 있다.
군용 장비, 민간 항공기 부품, 의료 용구들의 사양을 변경하는 것은 최종 사용자에
대한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새로운 세척 방법은 군 인력, 비행기 탑승자,
환자들이 해당 설비를 이용하는 동안 실패율을 높이고 신뢰성 문제를 야기할지도
모른다. 누가 위험을 부담해야 하며 어떤 댓가를 치러야 하는가와 같은 문제들은
새로운 제조 공정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만 다루어졌을 뿐이다.
정책적 대응
비록 미국을 포함한 각국 정부들이 이 문제에 대한 대처를 질질 끌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긴 하지만, 대체로 보아 미국 정부는 몰리나와 롤랜드의 이론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이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정책적 대응은 CFCs의 규제를 에어로졸 용도와 비에어로졸 용도의 두 단계로 나누는 것이었다. 최초의 대응조치는 에어로졸 용도의 CFCs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었는데, 이 조치를 통해 CFCs의 배출을 당장 줄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대체물질도 쉽게 찾을 수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어로졸의 규제를 위해서는 적어도 세 개의 연방기구들이 서로 협력해야 했다. 즉, 대기오염을 규제하는 EPA, 에어로졸을 쓰는 소비자 제품을 관장하는 소비자제품안전성위원회(Consumer Product Safety Commission, CPSC), 그리고 의약품, 식품, 화장품에서의 에어로졸 사용을 규제하는 식품의약국(Food and Drug Administration, FDA)이 그것이었다. 규제를 위한 단일한 규칙에 합의하기 위해 CFCs를 위한 기구간규제관계그룹(Interagency Regulatory Liaison Group)이 설립되었다.
연방기구들은 공동으로 연방 규칙을 공포해 필수적이지 않은 용도의 CFC 분사제 사용을 금지하고, 탄화수소계 분사제와 펌프 분사기 등을 포함한 몇 가지 대안들을 제시했다. 1978년에 연방 규칙이 발효된 직후 EPA는 미국 내에서 분사제 용도의 CFC 이용이 금지 이전과 비교해 5% 이내로 떨어졌다고 추정했다. 이러한 미국의 조치에 대한 전세계의 반응은 제한적인 것이었다. 캐나다와 몇몇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에어로졸 용도의 사용을 금지하는 데 동참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은 즉각적인 규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은 모든 에어로졸 용도에 대한 전지구적 금지를 제안했으나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미국은 비에어로졸 용도까지 규제를 넓히는 접근법을 뒤이어 추진했다. 1980년 10월에 EPA는 비에어로졸 용도의 CFCs에 대한 규제를 고려중이라는 고시(告示)를 발령했다. 이 고시에서 EPA는 CFCs에 대한 대체물질이 거의 알려진 것이 없음을 감안해 CFCs의 통제에 시장유인을 적용할 생각이 있음을 시사했다. 그리고 대체물질은 어떤 것이 있는지, 잠재적인 비용과 편익은 무엇인지, 행정상의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이며 기업들은 규제조치에 잘 따를 것인지, 그리고 [추가적인] 규제가 과연 필요한지 등의 쟁점들에 대해 의견을 모집했다. EPA는 예상외로 많은 답신을 받았다. 듀퐁 제품의 구매자들이 2,500건 이상의 의견을 접수했는데, 이들 중 압도적인 다수는 규제의 필요성과 시장유인 접근법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듀퐁 자신은 쌓으면 높이가 1미터에 육박하는 문서 더미를 제출했는데, 여기에는 CFCs와 오존층 파괴에 관해 1980년까지 출판된 거의 모든 학술논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주로 환경운동집단과 어린이들로부터 온 소수의 의견만이 강력한 규제조치를 지지했다.
EPA의 고시는 산업국가들이 누리는 삶의 질과 동의어이다시피 한 CFCs의 용도들에 대한 규제를 제안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EPA의 고시는 별반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1980년 대통령 선거전이 한참 진행중이었고, 당선이 유력시되던 레이건이 가진 철학과 EPA의 규제안은 그 방향에서 정반대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레이건의 당선과 함께 오존층 파괴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EPA 관리들은 시장에 기반한 접근이 새로운 행정부의 철학과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레이건이 임명한 관리들은 규제 시안을 보류하고 산업체의 편에 섰다. 그들은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다고 믿었으며, 특히 경제적 유인을 가지고 CFCs를 통제하는 것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전지구적 협력이 요구된다고 생각한 점에서 산업체측과 일치했다. EPA는 1980년대 전반기에 오존층 파괴에 관한 새로운 과학적 성과를 지속적으로 모니터하는 것을 빼고는 오존층 파괴에 대처하는 업무를 중단했다. 오존층 파괴 문제가 그나마 완전히 잊혀지지 않았던 것은 천연자원보존위원회(Natural Resources Defence Council, NRDC)와 지구의 벗(Friends of the Earth)과 같은 소수의 환경단체들의 활동 덕택이었다.
이 시기를 전후해 정책 초점의 많은 부분이 국제 무대로 이동했다. 1970년대 중반에 유엔 환경계획(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me, UNEP)은 CFCs에 대한 국제적 활동을 조율했고, 기존의 국제 기구들을 통해 대기 중에서 일어나는 과정들과 오존층 파괴에 관한 추가 연구를 촉진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UNEP는 각국 정부와 선별된 비정부 기구들의 참여 하에 정책 쟁점들을 연구하는 위원회를 설립했다. 오존층 파괴 이론은 여전히 유효했으므로, 위원회에서 각국 정부를 대변하는 성원들은 오존층 보호를 위한 전지구적 합의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4년 후, [1985년에 열린] 비엔나 협약의 참가자들은 연구, 정책개발 및 정보교환에서 서로 협력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미래에 영향을 미칠 문제에 대한 국제적 조치의 선례를 확립했다. 이 협약에 유럽경제공동체(EEC)와 그 외 22개 국가가 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행동의 의무를 발생시키도록 협약을 비준한 나라는 거의 없었다. UNEP는 법률 및 기술 전문가들로 구성된 비엔나 그룹을 다시 소집해서 CFCs를 통제할 국제 조약의 초안을 마련하는 일을 시작했다.
1987년 9월로 예정된 몬트리올 회의를 앞두고 열린 일련의 회합들에서는 문제의 심각성, 규제를 위한 조치, 그리고 형평성에 대한 고려 등을 둘러싸고 국가별로 서로 다른 입장이 제기되어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 시기에 이르면 레이건 행정부와 EPA 내부의 정치적 변화가 [오존층 파괴에 관한] 새로운 과학적 성과와 함께 작용해 미국은 이 문제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이러한 회합들 중 하나에서는 미국이 화학물질들의 단계적 감축을 주장한 반면, 규모가 작고 입지가 취약한 일본과 유럽 국가들에서는 현 생산 수준의 동결로 논의를 제한하고자 했다. 일본은 CFC-113(주로 전자산업에서 용제로 쓰인다)에 대한 어떠한 생산 축소도 거부했고, EEC 및 소련과 힘을 합쳐 소화기에 오존층 파괴 물질을 쓰지 못하게 하는 데 반대했다.
오존층 파괴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가 더 많이 나타남에 따라 국제회의 참가자들은 규제조치의 필요성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그러나 통제의 수준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현 상태 동결에서 생산의 완전 중단에 이르기까지), 규제 대상으로 삼을 오존층 파괴 화학물질의 종류에 무엇을 포함시킬 것인가, 선진 산업국과 개발도상국간에 생산의 권리를 어떻게 차등적으로 줄 것인가와 같은 쟁점들은 아직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CFCs는 산업국가들이 누리는 삶의 질과 동의어이다시피 했기 때문에, 아직 산업화되지 않은 국가들에게는 이는 어려운 문제였다. 개발도상국들은 오존층 파괴에 대한 전세계적 우려가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려는 자신들의 노력을 가로막는 쪽으로 편향되어 있다고 느꼈다.
특히 인도와 중국은 CFCs와 그것을 사용하는 공산품(냉장고 같은)을 생산하는 능력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을 집중적으로 기울이던 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CFCs 생산을 중단하는 전세계적 노력에 동참하면 대체물질 산업을 발전시킬 때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확답을 얻고 싶어했다. 그러나 선진국의 산업체들은 CFC 대체물질과 이를 이용하는 공산품을 생산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는 데 들어간 많은 비용을 회수하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했다. 게다가 인도나 중국 같은 나라들이 자체적으로 [CFCs 내지는 그 대체물질] 산업을 발전시킨다면 대체물질 시장은 더 적어질 터였다.
9월 회의를 앞두고 다급하게 조직된 기술 회합에서 이런 문제들 대부분은 해결을 보았다. 몇 가지 문제들 때문에 합의가 거의 무산될 뻔하기도 했지만, 1988년 9월 15일에 오존층 파괴 물질에 관한 몬트리올 의정서가 23개국이 서명한 가운데 채택되었다. 이후 대략 60여개국이 추가로 조약에 서명했고[이후 1998년 2월까지 모두 165개국이 서명했다 ― 옮긴이], 적어도 50개국에서 조약을 비준해 자국법을 수정하고 필요한 규제조치 이행에 들어갔다.
몬트리올 의정서는 1989년 1월에 발효되었는데, 그 내용은 1986년 수준으로 생산과 소비를 동결하고 1994년 7월까지 추가로 20%를 감축하며 궁극적으로는 50%의 감축을 목표로 하였다. 개발도상국들은 자국의 생활 수준 향상을 위해 필요하다고 허가되는 경우 일정 정도의 성장이 허용되었다. 또한 의정서에서는 생산 제한을 위해 필요한 추가적 조치의 메커니즘을 명시했다.
의정서 채택을 위한 협상 과정은 극히 미묘한 것이었다. 비정부 참가자들, 특히 환경단체인 천연자원보존위원회(NRDC)와 기업측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책임있는 CFC 정책을 위한 연합(Alliance for a Responsible CFC Policy)은 조약 내용을 결정함에 있어 각국 정부가 지명한 대표들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환경운동 진영에서는 CFC 사용을 통제하는 국제적인 메커니즘을 명시하려는 목표를 달성한 반면, 산업체들은 CFC 생산을 단계적으로 완전히 중단한다는 결론을 피하고 덜 중요한 오존층 파괴 물질들(HCFCs와 메틸클로로포름)을 규제대상에서 제외시키는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존재했던 과학적 증거를 감안해 볼 때, 이 조약은 전지구적 대재난으로부터 세계를 구해야 한다는 긴급한 압박이 없을 때 국제사회가 어느 정도까지 움직이려 하는지 하는 간극을 반영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의정서를 비준함에 따라, 의회는 오존층 파괴 화학물질에 대해 세금을 부과했고, EPA는 CFC 생산을 동결하는 규제령을 공포했다. 생산 및 수입업체들은 허가를 얻어야 했는데, 이는 EPA가 처음에 허가증을 분배할 때 취득하거나 나중에 시장에 나온 것을 구입해야 했다. 시간이 가면서 각각의 허가 아래 생산할 수 있는 CFCs의 양은 점차 줄어들어 의정서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키게 될 터였다.
이와 거의 같은 시기에 듀퐁은 1995년 이전에 자사의 CFC 생산을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CFCs 생산 중단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가 충분히 강해졌음을 마침내 시인한 이 발표에 뒤이어 대체물질 개발 열풍이 일어났다. 이에 더해, 몬트리올 의정서와 연방 차원의 조치만 가지고는 오존층을 보호하는 데 충분치 못할 것을 우려한 미국과 캐나다의 도시와 주(州)들은 오존층 파괴 화학물질이 쓰이는 용도를 여러 가지 형태로 제한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어떤 법률은 CFC를 쓰는 발포고무로 식품 포장을 하는 것을 금지했고, 다른 도시와 주에서는 차량의 에어컨에서 CFC 냉매가 배출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가장 포괄적인 규제를 담은 법률이 제정된 곳 중 하나가 캘리포니아 주 어빈 시였다. 1989년 8월에 어빈 시는 제조업과 세척 활동에 CFCs나 기타 오존층 파괴 물질을 사용하는 것을 제한했고, CFCs로 만들어진 상품 및 식품 포장을 금지했으며, 냉매의 회수와 재활용을 의무화했다. 대체물질이 마땅치 않은 경우에 한해 제한적인 예외가 허용되었다. 산업체측은 조례 제정에 반대했지만, [일단 제정된 후에는] 재빠르게 사용과 배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었다. 어떻게 보면 어빈 시의 조례는 산업체들이 그 이전에 가능하리라고 예상되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행동을 취할 수 있음을 입증해 보인 셈이었고, 이는 다시 국가 전체 차원에서 더 빠른 규제조치를 취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1990년에 이르자 오존층 파괴가 (특히 남극 상공에서)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며 오존층 파괴 화학물질들이 지구온난화에도 기여한다는 증거가 상당한 정도로 축적되었다. 선진 산업국과 개발도상국들간의 갈등이 여전히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 6월에 몬트리올 의정서 조인국들이 모여 열린 회의[런던 회의]에서는 2000년까지 CFCs와 여타의 주요 오존층 파괴 화학물질들의 생산을 완전히 중단하고 그 외의 물질들은 2005년까지 중단한다는 데 합의를 이루어냈다[이것이 1차 개정서이며 1990년 6월에 채택되어 1992년 8월에 발효되었다. 1차 개정서에서는 규제물질의 수가 8종에서 20종으로 확대되었다 ― 옮긴이]. 참가자들은 투표를 통해 개발도상국들이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는 물질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용할 수 있는 국제 기금의 설립을 결정함으로써 [선진 산업국과 개발도상국간의] 갈등을 줄일 수 있었다.
1990년 말 미 의회는 1977년 제정 이후 처음으로 대기오염방지법(Clean Air Act)을 개정했다. 이 법의 개정 필요성은 1980년대부터 논쟁이 되었던 문제였는데, 당시의 논쟁은 주로 지표 부근 공기의 질에 관한 기준, 발전소에 대한 규제, 산성비로부터의 보호, 차량 배기가스 규제 등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반면 성층권 오존층 보호에 관한 조항을 어떻게 법에 집어넣을 것인지를 둘러싼 갈등에서는 미국이 어느 정도까지 국제적 조치 이상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CFCs 이외의 오존층 파괴 물질들에 대한 규제도 필요한지, 연방 당국은 주나 지역 차원에서 오존층 파괴에 대해 추가적 조치를 취하는 것을 배제해야 하는지 등이 주된 관심거리였다. [오존층 파괴의] 과학적 쟁점에 관해서는 대체로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상대적인 비용 효율성, 새로운 기술을 요구하는 규제조치들, 새로운 화학생산 공장에 대한 수십억 달러의 투자를 정당화할 수 있는 충분한 규제상의 확실성 요구 등을 놓고 복잡한 토론이 벌어졌다.
개정된 대기오염방지법에서 의회는 국제 조약에서 요구되는 바와 대체로 일치하는 국가 정책 추진일정을 채택했고, HCFCs(CFCs 중 오존층을 덜 파괴하는 물질)에 대해서도 장기적으로 생산을 중지하는 프로그램을 제정했다. 이와 동시에 의회는 EPA가 적극적으로 활동을 펴나갈 능력을 갖추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표했고, EPA가 향후 법률의 내용을 실행에 옮김에 있어 어떤 구체적인 조치들을 취해야 하는지를 명시했다. 의회는 또한 지역 자치단체들이 오존층 파괴 화학물질의 사용(생산은 제외)에 대해 독자적으로 더 엄격한 규제를 가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앞으로 추가적인 제한 조치들이 취해질 가능성이 높다.
몬트리올 의정서의 후속 회의에서 참가자들은 단계적 생산 중단의 일정을 더
앞당기는 것을 고려해 보기로 결정했다[실제로 1992년에 열린 코펜하겐 회의에서는
규제물질의 수를 20종에서 95종으로 확대하고 생산 중단 시점도 2000년에서
1996년으로 앞당겼다. 단, 개발도상국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제일정이 적용됨을
명시하고 있다. 이것이 2차 개정서이며 1992년 11월에 채택되어 1994년 6월에
발효되었다 ― 옮긴이]. 오존층 파괴가 예상보다 더 심각하다고 밝힌 EPA 청장
레일리의 1991년 발표를 보면 미국이 보다 엄격한 국제적 규제 입장을 밀고나갈
것이라는 선언이 포함되어 있다. 이 시점에 이르면 토론의 초점은 과연 조치가
취해질 필요가 있는가를 평가하는 것에서 국제사회가 오존층 파괴 화학물질의
이용을 얼마나 빨리 중단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쪽으로 분명히 옮아갔음을
볼 수 있다.
함의
지구를 보호하는 오존층이 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지 20년이 넘었다. 어떻게 보면, 현재 세대가 아닌 그들의 손자 세대에 영향을 미칠 환경 문제에 관해 전지구적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이 사례는 과학기술 발전, 합의의 형성, 그리고 이후 지역 당국들이 전지구적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 수행한 역할 사이의 상호작용을 포함하고 있다. 결국 이 사례는 다른 전지구적 환경 문제들에 대해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이 사례에서 과학적 "확실성"의 중요성에 관해 정책결정자, 과학자, 환경운동가, 그리고 산업체측이 갖고 있었던 다양한 관점들은 과학적 증거의 신뢰성과 위험의 성격에 대한 그들간의 인식 차이를 반영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1974년에 듀퐁 대표는 의회 증언에서 만약 "이 실험적 프로그램에서 도출된 신뢰할 만한 과학적 자료가 건강에 위협을 주지 않고는 CFCs를 사용할 수 없다는사실을 밝혀낸다면 듀퐁은 이 물질의 생산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생산업체들은 일반 대중을 상대로 그 모델이 "증명되면" 자신들이 조치를 취하겠다고 단언했지만, 이후 15년 동안 그들이 되풀이한 주장은 그러한 증명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심각한 부정적 영향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오존층 파괴를 설명할 만한 그럴듯한 대안적 이론이 없었기 때문에, 정책결정자들은 불완전한 정보와 현재 지식으로부터의 외삽(外揷)에 근거해 조치를 취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과학자들은 이론의 발전이 지식의 확장으로 향하는 지속적인 과정의 일부라고 보았지만, 정책결정자들은 의사결정을 위한 근거로서 결정적인 증거를 요구했다. 예를 들어 오존층 파괴 문제를 다룬 초기의 의회 청문회에서 데일 범퍼스 상원의원은 한 과학자에게 CFCs의 규제 필요성에 관한 명확한 답변을 요구했다. "당신을 난처한 상황으로 몰아넣으려 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예스인지 노인지를 말해 달라는 겁니다"라는 것이 범퍼스의 말이었다. 이 질문에 대해 그 과학자는 과학이 CFCs 금지 조치를 지지하는 결정적인 근거를 제공한다고 말하기를 꺼려했지만, 어느 정도의 규제 조치는 정당하다는 자신의 개인적 견해를 피력했다. 확실성의 부재로 인해 정책결정자들은 자신들이 성급하게 행동했다는, 혹은 거꾸로 분별있는 [예방적] 조치를 취하는 데 실패했다는 공격을 받게 된다. 훌륭한 과학 연구는 건강한 회의주의와 함께 새로 제안된 이론에 도전하는 태도를 요구하는 반면, 정치 영역의 행위자들은 애매모호한 증거를 자신들이 굳게 갖고 있는 신념에 맞추려는 경향을 더 많이 갖는다.
1970년대에는 오존층 파괴 이론에 내재한 불확실성 ― 몰리나와 롤랜드는 여러 해 동안 경험적 증거를 찾기는 어려울 거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 때문에 위해가 존재한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오존층 파괴 화학물질의 규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만약 중요한 증거가 나올 때까지 조치를 지연시켰다가 나중에 이론이 맞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어느 정도 입었는지 알 수도 없는 위해를 되돌리기란 불가능할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이 [오존층 보호를 위한] 조치를 정당화하기란 쉽지 않았다. 증거를 들어 이론을 입증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은 경제와 미국인들의 생활 기준에 필수적인 산업 공정을 중단시키게 될 것을 우려했다.
오존층 파괴 화학물질의 생산업체와 사용자들은 매우 불확실한 편익과 맞교환해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심대한 비용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음을 부각시키면서, CFCs가 "유죄로 판명될 때까지는 무죄"라고 생각하도록 정책결정자들에게 압력을 가했다. 또한 정책결정자들은 이와는 반대 방향의 압력도 받았다. 환경운동 진영은 머리 손질용 상품과 스프레이 페인트에 쓰이는 CFC 분사제가 불필요한 편의의 제공이며 인간의 건강에 대한 전지구적 위협이라고 보았고, 이것이 받아들일 수 없는 위험을 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책결정자와 일반인 모두는 현재의 편익에 상당한 가치를 두면서 미래의 위해가 가져올 위험을 다루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미래의 위험과 현재의 비용을 놓고 저울질하는 문제에 직면하기 싫었던 정책결정자들은 초기에 기술 대체를 통해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영역에서 조치를 취하는 길을 택했다. 그래서 에어로졸 용도의 CFCs는 재빨리 규제가 이루어졌지만 비에어로졸 용도의 통제는 대체물질의 부재로 인해 침체에 빠졌다. 기술 결핍[대체물질 부재]이 국내 및 국제 수준에서 행동을 가로막는 장애물로서의 역할을 덜 하게 된 것은 위해를 보여주는 경험 증거가 나타난 이후였다.
정책결정자들이 CFC 문제에 대한 조치를 취함에 있어 망설였다는 사실은 지구온난화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상황이 빚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경우 논쟁의 성격은 유사하지만 걸려 있는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하다. 화석연료 이용과 열대림 파괴로 인해 지구 온도에서 예상되는 변화는 오존층 파괴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로서, 현대 산업화와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는 듯 보인다.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한 대응은 단순히 화학물질을 다른 물질로 대체하는 것 이상을 요구할 것이다.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는 산업 국가들은 자국 내에서 이미 많은 양의 토지를 개간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도상국에서 이루어지는 유사한 활동에는 제약을 두려 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바꾸는 것에는 수십억 달러가 들어갈지 모르며, 예상되는 경향을 역전시키는 것은 산업화의 성격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인간 활동이 미치는 전지구적 영향을 예측하는 정교한
기법들을 앞으로 과학자들이 개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책결정자들은 국가
발전, 기업의 경제적 이해관계, 지구 생태계, 인간의 건강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한 싸움을 앞으로도 계속 해나가야 할 것이다. 오존층 파괴의 사례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설사 조기경보(early warning)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전지구적
환경 쟁점들은 여전히 신속한 대처가 용이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게 될 거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