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는 전세계적으로 환경에 대한 인식이 크게 성장한 시기였다. 런던과 로스앤젤레스 같은 대도시에서는 대기오염으로 생긴 스모그(smog)가 호흡기 질환의 증가와 같은 심각한 공공보건상의 문제를 야기했고, 일본에서는 화학공장에서 중금속 물질이 섞인 폐수를 마구 방류하면서 미나마타병과 같은 새로운 환경병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었다. 1962년에 출간된 레이첼 카슨의 책 『침묵의 봄』은 무분별한 살충제의 사용에 제동을 거는 한편,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맹신(盲信)에도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이를 계기로 생겨난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은 수많은 환경단체들의 설립과 함께 현대 환경운동의 태동으로 이어졌다. 1970년 4월 22일에 미국에서 2천만 명이 참여해 열린 제 1회 지구의 날 행사는 1960년대를 휩쓴 환경의식의 정점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만 해도 환경문제는 특정 지역의 문제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대기오염과 수질오염은 자동차나 공장 같은 오염원이 많은 대도시의 문제이고, 살충제로 인한 야생동물 피해는 살충제의 대규모 공중살포가 잦은 농촌이나 삼림 지역의 문제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 시기를 전후해 등장한 오존층 파괴 문제는 지구상의 모든 국가, 모든 사람들에게 동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지구적 환경문제의 가능성을 제기했고, 이는 환경문제에 대한 대응에서 국제적인 협력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CFCs와 오존층 파괴
 

오존층 파괴 문제의 기원은 대략 70여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1930년대 초 미국의 화학회사인 듀퐁(Du Pont)은 안전하고 독성이 없는 냉장고용 냉매(冷媒)를 찾는 과정에서 염화불화탄소(chloroflurocarbons, 흔히 CFCs로 줄여 쓴다)라는 새로운 화학물질군(群)을 합성해 냈다. CFCs는 냄새와 맛이 없고 공기보다 약간 무거운 기체로 냉매로서 매우 이상적인 성질을 갖고 있었다. 또한 CFCs는 동물 실험에서 별다른 독성을 나타내지 않았고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해 쉽게 분해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이 물질이 사람에게 안전하다고 확신했다. 프레온(Freon)이라는 상표명을 달고 시판되기 시작한 CFCs는 불과 10년도 못되어 이전까지 냉매로 쓰이던 암모니아를 대신해 냉장고와 에어컨에 널리 쓰이게 되었고, 1950년대부터는 스프레이 캔의 분사제, 스티로폼 같은 발포 플라스틱 제조, 전자산업에서의 세척 용제 등으로 그 용도가 확대되었다. 1970년경이 되면 CFCs는 전세계적으로 매년 100만 톤 가량이 소비되는 매우 인기있는 화학물질이 되었다.

이렇게 대량으로 생산되어 방출된 CFCs 기체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문제에 과학자들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0년대 초의 일이었다. 영국의 과학자인 제임스 러브록(그는 나중에 지구 전체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아야 한다는 가이아 이론을 내놓아 유명해졌다)은 자신이 직접 발명한 고감도 기체 탐지기를 이용해 대기 중의 CFCs 농도를 처음으로 측정했다. 그는 1970년에 이 화학물질군의 일종인 CFC-11이 지표면 근처에서 1조분의 60 정도의 농도로 분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1971년부터는 연구선 섀클래턴 호를 타고 대서양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50곳 이상에서 대기 조성을 측정해 모든 곳에서 거의 같은 농도의 CFC 기체가 존재함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대기 중에 이미 널리 분포된 이 기체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이 질문에 주목한 두 명의 과학자가 캘리포니아-어빈 대학의 화학자인 마리오 몰리나와 F. 셔우드 롤랜드였다. 그들은 1974년에 영국의 과학잡지 <네이처>에 실은 논문에서, CFCs가 쉽게 분해되지 않고 물에도 잘 녹지 않기 때문에 대기 최하층부(대류권)에서 제거되지 않고 오랜 기간에 걸쳐 천천히 성층권까지 올라갈 거라고 추정했다. 성층권에 올라간 CFCs는 태양으로부터 오는 강한 자외선을 만나 화학결합이 끊어지면서 염소 원자를 내놓게 되는데, 그들은 이 염소 원자(Cl)가 촉매로 작용해 성층권의 오존층을 파괴할 거라고 결론내렸다. 여기서 염소 원자는 촉매 역할만 하기 때문에 반응시에 소모되지 않고 계속해서 오존 분자를 파괴한다(염소 원자 하나가 수십 년에 걸쳐 10만 개 이상의 오존 분자를 파괴할 수 있다). 만약 성층권 오존의 감소로 지표면에 도달하는 자외선의 양이 증가하게 되면 피부암과 백내장 환자가 늘어나고 농업 생산성이 감소하며 해양 생태계가 교란되는 등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몰리나와 롤랜드의 연구는 <뉴욕 타임즈> 같은 신문들에서 1면 톱으로 보도되면서 일약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들은 예상되는 대재난을 막기 위해 CFCs의 생산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추정되는 피해규모가 너무나 엄청났기 때문에 미국 정부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정부는 자체적인 특별 조사팀(task force)를 구성하는 한편으로, 1975년 이 문제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미국과학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의뢰했다. 규제에 반대하는 화학산업측의 맹렬한 로비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는 1976년에 발간한 보고서에서 몰리나-롤랜드 가설의 결론을 조심스럽게 지지했다.
 

CFCs 규제의 어려움
 

여기까지의 상황만 보면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들이 곧장 CFCs의 생산을 중단하고 오존층 파괴로 인한 파국적 결과의 예방에 나섰을 것처럼 보인다. 저명한 과학잡지에 매우 심각한 피해를 예측하는 과학 논문이 실렸고, 미국 과학계를 대표하는 과학단체가 그 결론을 뒷받침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실제 CFCs 규제는 초기에 매우 소극적으로 나타났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오존층 파괴 논쟁에 나타난 몇 가지 특징에서 찾을 수 있다. CFCs의 규제를 어렵게 만든 이러한 특징들 중 일부는 이후의 전지구적 환경문제들에서도 반복해서 나타났다.

우선 오존층 파괴에 관한 몰리나와 롤랜드의 논문은 구체적인 물증 없이 오로지 과학적 이론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에만 입각해 쓰여졌다. 다시말해 성층권 오존 양의 감소가 직접 관측된 것도 아니었고 CFCs와 오존층 감소 사이의 인과관계가 입증된 것도 아니었다는 얘기다. 심지어는 CFCs가 성층권까지 실제로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조차도 과학자들간에 의견이 분분했다. 화학산업측은 CFCs가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가설 자체가 단순한 '이론적 추측'에 불과하다며 조롱을 퍼붓기까지 했다. 둘째로 오존층 파괴는 전지구적인 차원의 문제였고, 만약 규제를 하려면 국제적인 협력이 전제가 되어야 했다. 어차피 대기 중에 방출된 CFCs 기체는 그것이 어느 국가, 어느 지역에서 방출되었건 간에 지구 전체로 퍼지게 마련이었다. 따라서 한두 나라가 자체적으로 CFCs 생산을 중단한다고 해도 다른 나라들이 이를 따르지 않는다면 규제는 소용이 없었다.

셋째로 오존층 파괴에 특유한 시간적 지연 문제가 있었다. 몰리나와 롤랜드는 CFCs가 대기 중에 방출된 후 성층권까지 올라가려면 십수년 이상의 오랜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그 영향은 뒤늦게야 나타날 것으로 보았다. 이 때문에 정작 현재 세대는 CFCs 사용을 통해 경제적 편익을 누리고 그에 대한 피해는 미래 세대가 입는 세대간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CFCs의 생산 중단과 같은 규제조치는 미래 세대를 위한 현재 세대의 희생을 요구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CFCs에 대한 마땅한 대체물질이 없었다는 점도 중요했다. CFCs는 냉매로서, 발포 플라스틱의 재료로서, 세척 용제로서 매우 우수한 화학적 성질과 낮은 독성을 지녔고, 이에 대한 대체물질을 구할 수 있는 경우에도 열 효율이 떨어지거나, 독성이 강하거나, 생산 비용이 비싸거나 해서 CFCs의 특성에 못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대체물질 일부는 그 정도는 훨씬 약하지만 여전히 오존층을 파괴하는 성질을 갖고 있었다.

이상의 네 가지 특징을 종합하면, CFCs에 대한 규제는 구체적 물증이 아직 없는 상황에서 과학적 가설에만 근거해 이루어져야 했고, 규제에 앞서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 나라들 사이에서 모종의 합의를 이끌어내야 했고, 미래 세대를 위해 현재 세대가 희생을 감수하도록 요구하고 설득해야 했고, CFCs보다 못한 대체물질을 도입해 생기는 문제들에 대처해야 했다. 이를 감안해 보면, 1970년대 후반의 정책결정자들이 CFCs의 규제 결정을 쉽사리 내리지 못했던 것도 무리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이런 성질의 문제에 한번도 접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오존층이 파괴되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면 그때쯤에는 환경에 방출된 CFCs의 양이 너무 많아질 것이고, 따라서 CFCs의 생산 중단 조치는 파국을 막기에 너무 뒤늦은 것이 되어 버릴 수 있었다.

결국 미국 정부는 1978년에 비교적 대체물질을 찾기 쉬웠던 분사제 용도의 CFCs 사용만 금지하고 다른 용도(냉매, 플라스틱 제조, 세척 용제)에 대해서는 규제를 유보하는 타협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 방향에 동조한 국가는 캐나다와 북유럽의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몇 나라에 불과했고, 다른 대부분의 산업 국가들은 CFCs의 생산과 사용을 계속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1980년 이후 보수적이고 친기업적인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CFCs에 대한 규제가 소강 상태를 맞게 되었다.
 

전환점의 도래와 국제적인 규제 노력
 

1980년대 초반에 오존층 파괴 문제는 완전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단지 몇 안되는 환경단체들만이 외롭게 고군분투함으로써 어렵사리 논의의 불씨를 살려놓았다. 이러한 소강 상태에 변화의 계기를 제공한 것은 1985년에 발표된 영국 남극 탐사팀의 새로운 연구성과였다. 영국 과학자들은 기상위성 자료를 재해석해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기간 동안 남극 상공에 거대한 '오존 구멍(ozone hole)'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오존 구멍과 CFCs 사이의 연관을 밝히지는 못했고, 왜 지구 전체가 아닌 남극에서, 그것도 봄에만 오존 양의 급격한 감소가 일어나는가 하는 문제에도 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많은 과학자들은 이 연구가 CFCs로 인한 오존층 감소를 실제로 보여주는 최초의 증거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1986년과 1987년에 다른 과학자들이 남극 상공의 오존 감소가 대기 중의 염소 원자 때문이라는 이론을 확립함에 따라 더욱 확고해졌다. 오존 감소의 원인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가 포착된 것은 1988년이었다. 성층권까지 비행할 수 있는 유일한 비행기인 NASA의 ER-2기가 성층권 오존의 농도가 가장 낮은 곳에서 염소 원자가 높은 수준으로 분포한다는 관측결과를 얻어낸 것이었다. 이는 염소를 포함하는 CFCs와 같은 화학물질군이 오존층 파괴의 주요 원인임을 분명히 보여준 최초의 물증이었다. 이에 CFCs가 오존층 파괴의 원인임을 계속 부정하던 듀퐁도 마침내 손을 들었고, CFCs 생산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나가겠다고 선언한 최초의 화학회사가 되었다.

오존층 파괴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점차 쌓여 가면서 국제적인 차원의 규제 노력도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1987년 9월에 몬트리얼에서는 모두 150개국 이상이 참여해 오존층 파괴 화학물질의 규제 문제를 논의한 국제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이 회의에서 합의에 이르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참석한 국가들은 문제의 심각성 정도, 규제조치의 내용, 국가간 형평성 문제 등에 있어 서로 인식을 달리했다. 미국은 거대 화학회사들이 많아 대체물질 개발에 많은 자금을 쏟아부을 수 있었기 때문에 CFCs의 단계적 생산 감축을 주장했다. 반면 화학산업의 규모가 작고 입지가 취약했던 일본과 유럽 국가들은 현 생산 수준으로의 동결로 논의를 제한하려 했다. 일본은 특히 전자산업에서 세척 용제로 많이 쓰이는 CFC-113의 생산 축소에 결사 반대했고, 중국과 인도 같은 개발도상국은 오존층 파괴가 선진국들의 무분별한 화학물질 남용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규제를 선진국들에 한정하고 자신들은 계속해서 CFCs를 생산해 쓸 수 있기를 희망했다.

협상에 난항을 겪은 끝에 오존층 파괴 물질에 관한 몬트리얼 의정서(Montreal Protocol)가 1988년 9월 15일, 23개국이 서명한 가운데 채택되었다(이후 가입국이 계속 늘어나 현재에는 190여개 국이 가입해 있다). 몬트리얼 의정서는 1989년 1월에 발효되었는데, 그 내용은 1986년 수준으로 CFCs의 생산과 소비를 동결하고 1999년까지 생산량을 50%로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아울러 개발도상국에 대해서는 10년간 적용 유예기간을 두어 정해진 기간 동안 오존층 파괴 화학물질을 계속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몬트리얼 의정서가 애초에 취한 이러한 미온적인 입장 ― 완전한 생산 중단이 아닌 50% 감축 목표와 개발도상국 예외 인정 ― 을 보면 각국간의 첨예한 입장차이를 조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가 하는 것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몬트리얼 의정서의 내용은 1990년대 들어 오존층 파괴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속속 제기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1990년의 런던 회의에서는 CFCs의 생산을 1999년까지 완전히 중단하는 것을 새로운 목표로 정했고, 1992년의 코펜하겐 회의에서는 그 시한을 다시 1996년으로 앞당겼다. 이러한 국제적 노력의 결과로 성층권 오존의 양이 21세기 중반부터는 서서히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리고 1995년, 몰리나와 롤랜드는 오존층 파괴 문제를 선구적으로 지적하고 규제 필요성을 제기한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오존층 파괴 논쟁이 주는 교훈
 

1970년대에 촉발된 오존층 파괴 논쟁에서 정책결정자들은 불확실한 이론에 근거해 인간 생활에 매우 요긴한 화학물질의 규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시간이 흘러 오존층 파괴의 증거가 쌓이면서 규제의 필요성에 대체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그들은 어떤 물질을 언제부터 얼마나 규제할 것인가를 놓고 국가간에 나타난 첨예한 갈등을 넘어서야 했다. CFCs에 대한 규제는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국제적인 공동 대처를 이루어낸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그런 점에서 오존층 파괴 논쟁은 앞으로 지구온난화나 내분비저해물질('환경호르몬') 같은 새로운 전지구적 환경문제의 위협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출전: <OK논구술.net> 2005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