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워스키, 김명진 역, 『과학……좌파』(이매진, 2014)
 


 
 

< 목  차 >
 

옮긴이 해제 ― 단기 20세기의 서구 좌파 과학 운동
원자 폭탄과 양심적 과학자 운동|68운동과 과학자 운동의 급진화|영국의 급진 과학 운동|서구 좌파 과학 운동의 현재

감사의 글

서론

1악장 알레그로 콘 브리오 ― 영국의 과학 좌파, 1931-1956

혼란에 빠진 자본주의
전쟁과 평화 속의 과학|문화와 정치 속의 과학

촉매 구실을 한 전향자들
과학적 사회주의|비저블 칼리지|대중 앞에 나서다

과학의 정치
케임브리지의 급진주의자들|과학자들의 인민전선|정치적 내부자와 공공 지식인들

마르크스주의 이론
소련 마르크스주의|역사와 철학에 발을 내딛다|역사는 우리 편이다

좌파에 맞선 우파의 반격
과학의 자유 협회|사회주의 이의 제기자

'좋은' 전쟁?

전후의 결산
정치적 이득|냉전|과학의 팽창|과학자, 냉전의 전사|학문적 후퇴와 전진|대가를 치르다

유산
포섭된 과학|신념을 지키다


2악장 알레그레토 스케르잔도 ― 급진 과학, 1968-1988

도입
역사인가, 회고록인가

영국 급진 과학의 미국적 기원
끝없는 프런티어에서 새로운 프런티어로|경고의 목소리|과학기술학의 냉전적 기원|전리품을 나누다|과학학이 패러다임을 획득하다|미국의 진보주의자와 이주자들

1968
세대 차이

급진 과학
미국의 영향|영국의 운동|이론과 실천|《급진 과학 저널》

밥 영 ― 급진 과학의 '버널'
케임브리지의 국외자 버널과 영|반항아가 운동의 대의를 찾다|지적 발전과 문체|이론적 초점|마르크스주의적 뿌리|노동 과정의 관점|정치의 개인화|새로운 의제

결산
신자유주의적 세계?|과학 전쟁|대처의 혁명과 유산|과학기술학 ― 세상을 이해하되 변화시키지는 못하다|좌파의 퇴각|급진 과학의 유산과 영향


3악장 론도, 테마 콘 바리아찌오네 ― 다시 한 번 연주해줘, 샘?

역사적 교훈
우리 역사의 복원

셋째 운동?
기후 변화는 사회 변화의 지렛대|유령의 소환


 


< 역자후기 >

'과학'과 '좌파'는 어째 좀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인다. 이는 아마도 우리가 과학에 대해 갖고 있는 뿌리깊은 관념 때문일 것이다. 과학은 오로지 '자연'의(혹은 이를 모방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사실만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며, '사회'의 개입은 과학이 자연을 올바르게 반영하는 것을 '왜곡'시킬 뿐이라는 생각 말이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흔히 가능한 한 주변 사회와는 담쌓고 오직 실험실과 야외에서 실험과 관찰에만 몰두하는 사람들로 그려지기 일쑤이며, 또 그런 모습이야말로 바람직한 과학자의 상으로 이상화되곤 한다.

그러나 실제 역사 속의 과학자들을 되돌아보면 이러한 선입견이 틀린 것임을 이내 알 수 있다. 과학자들은 역사가 자신을 스쳐지나가게 내버려둔 채 그 속에서 자기 할 일만 하는 투명인간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당대 사회의 환경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했고, 때로 이러한 대응은 적극적인 정치적, 사회적 참여의 형태를 띄었다. 특히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격변들이 전세계를 뒤흔들었던 단기 20세기를 살아간 과학자들은 결코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모순과 역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파시즘, 냉전, 핵군비 경쟁, 이데올로기 전쟁을 차례로 겪으면서, 과학자들은 좋건싫건 자기 나름의 정치적, 사회적 태도를 정하고 그에 맞게 행동(적극적인 옹호 내지 저항이건, 소극적인 순응이건)할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 영국에서 활동했던 과학사가이자 당대의 급진과학운동에 투신한 활동가이기도 했던 노학자 게리 워스키가 2007년에 발표한 긴 논문을 우리말로 옮긴 이 책은 20세기를 살아간 좌파 과학자들의 고민, 활동, 역경, 좌절과 그들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먼저 20세기의 과학 좌파 운동을 낳은 사회적 모순과 그 속에서 과학의 변화하는 역할에 대해 개관한 후,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1930-40년대의 구 과학 좌파와 1968년 이후의 신 과학 좌파) 운동이 각각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했고 이를 어떻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재구성하려 했는지를 차례로 그려내고 있다.

첫 번째 과학 좌파에 대해서는 연구자로, 두 번째 과학 좌파에 대해서는 내부 관찰자이자 활동가로 직접 관여했던 저자의 독특한 이력 때문인지, 이 책이 묘사하고 있는 20세기 과학 좌파 운동의 전개는 단순한 정보 전달에서 그치지 않고 때로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기도 한다. 책의 끝부분에서 저자는 이러한 과거의 복원이 단지 잊혀졌던 지난날에 대한 고고학적 호기심 충족에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 나타날지 모를 제3의 과학 좌파 운동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피력하고 있는데, 이 역시 단순한 역사 연구자라기보다는 동시대의 역사적 흐름을 응시하는 예리한 관찰자이자 전직 활동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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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을 번역하게 된 계기는 거의 20여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역자는 공대 학부 재학 시절에 '과학기술학회'라는 것을 만들어 선후배들과 함께 과학기술운동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우리가 접할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우리말 문헌들에는 버널주의(첫번째 과학 좌파)를 비판하면서 1968년 이후에 등장한 급진과학운동의 문제의식만이 간략히 정리돼 있을 뿐, 그러한 문제의식이 이후 어떻게 발전해 나갔고 또 그런 운동의 조직가들은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에 관한 내용이 빠져 있어 궁금증을 자아냈다. 아쉽게도 이 대목은 역자가 대학원에 진학해 과학기술사를 공부하고 STS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후로도 계속 미진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역자가 줄곧 품고 있던 궁금증은 2000년대 들어서 1968년 이후의 과학자운동과 급진과학운동에 관한 학술 연구들이 차례로 등장하면서부터 조금씩 해소되기 시작했고, 몇 년 전 발견한 워스키의 이 논문은 그런 여러 학술 연구들 중에서도 단연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논문의 번역은 그러한 역자의 반가움을 다른 사람들과 조금이나마 공유해 보고자 시작한 일이었고, 2011년부터 2012년 사이에 시민과학센터의 소식지 《시민과학》에 네 차례에 걸쳐 연재된 후 이매진 출판사의 배려로 이번에 단행본으로도 묶여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워스키 자신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20세기 과학 좌파 운동에 대한 관심이 단지 지나간 과거에 대한 고고학적 궁금증 해소에 머물러서는 안될 터이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지난 20여년간 한국의 과학기술(자)운동이 걸어온 길에도 흥미로운 함의를 던져줄 수 있다. 한국의 과학기술(자)운동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짧은 전성기를 맞은 후 1990년대 중반 이후 급격하게 쇠퇴했다. 돌이켜보면 그 짧은 기간 동안,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현재까지도 한국의 과학기술(자)운동은 워스키가 그려내는 첫 번째 과학 좌파 운동, 곧 버널주의에서 거의 벗어난 적이 없다. 요컨대 한국의 과학기술(자)운동은 서구의 과학 좌파가 경유했던 급진과학운동의 전통을 한번도 받아들인 적이 없었던 셈이다. 이는 세 번째(한국의 경우에는 두 번째?) 과학 좌파 운동을 만들어내는 것과 관련해 워스키가 던지고 있는 화두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으며, 앞으로 한국에서 '과학 좌파'라는 화두를 가지고 씨름할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한 고민거리를 던져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부디 이 책의 번역이 그런 고민의 심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