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에게 과학은 어떤 의미를 가진 존재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아마도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먼저 과학은 우리에게 자연세계에 대한 절대적이고 무오류적인 '진리'를 제공해 주며, 기술에 대한 응용을 통해 사람들의 물질생활을 향상시키고 풍요롭게 하는 본질적으로 선한 존재라는 관점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과학은 엄격한 방법론을 통해 다른 지식에 비해 인식론적으로 더 우월한 지식을 도출해낼 수 있는 활동이며, 과학자들은 이러한 방법론과 진리를 수호하는 '사제'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반면 과학이 인간에게 허용되어 있지 않은 지식, 금단의 영역을 탐구하는 본질적으로 위험한 활동이라는 부정적 관점도 존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과학은 수식화·계량화된 지식을 통해 사람들의 삶에서 의미와 감성, 주관을 제거해 버리고 기술에 응용되어 환경과 생명을 위협하는 활동이며, 과학자들은 위험한 진리를 추구하는 '미친 과학자'이거나 일반인들 위에 군림하는 '얼굴없는 관료'이거나 정부 내지 거대기업의 앞잡이 등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처럼 사람들이 과학을 보는 눈은 극단적으로 양극화되어 둘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것이 보통이며, 이러한 상황은 '야누스의 얼굴'이니 '양날의 칼'이니 하는 상투어들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과학사회학자 해리 콜린스와 트레버 핀치는 『골렘』이라는 묘한 제목을 가진 도발적인 책에서 이처럼 양극화된 관점에 도전한다. 이들이 보기에 과학은 천사도 악마도 아니며, 마치 '골렘'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렇다면 '골렘'은 대체 무엇인가? 저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골렘은 유대교 신화에 나오는 피조물로서, 진흙과 물을 섞어 만든, 인간을 닮은 자동 인형이다. 골렘은 강력하며 인간의 명령을 받고 필요한 일을 대신 해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굼뜨고 위험한 존재로서 제대로 통제를 못하면 엄청난 힘으로 주인을 파괴할 수도 있다. 이러한 비유는 곧 과학이 본질적으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고 절대 진리도, 사이비 지식도 아닌 존재로서, 다른 모든 인간사와 마찬가지로 잘 되기도, 못 되기도 하는 그런 활동임을 시사한다. 과학자들 역시 인간사를 초월한 사제나 마술사 같은 존재가 아니라 다른 모든 전문가들처럼 자기 분야에서는 나름대로 최고이지만 종종 오류를 범하기도 하는 ― 그리고 정확히 그 정도만큼 신뢰할 수 있는 ― 사람들이다.

과학이 골렘 같은 존재임을 보여주기 위해 콜린스와 핀치는 독특한 전략을 취한다. 논쟁에 휩싸인 과학을 다룬 일곱 개의 사례연구를 그저 담담하게 서술해 나가는 것이다. 이 중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대한 '입증'이나 파스퇴르의 자연발생설 '기각'과 같이 과학사적으로 매우 유명한 사례들도 있지만, 다른 것들은 (과학사회학에서는 유명하지만)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보기에 따라 이런 것도 과학인가 싶게 여겨질 수도 있는 사례들이다. 콜린스와 핀치는 이들 사례를 통해 실험으로 이론(내지 가설)을 검증하거나, 다른 사람이 했던 실험을 재연하거나,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해 논쟁을 종결시키는 등 과학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이 흔히 가정되는 것처럼 깔끔하고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보여 준다.

결론부에서 콜린스와 핀치는 그러한 사례연구들이 공공정책에 제공하는 시사점으로 논의를 확장한다. 그런데 이 점을 이해하려면 과학이 한 종류 이상의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들의 입장을 알아두면 좋다. 콜린스와 과학사학자 스티븐 섀핀은 1989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골렘』의 배경이 되는 문제의식을 제기한 바 있다. 그들은 토머스 쿤을 좇아 과학을 정상과학(normal science)과 혁명적 과학(revolutionary science)로 일단 나눈 후, 여기에 이도저도 아닌 세 번째 상황, 즉 "지배적인 합의 속으로 얼른 꿰어맞출 수 없는 새로운 해석이나 발견을 둘러싸고 논쟁이 일어나지만 그것이 완전한 혁명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인" 상황을 가리키는 특이과학(extraordinary science)을 추가했다.(주1)

콜린스와 핀치는 일반 시민들이 알아야 하는 과학은 정상과학이 아닌 특이과학, 즉 논쟁중인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과학적 쟁점을 포함하는 공공정책상의 논쟁이 전개되면서 과학이 실험실 바깥으로 빠져나와 일반 시민들의 주목을 끌게 될 때, 그 속에 포함된 과학은 특이과학의 상황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유전자변형(GM)식품, 쓰레기소각장, 지구온난화, 핵폐기물 처리장 등을 둘러싼 논쟁을 떠올려 보면 이 말이 얼른 이해가 갈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일반 시민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이 책의 사례연구들이 잘 보여 주었다시피, 과학자들이 서로를 설득하기 위해 제시하는 증거는 많은 경우 불완전하며, 다른 사람의 실험 결과를 똑같이 얻어내는 일은 매우 어렵고, 논쟁의 종결에는 '과학 외적'인 고려나 요인들이 개입한다. 따라서 과학 논쟁에서 일반 시민들은 과학자들이 내놓은 (종종 상반되는) 결론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많은 경우 불확실성과 미결정성을 내포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전문가의 견해를 맹신하거나 전적으로 거부하는 대신 그들 중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를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콜린스와 핀치의 이러한 결론은 '과학기술 민주화'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갖는다.

『골렘』은 이른바 '황우석 사태'가 한창 진행중이던 12월 중순에 출간되어 상당한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이 황 교수의 논문조작 사건에 어떤 함의를 갖는지를 한번 짚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출판사측의 광고문구 ―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논문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초유의 혼돈에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과학의 진실!!" ― 와는 달리, 이 책에서 소개된 사례들이 황 교수 사건에 직접적인 함의를 갖는 것은 아니다. 복제배아로부터 줄기세포를 유도하는 연구가 '첨단과학'의 영역에 속하긴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쟁점이 되었던 복제배아 줄기세포의 진위여부 문제는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잘 확립된 기술인 DNA검사로 손쉽게 알아낼 수 있었던 까닭이다. 한마디로 이번 사건에서는 '재검증'(DNA검사)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둘러싼 신경전은 있었으되, DNA검사 결과의 해석을 둘러싼 과학자들간의 논란은 없었다.

『골렘』이 황 교수 사건에 함의를 갖는다면, 그것은 과학의 불확실성과 미결정성보다는 과학과 대중의 관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의 진행과정에서 흔히 '황빠'로 통칭되는 황 교수의 열성적 지지자들은 복제배아 줄기세포 연구라는 과학이 가져다줄 수 있는 잠재적 혜택을 터무니없이 과대평가하고 황 교수라는 과학자 개인을 우상화하고 맹신하는 모습을 보였고, 심지어 논문 조작이 기정 사실로 드러난 시점에 와서도 황 교수를 두둔하는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이는 일반 시민들이 과학 언론을 통해 과학이 가져다줄 엄청난 혜택에 관한 장밋빛 환상만을 일방적으로 주입받은 결과 빚어진 현상으로, '골렘 과학'의 일면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일반 시민들은 과학이 갖는 '골렘'으로서의 성격을 이해하고 과학이 가져다줄 수 있는 혜택과 위험성에 대한 현실적인 기대치를 갖도록 과학을 보는 눈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한국어판 책의 제목에 대해 한 가지만 덧붙일까 한다. 이 책의 2판 원제는 '골렘 ― 당신이 과학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출판사측에서 임의로 책의 부제를 '과학의 뒷골목'으로 바꾸어 번역본을 내놓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부제가 크게 불만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과학사를 다룬 대중서적이나 과학자 위인전기 같은 데서 보는 깔끔하고 교과서적인 과학이 '제대로 된' 과학의 모습이고, 이 책에서 소개된 사례들은 '과학사의 뒷얘기'쯤에나 나올법한, 흥미롭긴 하지만 별반 중요하지는 않은 에피소드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는 저자들의 의도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저자들이 말하고 싶었던 내용은 첨단을 달리는 어떤 과학 분야도 이 책에서 묘사하는 것과 같은 논쟁에 휩싸일 수 있으며, 바로 그러한 '골렘 과학'의 모습을 일반 시민들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던가? 나중에 중쇄나 재판을 찍을 때 원래 제목을 꼭 다시 살렸으면 하는 바램이다.

마지막으로 번역에 대해 몇 가지만 지적하겠다. 각 사례의 세부 내용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터인데, 그런 부분에서는 번역이 상당히 잘 이뤄진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의 문제의식을 집약하는 결론부의 번역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역자는 '대중의 과학이해' 정도로 옮겨야 할 '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를 '과학의 공적 이해'(p.254)로, '공청회(public inquiries)'를 '공적 탐구' 혹은 '공적 조사'(p.263)로, '시연(試演, demonstration)'을 '증명'으로(p.264) 각각 옮겨 놓았는데, 이 때문에 독자들이 결론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혼란이 생기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아울러 '공적 이해자'(p.256)로 번역되어 있는 'public understander'는 '대중이해 증진론자' 내지 '과학 대중화론자' 정도로 의역하는 것이 이해에 더 도움이 될 듯하다. 앞으로 기회가 될 때 수정될 수 있었으면 한다.
 
 
 

각   주

1. Harry Collins and Steven Shapin, "Experiment, Science Teaching, and the New History and Sociology of Science," Michael Shortland and Andrew Warwick (eds.), Teaching the History of Science (Oxford: Basil Blackwell, 1989), pp. 67-79.
 
 
 
 

출전: ≪환경과생명≫ 2006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