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biotechnology)의 다양한 측면들을 둘러싼 논쟁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점차로 격렬해지는 양상을 보여 왔다. 1973년에 최초의 유전자재조합 실험이 성공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생명공학의 진전이 언제나 새로운 쟁점들을 제기하고 논쟁을 불러오긴 했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에 접어들면서 이제 논쟁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듯하다. 그 이유는 생명공학 기술 자체가 이제 실험실 단계를 벗어나 그것의 산물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와 환경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생명공학이 '미래의 과학'이 아니라 '현재의 과학'으로서의 위치를 갖게 된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유전자조작 작물의 상업재배가 본격화되었고, 동물복제의 '가능성'이 현실로 탈바꿈하였으며, 유전자 검사(genetic testing)를 통해 밝혀진 개인의 유전 정보가 보험이나 채용에서 이용되기 시작하였고, 이 모든 것이 가져올 수 있는 사회적·환경적·윤리적 문제들에 관한 연구와 대중적 차원의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생명공학에 관한 한 논쟁의 무풍지대나 다름없었던 우리 나라에서 최근들어 생명공학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 것은 이런 배경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생명공학의 응용분야를 거칠게 나눈다면 크게 농업과 의료로 양분할 수 있을 터이다. 이 중에서 최근 논쟁의 초점으로 보다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농업 생명공학 쪽이다. 아직까지 실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유전자치료(gene therapy)의 경우와는 달리, 농업 쪽에서는 이미 1996년부터 10여 종의 제초제저항성 작물, 해충저항성 작물의 상업재배가 시작되었고 그 결과가 '유전자조작식품'의 형태로 사실상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단체, 소비자단체, 제 3세계 기구들은 서로 연대하여 유전자조작식품이 ▲ 인체에 대해 안전하고 ▲ 환경친화적이며 ▲ 전세계 식량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유전공학자들과 농업관련 다국적 거대기업들의 주장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 이 각각의 쟁점들에 대해 어떤 비판들이 제기되고 있는지를 최근의 연구성과들을 중심으로 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유전자조작식품의 안전성과 환경에 대한 영향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전공학의 기본 전제와 실제 조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초보적인 수준이나마 알아둘 필요가 있다. 유전공학이란 간단히 말해, 하나의 종으로부터 특정한 형질을 발현시키는 유전자를 뽑아내 이를 다른 종에 삽입하여 원하는 형질을 발현하도록 하는 기술을 말한다. 예컨대 박테리아의 유전자를 식물에 집어넣어 제초제에 대한 저항성을 갖도록 한다거나 인간의 유전자를 돼지에 집어넣어 성장을 빨리 하게 하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의 종의 DNA로부터 전이시키고자 하는 유전자를 '잘라내어서' 이를 플라스미드(plasmid) ― 박테리아에서 발견되는 고리 모양의 짧은 DNA ― 와 결합시킨 후에, 다시 전이된 유전자의 발현을 촉진시키는 바이러스의 프로모터(promotor)와 결합시켜 재조합 플라스미드를 만든다. 이 재조합 플라스미드를 흔히 벡터(vector)라고 부르는데, 이 벡터는 숙주 세포 속으로 원하는 유전자를 운반하는 매개물의 역할을 하게 된다. 숙주 세포가 이 벡터에 '감염'되면 전이된 유전자가 나타내는 형질을 숙주 세포가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림 참조). 이런 유전공학적 조작의 과정은 종(種)의 경계를 완전히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근연(近緣) 관계에 있는 종들끼리 교배시켜 새로운 잡종을 얻어내는 전통적인 종자개량 방식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상의 과정으로부터 유전공학은 하나의 간단한 전제, 즉 하나의 유전자는 하나의 특정한 형질을 발현시킨다는 1:1 대응의 전제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어떤 유전자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알아내서 그것을 뽑아내 다른 유기체에 넣어주면 그 유기체 역시 같은 기능을 갖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유전공학적 조작이 거둔 부분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근거하고 있는 과학적 전제에는 심대한 문제점이 있음이 유전학의 발전에 따라 점차로 밝혀져 왔다. 지난 20여년 동안 축적되어 온 유전학적 연구성과들에 따르면, 유전자는 그것이 놓여진 맥락과 무관하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극도로 복잡한 유전자 네트워크 속에서 작동하며 그 외부의 생리적·생태적 환경으로부터도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어떤 특정한 개체 내지는 종에서 특정한 형질을 발현시키는 유전자가 다른 개체 내지 종으로 전이되면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고, 외부환경에 영향받아 유전자의 기능이나 배열이 달라질 수도 있다. 또한 유전자는 그것이 삽입된 개체 속에 얌전하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바깥으로 빠져나와서 다른 유기체를 '감염'시키는 수평적 유전자 전이(horizontal gene transfer)를 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유전공학에서의 조작 과정이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적인 확률적 과정에 의존한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심각한 것이 된다. 즉, 유전공학자는 원하는 형질을 발현시키는 유전자를 숙주 세포 DNA의 원하는 위치에 정확하게 갖다놓을 수 없다. 인위적으로 조작해 만든 벡터가 세포 속으로 통합되는 과정은 무작위적인 것이며 유전공학자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유전공학자는 재조합 플라스미드에 삽입된 항생제저항성 표지유전자를 이용해 원하는 유전자를 받아들인 숙주 세포를 사후적으로 골라낼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마치 "산탄총을 발사하는 것과 같은" 이러한 조작 과정은 많은 불확실성과 실패의 가능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유전자조작식품의 안전성과 환경적 영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유전자조작 콩, 옥수수, 감자 등이 인체에 해가 없는 것인지에 대한 안전성 평가는 이른바 '실질적 동등성(substantial equivalence)'의 원칙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 이는 유전자조작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산물이 원래의 식품과 주요한 생화학적 구성성분에서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면 이 둘은 '실질적으로 동등'한 것으로 간주하여 별다른 추가적 테스트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유전자조작의 과정에서는 외래유전자의 삽입에 의해 유전자 네트워크가 교란되어 원하지 않는 유전자가 발현되거나 감지하기 힘든 정도의 새로운 독소를 축적하는 등 예기치 못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올해 초 영국에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켜 국내에까지 널리 알려졌던 푸스타이 박사(Dr. Arpad Pusztai)의 연구는 바로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는 곤충에 독성을 갖는 렉틴(lectin)이라는 단백질을 자연적으로 분비하도록 유전자조작된 감자를 쥐에게 먹인 결과, 쥐의 면역체계가 저하되고 주요 장기의 크기가 줄어들었다는 연구결과를 작년 여름에 공표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그는 자신이 근무하던 로웨트 연구소에서 사실상 쫓겨나게 되었는데, 올해 초 이 문제가 다시 쟁점화되면서 영국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연구결과가 어느 정도의 타당성을 지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의 논란이 존재하지만, 유전자조작의 과정 그 자체가 식품 안전에 문제를 가져올 수도 있으리라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과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전자조작 작물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 역시 유사한 대립구도를 지니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광범하게 재배되고 있는 몬샌토(Monsanto) 사의 유전자조작 작물을 몇 가지 예로 들어 보자. 몬샌토는 자사가 생산하고 있는 제초제인 라운드업(Roundup)에 저항성을 갖도록 유전자조작한 콩과 면화 등의 종자를 제초제와 함께 묶어 판매하고 있으며, 일부 곤충의 애벌레에 독성을 갖는 토양 박테리아인 Bacillus thuringiensis(Bt)의 유전자를 도입하여 해충저항성을 갖도록 만든 옥수수와 면화 등도 개발하였다. 몬샌토와 같은 농업관련 다국적기업들은 이러한 작물들이 제초제와 살충제의 사용을 줄여 환경친화적인 농업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단체와 제3세계 기구들은 이러한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제초제저항성 작물을 제초제와 함께 사용하면 오히려 라운드업과 같은 특정 제초제의 사용량이 늘어나게 되고, 그 결과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는 더욱 가중된다는 것이다. 또한 제초제저항성 작물과 잡초들간의 수평적 유전자 전이의 결과로 제초제저항성을 지닌 "슈퍼 잡초"들이 생겨나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다. Bt를 도입한 해충저항성 작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이를 넓은 면적에서 재배할 경우 해충의 개체군에서 유전자 변화에 의해 Bt에 대한 저항성이 광범하게 생겨나 Bt를 무용지물로 만들 가능성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Bt 독소는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 인간에게 이로운 곤충인 제주왕나비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유전자 오염"은 일단 생태계 속에 방출되면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과거의 화학적 오염과는 비교할 바가 못된다. 결국 이 역시 유전자와 생태적 외부환경 사이의 상호작용과 피드백을 간과한 경우가 되는 것이다.

한편, 농업 생명공학이 과연 인류가 당면한 식량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를 둘러싼 논쟁은 앞서의 안전성·환경위험성 논쟁과는 약간 그 궤를 달리한다. 앞서의 논쟁이 주로 과학적 불확실성을 둘러싸고 진행되었다면, 여기서의 쟁점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사회와의 관계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에 관해 나타난 것이라 볼 수 있다.

현재 추세대로의 농업 생명공학이 과연 지속가능한 것인지, 또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과거의 재래식 농업에 비해 더 효율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도 분명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일단 그 문제는 접어두도록 하자. 그러나 설사 어떤 식으로든 식량의 증산이 가능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기아 문제의 해결로 직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것이다. 이는 지난 20여년 동안의 기아와 식량생산량의 변화추이를 살펴봄으로써 간접적인 증거를 얻을 수 있다. 예컨대 1970년 이래 전세계적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수는 11퍼센트 가량 늘어났지만, 같은 기간 동안 1인당 식량생산 역시 상당한 정도로 증가하였다. 남아시아의 경우에는 기아와 1인당 식량생산이 똑같이 9퍼센트씩 증가하는 기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로부터 적어도 지난 20여년 동안을 놓고 본다면 인구성장으로 인한 식량 부족이 기아 증가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기아 증가의 '진정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한마디로 그것은 식량 자급의 상실, 그리고 불평등으로 인한 구매력의 부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수 세기에 걸친 산업화 과정에서 농민들은 토지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되어 도시빈민층으로 편입되는 과정을 겪어 왔으며, 농촌에 남은 농민들은 무토지 농업노동자로 전락하여 저임금 농업노동에 종사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이들은 완전한 식량 의존 상태에 놓이게 되었으며, 따라서 아무리 식량이 많이 생산되어 남아돌더라도 실업이나 여타의 이유로 구매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그들은 굶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생명공학의 발전은 단지 기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악화시킨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현재 개발된 대부분의 농업 생명공학 기술들은 생산량의 증가를 가져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는 생산증가로 인한 가격하락을 버텨낼 수 있는 대규모 농가에 더 유리한 결과를 가져온다. 즉 농업 생명공학이라는 '신기술'을 먼저 받아들이게 되는 대규모 농가는 시장가격과의 차이에 해당하는 잉여를 누리게 되지만, 나중에 신기술의 도입이 보편화되어 시장가격이 떨어지고 나면 그것을 채택하지 않은 소규모 농가는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생산규모가 큰 농가에게로 생산의 집중을 가져와 기존의 경향을 더욱 가속화시키게 된다. 뿐만 아니라 몇몇 생명공학 기술은 기존의 야외 농업 자체를 대체함으로써 제3세계의 농업 기반을 위협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남동부에 위치한 섬나라인 마다가스카르는 바닐라향의 원료가 되는 바닐라콩의 원산지로 유명한데, 최근 유전자재조합 기술과 조직배양 기술의 발달로 공장에서 인공바닐라향의 생산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마다가스카르의 연간수출량 중 5000만 달러가 줄어들고 7만에 이르는 농민들의 생존이 위협받게 되었다.

따라서 농업 생명공학이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은 과학기술과 사회, 특히 과학기술과 제3세계의 관계를 지나치게 일면적으로 파악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정한 과학기술은 사회적 진공 상태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사회적 관계 속에 포섭되어 있게 마련이며, 그것이 도입되는 맥락 역시 마찬가지이다.

결국 "21세기를 주도할 첨단 지식집약형 기술"이라는 식으로 널리 대중화된 생명공학의 이미지들은 왜곡된 것이거나 적어도 진실의 일면을 감춘 부분적인 것에 불과하다. 위에서 소개한 농업 생명공학에 대한 비판들은 그 속에서 가려져 있는 진실의 일부에 해당하는 셈이다. 즉 새로운 생명공학은 "잘못된" 혹은 "불충분한" 과학에 근거하고 있는 근원적 한계를 안고 있으며, 이는 곧 새로운 생명공학의 산물들이 잠재적으로 위험한 어떤 것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아울러 생명공학은 그것이 도입되는 과정에서 기아 문제의 해결보다는 불평등의 강화와 다국적기업들에 대한 의존도의 심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으며 이미 실제로 그런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사회적 이해관계가 서로 뒤얽혀 있는 환경 속에서 비로소 나타나며, 새로운 기술을 사회 속으로 도입할 때 그 영향은 여러 사회 집단에 대해 차별적으로 나타난다는 '공리'는 생명공학의 경우에 있어서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생명공학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이러한 맥락에서 다시금 조명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의 무한한 잠재력을 맹신하거나 생명공학의 안전성만을 되풀이하여 강조하는, 성찰적이지 못한 사고방식은 재고되어야만 한다. 필요한 것은, 생명공학의 발전을 기술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다양한 사회집단의 관점을 빌어서 다시 바라봄과 동시에, 과학기술의 발전에 내재할 수 있는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성찰적인 자세일 것이다.

출전: 『성균』 65호 (1999년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