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hard Rhodes, "Introduction," Rachel Fermi and Esther Samra, Picturing the Bomb: Photographs from the Secret World of the Manhattan Project (New York: Harry M. Abrams, Inc., 1995), pp. 12-19.
 

원자폭탄의 제조
 

리처드 로즈
 
 

최초의 원자폭탄은 수제품(手製品)이었다. 미국과 유럽의 망명 과학자와 테크니션들은 국립공원의 야생 삼림 속에 감추어진 뉴멕시코 주의 외딴 메사(주1)에서 최초의 원자폭탄을 구상하고 설계하고 조립했다. 그들은 이것을 나무 상자에 담아 트럭에 실어 보냈고, 이는 2차대전을 끝장내기 위해 배에 실려 태평양 너머로 운반되었다. 최초의 원자폭탄은 흔히 쓰는 압지(押紙), 코르크, 알루미늄, 플라스틱, 미량의 금과 은, 한 묶음의 전선과 뇌관, 고성능 폭약과 강철 장갑판 등 통상 많이 쓰이는 물질들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폭탄의 핵심 작동부는 특이한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 금속이 대량으로 정제(精製)되어 이렇게 농축된 것은 지구상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금속, 즉 작은 고리나 반구 모양으로 생긴 우라늄과 플루토늄이 바로 원자폭탄의 엄청난 파괴력을 만들어냈는데, 이는 염탐의 시선을 피해 테네시 주와 워싱턴 주 시골에 급히 지어진 거대한 자동화 공장과 원격조종 화학공장에서 생산된 것이었다. 핵분열이 발견된 1938년에서 최초의 원자폭탄이 로스앨러모스의 메사를 떠나 일본으로 향한 1945년 사이에, 미국의 원자 산업은 연구소의 실험대 위에서 시작해 고용된 노동자와 공장의 수에서 1945년의 미국 자동차 산업에 맞먹는 거대 산업으로 성장했다. 이와 같이 극적인 규모의 변화 ― 실험실에서 연구하던 두 명의 화학자가 공장에서 비밀리에 건설과 제조 작업에 종사하는 수천 명의 사람들(수가 너무 많아서 감독관들은 자전거를 타고 순찰을 해야 할 정도였다)로 바뀐 ― 를 보면 미국 지도자들이 원자 무기를 먼저 손에 넣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알 수 있다.

미국 지도자들이 그토록 조바심을 낸 이유는 1938년 크리스마스 직전에 핵분열을 발견한 두 명의 과학자들이 독일인이었고 그 연구소는 나찌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이 핵에너지를 대량으로 방출시키는 메커니즘을 발견하고 나서 불과 아홉 달이 지난 후, 아돌프 히틀러의 군대는 폴란드를 침공했고 유럽 전역을 가로지르는 전격전을 시작해 대서양 연안까지 진군했다. 영국인들은 히틀러가 약속한 천년제국이 독일제 원자폭탄의 힘을 빌어 실현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공포에 떨었다. 그들은 이내 자신들의 절박한 심정을 미국에 전달했다.

"과학의 심오한 사실들은 그것이 쓸모가 있기 때문에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미국의 이론물리학자인 J.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언젠가 쓴 적이 있다. "그것들은 단지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발견되는 것이다." 한과 슈트라스만은 과학자들이 으레 하듯 수수께끼를 풀고자 했던 것이지, 원자폭탄을 발명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중성자로 여러 원소들을 포격해 원소 변환(transmutation)을 일으키는 실험을 하고 있었고, 자신들이 가진 방사화학의 기법을 이용해 변환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원자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얻으려 했다. 1938년 겨울에 두 독일 과학자의 관심을 특히 사로잡았던 물질은 우라늄이었다. 원자번호 92번으로 주기율표 맨 끝에 자리잡은 우라늄은 당시까지 지구상에서 발견된 가장 무거운 원소로서, 도자기 유약의 착색제로 약간의 상업적 가치를 지닌 밀도가 높고 흑자색을 띤 금속이었다. (중성자가 발견된 직후인 1932년 로마에서는 엔리코 페르미 ― 어느 누가 뽑아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 순위에서 네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인물 ― 가 연구팀을 이끌고 주기율표에 있는 원소들을 차례차례 중성자로 포격해 그 결과 나타나는 원소 변환을 기록하는 작업을 체계적으로 한 적이 있었다. 우라늄은 그러한 더 큰 퍼즐의 마지막 남은 조각이었다.)

실험 과정에서 한과 슈트라스만은 중성자 포격의 결과로 우라늄 질산염이 든 비이커 속에 어쩐 일인지 미량의 바륨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깜짝 놀랐다. 우라늄 핵에 충돌한 중성자가 이로부터 한두 개의 양성자를 떼내어 이것을 원자번호 90인 토륨이나 89인 악티늄으로 바꿀 수는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원자번호 56인 바륨은 주기율표상에서 거의 중간쯤에 위치한 원소였다. 당시 그들은 원자를 완전히 반으로 쪼개는 물리 과정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두 화학자는 자신들의 이상한 발견을 당시 베를린을 떠나 있었던 연구팀의 세 번째 멤버인 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에게 알렸다. 오스트리아계 유태인인 그녀는 나찌 독일을 피해 스웨덴으로 망명한 상태였다. 그녀는 크리스마스 내내 젊은 물리학자인 조카 오토 로베르트 프리쉬와 의논을 거듭했다. 스웨덴 서부의 작은 마을에서 휴가중이던 숙모와 조카는 눈쌓인 숲속을 거닐면서 이상한 새로운 반응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그들은 우라늄 원자핵이 하나의 물방울이라고 상상했다. 이 물방울은 플러스 전하를 띠고 있는 92개의 양성자들의 상호 반발력을 이기고 간신히 뭉쳐진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뚫고들어온 중성자는 마치 달이 지구에 충돌한 것처럼 그와 같이 불안정한 배치를 격렬하게 교란시킬 것이다. 우라늄 원자핵은 물이 가득찬 풍선처럼 요동을 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요동 중에 잡아늘인 태피 사탕같은 모양이 되면 두 개의 불룩한 부분 사이에 좁은 목이 생길 수 있다. 그러면 핵을 뭉치는 힘이 각각의 불룩한 부분 속에서 다시 작용해 목이 가늘어져 뚝 끊어지면서 새로운 두 개의 작은 핵이 생기는데, 이 핵은 어떤 원소가 되어도 상관없지만 대체로 바륨(56)과 크립톤(36)이 된다(36+56=92). 각각 플러스 전하를 띤 이 두 개의 핵은 엄청난 에너지로 서로를 밀치게 되는데, 나중에 프리쉬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원자 하나당 에너지가 모래알 하나를 튀어오르게 하는 데 충분할 정도의 양이었다. 프리쉬는 코펜하겐으로 돌아가 ― 그곳에서 그는 저명한 덴마크 과학자 닐스 보어와 함께 연구하고 있었다 ― 물리 실험을 통해 새로운 반응을 확인했고, 이 반응에 그것과 유사한 생물학에서의 세포분열 과정으로부터 빌어온 용어를 써서 ['핵분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엔리코 페르미와 닐스 보어(1939년 1월 워싱턴 D.C.의 카네기 재단에서)

세계는 아직 명목상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고, 이 새로운 발견을 비밀에 붙이자고 주장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디어들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퍼져갔다. 한과 슈트라스만, 마이트너와 프리쉬는 독일과 영국 저널에 논문을 실었고, 보어는 미국에 뉴스를 전해주었으며, 한 프랑스 물리학자는 레닌그라드의 동료 물리학자에게 편지를 써서 알려주었고, 전기 엔지니어였던 일본의 한 군사 장교는 외국 저널에 실린 논문에서 이를 읽었다. 아직 규모가 작고 공동체적이었던 물리학계는 이내 이 발견이 지닌 의미를 알아챘다. 방사능의 비밀을 놓고 40년 넘게 기초 연구를 거듭한 결과, 여기 마침내 물질 내에 잠재된 엄청난 에너지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유명한 공식 E=mc2으로 정량화한 ― 를 방출시킬 수 있는 과정이 발견된 것이었다.

그와 같은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한 차례의 실험이 더 필요했다. 만약 하나의 중성자가 단 하나의 우라늄 원자만을 분열시킨다면 대규모의 에너지 방출을 위해서는 대량의 중성자를 만들어내야 했는데, 중성자를 손에 넣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라늄 원자가 쪼개져 떨어져나간 두 개의 조각이 내부구조를 재조직해 안정화되는 과정에서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2차 중성자들을 방출할지 모른다고 생각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물질들이 제대로 배치만 되어 있다면 두 개의 2차 중성자는 두 개의 우라늄 원자를 더 분열시킬 수 있는데, 그러면 네 개의 2차 중성자가 추가로 방출되고, 이는 네 개의 우라늄 원자를 추가로 분열시키며, 다시 여덟 개의 2차 중성자, 여덟 개의 원자 분열, 열 여섯 개의 중성자 방출, 열 여섯 개의 원자 분열, 서른 두 개의 중성자 방출, 이런 식으로 계속되고, 이 과정은 우라늄 덩어리 속을 기하급수적둁로 퍼져나가며 물질이 폭발로 산산이 흩어질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화학에서의 용어를 빌어 이 과정을 연쇄반응(chain reaction)이라고 불렀다. 물리학자들은 대략 80번의 핵분열이 연쇄적으로 일어날 경우 1킬로그램의 우라늄(이는 골프공보다 더 작은 크기다)은 TNT 2만톤과 맞먹는 에너지를 가지고 폭발할 거라고 계산했다. 뉴욕과 파리에 있던 페르미와 다른 물리학자들 ― 페르미는 파시즘 수중에 들어간 이탈리아를 떠나 뉴욕에 와 있었다 ― 은 이내 필요한 측정 과정을 조직했다. 그들은 매 핵분열마다 두 개 이상의 2차 중성자들이 생성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39년 3월과 4월쯤에 이르자 전쟁은 목전에 닥쳤다. 이에 페르미의 동료 물리학자 중 한 사람이 2차 중성자의 존재를 비밀에 붙일 것을 제안했으나 프랑스 팀은 이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세계는 이제 원자폭탄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로부터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세계 도처의 물리학자들은 연구실의 칠판에 폭탄 모형의 초안을 스케치하고 있었다.

물리학자들은 핵분열이 아주 적은 양의 물질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러한 예기치 못한 발견이 중요한 정치적 결과를 가져올 거라는 점을 곧바로 직감했다. 공중에서 투하되는 통상적인 폭탄에 비해 그리 크지 않고 트럭보다는 확실히 작은 하나의 원자폭탄이 도시 하나를 파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형태건 간에 원자 "비밀" 따위는 불가능했다. 물리학의 법칙은 워싱턴에서 잘 작동하는 것만큼이나 베를린이나 모스크바에서도 잘 작동했다. 만약 한 나라가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다면 얼마 안가 다른 나라들도 경제적 능력만 된다면 이를 만들 수 있을 터였다. 오토 프리쉬와 한 동료 과학자는 1940년 초에 영국 정부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원자폭탄의 위협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응은 유사한 폭탄을 가지고 반대로 위협을 가하는 것이 될 것이다." 만약 두 나라가 이렇게 작고 쉽게 운반할 수 있는 대량살상 무기들 ― 이에 맞서 반대로 위협을 가하는 것이 유일한 방어인 ― 을 서로 쌓아놓고 있다면, 어느 나라가 감히 전쟁을 시작할 수 있겠는가?

다행히도, 원자폭탄을 만드는 것은 단순히 우라늄을 정제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과정을 요하는 작업임이 드러났다. 연쇄반응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우라늄이 어떤 최소량 이상으로 뭉쳐 있어야 하는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구상에는 우라늄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을 테니 말이다. 물리학자들은 그 최소량을 일컬어 "임계질량(critical mass)"이라고 불렀다. "물질의 양이 임계량에 미치지 못할 경우 이는 매우 안정하다"고 영국 정부는 1941년에 결론을 지었다. ". . . 반면 물질의 양이 임계값을 넘으면 그것은 불안정해지고 반응이 생겨나 엄청난 속도로 증식함으로써 결국 전에 없이 격렬한 폭발을 일으킬 것이다." 우라늄의 임계질량이 얼마인지를 측정하는 데는 몇 년의 연구가 필요했다. 그것은 10킬로그램을 약간 넘는 양이었다.

또하나의 문제는 천연 우라늄 그 자체는 폭발성을 띠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천연 우라늄은 동위원소라고 불리는 두 개의 상이한 물리적 형태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두 가지는 우라늄 235와 우라늄 238이었는데, 이 둘이 존재하는 비율은 1:139로 우라늄 238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 중 U238은 분열하지 않고 중성자를 흡수해 버리는 듯했다. U235만이 폭탄 제조에 적합했다. 그러나 U238과 U235는 화학적으로 동일한 성질을 가졌기 때문에 이를 서로 분리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수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들이 가진 유용한 물리적 차이는 질량이 약간 다르다 ― U238이 U235보다 약간 무겁다 ― 는 것뿐이었다. 이 둘을 분리하기 위해서는 먼저 천연 우라늄을 기체 상태로 변환시켜 구멍이 뚫린 칸막이에 대고 뿜어 주는 방법이 있었다. 이 경우 더 가벼운 U235가 U238보다 칸막이를 통해 약간 더 빨리 확산되는 점을 이용했다. 혹은 천연 우라늄을 진공 속에서 증발시켜 휘어진 자기장 속을 통과시키는 방법도 있었는데, 이 때는 더 가벼운 U235가 무거운 U238보다 더 작은 곡선 궤적을 그리게 되고 따라서 서로 약간 분리된 두 개의 증기 흐름을 기구의 반대쪽 끝에서 별도의 용기를 써서 담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들을 제아무리 정교하게 고안해 낸다고 해도 한 번의 시도에서 이 둘이 분리되는 정도는 미미했다. 기체확산법을 사용할 경우 폭탄에 쓸 수 있도록 천연 우라늄에서 U235를 93퍼센트까지 농축시키는 데는 그러한 과정을 5천 번 이상 반복해야 했다. 이 공정을 위해 지어진 공장은 대형 정유 공장에 비견될 만큼 거대한 시설을 필요로 했는데, 공장의 양쪽 날개는 각각 길이가 800미터나 되었다.


건설 중인 오크리지의 거대한 우라늄 농축 공장(1944년 6월)

이 즈음에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는 또하나의 가능한 방안이 제시되었다. 천연 우라늄 속에 있는 U238이 중성자와 충돌하면 대체로 이를 흡수하면서 다른 원소로 변환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원소는 주기율표 상에서 한 칸이 더 올라간 원자번호 93의 새로운 인공 원소로, 이를 발견한 미국 학자는 여기에 넵투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넵투늄은 방사선을 내뿜는 불안정한 원소로서 불과 며칠만 지나면 다시 형태를 바꾸었다. 1941년 초에 버클리의 방사연구소(Radiation Laboratory)에서 방사화학자인 글렌 시보그와 동료 과학자들은 버클리에 있던 대형 사이클로트론을 이용해 우라늄을 중성자로 포격해 넵투늄을 만들었고 넵투늄이 다시 원소 변환을 한 후 남은 물질에서 수십만분의 1그램에 해당하는 양의 새로운 변환 생성물을 분리해냈다.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은 이 물질은 독특한 방사능을 띠었고, 알려져 있는 모든 원소들로부터 화학적으로 분리해 낼 수 있었다. 이는 원자번호 94의 새로운 원소임에 틀림없었다. 1942년에 시보그는 이 원소에 플루토늄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플루토늄은 우라늄과 마찬가지로 핵분열을 했는데, 그 정도는 우라늄보다 훨씬 더 활발했다. 우라늄은 평균 두 개의 2차 중성자를 만들어냈지만 플루토늄은 네 개에 가까운 2차 중성자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적절한 환경이 갖추어지면 6킬로그램 혹은 그보다 약간 못미치는 양의 플루토늄만으로도 임계질량을 만들 수 있었다. 폭탄 제조자의 관점에서 볼 때 플루토늄의 가장 좋은 점은 우라늄으로부터 화학적 방법으로 분리해낼 수 있다[따라서 더디기 짝이 없는 물리적 분리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나찌의 위협이 코앞에 닥친 영국의 독려를 받은 미국 정부는 1941년 12월 6일에 원자폭탄 제조에 뛰어들었다. 이 날은 공교롭게도 일본군이 하와이 진주만에 정박해 있던 미국 함대를 기습하기 불과 하루 전이었다. [원자폭탄 제조를 위한] 비밀 프로그램이 해결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공장 부지를 정하고 우라늄 광석 보급선을 확보하는 한편으로, 연쇄반응이 실제로 일어나는지 여부를 실험적으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연쇄반응을 일으키려면 해당 물질을 임계질량이 넘는 양만큼 모아야 했기 때문에 이 현상을 실험실 규모에서는 시연할 수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러나 엔리코 페르미와 그의 헝가리인 동료 레오 질라드 ― 컬럼비아대학에 있다가 시카고대학으로 옮겨 자리를 잡은 ― 가 대규모의 완화된 형태로 연쇄반응을 시연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핵분열에서 나오는 2차 중성자는 빠른 중성자였다. 원자폭탄은 그것이 산산이 흩어져 버리기 전에 큰 폭발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횟수의 연쇄반응을 얻어내기 위해 빠른 2차 중성자를 이용한다. [그러나 U235를 핵분열시키는 데 반드시 빠른 중성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U235는 빠른 중성자건, 느린 중성자건 간에 중성자를 받아들이면 핵분열을 일으켰다. 반면 U238은 빠른 중성자는 흡수했지만 느린 중성자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페르미와 질라드는 만약 천연 우라늄을 핵분열에서 나오는 2차 중성자의 속도를 줄여 주는 적절한 감속재와 섞어 놓는다면(그럼으로써 중성자들이 U238의 문턱을 넘어 U235와 만날 수 있게 한다면), 빠른 중성자가 아닌 느린 중성자에 기반한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혼합물 속에 중성자를 흡수하는 물질로 만든 긴 막대를 넣었다 뺐다 하면 연쇄반응을 시작하고 중단하고 유지시키는 것과 같은 제어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중성자의 속도를 늦추는 방법은 이것을 비슷한 크기의 원자에 당구공처럼 충돌시켜 주위의 원자들을 밀면서 에너지를 잃도록 하는 것이다. 물 속의 수소나 흑연 속의 탄소처럼 가벼운 원소들이 중성자와 크기가 비슷했다. 계산과 실험적 측정을 거친 후 페르미와 질라드는 연필심에 쓰이는 탄소 결정 덩어리인 흑연을 중성자 감속재로 낙점했다. 그들은 흑연 벽돌 속에 우라늄 조각을 꽂아넣은 후 이 벽돌들을 대략 구형을 이루도록 쌓았다. 그들은 대략 45톤의 우라늄과 350톤의 흑연을 쌓았을 때 임계상태에 이르게 될 거라고 추정했는데, 이는 대략 차고 두 개만한 크기였다. 만약 성공하면 이는 플루토늄을 변환시키는 데에도 쓰일 수 있는 다수의 중성자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흑연과 우라늄을 쌓아 만든 이 느린 괴물에 페르미는 "파일(pil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것은 원자폭탄처럼 폭발할 가능성은 없었지만, 방사능을 내뿜으며 다이나마이트처럼 폭발할 수는 있었다. 페르미는 처음 한 시간 동안에는 자신이 반응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파일을 시카고 시 한복판에 있는 대학의 풋볼 경기장 관람석 아래에 위치한 지하 스쿼시 코트 안에 만들자는 제안을 내놨다. 당시 미국은 전쟁 중이었고, 매일매일의 인명 손실을 고려할 때 전쟁을 조기에 끝낼지 모르는 무기에 대한 연구란 한시가 급한 일이었기 때문에 결국 파일은 [상당한 위험 부담이 있지만 그럼에도 준비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스쿼시 코트 내에 지어졌다. 그것은 사람이 만든 세계 최초의 원자로였다. 물리학자 허버트 앤더슨은 그 원자로에 생명을 불어넣은 1942년 12월 2일의 역사적 실험을 직접 지켜본 이들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중성자 계수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크릭, 크랙, 크릭, 크랙, 그리고 나서 이 소리는 점점 더 빨라졌고, 조금 후에는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 . . 그 순간 사람들의 시선은 기록계로 옮겨졌다. . . . 모든 사람들이 쥐죽은 듯 조용한 속에서 기록계의 펜이 위아래로 왔다갔다하는 정도가 점점 커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 . . 중성자의 세기가 점차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맞추기 위해 기록계의 척도를 여러 번 반복하여 조정해 주어야 했다. 갑자기 페르미가 손을 들고 "파일이 임계상태에 도달했습니다"라고 선언했다.


이제 우라늄의 연쇄반응은 확립된 사실이 되었다. 페르미는 파일을 4분 30초 동안 가동시킨 후 제어봉을 밀어넣어 반응을 중단시켰다. 그날 있었던 또다른 헝가리 망명자인 유진 비그너가 치안티로 축배를 제안했다. 그들은 종이컵으로 포도주를 마셨고, 포도주를 싸고 있던 누런 종이에 서명을 했다. 그러나 핵에너지를 잠에서 깨워 이끌어내는 데 일조했던 레오 질라드는 결코 낙관적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몰려있다가 다 가버리고 페르미와 나만 남았다. 나는 페르미와 악수를 하며 오늘이 인류 역사에서 어둠의 날로 기록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페르미가 파일을 건설하고 있는 동안, 유진 비그너는 그 원리를 응용해 대규모의 수냉식 생산용 원자로를 설계했다. 이는 U238을 핵변환시켜 폭탄을 만들기에 충분한 양의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제 폭탄 프로젝트는 육군 공병대가 담당하게 되었고 맨해턴 공병 지구(Manhattan Engineer District)라는 암호명이 붙었다. 육군 공병대에서 총 책임을 맡았던 인물은 레슬리 그로브즈 준장이었는데, 그는 펜타곤을 건설한 인물로 몸집이 크고 정력적인 엔지니어였다. 그로브즈는 우라늄 농축 공장을 위한 부지로 테네시 주 오크리지 주변 계곡 전체를 사들였고, 흑연 생산 파일 건설을 위해 워싱턴 주 핸퍼드 인근 컬럼비아 강 유역의 버려진 굴곡부도 매입했다. 이제 시카고에 자리를 잡은 글렌 시보그는 방사선을 쬔 후에 남은 우라늄과 핵분열 생성물로부터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데 필요한 분리 화학 공정을 개발하고 있었다. 시보그가 고안한 공정은 실험실에서 미시적 규모로 성공을 거둔 후, 백만 배 크기로 확대되어 창문도 없는 거대한 건물 속의 두꺼운 콘크리트 방사선 차폐벽 내에서 원격 조종으로 작동하는 기계에 의해 수행되었다. 이 건물은 너무나 거대했기 때문에 ― 8층 높이에 건물 길이만도 240미터나 되었다 ― 건설 노동자들은 이것과 규모에서 비견할 만한 영국 여객선의 이름을 따서 이 건물에 "퀸 메리"라는 애칭을 붙였다. 4만 5천 명의 건설 노동자들이 핸퍼드로 몰렸는데, 그들은 많은 임금을 준다는 약속에 혹했거나 전시 배급 중임에도 식단에 고기가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건설 노동자를 모집하는 전단에는 "당신은 여기 올 때 자물쇠를 반드시 지참해야 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이 지역의 시설을 운영했던 회사인 듀퐁이 선술집을 지을 때 최루가스 발사를 쉽게 할 수 있도록 창문에 경첩을 달았을 정도로 핸퍼드는 거친 곳이었다.


완성된 "퀸 메리"(1944년 9월경 핸퍼드)
플루토늄 생산용 원자로가 저 멀리 지평선 오른쪽에 보인다. 여기서부터 방사선을 쬔 우라늄 광석
을 철도로 "퀸 메리"까지 수송했다.


핸퍼드 시설의 보안 출입문(1944-1945년경)

테네시 쪽은 분위기가 좀더 나았지만, 그곳에서도 수만 명의 남녀가 그로브즈가 지시내린 대로 우라늄 농축 공장을 짓고 가동하는 작업에 종사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다. 전쟁이 끝난 지 한참 후에 한 테네시 사람의 회고에 따르면, 이 지역 사람들은 10년 동안 돈도 없이 지루해하면서 대공황 시기에 밖에 나앉아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일자리와 흥분과 이겨야 하는 전쟁과 해야 할 어떤 일이 생겨났던 것이다. 스킷모어 오윙스 앤 메릴이라는 신생 건축 회사가 조립식 주택으로 이루어진 모델 도시를 건설했는데, 이것은 이 회사가 처음으로 맡은 대규모 사업이었다. 낮에는 테니스 코트였던 곳이 밤이 되면 야외 무도장이 되었고 여기서 로맨스가 꽃을 피웠다. 한 익명의 시인은 끝없는 건설 과정에서 진흙탕과 끊임없이 싸웠던 것을 글로 남겼다.
 

회사에 늦게 출근하지 않기 위해
제법 큰 물웅덩이를 헤엄쳐 건너고
얼어죽을 진흙탕 속을 헤쳐 지나가노라면
내 몸무게는 절로 줄어들었다

나는 고무덧신과 신발을 잃어버렸다
영원히 나는 우울증을 앓는다
내 마음은 쿵 소리를 내며 무너져내린다
모든 게 그 얼어죽을 진흙탕 때문이다

그것은 내 몸뚱아리 속에 들어앉아 있다
그래서 내가 가끔 손가락을 베어 다칠 때면
단지 피만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얼어죽을 진흙탕이 거기서 쏟아져나온다


사람들은 다들 자신들이 가공 처리하고 있는 것이 뭔지를 궁금해했다. 이 극비 프로젝트에서 그로브즈가 내세운 "구획화(compartmentalization)" 정책은 사람들이 맡은 바 작업을 하는 데 필요한 사항만을 알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정교한 작업 공간에서 전자기적 동위원소 분리기의 자기장 세기를 조정하는 일을 하던 오퍼레이터들은 계기판 위의 바늘이 특정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게 유지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이었다. (테네시 주의 시골 여자들은 변덕스런 기계들을 다루는 방법을 금방 터득해냈고 얼마 안있어 그 기계를 설계한 버클리의 물리학자들보다 이를 더 잘하게 되었다.) 창백한 흰색을 띤 응고된 사불화우라늄(UF4)이 수 톤씩 거대한 공장의 한쪽 끝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공장의 반대쪽 끝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 이유는 폭탄에 쓸 수 있는 정도로 농축된 우라늄의 일일 생산량이 겨우 몇 그램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민간인으로 위장한 육군 수송병이 며칠에 한 번씩 그간 생산된 우라늄을 일반 서류가방에 넣은 후, 이를 기차로 시카고에 있는 또다른 수송병에게 전달해 주었다(그는 그것이 다시 어디로 전달되는지는 알지 못했다). 두 번째 수송병은 이것을 산타페로 운반했고, 이는 다시 거기서 30마일 북서쪽의 메사에 위치한 비밀 연구소로 전달되었다. 질산염 용액에 넣은 플루토늄은 개조된 육군 앰뷸런스에 실려 핸퍼드에서 로스앨러모스까지의 길을 당시의 울퉁불퉁한 2차선 고속도로 위로 덜컹거리며 운반되었다.


오크리지 공장에서 일하던 오퍼레이터들(1944년)
그들은 자신이 하고 있던 작업의 진정한 성격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알지 못했다.

폭탄 연구소는 뒤늦게 생각해 낸 아이디어였다. 원래 폭탄 설계 책임을 맡았던 것은 시카고에서의 활동을 지휘하고 있던 물리학자 아서 콤프튼이었는데, 그는 이 작업을 오펜하이머에게 넘겼다. 오펜하이머는 부유한 뉴욕 사람으로 하버드와 유럽에서 물리학을 공부했고 비쩍 마른 체격에 열정적인 성격을 가진 버클리대 교수였다. 그가 이 임무를 맡게 된 것은 폭탄 설계가 이론적인 작업일 수밖에 없는데 당시 그가 최고의 이론물리학자였기 때문이었다. 1942년 여름에 그는 버클리에서 폭탄 이론을 점검해 보는 회의를 열었다. 여기에는 헝가리에서 망명한 에드워드 텔러와 독일에서 망명한 한스 베데, 미국의 이론물리학자인 로버트 서버, 그리고 그 외에도 대여섯 명이 더 참여했다. 최고의 팀이었다.

모임에서 텔러는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꺼내놓았다. 이 아이디어는 페르미가 그 전 해 9월에 컬럼비아대학에서 같이 점심식사를 한 후에 무심코 ― 텔러는 페르미가 "느닷없이" 그 얘기를 꺼냈다고 기억했다 ― 끄집어냈던 것이었다. 내용인즉슨 핵분열 폭탄을 이용해 수소의 동위원소 중 하나인 중수소를 더 큰 규모로 폭발시키자는 것이었는데, 중수소는 바닷물에서 값싸게 뽑아낼 수 있었다. 여기서 수소 반응은 핵분열이 아닌 핵융합이 될 터였다. 수천만 도에 이르는 원자폭탄의 열이 막대한 에너지를 중수소 원자에 전달해 원자핵들이 상호간의 전기적 반발력을 이기고 융합하게 함으로써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이다. 융합 반응을 촉발시키는 것은 [재료에] 불을 붙이는 것과 유사했다. 즉, 폭탄에 중수소를 더 집어넣기만 하면 반응을 임의대로 더 크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텔러는 TNT 수천 톤(킬로톤)이 아니라 수백만 톤(메가톤)에 해당하는 규모로 폭발하는 수소폭탄을 구상했다. "에드워드가 이 문제를 제기했고. . . 모든 사람이 이에 흥미를 보였다"고 서버는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매일 아침마다 뭔가 새로운 안건이나 참신한 생각을 들고 나타났다. 그러면 밤새 베데가 그것이 완전히 틀린 생각임을 증명해내곤 했다." 서버는 그 해 여름에 원자폭탄과 관련된 계산 작업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원자폭탄의 문제를 완전히 꿰뚫고 있으며, 따라서 걱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가정을 암암리에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흥미로와 보였다고 해도 수소폭탄은 아직 부차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수소폭탄이 터지려면 핵분열 폭탄이 있어야 했지만, 아직 그런 장치는 그 존재가 이론적으로도 확실히 입증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원자폭탄에 필요한 계산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오펜하이머는 실물 크기의 진짜 폭탄을 설계하고 건설하고 어떤 식으로건 시험해 보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를 위한 단계로는 폭파, 금속학, 전자공학, 아슬아슬하게 임계상태에 못미치는 조립 실험, 진단, 그리고 가능하다면 실제 규모의 폭발 시험 등이 포함되었다. 오펜하이머는 외딴 장소에 별도의 폭탄 연구소를 지을 것을 제안했고 그로브즈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로브즈는 새 연구소의 소장으로 오펜하이머를 지명했다. ("그는 천재야"하고 그로브즈는 젊은 이론물리학자를 추켜세우곤 했다. "진짜 천재지. . . . 오펜하이머는 모르는 게 없다니까. 그는 다른 사람이 들고오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뭔가 해줄 얘기를 갖고 있어. 음, 꼭 그런 건 아니군. 그가 모르는 것도 몇 가지 있는 것 같아. 그는 스포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더군.") 그들은 후보지로 테네시 주도 생각해 보았고, 유타 주에 있는 장소도 가본 후, 결국 뉴멕시코 주의 메사 지형으로 결정을 보았다. 이곳은 오펜하이머가 여름 휴가를 보내곤 하던 상그레 디 크리스토스의 고원 지대에 있는 미개척 방목지로부터 정확히 서쪽 방향으로 리오 그란데를 가로지르면 나왔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가지는 물리학과 황량한 시골일세"라고 오펜하이머는 언젠가 친구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었다. "이 둘을 한데 합칠 수 없어 유감이군." 이제 이 둘이 합쳐지게 되었다.


레슬리 R. 그로브즈 장군과 J. 로버트 오펜하이머(1945년 9월경 워싱턴 D.C.에서)


로스앨러모스로 가는 길(1945년경)

그들은 메사에 있던 초등학교를 사들여 기본 건물로 삼았지만, 그 외에는 갖추어진 것이 별로 없었다. 오펜하이머의 조수인 존 맨리는 후일 이렇게 썼다. "우리는 아무런 초기 설비도 없는 뉴멕시코 주의 황무지에 새로운 연구소를 지으려 하고 있었다. 거기 있는 거라곤 호레이쇼 앨저(주2)의 소설들이나 그 외 학교에서 소년들이 읽었음직한 책들이 있는 도서관과 소년들이 말을 타고 돌아다닐 때 쓰던 장비뿐이었는데, 이것들은 중성자를 생산해내는 가속기를 만드는 데 별로 도움이 못되었다." 오펜하이머는 하버드대학으로부터 사이클로트론을 사들였고, 맨리는 위스컨신과 버클리를 이잡듯 뒤져 필요한 기어를 구했다. 그로브즈는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해발 2,200미터의 메사까지 공병 부대를 올려보내 싸구려 공동주택들을 급히 지었다. 서버는 1943년 3월에 이곳에 도착했을 때 "제대로 되어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오피[오펜하이머의 애칭]는 군대가 메사에 있는 나무를 모조리 잘라 버리지 못하도록 하느라 엄청나게 싸우고 있었다. 그는 그 일을 썩 잘 해냈다."

1943년 3월 말이 되자 사람들이 이사를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오펜하이머는 도착한 사람들에게 거기 오게 된 이유를 말해주는 일을 서버에게 맡겼다. 아직 지붕 위에서는 작업자들이 걸어다니며 일을 하고 있는 건물 안에서, 서버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다섯 차례의 강의 중 첫째 강의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핵분열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하나 혹은 그 이상의 물질들에서 빠른 중성자로 연쇄반응을 일으켜 에너지를 방출시키는, 폭탄의 형태를 띤 실용적인 군사 무기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오펜하이머는 맨리를 보내 말을 중단시켰다. 맨리는 서버에게 "무기"라는 단어를 쓰지 말도록 주의시켰다. 주위에 작업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보안 문제를 걱정하고 있었다"고 서버는 나중에 회상했다. "나는 그 대신 '장치'라는 단어를 써야 했다. . . . 그 일이 있은 이후부터 우리는 로스앨러모스에서 우리가 만들고 있는 폭탄을 가리켜 '장치'라고 불렀다."

1943년부터 전쟁이 끝나는 날까지 그 비좁은 메사 위에서 바글거리는 인구의 수는 석 달마다 매번 두 배로 늘었다. 먼저 우라늄 폭탄을 설계하는 작업은 수월한 것처럼 보였다. 최종 설계는 1.8미터 길이의 포신을 놓고 그 한쪽 끝에 표적이 되는 고리 모양의 U235 덩어리를 고정시킨 후, 반대쪽 끝에서 U235로 만든 "포탄"을 발사하면 이것이 표적 고리와 합쳐지면서 임계질량이 넘는 양을 구성하게 되어 있었다. 이는 임계질량의 네 배에 달하는 60킬로그램의 U235를 사용하는 비효율적인 설계였는데, 여기 들어간 U235는 그로브즈의 거대한 공장들에서 1945년 7월까지 겨우겨우 짜내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매우 보수적인 설계였기 때문에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지 모른다는 우려는 별로 없었고] 근사 임계 시험만 해보면 되었다. "리틀 보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 폭탄은 나중에 히로시마 폭탄이 되었다.

플루토늄은 이보다 훨씬 위태위태했다. 플루토늄은 U235보다 훨씬 더 불안정했기 때문에 대포 형태로 만드는 것은 처음부터 문제가 있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에밀리오 세그레가 메사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계곡의 통나무 오두막에서 플루토늄의 자연 분열을 측정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그는 핸퍼드의 생산용 원자로에서 막 도착한 플루토늄이 이미 훨씬 더 반응성이 큰 동위원소로 오염되어 있음을 발견했는데, 이는 곧 대포 형태의 설계가 불가능함을 의미했다. 플루토늄으로 만든 포탄을 초속 900미터의 속도로 포신 내에서 발사한다 해도 이것은 표적 고리에 도달하기도 전에 녹아서 기화되어 버릴 것이었다. 로스앨러모스는 임계질량을 구성하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맨해턴 프로젝트의 그토록 광범위한 노력이 겨우 한 개의 [우라늄] 원자폭탄을 만들어내는 데 그칠 판이었다.

새로운 방법은 내파(implosion)라고 불렸다. 이 아이디어는 [1942년 여름의] 버클리 회의에서 나온 적이 있었는데, 서버의 강의에 뒤이은 토론에서 다시 제기되었다. 그러나 오펜하이머가 보기에 이는 잘해 봐야 가능성이 낮은 도박이었다. 내파란 한 덩어리의 플루토늄을 다른 덩어리와 충돌시키는 대신, 속이 비거나 차 있는 구형의 플루토늄 덩어리를 고성능 폭약으로 둘러싼 후 이를 동시에 폭발시켜서 구체를 안쪽으로 압축해 임계질량을 넘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고성능 폭약의 충격파는 포탄의 속도보다 훨씬 더 빨리 전파되기 때문에 플루토늄이 자연 분열에 의해 미리 터지거나 불발이 되기 전에 임계질량까지 압축할 수 있었다. 1944년 늦여름에 연구소는 내파를 실제로 구현하는 어려운 문제를 중심으로 조직을 재정비했다.

이 즈음에 영국 과학자들로 구성된 팀이 조력을 위해 메사에 도착했는데, 그 중에는 나중에 소련 스파이로 밝혀지는 독일 망명 과학자인 클라우스 푹스도 있었다. 영국 과학자들 중 한 사람인 제임스 턱은 내파용 고성능 폭약이 렌즈로서 작용하게끔 배열해 폭발이 안쪽으로 향하도록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제안했다. 연구소 자문역을 맡고 있던 헝가리 출신의 탁월한 수학자인 존 폰 노이만이 에드워드 텔러의 도움을 얻어 복잡한 기하 문제를 풀어냈다. 텔러는 폭발물이 실제로는 고체 금속을 정상 밀도의 두 배까지 압축해 플루토늄 원자들이 서로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실험에 의해 입증된 이 사실을 근거로 그들은 임계질량에 약간 못미치는 구형의 플루토늄 덩어리를 폭탄의 중심에 놓고 이것을 압축해 임계상태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결론지었다. 그들은 내파 폭탄에 "팻 맨"라는 별칭을 붙였는데, 이것은 지름이 1.5미터 가량으로 속이 빈 구체들이 차곡차곡 포개진 것처럼 생겼다. 폭탄의 중심에는 호두만한 크기의 반응시작 장치가 있어 압축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 중성자를 공급하게 되어 있었다. 그 주위에는 6킬로그램의 고체 플루토늄 구가 들어갔다. 다시 그 주위에는 천연 우라늄을 구형으로 두텁게 다져 넣었는데, 이는 중성자들을 플루토늄 속으로 다시 반사시켜 폭발을 백만분의 몇 초라도 더 유지함으로써 연쇄반응이 조금이라도 더 지속되게 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다시 그 주위에는 두 가지 다른 종류의 고성능 폭약 블럭을 잘라서 맞추어 넣었는데, 바깥쪽 블록에 파묻혀 있는 기폭장치들에서 종 모양으로 퍼져나오는 폭발의 충격파가 다시 안쪽으로 향하도록 해 플루토늄 쪽으로 압축되게끔 만들었다. 여기 든 64개의 기폭장치들은 수천 분의 1초의 정확도를 가지고 동시에 폭발해야만 했다. 창의력이 풍부한 버클리의 물리학자 루이즈 알바레즈가 완전히 새로운 전기 기폭 시스템을 고안해 냄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내파는 너무나 복잡한 문제였기 때문에 이론만 믿고 맡겨둘 수는 없었다. 1945년 7월 16일에 그들은 알바레스크 남쪽의 고지대 사막에서 이를 실제로 시험해 보았다. 오펜하이머는 테스트 장소에 '트리니티'(삼위일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내 마음을 두드리소서, 세 가지 형상을 가진 신이시여. . . ."로 시작하는 존 던의 신성 소네트를 빗댄 것이었다. 팻 맨이라는 이름의 플루토늄 내파 폭탄은 비행기에 싣기 위한 외장을 씌우지 않은 상태에서 높이 30미터의 철탑 꼭대기에 매달려 해뜨기 직전에 폭발했다. 최초의 원자폭탄의 폭발을 지켜본 모든 사람들은 한낮의 태양보다 더 밝은 불덩어리에 압도되었고, 10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마치 오븐의 문을 막 열었을 때처럼 후끈거리는 열기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심난해했다. 빛이 약해지고 난 후 물리학자 I. I. 래비는 이렇게 회상했다. "거대한 불덩어리가 점점 커지더니 말려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공중으로 치솟았고, 노란 섬광은 주홍과 녹색으로 변했다. 그것은 위협적으로 보였고,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새로운 어떤 것이 이제 막 태어난 참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통제였고, 인간이 자연에 맞서 얻어낸 새로운 이해였다." 불덩어리가 구름 속으로 사라지고 바람에 의해 씻겨간 후에 래비는 덧붙였다. "그러나 곧 싸늘함이 느껴졌다. 그것은 새벽의 한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예를 들어, 케임브리지에 있는 나의 목조 가옥, 뉴욕에 있는 나의 실험실, 그 주위에 사는 수백만의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최초로 이해하게 된 이 자연의 힘을 생각할 때 느껴지는 싸늘함이었다. 거기에는 그런 싸늘함이 있었다."


트리니티 시험장, D-day 하루 전(1945년 7월 15일)
플루토늄 폭탄이 매달려 있는 30미터 높이의 철탑이 보인다.


철탑 꼭대기에 있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원자폭탄(1945년 7월 15일)
설치된 기폭제용 전선이 표면을 뒤덮고 있다.


트리니티 실험을 찍은 것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컬러 사진(1945년 7월 16일)

트리니티 시험 감독이었던 케네스 베인브리지는 그날 아침 오펜하이머에게 "이제 우리는 모두 개자식들입니다"라고 한마디 툭 던졌다. 그들은 독일이 원자폭탄을 만들지 않았으며 심지어 실물 크기의 파일을 만드는 단계에도 도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미 일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들이 만들고 있던 폭탄은 일본과 싸우기 위한 것이었다. 일본은 전쟁을 시작한 이래 중국에 전략 폭격을 가하고 대학살을 자행해 왔다. 그들은 연합군 포로들을 잔혹하게 다루었다. 당시 일본의 해군과 공군은 거의 궤멸된 상태였고 일본 본토는 봉쇄되어 있었으며 도시는 커티스 르메이 휘하의 미 육군 비행부대에 의해 전략 폭격을 받고 있었는데도 일본은 연합군이 요구하던 무조건 항복을 거부하고 있었다. 어쩌다가 이상주의적인 물리학자들이 대량살상 무기를 만들게 되었을까? 한동안 그들은 무기를 준비하느라 너무 바빠 미처 이런 질문을 던질 겨를조차 없었다.

그 전 해[1944년]에 닐스 보어가 나찌 치하의 덴마크를 탈출하고 난 후 로스앨러모스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오스트리아에서 망명한 이론물리학자 빅터 바이스코프는 보어의 방문이 미친 영향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로스앨러모스에서 우리는 과학자가 직면할 수 있는 상황 중에서 아마도 가장 의문스럽고 문제가 많을 어떤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 우리가 사랑하는 물리학은 현실의 가장 잔혹한 측면[즉, 인명 살상을 위한 무기 개발]으로 떠밀리고 있었고 우리는 이를 참고 견뎌야 했다. . . . 그런 상황 속에서 갑자기 보어가 로스앨러모스에 나타났다.

우리는 처음으로 이 모든 끔찍한 일들 속에 담긴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보어는 우리의 작업뿐 아니라 토론에도 곧바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모든 크고 심오한 어려움은 그 자체 내에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 . . . 이것이 우리가 그에게서 배운 것이다.


오펜하이머는 과학자들을 로스앨러모스로 끌어들일 때 그들이 만들 어떤 것이 현재의 전쟁[2차대전]뿐 아니라 전쟁 그 자체를 끝낼 수도 있다는 암시를 주었다. 그는 그들이 이런 숭고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십만 명에 달하는 일본 민간인들을 죽여야 할지 모른다는 얘기를 해주지는 않았다. 바이스코프보다 생각이 깊고 냉정했던 래비는 태평양에서 계속되고 있는 전쟁 때문에 물자 공급이 분산되어, 전쟁으로 황폐해진 유럽이 대규모 기아를 피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물자들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지극히 잔인한 방식이긴 했지만 원자폭탄은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일본 본토 침공을 위해 대기중이던 육군과 해군 병사들은 최초의 원자폭탄 투하 소식을 듣고 환호성을 올렸고 자신들이 죽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눈물을 흘렸다.


히로시마 원자폭탄(1945년 8월 6일)


폐허로 변해버린 히로시마의 모습(1945-1946년 겨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소식이 로스앨러모스에 전해졌을 때 메사는 축하 분위기였지만 몇몇 사람들은 괴로와했다. 오펜하이머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 과업을 수행하는 데는 응당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을 거라고 믿으실 겁니다"라고 썼다.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소장에서 퇴임한 1945년 10월 16일에 화창한 야외에서 열린 행사에서 직설적인 경고의 메시지를 남겼다. "만약 원자폭탄이 전쟁 중인 세계, 혹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국가들의 무기고 속에 새로운 무기로 추가된다면, 인류가 로스앨러모스와 히로시마의 이름을 저주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지금 와서 보면 원자폭탄의 희생자를 대변하는 히로시마가 로스앨러모스와 묶여서 [저주의 대상으로] 지목된 것은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히로시마는 로스앨러모스가 전쟁을 지원하고 지속시키게 만든 데 책임이 있었다.


오펜하이머가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소장으로 있던 마지막 날(1945년 10월 16일)

보어는 원자폭탄이 지닌 크고 심오한 어려움, 즉 원자폭탄의 파괴력을 막을 수 있는 확실한 방어수단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전쟁 중인 국가들이 이기적인 이유에서 그것을 통제하기 위한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들이 자신의 정치 시스템을 개방해 [원자폭탄을 비밀리에 개발하고 있지 않음을] 다른 국가가 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이는 전쟁을 일으킬 능력이 없다고 스스로 선언한 경우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그는 믿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보면 보어의 예측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들은 이론이 아니라 증거로부터 배웠으며, 국가적 생존의 문제를 도덕성의 문제보다 우위에 놓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 예측은 이와 다른 훨씬 더 위험한 경로, 즉 군비경쟁에 의한 상호 핵억지와 공포의 균형을 통해 실현되었다. 이 책에 수록된 사진들에 나오는 남녀들은 핵에너지를 끌어내는 방법에 관한 지식을 우리가 문명이라 부르는 인간 경험의 공동 자산에 보태는 데 일조한 사람들이다.
 
 
 
 

주1. 메사(mesa)는 꼭대기는 상당히 넓고 평평하며 주위는 급사면을 이루는 고립된 지형을 가리킨다. 미국 남서부 지방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 옮긴이

주2. 19세기 미국의 아동문학가로, 1860년대 말부터 120여 편에 달하는 소년 취향의 성공담식 소설을 발표하였다. 그의 패턴은 가난한 소년이 자립과 근면의 미덕에 힘입어 성공을 거둔다는 것으로, 소년층으로부터 인기가 높았다. ―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