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생명공학은 우리의 미래를 밝혀줄 신기술로 부각되고 있다. 과학자와 생명공학 회사, 정부, 언론이 합심해 펼쳐놓는 약속들은 그야말로 휘황찬란하다. 생명공학은 해충과 질병에 저항성을 갖는 유전자변형(GM)작물을 통해 생산성의 향상을 이뤄냄으로써 전세계의 기아를 해소해 줄 것이고, 독성물질과 중금속을 분해하는 미생물이나 식물을 만들어내 환경을 정화시킬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성과로 인간을 구성하는 '유전자 청사진'이 이미 밝혀졌고, 앞으로 '질병 유전자'들이 규명되고 줄기세포 연구가 결실을 거두면 '맞춤의약'을 통한 무병장수의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여기에 관련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냄으로써 얻게 될 막대한 경제적 부가가치에 대한 얘기가 빠질 수 없다. 바야흐로 생명공학은 우리의 식탁과 환경, 건강에 더해 돈벌이까지 책임지는 구세주 같은 존재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처럼 열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생명공학의 발전이 가져올 사회적, 윤리적, 환경적 영향과 위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다. 그런 목소리는 생명공학에 대한 열광의 함성 속에 파묻혀 버리기 일쑤이며, 찬반 논쟁에서 구색맞추기식으로 끼워넣어지거나 과학기술이 발전하다 보면 한번쯤 거쳐가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로 손쉽게 치부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하물며 과학자가 그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더욱 더 어려운 일이다. 과학자는 좁은 패러다임 내에 갇혀 자신의 연구에 대해 아무런 문제점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고, 설사 느낀다 하더라도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학계에서 '왕따'가 되는 것을 각오하지 않는 한 함부로 얘기를 꺼내기 어렵다.

매완 호의 책 『나쁜 과학』은 그런 어려움을 딛고 만들어낸 노력의 소중한 결과물이다. 그녀는 분자유전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거둔 영국의 과학자이자 제3세계 네트워크 등과 함께 GMO 반대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활동가로서, 1999년부터는 사회 속의 과학 연구소(Institute of Science in Society)라는 비영리단체를 조직해 일반대중에게 비판적인 과학 인식을 제공하고 사회적 논쟁을 활성화하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원제가 Genetic Engineering - Dream or Nightmare?인 이 책은 그러한 활동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나쁜 과학』은 생명공학의 휘황찬란한 약속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를 폭로하고 그 속에 내재한 위험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것을 명시적인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이런 문제제기를 하는 방식이 지금까지 나왔던 생명공학 비판 저작들과는 조금 다르다. 매완 호는 일차적으로 한 사람의 과학자로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으며, 자신이 알고 있는 전문지식에 근거해 그녀가 유전자조작 생명공학(genetic engineering biotechnology)이라고 부르는 분야의 근본 전제를 해체하려 한다. 그녀가 보기에 유전자조작 생명공학은 '유전자결정론(genetic determinism)'이라는 과학적으로 잘못된 세계관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애초에 그것이 약속한 성과를 거둘 수도 없고, 반대로 미처 예상치 못한 위험을 우리에게 안겨줄 수도 있는 그런 존재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정의하는 '유전자결정론'이란 대체 어떤 것인가? 이는 유전자가 생명체의 가장 근본적인 본질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이 본질은 고정되어 있고 불변이며 환경의 영향으로부터 분리할 수 있다고 보며, 나아가 각 유전자의 기능은 제각각 독립적으로 정의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p. 92).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 거의 모든 생명공학 연구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농업 생명공학에서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 보자. 널리 재배되고 있는 유전자변형작물 중 하나인 Bt-옥수수는 Bt라는 토양미생물에서 살충 성분을 만들어내는 유전자를 잘라낸 후 벡터(vector)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를 옥수수의 게놈에 집어넣어 만든다. 이러한 유전공학적 조작의 근저에는 토양미생물 Bt에 '살충 유전자'라는 것이 다른 유전자들과 구분되는 형태로 존재하며, 이 유전자를 뽑아내 다른 생명체 ― 이 경우에는 옥수수 ― 의 게놈 속에 집어넣으면 그 생명체의 다른 형질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거기서도 애초에 하던 것과 꼭 같은 기능을 할 거라는 믿음이 가로놓여 있다. 즉, 이 '새로운' 옥수수는 원래의 형질에 살충 유전자가 하는 기능을 단순히 산술적으로 더한 형질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의료에 대한 생명공학의 응용 역시 유전자결정론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인간게놈프로젝트 이후 과학자들이 인간의 질병이나 특정한 사회적 행동과 관련된 유전자를 열심히 찾아해메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예컨대 유방암와 같은 특정 질병을 일으키거나 병에 걸릴 가능성을 높이는 유전자 ― '유방암 유전자' ― 가 있을 거라는 기대가 그러한 노력 밑바탕에 깔려 있으며, 심지어는 키, 지능과 같은 신체적 특징이나 동성애, 범죄성 같은 사회적 행동을 결정짓는 '롱다리 유전자' '지능 유전자' '게이 유전자' '범죄성향 유전자' 따위가 존재한다고 가정을 하기도 한다. 유전병에 걸린 환자들에게 정상 유전자를 실은 벡터를 주입해 환자를 치료하겠다는 유전자치료(gene therapy) 역시 유전자결정론의 산물이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유전자결정론이 최근의 과학적 발견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틀린 과학이자, 우리에게 예측불가능·통제불가능한 위험을 안겨줄 수 있는 '나쁜 과학'이라고 비판한다. 특히 이 책의 7장에서 그녀는 유전자결정론이 틀렸음을 보여주는 일련의 과학적 연구성과들을 다소 장황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유전자는 다른 유전자들과 별개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복잡한 네트워크 속에서 작용한다. 특정 유전자는 그 주변의 게놈 배열이나 외부 환경에 따라 정해진 기능을 하기도 안 하기도 하며, 심지어 전혀 엉뚱한 기능을 할 수도 있다. 또 유전자와 게놈은 안정된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동적인 존재이며, 유전자는 종종 원래 있던 위치를 벗어나 수평적 유전자 전이(horizontal gene transfer)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러한 새로운 인식은 저자가 유전자조작 생명공학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근거가 된다. 가령 유전자변형작물이 건강과 환경에 위험한 이유는 유전자결정론적 사고가 지닌 맹점 때문이다. 유전자들은 상호의존적 네트워크 속에서 작동하는데 Bt-옥수수의 살충 유전자처럼 작물의 게놈 속에 끼어든 외래 유전자는 이러한 네트워크를 교란해 독소나 알레르기 유발물질과 관련된 유전자를 활성화시킨다거나 하는 예기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한 이 유전자는 꽃가루를 타고 수평적 유전자 전이를 일으켜 인근의 다른 작물들을 '오염'시킬 수 있으며, Bt-독소에 내성을 가진 이른바 '슈퍼 곤충'의 창궐을 일으켜 해충 문제를 오히려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 아울러 저자는 유전자변형 과정 그 자체가 공중보건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심을 제기한다. 유전자변형에 쓰이는 벡터가 병원성 미생물이나 바이러스와 재조합되어 신종 병원균을 만들거나 벡터 속의 항생제내성 유전자가 환경 속에 퍼져 항생제내성 세균의 급증에 일조했을 거라는 문제제기가 그것이다.

'인간 유전자 사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 역시 마찬가지 근거에 입각해 있다. 하나의 유전자에 나타나는 결함이 유전병의 원인이 되는 이른바 '단일 유전자 질병'의 경우에도 환자가 실제로 발병하는지, 그리고 발병했을 때 증세가 얼마나 심각한지 하는 것은 주변 환경과 같은 여러 요소들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수많은 유전자들과 환경이 함께 작용하는 여타의 질병들에 대해 질병 유전자를 찾으려 애쓰는 것은 무익한 행위이며,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사회적 행동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거의 넌센스에 가깝다.

그렇다면 유전자결정론에 반대되는 최근의 과학적 증거들을 대다수의 생명공학자들은 전혀 모르고 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을 품어볼 수 있다. 매완 호 같은 극소수의 과학자들을 빼고 난 나머지 과학자들은 모두 바보라도 된단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해 저자는 그렇지는 않다, 라고 답한다. 오늘날 극단적인 유전자결정론을 진정으로 믿고 있는 생물학자들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최근의 연구들을 예외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그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일어날 가능성이 극히 낮다(highly unlikely)'며 애써 외면하는 강력한 경향이 과학자사회에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저자는 이런 모순적인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근본 원인을 생명공학을 둘러싼 이윤창출의 논리에서 찾고 있다. 나쁜 과학과 거대기업의 사악한 결합이 가져온 생명공학의 상업화가 최근의 신자유주의적 흐름과 결합해 과학자들을 미혹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유전자조작 생명공학이 야기하고 있는 환경과 공공보건에서의 위험에 맞서기 위해 유전자조작 제품에 대한 즉각적인 모라토리움을 선언하고 위험에 대해 포괄적인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어 마지막 13장에서 이러한 경향에 대항하는 관점과 흐름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환원주의의 극복과 시스템 전체를 고려하는 통합적 관점의 회복, 생태계 균형의 복원, 지역의 자율성에 기반한 생태친화적 경제시스템의 장려 등으로 요약해볼 수 있다. 저자는 과학에서의 환원주의적 세계관과 경제에서의 전지구화 경향 양자 모두에 대한 대안을 함께 모색하고자 한다.

저자의 핵심 논지는 생명공학의 사회적, 윤리적, 환경적 문제점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 활동가건 일반시민이건 ― 경청할 필요가 있는 중요한 주장을 담고 있다고 판단된다. 여기서 책을 읽으려는 독자에게 미리 한두 가지 주의를 당부하고 싶다. 이 책은 사실 일반인들이 술술 읽을 수 있는 쉬운 책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배경 설명과 과학적 증거들을 담은 장들(특히 7장, 9장, 12장)은 전문 학술지에 실린 리뷰 논문을 읽는 기분이 들 정도로 전문용어와 설명들이 수시로 튀어나오기 때문에 생물학 전공자가 아니라면 세부사항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이런 장들을 읽으면서 도무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너무 '좌절'하지 말았으면 한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책에 그런 세부사항들을 넣어둔 것에는 심화된 독자들을 배려하고 동료 과학자들을 설득하는 근거를 마련하고자 했던 저자 나름의 의도가 녹아 있으니 말이다. 책의 앞부분에 있는 '이 책을 읽는 법'에서 저자가 추천하는 독서순서를 따르면 전문용어의 어려움을 어느 정도 피하면서 저자의 주장을 따라갈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마땅한 우리말 역어도 없는 전문용어들을 번역하느라 역자가 매우 고생이 심했을 거라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번역에서 아쉬움이 남는 대목들이 간혹 눈에 띈다. 그리고 원저의 개정판이 나온 후 6년의 시간이 지났다는 점을 감안해, 그 사이에 변화한 저간의 사정을 설명해 주는 역자후기를 싣거나 저자에게 연락해 한국어판 서문을 받아 싣는 정도의 수고를 좀더 해주었으면 금상첨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그런 아쉬움과는 별개로, 결코 우리말로 옮기기 쉽지 않은 ― 그리고 누군가가 사명감을 갖고 달라붙지 않고서는 결코 우리말로 옮겨지지 않았을 ― 이 책을 번역해 준 데 대해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출전: <녹색평론> 2005년 9/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