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고도산업사회에서 과학기술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장황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여러 산물들은 우리에게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편익을 가져다 주는 존재로 흔히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의 '중심성'은 편익의 측면이 아닌 다른 맥락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는 바로 현대사회가 '위험이 편재(遍在)하는 사회'이며, 여기서 위험의 많은 부분은 다름아닌 과학기술 그 자체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라는 인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이 말에는 약간의 단서조항이 필요하다. 과거에 위험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술적 위험'으로 범위를 좁힌다 하더라도 그것이 현대사회에만 고유하게 존재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과연 위험이 과거에 비해 양적으로 '증가'했는지 여부는 분명치 않다 하더라도, 오늘날 기술적 위험이 도처에 널려 있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위험 중 많은 수는 과학기술 그 자체의 예측불가능성과 불확실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예측가능하고 그 속성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과거의 위험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지난 한 달 동안 컬럼비아호의 폭발사고와 복제양 돌리의 사망이라는 두 개의 중요한 사건이 불과 보름 간격을 두고 일어난 것은 우연의 소산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얼른 보기에 이 두 사건은 아무런 직접적인 연관도 없는 듯하지만, 그것이 내포한 위험의 성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탈근대적 유형'의 위험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서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컬럼비아호 폭발사고: 거대복합기술체계의 치명적 실패
 

지난 2월 1일에 컬럼비아호가 대기권 재진입 과정에서 공중폭발한 사고는 우주왕복선이나 핵발전소와 같은 거대복합기술체계가 안고 있는 위험을 우리에게 다시한번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다. 우주왕복선이 어떤 위험 속에 작동하는지 감을 잡고 싶다면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숫자'를 알아두는 것이 요긴하다. 우주왕복선은 기본적으로 매우 엄혹한 물리적 환경 속에서 작동하는 기술시스템이다. 발사시에 우주왕복선은 지구의 중력을 이기고 지구궤도에 진입하기 위해 시속 30,000km 가까운 속도에 이를 때까지 가속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 TNT 4,000톤의 폭발력(대략 히로시마 원폭의 1/4 정도)에 해당하는 연료를 불과 수십 초만에 연소시켜야 한다. 우주비행사들은 이런 엄청난 연속적 폭발 위에 실려 지구궤도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대기권 재진입시에는 우주왕복선의 속도가 마하 18까지 올라가고 대기권과의 마찰로 인해 1,200℃가 넘는 열이 발생해 이온화된 뜨거운 공기가 선체 외벽을 위협한다. 우주왕복선은 바로 이러한 물리적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이 보유한 첨단 과학기술과 조직 역량을 결집시켜 만들어낸 공학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86년의 챌린저호 사고와 이번 컬럼비아호 사고가 잘 보여 준 바와 같이, 우주왕복선은 결코 완벽한 기술이 아니며 종종 치명적인 실패를 경험하는 불완전한 기술이다(이 말은 비단 우주왕복선뿐 아니라 현존하는 유인우주비행 기술 모두에 적용되는 얘기다). 우주왕복선의 운행과정에는 그것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백 가지 이상의 우발적, 혹은 시스템적 위험요인들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험요인들은 이를 다루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인 NASA가 내리는 공학적 판단의 불확실성에 의해 더욱 증폭될 수 있다.

이번 컬럼비아호 사고를 예로 들어 보자. 사고의 유력한 원인으로 현재 거론되고 있는 것은 지난 1월 16일의 발사 직후 왼쪽 날개에 가해졌던 충격이다. 발사 80초 후 외부 연료탱크에서 떨어져 나온 단열재 조각이 날개 아래쪽의 방열 타일에 충돌했는데, 이 때 대기권 재진입시 발생하는 열을 견디는 방열 타일이 일부 손상되거나 떨어져나갔을 것으로 추측하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이 만약 맞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이는 설계상의 문제점과 우발적 요인의 결합으로 인해 치명적인 사고의 빌미가 제공되었음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요인을 결정적인 문제로 만든 것은 NASA와 발주업체인 보잉 사의 엔지니어들이 내린 공학적 판단이었다. 그들은 과거의 유사한 경험을 토대로 가능한 경우의 수를 검토했고 이에 근거해 단열재 조각의 충돌이 대기권 재진입시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렸는데, 이 판단은 결과적으로는 잘못된 것으로 드러날 공산이 커졌다. 대형참사로 이어진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들은 거대복합기술체계의 운영과정에서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다양한 요인들이 개입하며 불확실성을 내포한 판단이 내려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곧 우주왕복선(혹은 이와 유사한 거대복합기술체계)이 일정 기간 동안 큰 사고 없이 운행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일상적이고 안전한 기술이 되었다고 간주해서는 안됨을 함축한다. 우주왕복선과 같은 거대기술체계는 기술적·조직적 복잡성과 그 속에 내재한 불확실성의 요소 때문에 본질적으로 고위험 기술(high-risk technology)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기에 단지 더 많은 기술을 덧대는 것은 안전성을 '약간' 향상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 본질 자체를 변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다(그렇게 보면 우주왕복선이 113차례의 비행에서 '고작' 2번밖에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이야말로 주목할 만한 성과일지 모른다).
 

복제양 돌리의 조기사망: 미지의 영역을 파고드는 위험
 

이어 지난 2월 15일에는 복제양 돌리가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폐암을 앓고 있는 것으로 판명되어 안락사시켰다는 영국 로슬린 연구소의 발표가 있었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돌리는 1996년에 체세포 핵이식 방법을 통해 복제된 최초의 포유동물로서, 1997년 2월에 이 사실이 ≪네이처≫를 통해 알려지자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발표 후 초기에는 기존의 생물학 교과서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파격적인 주장을 놓고 돌리가 과연 진짜 복제동물인지에 관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이후 쥐, 돼지, 소, 원숭이, 고양이 등이 줄줄이 복제되는 데 성공함으로써 진위 논쟁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정작 돌리가 일으킨 더 큰 논란은 체세포 핵이식을 통한 복제가 지닌 문제점으로부터 비롯되었다. 1999년에 돌리는 수명과 연관되는 것으로 알려진 염색체 말단의 텔로미어(telomere)가 같은 연령의 양에 비해 20% 가량 짧다는 연구결과가 나왔고, 이는 돌리의 생물학적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더 많은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추측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돌리는 지난해에 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에 관절염에 걸렸고, 이번에 사망원인으로 밝혀진 폐질환 역시 늙은 양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병이라고 한다. 돌리는 6살 반으로 양의 평균 나이인 11-12세를 절반밖에 채우지 못하고 죽었는데, 이렇게 건강이 일찍 악화되어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까지 복제된 동물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복제동물은 정상적인 생식과정을 거쳐 태어난 동물에 비해 착상 시점부터 줄곧 훨씬 더 높은 실패율을 보인다는 사실이 이미 알려져 있고, 복제된 쥐를 대상으로 행해진 후속연구에서는 이와 같이 나쁜 건강이 일생 동안 지속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복제기술에 내재한 불확실성과 위험은 우리가 아직 생명현상, 특히 수정된 배아의 초기 발생과정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다시 이러한 복제기술을 인간에 대해 적용하는 것이 매우 성급하고 무책임한 것일 수 있음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현재와 같은 성공률 하에서는 설사 태어난다 해도 비참한 운명을 맞을 것이 분명한 복제인간(인간개체복제)의 경우는 두말할 것도 없고, 불치병 치료를 위한 결정적인 수단으로 널리 선전되고 있는 인간배아복제 역시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하다. 복제기술과 초기 발생과정에 내재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복제 배아가 연구자들이 생각한 대로 기능하지 않을 소지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두 사건이 주는 교훈
 

컬럼비아호 폭발과 돌리의 때이른 죽음을 두고, 그 시기가 우연히 겹쳐 나타난 두 개의 에피소드 정도로 그 의미를 애써 축소해 버릴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은 두 사건이 우리에게 남겨준 교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소치일 것이다. 그보다는 이를 20세기가 낳은 첨단과학기술인 항공우주공학과 생명공학에 내재한 불확실성과 위험을 징후적으로 드러낸 사건으로 파악하는 것이 실천적으로 더욱 의미있는 방향이다. 이는 우리에게 과학기술의 능력과 확실성에 대한 맹신을 경계하도록 경종을 울림과 동시에, 과학기술의 사회적 통제라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도록 하는 계기를 새로이 제공하고 있다고 하겠다.
 
 
 

출처: ≪연대대학원신문≫ 2003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