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의 창출?: 식물 생명공학에 관한 영국 합의회의에 대한 성찰
 

이언 반스
 
 

현대 생명공학에 대해 더 나은 '대중적 이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정치가들, 관료들, 과학자들, 기업가들, 그리고 활동가들(activists) 사이에서 일반적인 동의를 얻고 있다 (Durant, 1992). 그러나 그러한 광범한 동의 속에서, 핵심적인 쟁점들에 대해서는 생명공학의 지지자들과 활동가들 사이에 현저한 견해차이가 있다. 대중적 자문을 구하는 가장 적절한 형태는 무엇인가? '대중(the public)'은 생명공학에 관한 정책수립을 형성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까지 유의미하게 참여할 수 있고 또 참여해야 하는가? 토론될 필요가 있는 쟁점들은 어떤 것들인가? 생명공학에 대한 대중적 평가에서 어떤 '위험(risk)'의 개념이 도입되어야 하는가? (Bradbury, 1989; Nelkin, 1985, p. 21).

생명공학의 지지자들은 소비자들을 교육하고 생명공학을 이용한 생산품들의 안전성에 대한 그들의 우려를 넘어서기 위한 목적으로 상당히 제한된 정도의 자문을 구하는 것을 선호할 것이다 (Plein, 1991). 그들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의심이 많고 관련지식이 부족한(poorly-informed) 대중이 유전자 조작된 유기체(genetically modified organisms, GMOs)를 이용해 만든 새로운 소비재들을 구입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음을 알고 있다. 또한 그들은 테크니컬한 측면에 한정되는 위험성 평가(risk assessment)와 비용-편익 분석(cost-benefit analysis)의 언어들을 더 선호할 것이다. 반면 활동가들은 이 새로운 산업영역―그것이 미래에 가지게 될 엄청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결과까지를 포함해서―이 가능한 한 대중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민주적 과정에 의해서, 또 훨씬 더 광범한 '위험'의 관념에 근거해서 형성되기를 바란다 (Turner and Wynne, 1992; Science as Culture 13, 1991; Levidow and Tait, 1991).

그래서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의 대중참여 방법이 개발되었다. 그 중에는 광범한 대중적 여론조사, 대중교육 프로그램, 특정한 계획안에 대해 대중적 의견개진을 허용하는 의회청문회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한 가장 최근의 중요한 시도는 '합의 회의(consensus conference)'인데, 이는 덴마크와 네덜란드에서 개척된 것으로 정책개발 과정에 일반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한 형태이다 (Joss and Durant, 1994). 영국에서 열린 최초의 합의 회의는 1994년 11월 2일에서 4일에 걸쳐 런던의 레전트 대학(Regents College)에서 개최되었다. 식물 생명공학에 초점을 맞춘 이번의 합의 회의는 존 듀란트(John Durant)가 의장을 맡은 조정위원회(steering committee)와 과학박물관(Science Museum) 팀에 의해 조직되었고, 생명공학 및 생물학 연구 회의(Biotechnology and Biological Sciences Research Council, BBSRC)에 의해 재정적 지원을 받았다. 이전의 기구가 이름을 바꾸면서 농업 및 연구 회의(Agricultural and Research Council)를 통합하여 BBSRC가 생겨나고 그것이 합의 회의를 후원하게 된 것은 영국에서 농업 생명공학에 부여되고 있는 중요성과 우선성을 반영한 것이었다.

합의 회의의 두드러진 특징은 그것이 일반인 집단을 토의과정의 중심에 배치한다는 점이다; 적어도 원칙에 있어서는, 그들은 전문가들에 의해 이미 설정된 의제들에 단순히 답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제들을 통제할 수 있다. 회의의 준비과정은 처음에 일반 신문광고를 통해서 지원자들을 모집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이로부터 성, 인종, 연령, 종교 등등의 측면에서 가능한 한 영국 대중 일반을 대표할 수 있는 16명의 일반인 집단을 선별했다 (Miles et al, 1994). 16명의 일반인 집단은 다양한 영역에 걸친 전문가들로부터 브리핑을 받는 두 주에 걸친 주말 예비모임(workshop)을 포함해서 상당히 강도높은 준비기간을 가졌다. 그들은 주제에 대한 이러한 소개에 근거해서 최종 본회의에서 전문가들에게 던질 다음의 핵심적인 질문들을 정식화했다:
 

1. 한마디로 말해, 현대 식물 생명공학의 핵심적인 혜택은 무엇이며 그 위험은 무엇인지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무엇인가?
2. 식물 생명공학이 소비자에게 미칠 수 있는 가능한 영향에는 무엇이 있는가?
3. 식물 생명공학이 환경에 미칠 수 있는 가능한 영향에는 무엇이 있는가?
4. 당신의 견해에서 볼 때, 식물 생명공학은 어떠한 도덕적 문제를 제기하는가?
5. 식물 생명공학의 특징이 왜 특허권이나 지적 소유권의 성격을 갖는가?
6. 우리는 어떻게 식물 생명공학이 현재와 미래의 개발도상국들에 해를 끼치기보다는 혜택을 주리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7. 식물 생명공학의 효과적 규제에 대한 전망은 무엇인가?

사흘에 걸친 최종 본회의는 라디오 4 채널의 '오늘의 과학(Science Now)'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피터 에반스(Peter Evans)가 의장(혹은 '간사'역)을 맡아 많은 일반인 청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었고, 일반인 패널에게 초청된 전문가 집단과의 토론을 통해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제시할 기회를 부여하였다. 첫째 날은 선별된 전문가들이 핵심 질문들에 대한 공식적 답변을 하는 데 소요되었고, 둘째 날에는 주로 일반인 패널의 입장에서 주도된 전원참석 토론(plenary discussion)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일반인 패널이 밤새 준비한 보고서의 초안을 제출하고, 이에 응해 청중들과 언론사 기자들이 코멘트나 질문을 내놓았다.

합의 회의의 조정위원회가 설정한, 독특한 '대화의(dialogical)'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번에 열린 최초의 영국 합의 회의는 의심의 여지없는 대성공이었다. 먼저, 예비모임의 브리핑은 일반인 패널로 하여금 식물 생명공학에 대한 공개적 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 이 영역에 대한 사전 배경지식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넓은 범위에 걸친 복잡한 쟁점들에 대해 상당한 정도의 이해와 통제력을 발휘하였다. 이러한 그들의 능력은 그들이 '전문가들'을 다루는 방식이나 상대적으로 빡빡하고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 속에서도 대단히 인상적이고 명료하며 일관된 보고서를 작성해 낸 것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Durant et al, 1994).

합의 회의는 또한, 고위급의 정부관료들이나 과학자들, 그리고 다양한 핵심산업과 환경단체의 대변인들이 참여했다는 점에 있어서도 성공적이었다. 이는 아마도 그 행사의 새로움과 대중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중요성 때문이었을 터이다. 이러한 권력 상층부의(high-powered) 바쁜 전문가들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 직접 나타났을 뿐 아니라, 그들 중 대부분은 전원참석 토론에 참여하고 일반인 패널의 보고서 초안 내용을 청취하기 위해 회의의 나머지 기간 동안에도 계속 남아 있었다.

그리고 합의 회의 과정은 일반인 패널의 토의를 토론의 핵심에 배치함으로써, 생명공학과 관련된 주요 정책 전문가들끼리의 의견교환에서 흔히 발생하는 적대적 논쟁 분위기를 줄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성공적이었다. 전문가들은 잘 확립된 입장들간의 대립 속에 말려들기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명료하고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일반인 패널―식물 생명공학 분야에 대해 특정한 이해관계는 지니고 있지 않지만, 그것의 몇몇 핵심적인 쟁점들에 대해서는 상당히 잘 알고 있는―에게 전달하도록 요구받았다. 이런 방식을 통해서 합의 회의는 일반인 패널이 복잡하고 중요한 기술과학(techno-science)의 영역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해 주려는 특정한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그러나 합의 회의는 조스(Simon Joss)와 듀란트가 '사회적으로 민감한', 중요한 쟁점들이라고 말했던 폭넓은 도덕적, 사회적, 법적, 정치적 쟁점들―과학 관련 기관들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까지를 그 속에 포함하는―을 열어젖히는 것에는 덜 효과적이었다. 두 가지의 주요한 요인들이 대화에 있어서의 진정한 개방성을 가로막았다. 첫째, 토론은 압도적으로 기술관료적인(technocratic) 담론 속에 틀지워졌고, 그 결과 생명공학의 중요한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맥락에 대해 지적하기가 어려웠다. 둘째, 합의 회의 과정에 수반된 '대중성(public-ness)'과 '합의(consensus)'의 의미가 너무 모호하거나 지나치게 제한적이었다.
 

■ 기술관료적 담론의 압박
 

일반인 패널은 넓은 범위에 걸치는 경제적, 정치적, 법적, 도덕적 쟁점들에 분명히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많은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는데, 특히 생명공학의 산물이나 과정이 제 3세계의 발전에 가질 수 있는 함의, 소비자의 권리, 그리고 현재 대두하고 있는 생명공학 산업에 대해 가장 적절한 규제제도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 토론의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러나 핵심적인 질문들―그리고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답변―은 대체로 전문가들이 지닌 전문지식의 기술관료적 담론 속에 틀지워졌다.

합의 회의에서 새로운 생명공학의 산물들이 인간의 건강이나 자연환경에 어떤 잠재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도덕적 함의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춘 것은 기술 그 자체를 다분히 '암흑상자(black box)'[저자는 'black(or white) box'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여기서 'white box'라는 표현은 'black box'와 마찬가지로 그 내용물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인간에게 뭔가 유익한 것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를 담은 표현이다. 'black magic'과 'white magic'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될 듯―역주]로 취급하는 관점을 암암리에 내포하고 있었다. 기술영향평가(technology assessment)의 작업이 과학자들이 소유한 전문적이고 테크니컬한 기능(skill)에 우선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은 대체로 당연시되었다. 그 결과 '일반인의' 지식과 '전문가들의' 지식 사이에 존재하는 뚜렷한 위계적 차이가 사실상 제거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었다. 정치경제학, 공공정책의 패러다임, 위험성 평가에 대한 대안적인 접근들, 그리고 '비용-편익 분석' 등에 걸쳐 있는 중요한 '맥락'들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진정으로 '대중적인' 기술영향평가의 과정에 분명한 토대가 되어야 할, 기술관료적 접근과 상반되는 본질을 지닌 철학은 합의 회의에서 훨씬 적게 나타났다.
 

□ 위험과 위험성 평가의 개념들

일반인 패널은 새로운 유전공학 기술의 산물과 과정으로부터 인간공동체와 자연생태계에 대해 어떤 위험이 가해질 수 있는가의 문제에 특히 관심을 갖고 있었다. 회의에서는 새로 등장한 유전물질의 이종간(異種間) 전이 과정이 가져올 수 있는 가능한 결과들―새로운 병원체가 의도하지 않게 생긴다거나, 질병저항성과 제초제저항성이 다른 종으로 전이된다거나 하는―에 대해 폭넓은 토론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토론의 많은 부분은 위험성 평가가 테크니컬한 객관적 기준을 적용시키는 기술적 활동이라는 전제를 가정하고 있었다. 실제로, 합의 회의에 참가한 지도급 전문가 중 한 사람이었던 브리스톨 대학의 존 베링거(John Beringer) 교수―그는 환경방출자문위원회(Advisory Committee on Releases into the Environment, ACRE)의 의장이기도 하다―는 ACRE의 직무가 GMOs의 유해가능성에만 초점을 맞춘 제한된 것이어야 하며 더 넓은 쟁점들을 다루는 것이어서는 안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는 더 넓은 쟁점을 다루는 것은 결국 '비정상성(idiosyncracies)의 개입을 허용하여 ACRE의 객관성에 영향을 주고 그것을 침식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진술에 대해 아무도 반대 의견을 내놓지 않았는데, 이는 합의 회의 과정에서 위험과 위험성 평가를 사회적으로 구성된(social constructivist) 것으로 파악하는 대안적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위험의 개념을 순전히 기술적인 것으로 편향되게 파악하는 시각은 '위험'의 관념이 특정한 제도적 맥락에 위치한 행위자들이 지닌 가치에 필연적으로 기반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위험성 평가와 위험 커뮤니케이션(risk communication) 분야에서 그동안 비판을 받아 왔다 (Tait and Levidow, 1992). 위험성 평가에 대한 기술편향적 접근은 또한 기술을 하나의 '도구'로 파악하는 협소한 관점을 가정하고 있으며, 따라서 기술이 항상 작업장이나 공장, 거리, 가정 등에서의 '통제하기 힘든 실천들(unruly practices)' 속에 파묻혀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Wynne, 1988). '위험'에 대한 어떠한 판단도 기술이 사용되는 이러한 다양한 맥락들을 반드시 고려에 넣어야만 할 것이다 (Wynne, 1988; Bradbury, 1989).

위험성 평가의 과정에서 ACRE에 의해 수행된 것과 같은 종류의 보다 테크니컬한 작업은 그것의 맥락의 측면에서 볼 때 결코 중립적인 것이 될 수 없다. 그러한 테크니컬한 평가는 '위험'에 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들이 적절히 언급될 수 있는 도덕적, 정치적 담론들 속에 굳게 위치지어져야만 한다. 이러한 맥락은 우리가 자동차나 항생제와 같이 익숙한 기술들에 대해 생각해 보면 명백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기술들이 인간의 건강과 자연환경에 미치는 위해(hazard)는 자동차의 경우, 자동차 운전자, 교통경찰관, 자동차 제조회사, 광고 대행업체, 호텔 경영자와 음주운전자 등이 행하는 '통제하기 힘든 실천'의 맥락 바깥에서는 제대로 평가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항생제의 경우에도 그것이 가하는 위해는 제약회사의 관행, 일반 개업의, 환자들, 낙농업 농부, 수의사 등의 '통제하기 힘든 실천'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 현대 생명공학의 정치경제학

일반인 패널은 새로운 생명공학의 산물들이 갖는 경제적, 정치적 함의들에도 역시 관심을 지니고 있었고, 특히 이것이 개발도상국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토론은 활발했고 넓은 범위에 걸쳐 있었다. 녹색혁명(green revolution) 기간 동안 생산된 고수확 잡종 종자들 대신에 유전자조작된 종자를 써야만 할 필요가 진짜 있을까? 이는 제 3세계 농부들과 종자를 제공하는 회사들 사이에 새로운 형태의 종속관계를 창출하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전지구적 빈곤은 식량생산 기술의 결함 때문에 진정 발생한 것일까? 빈곤은 서구 선진국들의 시장을 위해 종종 고안되었던 단일작물 재배전략을 도입함으로써 자급농업(subsistence agriculture)이 파괴된 결과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일반인 패널은 특히 유전적 정보의 특허출원이 제 3세계―특허출원의 대상이 되는 원래의 유전물질 중 상당부분은 이곳으로부터 나온다―에 대해 갖는 함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합의 회의에서의 논쟁은 새로운 생명공학 부문의 거시적 '정치경제학'과 전지구적인 농업관련 거대기업들이 취하고 있는 전략에 대해 뚜렷한 인식을 발전시키지 못하였다. 패널 중 몇몇 성원들과 일반 청중들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가족농들과 농촌공동체들의 이해(利害)에 반하여 농업의 발전방향을 이끌어가는 다국적 거대기업들의 막강한 힘에 대해 명백한 우려를 표시했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자신들의 우려를 뒷받침하기 위해 기껏해야 몇몇 일화(逸話)와 같은 증거들을 제시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이러한 증거들은 제네카 종자회사(Zeneca Seeds)에서 나온 에드 다트(Ed Dart)나 팀 로버츠(Tim Roberts)의 정연한 반박 앞에서 손쉽게 무력화되었다. 그들은 합의 회의 참가자들에게 생명공학 회사들은 고도로 경쟁적인 자유시장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따라서 책임있는 생산품으로 소비자와 농부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야만 한다는 점을 확신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일반인 패널에 대해 효과적인 국제적 규제체제를 통해서 '책임있는' 다국적 거대기업들을 '카우보이식 물건팔기(cowboy boutiques)'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납득시킬 수 있었다.

개방된 경쟁적 자유시장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는, 생명공학에서의 혁신이 전지구적인 농업관련 거대기업들의 활동 속에 통합되어 들어가고, 거대기업들의 활동의 전망을 전지구적 규모로 확장시키는 수단을 제공하며, 산업화되지 않은 지역들(non-industrial areas)의 농업에 대해서 더욱 큰 침투력을 얻어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은폐한다. 클로펜버그(J. R. Kloppenburg)가 언급했던 바와 같이, '...생명공학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기술적 환경 속에서, 종자의 상품화가 완료됨에 따라 자본은 작물생산 과정 전체에 대한 전례없는 정도의 통제력을 확보할 수단을 갖게 되었'다 (Kloppenburg, 1988, p. 282). 새로운 정보통신기술, 첨단신소재 기술과 아울러 생명공학은 그 속에서 민족국가(nation state)와 노동자 조직의 힘이 현저하게 약화되는 진정한 전지구적 자본주의 경제의 등장을 촉진하는 핵심기술 중 하나이다 (Reich, 1991). 새로운 생명공학 산업은 농업의 상업화―일차적으로는 이윤을 위해서이며, 반드시 '세계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겠다는(feeding the world)' 이타적 목적에서 나온 것은 아닌―를 한층 더 촉진함과 동시에 분자유전학(molecular genetics)에서의 연구를 산업화하고 있다 (Krimsky, 1991; Yoxen, 1984).

새로운 식물 생명공학의 산물들은 사회적으로 필요하거나 바람직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어떠한 답도 거대기업들의 연결망과 전략이 만들어내는 더 넓은 제도적 질서에 대한 분석을 필요로 한다. 거대기업들의 행동을 확장된 대중적 조사(public scrutiny)와 책임성의 원칙에 의거해 통제하기 위해서는 거대기업-국가간 관계의 체계를 이해해야만 한다. 불행히도 소비자의 선택을 극대화하는 '자유시장'이라는 담론(합의 회의를 지배했던)은 그러한 질문들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예를 들어 참여자들은, 유전자조작된 새로운 종자를 제 3세계의 농업공동체에 도입하는 것이 그러한 공동체가 자급농업의 형태를 유지 혹은 발전시키는 능력을 침식하지 않을 것인지에 대해 따져물었다. 이에 대해 전국소비자단체연합(National Federation of Consumer Groups)에서 나온 '소비자' 전문가인 질 무어(Jill Moore)는, 제 3세계 농부들이 어떤 작물을 재배해야 하는지까지 합의 회의가 고려에 넣는다는 것은 오만하기 짝이 없는 행위라고 격렬하게 주장했다: 결국 그들 자신의 (자유시장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농부들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불균등한 권력관계, 정보의 부족, 그리고 농부들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선택의 한계 등의 문제들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다. 제 3세계의 공동체에서 유아용 분유의 판촉활동 결과로 어떤 피해들이 나타났는지를 보면 소비자의 자율성을 가정하는 것이 종종 기만적인 것일 수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공공정책의 패러다임

생명공학의 발전과 규제에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간의 적절한 관계는 어떠한 것인가에 관한 쟁점은 합의 회의에서 또다른 핵심 주제였다. 특허와 규제형태에 대해 활발한 토론이 있었고, 여기서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한 소비자 상품에 의무적으로 표식을 붙일 것인지의 문제도 논의되었다. 이 쟁점에 관한 토론에는 환경성(Department of Environment)에서 나온 몇몇 대표자들과 ACRE의 구성원들이 참여했는데, 이는 유럽연합(EU) 차원과 국제적 차원에서 작동가능한 규제체제를 협상하는 것과 관련된 복잡한 쟁점들에 관해 상당한 지식에 기반함과 동시에 유익한 논쟁이 합의 회의에서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공공부문의 연구와 민간부문의 연구가 각각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또 현재진행중인 [연구에 대한] 평가와 감시(monitoring) 작업에 민간 부문이 어느 정도까지 기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상당한 주의가 기울여졌다.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University College in London)의 폴 리처즈(Paul Richards)의 발표는 전문가들의 의견제시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들 중 하나였는데, 그는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공공부문의 연구와 민간부문의 연구가 서로 맺는 관계로부터 도출되는 문제점들을 탐구했다. 리처즈는 빈곤한 국가들에서의 생명공학의 발전은 농업다양성과 지속가능한 농업적 실천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생명공학의 혁신을 지역적 조건에 효과적으로 적용시키는 연구체제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이는 재정적으로 잘 지원되는 공공부문의 연구체제―빈곤한 국가들에 대체로 결여되어 있는―를 필요로 하며, 또한 국제적 연구센터들에 의해 수행되는 '위로 향하는(upstream)' 연구를 지역적 연구와 연결시키는 방식을 필요로 한다.

리처즈가 여기서 바람직한 형태로 제시했던 공공부문/민간부문간 관계가 도출된 것에는 보다 넓은 역사적 맥락이 존재한다: 그것은 특히 영국에서 '자유시장'의 힘의 작용을 극대화하고, 정부개입을 최소화하며, 경제적 이윤에 대한 개별적 추구가 장려되는 '기업문화(enterprise culture)'를 창출하려는 공공정책의 패러다임이 그동안 줄곧 지배적이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 경제적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는 전기통신과 같은 공공소유 하부구조(infrastructure)의 핵심 영역들을 탈규제화하고 민영화하려는 정부의 전략에 이론적 틀을 제공해 왔다. 그것은 또한 고등교육, 산업정책, 과학연구의 핵심 영역들에서 정책방향과 자금지원전략을 형성해 왔다.

대처주의적 개혁 프로그램을 옹호하는 주장들이 없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유시장 패러다임이 영국 대중의 삶에 엄청난 고난을 초래했다는 사실은 시간이 감에 따라 점차로 인지되고 있다. 15년간의 대처주의적 개혁 이후 빈부의 격차는 크게 증가했고, 모든 산업부문들이 해체되었으며, 복지국가의 핵심적 제도의 형태로 존재하던 사회생활의 필수적 하부구조의 상당수가 재원 부족으로 고통받거나, 고임금을 받는 '관리층' 때문에 상층부가 비대해지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1980년대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가져온 황폐화에 대응하여, 지금 공공정책, 사회적 목표, 시민권, 그리고 공공선(common good)의 언어를 회복하는 대안적 패러다임에 대한 활발한 탐색이 이루어지고 있다 (Mulgan, 1990). 그래서 예컨대, 사회정의위원회(Commission on Social Justice)의 최근 보고서는 사회적 목적, 호혜적인 사회적 상호의존과 책임성, 선한 사회(good society)의 언어를 강조한 바 있다 (Commission on Social Justice, 1994).

불행히도 이러한 중요한 맥락과 관련된 쟁점들은 합의 회의 기간 동안 무시되었다. 물론, 개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는 자유시장의 패러다임과 공동체의 안녕을 위한 집단적 책임을 강조하는 사회적 복지의 패러다임 사이에 명백한 긴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합의 회의를 지배했던 담론은 소비자의 선택과 주권을 강조하는 것이었으며, 따라서 정부의 역할을 소비자의 필요에 봉사하기 위해 자유시장적 상행위를 극대화시키는 것으로만 한정하였다.
 

□ 공리주의적 윤리

현대 생명공학이 던져놓은 폭넓은 도덕적 의미들에 대해서는 합의 회의에서 상대적으로 미약한(muted) 논쟁이 있었다. 그 주된 원인은 합의 회의에 출석한 두 사람의 윤리학 전문가인 리딩 대학(University of Reading)의 로저 스트로건(Roger Straughan) 박사와 케임브리지 호머튼 칼리지(Homerton College in Cambridge)의 마이클 라이스(Michael Reiss) 박사가 취한 접근방식에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다분히 협소한 공리주의적(utilitarian) 관점을 받아들여,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과 이익을 다룸에 있어 '균형잡힌' 접근을 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스트로건은 현대 식물 생명공학과 자연적 과정에 개입하는 전통적인 방식들이 연속적인 것임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그의 관점에서 보면, 식물 생명공학은 아무런 새로운 도덕적 쟁점들도 제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라이스 역시 '균형'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현대의 과학자들이 거만하게도 '신을 조롱하는(playing god)' 것이 아니냐는 우려에 답하여, 그는 다른 종교적 전통을 일단 논외로 한다면 적어도 기독교 전통에서는 인간이 자연에 개입하는 것을 용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들은 자연을 구원하는 데 참여하는 '공동창조자(co-creator)'인 것이다.

'균형'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일반인 패널이 수행한 도덕적 토론의 초점을 협소하게 만들었다. 마땅한 쟁점이 없었으므로, 논쟁의 일차적인 주제는 채식주의협회(Vegetarian Society)의 앤드류 본드(Andrew Bond)가 제기한, 동물 혹은 인간 유전자를 식물성 상품에 전이시키는 것이 가질 함의에 대한 우려에 집중되었다. 인간 유전자가 그 원천으로부터 추출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인간적'인 것으로 생각되어야 하는가라는 까다로운 문제에 대해 약간의 토론이 있은 후에, 결국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도덕적 주저(scruple)에 대한 가장 만족스런 해결책은 형질전환(trans-genic) 상품에 대해 분명하게 표식을 달아 유태인들, 이슬람교도들, 채식주의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소비할 유전물질의 원천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데 일반적인 동의가 이루어졌다.

이런 협소한 쟁점을 넘어서는 것으로, 라이스 박사는 많은 사람들이 유전공학에 대해 자신들이 명확히 표현할 수 없는 도덕적 우려들을 갖고 있을 수 있다고 진술했다. 이 말은 일반인 패널의 공감을 자아내었다. 최종보고서에서 그들은 약간은 수수께끼같은 다음과 같은 진술을 집어넣었다: '공동체의 특정 부문들은 직관적으로 식물 생명공학이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느낄 것이다. 이들이 과학 공동체의 철학과 갈등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진술은 일반인 패널이 전문가들의 협소한 공리주의적 접근에 만족하지 않았으며, 그것이 현대 유전공학에 대한 자신들의 도덕적 우려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다는 데 대해서도 불만족스러워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공동체들에 광범하게 퍼져 있는 도덕적 동요의 많은 부분은 단지 인간의 건강이나 환경에 잠재적인 위험이 있을 수 있다거나 권력과 부의 불평등한 배분이 일어날 수 있다는 문제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한 동요는 현대 기술과학의 바탕에 깔려 있는 철학―자연세계를 점차로 인간중심적이고 도구적인 방식으로 개념화시킴과 동시에, 그것을 복잡성과 아름다움이 지배하는 환경으로부터 인간의 이익을 위해 통제되고 이용되어야 하는 상품으로 바꾸어 놓으려는―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자연을 상품화하려는 이러한 관점이 생의학 기술(biomedical technologies)의 급속한 발전을 통해 인간의 생명에 대해서까지 확장될지도 모른다는 깊은 우려가 존재한다. 라이스 박사에 의해 암시된 직관적인 도덕적 우려는 안전성과 접근가능성에 대한 보다 '도구적인' 우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산업화된 과학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문제에 관한 것이기도 했다.

현대 기술과학에 내재한 도구주의와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은 오늘날 많은 생태철학자(eco-philosopher)들과 근본생태주의자(deep ecologist)들에 의해서 강하게 제기되어 왔다. 비록 합의 회의에서는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러한 관점들은 점성술이나 뉴 에이지 종교적 신앙(New Age religious belief), 대안의료(alternative medicine) 등이 인기를 누리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공동체 내에서 폭넓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일반인 패널 중 한 사람이었던 조 베일리(Joe Bailey)에게 있어서는, 합의 회의에 출석한 전문가들이나 일반청중들 중 원칙적으로 유전공학에 반대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 다소 당혹스러운 일이었을 터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구성적(constitutive)' 우려들이 대중문화 속에서 표출되는 강력한 방식들 중 하나는 디스토피아적(dystopian) 주제를 강하게 지니고 있는 주류 SF영화를 통해서이다. 많은 SF영화들이 <에일리언 Alien>이나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자연을 도구화하고 상품화하는 접근이 가져오는 부정적인 귀결들을 명시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이는 메리 셸리(Mary Shelley)의 소설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의 주제를 변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Barns, 1990). 조지 레빈(George Levine)이 지적한 바와 같이, '프랑켄슈타인의 신화가 현재에까지 계속 의미있는 것'은 그것이 '프로메테우스적 과학(Promethean science)'의 위험을 강력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형태로 재현해 내었기 때문이다 (Levine and Knopflmacher, 1979). 케네스 브래너(Kenneth Branagh)가 감독한 프랑켄슈타인의 최신 영화 버전이 합의 회의 이틀째 저녁에 런던에서 시사회를 가졌다는 것은 다소 아이러니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생명공학의 발전을 널리 알림에 있어 언론이 해야 하는 역할에 대해 토론하면서, 합의 회의의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은 프랑켄슈타인의 은유가 환경 속에서 '통제불능상태에 빠진' GMOs의 잠재적 위험을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데 종종 이용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프랑켄슈타인의 신화가 남긴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메시지는 우리가 미친 듯이 날뛰는 괴물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통제하고 인간의 목적에 맞게 그것을 개조하려는 욕망이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인간성 그 자체를 침식할지도 모른다는 것에 있다.
 

■ 누구의 대중이며, 누구의 합의인가?
 

기술영향평가의 과정 속에서 '대중(the public)'의 대표성을 확보하는 것은 분명히 합의 회의의 중심된 목표였다. 조정위원회는 런던대학 경제학부(London School of Economics)의 사회심리학 선임강사인 조지 개스켈(George Gaskell) 박사의 조력을 얻어, 영국의 '일반대중(general public)'을 광범하게 대표하는 패널을 구성하기 위해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Verrall, 1994). 합의 회의 도중 간간히, 몇몇 발언자들―그들이 합의 회의를 조직한 이들은 아니었지만―은 일반인 패널이 더 넓은 영국 대중의 편에 서서 발언하고 있는 것이며 최종보고서는 광범한 대중적 합의의 권위를 지닌다는 점을 암시했다.
 

□ 상호 경쟁하는 '대중들(publics)'

합의 회의 과정에서 가정된 '대중'의 관념은 중요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 용어는 비전문가 혹은 일반인들을 지칭하기 위해 '잔여적(residual)'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조스와 듀란트가 합의 회의에 대한 리뷰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중"이라는 단어는 과학자나 기술전문가가 아니라 시민이나 "일반인(lay people)"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일반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Joss and Durant, 1994). 이 용어는 또한, '일반대중'의 균질성과 단일성을 가정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었고, 따라서 점점 더 다원화, 다문화화되어 가는 영국 사회에서 '대중들(publics)'의 점증하는 다양성을 무시하였다 (Young, 1990). '대중'의 단일성이 자명한 것이라는 생각은 사회-문화적 일관성(coherence)을 실제로 반영한 것이었다기보다는, 현 시기 대중생활의 '중심'에 위치한 정치, 관료, 언론엘리트들의 관점을 반영한 것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일반대중'은 생명공학과 같은 쟁점에 있어 어떤 견해를 공유함으로써 통합된 것이 아니라, 중앙집중화되고 단일화된 권력의 연결망과의 관계에 의해서 통합된 것이었다. 현대 영국 사회의 이러한 다양한 대중들의 맥락에서 볼 때, 새로운 생명공학은 바람직한 것인가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환경운동가들, 페미니스트들, 종파(宗派)들, 그리고 다른 공동체들 사이에 대단히 다른 견해들이 존재할 것이다. 대중적 자문을 구하는 과정은 '대중들'의 이러한 다양성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지배엘리트가 가진 이미지에 맞추어 '대중'을 자의적으로 구성하는 꼴이 되고 만다.

그러나 '대중성(public-ness)'이라는 것을 단순히 지배엘리트들의 편의에 맞게 지어낸 허구 같은 것으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보다 근본적인 수준에서, '대중성'은 결정적인 도덕적, 정치적 원칙이 된다. 한편으로 그것은, 한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성원들과 이해관계들 사이에서 공통의 목표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신념을 나타낸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개방적인 의사결정과정을 유지하고 권력을 가진 이들의 책임을 강조하는 원칙을 나타낸다 (Mouffe, 1988). 따라서 '대중성'은 단순히 비전문가인 사람들의 집합체를 지칭하기보다는, 제도적인 정치적 담론의 열린 대화의 공간이 갖는 질(quality)을 지칭하는 것이다 (Ranson and Stewart, 1989). 우리가 시민으로서 갖는 특수한 대중적 정체성, 권리, 책임들은 그러한 정체(政體)와의 관련 하에서 정의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식물 생명공학에 대한 합의 회의의 유효성은 현재진행중인 산업의 발전이 개방된 대중적 공간의 제도적이고 광범한 조건들 속에 틀지워지고 있는지의 여부를 두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생명공학에 사전 배경지식이 없거나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않은) 일반인 집단의 참여가 그러한 조건을 성취하는 가장 좋은, 혹은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중요한 이해관계를 지닌 대중들(vitally interested publics)'―예컨대, 환경운동가들, 가족농 조직들, 제 3세계 원조기구들 등―과의 진정으로 쌍방적인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보다 폭넓은 문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집단들은 현재 정책을 결정하는 중앙의 정책공동체나 네트워크로부터 배제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이야말로 생명공학 연구, 개발, 혁신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맥락들에 대해 보다 잘 알고 있고, 중앙엘리트의 그것과는 다른 도덕적 관점과 실질적 지식을 정책관련 논쟁에 제공할 수 있는 집단들이다 (Wynne, 1991). 이러한 이해관계를 지닌 대중들이야말로 생명공학에 대해 논하는, 보다 개방적이고 충분한 지식에 근거한 대중적 담론을 창출하도록 인식론적 근거와 정치적 압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며, 그 결과 합의 회의가 효과적인 기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 합의인가, 종결인가?

합의 회의를 이끌어 갔던 '합의'의 관념 역시 상당한 난점들을 제기했다. 해결하기 어려운 많은 문제들이 정치생활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현재의 맥락에서, '합의 회의'라는 용어는 논쟁의 핵심적인 참여자들 사이에서 기술발전에 대한 의견불일치를 극복하는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Caplan and Engelhardt, 1987). 이번의 경우에는 상당히 소박한(modest) '합의'가 추구되었다: 그것은 일반인 패널 그 자체의 합의였다. 그러나 때때로 이 과정이 생명공학에 대한 보다 폭넓은 합의를 성취해 내는 방식이며, 기업체들이 더 자유롭고 더 신속하게 개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논쟁의] '종결'이라는 암시가 있었다. 이것은 합의 회의를 소개하는 논문의 제목인 "생명공학에 대한 대중적 합의를 향하여"에서 명백히 암시되었다 (Miles et al, 1994). 이는 일반인 패널이 마치 생명공학의 지지자들과 비판자들 사이의 의견불일치가 처리되고 해결될 수 있는 '여과기(filter)'라도 되는 것 같은 암시를 남기고 있다.
 

■ 무엇을 위한 합의인가?
 

합의 회의는 관료적 과정 바깥에 위치한 일반 시민들이 복잡한 기술적 쟁점들에 대한 대중적 논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해주는 귀중한 부가적 수단을 제시해 준다. 그것은 정책수립가들, 산업체의 대변자들, 전문가들을 한 축으로, 그리고 이해관계를 지닌 다양한 대중들을 다른 한 축으로 하는 구도 속에서 이들간에 진정으로 쌍방적인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해 내는 잠재성을 갖고 있다. '합의 회의'의 과정이 이러한 잠재성을 실현하는가 못하는가는 그것이 어떤 실제상의 전략적 목표을 위해 봉사하는가에 상당부분 달려 있다. 터너(G. Turner)와 윈(Brian Wynne)이 언급한 바와 같이, 합의 회의와 같은 형태의 대중적 논쟁에 물어야만 할 핵심적인 질문은 '그것을 개최하는 목표가 생명공학의 무조건적인 수용인지, 조건부 수용인지, 그렇지 않으면 경제적, 기술적, 사회적인 위험과 이익을 지금부터 앞으로도 계속해서 공동으로 관리해 나가자는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Turner and Wynne, 1992).

대중적 토의의 한 형태로서 합의 회의가 갖는 가치는 또한, 기존의 정책결정 기관들이 얼마나 민주적 개방성, 책임성, 시민참여의 문화―대화와 자문에 있어서의 혁신적인 실험에 자양분을 제공할 수 있는―에 의해 특징지어질 수 있는가에도 달려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합의 회의의 과정은 특정한 이해관계가 없는 일반 시민들뿐만 아니라 생명공학에 지속적인(그리고 종종 비판적인)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는 다양한 시민조직들을 포괄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합의 회의는, 기술에 대한 평가가 협소한 도구적 견지에서 수행될 수 없으며 반드시 그 속에 포함된 사회적, 정치적, 도덕-문화적 쟁점들을 열어젖혀야 함을 뚜렷하게 인지하는, 보다 맥락의존적인 위험성 평가의 담론을 필요로 한다. 보다 치밀하고 더욱 비판적인 형태의 대중적 대화가 곧 공공선을 위한 기술혁신을 가로막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보다 강인한 대중적 신뢰의 근거가 발전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며, 그 결과 기술의 궤적과 그것이 내포한 위험을 보다 적극적으로, 심지어는 합의에 근거해서 수용하도록 해줄 것이다 (Turner and Wynne,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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