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종교, 과학과 비과학의 흐릿한 경계
― <콘택트>
 
 
 

지구 바깥의 외계에도 생명체, 그 중에서도 '지적 능력을 갖춘' 생명체가 존재할 거라는 믿음은 이미 수 세기 전부터 존재해 왔고, 이는 지난 백여 년 동안 SF소설과 영화들에 숱한 영감을 제공했던 생각이었다. 그러나 외계 생명체에 대한 매혹이 '과학 연구'의 영역으로 진입한 것은 불과 수십 년 전의 일이었다. 그것을 가능케 한 배경에는 19세기 말 전자기파를 실험실에서 만들고 검출하는 데 성공을 거두고, 여기에 메시지를 실을 수 있는 방법이 고안되어 전파를 이용한 무선전신이 20세기 초에 상용화되었으며, 우주공간에서 들어오는 전파를 이용해 천체를 연구하는 전파천문학이 1930년대부터 자리를 잡는 등 다양한 과학적·기술적 발전이 있었다. 이러한 기술적 수단의 발전에 힘입어 1960년대부터는 일군의 과학자들이 우주공간으로부터 들어오는 전파를 분석해 외계 생명체가 보낸 메시지를 찾으려 시도하는 지적외계생명체탐사(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SETI) 계획에 착수했다.(주1) <콘택트>는 바로 이 SETI 계획을 주된 소재로 삼고 있는 영화이다.

<콘택트>는 SETI 계획의 초기 개척자이자 열렬한 지지자 중 한 사람이었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동명 소설(주2)을 영화화한 것이다. 극의 중심에는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읜 후 외계에 지적 생명체가 있다는 신념("이 넓은 우주에 우리만 있다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일 것")을 갖고 이를 찾는 것을 일생의 과업으로 여기게 된 여성 천문학자 앨리 애로웨이(조디 포스터)가 있다. 그녀는 다른 과학자들의 냉소와 자금원의 압박 속에서 거대한 전파망원경으로 외계 생명체 탐사 작업을 계속하다가 베가성(직녀성)에서 온 메시지를 발견하게 되고 그 속에 우주선의 설계도가 숨겨져 있음을 알아낸다. 결국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우주선을 타고 베가성으로 가서 아버지의 모습을 한 외계인을 만나고 돌아오지만, 청문회에 출석한 사람들은 그녀의 설명을 믿지 않는다.

<콘택트>에서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대립항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가장 쉽게 눈에 띄는 것은 과학과 종교의 관계이다. 흔히 과학은 객관적이고 반복가능한 실험적 증거와 합리적 추론에 입각한 보편적인 것이고, 종교는 직관적이고 영적이며 개인의 신비스런 체험에 근거하는 것이라는 선입견이 강하다. 이러한 대립구도는 영화 전반부에 나오는 애로웨이와 그녀의 연인이자 신학자인 팔머 조스(매튜 매커너히)의 논쟁에서도 줄곧 드러난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콘택트>는 영화 후반부의 청문회 장면에서 이른바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 논증을 뒤집어 보여줌으로써 그와 같은 이분법적 대립구도가 지나치게 단순한 것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과학자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신비스런 체험을 자기 정당화의 근거로 주장할 수 있으며, 어떻게 보면 과학과 종교는 모두 '경이로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같은 활동의 다른 측면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과학과 종교가 그 본성상 대립적이며, 역사적으로 대립과 투쟁의 관계를 맺어 왔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좋은 토론거리를 제공한다.(주3)

그러나 <콘택트>에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과학-종교 관계보다 더 흥미로운 논점이 숨어 있다. 그것은 SETI 계획 그 자체의 과학적 위상과 관련이 있다. 영화의 전반부에서 우리는 SETI 계획의 '과학성'을 놓고 애로웨이와 미국과학재단(NSF) 이사장인 데이빗 드럼린(톰 스케릿)이 갈등을 빚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두말할 것 없이 애로웨이는 SETI 계획이 매우 혁신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순수'연구라며 옹호하는 입장이다. 반면 좀더 실제적인 경향의 드럼린은 SETI처럼 헛된 망상을 쫓는 연구에 납세자의 세금을 낭비할 수 없으며, 그런 연구는 과학자로서의 경력에도 전혀 보탬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영화는 애로웨이의 편을 들어 SETI가 가치있는 과학 연구라는 입장을 옹호하면서, 이에 동조하지 않는 드럼린을 상상력이 결핍되어 있고 심지어 기회주의적이기까지 한 인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이는 영화 밖 세상으로 돌아와 조금 생각해 보아야 하는 문제다. 물론 SETI 계획의 주창자들이 초기부터 UFO 신봉자들과 같이 흔히 '사이비과학'으로 간주되는 집단과 거리를 두기 위해 노력했고, 방법론에 있어서도 외계로부터 수신되는 모든 전파 신호를 일차적으로는 자연적인 것이라고 보는 철저한 회의적 태도를 견지해 온 것은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SETI는 분명 '과학'으로서의 외양을 갖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애로웨이와 드럼린의 대립구도에서 일방적으로 전자의 편을 드는 영화의 설정은 SETI 계획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칼 세이건의 입장을 상당부분 반영하고 있는 것인만큼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곤란한 일이다.

사실 SETI 계획은 그것이 제기되었던 초기부터 끊임없이 논쟁을 야기해 왔으며, 수십 년에 걸친 탐사가 잇따라 실패로 돌아가면서 논쟁은 더욱 커져 왔다. SETI 지지자들이 공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드레이크 방정식에 대한 논란이 그러한 한 가지 예이다(아래 상자글 참조).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드레이크 방정식은 지능을 갖고 전파를 통한 의사소통을 시도하는 외계문명의 수를 계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이 방정식에 대한 평가는 SETI를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 극단적으로 갈리는데, 호의적인 입장에서는 이것이 앞으로 더욱 정교해질 가능성을 내포한 훌륭한 발견법적 지침(heuristic guide)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비판적인 입장에서는 이것이 현재의 불확실한 이론들 위에서 추측에 추측을 거듭해 사실상 의미를 상실한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본다.(주4) 이러한 논쟁은 과연 SETI를 과학의 영역 안에 두어야 하는지, 또 SETI가 많은 예산을 들여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연구인지 하는 문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SETI의 과학성 여부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우리는 'SETI가 과연 과학인가, 아니면 SF인가' 하는 질문에 단정적인 판단을 내리기에 앞서 과학-비과학의 경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여기서 과학과 비과학을 가르는 어떤 '본질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 둘을 나누는 경계는 끊임없는 경계 설정 작업(boundary-work)이 우연적·일시적으로 고착되어 나타난 결과에 불과하다는 사회학자 토머스 기어린의 지적을 떠올려 보면 좋을 듯싶다.(주5) 기어린은 그러한 경계 설정 작업이 동시대의 사회적·문화적·제도적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따라서 과학-비과학의 경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연하게 변화한다고 보았다. 결국 <콘택트>는 애로웨이와 드럼린의 대립구도를 통해 과학-비과학의 경계가 흔히 생각되는 것처럼 분명치 않다는, 애초에 의도하지 않은 결론을 끌어내고 있는 셈이다.
 
 

endnote...
 

1. SETI 계획의 간략한 역사는 David Lamb, "Communication with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SETI and Scientific Methodology," D. Ginev and R. S. Cohen (eds.), Issues and Images in the Philosophy of Science (Dordrecht: Kluwer, 1997), pp. 223-251의 1절을 보라.

2. 원작 소설은 원래 영화 시나리오로 구상되었던 것을 발전시킨 작품으로 1985년에 출간되었다. 이 책은 최근 우리말로도 번역되었다. 칼 세이건, 이상원 옮김, 『콘택트』(사이언스북스, 2001)

3. 문선영, 「SF영화 새롭게 사고하기 ― <콘택트>, 그 복잡한 개념탐험」, ≪문화과학≫ 16호(1998년 겨울), 248-260.

4. 드레이크 방정식에 관한 논란은 Lamb, op. cit. 참조. 이 방정식에 호의적인 입장은 박석재, 「외계 생명체」, 이인식 엮음, 『현대과학의 쟁점』(김영사, 2001), pp. 61-74를, 비판적인 입장은 A. K. 듀드니, 이상빈 옮김, 『위대한 과학의 멍청한 과학자』(일공일공일, 2000), pp. 94-116을 각각 보기 바란다.

5. Thomas Gieryn, "Boundaries of Science," S. Jasanoff et al. (eds.), Handbook of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London: Sage, 1995), pp. 393-443.
 
 
 
 

출전: 『시민과학』 50호 (200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