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하는 '여성적 방식'은 과연 존재하는가?
― <정글 속의 고릴라>
 
 

<정글 속의 고릴라>는 여성 영장류학자 다이앤 포시의 일대기를 다룬 일종의 전기영화이다. 포시는 1985년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19년 동안 아프리카 르완다의 비룽가 화산 분화구 인근에서 마운틴고릴라를 연구하면서 이를 멸종 위기에서 보호하기 위한 정력적인 활동을 전개했던 인물이다. 그녀는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가 발굴해 영장류에 대한 독창적인 관찰 성과로 전세계적 명성을 얻은 세 명의 여성(일명 "Trimates") 중 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포시 외의 다른 두 사람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침팬지를 연구하고 있는 제인 구달과 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 열대 우림에서 오랑우탄을 연구하고 있는 비루테 갈디카스이다< /FONT> .(주1)

비서학교만 나온 후 대학 졸업장도 없이 아프리카로 건너갔던 구달도 그랬지만, 포시 역시 정통적인 과학도로서의 길을 걸었던 인물은 아니었다. 그녀는 원래 수의사가 되기를 희망했지만 화학과 물리에서 낙제를 하는 바람에 물리치료사로 진로를 바꾸었고, 대학을 졸업한 후 리키의 소개로 아프리카로 건너가기 전까지 10여년 동안을 장애아동을 돌보는 물리치료사로 일했다. 1967년 초에 자리잡은 콩고에서 6개월도 안돼 내전으로 쫓겨난 그녀는 이웃한 르완다로 자리를 옮겨 카리소케 마운틴고릴라 연구센터를 설립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고, 고릴라의 삶에 대해 이전까지 알려져 있지 않았던 여러 새로운 사실들을 관찰했다. 예를 들어 그녀는 암컷 고릴라가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이동한다는 점, 수컷 고릴라가 교미시 암컷을 흥분시키기 위해 새끼를 죽이기도 한다는 점, 고릴라는 영양분 재활용을 위해 자신의 똥을 다시 주워먹기도 한다는 점, 코의 생김새를 보고 고릴라 개체를 서로 구분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새로 알아내었다. 그녀의 이러한 관찰 결과는 그보다 10년 정도 앞서 마운틴고릴라 집단을 관찰했던 조지 샬러의 연구와 함께 마운틴고릴라 연구라는 분야의 기틀을 정립했다.(주2)

그러나 그녀의 연구가 이전과 진정으로 달랐던 점은 새로 발견한 사실들보다는 그녀가 취한 연구방법론에 있었다. 그녀는 연구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찰하거나 실험실에서 특정한 조건을 만들어 '실험'을 한 후 그 결과를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영장류학의 주류 방법론을 무시하고 고릴라 집단과 "함께 살았"고 그들과 서로 '교감(empathy)'을 나누었다. 그녀는 영장류 집단을 총합적으로 다루는 대신 그들의 개체성(individuality)을 중시했고, 각각의 개체들에 이름을 붙여 준 후 이들의 생활사가 집단에 미치는 영향을 줄곧 지켜보는 식으로 연구를 진행했다.(주3) 이러한 그녀의 방법론은 구달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1970년대 초반에 영장류 연구에 합류한 갈디카스 역시 이러한 방법론을 공유했다.

하지만 연구대상에 감정적으로 몰입하는 포시의 방법론에는 위험도 따랐다. 그녀는 자신이 '디지트'라는 이름을 붙여 준 수컷 고릴라와 특히 큰 친밀감을 느꼈는데, 이러한 친밀감과 그녀의 불같은 성격 탓에 그녀는 생계 확보를 위해 야생동물을 밀렵하는 지역 부족들과 적대적 관계가 되었고 1977년에 디지트가 밀렵꾼들에 의해 잔인하게 죽음을 당한 이후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그녀는 비룽가 지역에서 자신이 곧 법인 양 행동했으며, 밀렵꾼들을 구타하고 그들의 소유물에 불을 지르는 등 사적인 응징을 가했다. 심지어 그녀는 마녀 가면을 쓰고 분장을 한 후 마법을 쓰는 흉내를 내어 밀렵꾼들을 겁주는 고도의 심리전술을 쓰기까지 했다. 말하자면 그녀는 '아프리카식 전술'로 고릴라 밀렵에 맞서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그녀는 1979년 르완다 정부로부터 출국 명령을 받고 3년간 그곳을 떠나 있기도 했다(영화의 밑그림을 제공한 포시의 책 『안개 속의 고릴라』는 그녀가 르완다를 떠나 미국에 체류했던 시기에 집필되었다). 그러나 과학계로부터 격렬한 비난을 초래했던 이러한 전술 ― 그녀 자신이 "적극적 자연보호"라고 불렀던 ― 은 결국 그녀의 목숨을 앗아가고 말았다. 1983년에 카리소케로 돌아온 그녀는 2년 후 자신의 막사 안에서 잔혹하게 살해당했고, 그녀의 죽음은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주4)

<정글 속의고릴라>를 보면서 고민해 봄직한 문제 중 하나는 여성과학자와 과학을 하는 '여성적 방식(female style)'을 둘러싼 논란이다. 1960년대 초 과학계에서의 성평등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이래 여성과학교육과 여성과학자를 지원하기 위한 많은 프로그램들이 새로 생겨났고, 그 결과 많은 수의 여성과학자들이 새로 과학계에 진입했다. 이들은 상당수의 과학 분야들에서 남성 중심인 기존 과학계의 흐름에 변화를 가져왔는데, 그러한 변화가 가장 극적으로 나타났던 사례가 바로 포시가 속했던 영장류학이었다. 영장류학에서는 1970년대부터 구달, 포시, 갈디카스 등을 전범(典範)으로 삼아 여성들이 대거 진입했고, 오늘날에는 여성들이 기성 학자의 절반 이상, 새로 배출되는 박사학위 수여자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막대한 비중을 행사하고 있다. 여성 영장류학자들의 참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영장류 사회를 이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는데, 영장류 사회에서 그간 사실상 무시되었던 암컷의 능동적 역할이 새롭게 조명된 것이 그 예이다.(주5)

그런데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이유가 과학을 하는 '여성적 방식' ― 예컨대 연구대상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식의 ― 이 따로 존재하기 때문인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날카롭게 의견이 갈린다. 대다수의 남성 학자들을 포함한 상당수 영장류학자들이 "진정한 지식, 진정한 과학에는 성별(gender)이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데 반해, 다른 많은 영장류학자들은 성별이 연구대상을 바라보는 눈, 대상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주6) 두 입장 가운데 어느 쪽이 옳은지는 아직 결론이 내려지지 못했지만, 영장류학이 여성에게 개방적으로 바뀌면서 그 내용이 더욱 풍부해지고 이해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는 과학이 기존의 남성 중심에서 벗어나 여성을 비롯한 소수집단에 더욱 개방적이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해 주고 있다.
 
 
 

endnote...
 

1. 세 여성 영장류학자에 관한 설명으로는 Virginia Morell, "Called 'Trimates,' Three Bold Women Shaped Their Field," Science 260(16 April 1993), 420-425; 사이 몽고메리, 김홍옥 옮김, 『유인원과의 산책』(르네상스, 개정2판, 2003)을 참조하라.

2. 몽고메리, 위의 책.

3. Morell, 앞의 글.

4. 영화는 여기서 설명한 다이앤 포시(시고니 위버)의 삶의 궤적을 대체로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사실과는 다르게 각색된 부분도 있다. 가장 두드러진 점은 영화에서 포시의 가이드이자 중요한 조력자로 등장하는 수색자 셈바가리(존 오미라 밀루위)에 해당하는 인물을 포시의 책 『안개 속의 고릴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Brian E. Noble, "Politics, Gender, and Worldly Primatology: The Goodall-Fossey Nexus," in Shirley Strum and Linda Fedigan (eds.), Primate Encounters: Models of Science, Gender, and Society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0), pp. 436-462.

5. 여성의 참여가 영장류학에 미친 영향에 관해서는 Londa Schiebinger, Has Feminism Changed Science?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1999), pp. 127-136; Linda Marie Fedigan, "The Paradox of Feminist Primatology: The Goddess's Discipline?" in Angela Creager, Elizabeth Lunbeck, & Londa Schiebinger (eds.), Feminism in Twentieth-Century Science, Technology, and Medicine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1), pp. 46-72; Virginia Morell, "Seeing Nature through the Lens of Gender," Science 260(16 April 1993), 428-429 등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6. Morell, 주 5의 글.
 
 
 
 

출전: 『시민과학』 51호 (2004.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