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마초주의, 유인 우주비행의 미혹(迷惑)
― <필사의 도전>
 
 
 

1947년 10월 14일, 인간은 음속의 장벽을 돌파했다. 척 예거라는 젊은 시험 조종사(test pilot)가 X-1이라는 시험용 로켓 비행기를 몰고 마하 1.05의 속도를 기록한 것이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았던 이 사건을 계기로 최고를 추구하는 젊은 시험 비행사들 사이에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캘리포니아의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에드워드 공군기지는 그러한 시험 조종사들이 모여든 '꿈의 무대'인 동시에 그들의 '무덤'이기도 했다.

1957년 10월 4일, 소련은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닉 1호를 쏘아올렸다. 이는 사람 몸무게 정도 나가는 쇳덩어리가 삑삑거리는 신호를 내며 지구 주위를 새로 돌게 된 '조그마한' 사건에 불과했지만, 냉전 초기의 미국에 군사, 과학, 심리적인 측면에서 엄청난 파장을 미쳤다. 미국 상공을 통과하는 인공위성은 우주공간으로부터의 핵공격이 가능함을 시사했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기 위한 우주공간의 '선점'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었고, 소련에 '뒤떨어진' 과학 연구와 교육을 개혁하기 위한 대대적인 지원 방안이 실행에 옮겨졌다. 미국은 해군이 개발한 뱅가드 로켓의 참담한 실패를 겪은 후 1958년 1월 31일에 익스플로러 1호를 쏘아올림으로써 체면을 세웠고, 같은 해 10월에는 유인 우주비행 계획인 머큐리 계획을 발표했다.(주1)

1970년대 '뉴 저널리즘(New Journalism)'의 기수였던 톰 울프의 동명 논픽션을 영화화한 <필사의 도전>은 얼핏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두 사건을 하나의 내러티브 속에 엮고 있다.(주2) 영화는 음속을 돌파하려는 시험 조종사들의 목숨을 건 시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1947년에 음속 장벽을 돌파한 척 예거는 경쟁자들의 도전을 뿌리치고 1953년 12월 마하 2.44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운다. 여기서 장면은 1957년의 스푸트닉 충격으로 이어지고, 이듬해 발표된 머큐리 계획에 따라 까다로운 테스트를 거친 끝에 1959년 4월 이 계획을 위한 일곱 명의 '우주 비행사(astronaut)'들이 선정, 발표된다. 그러나 최초의 우주 비행사가 되려는 그들의 꿈은 1961년 4월 12일,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처음으로 지구 궤도에 오름으로써 무산되고 만다. 소련을 따라잡으려는 미국의 필사적인 노력은 1961년부터 1963년 사이에 일곱 명의 우주 비행사들을 차례로 우주 공간에 올려놓음으로써 결실을 거둔다. 머큐리 계획의 클라이맥스는 1962년 2월 20일 존 글렌이 프렌드십 7호를 타고 미국 최초로 지구 궤도비행에 성공했을 때 찾아왔다. 글렌은 미국 전체의 영웅이 되고 전무후무한 열광적 환영을 받는다. 한편 우주 비행사에 지원하지 않았던 예거는 이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에드워드 공군기지에서 신형기 NF-104를 타고 최고 고도 비행 기록에 도전하다 실패한다. 1963년 5월에 있었던 고든 쿠퍼의 마지막 머큐리 비행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필사의 도전>은 초기 우주개발 계획의 배경인 동시에 추진력이었던 냉전적 맥락을 슬쩍 드러내 보인다. 과학소설(SF)의 황금기였던 1950년대 미국에서 '우주여행'이라는 단어는 대단히 낭만적이면서도 으스스한 느낌을 주었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 핵미사일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스푸트닉 그 자체가 제기한 당장의 군사적 위협은 거의 없었지만, 그것을 우주공간에 쏘아올린 추진체(=미사일)는 핵탄두를 미국 본토로 곧장 겨냥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기도 했다. 언론은 이러한 위협을 크게 과장해 보도했고, 당시 상원 청문회에서 나왔던 표현을 빌어 이를 "기술적 차원의 진주만(technological Pearl Harbor)"이라고 불렀다. 이와 아울러 위협으로 작용했던 것은 제3세계에 대한 소련의 선전 공세였다. 소련은 우주기술에서 뒤떨어진 미국이 신뢰할 만한 우방이 되지 못한다고 선전하면서 냉전기의 세력 재편을 시도하고 있었다. 따라서 우주개발에서 소련을 따라잡는 것은 '국가 안보'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국제사회에서 짓밟힌 국가적 자존심을 되찾고 이른바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극히 긴요한 과제였다.(주3)

바로 이 때문에, 초기 우주개발 프로그램은 미래를 내다본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의 산물이 될 수 없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선전 활동에서의 실패를 만회하고 우주공간을 어떻게든 선점하기 위한 정치적 미봉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주4) 이러한 성격은 미국 최초의 유인우주 프로그램인 머큐리 계획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폰 브라운을 필두로 한 NASA의 개발팀은 '캡슐' 내지 '포드(pod)'에 '표본(specimen)'을 실어 우주공간에 먼저 올려보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고, 그 '표본'이 무엇이며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의 문제는 뒷전이었다(실제로 그들은 사람에 앞서 '햄'이라는 이름의 침팬지를 먼저 쏘아올리기도 했다). 이러한 NASA의 기본 방침은 시험 조종사가 주축을 이루었던 머큐리 우주 비행사들과 갈등을 빚었는데, 여기서 부분적으로나마 승자가 되었던 것은 우주 비행사들이었다. 그들은 일반대중이 갖고 있는 유인 우주비행의 미혹을 이용해(No 'Buck Rogers', no bucks!) 자신들의 능동적인 역할을 관철시켰다. 그러나 우주 비행사들의 '반란'은 '포드'에 창문을 내고 문을 달고 수동 제어장치를 부착하는 등 다소의 수정을 가져오긴 했지만, 그들의 역할에서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예거와 같은 시험 조종사들이 조롱했던 것처럼 그들은 결국 '스팸 깡통(spam in a can)'의 지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정도만 다를 뿐 오늘날의 우주비행에서도 거의 그대로 적용되는 이치다. 일반대중이 SF를 보면서 우주비행에 대해 품게 되는 환상과는 달리, 우주 비행사가 '자유자재로' 우주선을 몰고 다니는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가망도 없다.

아울러 <필사의 도전>은 초기 우주 비행사들의 문화적 측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창을 제공한다. 원작자인 톰 울프는 머큐리 우주 비행사들을 다루는 논픽션을 쓰면서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기꺼이 거대한 '폭죽' 위에 올라타 퓨즈에 불을 붙이기를 기다리게 만드는가?" 하는 질문을 던졌고, 어찌보면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러한 '용기'의 근원을 훨씬 더 큰 위험을 감수했던 에드워드 공군기지의 시험 조종사들에게서 찾았다. 바로 그러한 불굴의 정신 ― 'the right stuff' ― 이야말로 시험 조종사를 시험 조종사이게 만드는 것이며, 우주 비행사들이 '스팸 깡통'이기를 거부하고 조금이나마 더 '조종사'다운 역할을 자임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는 게 울프의 결론이다.(주5) 그러나 이러한 '용기'로부터 멋진 공중장면과 신화적 재현을 걷어내고 나면 이는 사실 군대식 마초주의가 내포하는 '남자다움'과 '허세'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주6) 영화 속에 나타나는 머큐리 우주 비행사들과 그 부인들의 관계는 그러한 '용기'의 이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인식은 오늘날 우주개발의 원동력으로 흔히 인식되는, 저 밖의 우주공간을 향한 끝없는 열망의 정체가 무엇이며 어디에서 기원했는지를 비판적으로 되새겨볼 수 있게 해준다.
 
 
 
 

endnote...
 

1. 토머스 D. 존스·마이클 벤슨, 『NASA, 우주개발의 비밀』(아라크네, 2003).

2. Tom Charity, The Right Stuff (London: British Film Institute, 1997), p. 15-20.

3. Walter A. McDougall, . . . The Heavens and the Earth: A Political History of the Space Age (New York: Basic Books, 1985), chap. 6.

4. Charity, 앞의 책, pp. 13-14.

5. 위의 책.

6. 머큐리 계획은 NASA가 추진한 민간(비군사) 프로그램이었음에도 7명의 우주 비행사는 모두 군 출신이었다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출전: 『시민과학』 55호 (2005.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