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온) 미래, 다가오지 않을 미래
― <가타카>
 
 
 

인간의 DNA를 구성하는 네 개의 염기를 나타내는 문자 A, G, C, T로만 구성된 제목을 가진 영화 <가타카>는 인간 게놈에 대한 분석이 종료되어 개인의 앞날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내다볼 수 있게 된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사회에서 모든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유전자검사를 받아 미래에 어떤 질병에 걸릴 것이며 몇 살까지 살 수 있는지를 미리 통고받는다. 또한 이 사회에서는 착상전 유전자진단과 배아 단계에서의 유전자치료(gene therapy)가 가능하며 또한 보편화되어 있다. 이에 따라 질병이나 바람직하지 않은 형질은 제거하고 그 외의 형질은 향상시킨 유전적 '적격자(valid)'들은 사회의 엘리트로 편입되며,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연 수정으로 태어난 이른바 '부적격자(in-valid)'들은 유전적 하층계급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된다. 영화의 주인공 빈센트 안톤 프리먼(에단 호크)의 말마따나, "이제 사회적 지위나 피부색이 아니라 과학에 근거한 차별이 일어나는" 그런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빈센트는 인공적 조작을 거치지 않고 태어난 '신의 아이'로, 출생하자마자 심장질환 확률 99%에 예상 수명은 30세에 불과하다는 선고를 받는다. 그는 어릴 때부터 우주비행을 꿈꾸며 성장한다. 그러나 우주탐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회사 '가타카'에 유전적으로 우수한 엘리트들만이 들어갈 수 있음을 알게 되자, 그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이른바 '빌린 사다리' ― 다른 사람의 신원을 빌어 정해진 자신의 '운명'을 넘어서려 시도하는 사람 ― 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우수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지만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완전성'을 다른 방식으로 '거부'한 제롬 모로우(주드 로)의 이름으로 가타카에 입사하고 그의 신체물질을 가지고 회사의 유전자 감시망을 속인다. 결국 빈센트는 유전적으로 '결정된' 자신의 미래를 넘어서 타이탄 탐사 길에 오른다.

생명공학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시험관아기 같은 생식 보조기술이 등장하고 DNA 재조합 기법이 개발된 1970년대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그 수가 급증했다. 그러나 이 영화들은 (인간)복제에 의한 정체성 혼란이나 유전공학으로 만들어진 '괴물'의 위협을 다룬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인간게놈 프로젝트의 진전과 함께 문제로 부각된 유전자검사와 인간에 대한 유전자조작(유전자치료)을 다룬 영화들은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이런 점에서 <가타카>는 상당히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주1) 특히 <가타카>는 억압적 국가/과학 권력이 아닌 사회 전반의 선호가 새로운 우생학의 위험을 불러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가타카>에 묘사되고 있는 미래사회를 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과연 앞으로 이런 세상이 진정 도래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기도 하고 '아니다'이기도 하다. 먼저 이 영화에서 묘사된 것과 같은 '자발적 우생학'이 등장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런 시술들 중 일부는 현재에도 이미 시행되고 있다. 착상전 진단을 통해 유전병을 가진 배아를 제거한 후 태어난 아이들이 백 명이 넘으며, X-염색체와 Y-염색체를 가진 정자를 분리해 수정시킴으로써 성을 미리 결정해 태어난 아이가 2천 명이나 된다.(주2) 물론 처음에는 이런 시술들이 환자에 대한 '치료'를 목적으로 개발되어 도입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 성장호르몬, 폐경기 여성을 위한 호르몬 대체요법, 우울증 치료제 프로작(Prozac) 등의 전례에서 알 수 있듯, 치료(treatment)와 향상(enhancement)의 구분은 극히 모호하기 때문에 이는 손쉽게 그 적용 범위를 확대해 갈 공산이 크다.(주3) 그리고 유전자에 근거한 차별 역시 특정 질병 내지 형질에 관여하(는 것으로 믿어지)는 유전자가 속속 밝혀지면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예를 보면, 특정 질병에 걸리지 않았음에도 해당 유전자를 가졌다거나 유전자 검사를 기피한다는 이유만으로 보험이나 고용에서 차별을 받은 사례들이 숱하게 보고되었다.(주4) 이런 측면들에 주목한다면 <가타카>의 미래사회는 이미 도래해 있다고도 말할 수 있으며, 우리가 은밀한 우생학과 유전자 차별로 향하는 '미끄러운 경사길'을 제어할 수 있는 적절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갖추지 않는다면 그러한 경향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그러나 유전자를 통해 어떤 사람의 미래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이를 고칠 수 있는 사회가 머지않아 도래할 것인가, 하는 쪽으로 질문을 바꿔 보면 이에 대한 답변은 부정적이다. 물론 앞으로 게놈 염기서열의 정확도를 높이고 유전자들의 기능을 규명해 낸다면 특정 질병에 관여하는 유전적 요인에 대해서는 분명 과거보다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미래에 병에 걸릴지 여부를 정확히 알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질병은 유전자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으며 다양한 사회적·환경적 요인들이 함께 작용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한 질병이 아닌 다른 형질들의 경우에도 이를 유전자만으로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리처드 르원틴은 생물 개체들간에 나타나는 차이가 유전자, 발생 환경, 그리고 발생 과정에서의 우연, 이 3가지 요소가 서로 뒤얽혀 빚어내는 현상('삼중 나선')이라고 보았다.(주5) 유전자와의 연관 여부 자체가 의심받고 있는 동성애나 알콜중독, 폭력 성향과 같은 사회적 특성의 경우는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피 한 방울, 머리카락 한 가닥만으로 어떤 사람의 미래를 예언할 수 있다는 영화 속 사회의 이데올로기는 다분히 과장된 측면이 크다.

결국 <가타카>가 그려내고 있는 미래사회는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라기보다는,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잘못된 담론(유전자결정론)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이며, 영화는 예언된 미래를 따르지 않은 두 사람의 엇갈린 행보를 보여줌으로써 그러한 담론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주6) 현재의 어떤 경향을 극단화시켜 보여줌으로써 경각심을 불러일으키지만, 실제로는 결코 도래하지 않을 그런 세계, 그것이 바로 <가타카>의 미래사회인 셈이다.
 
 
 
 

endnote...
 

1. David A. Kirby, "The New Eugenics in Cinema: Genetic Determinism and Gene Therapy in GATTACA," Science Fiction Studies, 27:2(July 2000): 193-215. 반면 영화가 아닌 SF소설 중에서는 인간에 대한 유전자조작을 다룬 작품을 상당히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 주제에 천착한 1990년대의 대표적 작가는 단연 낸시 크레스(Nancy Kress)인데, 그녀의 작품집 Beaker's Dozen (New York: Tor Books, 1998)은 이 주제와 관련된 여러 편의 걸작 중·단편들 ― Beggars in Spain, Dancing on Air 등등 ― 을 담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그녀의 작품들에서는 '유전적으로 향상된' 인간이 사회의 엘리트로 대접받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고 차별받는 존재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이 작품집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가타카>와 주제의식이 서로 통하는 크레스의 '착한' SF단편 「모하메드를 찾아간 산」은 홍인기씨의 홈페이지에 우리말 번역본이 있으니 꼭 찾아 읽어보길 권한다.

2. Kevin Davies, "Discrimination Down to a Science," Nature, 390(6 November 1997): 33.

3. Gretchen Vogel, "From Science Fiction to Ethics Quandary," Science, 277(19 September 1997): 1753-1754.

4. Lori Andrews and Dorothy Nelkin, Body Bazaar: The Market for Human Tissue in the Biotechnology Age (New York: Crown Publishers, 2001), chap 5.

5. 리처드 르원틴, 『삼중 나선』(잉걸, 2001).

6. Aylish Wood, Technoscience in Contemporary American Film: Beyond Science Fiction (Manchester: Manchester University Press, 2002), pp. 166-173.
 
 
 
 

출전: 『시민과학』 56호 (2005. 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