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한 '교육적 도구'인가, 현실도피적 왜곡인가

'과학기술영화' DVD파일 #12

유용한 '교육적 도구'인가, 현실도피적 왜곡인가
― <투모로우>

지구온난화는 매우 골치아픈 양면성을 가진 주제다.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효과가 화석연료를 태울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에 의해 생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정작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었을 때 어떤 구체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대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적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최근들어 일견 높아진 듯하지만, 이 문제와 관련된 주요 이벤트성 사건이 생길 때 보도가 반짝 증가할 뿐 지속적이고 심층적인 보도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지구온난화에 대한 미온적인 정책적 대응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이 문제에 대한 전지구적 차원의 공동보조 노력은 지지부진하기 짝이 없다. 왜 이런 상황이 빚어졌을까?

과학사학자 스펜서 웨어트는 지구온난화 문제의 역사를 다룬 자신의 최신 저서에서, 이 물음에 대한 한 가지 답변을 내놓고 있다. 즉, 전세계의 '이미지 제작자'들이 기후변화가 진정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생한 상을 대중에게 제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연구했던 또다른 주제인 핵에 대한 공포(주1)와 지구온난화를 서로 비교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95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핵전쟁으로 인한 인류 절멸의 위협에 대해 숱하게 많은 일급의 소설과 영화들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이는 사람들이 핵의 위협을 막연한 공상이 아닌 현실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대응책을 모색하게 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반면 지구온난화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했고, 몇 안되는 SF소설과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들 ― 과학적으로 의심스러운 거대 폭풍이나 해수면의 급격한 상승 등이 닳아빠진 액션 줄거리의 배경으로 활용된 ― 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일반대중은 우리가 실제로 맞닥뜨린 문제에 대한 설득력있고 인간화된 고난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 웨어트의 생각이다.(주2)

그렇다면 2004년에 개봉해 미국에서만도 2억 달러 가까운 흥행수익을 올린 블록버스터 영화 <투모로우>는 웨어트가 기대했던 그런 영화가 될 수 있을까? 영화의 중심에는 고기후학자인 잭 홀(데니스 퀘이드)이 있다. 그는 담수의 대규모 유입으로 인한 북대서양 해류의 중단이 과거 빙하기를 불러온 원인이라는 모델을 제시하면서, 현재진행중인 지구온난화가 또다른 빙하기로 향하는 급격한 기후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뒤이어 파국의 도래를 알리는 기상이변(아열대 지역의 폭설, 머리통만한 우박, 초거대 토네이도의 내습, 거대 해일로 인한 해안도시 초토화)이 지구 곳곳을 강타하고, 허리케인과 같은 거대한 폭풍우의 눈[目]을 따라 성층권의 차가운 공기가 빠른 속도로 하강하면서 북반구 대부분이 순식간에 얼어붙어 버린다. 미국 중·남부의 주민들이 멕시코로 피난하려 아우성을 치는 가운데, 홀은 뉴욕 공공도서관에 갇힌 아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여정에 나선다.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과연 지구온난화가 새로운 빙하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영화의 기본 전제가 과학적으로 얼마나 신빙성있는 것인가 하는 궁금증부터 먼저 갖게 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빙하가 녹아 해수의 염도가 떨어짐으로써 밀도가 낮아진 물이 가라앉지 않게 돼 멕시코 만류(Gulf Stream)의 대순환이 중단되고 이로써 북반구의 기후 변화가 유발될 수 있다는 대전제는 이미 관련 연구들에 의해 뒷받침된 '훌륭한 과학'이다.(주3) 좀더 구체적으로는 현재로부터 13,000년 전쯤에 우리가 살고 있는 간빙기의 진전을 일시적으로 가로막았던 소빙하기인 영거 드라이아스(Younger Dryas)기가 이런 이유 때문에 시작되었을 것으로 흔히 추측되고 있다.(주4) 그러나 그와 같은 북반구의 급격한 기후 변화가 지금 당장 시작될 수도 있고, 그것도 불과 6주만에 진행될 수 있다는 영화의 설정은 얼토당토않은 것이다(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아무리 '급격한' 기후 변화라 해도 진행되는 과정이 수십 년은 걸린다). 2004년 2월에 미 국방성의 연구자 두 명이 영화와 상당히 유사한 상황이 앞으로 15년 이내에 시작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내놓았지만, 이들의 견해는 실현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문외한의 견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주5)

그러나 이러한 시나리오의 실현가능성보다 정작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에 대한 과학자들의 의견대립이다. <투모로우>의 개봉을 전후해 이 분야의 과학자들은 입장이 크게 둘로 나뉘었다. 한쪽에는 이 영화가 지구온난화 문제의 진정한 위험에 대해 대중의 경각심을 높이는 "훌륭한 교육적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 있었다. 그들은 영화나 소설 같은 픽션에서 과장은 문학적 장치로 흔히 쓰이는 수법이며, 따라서 과학적인 '부정확성'을 이유로 이 영화를 비판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주장했다. 영화란 으레 그런 것이므로 이 속에 숨은 오류를 비판하기보다는 이를 과학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주6)

반면 이 영화에 비판적인 과학자들은 <투모로우>에서 국지적 기상이변(폭설, 우박, 토네이도, 해일)과 지구온난화를 연결지어 묘사한 것은 전지구적 경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현재의 지구온난화 모델을 잘못 이해한 소치이며, 이는 사람들이 지구온난화로 인해 빚어질 수 있는 진짜 문제들(흉작에 따른 기아사태, 열대성 질병의 창궐,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해안지대 침수)을 이해하는 데 오히려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만들어냄으로써 문제의 해결을 더욱 꼬이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일간지의 과학전문 기자는 헐리웃 영화들의 과학 왜곡 실상에 분통을 터뜨리면서, "만약 헐리웃에서 당신네 실험실에 전화를 걸어오면 그대로 끊어버리라"고 일갈하기도 했다.(주7)

과연 어느 쪽 얘기가 옳을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의 단초는 미국과 유럽에서 <투모로우>를 본 관객들이 보인 반응을 비교한 흥미로운 연구결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독일과 미국에서 각각 이루어진 연구들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관람 후에 지구온난화에 대한 확신의 정도가 상당히 감소한 반면, 미국에서는 영화를 본 후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해 더 걱정하게 되었다고 답한 사람이 많았다. 즉, 독일에서는 <투모로우>가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한 인식에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켰고, 미국에서는 반대로 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는 효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연구를 수행한 미국측 연구자는 양국 국민들이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해 갖고 있는 기존의 인식수준의 차이가 이런 상이한 결과를 빚어냈을 것으로 추측했다. 유럽 사람들은 대체로 기후변화의 영향에 관한 지식 습득을 통해 일정한 고정관념(혹서나 홍수 피해)을 이미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들어맞지 않는 영화에서의 사건 제시(새로운 빙하기의 도래)를 보면서 지구온난화에 대한 확신이 오히려 흔들렸다. 반면 이 문제에 대해 대체로 무관심하고 '무지'한 미국인들에게는 <투모로우>가 일종의 '깜짝효과'로 작용해 경각심의 증가를 야기할 수 있었다.(주8)

이렇게 보면 적어도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투모로우>가 일정하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식의 깜짝효과를 통해 만들어진 경각심은 또다른 깜짝효과를 만나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수 있다. 충분한 정보 제공과 숙고를 거쳐 만들어진 인식이 아닌 탓에, 그와 상반되는 선전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04년 말에 출간되어 미국에서 이미 수백만 부가 팔려나갔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공포상태』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주9) 결국 일반시민을 '우습게' 보고 그들에게 '겁을 줘서' 과학에 대한 인식 제고와 정책적 변화를 꾀하겠다는 식의 발상은 어떤 식으로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여타의 숱한 과학기술 관련 쟁점들과 마찬가지로, 지구온난화 역시 일반시민에 대한 정보제공과 권한부여를 통한 시민참여 없이는 문제 해결이 요원하기만 한 것이다.(주10)

endnote...

1. Spencer R. Weart, Nuclear Fear: A History of Images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1988).

2. Spencer R. Weart, The Discovery of Global Warming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2003), p. 182.

3. Kris Wilson, "Movie Review: The Day after Tomorrow," Science Communication, 26:2(2004), 227-229.

4. 김경렬, 「바다를 알면 기후가 보인다」, ≪주간동아≫ 441호(2004년 7월 1일자), 66-67.

5. Fred Pearce, "Scientists stirred to ridicule ice age claims," NewScientist.com news service (15 April 2004).

6. Stefan Rahmstorf, "Hooray for Hollywood," New Scientist, No. 2449 (29 May 2004): 18; J. Justin Gooding and Katharina Gaus, "Yet even flawed films raise interest in research," Nature, 431 (16 Sepember 2004): 244.

7. Wilson, 앞의 글; Keay Davidson, "It's the science that's disaster in the movies," Nature, 431 (16 Sepember 2004): 244.

8. Quirin Schiermeier, "Disaster movie highlights transatlantic divide," Nature, 431 (2 September 2004): 4.

9. Michael Crichton, State of Fear (New York: HarperCollins, 2004). 이 소설이 바탕에 깔고 있는 전제는 지구온난화 이론이 연구비를 타내기 위한 기후학자들의 술책과 '어머니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환경단체들의 자기기만이 결탁해 빚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를 좇아 이 소설은 자신들의 신념을 '입증'하기 위해 태평양에서 수소폭탄을 터뜨려서 기상재난(쓰나미)을 인위적으로 일으키려는 에코-테러리스트 집단과 '위험분석을 전공'한 MIT 교수의 일대 승부를 주요 축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은 역시 환경 음모론에 근거한 비외른 롬보르의 책 『회의적 환경주의자』의 헐리웃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대한 비판적 리뷰로는 Myles Allen, "A novel view of global warming," Nature, 433 (20 January 2005): 198; Jeremy Leggett, "Essay: Making a myth of climate change," New Scientist, No. 2489 (5 March 2005): 50; Andrew Jamison, "Lomborg in Hollywood," EASST Review, 23:4 (December 2004) 등을 보라.

10.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해 유럽에서 진행된 기후변화 문제 관련 시민참여 시도들에 대해서는 Bernd Kasemir et al. (eds.), Public Participation in Sustainability Science: A Handbook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을 참조하라.

출전: 『시민과학』 57호 (2005. 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