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된 과학, 신비감이 거세된 복제인간
― <아일랜드>
 
 
 

지난 한 해는 말 그대로 황우석 교수가 온 나라를 '들었다놨다' 싶었던 기간이었다. 5월 말에 환자맞춤형 배아줄기세포 유도에 성공했다는 <사이언스> 논문을 발표하고 8월 초에 세계 최초의 복제개 '스너피'를 세상에 내놓더니 10월 말에는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전세계적 중심지가 되겠다는 세계줄기세포허브 개소를 선언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명실상부한 온국민의 영웅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얼마 안되어 섀튼의 결별과 연구용 난자 매매 사실이 드러나면서 몰락이 시작되었고, 급기야 전세계를 뒤흔들어 놓았던 두 편의 <사이언스> 논문이 완전히 날조된 것임이 만천하에 폭로되어 사람들을 경악과 실망으로 몰아넣고 말았으니,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고, 또 기쁘게도, 열받게도 했던 인물을 달리 찾기도 어려울 듯 싶다.

그런데 스너피 복제 발표로 황 교수의 명성이 하늘을 찌르던 작년 8월에 대중문화에서도 '작은' 사건이 있었다. 1억 달러에 달하는 제작비를 들이고도 미국, 유럽, 일본 등지에서 흥행에 참패한 영화 <아일랜드>가 한국 시장에서만큼은 관객몰이에 성공을 거둔 것이다. 결국 <아일랜드>는 370만 명이 관람해 작년에 3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네 편의 외화 중 한 편이 되었고, 제작사측 입장에서도 한국 시장에 힘입어 (미국 바깥의) 전세계 흥행에서만큼은 성공을 거둔 셈이 되었다. 여기서 흥미로왔던 것은, <아일랜드>가 유독 한국에서 인기를 끈 이유를 이른바 '황우석 효과'와 연결지어 설명하는 시각이 강력하게 제기되었다는 점이다. 황 교수의 배아복제실험 성공이 한국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복제(를 다룬 영화와 그 속에 표현된 근미래)를 훨씬 더 피부에 와닿는, 개연성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해주었다는 얘기다.(주1) 과연 그렇게 볼 수 있을까?

때는 2019년. 링컨 6-에코(이완 맥그리거)와 조던 2-델타(스칼렛 요한슨)는 지구 전체를 폐허로 만든 환경오염을 피해 외부로부터 차단된 첨단설비에서 살아가고 있는 소수의 '생존자' 중 일부다. 단조롭고 통제된 생활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추첨을 통해 지구상에서 오염되지 않은 유일한 낙원이라는 '아일랜드'로 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링컨은 자신들이 바깥 사회의 부유한 '고객'들이 병들었을 때 장기를 제공하거나 그들을 위한 대리모 역할을 해주는 복제인간일 뿐이며, '아일랜드'행이란 실상 황천길에 불과하다는 무시무시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을 수용하고 있는 시설은 메릭 박사(숀 빈)가 운영하는 생명공학 회사가 국방부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받아 사막 한가운데 건설한 불법 '복제인간 농장'이었던 것이다. 링컨과 조던은 회사의 엔지니어인 맥코드(스티브 부세미)의 도움을 받아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고, 자신의 '원본' 인간을 만나 이 모든 사실을 폭로하고 복제인간들을 '해방'시키려 한다.

영화 텍스트 자체만 놓고 보면 <아일랜드>는 표절 시비로 소송에 들어간 것이 그다지 신기하지 않을 정도로 새로운 구석이 별로 없다.(주2) 그 중에서도 가장 유사한 대목은 1976년 영화인 <도망자 로건 Logan's Run>과 기본 설정이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이다.(주3) 특히 제한된 주거공간에서 '갇혀' 살던 주민(내지 클론)들이 영화의 결말부에서 바깥 세계로 몰려나오는 장면은 두 영화가 쏙 빼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도망자 로건>에서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황폐화가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지만, <아일랜드>에서는 환경오염은 물론이고 주민들이 지닌 정체성마저도 날조된 허구라는 것이다. 이는 두 영화가 만들어진 각각의 시기의 주된 사회적 우려와 관심사(인구폭발과 환경오염 vs. 가상현실과 생명조작)가 무엇이었는지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반영하고 있다.

영화의 소재인 '복제인간'은 SF에서 매우 흔하게 다루어졌던 소재여서 별반 새로울 것이 없고, 복제인간이 '고치' 속에서 단기간내에 '제조'된다거나 기억이 재현된다는 발상도 구태(?)을 답습한 것이다. 그러나 <아일랜드>가 그리고 있는 복제인간의 모습에는 과거 SF에서의 그것과 비교해 중요하게 달라진 점이 있다. 복제인간을 다룬 진지한 SF작품들이 줄줄이 선을 보이기 시작한 1970년대를 돌이켜 보면, 당시의 작품들은 복제인간이 보통 사람과는 다른 뭔가 '특별한' 존재라는 전제를 바탕에 깔고 있었다. 가령 동일인을 복제한 클론들 사이에는 텔레파시와 같은 초지각(ESP)에 의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거나 클론들은 서로 군집해 있을 때만 생존능력을 갖는다거나 하는 식의 설정이 그런 것들이었다.(주4) 또한 저명한 역사적 인물의 복제를 소재로 다룸으로써 인간복제라는 활동 그 자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작품이 많았던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었다.(주5) 그러나 <아일랜드>에서는 그러한 시각의 잔재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복제인간은 생명공학 회사의 이윤추구의 대상으로, 하나의 '제품'으로 격하되었으며, 그럼에도 외양과 성격에 있어서는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인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복제인간을 만들어낸 과학자 역시 사회로부터 동떨어져 은둔하는 전형적인 '미친 과학자'가 아니라 한 명의 냉혹한 '사업가'로 그려진다. 이러한 인식 변화의 이면에는 생명공학을 중심으로 과학의 상업화가 맹렬히 전개되고, '돌리' 이후 연이은 복제동물의 탄생으로 복제를 더 이상 '신기한' 뭔가로 여기지 않게 된 지난 30여년의 시간이 가로지르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일랜드>가 한국에서 유독 성공한 것은 과연 황우석 교수의 배아복제실험과 개 복제 성공 때문이었을까?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메릭 박사와 황 교수를 서로 겹쳐 보았으리라는 상상은 구미가 당기는 추측이긴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걸 설명하기는 어렵다. 흥행을 좌우하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고, 경쟁작의 부진, 여배우의 인기, 상대적으로 낮게 부여된 관람등급 같은 요인들의 중요성도 무시할 수 없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탠다면, '인체의 신비'전이나 아인슈타인의 뇌 전시처럼 일견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과학의 특정 측면에 대해 무비판적인 태도를 보일 뿐 아니라 오히려 이에 대한 관람을 교육적 차원에서 장려하기까지 하는 전반적 사회 분위기를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이 때문에 서구의 관객들에게 불쾌감을 주고 극장에서 발걸음을 돌리게 했을 '복제인간 고치' 씬들이 한국의 관객들에게는 또다른 진기한 볼거리의 역할만을 했던 것은 아닐까? 이렇게 보면 <아일랜드>의 흥행 이유는 '황우석 효과'가 아니라 '황우석 현상'을 잉태한 한국의 독특한 과학문화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endnote...
 

1. 「스크린에도 '황우석 효과'…영화 <아일랜드> 흥행 호조」, ≪국민일보≫ 2005년 8월 6일자.

2. 「<아일랜드>, 흥행참패에 표절 소송까지」, ≪연합뉴스≫ 2005년 8월 26일자.

3. <도망자 로건>은 환경오염으로 세계가 황폐화된 23세기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이다. 이곳에서 생존자들은 외부로부터 격리된 돔 모양의 도시에서 컴퓨터의 통제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도시의 제한된 수용능력 때문에 이곳의 주민들은 30세가 되면 '회전목마(carousel)' 의식을 갖고 생을 마감해야 하며, 주민들은 의식을 통해 자신들이 '환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영화는 이러한 도시의 삶에 의문을 품게 된 '로건 5'(마이클 요크)가 도시를 탈출해 바깥 세계를 접하면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결국 도시 주민 모두를 '해방'시키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영화는 국내에 <지하탈출>이라는 제목으로 비디오 출시되어 있으나 시중에서 구하기는 매우 어렵고, DVD로는 미국에서 코드 1로 출시되어 있다.)

4.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1970년대의 대표적 SF소설인 어슐러 르 귄의 「아홉 생명」(1969)이나 케이트 윌헬름의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1976; 행복한책읽기, 2005)에서 그런 설정을 볼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국내에 번역되어 있는데, 「아홉 생명」은 『바람의 열두 방향』(시공사, 2004)나 『플레이보이 SF걸작선 1』(황금가지, 2002) 등에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설정은 새롭게 가능성이 제기된 복제인간이라는 새로운 과학적(혹은 기술적) 가능성을 이해하기 위해 일란성 쌍둥이나 개미 같은 군집생물로부터 이해의 틀을 빌어오면서 생겨난 결과라 할 수 있다.

5. 지난 연재(2회)에서 소개한 바 있는 『브라질에서 온 소년』(소설 1976; 영화 1978)은 히틀러의 복제를 통한 제3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나찌 잔당의 음모를 다룬 작품이다. 그리고 Nancy Freedman, Joshua, Son of None (London, Conn.: Granada, 1973)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직후 떼어낸 세포로 케네디를 복제해 태어난 '조슈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출전: 『시민과학』 58호 (2006.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