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주의 과학 속, 내부고발자의 고단한 삶
― <인사이더>
 
 
 

황우석 박사 사건 이후 국내에서도 다소 뒤늦긴 했지만 연구진실성(research integrity)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언론은 날조, 변조, 표절 등을 포함하는 연구 부정행위와 저자표시 등 연구윤리상의 쟁점들에 관한 기사와 칼럼을 여럿 실었고, 주요 대학들은 연구진실성위원회를 설치하고 연구윤리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공언했다. 정부기관들은 연구진실성 확보를 위한 지침 마련에 나서 지금은 지침 최종안을 확정짓기 위한 공청회를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중요 사항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내부고발자(whistleblower)에 대한 보호 문제였다. 과학 실험의 세부 내용은 해당 전문 연구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고, 연구가 진행되는 실험실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이기 때문에 연구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정행위나 비리 등의 문제점에 대한 제보는 동료 연구자와 같은 '내부자'가 맡을 수밖에 없다. 바로 과학기술과 같은 전문직 영역이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 내부고발자(whistleblower)가 절실히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내부고발자의 제보는 제대로 된 조사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조사를 통해 제보 내용이 사실로 밝혀지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조직의 '배신자'로 낙인찍혀 해당 기관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불이익을 겪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사이더>는 담배의 위험성에 관한 내부고발자 증언을 둘러싼 탐사보도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을 영화화한 흥미로운 작품이다.

제임스 와이갠드(러셀 크로우)는 미국의 3대 메이저 담배회사 중 하나인 브라운 앤 윌리엄슨의 연구개발(R&D) 담당 부사장을 지낸 과학자로, 발암성 첨가물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가 새로운 경영진에 의해 해고되었다. 그는 퇴직금과 건강보험 급여를 받는 조건으로 회사에서 일할 때 알게 된 모든 사실에 대해 비밀을 지키겠다는 내용을 담은 기밀유지 계약서에 서명한 상태이다. 이런 그에게 CBS 방송의 간판 탐사보도 프로그램인 '추적 60분(60 Minutes)'의 PD인 로웰 버그먼(알 파치노)가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접근한다. 버그먼은 와이갠드에게 기밀유지 계약을 깨고 담배의 위험성에 관해 증언하도록 설득하고, 다급해진 담배회사측은 소송 위협과 협박장 등을 통해 와이갠드의 입을 막으려 든다. 와이갠드는 위험을 무릅쓰고 담배회사 소송과 추적 60분 방영을 위한 증언을 결심하지만, 이 과정에서 가정불화를 겪고 가족을 잃는다. 설상가상으로 와이갠드의 인터뷰 테이프를 가진 CBS 방송사 측은 담배회사의 막대한 소송 제기를 우려해 테이프의 방영을 취소해 버린다. 버그먼은 갖은 압력수단을 써서 와이갠드의 인터뷰를 방송하는 데 성공하지만, 탐사보도의 한계를 느끼고 방송사를 그만둔다.(주1)

<인사이더>에는 다양한 측면에서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이 많다. 그 중에서 담배회사의 비열한 작태나 TV의 탐사보도 메커니즘 같은 것이 사람들의 시선을 얼른 사로잡을 법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과학의 사회적 맥락과 관련해서도 흥미로운 생각거리들을 제공한다. 먼저 와이갠드가 서명한 '기밀유지 계약서'는 오늘날의 과학 연구에 대해 매우 많은 것을 말해 준다. 한때 기밀유지를 중시하는 기업이나 정부기관 종사자들에게 강제되곤 했던 이러한 계약서는, 과학의 상업화가 진전되고 대학 연구에 대한 기업의 지원이 증가하면서 이른바 '상아탑 과학자'들에게도 더 이상 예외가 아니게 되었다. 오늘날 기업의 돈을 받아 연구를 하는 대학이나 연구소의 과학자들은 '기업측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발표하지 않겠다'는 단서조항을 담은 기밀유지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이 일종의 관행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상업적 잠재성이 있어 보이는 연구결과에 대한 특허 출원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이거나, 기업측에 불리한 연구결과가 나온 경우 발표를 가로막거나 최소한 지연시키고 경우에 따라 회사측의 해석을 끼워넣기 위해서다.(주2)

기밀유지 계약에 걸려 연구결과의 발표가 지연되었던 사례는 대중적인 악명을 떨친 것만도 이미 여러 건이다. 1980년대에 빅터 디노블과 폴 멜이라는 두 명의 과학자는 필립 모리스 사로부터 연구비를 받아 니코틴 중독에 관한 연구를 했다. 그들은 담배에 첨가되면 니코틴의 중독 효과를 증가시키는 물질을 발견했고, 이런 결과를 ≪심리약물학≫이라는 학술지에 투고했다. 그러나 필립 모리스는 이 사실을 알고 두 사람에게 논문 철회를 요구했고, 그들의 연구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연구실을 폐쇄해 버렸다.(주3) 부츠 제약회사가 지원한 베티 동의 신티로이드 연구도 비슷한 사례다. 부츠 사는 갑상선 항진을 치료하는 자사의 특허 약품 신티로이드가 대체 약품보다 더 우수함을 입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동의 연구를 지원했다. 그러나 동은 값싼 대체 약품들이 신티로이드와 동일한 안전성과 효능을 보인다는 '기대에 어긋난' 연구결과를 얻어냈다. 부츠 사는 기밀유지 계약서에 근거해 ≪미국의사협회지≫에 실리기로 되어 있었던 동의 논문발표를 막았고, 이 논문은 7년이 지나 언론에서 이 사실을 폭로한 뒤에서야 비로소 발표될 수 있었다.(주4) 이러한 사례들은 기업의 과학 연구 지원이 과학의 개방성과 객관성에 드리우는 어두운 그림자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과학에서의 비밀주의 확산과 더불어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내부고발자가 겪게 되는 어려운 상황이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부정행위나 비리 사건에서, 내부고발자는 주위 사람들이 눈과 귀를 닫는 첨예한 갈등 상황 속에서도 양심의 소리에 귀기울여 용기있는 행동을 보여준 '영웅'으로 흔히 칭송받곤 한다. 그들은 이러한 경험 속에서 고통을 겪지만 그럼에도 한층 더 성숙한 모습으로 거듭나는 것으로 그려지며, 같은 상황에 또 처하게 된다면 다시한번 같은 행동을 하겠냐는 식의 공개적인 질문에 대해 거의 모두가 그러겠다는 답변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낭만적'인 통념과는 달리, 내부고발자의 처지를 바라보는 <인사이더>의 시선은 훨씬 더 냉정하다. 내부고발자는 자기 얘기에 제대로 귀기울여 주는 사람도 없이, 직장도, 집도, 가족도 모두 잃고 친지들로부터도 이해받지 못하고 따돌림당할 수 있으며, 자신이 고발한 대상이 단죄받지 않은 채 오히려 조직과 사회 내에서 건재한 것을 보면서 심지어 자신이 '괜한 미친 짓'을 했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프레드 앨퍼드는 이처럼 내부고발자가 도달하는 고독한 심리 상태를 사회의 모든 연관관계로부터 끊어져 다른 세계를 떠도는 '우주 유영(space walking)'에 빗대기도 했다.(주5)

그러나 내부고발자가 겪게 되는 갖은 난관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더 많은 내부고발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과학이 점점 더 거대한 규모의 사회적 활동으로 변모하면서 일반인들의 접근을 더욱 어려워지는 반면 과학의 상업화와 경쟁의 증가는 연구 부정행위를 낳을 수 있는 여건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종일관 냉정함을 유지하다가 끝부분에 가서 와이갠드의 궁극적인 '승리'를 보여주는 <인사이더>의 결말은, 바로 더 많아져야 할 내부고발자를 위한 격려 메시지일지도 모를 일이다.
 
 
 
 

endnote...
 
 

1. 영화의 시나리오는 ≪배니티 페어≫ 지에 실렸던 마리 브레너의 탐사보도 기사에 부분적으로 의거해 씌어졌다. Marie Brenner, "The Man Who Know Too Much," Vanity Fair (May 1996). 이 기사는 영화에서 소략하게만 다루어진 사건의 여러 정황과 진행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다. 이 글과 와이갠드의 "추적 60분" 인터뷰를 비롯한 여러 자료들은 와이갠드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2. 셸든 램튼·존 스타우버, 「돈으로 살 수 있는 최상의 과학」, ≪시민과학≫ 35호(2002년 4월): 12-20.

3. 데이빗 레스닉, 「금전적 이해관계와 연구의 편향」, ≪시민과학≫ 51호(2004년 3/4월): 32-53.

4. 로리 앤드루스·도로시 넬킨, 『인체 시장』(궁리, 2006), pp. 96-97.

5. C. Fred Alford, Whistleblowers: Broken Lives and Organization Power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2001), p. 5.
 
 
 
 

출전: 『시민과학』 60호 (2006.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