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고, 나쁘고, 위험한" 과학자의 전형
― <리애니메이터>
 
 
 

작년 말, 영화 속에 나타난 과학자의 이미지를 역사적으로 분석한 책 한 권이 영국에서 출간되어 화제가 되었다. 저자인 크리스토퍼 프레일링은 지난 백여 년 동안 영화 속 과학자의 이미지가 지속적으로 변모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놀라울 정도로 일관된 전형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제목에서 직설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처럼 과학자는 종종 "미치고, 나쁘고, 위험한" 존재로 그려져 왔으며,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외곬로 자신의 연구에 몰두하면서 사회 일반과 주류 과학계로부터 동떨어진 인물로 제시되곤 한다는 것이었다.(주1) 이러한 프레일링의 논의는 사실 새롭다고 보기 힘든 것이었음에도 여러 과학 전문지들로부터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뉴사이언티스트≫는 저자의 논지를 요약한 칼럼을 게재했고, ≪네이처≫와 ≪사이언스≫를 비롯한 전문지들은 책의 내용을 음미하는 서평을 실었다.(주2) 이처럼 높은 관심은 현재 일반대중이 과학과 과학자에 대해 품고 있는 이미지가 거의 대부분 영화나 대중매체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그런 이미지는 앞으로의 노력 여하에 따라 변화할 수도 있다는 프레일링의 논지에 공감한 소치일 것이다. 이러한 관심 속에서 과학자의 이미지 '쇄신'을 꾀하는 서구 과학계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면 과도한 넘겨짚기일까?

미국 작가 H. P. 러브크래프트가 1922년에 발표한 단편 '괴담' 소설을 자유분방하게 각색한 호러 영화 <리애니메이터>는 과학자들이 '바로잡고' 싶어하는 미친 과학자의 이미지를 원형에 가깝게 보여준다.(주3) 스위스에서 죽은 생명체를 다시 살려내는 주사액을 연구하던 의대생 허버트 웨스트(제프리 콤스)는 대학에서 쫓겨난 후 미국으로 건너온다. 그는 새로 얻은 하숙집 지하실과 의과대학 영안실에서 룸메이트인 의대생 댄 케인(브루스 애벗)의 도움을 받아 실험을 계속하는데, 도로 살아난 시체들은 좀비에 가까운 비정상적인 행태를 보인다. (이는 시체가 충분히 '신선하지' 않은 탓으로 돌려진다.) 한편 웨스트의 '비밀'을 알아챈 같은 대학의 뇌 전문의 칼 힐 박사(데이빗 게일)는 웨스트를 협박하다가 그의 손에 죽은 후 주사액으로 다시 살아나 웨스트와 대립한다.

많은 사람들은 아마 대강의 줄거리만 들어도 이 작품이 영화 <프랑켄슈타인>(1931)을 필두로 1930-4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미친 과학자 영화'들의 자장 안에 있음을 금방 알아챌 것이다.(주4) 과학을 소재로 한 이 시기의 호러 영화들에서는 미친 과학자가 개인으로 활동했으며, 지배적인 과학 분야는 주로 생물학/의학으로서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거나 기계 장치를 이용해 인공적으로 새로운 생명 형태를 만들거나 인간과 동물의 잡종 생명체를 만드는 것 등이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이는 과학자가 거대 조직에 속해 있는 피고용인으로 흔히 그려지고, 주된 분야 역시 핵물리학에서 합성유기화학을 거쳐 생명공학 쪽으로 넘어가고 있는 요즘 영화들의 이미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주5) 그런 점에서 <리애니메이터>는 오늘날 클리셰로 자리잡은 고전 호러의 이미지를 창의적으로 '재활용'하면서, 금기시된 지식에 대한 두려움이나 과학자의 사회적 위상에 관한 논란과 같은 20세기 초의 진지한 문제의식은 벗겨버린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리애니메이터>가 과학자의 이미지에서 고전 호러를 단순히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원작소설에 없는 칼 힐 박사라는 인물을 새롭게 끼워넣고, 원작소설에서 매우 수동적으로 그려진 이름없는 조력자(겸 나레이터)에 댄 케인이라는 이름을 붙여 성격을 부여함으로써 과학자의 이미지를 좀더 다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먼저 주인공인 허버트 웨스트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미친 과학자의 특징을 모조리 모아놓은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비사교적 인물로, 거의 세상을 등지다시피 한 채 어두운 지하실 공간에 처박혀 일에 몰두한다. 그는 죽음을 뛰어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숱한 실패와 학계의 냉대에도 굴하지 않고 오로지 연구에만 매달린다. 그러나 숭고한 목적이 사악한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그의 사고방식은 결국 그를 사실상의 파멸로 몰아넣는다.

반면 칼 힐 박사는 나중에 가서 (머리가 떨어져나간 후에는) 성적 집착과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으로 가득찬 미친 과학자의 '본색'을 드러내긴 하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극히 세속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타인의 연구 성과를 표절하고, 급기야 웨스트의 성과를 가로채 자신을 주사액의 발견자로 학계에 발표하려 수작을 부리는 장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외딴집에 기거하면서 금기시된 지식의 추구에만 미친 듯 몰두하는 과학자와 상당히 안정된 전문직업적·제도적 기반 위에서 명예욕과 권력욕을 채우려 하는 과학자 사이의 대립구도를 그려내는데, 이는 20세기 중반 이후 크게 변화한 과학의 물적 토대와 연구 환경을 되새기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그러나 정작 이 영화의 메시지는 웨스트도 힐도 아닌 댄 케인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 처음에 그는 장학금을 받아 공부하며 의과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으면서 학장의 딸과 비밀리에 데이트를 하고 있는 평범하면서도 건실한 청년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죽어가는 환자를 살려내지 못한 아쉬움은 웨스트의 연구에 대한 매혹과 소소한 일탈행위로 발전하고, 일련의 예상치 못한 사태를 겪으며 사태가 확산된 후 죄의식으로 탈바꿈한다. 그러나 죄의식도 잠시, 되살아난 시체의 공격을 받아 여자친구가 숨을 거두자 그는 자신이 그토록 비난했던 그 모든 행동을 좇아 본격적으로 미친 과학자의 길로 접어든다. 웨스트가 남긴 주사액을 이용해 여자친구를 살려내려 시도하는 것이다. (이는 속편 제작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제공한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을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케인의 모습을 통해 <리애니메이터>는 미친 과학자를 매혹시키는 힘의 근원을 풍자하고 있다.
 
 
 
 

endnote...
 
 

1. Christopher Frayling, Mad, Bad and Dangerous?: The Scientist and the Cinema (London: Reaktion Books, 2005).

2. Christopher Frayling, "Hollywood's changing take on the scientist," New Scientist, No. 2518 (24 September 2005): 48-49; Adam Rutherford, "Scientists on screen," Nature, 438 (3 November 2005): 25-26; Jay A. Labinger, "Two-dimensional science," Science, 310 (16 December 2005): 1770-1771; A. Bowdoin Van Riper, "Scientists on screen," EMBO Reports, 7 (March 2006): 253; Jay P. Telotte, "Sketching the cinematic scientist," Nature Cell Biology, 8 (March 2006): 204.

3. 러브크래프트의 원작 단편소설은 「시체를 되살리는 허버트 웨스트」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돼 있다. H. P. 러브크래프트, 『광기의 산맥에서』(동서문화사, 2005), pp. 149-189. 20세기 초가 배경인 원작소설은 초자연적이고 괴기스런 냄새가 물씬 풍기며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지는 반면, 1980년대에 대폭 각색된 영화 버전은 진지함을 벗어버린 코믹한 패러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리애니메이터>는 호러 팬 사이에서 컬트 영화로 자리매김되며 인기를 끈 후 <리애니메이터의 신부>(1990), <리애니메이터를 넘어서>(2003) 등 속편이 잇따라 제작되었고, 현재 4편 제작 계획이 발표되어 있다. (1편과 2편은 국내에 <좀비오>, <좀비오 II>라는 제목으로 비디오 출시되어 있다.)

4. 원작소설의 작가인 러브크래프트 역시 자신의 작품은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패러디로 의도한 것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http://en.wikipedia.org/wiki/Re-Animator 참조.

5. Andrew Tudor, Monsters and Mad Scientists: A Cultural History of the Horror Movie (Oxford: Blackwell, 1989).
 
 
 
 

출전: 『시민과학』 61호 (2006.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