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6. The Age of Ecology: Science and the Fate of the Earth
 

Ch 16. Healing the Planet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완성된 원자폭탄은 과학의 도덕적 정당성이나 기술의 엄청난 발전 속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고, 여기서 비롯된 회의는 근대사의 핵심부에 놓여 있는 자연에 대한 지배라는 기획 전체를 의문시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이러한 원자폭탄의 위협 속에서 환경주의(environmentalism)라고 불리는 새로운 도덕적 각성이 생겨났다. 환경주의는 과학에 기반하여 자연을 지배하고자 하는 근대적인 힘을 생태학의 통찰을 빌어 억제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2차대전이 끝난 후에는 핵 실험이 자연에 어떤 영향을 가져오는지에 대한 생태학적 연구들이 있었고, 그 결과가 보여준 방사능(특히 낙진)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는 곧 대중적인 차원에까지 번져 나갔다. 1958년에는 핵 실험의 위협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 핵정보 위원회(Committee for Nuclear Information)가 생겨났는데, 여기에는 배리 카머너(Barry Commoner)도 참여하고 있었다. 이들이 벌인 캠페인은 이후 과학자들이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고 대중들을 동원하는 데 있어 하나의 전례를 만들었다.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은 과학자들이 주도한 최초의 캠페인에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점차로 환경주의 운동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그녀는 원래 해양생태학을 전공했고 1940년대에서 50년대에 걸쳐 The Sea Around Us (1941)이나 The Edge of the Sea (1955)와 같은 고전들을 저술했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리게 된 저술은 자신의 전공분야가 아닌, DDT와 같은 살충제의 환경적 영향을 다룬 『침묵의 봄』(1962)이었다. 그녀는 이 책에서 인간이 지구상의 다른 생명들에 대해 거만하고 조작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모든 생명형태들을 존중하고 우리가 그들에 의존하고 있음을 깨닫는 방향의 윤리적 변화가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2차 대전기를 경유하면서 '환경(environment)'에 대한 관념도 변화하였다. 20세기 초에는 '개인에 가해지는 외적인 사회적 영향'을 의미했던 '환경'이라는 단어가 2차 대전 이후에는 '사람들에 대한 <자연의> 영향'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에 따라 생물리학적인 주변 환경을 오염이나 고갈, 퇴화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환경주의'가 나타났다. 새로운 환경주의의 등장은 몇 가지 배경을 갖고 있는데, (1) 헨리 소로우(Henry Thoreau)나 존 뮈어(John Muir)와 같은 19세기 낭만주의 사상가들, (2) 기포드 핀초(Gifford Pinchot)가 주도한 20세기 초 미국의 자원 보호 운동을 들 수 있다. 이 모두가 환경주의와 연관을 지니고 있었지만, 또한 분명한 차별점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환경주의는 자연 속으로의 칩거와 같은 개인적 관계가 아니라 공공적 참여를 요구했다는 점에서 (1)과 구별되었고, 자연을 자원(resource) 이상의 그 무엇, 서로 떨어져 있는 장소들(예컨대 국립공원들) 이상의 그 무엇으로 이해했다는 점에서 (2)와 구별되었다.

한편 환경주의의 출현은 그보다 20-30년 정도 앞선 몇몇 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환경을 인간과 자연의 상호관계로 파악하고 그 규모를 전지구적인 것으로 확장했으며, 인간은 물리적·도덕적 제약 속에서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지적했다. 이들의 생각은 1950년대에 이르러 인간생태학(human ecology)이라는 이름 하에 종합되었다. 이 분야는 환경주의의 사고 형성에 큰 도움을 주었는데, 환경주의자들은 묵시록적인 급박함(urgency)의 감각―파멸이 다가왔으므로 하루빨리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을 여기에 더해 자신들의 사고를 발전시켰다. 이러한 암울한 분위기를 형성한 것에는 다분히 맬더스적인 냄새가 나는 폴 에를리히(Paul Ehrlich)의 "인구폭발" 가설이 크게 기여했고, 이는 『성장의 한계』와 같은 70년대 초반의 저서들에 반영되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환경주의자들은 성장을 긍정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일반적인 통념과 부딪쳐야만 했다.

이렇게 등장한 환경주의가 정치 영역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는 카머너의 역할이 컸다. 그는 1963년의 핵실험 금지 조약 이후 핵정보 위원회를 환경정보 위원회(Committee for Environmental Informaton)로 전환하여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는 각성된 대중과 지식을 갖춘 과학자가 함께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활동의 결과물로서 60년대 말 이후 환경에 관한 법들이 속속 생겨났고 미국에서는 환경보호청(EPA)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환경주의자들은 이러한 제도적인 변화에 만족하지 않았고, 근대성과 계몽주의, 즉 근대 부르주아 문명의 산물들―기술에 대한 집착, 무제한적인 생산과 소비, 물질적인 자기향상, 개인주의, 자연에 대한 지배 등―이 더 이상 지탱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태도·가치·전망·경제조직까지를 포괄하는 사회 전 분야에서의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역설은 근대 부르주아 문명을 전복하려는 급진적 생태주의 운동이 (사실상 그 문명의 가장 큰 수혜자였던) 중간계급으로부터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다는 사실이다.

60년대 환경주의 운동은 1970년 4월 22일의 제 1회 지구의 날 행사가 엄청난 성공을 거둠으로써 그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이 행사는 아직까지 과학자들이 가진 환경에 대한 우려가 대중들에게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했으며 아울러 환경에 대한 고조된 관심이 입장의 공유로부터 도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 주었다. 1972년의 스톡홀름 환경회의는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들의 국제연대 가능성을 타진한 최초의 회의였다. 이와 함께 '생태학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 개념이 의미하는 바는 여전히 모호하고 혼란스러웠지만, 적어도 지구가 훨씬 더 소중하고 상처받기 쉬운 존재라는 것에는 어느 정도 동의가 생겨났다.
 

지구환경의 병리를 다루는 '새로운' 의사, 즉 생태학자들

가속적인 환경의 파괴는 분명 과학적 진보의 결과였다. 그러나 '생태학의 시대'는 과학 일반이 저지른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일군의 과학자들, 즉 생태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패러독스를 만들어냈다. 대중들은 생태학이 유용한 데이터들뿐 아니라 도덕적 계몽으로 가는 길을 제공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이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생태학이 그런 지도적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는 행동하는 양심이나 제도적 뒷받침 이상의 무언가, 즉 거대한 문제를 다루기 위한 통합이론이 필요했다. 이 문제의 해결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이 유진 오덤(Eugene Odum)과 하워드 오덤(Howard Odum)이었다.

이들은 환경주의가 막 나타나던 시기에 활동의 정점을 맞이했으며 이들 역시 열렬한 환경주의자였다. 이들은 생태학이 실용적 가치를 가지려면 수학적이고 통계적인 언어로 기술된 생태계(ecosystem)에 대한 통합이론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고, 그 이론은 환원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전체론적인 것이어야 했다. 유진 오덤은 생태계가 생태학에서의 기본적인 기능적 단위라고 생각했는데, 그에 따르면 생태계란 "그 에너지의 흐름이 명확하게 정의된 영양 구조나 생물종 다양성, 물질의 순환으로 이어지도록 주어진 영역 안에서 상호작용하는 물리적 환경과 유기체를 포괄하는 단위"를 의미했다. [이런 점에서 생태계를 강조하는 오덤의 입장을 생태계 생태학(ecosystem ecology)이라고 부른다. 다음 장에서 볼 수 있듯, 1980년대 이후에 생태계 생태학은 조금씩 그 영향력을 잃어 가면서 진화생태학에 그 자리를 물려주고 있다.] 그는 생태계가 주어진 조건 하에서 가능한 한 크고 다양한 유기적 구조를 성취하려는 "발전의 전략"을 가진 자기조직하는 존재라고 믿었다. 그에 따르면 생태계는 항상성(homeostasis)을 지닌 것이었고, 이를 위해 특정 영역 속의 유기체들은 공생과 협동을 해야만 했다. 오덤은 클레멘츠(Frederic Clements)의 "극상(climax)" 관념을 계승하여 "성숙한 생태계(mature ecosystem)"를 상정하고 변화하는 생태계는 항상성을 지니는 이 단계에 도달하려는 경향을 지닌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의 시점에서 생태계에 가해지는 심대한 교란은 인간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라고 파악했기에, 자신의 책의 마지막 부분을 할애해서 인간의 행동을 규제하려는 일련의 정책을 제안했는데 그는 이것이 자신이 내놓은 과학의 일부분―즉, 그것의 논리적 귀결―이라고 믿었다.

생태계를 기계적인 것과 유기적인 것 양자 모두로 파악했던 유진과는 달리 하워드 오덤은 그것을 전적으로 기계적인 것으로 파악했다. 그는 에너지의 흐름을 통제하여 환경 문제에 대한 기술적 해결책을 추구하는 "생태-기술관료주의자(eco-technocrat)"였다. 따라서 이들 형제의 입장은 자연의 질서에 대한 경외와,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예컨대 아폴로 우주선을 만들어 낸) 인간의 능력에 대한 존경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환경주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자연정복(즉, 일종의 환경관리주의)으로 귀결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들의 생각이 내포한 이런 모순은 권력 상층부에서 이들의 프로그램에서 "효율적 관리"의 메시지만을 강조해 받아들이고 이들에 대해 지원을 아끼지 않은 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1960년대 중반부터 국제적인 생태학 연구 프로그램(International Biology Program, IBP)가 추진되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한편, 생태계 전체를 탐구의 대상으로 하는 오덤 형제의 거대이론체계에 반발하는 경향이 점차 나타났다. 비판자들은 오덤 식의 생태학이 검증불가능한 추측만을 남발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이는 과학이 아니라 일종의 메타생물학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판자들 중 대표적인 인물은 로버트 맥아더(Robert MacArthur)를 들 수 있다. 그는 연구대상의 폭을 좀더 좁혀 동물개체군으로 한정하고 이들에 대해 보다 수학적이면서도 예측력을 높여 줄 수 있는 이론적 생태학을 추구했다. 특히 그의 관심은 둘 이상의 상호작용하는 종이 어떻게 평형 상태에 도달하는가를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었는데, 그는 그것이 기후와 같은 외적 요인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장소가 갖는 수용력(capacity)에만 의존하는 함수로 나타남을 증명하려 하였다. 그의 생태학은 자연을 기계와 같은 것으로 파악하였으며 진정한 과학은 "기계류 지향적(machinery oriented)"인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맥아더의 접근은 여러 측면에서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의 접근이 생태학을 보다 정량적이고 검증하기 쉬운 학문으로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환경 보호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나아가 보다 근본적인 비판으로는, 보다 수학적인 접근을 선호하는 그룹 역시 기계적 결정론을 견지하였다는 점에서 형이상학적·은유적 용어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카데믹한 생태학이 점차 수학적·정량적 방법을 강조하는 맥아더 류의 접근으로 이동해 간 데 비해, 대중적인 차원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이론은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이 제창한 가이아(Gaia) 이론이었다. 그의 문제의식의 출발점은 왜 지구가 생명체가 살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 되었을까라는 의문이었는데, 그는 이 물음에 답해 지구를 바꿔 놓은 것은 생명체 그 자체라고 답했다. 이 말 속에 담긴 그의 의도는 생명체들이 서로 협동하여 지구의 화학적 작용을 통제 ―예컨대 대기의 조성 변화―할 수 있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생명체와 지구대기가 공진화(co-evolution)해 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현상에 그리스 신화의 대지의 여신의 이름인 '가이아'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자신의 이론에 미묘한 색채를 부여했다. 이로부터 가이아는 생물학에 관한 검증가능한 가설인 동시에 영적인 느낌의 대상이 되는 이중성을 띠게 되었다.

생명체들간의 경쟁보다는 협동과 공생을 중시하는 가이아 이론은 이전의 생태학 이론, 특히 오덤의 그것과 상당한 공유점을 지니고 있었고 환경주의자들로부터도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러브록 자신은 환경주의가 가이아의 건강이 아닌 인간들 자신의 건강에만 집착한다고 비판하면서 이 둘을 서로 분리하였다. 그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는 여러 문제들이 가이아에게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에는 환경주의의 입장을 받아들였고, 특히 식량생산을 위한 농업이 지구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최근 저서에서 그는 애초의 입장을 바꿔 현재 가이아가 상당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가이아 이론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유기체로서의 지구라는 관념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부활시켰다는 의미를 지닌다.
 

Ch 17. Disturbing Nature
 

과거에는 인간이 평온하고 조화로운 자연을 교란하는 골치아픈 존재였다면, 이제는 자연 그 자체가 골치아픈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제 1회 지구의 날 행사가 있은 지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볼 때, 이제 지난 세대의 학자들이 공유했던, 자연은 조화로운 것이고 평형이나 균형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공감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은 덜 합리적이고, 덜 안정하고, 덜 조화로운 것이 되었다. 생태학 내부에서는 오덤의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생태계와 항상성에 대한 강조가 줄어들고 있다. 이는 최근의 생태학 교과서들에서도 엿볼 수 있는 경향이다.

생태학의 세대 구분을 가로지르는 핵심적인 질문은 생태학적 천이(succession)의 결과가 안정 상태로 귀결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맞추어져 있다. 오덤과 맥아더를 포함하는 이전 세대의 생태학자들은 그것이 안정 상태로 귀결된다고 답했다. 그러나 1973년, 드러리(William Drury)와 니스벳(Ian Nisbet)은 변화가 특정한 방향 없이 진행되며 안정 상태와 같은 것에는 결코 도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여 종래의 가정에 근본적으로 도전하였다. 이들은 20세기 초에 클레멘츠의 이론에 이의를 제기했던 헨리 글리슨(Henry Gleason)을 새로이 복권시켰는데, 글리슨은 세계가 끊임없는 흐름 속에 존재하며 그 속에서 안정 상태나 균형, 평형 따위는 찾아볼 수 없고 모든 식물 군락은 여러 종들이 일시적으로 뒤섞여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했었다. 드러리와 니스벳의 이런 주장은 이후 새로운 생태학의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게 된다.

새로운 생태학은 교란(disturbance)이라는 개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오덤의 전성기부터 이미 쓰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오덤 시기에는 이 개념이 극단적인 외재적 변화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고 결코 "자연스러운" 어떤 것으로 인지되지 않았다. 반면 새로운 세대의 생태학자들은 이런 사고를 더이상 갖고 있지 않았다. 새로운 세대의 생태학자들은 자연 속에서 인간에 의해 야기되지 않은 교란의 흔적을 찾는 작업에 몰두하여, 불, 바람, 화산, 가뭄, 미생물·해충·포식자의 침입과 같은 (이전에는 무시되었던) 요인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새로운 생태학에서는 '극상'과 같은 개념은 설 자리를 잃었고, '생태계'의 개념을 대신하여 "조각(patch)"과 같은 용어가 사용되었다. 새로운 생태학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에 대한 관찰 결과가 필요했는데, 이 작업은 마가렛 데이비스(Margaret Davis)의 꽃가루 화석 연구 등에 의해 수행되었다. 그러나 경험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남아 있었다. 왜냐하면 무엇이 안정한 것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 것인지는 어떤 지역에 대해 어떤 기간을 연구의 대상으로 잡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같은 시기의 같은 지역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조차도 정반대의 결과들을 낳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논란들에도 불구하고 점차로 분명해진 것은, 교란이 '자연스러운' 어떤 것이라는 인식이었다. 자연은 더 이상 고도로 구조화되어 있고, 질서잡히고, 조절되어 있는, 안정 상태의 시스템이 아니었다. 안정이 아닌 변화야말로 생태권의 내적이고 자연스러운 성격인 것처럼 보였다.

새로운 세대의 생태학은 어떻게 보면 같은 자료를 놓고 그것을 해석하는 관점―말하자면 일종의 패러다임―이 변화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생태학에서 안전성보다는 변화를 강조하게 된 원인은 무엇이 있을까? 그 이유는 일차적으로 개체군 생물학(population biology)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의 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즉,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와 같은 전체론적 접근을 요구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정량적인 접근에만 관심이 있는 학자들의 수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 새로운 개체군 생물학자들은 경쟁이 항상 균형을 가져온다고 믿었던 이전 세대인 맥아더와도 달랐다. 이들은 균형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세대의 가장 대표적인 비판자로는 심버로프(Daniel Simberloff)가 있는데, 그는 이전 세대의 생태학자들이 공유하고 있었던 모든 형이상학적 가정들과 그에 기반한 이분법적 대립을 일소할 것을 주장했다. 그에게 있어 생태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체성과 특수성에 대한 강조였다. 그는 딱딱하고 법칙적이며 질서잡히고 웅장하며 관료적인 주류적 과학의 이미지를 거부하고 확률론적인 과학과 상대적인 진리를 옹호했다. 이 새로운 세대의 생태학자들은 지난 20여년 간을 풍미하던 신(新)다윈주의적 진화생태학(evolutionary ecology)의 기본 가정을 물려받으면서도 그것을 좀더 급진적인 형태로 제시했다.

새로운 세대의 생태학의 이면에는 선진 산업사회 일반에서 일어나고 있던 세계관에서의 변화가 깔려 있었다. 그것은 자연 속에 내재하는 일상적인 무질서(disorder)의 발견(나아가 그것에 대한 찬양)이었다. 이런 무질서를 다루는 새로운 탐구 분야는 카오스 과학(science of chaos)으로 통칭되었다. 카오스 과학은 자연이 단순하고 선형적이며 합리적 질서를 가진 시스템이라는 고전적 뉴튼주의의 가정을 전복하였고, 자연이 과학자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이었음을 드러내 보였다. 카오스에 대한 과학적 탐구는 1961년 로렌쯔(Edward Lorenz)에 의해 소위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가 제안됨으로써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로부터 자연에는 영향 관계를 따지기에는 너무 많은 변수들이 존재하며, 그 결과 자연의 과정은 본질적으로 비선형적인 것이라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이런 결론이 생태학에 미친 영향은 심대한 것이었다.

새로운 이론의 대중성에도 불구하고 카오스 이론으로 '전향'한 생태학자의 수는 적었다. 이는 생태학이 다소 보수적인 학문 분야라는 점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로버트 메이(Robert May)와 같은 이의 방향선회는 상당히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결정론적 설명을 버리지는 않았지만 종 사이에서 발견되는 다양성이 그동안 가정되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 생태학자들이 불확실성에 완전히 투항했다고 생각해선 안된다. 그들은 단지 질서를 찾아내기가 생각보다 어렵고 그 속에 불확실성이 내재해 있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그들은 결코 질서를 찾아내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무질서에 내재한 질서를 탐구하고 더 나아가 질서와 카오스를 통합하려는 시도를 보여 주었다. 이러한 시도는 복잡성(complexity)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복잡성 과학에서는 질서와 변화가 상호 전환가능한 것이었고 생태계 역시 지속적인 변화 속에서 전이하는 패턴으로 이해되어야 했다. 그리고 여기서는 안전한 시스템이 어떻게 교란되는가가 아니라, 시스템이 국소적·일시적으로 안정성을 성취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가 역으로 설명을 필요로 하는 현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새로운 생태학적 사고들은 어떤 실용적·윤리적 함의를 갖고 있는가? 즉, 복잡성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환경 파괴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만약 자연이 본질적으로 안정적이고 항상성을 지니는 것이 아니고 그 속에 항상 '자연적인' 교란의 요인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면, 자연에 대해 인간이 가하는 교란(즉, 인간에 의한 환경 파괴)이 특별히 더 문제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새로운 생태학은 환경주의와 어떤 관련을 맺을 수 있겠는가? 이 물음에 답하는 다음 두 가지 입장이 있었다. (1) 생태학과 환경주의를 분리하려는 입장: 이 입장에서는 생태학이 환경주의와는 무관하며 그 자체의 탐구 의미를 갖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 입장의 대표적인 논자는 폴 콜링보(Paul Colinbaux)이다. (2) 현대 기술에 대한 추구와 환경에 대한 우려를 절충하려는 입장: 이 입장은 초기 환경운동이 과학기술 그 자체를 비판했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급진적이라고 비판하면서 환경 보호에 대한 보다 유연한(flexible) 표준을 적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입장의 문제점은 환경을 위해 적절한 과학기술의 수준과 성장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 주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었다. 이 입장의 대표적인 논자는 대니얼 보트킨(Daniel Botkin)이다. 환경주의의 입장에서 보기에 사실 이 두 입장 모두가 대단히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생태학이 빠진 이러한 '위기'로부터 그것을 건져낸 것은 80년대 말 이후 부활한 환경주의의 물결이었다. 부활한 환경주의는 생물종들을 멸종으로부터 보호하여 생물종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을 생태학이 할 수 있는 기여의 최저 한도로 잡았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운동의 대표주자는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이다.
 

역사의 무질서

생태학의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생태학이 역사(=시간에 따른 변화에 대한 관심)의 한 분과가 될 때까지 그것을 지속적으로 역사화시키는 작업이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태학은 '역사의 세기'라고까지 할 수 있는 19세기의 산물이다. 그러나 19세기가 만들어 낸 두 개의 흐름, 즉 인간의 역사와 자연의 역사는 그동안 서로 분리된 연구 분야로 존재했다. 이는 그동안 인간의 역사는 불안정하고 교란이 상존하는 반면, 자연의 역사는 안정하고 평형을 유지하는 것으로 그려져 왔고, 따라서 자연이 사회를 위한 모델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의 생태학의 발전으로 이 둘 간의 간격은 좁혀지고 있다. 이 둘은 이제 모두 역사주의(혹은 역사적 상대주의)의 원리―무분별한 상대주의를 피하면서 사건들을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시키는―에 입각하는 학문 분야로 볼 수 있다. 이제 통합된 역사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결론을 보면, (1) 살아 있는 자연은 상호의존성의 원리에 의해 작동한다, (2) 단일하지는 않지만 자연 속에는 우리가 필요한 모델들(예컨대 지탱가능한 사회의 모델)이 들어 있다, (3) 역사는 변화가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은 그 중 어떤 변화가 우리에게 바람직한 것인가를 가려 내는 것이다. 어떤 변화가 더 좋은지를 판별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최선은 '변화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