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드러난 일련의 사건들은 난자 기증 문제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훌쩍 높여 놓았다. 11월 8일에 '황우석 사단'의 일원으로 알려진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원장이 불법 난자매매에 관여한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11월 12일에는 2년 가까이 황우석 교수와 연구 협력관계를 맺어 온 미국 피츠버그대학의 제랄드 섀튼 교수가 연구용 난자 기증에서의 부정행위 의혹을 들어 협력관계의 종식을 선언했다. 이를 보면서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난자를 매매하고 심지어 일본에 수출까지 알선하는 인터넷 까페가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올해 초에 발효된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에서 정자나 난자의 매매를 금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언론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러한 언론보도를 접한 후 상당수의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궁금증이 생겼을 것이다. 국내의 불임시술과 난자 기증의 실태는 어떠한가? 우리보다 먼저 체외수정을 이용한 불임시술법을 도입한 서구 선진국들의 경우에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으며, 그러한 정책을 취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서구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바람직한 난자 기증 정책은 어떠한 방향을 취해야 하는가? 그리고 최근 새롭게 등장한 배아복제 연구와 난자 기증과의 관계는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런 물음들에 답하기 위해 먼저 미국, 영국, 독일을 예로 들어 서구 선진국들의 불임시술 정책을 서로 비교해 가며 살펴보기로 하자.
 

자유방임적 (무)규제정책의 폐해: 미국
 

불임시술이나 난자 기증에 관한 서구 국가들의 법률과 규제체계는 국가별로 크게 상이점을 보인다. 그 한쪽 극단에는 불임시술에 대해 사실상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고 시장의 논리에 거의 모든 것을 맡기고 있는 미국이 있다. 미국은 서구 선진국들 중 불임시술을 규제하는 국가적 차원의 법률이나 규제체계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국가이다(몇몇 주들이 자체적인 규제체계를 갖고 있긴 하지만). 불임시술을 할 수 있는 의료기관의 운영이 의사와 전문직 단체들의 자율성에 맡겨져 있으며, 배아의 생성·착상·보관·폐기, 정자와 난자의 채취나 기증, 대리모 등을 관장하는 별도의 규제체계도 없다. 이러한 미국의 정책은 개인의 (거의 무제한적인) 자유, 자유시장, 전문직의 자율성 존중이라는 미국의 전통적 가치체계와 분리시켜 생각하기 어렵다.

미국에서는 난자를 '기증'할 때 주어지는 금전적 보상의 액수도 별도의 규제가 없이 시장논리에 의거해 결정되기 때문에 '기증'의 탈을 쓴 사실상의 난자'매매'가 자유롭게 행해지고 있다. 난자 기증의 현재 '시장 가격'은 1회당 5천 달러(5백만 원) 선이며, 특정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기증자의 경우 액수가 1만∼5만 달러(1천만∼5천만 원)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주요 대학의 신문에는 키, 인종, 나이, 신체 특징, 학업 성적 등을 명시해 이를 충족시키는 기증자에게 고액을 제시하는 '난자 구함' 광고가 심심찮게 실린다고 한다.

이와 같은 미국의 난자'기증' (무)정책은 불임시술 의료기관들이 겪는 심각한 난자 부족 현상을 해결하고 난자를 기증하는 여성들이 겪는 불편함이나 건강상의 위험을 금전적으로 '보상'해 준다는 점에서 일견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이는 그러한 면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심각한 사회적·윤리적 문제를 낳고 있다. 먼저 그러한 금전적 유인을 통해 가난한 젊은 여대생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위험에 노출되고 신체적으로 착취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빚에 쪼들리거나 학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여대생들이 난자 기증의 구체적인 절차나 위험 등에 대해 잘 모른 채 많은 액수의 돈에 유혹되어 난자를 내놓는 일들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미국에서는 마치 피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듯이 계속해서 난자를 팔아 그 돈으로 학업을 계속해 온 이른바 '연쇄 난자 기증자(serial egg donor)'가 쓴 책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무려 12차례나 난소과배란 처치를 받은 이 여성은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린 끝에 결국 난자 기증을 그만두었고 지금까지도 심한 월경전 증후군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함께 미국에서는 불임시술 의료기관들이 기증자 확보를 위해 난자 기증시 겪을 수 있는 위험을 불충분하거나 부정확하게 설명함으로써 잠재적 기증자를 호도하는 경향이 흔히 나타나고 있으며, 반대로 금전적 보상을 원하는 난자 기증자가 자신이 가진 질병이나 유전적 특성을 숨김으로써 기증받은 부부나 나중에 태어난 아이에게 피해가 돌아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익명성이 보장되는 기증 ― 불임클리닉을 매개로 서로 모르는 불임부부와 난자 기증자가 연결되는 식의 ― 이 일반적이다 보니 기증자들이 난자 기증이 진정으로 함축하는 바(자신의 난자로 태어나는 아이에 대한 책임의식)를 깊이 생각해 보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의 함의에 대한 숙고와 배려: 독일과 영국
 

불임시술과 관련해 미국의 반대쪽 극단에 있는 대표적인 국가로 독일을 꼽을 수 있다. 개인의 자유보다는 인간의 존엄성을 헌법에서 상위에 두고 있는 독일은 그러한 정신의 연장선상에서 배아와 태아에 대한 보호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목표와 여성 신체의 자율성에 대한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독일에는 불임시술을 담당하는 의료기관에 대한 별도의 규제나 등록 조치는 없지만, 1990년에 제정된 배아보호법을 통해 불임시술 자체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자궁에 착상되는 것 이상의 배아를 창출하는 행위, 한 번에 세 개 이상의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키는 행위, 연구용으로 배아를 창출하는 행위 등은 모두 불법이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또한 독일에서는 난자 기증과 대리모 시술 자체가 법에 의해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이를 어길 경우 역시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따라서 독일에서의 불임시술은 불임부부 자신의 난자를 써서 배아를 만든 후 이를 하나도 남김없이 자궁에 이식하는 방식으로만 진행될 수 있다(독일 외에 아일랜드,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주로 가톨릭 국가들이 이와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난자 기증과 대리모 시술을 금지하는 독일의 규제방향은 불임시술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불임부부의 폭을 좁힌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가령 난소나 자궁 어느 한쪽에 문제가 있는 여성의 경우에는 독일 내에서 불임시술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불임부부의 고통을 일방적으로 무시한 것이라기보다는, 난자 기증, 대리모 등으로 인한 가족·친족관계의 붕괴나 난자를 기증받아 체외수정으로 태어난 아이가 나중에 겪을 혼란 등을 함께 고려해 만들어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반면 영국의 경우는 미국과 독일의 중간쯤 되는 제3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영국은 배아에 특별한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지 않으며, 배아의 폐기나 배아 연구(심지어 배아복제 연구까지)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일과 구분된다. 그러나 영국은 1990년에 제정된 인간수정및발생학법에 의거해 불임시술과 연구 전반을 관장하는 관청인 인간수정및발생학청(Human Fertility and Embryology Authority, HFEA)이 생겨나 불임시술에 대한 규제를 담당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영국에서는 불임시술을 하는 모든 의료기관은 HFEA에 먼저 등록해 인가를 받아야 한다. HFEA는 체외수정, 배아이식, 정자·난자·배아의 관리 등을 담당하는 의료기관을 규제하고 자료를 수집하며 관련 지침을 제시하는 등의 임무를 맡고 있다. 영국에서는 한 번에 두 개 이상의 배아를 자궁에 착상하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으며, 난자 기증이나 대리모 시술은 가능하지만 금전적 보상은 거의 주어지지 않는 이타적인 행위로만 한정된다.

난자 기증의 경우 영국에서는 최근까지 난자 채취 과정에서 들어간 실제 경비(교통비, 숙박비 등) 이외에 15파운드(27,000원 정도) 이내의 보상만이 허용되었다. 이 때문에 난자 기증자가 겪는 불편함과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하지 못함으로써(결근 등) 생기는 불이익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대두되었고, 올 10월에 HFEA는 2년에 걸친 자문 과정을 거쳐 난자 기증자에 대한 보상을 배심원으로 활동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과 유사한 금액(하루에 50파운드 내외)까지 끌어올리는 권고안을 내놓았다. 다만 이 경우 총액은 250파운드(대략 45만원 정도)를 넘을 수 없게 규정해 미국과 같은 금전적 보상의 개념으로 이해되지 않게 했다.

난자 기증시 주어지는 금전적 보상에 대한 규제 때문에 영국에서는 불임시술에서 난자 부족 문제가 상시적으로 보고되고 있다(영국에서 불임시술용 난자를 기증받으려면 5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보고도 있다). 이 때문에 불임 전문의들 중에서는 미국과 같은 시장 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소수 존재한다. 이에 대해 이러한 시스템이 가져올 수 있는 폐해를 우려하는 반대 진영에서는 난자 공유(egg sharing)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난자 공유란 불임클리닉을 찾은 여성 중 난소과배란을 통해 다수의 난자를 채취한 여성이 자신의 난자 일부를 같은 불임클리닉에서 난자 기증을 받고자 하는 다른 여성과 나누는 방식이다. 이 경우 자신의 난자를 나눠준 여성은 불임시술에 들어가는 비용 일부를 병원측으로부터 감면받을 수 있게 된다. 이 방식이 난자 기증과 다른 점은, 불임시술과 직접 연관이 없는 제3자를 기증자로 삼을 필요가 없어져 금전적 보상의 문제가 줄어든다는 것이다(영국은 제3자의 난자 기증과 난자 공유를 모두 허용하는 데 반해, 캐나다, 스위스, 덴마크, 이스라엘 등의 국가들은 오직 난자 공유만을 허용하고 있다. 즉, 이들 국가에서는 제3자에 의한 이타적 난자 기증이 불법인 셈이다).

난자 기증에 대한 영국의 규제법령에서 최근 생긴 주목할 만한 점 하나는, 정자나 난자 기증을 둘러싼 오랜 익명성의 전통을 깨고 2005년 4월부터 불임시술로 태어난 아이가 18세가 되었을 때 정자나 난자 기증자의 신원을 알려주도록 법을 개정했다는 것이다. 이는 기증된 정자나 난자로 태어난 아이와 이를 키운 부모 사이의 가족관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부모와 아이에게 알 권리를 부여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이러한 조치는 정자나 난자 기증자에게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책임성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미국과 유사한 한국,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위의 세 나라의 사례와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을 비교해 보면, 한국은 미국이 처한 상황과 가장 흡사하며 그것을 모델로 움직여 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올해 초에 생명윤리법이 통과되면서 정자와 난자의 매매 금지가 원칙적으로 규정되긴 했지만, 여기서 주어질 수 있는 보상의 규모나 성격에 대한 규정이 사실상 빠져 있기 때문에 법률의 유효성이 크게 의문시되고 있는 상황이다(일례로 이번 미즈메디 병원의 난자 '매매' 사건에서 볼 수 있듯, 맥락을 놓고 보았을 때 '매매'임이 확실한 150만원이라는 액수를 놓고 '정당한 보상'이라고 우길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또한 난자 기증을 제외한 불임시술의 기타 전 과정에 대한 규제법령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의사협회 등에서 만든 몇 개의 윤리지침 내지 선언 등이 있긴 하지만, 이는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시술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에 관한 통제장치로서는 크게 미흡하다. 따라서 미국에서와 같은 난맥상을 피하기 위해서는 정자와 난자의 매매 금지와 관련된 법 규정이 크게 보완될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고, 여기에 더해 배아의 생성·착상·보관·폐기, 정자와 난자의 관리, 대리모 시술, 관련 감독 관청 등 불임시술 전반에 관한 내용을 담은 새로운 규제법령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연구용 난자 기증에 대해 간단히 짚어보도록 하자. 사실 불임시술이 아닌, 오직 줄기세포 연구만을 위한 난자 기증이라는 것은 매우 최근에서야 나타난 현상이며, 현재까지 그것이 가장 활발한 나라는 한국이다. 이는 미국에서 올해 들어서야 비로소 연구용 난자 기증에 관한 미국과학아카데미의 자율적 규제지침이 나왔으며, 배아복제 연구가 허용되어 있는 영국에서도 아직까지 연구용 난자 기증이라는 것이 이뤄진 적이 없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영국에서 지금까지 이루어진 모든 배아복제 연구는 '잔여' 난자를 이용한 것이다).

연구용 난자 기증은 불임시술용 난자 기증보다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다. 먼저 연구용 난자 기증은 기증자 자신에게 아무런 실익도 없는 반면 난자채취 때 수반되는 위험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위험에 대한 충분한 정보제공과 이에 근거한 동의를 필요로 한다. 여기까지는 불임시술용 난자 기증과 겹치는 부분이다. 그러나 기증을 받은 사람이 분명한 실익을 얻는 불임시술용 난자 기증이나 통상적인 장기 기증의 경우와 달리, 줄기세포 연구를 위한 난자 기증은 그러한 기증 행위로부터 나타날 수 있는 실익조차도 분명하지가 않다. 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가 난치병 치료를 위한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것으로 흔히 평가되긴 하지만, 그러한 잠재력이 실제로 실현될지, 된다면 언제쯤 될지는 전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장된 성과 예측에 근거한 잘못된 판단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연구용 난자 기증자는 난자채취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인지에 더해 난자 기증으로부터 얻어질 수 있는 실익의 불확실성까지도 충분히 숙지한 후에 동의 절차에 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