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에 터진 일련의 사건들은 난자기증 문제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훌쩍 높여 놓았다. 미즈메디병원의 불법 난자매매 사건이 경찰의 조사를 받더니, 의형제라고까지 불리던 황우석 교수와 섀튼 교수가 난자기증 과정에서의 부정행위 의혹 때문에 갈라서고, PD수첩의 매매난자 연구 이용 보도에 이어 급기야 황우석 교수가 그동안의 의혹을 시인하고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난자기증과 관련된 많은 새로운 사실을 접하게 되었을 것이다. 난자를 매매하고 심지어 일본에 수출까지 알선하는 인터넷 까페가 수년 전부터 있었으며, 올해 초에 발효된 생명윤리법에서 정자나 난자의 매매를 금지하고 있다는 사실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더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과연 노성일 이사장이 주었다는 150만원은 '정당한 보상'인가, '매매'의 대가인가? 서구 선진국들의 경우에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그리고 서구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바람직한 난자기증 정책은 어떠한 방향을 취해야 하는가?
 

미국과 닮아가는 한국의 상황
 

난자기증 정책과 관련된 현재 한국의 상황은 서구 선진국들 중 미국의 경우와 가장 흡사하다. 물론 생명윤리법에서 정자와 난자의 매매 금지를 원칙적으로 규정하고 있긴 하지만, 기증 과정에서 제공할 수 있는 보상의 규모나 성격에 대한 시행령 차원에서의 규정이 미흡하기 때문에 법률의 유효성이 크게 의문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상황은 어떤가? 미국은 서구 선진국들 중 불임시술을 규제하는 국가적 차원의 법률이나 규제체계를 사실상 두지 않고(몇몇 주들이 자체적인 규제체계를 갖고 있긴 하지만) 시장의 논리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이다. 불임시술을 할 수 있는 의료기관의 운영이 의사와 전문직 단체들의 자율성에 맡겨져 있으며, 배아의 생성·착상·보관·폐기, 정자와 난자의 채취나 기증, 대리모 등을 관장하는 별도의 규제체계도 없다.

미국에서는 난자를 '기증'할 때 주어지는 금전적 보상의 액수도 별도의 규제가 없이 시장논리에 의거해 결정되기 때문에 '기증'의 탈을 쓴 사실상의 난자'매매'가 자유롭게 행해지고 있다(흔한 오해 중 하나가 미국에서는 대놓고 난자에 값을 붙여 사고판다는 생각인데, 그래도 미국에서 공식 명칭은 여전히 난자'기증'이다. 매매에 대한 대가는 '난자 값'이 아니라 기증 과정에서의 불편함에 대한 '보상'이라는 명목으로 제공된다). 난자기증의 현재 '시장 가격'은 1회당 5천 달러(5백만 원) 선이며, 특정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기증자의 경우 액수가 1만∼5만 달러(1천만∼5천만 원)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주요 대학의 신문에는 키, 인종, 나이, 신체 특징, 학업 성적 등을 명시해 이를 충족시키는 기증자에게 고액을 제시하는 '난자 구함' 광고가 심심찮게 실린다고 한다.

이와 같은 미국의 난자'기증' (무)정책은 심각한 사회적·윤리적 문제를 낳고 있다. 먼저 그러한 금전적 유인을 통해 빈곤층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위험에 노출되고 신체적으로 착취될 가능성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가령 빚에 쪼들리거나 학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여대생들이 난자기증의 구체적인 절차나 위험 등에 대해 잘 모른 채 많은 액수의 돈에 유혹되어 난자를 내놓는 일들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최근 미국에서는 마치 피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듯이 계속해서 난자를 팔아 그 돈으로 학업을 계속해 온 이른바 '연쇄 난자기증자(serial egg donor)'가 쓴 책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무려 12차례나 난소과배란 처치를 받은 이 여성은 부작용으로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린 끝에 결국 난자기증을 그만두었고 지금까지도 심한 월경전 증후군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함께 미국에서는 불임시술 의료기관들이 기증자 확보를 위해 난자기증시 겪을 수 있는 위험을 불충분하거나 부정확하게 설명함으로써 잠재적 기증자를 오도하는 경향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미국의 상황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PD수첩 보도에서 잘 드러났듯이, 카드빚에 쪼들리거나 생계가 어려운 극빈층 여성들이 금전적 유인 때문에 난자기증에 나서면서 잠재적 위험에 노출되고 착취될 가능성이 이미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난자매매를 금지하면서도 정작 구체적인 보상관련 조항은 담고 있지 못한 생명윤리법의 허술함에 부분적으로 기인하고 있다. 일례로 이번 미즈메디 병원의 난자 '매매' 사건에서 볼 수 있듯, 맥락을 놓고 보았을 때 사실상의 '매매'임이 분명한 150만원이라는 액수를 놓고 '정당한 보상'이라고 우길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또한 PD수첩의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 중 일부는 난자기증 과정에 얽힌 위험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고, 심지어 자신이 제공한 난자가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조차 듣지 못했다고 하니 이는 미국의 경우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에는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의사협회 등에서 만든 몇 개의 윤리지침 내지 선언 등이 있긴 하지만, 이는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시술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에 관한 제어장치로서는 크게 미흡하다. 따라서 미국에서와 같은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정자와 난자의 매매 금지와 관련된 법 규정이 크게 보완될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고, 여기에 더해 배아의 생성·착상·보관·폐기, 정자와 난자의 관리, 대리모 시술, 관련 감독 관청 등 불임시술 전반에 관한 내용을 담은 새로운 규제법령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바람직한 규제모델의 방향: 영국의 경우
 

이러한 규제법령 마련에 있어서는 여러 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모델로 삼을 수 있다. 난자기증을 비롯한 불임시술 관련 정책에서 유럽은 국가별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 중 극단적인 경우는 1990년 제정된 배아보호법을 통해 난자기증과 대리모 시술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이를 어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한 독일에서 찾을 수 있다(독일 외에 아일랜드,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주로 가톨릭 국가들이 이와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 좀더 중요한 시사점을 줄 수 있는 사례는 미국과 독일의 중간에서 제3의 입장을 위하고 있는 영국이 아닌가 생각된다.

영국은 배아에 특별한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지 않으며, 배아의 폐기나 배아 연구(심지어 배아복제 연구까지)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일과 구분된다. 그러나 영국은 1990년에 제정된 인간수정및발생학법에 의거, 불임시술과 연구 전반을 관장하는 관청인 인간수정및발생학청(Human Fertility and Embryology Authority, HFEA)을 설치해 불임시술에 대한 규제를 담당하고 있다.

영국에서 불임시술을 하는 모든 의료기관은 HFEA에 먼저 등록해 인가를 받아야 한다. HFEA는 체외수정, 배아이식, 정자·난자·배아의 관리 등을 담당하는 의료기관을 규제하고 자료를 수집하며 관련 지침을 제시하는 등의 임무를 맡고 있다. 이에 따라 영국에서는 채취된 난자 하나하나, 생성되고 파괴된 배아 하나하나에 대한 기록이 모두 HFEA에 보고되어 엄격하게 관리된다. 또한 영국에서 난자기증이나 대리모 시술은 가능하지만 금전적 보상은 거의 주어지지 않는 이타적인 행위로만 한정된다.

난자기증의 경우 영국에서는 최근까지 난자 채취 과정에서 들어간 실제 경비(교통비, 숙박비 등) 이외에 15파운드(27,000원 정도) 이내의 보상만이 허용되었다. 이 때문에 난자기증자가 겪는 불편함과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하지 못함으로써(결근 등) 생기는 불이익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대두되었고, 올 10월에 HFEA는 2년에 걸친 자문 과정을 거쳐 난자기증자에 대한 보상을 배심원으로 활동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과 유사한 금액(하루에 50파운드 내외)까지 끌어올리자는 권고안을 내놓았다. 다만 이 경우 총액은 250파운드(대략 45만원 정도)를 넘을 수 없게 규정해 미국과 같은 금전적 보상의 개념으로 이해되지 않게 했다.

난자기증시 주어지는 금전적 보상에 대한 규제 때문에 영국에서는 불임시술에서 난자 부족 문제가 상시적으로 보고되고 있다(영국에서 불임시술용 난자를 기증받으려면 5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보고도 있다). 이 때문에 불임 전문의들 중에서는 미국과 같은 시장 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소수 존재한다. 이에 대해 이러한 시스템이 가져올 수 있는 폐해를 우려하는 반대 진영에서는 난자공유(egg sharing)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난자공유란 불임클리닉을 찾은 여성 중 난소과배란을 통해 다수의 난자를 채취한 여성이 자신의 난자 일부를 같은 불임클리닉에서 난자기증을 받고자 하는 다른 여성과 나누는 방식이다. 이 경우 자신의 난자를 나눠준 여성은 불임시술에 들어가는 비용 일부를 병원측으로부터 감면받을 수 있게 된다. 이 방식이 난자기증과 다른 점은, 불임시술과 직접 연관이 없는 제3자를 기증자로 삼을 필요가 없어져 금전적 보상의 문제가 줄어든다는 것이다(영국은 제3자의 난자기증과 난자공유를 모두 허용하는 데 반해, 캐나다, 스위스, 덴마크, 이스라엘 등의 국가들은 오직 난자공유만을 허용하고 있다. 즉, 이들 국가에서는 제3자에 의한 이타적 난자기증이 불법인 셈이다).
 

한국의 규제정책, 방향은 어디로?
 

이제 한국에서도 곧 난자기증과 관련된 법률과 제도를 정비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이며, 그 과정에서 난자기증자에게 주어지는 금전적 보상의 범위를 결정하는 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미국과 같은 사실상의 난자 매매를 막기 위해서는, 영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그러한 보상이 (가난한) 기증자들에게 금전적 유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적절한 상한선을 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정당한 보상'을 이유로 기증자에게 많은 액수의 돈을 줄 경우, 난자기증을 하기로 이미 마음먹은 사람들에게 보상 차원의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바라보고 난자'기증'(실은 보상이 없었다면 기증하려는 생각도 나지 않았을 테니 사실상의 '매매')에 나서는 사람들을 양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낮은 보상액 때문에 나타날 수 있는 난자부족 문제에 대해 영국 등의 국가들에서 이뤄지고 있는 난자공유를 대안으로 적극 고려해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출전: 여성주의저널 <일다> 2005년 1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