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나타난 과학기술의 이미지는 한마디로 '불확실성'과 '통제불가능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런 점은 극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대(對)'사도' 결전병기인 에반게리온에서 집약적으로 나타난다. 에반게리온은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한 일종의 생체병기이자 탑승자와의 '싱크로'에 의해 동작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여기까지는 사실 그다지 새로운 점은 없다. 그러나 에반게리온은 그것의 행동을 예측하거나 제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전의 로봇 애니메이션들(마징가 Z에서 마크로스를 거쳐 건담까지)과 확실하게 다르다. 우선 에반게리온은, 종종 이유없이 '폭주'한다. 레이가 조종하는 0호기는 테스트 과정에서 두 번 폭주하여 제어불능 상태에 빠지고 조종사에게 중상을 입힌다(5화, 14화. 이후의 인용은 총 26화에 이르는 TV판의 그것을 기준으로 한다. TV판은 국내에도 10개의 비디오테이프로 재편집되어 출시되어 있다). 신지의 1호기는 처음 탑승하자마자 폭주하여 대사도 전투를 수행하며(2화), 내부에너지가 제로가 되어 전혀 기동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두 번이나 더 미친 듯이 움직이고(16화, 19화), 결국에는 신지를 그 속으로 흡수해 버린다(19화). 뿐만 아니라 대체조종 시스템인 '더미 플러그'를 연결하였을 때 처음에는 광포하게 날뛰어 사도로 변한 에바 3호기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지만(18화), 나중에는 더미 플러그의 접속 자체를 갑자기 이유없이 거부한다(19화). 아스카의 2호기는 상대적으로 '로봇'으로서의 본분(?)을 잘 수행하는 듯이 보였지만, 극이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아스카에게 '정신 오염'의 위험을 가져오고(22화) 결국에는 아스카의 조종을 거부한다(23화). 이러한 모든 사건들은 극중에서 '합리적'인 이유가 제시되지 않는, 말 그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주어지며, 에반게리온의 조종사들이나 그것의 제어를 담당하고 있는 '네르프'의 직원들에게도 경악이나 공포감으로 다가가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2화, 16화, 18화, 19화). 심지어 에반게리온은 그 활동을 '구속하려는' 각종의 장비들을 장착하고 있었음이 나중에 밝혀진다(19화). 이는 결국, 인간의 손의 연장, 하나의 도구로서의 '기계'라는 통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으며, 탑승자(능동)/로봇(수동)의 이분법이라는 관습을 파괴한다.

이런 불확실성과 예측불가능성은 극중에 등장하는 다른 과학기술적 산물의 경우에도 예외없이 적용된다. '대사도 요격 전용 요새도시'로 설정된 제3신(新)도쿄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에반게리온과 함께 첨단 과학기술의 집적체라고 할 수 있을 이 거대한 지하도시는, 외부인의 방해로 전원공급이 끊어지자 완전한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며(11화), 바이러스 크기의 사도가 침입하여 도시 전체를 통제하는 메인 컴퓨터인 '마기'에 침입하려 할 때에도 내부로부터의 치명적인 결함을 드러낸다(13화). 또한 에반게리온을 대체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원자로 내장 로봇은, 비록 나중에는 네르프의 음모에 의한 것으로 밝혀지기는 하지만, 제어불능 상태에 빠져 도시 전체를 위협한다(7화). 신지가 에바 1호기에 흡수되어 버렸을 때, 네르프가 보유한 모든 첨단기술로도 그를 '귀환'시키는 것에는 실패한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20화).

과학기술의 불확실성은 종종 인간의 '오만함'과 통제가능성에 대한 '근거없는 믿음'이라는 요인에 의해 격화되어 파멸을 불러오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7화). 특히 네르프 부사령관인 후유츠키는 40억 인구의 목숨을 앗아간 '세컨드 임팩트'의 원인에 대해 언급하면서 인간의 오만함을 질타한다(12화). 이 지점에서 <에반게리온>은 메리 셸리의 1818년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시킨다. <프랑켄슈타인> 역시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신과 오만함이 만들어낸 피조물이 그 창조자를 배반하고 통제를 거부하는 것을 테마로 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에반게리온>은 시간이 갈수록 그 유의미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프랑켄슈타인 신화'의 하나의 변주로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에반게리온>이 보여주는 과학기술 이미지의 핵심은 사실 표면적으로 보이는 '불확실성'과 '오만함'보다는 그 이면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서 "프랑켄슈타인의 신화가 남긴 심층적이고 지속적인 메시지는 우리가 미친 듯이 날뛰는 괴물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통제하고 인간의 목적에 맞게 그것을 개조하려는 욕망이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인간성 그 자체를 침식할지도 모른다는 것에 있다"고 언급한 이언 반스의 말을 떠올렸다. 그 정체가 뭔지조차 알 수 없는 적인 사도에 대항하기 위해 네르프의 사람들은 역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뭔가에 근거해서 에반게리온이라는 병기를 만들어내지만(나중에 에반게리온은 세컨드 임팩트를 일으켰던 제1사도인 '아담'의 불완전한 복제품임이 밝혀진다), 그 과정과 결과물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데 경악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에반게리온의 건조과정에서 싱크로의 실패로 적어도 한 사람이 미쳤으며 다른 한 사람은 에바 속으로 흡수되었다(21화, 22화). 또한 대사도 전투의 과정에서 에바의 조종사들(레이, 신지, 아스카)과 전투 책임자 미사토, 컴퓨터 담당자 리츠코와 마야 등의 등장인물들은 "과연 우리는 무엇을 타고 있는(혹은 만들어 낸) 것인가"라고 되뇌고 "난 누구인가?" 혹은 "난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는다(14화, 16화, 19화, 24화). 이들의 내면이 그 근저에서부터 붕괴해 가는 모습은 목적과 수단이 도치된 과학기술의 발전 - 극중에서는 사도의 출현이라는, 너무나 엄청난 외부적 위협에 대항하기 위한 것으로 정당성이 부여되고 있진 하지만 - 이 인간에게 가져오는 영향을 보여주는 설득력있는 이미지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출전: 『연세과학』 1998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