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명중?: 걸프전에서 패트리어트의 역할
 
 
 

걸프전
 

1990년 8월, 이라크 군대가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미국은 이라크에 "철수하지 않으면 군사적 충돌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에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은 '모든 전투의 어머니(The Mother of All Battles)'를 전개하겠다는 위협으로 응답했다. 이후 4개월 동안 미국은 쿠웨이트에서 이라크 군대를 몰아내기 위해 인접한 사우디아라비아에 병력을 증강했다.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이라크측의 자세를 감안한다면, 이는 곧 이라크의 군사력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병력을 집중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대규모의 군사적 충돌이 빚어질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고 전장(戰場)이 미국 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유엔의 승인과 함께 많은 국가들(특히 이라크의 인접국들)의 군사적·정치적 협력을 필요로 했다. 이러한 동맹관계에서는 아랍 국가들이 동료 아랍 국가를 공격하는 서방측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했다. 옛말에 '나의 적의 적은 내 친구'라고 했다. 그런데 당시 이집트를 제외한 모든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의 적을 갖고 있었다. 반면 미국은 이스라엘의 충실한 동맹국이었고 이라크는 이스라엘에 맞서는 중요한 나라 중 하나였다. 따라서 미국이 유지하기를 원하는 정치적 동맹관계는 언제든지 붕괴할 수 있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스라엘이 임박한 걸프전에 군사적으로 관여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만약 이스라엘이 이라크를 공격하게 되면 아랍 국가들이 중동 분쟁에서 아랍 동맹국을 공격하는 이스라엘을 직접 지지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다른 아랍 국가들이 미국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이 분명했다. 이라크의 전략은 명확했다. 그들은 쿠웨이트 침공으로 시작된 군사적 대치상태에 이스라엘을 끌어들이려 했다.

1991년 1월 17일, 연합군은 이라크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시작했고, 이 공습은 5주 동안 지속되었다. 4일간의 대대적인 지상공격이 있은 후, 2월 말이 되기 전에 전쟁은 종료되었다. 여기까지가 패트리어트 요격미사일의 유효성에 대해 제기된 논쟁의 배경이다.

공습이 있던 첫날 밤, 이라크는 이스라엘에 6발의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했다. 스커드는 원래 소련제 미사일로, 이라크군은 스커드의 길이와 사정거리를 연장해 알-후세인(Al-Husayn)이라는 이름의 개량형을 만들어 썼다. 이후에도 이라크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특히 미군 기지를 겨냥해)에 더 많은 스커드를 발사했다. 2월 25일, 미군 막사 하나가 스커드 미사일의 공격을 받아 28명이 죽고 98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한 번을 제외하면 비록 스커드 중 일부가 지상에 떨어져 폭발하기는 했지만 연합군의 인력과 물자에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고, 그런 측면에서 스커드 공격은 실패였다. 그러나 선전과 정치적 무기의 측면에서 스커드는 전쟁 초기부터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였다.

패트리어트는 걸프전에서 스커드에 대응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처음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용되었고 스커드가 이스라엘에 떨어진 이후에는 이내 이스라엘에도 배치되었다. 스커드가 군사적으로 그리 효과가 없었던 이유는 패트리어트의 성공 때문일 수도 있다. 그것의 군사적 유효성과는 별개로, 패트리어트는 이스라엘이 참전하지 않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결국 이스라엘은 이라크를 공격하지 않았고 동맹은 유지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전쟁 기간 동안 40기 이상의 스커드 미사일이 연합군을 향해 발사되었고 또다른 40여기가 이스라엘에 발사되었다. 연합군은 47기의 스커드에 대해 159기의 패트리어트를 발사해서 대응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패트리어트가 실제로 파괴한 스커드의 수는 얼마인가?
 

전쟁, 과학, 기술
 

전쟁은 혼란스럽고 복잡한 일이다. 군사작전에 대한 저명한 저술가인 마틴 판 크레펠트는 자신의 책 『전쟁에서의 지휘통제』의 187쪽에서 전쟁은 "모든 인간사 중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복잡한 일"이라고 쓰고 있다. 패트리어트의 경우에도 기술적 안개와 '전쟁의 안개'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대단히 특이한 결과를 낳았다. 이 글에서 우리의 목표는 패트리어트가 실제로 스커드 미사일을 격추시켰는지 여부가 여전히 분명치 않음을 보이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논쟁의 양 진영 모두가 [패트리어트의 성공 여부에 대해] 확고한 견해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요격미사일이 스커드의 이스라엘 공격을 저지했는지, 스커드의 사우디아라비아 공격을 저지했는지, 아니면 양쪽 모두 저지에 실패했는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다.

실험의 요체는 '잡음'으로부터 '신호'를 분리해내는 것이다. 그러면 혹자는 탄도미사일의 탄두가 폭발하는 것처럼 분명한 '신호'가 또 어디 있겠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탄두의 폭발은 확실하게 '잡음'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스커드가 목표점에 도달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거나 패트리어트가 스커드를 파괴해 폭발을 막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닌가? 하나의 기술시스템에 대해 이보다 더 확실한 테스트가 또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이는 놀라울 정도로 형편없는 테스트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패트리어트가 스커드를 격추시키는 데 얼마나 효과적이었는가에 대한 추정치는 100퍼센트에서부터 0퍼센트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패트리어트로 대응한 모든 스커드 탄두가 파괴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단 한 발도 못 맞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패트리어트의 성공률 추정치에 얽힌 이야기는 한참 전쟁이 진행중이던 1991년 초에 시작된다. 처음에는 100퍼센트 성공이라고 보도되었다. 그러다가 성공률 값이 계속 낮아져 1992년 4월에 열린 의회 청문회를 전후해서는 0퍼센트에 가까워졌다. 매번 자신있게 언급된 숫자들의 추이를 보면 처음에는 '45기 중 42기 명중'이었다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90퍼센트, 이스라엘에서는 50퍼센트 명중'으로 바뀐 후 '사우디아라비아 80퍼센트, 이스라엘 50퍼센트 명중'에서 '전체적으로 60퍼센트 명중'으로, 다시 '25퍼센트는 확실하게 명중'에서 '9퍼센트는 정말 확실하게 명중'의 순으로 바뀌었고, 결국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한 발 파괴했고 이스라엘에서도 한 발 파괴했을 가능성 있음'까지 떨어졌다. 이는 미국 정부기구가 실시한 매우 신중한 연구에서 얻어진 결과다.

여기에서 낮은 추정치들을 오해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 숫자들은 얼마나 많은 스커드가 패트리어트에 의해 파괴되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이는 얼마나 많은 스커드가 패트리어트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추정치다. 실제로는 더 많은 스커드가 파괴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높은 수준의 확실성을 요구하면 추정치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 논쟁에 매우 분명한 목적을 갖고 참여하는 집단들이 있다. 1992년, 패트리어트를 생산하는 레이씨언(Raytheon)社의 대표들은 패트리어트가 대부분의 스커드를 격추했다는 주장을 계속했다. 반면 MIT 교수인 씨어도어 포스톨은 패트리어트가 거의 완벽한 실패작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고 계속 믿고 있으며, 그러한 주장을 계속해서 밀어붙이고 있다(그는 패트리어트의 성공에 대한 낙관적인 주장에 처음으로 의문을 제기해 대중의 주목을 끌었던 인물이다). 우리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패트리어트가 실제로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 하는 문제가 궁금했기 때문이 아니라 논쟁을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글에서 논쟁 양측이 어떤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따질 생각이 없으며, 누구의 증거가 편향되어 있고 왜 그런지에 관해 어떤 결론을 제시하려는 의도도 없다. 우리는 단지 측정의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즉,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깔끔한 과학적 모범답안을 갖고 있지도 않으며 가질 수도 없다는 것이다.
 

패트리어트는 성공했는가?

전쟁의 첫번째 희생자가 진실이라는 말은 전쟁에서 사용하는 주요 무기 중 하나가 거짓말이라는 더 중요한 핵심을 놓치고 있다. 허위 정보는 적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으며, 유리한 쪽으로 편향된 성공 보고는 아군의 결속을 강화하고 적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이렇게 보면 전쟁 기간 동안 패트리어트가 엄청난 성공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던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이는 사기의 측면에서 중요했을 뿐 아니라, 사담 후세인의 군대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유대인의 국가[이스라엘]를 파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을 이스라엘 국민들이 갖게 하는 데 있어서도 필수적이었다. 정치인들이 자기가 한 말을 믿었건 그렇지 않았건 간에, 당시에는 패트리어트가 멋지게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말 이외의 다른 얘기를 하면 순진하고 비애국적인 것으로 여겨질 법했다. 전쟁 기간의 발언으로부터 과학기술 일반에 대한 결론을 도출한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다. 미사일의 성공에 관한 전시(戰時)의 주장은 진리의 요구가 아니라 전쟁의 요구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전쟁이 시작되고 2주가 지난 1월 31일에 노먼 슈와츠코프 장군은 "지금까지는 100퍼센트입니다. 33기와 교전해서 33기 모두를 파괴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전쟁 개시 1달이 지난 2월 15일에는 부시 대통령이 42기의 미사일 중 41기를 '요격(intercept)'했다고 말했다.

전쟁이 끝나면 애국적 선전의 역할은 점차 희미해진다. 전쟁이 끝나고 2주가 지난 1991년 3월 13일, 미 육군 관리들은 패트리어트가 47기의 스커드 중 45기를 요격했다고 의회에 보고했다. 종전 2달이 지난 1991년 4월 25일에 미사일 공급업체인 레이씨언의 부사장은 패트리어트가 사우디아라비아 상공에서 교전한 스커드 미사일의 90퍼센트를 파괴하고 이스라엘 상공에서 교전한 것 중에서는 50퍼센트를 파괴했다고 발표했다.

레이씨언의 대변인은 물론 자기 회사 제품의 유효성을 강조하는 데 분명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평판이 좋으면 향후 미사일 그 자체의 매출이 증가하며, 아울러 실제 전장에서 요격미사일의 성능이 입증되고 나면 완전히 새로운 무기 시스템의 개발 전망에도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이는 이른바 '불량국가'들이 갖고 있는 강력한 핵·화학·생물학전 미사일로부터 미국 본토를 방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신뢰성을 심어 준다.

이스라엘 군부는 전쟁 기간 동안에도 패트리어트에 대해 그리 큰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 반면 미국의 일반 국민들은 패트리어트의 성공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한 확신에 처음 균열을 가한 것은 MIT의 국방 및 군비억제 연구 프로그램 교수인 씨어도어 포스톨이었다. 1991년 말에 발표된 「걸프전의 패트리어트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라는 50쪽짜리 논문에서 포스톨은 이스라엘측 자료에 부분적으로 근거해 패트리어트의 성능은 "거의 완전한 실패라고 부를 만한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p. 24) 우리가 이 글에서 설명하려는 내용은 많은 부분 포스톨의 비판에서 비롯되어 나타난 결과이다.

포스톨의 논문은 1992년 4월 '걸프전에서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성능'을 주제로 한 의회 상임위원회의 청문회로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패트리어트의 작전과 관련된 상당한 양의 기밀해제된 정보가 제시되었고 이를 둘러싼 논쟁도 있었다. 전문가들이 의회 청문회에서 제시한 많은 증거들은 미 육군이 패트리어트의 성공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는 포스톨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패트리어트가 완전한 실패임을 입증할 수 있다는 포스톨의 주장이나 그가 사용한 방법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다. 특히 포스톨은 공개된 비디오테이프 자료를 활용해서 패트리어트의 폭발이 스커드 탄두와 충분히 근접한 곳에서 일어나지 않았고(주1) 따라서 스커드를 무력화시킬 수 없었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다른 전문가들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비디오테이프의 경우 프레임 전환속도(주2)가 너무 느려서 폭발 순간을 보여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패트리어트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프레임 사이에도 상당한 거리를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격렬한 의견불일치와 그로부터 불거진 논쟁은 이 글을 쓰는 시점(1997년)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러나 대립하는 양측이 모두 패트리어트의 성공에 대한 높은 추정치에 확신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은 흥미로운 일이다. 예컨대 '의회조사국의 외교 및 국방 부서에 근무하는 국방 전문가'인 스티븐 힐드레쓰는 포스톨의 방법에 대해 강력히 반대했다. 그는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나는 그가 내놓은 증거가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은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 증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힐드레쓰는 미 육군의 자체 방법론을 활용하면 패트리어트에 의해 '명중된(killed)' 스커드 탄두가 단 하나뿐임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말의 의미는 단 하나의 탄두만 명중되었다는 게 아니라 그 외의 경우에는 명중했다는 강력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92년 여름 레이씨언社의 고등 방공 프로그램 책임자인 로버트 M. 스테인은 25쪽짜리 답변서를 통해 포스톨의 논문과 의회 청문회에서의 문제제기에 답했고, 이에 대해 포스톨의 재답변이 있었다. 스테인은 답변서에서 미 육군 방공본부장인 로버트 드롤렛 준장의 예전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 내용인즉슨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패트리어트는 작전범위 내에 진입한 전술탄도미사일[알-후세인]의 80퍼센트 이상과 성공적으로 교전했고, 이스라엘에서 . . . 패트리어트는 작전범위 내의 전술탄도미사일의 50퍼센트 이상과 성공적으로 교전했다"는 것이었다.
 

<그림 1> 스커드와 패트리어트 (실제와 유사한 비율)
 
 

모두가 패트리어트에 동의하는 점
 

패트리어트와 스커드의 대결에 있어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패트리어트는 원래 미사일이 아니라 비행기를 격추시키기 위해 설계되었다. 따라서 걸프전에 사용되기 위해서는 개조가 이루어져야 했고, 개조된 미사일의 설계, 개발, 제조, 배치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놀랄 만한 속도로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미사일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생겼다. 이로 인한 계시(計時) 오류로 스커드가 다란 막사에 떨어져서 2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 패트리어트는 한 발도 발사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있었다고 해서 패트리어트를 걸프전 상황에 맞춰 단시간내에 개조한 놀라운 공학적 업적을 깎아내릴 수는 없으며, 다른 스커드와의 교전에서 소프트웨어 문제가 재발한 것도 아니었다.

걸프전에서 이라크가 사용한 스커드 미사일은 사정거리를 연장한 것이었다. 탄두는 상대적으로 가벼워졌고, 다른 스커드에서 떼어낸 것으로 보이는 보조 연료탱크가 추가되었다. 개량된 스커드는 사정거리가 640킬로미터로 더 길어졌고, 비행 속도도 패트리어트의 개발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40퍼센트 정도 빨라졌다.

알-후세인 미사일은 로켓 추진체가 약 1분 30초 동안 연소하는 동안 56킬로미터 고도까지 상승하는데, 여기까지는 미리 프로그램된 궤적을 따라 유도된다. 그 후에는 모든 유도가 중지된다. 알-후세인은 이후 5분 동안 더 관성 비행을 하면서 대기권으로 재진입하기 전에 대략 160킬로미터의 최고 고도까지 상승한다. 여기서부터 지상까지 도달하는 데에는 약 1분이 걸린다. 미사일이 대기의 마찰을 받아 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될 때의 최고 시속은 대략 8,800킬로미터에 달한다. 패트리어트가 요격하는 지점은 지상으로부터 대략 16킬로미터 상공이고, 이 때 알-후세인은 지상에 도달하기까지 10초도 채 못남긴 시점으로 속도는 시속 7,000킬로미터 정도가 된다.

패트리어트의 로켓 추진체는 12초 정도 연소해서 시속 6,000킬로미터 이상까지 속도가 증가한다. 그 이후에는 유도를 받아 꼬리날개를 조정해서 목표물까지 비행하게 된다. 목표물은 지상의 레이더에 의해 표시된다. 목표물을 명중시키기 위해 패트리어트는 발사 전에 미리 예상 요격 지점이 지정되어야만 한다. 모든 일이 매우 빠른 속도로 일어나기 때문에 비행하는 동안에는 궤적을 조정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다. 대략 16킬로미터 상공에서 요격하기 위해서 패트리어트는 스커드가 대략 32킬로미터 상공에 있을 때 발사되어야 한다. 스커드에 대한 레이더 추적은 그보다 몇 초 전, 대략 40킬로미터 상공에 있을 때 시작되어야 한다. 패트리어트는 스커드의 낙하 경로와 예상 요격 지점이 계산되고 나서야 발사될 수 있다.

예상 요격 지점에서 스커드와 패트리어트의 접근속도는 시속 13,000킬로미터, 즉 초속 3.6킬로미터에 달할 것이다.

전체적인 요격 조작이 컴퓨터로 통제되어야 한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수동 발사 옵션이 있긴 하지만, 시간상의 제약이 극히 심하기 때문에 패트리어트는 대체로 인간의 개입 없이 자동으로 발사되도록 설정되어 있다.

패트리어트는 목표물의 탄두에 근접하면 자기 탄두를 폭발시켜서 미사일을 파괴하도록 설계되었다. 패트리어트의 탄두는 스커드의 핵심 부분을 관통할 수 있도록 납덩어리들로 덮여 있다. 패트리어트의 탄두가 폭발하면 납덩어리들은 시속 9,000킬로미터의 속도까지 가속된다. 여기서 패트리어트 탄두가 폭발할 때 튀어나오는 파편의 속도가 두 미사일의 상대속도보다 낮다는 점을 알아두기 바란다. 이는 사건들이 얼마나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나는지 감을 잡는 데 도움이 된다. 아울러 이는 패트리어트 탄두가 언제, 어디서 폭발해야 하는가에 있어 실수가 거의 용납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만약 패트리어트와 스커드가 공중에서 서로 지나친 후에 패트리어트 탄두가 폭발하면 폭발의 파편이 멀어져 가고 있는 미사일을 따라잡을 가능성은 전혀 없게 된다. 설사 패트리어트가 목표물에 매우 근접해서 통과하더라도 폭발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시간대는 매우 짧다. 패트리어트가 유효시간대에서 1,000분의 1초만큼만 벗어나더라도 스커드와 패트리어트의 상대적 위치는 3.6미터나 차이가 난다. 그러면 납 파편들은 스커드의 폭약이나 신관(信管) 메커니즘을 관통하지 못하고 완전히 빗나가거나, 빈 연료통을 맞추거나, 미사일을 여러 조각으로 동강내는 데 그칠지 모르며, 이 때 스커드의 폭발 장치 부분은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대기권에 진입하는 미사일을 식별하고 추적해서 수 초 내에 궤적을 결정한 후, 낙하예정 지점 인근에서 로켓을 발사하고 최종적인 2차 조정이 가능한 지점까지 요격미사일을 유도해서 시속 13,000킬로미터로 거리를 좁혀오는 미사일에 근접했을 때 탄두를 폭발시키는, 그러한 요격 시스템을 설계한다는 것은 놀랄 만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패트리어트가 원래는 다른 일[비행기 격추]을 하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이와 같은 업적은 더욱 놀랍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업적은 탄두가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장소에서 폭발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도 없다. 지상에서는 완벽한 요격처럼 보이는 것도 실상은 진입중인 로켓의 동체에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망가뜨린 데 불과한 것일 수 있다.

앞으로 3장에서 우리는 실험과 테스트를 '시연(試演)'과 구분할 것이다.(주3) 전쟁은 매우 혼란스럽고 병사들은 극도의 긴장과 공포 상태에 처해 있기 때문에 시연을 하기에는 적합치 않다. 전쟁에서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대부분의 일들이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라크군이 개조한 스커드 미사일은 이와 같은 이치를 거의 완벽하게 보여준다. 알-후세인은 길이가 길어지고 탄두가 가벼워지면서 기존의 스커드와는 다른 공기역학적·기계적 성질을 갖게 되었다. 이 때문에 알-후세인이 오랜 관성 비행을 마치고 대기권에 재진입할 때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해 비틀거리는 운동을 하게 되고 방향이 틀어지는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타났다. 이에 따라 알-후세인은 대기권에서 낙하하는 동안 여러 조각으로 부서지는 경향을 갖게 되었다. 이것이 부서질 때의 고도는 방향과 비틀거림의 정도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 미사일이 부서지면서 나온 울퉁불퉁한 파편들은 형태와 공기 흐름에 따라 나선을 그리면서 지상으로 추락하거나 훨씬 더 불규칙한 경로를 따르게 된다. 이라크군은 회피 운동과 유사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모의 탄두[적을 교란하기 위한 가짜 탄두]를 가진 미사일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설계한 것이다!

스커드가 낙하 초기에 부서지면 레이더에는 하나가 아니라 대기권으로 진입하는 둘 혹은 세 개의 물체가 출현한 것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그러면 패트리어트 시스템은 자동으로 이들 파편 모두를 요격하기 위해 로켓을 발사할 것이고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비축량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 것이다. 반면 스커드가 한참을 낙하한 후에야 부서진다면 하나의 목표물을 파괴하기 위해 발사된 하나 또는 두 기의 패트리어트는 비행 도중 갑자기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목표물을 마주치게 된다.

결국 패트리어트가 당면한 문제는 애초에 비행기 격추를 위해 설계되었던 것을 미사일 탄두를 파괴하기 위한 것으로 개조해야 했다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패트리어트는 매우 잘 짜여진 설계팀이 요격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만든 것처럼 보이는 미사일을 파괴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라크군이 개조한 스커드 미사일의 예상치 못한 '설계 특성'에 대해 패트리어트가 보여준 성능으로부터 두 가지 교훈을 끌어낼 수 있다. 혹자는 패트리어트가 미처 예측하지 못한 목표물의 움직임에 대처해야 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오히려 기대 이상의 성능을 보였다고 말할지 모른다. 반면 혹자는 요격미사일 방어 시스템이 항상 이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공격무기와 싸워야 하기 때문에, 미처 예측하지 못한 요격 회피 수단에 의해 방어망이 뚫릴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는 결론을 끌어낼지도 모른다. 스커드는 이런 일들이 정교한 군사력을 갖추지 못한 국가에 의해 생산되고 발사된 미사일의 경우에도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니 만약 정교한 군사력을 갖춘 국가에서 미사일 공격을 한다면 어떻게 될지는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전쟁 후반기에는 밀도가 높고 무거운 탄두를 대기에 의해 속도가 더 많이 감소하는 '유인체'들과 구별할 수 있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탄두와 유인체의 차이가 분명해지려면 발사 이전에 충분한 시간 동안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스커드가 상대적으로 낮은 고도까지 낙하한 다음에야 패트리어트가 발사될 수 있었다. 이스라엘군은 탄두를 분리된 연료탱크나 다른 파편과 구별하는 방법을 알아내자 자동 발사 모드에서 수동 모드로 전환했던 것으로 보인다. 패트리어트의 비축량이 전쟁 초기에 전부 없어져 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성공의 기준
 

패트리어트의 성공 여부에 관한 논쟁에는 서로 얽혀 있는 두 가지 쟁점이 있다. 무엇을 성공으로 정의할 것인가의 문제가 그 하나이고, '성공'에 대한 다양한 정의들을 따를 때 패트리어트가 과연 성공했는가 그렇지 못한가를 판단하는 문제가 다른 하나이다.

1992년 여름에 로버트 스테인은 레이씨언社의 입장을 대변해, 성공으로 간주될 수 있는 몇 가지 경우를 예로 들었다. 여기서 그가 성공의 기준으로 언급한 것은 요격이나 폭발이 아니었다.
 

패트리어트의 높은 신뢰성과 성공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의해서 측정할 수 있다. 동맹은 파기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감행할 필요가 없었고 전쟁에서 한 발 떨어져 있을 수 있었다. 민간인들의 대규모 희생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 . . 그리고 결국에 가서 화평(和平)을 청하며 먼저 굴복한 것은 사담이었지 연합군이 아니었다.


우리는 가장 분명한 것에서 시작해 성공의 잠정적인 기준들을 차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여기서는 패트리어트와 스커드가 충돌하는 경우에서 시작해 좀더 간접적인 결과들로 옮겨가는 식으로 다양한 기준들을 따져볼 것이다. <표 1>은 패트리어트가 배치됨으로서 나타날 수 있는 몇 가지 결과들을 제시하고 있다.
 
 
<표1> 스커드에 대한 패트리어트의 성공기준들
직접적인성공기준
1   모든, 혹은 거의 모든 스커드 탄두가 불발로 끝났다.
2   대부분의 스커드 탄두가 불발로 끝났다.
3   일부 스커드 탄두가 불발로 끝났다.
4   모든, 혹은 거의 모든 스커드 탄두가 손상을 입었다.
5   대부분의 스커드 탄두가 손상을 입었다.
6   일부 스커드 탄두가 손상을 입었다.
7   모든, 혹은 거의 모든 스커드 탄두의 방향이 바뀌었다.
8   대부분의 스커드 탄두의 방향이 바뀌었다.
9   일부 스커드 탄두의 방향이 바뀌었다.
10 모든, 혹은 거의 모든 스커드가 요격되었다.
11 대부분의 스커드가 요격되었다.
12 일부 스커드가 요격되었다.
13 연합군의 생명을 구하고 재산손실을 경감시켰다.
14 이스라엘 국민들의 생명을 구하고 재산손실을 경감시켰다.

간접적인 성공기준
15  민간인들의 사기가 고양되었다.
16  이스라엘이 참전하지 않았다.
17  "동맹은 파기되지 않았다."
18  "화평을 청한 것은 . . . 사담이었지 연합군이 아니었다."
19  패트리어트의 판매가 증가했다.
20  새로운 전술미사일 방어 프로그램이 신뢰를 얻었다.
21  전략방위계획('스타워즈')이 부활했다.


 

이 목록에서 '불발로 끝났다(dudded)'는 패트리어트의 영향으로 인해 스커드 탄두가 지상에 충돌했을 때 폭발하지 않았음을 의미하고, '손상을 입었다(damaged)'는 탄두가 폭발은 했지만 폭발력이 예상보다 작았다는 것을 의미한다(폭약의 일부가 비틀리거나 떨어져나갔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일이다). '방향이 바뀌었다(diverted)'는 인명 및 재산피해를 낼 수 있는 지역으로 날아가던 탄두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으로 방향이 바뀐 경우를 말한다. 그리고 '요격되었다(intercepted)'는 패트리어트의 레이더 추적과 비행 제어가 예상대로 작동했고, 패트리어트가 스커드에 접근해서 패트리어트의 탄두가 폭발했지만, 스커드 탄두가 손상을 입었는지는 확실치 않은 경우를 가리킨다.

우리가 '간접적인 성공기준'이라고 이름붙인 7가지 성공기준과 '직접적인 성공기준'이라고 이름붙인 14가지 성공기준 사이의 관계는 간단한 원인-결과의 문제가 아니다. 패트리어트를 배치한 후 패트리어트의 성공 소식을 널리 퍼뜨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사실을 믿게 하는 것만으로도 15∼21의 결과는 충분히 유도될 수 있다. 설사 직접적인 기준에 의거해 볼 때 패트리어트가 실제로는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패트리어트가 단 한 발의 스커드도 요격하거나 손상시키지 못했다 해도, 패트리어트는 전쟁 시기나 이후의 평화 국면에서 대단한 성공이었다 ― 미국 무기산업의 관점에서는 ― 는 평을 들을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패트리어트가 성공이었다고 사람들이 믿었으며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는 사실 아닌가? 스타워즈 사업에 대해 오랫동안 반대해 온 포스톨은 패트리어트가 잘못된 명성을 얻어 미사일 방어 기술에 대한 추가적인 지출을 정당화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그는 그러한 기술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바꿔말해 포스톨은 결과 20과 21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결과 1, 2, 4, 5, 7, 8이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표 1>과 같은 목록이 갖는 또하나의 특징은 한 가지 기준에 의해 성공으로 간주되는 것이 다른 기준에 의해서도 성공으로 간주되는 것처럼 잘못 이해되기가 쉽다는 점이다. 예컨대 패트리어트의 성능에 관해 앞서 언급되었던 네 가지 주장 가운데 두 가지 ― '42기 중 41기'라는 부시 대통령의 말과 '47기 중 45기'라는 미 육군의 발표 ― 는 목표를 파괴한 것이 아니라 '요격'했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실제로는 별 것 아닌 주장을 하면서 대단한 성과라도 거둔 것처럼 내세우기 위해 일부러 애매한 표현을 사용한 것인지 여부는 분명치 않다. 이 점에 관해 코니어스 상원의원은 1992년 의회 청문회에서 로버트 드롤렛 미 육군 준장에게 반대 심문을 했다. 당시의 증언은 다음과 같다.
 

코니어스: 그럼 [부시 대통령이] 틀렸나요?

드롤렛: 아닙니다.

코니어스: 그러면 42기의 스커드 중 41기가 요격되었다는 대통령의 말이 사실이라는 겁니까?

드롤렛: 네, 그렇습니다.

코니어스: 그 말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록이 있나요?

드롤렛: 요격 말입니까?

코니어스: 그렇습니다.

드롤렛: 예. 대통령은 명중되었다거나 파괴되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요격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스커드가 접근하고 패트리어트가 발사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대통령도, 우리도 스커드를 모두 명중시켰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코니어스: 명중되었다는 의미로 말한 게 아니라구요? 그러면 대통령이 요격되었다고 말했을 때, 군사적인 전문용어를 쓰고 있었다는 겁니까?

드롤렛: . . . 그는 패트리어트와 스커드의 경로가 교차, 그러니까 공중에서 교차했다는 의미로 말한 겁니다. 스커드에 대한 교전이 실시되었다는 것입니다.

코니어스: 패트리어트와 스커드가 공중에서 서로 지나쳤다구요?

드롤렛: 네, 그렇습니다.

간접적인 성공기준

미사일 판매, 전술미사일 방어, 스타워즈

19에서 21까지의 기준에 대해 우리는 별로 할 말이 없다. 흥미로운 것은 로버트 스테인을 비롯한 여러 논평자들이 기준 21을 다른 기준들로부터 분리시키려 애썼다는 점이다. 포스톨의 견해에 반대하는 한 논평자는 의회 청문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 . . 요즘 "패트리어트 다음에는 전략방위계획"이라고 말하는 게 유행이 되고 있습니다 . . . 패트리어트가 성공을 거두었으니 앞으로는 핵무기로 무장한 전략탄도미사일을 격추시키는 요격미사일이 가능할 거라고 보는 겁니다.

이건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는 주장입니다 . . . 내 생각에는 전략방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2차, 혹은 3차 핵전쟁 때나 되어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전략 및 국제문제 연구를 위한 군비통제·검증센터의 초빙 선임연구원
피터 D, 찜머만의 의회 청문회 증언, pp. 154-5)


이러한 논평들은 패트리어트가 전술탄도미사일에 대한 방어수단 개발에 던져주는 긍정적 교훈을 신뢰성이 떨어지는 전략방위계획으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 같다(전략방위계획은 속도가 훨씬 빠른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격추시키는 시스템의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패트리어트 같은 미사일이 전면적인 탄도미사일 방어 시스템의 개발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한 방어 시스템의 개발을 금지하는 국제조약이 있기 때문이다. 패트리어트 같은 미사일을 개발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국제조약에서 금지하고 있는 프로그램과는 다른 것임을 부각시켜야 한다. 반면 포스톨은 패트리어트 같은 미사일의 개발이 곧 탄도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한 은밀한 전초작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단계의 논쟁[패트리어트 같은 미사일의 개발이 전략방위계획을 위한 전초작업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관한 논쟁]은 패트리어트가 스커드를 파괴하는 데 성공했는가 하는 문제와는 거의 아무런 상관도 없다.

오직 역사만이 기준 19∼21의 측면에서 패트리어트가 성공했는지를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면 기준 20의 측면에서 패트리어트의 경험이 부정적이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전술탄도미사일 방어 시스템의 개발은 현재 진행 중에 있다. 비록 이 프로그램에서 레이씨언이 맡은 역할이 애초 희망했던 것에 비해 작긴 하지만 말이다.
 

지역정치에서 패트리어트의 역할

기준 15∼18에 대한 논증은 분석하기가 더 어렵다. 전쟁사 서술은 국가, 군대, 연대, 장군들의 이해관계가 뒤얽혀 있기 때문에 극히 어려운 주제이다. 또한 전쟁 기간에는 살아남는 것이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기 때문에 기록보존에는 소홀한 경우가 많다.

패트리어트가 이스라엘이 참전하지 않도록 하는 데 기여했는가에 관한 기준 16을 한번 생각해 보자. ≪워싱턴 포스트≫ 기자 릭 앳킨슨이 쓴 걸프전 역사서 『십자군전쟁 ― 걸프전의 뒷이야기』에 따르면, 이스라엘 군대는 개전 초기부터 패트리어트의 성능이 형편없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슈와츠코프 장군이 언론에서 '100퍼센트 격추'와 같은 낙천적인 주장을 하는 데 대해 "패트리어트 잠꼬대"라며 꼬집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인용부호를 동원하는 기자 특유의 감각을 발휘해 가며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조차도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칭송하는 것이 정치적·군사적으로 쓸모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한 이스라엘 관리가 패트리어트에 대한 불안감을 대중에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워싱턴 주재 군무관인 아브라함 벤-쇼산이 말을 중간에서 가로챘다. "입 다무시오. 패트리어트는 우리가 스커드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며, 그런 의미에서 최선의 무기이기도 하오. 그런데 바로 그 무기가 제대로 작동을 안한다는 사실을 사담 후세인에게 알려주기라도 하겠다는 거요?" (p. 278)


반면, 전쟁 당시 영국군 사령관이었던 피터 드 라 빌리에르 장군은 자서전격인 『고난을 찾아서』에서 패트리어트를 아예 언급조차 안하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에 대한 스커드의 위협을 잠재운 것은 1월 22일 이라크 서부에 배치되었던 영국 SAS[영국 해병대 소속의 공수특전단] 지상정찰병이었다고 주장한다.
 

. . . [그들이] 매우 효과적으로 작전을 수행했기 때문에 1월 26일 이후에는 스커드가 이스라엘로 발사되는 일이 없었다. 이번 경험은 SAS가 유럽에서 거듭 보여준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즉, 아무리 전자감시장치가 잘 갖추어져 있다 해도 지상에 있는 사람의 눈만큼 효과적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p. 411)


우리는 전쟁사를 뒤덮고 있는 서로 상충되는 설명들의 지뢰밭에 더 이상 발을 들여놓지 않으려 한다. 다만 1월 28일부터 2월 25일까지 13기의 스커드가 이스라엘에 떨어져 34명이 부상을 입고 1,500여채의 아파트와 400여채의 가옥이 피해를 입었다고 쓰고 있는 다른 기록들도 있다는 사실은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

기준 15의 경우 거의 확실히 충족되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아군이 적의 공격에 대해 미사일로 대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민간인들의 사기는 당연히 올라간다. 그러한 응전이 얼마나 성공적인가와 무관하게 응전 행위 그 자체가 사기를 북돋우는 것이다. 전쟁 후반부에 민간인들은 지붕 위에 올라가서 패트리어트와 스커드의 교전 장면을 보기도 했다고 한다. 이는 대피소에서 겁에 질려 웅크리고 있는 것보다는 사기 측면에서는 확실히 더 나을 것이다.
 

죽음과 파괴

이제 기준 13과 14를 보자. 패트리어트가 생명을 구하고 재산손실을 경감시켰는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를 찾을 수 없다. 만약 패트리어트가 배치되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손실이 있었을지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커드가 군인들로 꽉 찬 막사에 떨어졌을 때 많은 남녀 군인들이 사망했으며, 이 때는 패트리어트가 발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패트리어트가 발사되었다면 상황이 달랐을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패트리어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때 인명손실이 가장 컸다는 사실을 가지고 패트리어트의 유효성을 입증하는 증거로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아래에서 이 점을 좀더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우리가 '이전과 이후'를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더 흥미롭다. 스커드가 1월 17일부터 이스라엘에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패트리어트는 대략 1월 20일 이전에는 배치되지 않았다. 많은 스커드 미사일이 애초에 목표한 것으로 추정되는 도시를 빗나갔지만, 포스톨은 패트리어트가 배치되기 이전에 13기의 스커드가 텔아비브와 하이파에 떨어져서 2,698채의 아파트를 파괴하고 115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패트리어트가 배치된 이후에는 텔아비브와 하이파 상공에서 14기에서 17기 정도의 스커드에 대해 패트리어트로 응전했는데, 7,778채의 아파트가 파괴되고 168명이 부상을 입고 1명이 사망했다. 숫자만 가지고 판단한다면 패트리어트가 방어를 맡은 기간에는 패트리어트 이전 기간과 비교했을 때 스커드의 수는 거의 비슷한데도 피해는 대략 세 배로 증가했다. 물론 각각의 건물에 대한 피해 정도가 상세하게 조사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빈약한 통계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은 포스톨도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패트리어트가 배치된 이후 피해가 감소했다고 볼 만한 증거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사상자는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보이는데, 포스톨은 사상자들 중 일부는 패트리어트 그 자체에 의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패트리어트가 배치되면서 공중에는 빠른 속도로 땅에 떨어지는 파편들이 훨씬 더 많아졌고, 최악의 경우 목표물을 맞추지 못한 패트리어트가 땅에 떨어지면서 폭발할 수도 있었다. 패트리어트가 건물에서 반사된 레이더 신호에 의해 교란을 받기도 했고, 어떤 경우에는 땅으로 떨어지는 스커드 파편을 추적하기도 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다.
 

   

<그림 2> 이스라엘 하이파 상공에서 패트리어트 요격미사
일이 그린 궤적. 1기가 지상으로 충돌하는 모습이 보인다.
 

포스톨에 대한 답변에서 스테인은 패트리어트가 배치된 이후 기간 동안 이스라엘의 도시들로 발사된 미사일의 수가 실은 훨씬 더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파트들이 입은 피해가 극히 경미한 수준이며, "패트리어트가 '유리창 파손' 같은 범주에 들지 않는 심각한 지상 피해를 감소시켰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p. 222) 그는 이란-이라크 전에서 전술탄도미사일로 인해 심각한 인명 및 재산피해가 빚어졌던 것에 비하면 걸프전에서 이스라엘이 입은 피해는 상대적으로 경미함을 지적했다. 그는 "전술탄도미사일에 대한 대응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던 다란 막사에서의 인명손실"과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일을 비교하기도 했다. (p. 222) (주4)
 

직접적인 성공기준

요격과 방향전환

패트리어트가 교전한 스커드의 대부분을 요격했는지에 대해서는 열띤 논쟁이 거의 없었다. 요격이라는 표현은 파괴, 손상, 방향전환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요격'을, 패트리어트가 어떤 지점에서 폭발했을 때 스커드 탄두에 손상을 입히거나 불발로 끝나게 할 수 있을 바로 그 지점을 지났거나 지났을 가능성이 큰 경우로 정의하도록 하자.

우리는 발사된 모든 패트리어트가 스커드를 요격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 중 일부는 ― 특히 전쟁 초기에 ― 연료탱크나 다른 파편을 요격했다. 또 건물이나 지표면을 요격한 패트리어트도 아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이런 결과는 정상이라 할 수 있다.

다란 막사를 예외로 한다면, 스커드가 인구밀집 지역을 향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혹은 거의 모든 경우에 대해 '교전'이 실시되었다고 가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즉, 드롤렛 준장이 말한 대로 "패트리어트와 스커드의 경로가 교차, 그러니까 공중에서 교차"했다는 의미에서 하나 이상의 패트리어트가 스커드를 요격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요격 성공 여부는 레이더상의 자취에 따라 판단할 수 있으며, 패트리어트가 폭발한 후에 스커드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필요가 없다. 이러한 요격이 충분히 높은 신뢰도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면 이는 스커드가 손상을 입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중요한 공학적 업적이며, 앞으로 성공적인 전술미사일 방어 시스템이 개발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북돋기에 충분할 것이다. 물론 이는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패트리어트가 목표물에 대해 심각한 손상을 입혔는지를 입증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으며, 포스톨과 같은 비판자들은 이 사실에 대해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방향전환에 대해서는, 우선 알-후세인이 매우 부정확한 무기라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아무런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도 알-후세인은 잘 정의된 목표점으로부터 2∼3킬로미터 반경 내에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대기권 진입시부터 로켓의 궤적을 추적했다고 해도 정확한 낙하지점을 예측할 수는 없다. 미사일이 부서지면서 공기역학적 힘들이 불규칙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육군은 스커드가 대체로 레이더로 예측한 낙하지점에서 2∼3킬로미터 반경 안쪽에 떨어진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다란 막사에 커다란 피해를 입혔던 스커드 미사일은 '목표를 명중'시킨 것이 아니라 당초 목표가 아닌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이에 대해 패트리어트로 대응했다면 방향을 바꿔놓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반면에 패트리어트가 아무도 살지 않는 곳으로 잘못 날아가던 탄두의 방향을 전환시켜 사람이 살고 있는 건물에 떨어지게 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주어진 정확도의 수준을 감안해 본다면, '방향전환'은 잘해봐야 기회주의적인 대응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재래식 폭탄에 대한 방향전환은 화학, 생물학, 핵탄두에 대한 방향전환과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화학, 생물학 탄두는 바람의 방향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이며, 핵탄두의 경우 방향전환이 의미가 있으려면 재래식 탄두를 실은 미사일보다는 방향전환을 훨씬 더 크게 시켜야 한다.
 

불발과 손상

앞서 설명을 하긴 했지만, 인구밀집 도시에 떨어졌을지 모를 500킬로그램짜리 폭탄의 수가 패트리어트로 인해 줄어들었는지 아닌지조차 우리가 모른다는 것은 그 자체로만 보면 여전히 놀랍게 느껴질 것이다. 패트리어트가 스커드 탄두에 손상을 가하려면 패트리어트의 탄두가 극히 작은 오차한계 내에서 정확하게 폭발해야 한다. 이 때문에 패트리어트의 요격장면을 직접 관측해서 스커드 탄두가 실제로 손상되었는가 하는 질문에 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우리는 스커드의 실제 폭발과 지상 피해에 대한 관찰을 통해 스커드 탄두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간접적으로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폭발과 지상 피해를 관찰하는 것은 이중으로 혼란스러운 일이다. 먼저 모든 스커드 탄두가 불발로 끝났다 해도 지상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부서진 미사일 조각들은 설사 완전히 제기능을 못하는 상태라 해도 지상에 떨어지면서 상당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시속 4,800킬로미터 이상으로 비행하다가 지상에 충돌하는 무거운 탄두는 거의 폭발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위력을 갖는다. 심지어 충돌시의 에너지로 인해 폭발처럼 보이는 섬광이 나타날 수도 있다. 로켓 추진연료가 남아 있는 연료탱크가 지상에 충돌하면 실제로 폭발을 일으킨다.

몇몇 패트리어트 탄두는 지상에서 폭발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건물을 목표물로 혼동했거나 스커드 내지 스커드 파편을 지상까지 추적한 결과이다. 포스톨이 제시한 비디오테이프는 지상에서의 패트리어트 폭발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를 담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지상에서의 패트리어트 폭발은 패트리어트가 성공했다는 증거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성공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따라 다르다. 13, 14, 15와 같은 기준들 ― 인명 및 재산피해의 감소나 민간인들의 사기 고양 ― 을 염두에 둔다면, 패트리어트가 애초에 지키기로 되어 있던 나라에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은 매우 나쁜 소식이다. 반면 회계사 같은 사고방식을 받아들여 기준 1∼9까지와 기준 19, 20 ― 스커드에 대한 패트리어트의 실제 유효성과 더 나은 시스템 개발에 미친 영향 ― 만을 고려한다면, 지상 피해 중 패트리어트에 의한 것로 볼 수 있는 부분이 크면 클수록 스커드에 의한 지상 피해는 작아지고 따라서 패트리어트가 스커드에 손상을 입히는 데 더 효과적이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이 정도까지 오게 되면 이제 슬슬 현기증이 나기 시작한다.

한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다. 만약 스커드가 지상에 도달해 충돌시의 에너지와 연료 폭발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피해만을 입혔다면 이는 패트리어트의 성공으로 간주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스커드는 패트리어트의 대응을 받지 않았더라도 폭발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스커드 탄두가 애초부터 불발이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지상에 충돌했던 '탄두' 중 적어도 하나는 그 안에 콘크리트 덩어리만 들어 있었다. 이는 전쟁 말기로 가면서 이라크군에게 완전히 무장된 탄두를 가진 미사일이 부족해 생긴 일로 보인다. 이유야 어쨌든, 우리는 애초에 이라크군이 완전히 무장된 미사일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준비해 발사했는지를 모르고 있다. 연합군이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했기 때문에 이라크군은 이란과의 전쟁에서 썼던 고정 발사대를 이용할 수 없었다. 이라크는 어둠을 틈타 비밀리에 이동 발사대를 활용해야 했고, 이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미사일이 제대로 된 탄두를 갖추고 발사되었는지를 알 수 없게 되었다.

기준 1∼6 하에서 패트리어트가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를 알아보려면 도시 내부뿐 아니라 도시 외부의 지상 피해를 조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지상 피해 조사는 전쟁이 끝나고 한동안 시간이 지난 후에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조사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는 한 명의 엔지니어에 의해 1991년 2월에 5일 동안, 1991년 3월에 19일 동안 진행되었다 . . . 조사는 사진 자료나 패트리어트 부대에 배속된 군인들과의 인터뷰에 크게 의지했고 . . . 현장 방문은 항상 충돌 후 며칠 또는 몇 주가 지나서야 실시되었는데, 이때쯤 되면 충돌시 생긴 구덩이들이 이미 메워지고 미사일 잔해들 역시 치워지고 없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의회 청문회, 미 일반회계국 보고서, p. 78.) 패트리어트의 유효성에 관해 육군이 발간한 최초의 보고서 또한 사우디 상공에서 실시된 교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정보만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가치가 떨어졌다. 그런데도 프로젝트 매니저의 평가에서는 이 보고서가 모든 교전을 다루고 있는 것처럼 인용했다. 뿐만 아니라 이 보고서는 지상에서 탄두에 의한 피해가 발견되지 않으면 패트리어트가 스커드 탄두를 파괴한 것으로 가정했다. 하지만 일선 부대들 중 일부는 그러한 지상 피해 사례를 찾아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p. 86)

우리는 이제 패트리어트의 성공에 관한 엄격한 추정치가 의회 청문회를 전후해 왜 갑자기 낮아졌는지 이해할 수 있다. 육군은 성공률에 대한 주장을 60퍼센트로 낮추었으나, 이는 성공했으리라는 확신이 낮은 교전 사례까지 포함시켜 나온 수치였다. 육군은 성공률이 25퍼센트라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는데, 이 가운데 16퍼센트는 패트리어트가 스커드에 가까이 가기는 했지만 그것을 파괴했거나 손상을 입혔다는 강력한 증거는 없는 사례들이었다. 미 일반회계국을 대표해 나온 증인은 이렇게 말했다.
 

. . . 패트리어트가 얼마나 많은 목표물을 명중시켰거나 명중시키지 못했는지를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 패트리어트가 실시한 교전 중 9퍼센트 가량은 적 탄두를 명중시켰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패트리어트가 스커드에 근접해 폭발한 이후 스커드가 파괴되었거나 무력화되었음을 보여주는 관찰가능한 증거가 있습니다. 탄두에 명중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의 예를 들자면, (1) 유도장치나 점화장치에 패트리어트의 파편이 박혀 있거나 파편에 의한 구멍이 나 있는 채로 발견된 무력화된 스커드나 (2) 패트리어트의 폭발 이후 공중에서 스커드 파편이 발생했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레이더 자료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의회 청문회, p. 108)


앞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스티븐 힐드레쓰는 육군의 자체 기준을 따를 때 탄두에 명중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경우는 단 한 번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실험실 조건을 향한 꿈
 

의회 청문회에서 증언했던 전문가들은 패트리어트가 얼마나 성공을 거두었는지 확실하게 알기 위해서는 전장에 실험실이나 시험 발사장에서와 같은 장비들이 갖추어져 있었어야 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만약 고속 사진이 있었다면 패트리어트의 탄두가 폭발하는 정확한 순간을 포착해 스커드의 탄두에 어떤 일이 생겼는지를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전장에서 고속 사진은 무용지물이다. "수석 엔지니어의 말에 따르면, 고속 사진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패트리어트와 그 목표물 모두의 궤적을 미리 알아내어 여러 대의 카메라를 비행 궤적에 따라 설치해 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는 이렇게 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두말할 것도 없이 스커드가 발사되는 시간과 장소를 미리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의회 청문회, p. 108, 일반회계국 보고서.)

의회 위원회에서 '하버드대 케네디 정책대학원 과학 및 국제관계 센터의 상주연구원이며 미트르(Mitre) 사의 전 회장이자 대표이사'로 소개된 또다른 전문가인 찰스 A. 즈라켓은 이렇게 진술했다. ". . . 패트리어트가 걸프전에서 매 시각마다 어떻게 활동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없는 이유는 고속·고해상도의 사진이 없었고, 직접적이고 유효한 과학적 데이터를 제공해줄 수 있는 디지털 데이터 레이더 기록이 없었기 때문이다."

패트리어트 하나하나마다 전송장치를 부착해 그것의 움직임에 관한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지상에 전송하도록 할 수도 있다. 이런 기법을 '원격측정법(telemetry)'이라고 한다. 전쟁 초기에는 원격측정 장비가 패트리어트의 실패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컸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에 배치된 패트리어트 미사일에는 전송장치를 전혀 부착하지 않았다. 반면 이스라엘군은 적어도 몇 기의 패트리어트에는 그 장비를 부착해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회계국은 만약 원격측정 데이터가 있었다면 패트리어트가 스커드를 파괴할 확률이 높은 범위 내로 지나갔는지, 또 스커드가 요격 지점을 지나기 전에 폭발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을 거라고 했다. (p. 109) 물론 이것이 패트리어트가 실제로 스커드를 파괴했는지를 입증할 수는 없다. 그러나 패트리어트 탄두의 폭발이 애초에 의도했던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났는지에 관한 애매모호함은 부분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전문가들의 증언에서는 지저분한 전시 보고서를 대신할 수 있는 과학에 대한 열망을 엿볼 수 있다. '직접적이고 유효한 과학적 데이터'를 통해 어수선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패트리어트 그 자체의 성능과 모니터링 장비의 성능 사이에는 훌륭한 비례관계가 성립한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지식을 전쟁 전에 가지고 있었다면 패트리어트를 재설계해 더 많은 알-후세인을 요격해 파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쟁이 시작되기 훨씬 전에 충분한 수의 패트리어트를 최적의 위치에 배치하고 잘 훈련된 발사팀을 붙여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팀원들은 패트리어트와 스커드의 상호 접근속도를 알고 있었을 것이고, 스커드 미사일의 탄두와 우연히 발생한 유인체의 전형적인 궤적과 비행 패턴도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에 맞춰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개발되었을 수도 있었다. 각각의 스커드 탄두에 대해 서로 조금씩 다른 신관 변수를 갖고 있는 여러 기의 패트리어트가 발사되는 것을 그려볼 수도 있다. 그러면 소프트웨어의 계시 오류가 걸러졌을 것이고 다란에 떨어졌던 것과 같은 스커드는 공격을 받아 아마도 파괴되었을 것이다. 이 시나리오에서 패트리어트는 정확한 명중을 계속해서 반복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가 지난 전쟁을 다시 한번 치른다면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우리는 전쟁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대규모의 기동훈련과 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시연을 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마찬가지로 전문가들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다면 깔끔한 '과학적 모범답안' ― 패트리어트가 목표물과 만나는 과정에 대한 정확하고 분명한 설명 ― 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해했을 것이다. 마치 군인들이 정보나 보급품 부족이 절대 일어나지 않고 적들은 언제나 예상한 대로만 움직이는 그런 전쟁을 꿈꾸듯이, 전문가들 역시 신호는 신호이고 잡음은 통계학 교과서에 나오는 모델을 따르는 그런 과학적 측정을 꿈꾼다. 장군들이 기동훈련 같은 전쟁을 꿈꾸는 것처럼 전문가들은 신화적인 과학 모델을 꿈꾼다.

그러나 기동훈련과 시연조차도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애초 예상했던 것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기동훈련에서는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다. 그리고 3장에서 보게 될 것과 같이 시연 또한 잘못될 수 있고, 시연이 제대로 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항상 분명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실험실 조건에 거의 완벽하게 가까워졌을 때조차도 측정 과정은 꿈꾸던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이 우리가 전에 썼던 골렘 시리즈의 첫번째 책인 『골렘』의 핵심이었다. 여기서의 핵심은 패트리어트에 대한 이해가 전쟁의 안개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안개는 단지 골렘 과학이 항상 직면해 뚫고 나가야만 하는 안개의 좀더 짙은 버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설사 시야가 너무나 선명해져 정확한 명중을 해낼 수 있는 날이 언젠가 도래한다 하더라도, 군사적 상황에서는 은유적인 의미의 3차 '핵전쟁' 이전에 그런 일이 생길 것 같지가 않다. 그리고 그때쯤이 되면 우리가 염두에 두고 있는 목표가 달성된다 해도 때는 이미 늦었을 것이다.
 
 
 

< 각  주 >
 

1) 패트리어트 미사일에는 근접신관(proximity fuse)이 있어서 반드시 목표물과 충돌하지 않아도 일정거리 이내로 가까워지면 스스로 뇌관이 작동해서 폭발한다. ― 옮긴이

2) 비디오테이프의 경우 방송방식에 따라 1초에 30프레임(NTSC) 혹은 25프레임(PAL)을 전송한다.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 등지에서 사용하는 NTSC 시스템의 경우, 초당 30장의 정지화면이 지나가면서 움직임을 표현해 낸다. ― 옮긴이

3) 저자들은 실험(experiment)과 시연(demonstration)이 서로 다르다는 기본 입장을 갖고 있다. 실험은 미지의 영역에 대한 지식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확실히 알지 못하고 수행하는 것이고, 시연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교육이나 선전 등을 목적으로 다시한번 보여주기 위해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미리 아는 상태에서 수행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구분을 따르자면, 중등학교나 대학의 학부과정에 개설된 자연과학·공학 관련 교과목에서 학생들이 하는 '실험'은 사실 실험이 아니라 시연에 가까운 것이 된다. ― 옮긴이

4) 스테인은 패트리어트의 성능을 옹호하면서 기밀 정보를 인용한 ― 그러나 상세한 내용을 밝히지는 않은 ― 당국의 발표에 크게 의지했다.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개조된 스커드가 걸프전에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미래에 경고 메시지를 던져 준다고 주장했다. 즉, 공격을 가하겠다고 위협을 하더라도 독재자들이 적국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지 못하게 막을 수는 없으며, 따라서 그러한 위협에 대한 방어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스테인의 답변에서는 이러한 메시지와 앞서의 목록 하단에 있는 좀더 일반적인 성공기준들에 대한 언급이 패트리어트의 성능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압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