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역사상 중요한 사건의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어디 있었는지를 항상 기억한다. 지금 나이가 마흔다섯이 넘은 사람들은 존
F. 케네디가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당시 TV를 보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1986년 1월 28일
오전 11시 38분(동부 표준시), 즉 챌린저 호가 공중폭발했던 바로 시각에 자신이
어디 있었는지 기억할 것이다. 폭발에서 퉁겨나간 고체로켓 부스터가 만들어낸
흰 연기구름의 소용돌이와 이를 둘러싼 구름 고리들은 일곱 명의 우주비행사의
죽음과 함께 그간 우주 프로그램을 지배해 온 '하면 된다' 식의 오류불가능성의
종말을 알렸다.
<그림 1> 챌린저 호의 폭발
케네디의 암살을 조사했던 워렌 위원회가 결론을 내리지 못했던 것과는 달리, 윌리엄 로저스가 의장을 맡은 대통령 특별위원회는 얼마 안되어 책임소재를 가려내었다. 그들이 내놓은 조사보고서는 애매한 구석이 없이 분명했다. 사고의 원인은 고무로 만들어진 오-링(O-ring)이라는 이름의 고리형 밀폐 부품에 있었다. 챌린저 호의 고체로켓 부스터는 서로 구획된 몇 개 부분을 짜맞추어 만들어지는데 오-링은 연결부위의 틈새를 밀폐하는 역할을 한다. 이 밀폐 부품이 제대로 기능을 못하면서 그 사이로 빠져나온 배기가스가 화염방사기처럼 분출했고, 이것이 지지대를 뚫고 타오르면서 결국 참사로 이어졌다는 것이었다.
특별위원회는 또한 셔틀의 발사 당시 케이프 커네버럴(Cape Canaveral) 발사기지의 기온이 전례없이 낮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증명한 사람이 재치있고 수수한 스타일의 미국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라고 알고 있다. 그는 기자회견장에서 고무로 된 오-링 조각 하나와 얼음물 한 잔을 이용해 추위에 노출되면 고무가 탄성을 잃어버림을 보여 주었다. 고무에 대한 이런 명백한 사실을 NASA에서는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냉각되어 뻣뻣해진 고무가 밀폐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몰랐단 말인가? 더 나빴던 것은, 고체로켓 부스터를 만드는 회사인 모튼 씨어콜(Morton Thiokol)의 엔지니어들이 이 점에 대해 경고를 했었다는 사실이었다. 발사 전날 밤에 즉석에서 마련된 심야 원격회의(teleconference)에서 엔지니어들은 플로리다의 추운 아침 기온에서 오-링이 제대로 동작하지 못할 거라고 주장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엔지니어들의 의견은 회사 관리자들에 의해 기각되었다. 씨어콜의 관리자들은 하청 회사인 씨어콜이 발사 스케줄을 지킬 것을 기대하는 NASA 경영진 때문에 압박을 받고 있었다.
1986년은 셔틀 생산 부서에 엄청난 압박이 가해졌던 해였다. 값싸고 효율적이고 재사용가능한 우주선으로 생각되곤 했던 스페이스 셔틀을 이용하는 스케줄이 빡빡하게 잡혀 있었고, 1986년에는 15차례나 되는 기록적인 비행 스케줄이 예정되어 있었다. 셔틀이 싣고 올라가도록 예정된 화물에는 허블 우주 망원경처럼 중요한 과학적 실험도 포함되어 있었다. 챌린저 호 바로 앞에 발사된 셔틀은 세 차례의 스케줄 '실패'과 네 차례의 발사 '취소'를 겪었는데, 이는 NASA 역사상 가장 많이 지연된 사례였다. 불운한 챌린저 호는 이미 네 차례나 발사가 연기된 상황이었고, 1980년대에 NASA가 직면해 있었던 예산상의 제약에 맞추려면 우주 프로그램 전체가 좀더 효율적인 운영 기록을 유지해야만 했다. 아폴로 호의 달 착륙이 있었던 영광의 시기에는 '불굴의 정신(Right Stuff)'에 걸맞은 충분한 예산이 지원되었지만,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난 지 오래였다.
결국 챌린저 호 사고에 대한 통상적인 이해방식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NASA의 관리자들은 생산 압박에 굴복했고,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발사를 강행했다는 것이다. 챌린저 호 사고는 흔히 도덕적 교훈을 담은 사례로 제시되곤 했다. 우리는 주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사악함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고, 숭고한 열망이 어떻게 무신경한 관료주의에 의해 짓밟힐 수 있는지 배웠다. 인색한 태도를 취하고, 돈을 아끼고, 편법을 쓰고, 무모한 관리자들과 무신경한 관료들에게 너무 많은 의사결정 권한을 주고, 최고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의 간청을 무시하게 되면 결국 벌을 받는다는 게 여기서의 교훈이었다.
챌린저 호 얘기에는 희생자도 있고, 악당도 있으며, 두 명의 영웅도 있다. 셔틀 승무원 중에는 학교 선생이었던 크리스타 매컬리프가 있었는데, 그녀는 보통 사람들을 대표한 인물이었고 '우리들 중 한 사람'이었다. 악당은 NASA와 모튼 씨어콜의 관리자들이었다. 영웅 가운데 한 사람은 리처드 파인만으로, 그는 NASA가 15년 걸려서도 깨닫지 못했던 사실을 불과 몇 분만에 찬물 한 잔만 가지고 알아낼 수 있었다. 또다른 영웅은 내부고발자의 역할을 맡은 모튼 씨어콜의 엔지니어 로저 보졸리였다. 발사 전날 밤, 참사를 우려한 보졸리는 회사가 발사 결정을 되돌리도록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로저스 위원회가 보졸리의 입장을 지지한 이후, 그는 모튼 씨어콜과 NASA가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고 주장하면서 배상요구액이 십억 달러에 달하는 소송에서 이들과 맞서 싸웠다. 보졸리는 연방정부와 기업국가 미국에 맞서 싸우는 다윗과 같은 존재였다.
사건이 종결되고 난 다음에는 영웅과 악당을 가려내 제자리를 찾아주기 쉽다. 그러나 운명적인 발사 결정이 내려진 그 시점에 사건 당사자들이 직면했던 압박, 딜레마, 불확실성을 상상하기란 훨씬 더 어렵다. 발사 이전에 오-링과 그것에 얽힌 위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를 정확히 잡아내기 위해서 우리는 그 이전까지 시간을 거슬러올라가지 않으면 안된다.
얘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 점 한 가지는 기억해 두자.
비도덕적이고 이해타산적인 관리자들이 참사를 야기한 주범이라는 식의 이미지를
계속 밀고가는 것은 매우 어렵다. 물론 NASA의 관리자와 관료들이 챌린저 호를
발사시켜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주위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끝없는 발사 지연으로 인해 재사용가능하고 효율적인 우주선으로서의
셔틀의 이미지가 손상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또한 심한 압박을 받고 있던
우주 프로그램이 챌린저 호를 제때 발사시켜 '우주로 올라간 학교 선생' 크리스타
매컬리프를 로널드 레이건의 연두 교서 발표장에 생방송으로 연결시키면 홍보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의 스케줄 지연 때문에
우주 프로그램 전체와 자신들의 미래를 모두 위험에 빠뜨릴 이유가 과연 있었겠는가?
당시 NASA의 부국장이자 마샬 우주비행 센터의 과학 및 공학 책임자였던 조지
하디는 대통령 특별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불과 몇 시간의 스케줄 지연을 이유로 비행에서의 위험 증가를 뻔히 알면서 이를 용인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저는 이런 간단한 논리가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Vaughan, p. 49에서 인용)
관리자들이 아무리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인 의도를
지녔다 하더라도 그들의 위험-편익 계산에서는 안전성이 높은 우선순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챌린저 호 발사 결정에 대한 다이앤 보언의 새로운 연구는
오-링의 위험이 경제적 내지 정치적 압박 때문에 무시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무시된 이유는 전날 밤의 운명적인 원격회의 때 참석했던 엔지니어와
관리자들이 공학적 데이터와 예전의 안전 관행에 근거해 그날 밤 발사를 하지
말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없다는 데 합의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사건이 지나고
나서 보면 그들의 결정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지만, 문제의 그날 밤에 그들이
도달했던 결론은 당시까지의 기술적 전문성에 비추어 볼 때 합당한 것이었다.
오-링 연결부위
고체로켓 부스터(Solid Rocket Booster, SRB)는 고체연료와 산소를 섞어 연소시키는 장치이다. 셔틀의 SRB는 높이가 45미터로, 자유의 여신상보다 조금 짧다. SRB는 초당 10톤의 연료를 연소시켜 셔틀을 발사대로부터 '밀어올리는' 것을 돕는다. 각각의 부스터 내부에서는 엄청나게 높은 압력의 뜨거운 가스가 생겨나는데 이는 내화성 재료로 만들어진 분사구를 통해서만 배출될 수 있고, 이러한 가스의 분출이 추진력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분출되는 배기가스는 금속을 녹이기에 충분할 정도로 뜨겁다. 따라서 배기가스가 원래 정해진 곳[즉, 분사구] 외에는 아무 데서도 새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고체연료를 부스터에 적재하는 과정에서는 부스터가
여러 개의 부분으로 분해될 수 있다면 적재가 훨씬 쉬워진다. 셔틀에 있는 각각의
부스터는 원통형으로 생긴 커다란 4개의 구획부분과 앞머리, 분사구로 구성된다(그림
2). 각 구획부분들은 유타 주에 있는 씨어콜 본사에서 제작되어 따로따로 수송된
후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하나로 조립된다. 각 구획부분 사이의 연결부위는 내부의
엄청난 압력을 이겨낼 수 있도록 특수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부스터가 뜨거운
가스를 내뿜는 발사 순간의 처음 몇 분의 1초 동안, 원통형으로 생긴 각 구획부분은
바깥으로 부풀어올라 가운데가 불룩한 술통 같은 모양이 되는데 이로 인해 연결부위가
서로 꼭 들어맞지 않는 일이 생긴다. 이를 '연결부위 어긋남(joint rotation)'
현상이라고 한다(그림 3). 술통 같은 모양으로 변하는 이유는 연결부위와 거기
맞물려 있는 U자형 지지대 부분이 그 위아래에 있는 금속 로켓 외피에 비해
훨씬 더 휘어짐이 적기 때문이다.
<그림 2> 스페이스 셔틀의 구성요소들
<그림 3> 연결부위 어긋남 현상
여기 사용된 연결부위는 '탱 앤 클레비스(tang and clevis)' 연결부위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것이다. 원통형으로 생긴 부스터의 구획부분들은 각각 다른 구획부분 위에 쌓듯이 놓이고, 이 때 위 구획부분 하단의 가장자리('tang')는 아래 구획부분 상단의 특수한 포켓('clevis') ― 깊이가 10cm 정도에 불과한 ― 속에 꼭 맞도록 되어 있다. 각각의 연결부위는 U자형 강철 지지대로 싸여 있고 177개의 강철 핀으로 고정된다. 연결부위는 고무로 만들어진 두 개의 오-링에 의해 밀폐되는데, 오-링은 포켓 안에 특별하게 파여진 홈에 들어가 연결부위 어긋남이 생기는 몇 분의 1초 동안 뜨거운 가스가 새나가지 않도록 막는 역할을 한다.
오-링은 길이 11.4미터에 지름이 6.4밀리미터로 마치 말린 나무뿌리처럼 생겼고 이것이 고리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 부스터의 구획부분들이 조립될 때 오-링은 작은 틈새를 밀봉하기 위해 압축된다(오-링 '압착'). 석면 성분에 기반한 특수한 접합제가 오-링을 뜨거운 배기가스로부터 보호한다. 발사 이전에 연결부위를 검사하기 위해 두 개의 오-링 사이에는 누출 점검 증기구를 둔다. 부스터의 구획부분들이 하나로 조립된 후에 오-링들이 제위치에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누출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두 개의 링 사이로 고압 공기를 불어넣어 압력을 측정하게 된다. 그런데 얄궂게도 이 압력 검사는 오히려 셔틀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여기서 불어넣어진 공기가 접합제에 미세한 구멍을 만들어 나중에 뜨거운 가스가 뚫고들어와 오-링 밀폐를 침식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구획부분들 사이의 연결부위는 셔틀의 다른 구성요소들과
마찬가지로 보기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다. 심지어는 "발사 순간에 각 구획부분들
사이에 생기는 틈새의 정확한 크기는 어느 정도인가?"와 같이 일견 간단해 보이는
질문조차도 분명한 답을 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부스터가 점화되기
전에는 틈새의 크기가 대략 0.1밀리미터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점화 순간이 되면 이 틈새는 연결부위 어긋남 현상 때문에 팽창을 하게 되는데
그 정확한 크기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 틈새가 열리는 시간은 겨우 0.6초에
불과하다. 이는 그리 긴 시간은 아닌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엔지니어의
말을 빌자면 이것은 "이쪽 업계에서는 거의 평생 동안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이 0.6초 동안 정확히 어떤 일이 생기는가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공학적
노력이 요구되었다. 챌린저 호가 발사된 시기를 전후해 그 틈새의 크기에 대해
알려진 가장 좋은 추정치는 대략 1.07밀리미터에서 1.52밀리미터 사이였다.
SRB 연결부위의
설계와 검사
이러한 모든 어려움들은 1973년에 모튼 씨어콜이 SRB 생산 계약을 따냈을 당시만 해도 아직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다. 연결부위의 설계는 매우 신뢰성이 높았던 타이탄 로켓의 설계에 근거해 이루어졌다. 모든 사람들은 연결부위의 신뢰성이 매우 높다고 믿었다. 타이탄 로켓에는 오-링이 하나뿐이었다. 셔틀의 안전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두 번째 오-링이 첫 번째 밀폐에 대한 예비용으로 추가되었다. 두 번째 밀폐는 '여분(redundancy)'으로 제공되었다. NASA는 가능한 한 많은 구성요소들에 대해 여분을 두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특히 해당 부품이 제기능을 못할 때 비행 전체가 실패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구성요소에 대해 여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모든 구성요소들에 대해 여분을 둘 수 없다는 점은 명백했다. 만약 비행 중에 셔틀의 날개가 떨어져 나간다면 재난에 가까운 실패가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셔틀에 예비 날개를 더 달아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NASA와 하청 회사인 모튼 씨어콜은 부스터와 연결부위와 밀폐의 설계와 검사 책임을 공동으로 맡고 있었다. 검사는 종종 유타 주의 씨어콜 본사와 텍사스 주 헌츠빌의 마샬 우주센터에 있는 NASA의 로켓 엔지니어링 센터에서 나란히 수행되었다. 마샬 센터는 NASA의 보배였다. 센터의 첫 번째 소장은 전설적인 독일의 로켓 과학자인 베르너 폰 브라운이었다. 그는 마샬 센터를 설립해 이곳을 기술적 탁월성의 본산으로 키웠다. 아폴로 프로그램의 성공도 이 센터의 기술 능력에 크게 힘입은 것이었다. 이러한 자랑스러운 역사 때문에 마샬 센터는 자체적인 전문성이나 시설이 모튼 씨어콜의 그것보다 훨씬 우수하다고 자평하고 있었다. 마샬의 엔지니어들은 보수적이고 엄격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들은 하청 회사들이 내놓은 데이터와 분석을 '깔아뭉갬'으로써 하청 회사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일을 열심히 하도록 하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씨어콜에서 마샬의 엔지니어들은 '나쁜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으로 통했다. 씨어콜의 엔지니어들은 좀더 실용적인 옵션을 선호했고, 특히 마샬 센터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자신의 설계에 대해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두 그룹이 가진 서로 다른 태도 때문에 협상 과정에서는 종종 긴장이 감돌았고, 그러한 협상이 장기간에 걸친 논쟁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두 그룹은 모두 자신들이 가진 최선의 과학과 공학을 활용했다. 기술적 문제를 둘러싼 의견대립이 있을 경우 그들은 복수의 방법, 복수의 검사, 그리고 최고로 엄격한 공학적 분석에 의해 확인된 동일한 결과를 양쪽 모두가 얻을 때까지 노력해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그러나 앞으로 보겠지만, 엄격한 공학이 항상 깔끔하고 단정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이는 골렘 과학(golem science)에서 얻은 교훈과 일치한다.
연결부위 어긋남 현상은 초기에 양측 엔지니어들이 모두
인식했던 문제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가에 관한 추정치에서는
서로 견해가 달랐다. 씨어콜의 엔지니어들은 발사 순간에 연결부위가 닫힐 거라는
계산결과를 얻었다. 마샬의 엔지니어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의 계산결과는
연결부위가 일시적으로 열릴 것임을 보여 주었다. 연결부위에 틈이 생길 때
나타날 수 있는 결과는 두 가지가 있었다. (1) 오-링의 압축 내지 '압착'이
느슨해져서 밀폐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과 (2) 오-링이 제위치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그것이었다. 이 때 씨어콜과 NASA의 엔지니어들이 나중에 챌린저 호 발사
전날 밤에 취하게 되는 입장과는 정확하게 반대 입장에 서 있었다는 점은 역사의
작은 아이러니이다. 이 때에는 연결부위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던 것이 NASA
쪽이었고, 씨어콜 쪽은 연결부위가 설계에서 예상한 대로 동작할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물 분사 검사
의견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한 가지 검사 방법이 고안되었다.
물 분사 검사(hydroburst test)는 발사시에 나타나는 압력을 모방해 연결부위에
고압의 물을 분사해 보는 것이다. 1977년 9월에 씨어콜 사에서 수행된 이 검사에서는
연결부위를 스무 차례의 압력 사이클에 노출시켰는데, 각각의 사이클은 발사시의
압력을 모방한 것이었다. 검사 결과는 NASA측의 주장이 옳았음을 보여 주었다.
연결부위가 엔진 점화시의 짧은 시간 동안 열려서 밀폐를 날려버릴 수 있었다.
씨어콜은 연결부위가 열렸다는 점에서는 마샬 측에 동의했지만, 이것이 기체의
실패로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검사 조건 자체가 현실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두 가지 근거에서 이 검사가 실제 비행을 제대로
모방하지 못했다고 보았다. 먼저, 실제 비행에서는 오-링이 점화시의 압력을
스무 번이 아니라 단 한 번만 겪으며, 데이터에 따르면 오-링은 스무 번의 시험
중에서 처음 여덟 번 동안에는 완벽하게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둘째로,
검사는 부스터를 눕혀 놓은 상태에서 수행되었는데, 실제 사용될 때에는 부스터가
수직으로 세워져 있다. 그들은 로켓을 수평으로 눕혀 놓을 때 중력에 의해 생기는
뒤틀림 때문에 연결부위의 누출이 생겼다고 보았다. 씨어콜은 첫 번째 검사를
통해 확신을 얻었기 때문에 추가적인 검사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마샬의 엔지니어인 레온 레이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고 추가적인 검사를 주장했다.
유사성과 차이
여기서 엔지니어들이 맞닥뜨린 문제는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이 제기한 문제가 변형된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두 개의 사물이 서로 비슷한가 아니면 다른가 하는 문제가 언제나 인간의 판단을 그 속에 담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반복해서 그러한 판단을 내린다. 사물들은 그것이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 비슷해 보일 수도 있고 달라 보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만약 다양한 각도와 다양한 조명 상태에서 눈에 익은 친구의 얼굴을 본다고 할 때, 우리는 일상적인 인식의 맥락에서 우리가 보는 얼굴이 모두 '같은' 얼굴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다. 바꿔말해 우리는 이를 유사성의 문제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맥락이 달라져 만약 패션 사진의 경우라면, 다양한 조명 상태나 카메라 각도에서 각 사진에 강조된 얼굴 특징의 결정적인 차이들이 중요하게 부각될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이를 차이의 문제로 간주하게 된다.
똑같은 고려사항이 기술적 검사에도 적용된다. 대부분의 시험들은 기술이 실제로 쓰이게 될 환경을 단지 모방할 뿐이기 때문에, 검사 결과를 판단할 때 "검사 환경이 실제 쓰이는 환경과 얼마나 비슷한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게 부각된다. 물 분사 검사에 대한 모튼 씨어콜의 해석은 스무 번의 점화 사이클 검사가 셔틀의 실제 사용 환경과 충분히 다르며, 따라서 실제 발사시에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길잡이가 못된다는 것이었다. 반면 NASA의 입장은 검사가 실제 발사시에 일어나는 일과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NASA가 보기에 이 검사는 밀폐에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지적한 유효한 검사였다.
이미 말했다시피 NASA-마샬은 보수적인 엔지니어링 철학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씨어콜의 엔지니어들은 그러한 철학과 실용적인 설계라는
요구조건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느꼈다.
다양한 최악의 상황들이 있을 수 있고, 우리는 바로 거기 대비하기 위한 설계를 합니다. 하지만 이는 별로 실용적이지 못합니다. 연결부위의 밀폐가 제대로 작동하느냐 그렇지 못하냐, 혹은 오-링이 얼마나 압축될 것이냐를 결정하는 데 관여하는 수많은 요인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 각각의 요인들에서 최악의 상황에 해당하는 최대치와 최소치를 잡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모든 최악의 상황들을 한데 겹쳐놓고 우리에게 최초의 점화 압력이 가해질 때 이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하라고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는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했다간 부품 조립은 아예 시작도 못하게 될 겁니다.(Vaughan, p. 99에서 재인용)
설계 철학에서의 이러한 근본적인 차이와 유사하냐
다르냐의 판단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해석상의 허점을 감안한다면, 검사만 가지고
연결부위의 성능에 관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없었다는 것은 별로 놀랄 만한
일이 못된다.
추가적인 검사
연결부위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검사가 수행되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검사들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을 뿐이었다.
계속된 검사는 의견차이를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더 벌려 놓았다. 마샬과 씨어콜의 엔지니어들은 연결부위가 어긋날 때 생기는 틈새의 크기가 얼마인가에 대해 견해를 달리했다. 연결부위 어긋남 현상 자체가 반드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틈새의 크기가 얼마인가 하는 문제는 중요했다. 만약 틈새가 충분히 크다면 이는 오-링의 밀폐 능력에 영향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틈새의 크기를 알아내기 위해 고안된 검사들은 계속해서 서로 상반된 결과를 내놓았다. . . . 양측은 검사에 검사를 거듭했지만 의견차이는 해소되지 않았다.(Vaughan, pp. 100-101)
이러한 검사들 중 구조 검사 항목(Structural Test
Article)이라는 이름의 검사는 발사 동안에 셔틀의 원통형 구획부분에 가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압력을 모방한 것이었다. 연결부위 어긋남의 정도는 전기 장치를
써서 측정했다. 이 검사의 결과는 마샬의 엔지니어들이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문제가 더 심각함을 보여 주었다. 틈새의 크기는 두 개의 오-링 모두가 점화
순간에 제자리를 이탈할 정도로 충분히 컸다. 첫 번째 오-링은 압력이 가해지면
분사된 가스에 밀려 파여진 홈에서 벗어나 버렸다. 두 번째 오-링은 홈 위에
'떠 있게' 되어 첫 번째 오-링이 실패한 후에 밀폐를 해낼 수 없었다.
씨어콜은 이번에도 마샬측의 해석에 반기를 들었다. 그들이 보기에 문제는 연결부위 어긋남이 아니라 연결부위 어긋남을 측정하는 데 쓰이는 전기 장치에 있었다. 그들은 이러한 전기적 측정 결과가 그들 자신이 검사 때 얻은 (그들의 관점에서 분명히 더 우수한) 물리적 측정결과와 비교해 보면 '잘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전기 장치의 기기조정(calibration)이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고 결론내렸다. 그리고 그들 자신의 물리적 측정결과에서는 틈새의 크기가 더 작게 나왔기 때문에 두 번째 오-링은 실제 제자리에서 밀폐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다시한번 우리는 검사 결과의 모호함과 마주치고 있다. 여기서는 골렘 과학의 핵심에 있는 인간 실천의 또다른 측면이 쟁점이 된다. 그 쟁점은 실험자의 회귀(experimenter's regress)라는 것인데, 이 용어는 {골렘 The Golem}이라는 책에서 설명한 바 있다. 이는 연구의 최첨단에서 실험 결과를 놓고 논쟁이 벌어질 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 상황을 가리킨다. '옳은' 실험 결과는 문제의 실험 내지 검사가 제대로 수행되었을 때에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실험이 제대로 수행되었는가 하는 것은 오직 그 결과에 의해서만 판단할 수 있다.
이 상황의 논리는 이런 식이 된다. 어떤 것이 옳은 검사 결과인가? 큰 틈새인가, 아니면 작은 틈새인가? 여기서 옳은 결과는 검사를 통해 큰 틈새가 감지되는가, 작은 틈새가 감지되는가에 좌우된다. 이를 알아내기 위해 우리는 좋은 검사를 고안한 다음에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검사를 실제로 해보아 그것이 옳은 결과를 내기 전에는 그것이 좋은 검사인지 아닌지를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좋은 검사를 해보기 전에는 어떤 결과가 옳은 결과인가 아닌가를 알 수 없다. . . . 이런 식으로 무한히 계속될 수 있다.
NASA의 입장에서 좋은 검사는 틈새가 충분히 커서 밀폐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자신들의 관점을 뒷받침하는 전기적 데이터를 내놓는
검사이다. 모튼 씨어콜의 입장에서 좋은 검사는 틈새가 충분히 작고 밀폐는
예상했던 대로 작동할 거라는 자신들의 관점을 뒷받침하는 물리적 측정에 기반한
검사이다. 양 진영이 가진 자신감은 모두 자신들의 측정 장비가 '가장 과학적'이며
따라서 '가장 정확하고' '가장 나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보통의 경우 실험자의 회귀는 다른 요인들을 끌어들임으로써
금방 해소된다. 만약 두 그룹의 엔지니어들이 틈새의 크기에 대해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다면 제3의 그룹이 거기 필요한 확실성을 제공해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오-링 문제에 숙달되어 있고 정통한 지식을 갖춘 제3의 그룹인 오-링 제조업체들에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들 역시 이 사례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들은 예상되는 틈새의 크기가 산업 표준보다 더 크다는 점을 확인해 주었고,
오-링이 애초 의도된 설계 이상의 성능을 보이도록 요구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여기서 그들은 '실제 상황에 더욱 근접한 시뮬레이션' 상황을 만들어
더 많은 검사를 해보아야 한다고 하면서 공을 다시 엔지니어들에게 넘겼다.
NASA의 레온 레이의 말을 빌자면 이렇다.
나는 그쪽 기술 담당자들한테 프리젠테이션을 했습니다. 연결부위가 벌어지고 있고, 이 정도쯤 벌어지는 것 같다, 어떻게 해야 되겠냐, 라구요. 우주선은 거의 다 만들었고, 조만간에 발사를 할 예정인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그러니까 그 친구들이 하는 얘기가, 글쎄요, 그건 어려운 문젭니다. 정말 어려운 문제예요. 안됐지만, 당신네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나도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우리가 그 문제를 연구해 보고 답을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더군요. . . . 나중에 그 친구들이 우리 양측 모두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거기서 하는 얘기가, 당신네들이 지금 갖고 있는 걸 가지고 그냥 해야 될 것 같소, 제대로 작동하는지 충분히 검사를 하시오, 라는 겁니다. 그게 그 사람들의 조언 전부였어요. 지금대로 검사를 좀더 해보고 당신네들이 갖고 있는 것으로 어떻게 해보라, 그게 우리가 당신네들에게 해줄 수 있는 얘기 전부다, 는 거였죠.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했습니다.(Vaughan, p. 103)
레이는 연결부위를 처음부터 재설계하는 것도 고려해
보았지만, 당시 시점에서 그렇게 하면 셔틀 프로그램 전체를 엄청나게 지연시키게
될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레이를 포함한 모든 참가자들은 연결부위를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느꼈다. 그들은 단지 그것이 모든 조건하에서
잘 작동하겠는가에 확신이 없었던 것이었다.
절대적인 확실성의 기준을 설정해 놓고 엔지니어들을
비판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스페이스 셔틀과 같은 미지의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과 불확실성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현장 엔지니어들은 결국에
가면 위험의 크기를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그들은
그 기술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마샬의 래리
웨어는 이러한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비행기 설계, 자동차 설계, 로켓 설계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오-링이] 제대로 밀폐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할 겁니다. 그 점에 대해 토를 다는 사람은 없죠. 하지만 밀폐를 어느 정도까지 잘할 수 있어야 할까요? 어떤 경우에도 새지 않는 완벽한 밀폐라는 건 없습니다. 모든 밀폐는 조금씩 새기 마련입니다. 전혀 새지 않는 밀폐란 극히 드물죠. 여기서 이제 "새는 밀폐란 어떤 것을 말하는가?" 하고 묻는 단계로 접어들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모든 산업 분야에서 밀폐라는 말을 쓰긴 하지만, 거기 요구되는 엄격성이나 허용 정도는 산업 분야에 따라 달라집니다. . . . 어느 정도까지가 허용되는가? 이 질문은 경험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매우 주관적인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면 되는지를 알려면 해당 분야에서 상당한 경험을 쌓아야 하지요. . .(Vaughan, p. 115)
이 시점에서 오-링 밀폐는 불확실성을 내포한 셔틀의
수많은 구성요소들 중 단지 하나에 불과했다는 점을 기억해 두기 바란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한 검사
이 즈음에 틈새의 크기를 둘러싼 논쟁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이 나타났다. 사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틈새의 정확한 크기가 얼마인가가 아니라 오-링이 실제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틈새의 크기가 NASA나 씨어콜의 예상보다 훨씬 클 때 밀폐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하는가에 관한 검사로 관심이 전환되었다. 이번에는 검사 결과를 놓고 NASA와 씨어콜 사이에 이견이 없었다. 즉, 산업 지침을 위반하긴 했지만, 첫 번째 오-링은 발사시에 예상되는 어떤 상황보다 더 심한 조건에서도 밀폐를 유지한다는 점에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었다. 추가적인 검사로 두 번째 오-링의 성능에 대한 조사도 이루어졌다. 첫 번째 오-링이 부식된 상황을 모방하기 위해 이를 제거해 놓고 점화시의 압력을 가해 검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 번째 오-링은 밀폐를 유지한다는 점이 밝혀졌고, 연결부위에 필요한 여분을 제공했다.
다음에 두 그룹은 오-링 '압착'을 최대로 함으로써 연결부위를 가능한 한 빈틈이 없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이를 위해 그들은 오-링을 더 크게 만들고 최고의 품질을 갖도록 했고, 얇은 금속 웨이퍼를 연결부위 안에 끼워넣어 이를 더 단단하게 만듦으로써 연결부위에 '쐐기를 박았'다.
로저 보졸리가 씨어콜 팀에 합류한 것은 바로 이 즈음인
1981년 7월이었다. 이미 언급했듯이 실험에서 얻어진 오-링 압착의 크기는 산업
표준인 15퍼센트(이는 연결부위의 압력 하에서 고무가 적어도 이 값 이상으로
수축되어야 함을 의미한다)를 밑돌고 있었다. NASA의 레온 레이와 씨어콜의
로저 보졸리는 서로 긴밀하게 협력해 양측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값을 얻어내려
노력했다. 보졸리의 상사였던 아니 톰슨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로저]는 처음에 레온[레이]과 정말 좋은 경험, 어렵고 힘들고 골치아픈 경험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둘 다 정력적이고 자기가 믿는 바를 굽히지 않는 사람들이었거든요. 그리고 아마 7∼8개월쯤 힘든 대화를 거친 끝에 로저와 레온은 . . . 대략 7.5퍼센트의 압착[초기 압축] 값에 합의를 이뤘습니다. . . . 그 값 이하로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협상을 한 거죠. 그리고 우리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부품[쐐기]을 선택했습니다.(Vaughan, p. 104에서 재인용)
NASA측을 대변한 레이는 연결부위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결부위를 검사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게 훌륭하게 작동한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훌륭하게 작동해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7.5퍼센트에서는 새지 않습니다.(Vaughan, p. 104에서 재인용)
이어 레이는 자신의 관점을 이렇게 요약했다.
우리는 검사에 신뢰를 갖고 있습니다. 데이터는 첫 번째 오-링이 항상 연결부위 속으로 밀려들어가 밀폐를 유지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타이탄 로켓은 운행 기간 동안 하나의 오-링만 가지고도 아무 탈없이 비행했습니다. 그리고 설사 최악의 시나리오가 발생해 첫 번째 오-링을 잃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두 번째 오-링을 믿고 있습니다.(Vaughan, p. 105에서 재인용)
양측의 엔지니어 공동체는 연결부위가 설계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충분히 잘 작동하며 따라서 이는 수용할
만한 위험이라고 생각했다. 두 그룹은 이제 첫 번째 오-링이 밀폐를 유지한다는
점에 동의했으며, 연결부위에 여분을 두었다(즉 두 번째 오-링이 예비용으로
준비되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두 그룹은 여분에 대해 서로 다른
이해를 하고 있었다. NASA는 씨어콜의 예상치보다 틈새의 크기가 더 크다고
여전히 믿고 있었다. NASA는 최초의 점화 때에는 여분이 있지만 WOW 상황(Worst
on Worst, 즉 최악에 최악이 겹친 상황)에서는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가령
첫 번째 오-링이 점화 후 일정한 시간이 지난 다음에 실패하고 두 번째 오-링이
밀폐를 위한 제자리에 있지 않을 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었다. 반면 틈새의
크기를 작게 잡았던 씨어콜은 두 번째 오-링이 항상 홈 속의 제자리에 위치해
밀폐를 준비할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경우에 여분이 있다고 믿었다. 보졸리의
말을 들어 보자.
레온 레이나 나 같은 엔지니어들 사이에는 비행 준비 검토(Flight Readiness Reviews) 과정에서 항상 싸움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나는 [틈새 크기로] 1.07밀리미터를 썼는데 그들은 항상 내가 너무 낮은 값을 쓴다고 불평했기 때문이죠. 그러면 내가 아니다, 수평 검사에서 얻은 값[마샬에서 측정한 1.52밀리미터의 틈새 크기]을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가 수평 자세로 비행하는 것은 아니지 않냐, 하는 식으로 맞받아치곤 했습니다.(Vaughan, p. 106에서 재인용)
씨어콜과 마샬에서 연결부위를 '수용할 만한 위험'으로
지정한 것은 NASA 상층부의 공식 승인을 얻었고 셔틀은 최초의 비행을 위한
준비를 했다. 연결부위는 인증 과정에서 여러 단계의 공식 위험 평가 절차를
거쳤다.
셔틀의 최초 비행
이제 SRB 연결부위에 대한 최종 검사, 즉 첫 번째 비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의 모든 검사들과는 달리 검사와 실제 기술의 이용 사이의 간극을 마침내 메울 수 있게 된 것이다.
1981년 4월 12일, 최초의 스페이스 셔틀이 발사되었다.
이틀 뒤 지구를 서른여섯 바퀴 돈 후에 셔틀은 에드워즈 공군 기지에 안전하게
착륙했다. 두 개의 SRB는 바다에서 수거되어 분해되었다. 연결부위에서는 아무런
이상 징후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것은 마샬과 씨어콜의 엔지니어들이 예측했던
꼭 그대로 동작했다.
1981-1985:
부식과 가스 누출이 수용되고 예상되다
셔틀의 두 번째 비행은 1981년 11월에 있었다. 씨어콜은
엔지니어 팀과 사진 담당을 케네디 우주센터로 보내 회수된 부스터를 조사하게
했다. 케네디에서 이루어지는 씨어콜 활동의 책임자인 잭 뷰캐넌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챈 최초의 사람들 중 하나였다.
처음에 우리가 발견한 것이 뭔지를 잘 몰랐기 때문에 이것을 실험실로 가져갔다. 실험실 사람들은 우리가 찾아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Vaughan, p. 120에서 재인용)
그들이 본 것은 부식된 첫 번째 오-링이었다. 뜨거운
가스가 뚫고 들어와 고무를 1.27밀리미터 두께만큼 녹여 버린 것이었다. 이는
대단치 않은 것처럼 들릴 수도 있고 16개의 연결부위 중 오직 하나에만 그런
일이 생겼지만, 오-링의 부식은 타이탄 로켓에서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고
셔틀 엔진의 시험 연소나 이전 비행에서도 없었던 일이었다. 그런 일이 일어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엔지니어들은 즉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조사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답은 곧 발견되었다. 부식된 밀폐를 보호하는 접합제에
미세한 구멍이 나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분사 가스가 밀폐까지 뚫고들어올
수 있었다. 한 마샬 엔지니어의 설명을 옮기면,
접합제가 국소적인 고온의 분출구를 만들어냈고 이것이 오-링까지 도달하는 구멍을 뚫었다.(Vaughan, p. 121에서 재인용)
문제의 재발을 막기 위해 다른 화학적 조성을 가진
접합제와 그것을 바르는 다른 방법이 시험되었다.
밀폐의 부식은 좋은 소식도 함께 가져왔다. 부식이 있었음에도
첫 번째 오-링이 여전히 밀폐를 유지했다는 것이었다. 부식된 밀폐에 대한 검사를
통해 구체적인 안전상의 여유를 둘 수 있게 되었다. 첫 번째 오-링에서 작은
조각들을 잘라내어 실제로 일어난 것보다 부식이 두 배 더 많이 일어났을 때를
모방하는 실험을 해 보았다. 이 정도의 부식이 일어났을 때에도 연결부위의
밀폐는 여전히 잘 작동했다. 이 검사는 점화 시기에 예상되는 것보다 세 배나
큰 압력을 가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한 씨어콜 엔지니어는 이렇게 논평했다.
부식이 생긴 것은 분명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걱정거리를 덜어 주는 몇 가지 사항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우선 부식은 점화 초기에 일어났습니다. . . 만약 첫 번째 오-링이 그렇게 일찍 불에 타 버린다면 . . . 두 번째 오-링이 이를 막을 수 있는 제자리에 위치해 있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 . . 우리는 오-링의 절반 이상이 부식된 경우라 해도 그것이 밀폐를 위한 제자리에 위치해 있기만 하다면 고압 하에서 완벽하게 밀폐를 유지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Vaughan, p. 122)
새로운 접합제를 바른 후 다음 비행은 계획대로 이루어졌다.
다음 비행에서는 부식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자신들이 부식 문제에 대한
옳은 설명을 찾았다는 엔지니어들의 믿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잘 작동하는 기술로 간주되다
1982년 7월 4일에 네 번째 비행이 안전하게 끝난 후에 레이건 대통령은 셔틀이 이제 '잘 작동하는(operational)' 기술이 되었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그러한 선언에도 불구하고 많은 구성요소들에 대한 연구개발이 빠른 속도로 계속되었고 소소한 고장도 종종 일어났다. 예를 들어 레이건이 공개 선언을 했던 바로 그 비행에서 고체로켓 부스터가 낙하산에서 잘못 분리되어 바다에 떨어진 사건이 생겼고 이 부스터는 결국 회수되지 못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엔지니어들은 오-링의 성능에 관한 중요한 데이터를 얻을 기회를 잃어버렸다. 셔틀은 상업 항공기처럼 '잘 작동하는' 기술은 분명 아니었다. 챌린저 호 사고가 야기한 충격은 부분적으로 [셔틀이 이미 잘 작동하는 기술이 되었다는] 잘못된 이미지 때문에 생겨났고, NASA는 이런 이미지를 불식하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국회의원과 일반 시민을 셔틀에 탑승시킨 것은 이를 잘 보여 준다). 셔틀은 항상 높은 위험을 내포한 최첨단 기술이었고 이는 가까운 미래에도 여전히 그럴 것이다. 챌린저 호 사고 이후 연결부위를 재설계하고 본부에서 새로운 안전 절차를 제정한 오늘날에도 공식적인 위험 평가의 수치는 백 번의 비행당 한 번의 치명적인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통상의 상업적 탈것에서 예상되는 것과 비교하면 거의 천문학적으로 높은 수치다.
오-링 부식의 추가 증거는 1983년과 1984년에 발견되었다.
그러나 부식의 패턴은 감질날 정도로 드문드문 일어나 대체로 한 번에 연결부위
한 곳에서만 부식이 생겼고, 부식의 원인을 곧바로 설명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번은 접합제에 다시 결함이 발견되었고, 다른 한번은 비행 전에 두 번째 오-링이
홈에 제대로 들어갔는지 확인하려고 공기 압력을 높이다가 접합제에 바람구멍이
생겼다. 검사와 분석이 반복되었고, 시간이 가면서 엔지니어들은 연결부위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해 자신들이 점점 더 나은 이해를 얻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뜨거운 가스는 점화 초기의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만 오-링에 영향을
주는 듯했고, 그래서 연결부위가 밀폐되기 전에 약한 정도의 부식만 일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연결부위를 가로지르는 압력이 평형을 이루면 가스의 흐름은
멈추었고 추가적인 부식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부식은 '자기제한적(self-limiting)
요인'이라는 중요한 관념이 유도되었다. 1984년에 있었던 마지막 두 차례의
비행에서는 전혀 부식이 일어나지 않았고, 이는 자신들이 문제를 거의 해결했다는
엔지니어들의 믿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처럼 보였다.
가스 누출
1985년에 최초의 오-링 가스 누출(blow-by) 사건이 일어났다. '가스 누출'이란 첫 번째 오-링이 밀폐되기 전의 수 분의 1초 동안 뜨거운 연소 가스가 첫 번째 오-링을 지나쳐 들어오는 것을 가리킨다. 가스 누출은 뜨거운 가스가 두 번째 오-링을 위협함으로써 연결부위의 여분을 위험에 빠뜨리기 때문에 첫번째 오-링의 부식보다 더 심각한 문제였다. 1985년의 첫 번째 발사 때는 플로리다 주에 사흘 연속 기록적으로 밤 기온이 낮았다. 이 비행에서 가스 누출은 두 번째 오-링에까지 미쳤다.
첫 번째 가스 누출 사건이 있은 후 특히 로저 보졸리는 낮은 기온과 연결부위 손상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다고 느꼈다. 그는 부스터가 회수된 후에 연결부위를 조사했고 그 속에서 그리스(grease)를 발견했다. 그리스는 검게 불타 있었으며 두 개의 오-링 사이에서 나왔다. 이는 그에게 추위가 첫 번째 오-링의 밀폐 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였다. 보졸리는 즉시 추위와 오-링의 성능에 관한 체계적인 데이터를 찾아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전의 모든 연구들은 과도한 열이 오-링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것이어서 ― 주 연소실의 온도는 3,300℃에 달하는데 이는 철의 녹는점보다 높다 ― 보졸리가 원하는 데이터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졸리는 밀폐를 직접 '관찰'했지만 아직 '견고한' 데이터는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샬 엔지니어의 문화에서는 어떤 주장이 힘을 가지고 과학적인 것으로 간주되려면 견고한 정량적 데이터가 있어야 했다. 보졸리는 추위가 오-링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검사 프로그램을 발족시켜 그러한 데이터를 얻어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시급한 것이 아니었다. 기록적으로 낮은 기온은 그냥 요행수였을 뿐 다시 반복될 것으로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샬과 씨어콜의 엔지니어들이 최초의 가스 누출을 보고 놀라긴 했지만, 그들은 연결부위를 수용할 만한 위험으로 계속 분류할 수 있는 세 가지 근거를 갖고 있었다. (1) 부식 정도가 여전히 그들의 경험 기반 내에 있었다(즉, 그들이 경험했던 최악의 부식 정도보다 적었다). (2) 부식의 정도가 일부 잘라낸 오-링을 가지고 했던 검사에서 얻은 안전상의 여유 내에 있었다. (3) 이 현상은 여전히 '자기제한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 결과 기온에 대한 우려가 더 보태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로저 보졸리를 포함한) 씨어콜 엔지니어들은 다음 번 비행을 위해 마련된 비행 준비 검토 보고서에서 이렇게 결론내렸다. "[그것은] 동일한 성능을 보여줄 수 있었다. 상황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수용할 만한 수준이다."(Vaughan, p. 156)
1985년 4월의 비행(계절이 바뀌어 높은 기온에서 발사된)에서는 더 많은 가스 누출이 일어났다. 첫 번째 오-링이 완전히 불타서 돌파되었고 뜨거운 가스가 처음으로 두 번째 오-링을 부식시키는 일이 생겼다. 이는 매우 큰 우려를 자아냈으나, 상세한 분석 결과 가스 누출이 생긴 특이한 원인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첫 번째 오-링의 부식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이는 발사 직후의 1,000분의 몇 초 동안 일어난 것이 분명했는데, 이는 첫 번째 오-링이 제자리에 있지 못했음을 의미했다. 다른 밀폐들에서는 아무런 손상도 없었으므로, 이 밀폐만 손상되었던 것임이 분명했다. 머리카락 하나 혹은 섬유 한 올이 눈에 띄지 않고 연결부위에 들어가 있기만 해도 그런 일이 생기기에는 충분했다. 이런 일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누출 검사 압력을 더 높였다(이 경우 밀폐가 제자리에 위치하지 못하고 있다면 누출되는 양이 더 커질 것이다). 이 사례에서도 첫 번째 오-링이 제역할을 못했는데도 두 번째 오-링이 작동했고 여분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었다. 엔지니어들이 연결부위의 작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은 첫 번째 오-링의 부식이 일어난 바로 다음 비행에서 확인되었다. 첫 번째 오-링의 부식은 누출 검사에서 압력을 높여 생긴 접합제의 바람구멍 때문인 것으로 설명되었다!
가스 누출을 처음으로 접한 1985년의 사건들이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더 큰 우려를 자아낸 것은 분명했다. 온갖 종류의 새로운 검토, 분석,
검사를 지시하는 명령이 내려졌고, 여기에는 앞서 언급했던 낮은 기온에서의
오-링의 탄성에 관한 검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관련된
모든 엔지니어들(로저 보졸리를 포함해서)은 여전히 연결부위가 수용할 만한
위험이라고 생각했다.
챌린저 호 발사
결정
이제 우리는 많은 사고 조사관들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는가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챌린저 호 발사 결정이 어떻게 내려졌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 지식을 갖추었다. 그 모든 사전 경고들과 발사 전날 씨어콜 엔지니어들의 입장표명 ― 오-링의 손상과 낮은 기온의 연관가능성을 지적한 ― 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챌린저 호가 발사될 수 있었을까?
우리가 이미 보았던 것과 같이 연결부위는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셔틀에 있는 수많은 다른 구성요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한
이와 관련된 엔지니어 공동체는 수년 동안에 걸쳐 연결부위의 특성을 점점 더
잘 알게 되면서 이를 이해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토록 어렵게 얻은 이해를
포기하고 더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을지 모르는 완전히 새로운 설계를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챌린저 호 사고에 대한 오해의 상당부분은 뒤늦게서야 알게
된 사실로부터 비롯된 것이기도 했지만, 이 책의 목적에 비추어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오해가 엔지니어링의 지식이 확실한 지식이라는 잘못된 관점으로부터 빚어졌다는
것이다. 전문적인 엔지니어 자신이 위험에 대해 갖고 있는 관점과 외부의 비전문가가
가진 관점의 차이는 대통령 특별 위원회에서의 증언을 발췌한 아래 속기록에서
잘 볼 수 있다. 미 연방 항공청의 변호사인 트랩넬 여사가 씨어콜의 엔지니어인
브린튼 씨를 인터뷰하고 있는 대목이다.
브린튼: 현재 작동하고 있는 시스템에 변화를 가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조치를 취하는 것입니다.트랩넬: 작동하고 있는 시스템이라는 말은 제대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말하는 건가요, 아니면 스케줄에 맞춰 기능하도록 요구받고 있는 시스템을 말하는 건가요?
브린튼: 저는 "망가지지 않았다면 고치지 말라"는 오래된 경구를 말하고자 했던 겁니다.
트랩넬: 당신은 그 시스템이 망가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브린튼: 셔틀은 분명히 잘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분석은 그것이 자기제한적 시스템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은 매우 만족스러운 성능을 보여 주고 있었고 . . .
트랩넬: 글쎄요, 무슨 말인지 이해를 잘 못하겠군요. 당신은 한편으로는 그것이 자기제한적 상황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 .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엔지니어들이 부식으로 인해 밀폐가 뚫리면 파멸적인 결과가 빚어질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어요.
브린튼: 음, 이렇게 얘기해 보죠. 스페이스 셔틀을 포함한 모든 로켓 추진체에는 많은 부품들이 들어 있는데 이들 각각은 모두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측면에 뚫린 구멍, 단열재의 실패 등등 그런 것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런 것들 중 하나가 오-링을 통한 누출이지요. 우리는 오-링에서 발견한 손상들을 평가해 왔고 우리 자신에게 확인시켜 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발견한 손상이 자기제한적인 현상에서 빚어진 것이고 파멸적인 실패로 이어지지는 않을 거라는 결론에 대해 NASA가 만족감을 표시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트랩넬: . . . 그렇다면 씨어콜에서 일하던 엔지니어 중 한 사람[보졸리]은 오-링의 상황이 파멸적인 실패와 인명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게 놀랍지 않으세요?
브린튼: 나는 도로를 달려내려가던 내 차의 앞바퀴가 갑자기 터지면 마찬가지의 결과가 빚어질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기꺼이 그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고 운전대에 앉을 겁니다. 그리고 나는 셔틀에서의 위험이 도로를 달려내려가는 자동차의 위험보다 더 큰 것이었다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Vaughan, pp. 188-9에서 재인용)
연결부위의 문제는 많은 사고 조사관들이 추측했던
것과는 달리 NASA에 의해 억압되거나 무시된 것이 아니었다. 사실 엔지니어들은
이 문제와 거기 수반된 위험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수년에
걸친 기간 동안 연결부위 문제와 함께 살다시피 했고 그것의 특성을 상당히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연결부위에 위험이 따르며 이는 승무원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음을 알았지만, 이는 수없이 많은 셔틀의 다른 구성요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원격회의에 들어간 엔지니어와
관리자들이 무지의 상태에 있었던 것이 아님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들이
원격회의에 들어갔을 때는 연결부위에 대해 그간 축적된 모든 경험과 지식을
함께 가지고 들어갔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어떤 새로운 정보도 이러한 경험과
지식의 맥락에서 평가될 수밖에 없었으며 그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던 기준에
의해 판단되어야 했다.
발사 전날의 원격회의
씨어콜의 엔지니어들이 결정적인 원격회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유타 주의 씨어콜 본사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순차적으로 따라가 보자.
씨어콜의 주된 걱정거리는 추운 날씨가 오-링의 탄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었다. 장시간의 토론과 분석 끝에 씨어콜은 오-링의 온도가 11.7℃ 이상이 되지 않으면 '발사 중지'를 권고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 온도는 이전에 기온이 가장 낮았던 발사 때의 오-링 온도에서 계산해 낸 것이었다.
씨어콜은 어떤 입장을 취하더라도 강력한 기술적 논거를 제시할 수 없다고 느꼈지만, 그럼에도 보수적인 쪽으로 행동하기로 결정했다. 발사 시간에 예상되는 오-링의 온도(영하 1.7℃)는 그들이 경험했던 가장 낮은 기온보다 13.4℃나 낮은 것이었다. 오-링의 온도가 가장 낮았던 비행에서 가장 심한 가스 누출이 일어난 바 있었다. 그때에 비해서도 오-링 압착은 더 낮아질 것이고, 그리스는 더 찐득찐득해질 것이며, 오-링의 활성화 시간 ― 오-링이 밀폐에 생긴 틈새로 밀려들어가는 데 걸리는 시간 ― 은 더 길어질 것이었다. 따라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오-링이 과연 밀폐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씨어콜의 엔지니어들은 원격회의에 들어가기 직전에 그들의 기술적 프리젠테이션 자료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 차례의 가스 누출 사례를 서로 비교한 로저 보졸리의 도표는 둘 중에서 1월의 추운 날씨에 발사했을 때 손상이 더 심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도표에는 날씨와 관련된 데이터가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씨어콜이 준비한 또다른 도표에는 두 번째 비행 때의 기온이 23.9℃였다고 나와 있었다. 이 두 개의 도표를 나란히 놓고 보니 씨어콜의 주장에 엄청난 구멍이 있음이 드러났다. 손상이 가장 심하게 일어난 두 번의 경우는 각각 기온이 가장 높았을 때와 가장 낮았을 때였던 것이다!
씨어콜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낮은 기온의 발사 때 가스 누출이 실제로 훨씬 더 심했다는 보졸리 자신의 관찰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원격회의는 34명의 엔지니어와 관리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오후 8시 15분(동부 표준시)에 시작되었다. 그룹은 엔지니어와 관리자로 깔끔하게 나눠지지 않았다. 엔지니어들이 승진해 관리자가 되곤 하는 엔지니어링의 경력 구조 탓에 거기 출석한 모든 관리자들이 한때는 훈련받은 엔지니어였던 까닭이다. 씨어콜은 준비해 온 모든 도표를 꺼내들고 기온이 11.7℃에 이를 때까지 발사를 중지해야 하는 근거를 설명했다. 기온과 손상 정도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씨어콜의 주장에 내포된 결함은 이내 눈에 띄었다. 자신이 직접 육안으로 검사한 결과를 제시한 보졸리는 그러한 우려를 정량적 데이터로 뒷받침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으나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씨어콜의 프리젠테이션에서 앞뒤가 서로 안맞는 다른 점들도 드러났다.
NASA에서 SRB 관리 부서 책임자인 래리 멀로이(그는 발사 때문에 케네디 우주센터에 가 있었다)가 공격을 주도했다. 그의 주된 논점은 연결부위가 왜 수용할 만한 위험인지에 관한 세 가지 근거를 애초에 제시한 쪽이 씨어콜이었고 지금까지 씨어콜이 이를 항상 지지해 왔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낮은 기온에서 이루어진 예전의 발사에서 손상이 보고된 이후에도 씨어콜은 여전히 세 가지 근거를 지지했다. 이제와서 그들은 기온을 새로운 요인으로 도입하기를 원하고 있었지만, 씨어콜의 자체 데이터에 따르더라도 오-링의 가스 누출과 기온과의 상관관계를 보여줄 수 없었다. 기온 저하에 따른 오-링 압착의 감소마저도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었다. 탄성이 줄어드는 것은 분명하지만 심지어 영하 6.7℃에서도 탄성은 플러스 값이며 제조업체의 최저 요구조건보다 더 크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의 결론은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첫 번째 오-링이 손상된다 하더라도 두 번째 오-링이 밀폐를 유지하지 못할 거라는 증거는 없다는 것이었다.
원격회의의 모든 참석자들은 씨어콜이 취약한 공학적 논증을 내놓고 있다는 데 동의했다. 가장 논쟁이 되었던 부분은 11.7℃ 이하에서 '발사 중지'를 권고한 대목이었다. 이는 영하 1℃에서 아무런 가스 누출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씨어콜 자신의 데이터와 모순되는 것처럼 보였다. 절차적으로 보면 마지막 순간에 와서 새로운 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이상하게 보였다. 씨어콜 자신도 과거에 이 기준을 어긴 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12월에는 19일 동안, 1월에는 그 날까지 14일 동안 케이프 커네버럴 인근의 기온이 11.7℃ 아래로 떨어졌고, 원격회의 당일 아침에도 인근 기온은 오전 8시에 2.8℃였는데 씨어콜은 어떤 우려도 제기하지 않았다. 많은 참석자들에게 씨어콜이 11.7℃를 기준값으로 선택한 것은 다분히 임의적인 것처럼 보였다.
멀로이는 이 점을 직접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씨어콜은 발사 바로 전날에 새로운 공식적 기준을 부과하려 하고 있었다. 여기서 나중에 악명을 떨치게 되는 그의 언급이 나왔다. "세상에, 씨어콜에서는 대체 셔틀을 언제 발사하라는 얘깁니까? 내년 4월쯤에요?" 이 언급은 나중에 사고가 났음을 감안할 때 다소 불운한 것이었고, 멀로이가 안전성보다 비행 스케줄을 상위에 두었다는 증거로 그에게 불리하게 쓰였다. 멀로이의 말이 수사적 효과로 인해 과장되긴 했지만 이는 그가 가졌던 우려를 분명히 보여준다. 즉, 씨어콜은 11.7℃라는 기준값을 정해놓고 셔틀의 미래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매우 심각한 결론과 권고를 제안하고 있었는데 멀로이는 그 기준값 자체가 데이터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멀로이의 이러한 관점은 원격회의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했다. 마샬의 래리 웨어는 이렇게 말했다.
. . . 그건 분명히 훌륭하고 정당한 지적이었습니다. 셔틀은 일년 내내 발사될 수 있도록 설계되고 의도된 것이었으니까요. 애초의 기준에는 이것을 따뜻한 날에만 발사하라는 제한 요건이 없었습니다. 만약 그런 기준을 새로 만든다면 이는 중대한 변화가 되었을 겁니다 . . .(Vaughan, p. 311)
또다른 마샬의 엔지니어인 빌 리엘의 논평은 이렇다.
. . . 11.7이라는 기준값에 따라 발사 여부를 결정하자는 주장은 참 기가 막힌 얘기였습니다. 발사 전날 밤에 불쑥 나타나서 그런 주장을, 그것도 그렇게 약한 근거를 대면서 하다니 . . .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Vaughan, p. 311)
멀로이의 '4월' 얘기가 나온 다음에 원격회의에서
발언한 사람은 멀로이의 상사인 조지 하디였다. 그는 멀로이의 논점을 다시
강조한 후 씨어콜의 11.7℃ 제한 권고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appalled)'고
말했다. 그는 씨어콜의 공학적 논증에 내포된 약점을 다시금 되풀이했다. 그는
또 기억에 남을 언급을 여기 덧붙였다. "나는 하청 회사의 권고를 무시한 채
발사에 동의하지는 않을 겁니다." (p. 312)
하디가 '충격을 받았다'는 표현을 쓴 것은 일부 참석자들에게
상당한 큰 비중으로 다가간 듯하다. 씨어콜의 한 엔지니어의 말을 빌면,
나는 조지 하디에 대한 극도의 존경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건 절대적으로 그렇습니다. 순전히 나 자신을 위해 말하자면, 나는 그 순간을 분명하게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말은 나를 놀라게 했습니다 . . . 그리고 나는 바로 그 단어[충격을 받았다]가 방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 상당히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그 말에 사로잡혔어요. 그 단어는 하디 씨가 우리의 논증이 정당하지 않으며 발사는 예정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매우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걸 말해 주었거든요.(p. 312)
하디를 잘 알고 있고 이런 종류의 논쟁에서 나타나는
공박에 익숙한 다른 참석자들 역시 마샬의 반응에는 전혀 이상한 점이 없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씨어콜의 빌 맥베스의 말을 들어 보자.
아뇨, 그건 확실히 조지 하디의 성격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지 하디와 래리 멀로이는 사용하는 용어는 서로 달랐지만 기본적으로 동일한 논평을 하고 있었어요. [그들은] 우리의 기술적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얘길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걸 왜곡했고 모든 가능한 정보에 열어 두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죠 . . . 그들은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예전에 했던 다른 행동이나 프리젠테이션을 잘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당신들은 문제를 정말 주의깊게 숙고하지 않았고 프리젠테이션을 왜곡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얘기 말입니다. 그러자 그런 얘기를 우리 거래처로부터 듣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졌고 불안해졌습니다. 당시의 느낌은 내가 기술 관리자로서 그 점을 먼저 생각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구나 하는 거였습니다.(p. 313)
마샬의 엔지니어들은 씨어콜의 권고를 반박하는 데
있어 확실히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는 극히 정상적인 상황이었다.
두 그룹의 엔지니어들은 수년 동안 서로 격렬한 논박을 주고받아 왔다. 여기서
새로운 점은 처음으로 하청 회사가 발사 중지 권고를 내놓았다는 사실이었다.
씨어콜은 5분간 오프라인에서 간부회의를 가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다이앤 보언은 왜 간부회의가 요청되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자 모든 참석자들이 씨어콜의 공학적 분석이 너무 취약해서 그랬다는 답변을 했다고 쓰고 있다. NASA는 씨어콜이 충분한 증거로 뒷받침된 발사 중지 권고 ― 하지만 더 낮고 더 합리적인 기온 하한선을 기준으로 하는 ― 를 가지고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듯 보였다.
유타 주의 씨어콜 본사에서는 5분간의 회의가 30분에 걸친 토론으로 이어졌다. 수석 부사장인 제리 메이슨이 토론을 주관했고 멀로이의 논점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보졸리와 아니 톰슨은 자신들이 앞서 내놓았던 것과 동일한 데이터를 가지고 정력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변호했다. 이에 대해 메이슨이 반대 논증을 했다. 다른 엔지니어들은 대체로 침묵을 지켰다.
마지막으로 메이슨은 만약 엔지니어링 부서가 새로운 정보를 내놓지 못한다면 이제 경영상의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엔지니어들 중 새로운 정보를 내놓으라는 메이슨의 요청에 응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신들의 권고가 무위로 돌아갈 것 같아 보이자 놀란 보졸리와 톰슨은 자기 자리를 떠나 최종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폈다. 보졸리는 메이슨과 그의 상사들 앞에 두 장의 가스 누출 사진을 놓고 두 번의 발사에서 그을음의 양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 주었다. 자신들의 노력이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 두 엔지니어는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메이슨은 동료 선임 관리자들에게 표를 던지게 했다. 세 명이 발사에 찬성했고 한 사람, 로버트 룬드는 주저하는 태도를 보였다. 룬드에게 메이슨은 "이제 엔지니어의 모자를 벗고 경영자의 모자를 쓸 때요"라고 말했다. 이어 룬드도 발사에 찬성했다.
나중에 메이슨의 행동은 공학적인 우려를 경영상의 원칙으로
대체해 버린 것으로 해석되었다. 즉 스케줄 준수나 거래처와 고객 사이의 관계에
우선순위를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이것이 공학적인
의견차이가 있을 때 내려지는, 전형적인 '공학 경영'의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씨어콜의 조 킬민스터는 이렇게 설명한다.
방 안에 있던 엔지니어들 사이에는 분명한 견해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견해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단일한 공학적 견해를 요구받는 경우에는 누군가가 양측 모두로부터 정보를 모아서 판단을 내려야만 합니다.(Vaughan, p. 317)
씨어콜의 네 명의 선임 관리자들은 모두 자신들이
마음을 바꾼 이유가 그들이 애초의 기술적 권고에서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사실들
때문이었다고 했다. 가스 누출과 기온 사이에 압도적으로 분명한 상관관계가
없고, 오-링이 부식에 대해 상당한 안전상의 여유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있으며, 두 번째 오-링이 여분을 제공한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원격회의가 재개되자 씨어콜이 입장을 뒤집었다는 소식이
그쪽으로 전달되었다. 씨어콜의 새로운 권고와 기술적 근거를 낭독한 후에 하디는
탁자 주위에 있는 마샬 사람들을 돌아보았고, 원격회의 참가자들 전부에게 혹
덧붙일 얘기가 있으면 하라고 했다. 사람들은 침묵을 지키거나 할 얘기가 없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셔틀 프로젝트 관리자가 원격회의에 참가한 모든 그룹들에게
씨어콜의 권고에 대한 이견이나 다른 논평이 없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원격회의는 동부 표준시로 밤 11시 15분에 끝이 났다.
결론
셔틀 발사과정에 대한 지금까지의 재검토를 통해 부도덕한 관리자, 발사 스케줄에 의한 압박, 의견을 묵살당한 정직한 엔지니어 등이 등장하는 널리 퍼진 이야기는 지나치게 단순한 것임이 드러났다. 연결부위에 대해서는 장기간에 걸친 의견차이와 불확실성이 존재했지만, 원격회의가 열렸던 당시에 엔지니어들의 합의는 그것이 수용할 만한 위험이라는 것이었다. 씨어콜이 원격회의에서 결정을 번복하게 된 것은 널리 받아들여진 기술적 기준을 충족시키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발사 중지 권고를 뒷받침할 만한 충분한 증거를 갖고 있지 않았다. 특히 셔틀의 운행에 관해 새로운 저온 제한을 두자는 권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불합리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우리는 또하나의 오해에 대해서도 이를 평가하기에 더 좋은 위치에 있게 되었다. 리처드 파인만이 아마도 무심결에 퍼뜨린 생각, 즉 NASA는 추위가 오-링에 미치는 영향을 몰랐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결정적인 원격회의에서 이 점은 제법 상세하게 고려되었다. NASA 대표들은 이 문제를 폭넓게 연구했고 이에 대해 오-링 제조업체들과 직접 상의했다. 그들은 오-링의 탄성이 줄어들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으나, 이러한 영향이 그들이 정한 안전상의 여유 내에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셔틀 발사에 관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던 사람들은 그들이 이미 익숙해 있던 상황, 즉 엔지니어들의 견해가 서로 엇갈리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 중 하나의 견해가 이겼고 다른 견해는 졌다. 그들은 가능한 모든 정보를 들여다보았고 최선의 기술적 기준을 이용했으며 결국 하나의 권고에 도달했다.
물론 지나고 나서 보면 우리는 그들이 내렸던 결정이 비극적으로 잘못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후의 통찰이 지닌 확실성과 골렘 기술이 지닌 불확실성을 서로 혼동해서는 안된다. 지나고 나면 알 수 있는 통찰을 미리 얻을 수 없는 엔지니어들은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가능한 최선의 전문가 직무를 수행할 따름이다. 우리는 위험 없는 세상이란 불가능하며, 어떤 기술의 작동과 그에 수반된 위험을 평가하는 것이 항상 피할 수 없는 인간의 판단의 문제임을 깨닫게 된다.
여기 NASA를 위한 교훈이 있다. 역사적으로 NASA는 우주선을 확실성의 장막으로 둘러싸 왔다. 왜 어수선한 골렘 공학에 있는 반점이나 여드름, 흉터와 주름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가? 그러면 사람들은 셔틀을 비범한 인간적 성취로 높이 평가할 것이고 동시에 그러한 모든 모험들에 내재한 위험성에 대해서도 뭔가를 배울 것이다. 우주 탐사는 엔지니어링의 신화가 없이도 충분히 짜릿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챌린저 호 사고의 기술적 원인은 1998년 현재까지도
100퍼센트 확실하지는 않다. 낮은 기온, 부식, 오-링의 가스 누출이 해답의
일부지만, 다른 요인들의 기여도 있었을지 모른다. 1월의 그 비극적인 날에는
전례없이 강한 바람이 예고도 없이 불어닥쳤고 이것이 임시로 밀폐된 연결부위를
흔들어 느슨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어긋남 현상 때 틈새의 크기에 대해
현재 알려져 있는 바에 따르면, 그 값은 사실 NASA나 씨어콜이 내놓았던 가장
좋은 추정치보다 훨씬 작다. 얄궂게도 오늘날에는 훨씬 더 좁은 크기의 틈새를
메우기 위해 과도하게 압착을 한 것이 챌린저 호 참사에 기여한 원인들 중 하나라고
믿어지고 있다. 골렘 기술은 그 용맹한 진보를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