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의 정확성: 기술변화의 사회적 과정에 대한 사례연구
 

도널드 맥켄지
 
 

전략미사일의 정확도 증가는 기술발전 과정에 대한 사례연구 중에서 가장 중요한 예에 속한다. 최근 실시된 일련의 비행 테스트에서, MX/Peacekeeper 미사일은 히로시마에 투척된 원자탄보다 몇 배의 세기를 가진 핵탄두 10기를 장착하고 8000km 이상을 비행하여 목표물을 100m 이내의 오차로 명중시킬 수 있음을 잘 보여 주었다. 이에 대응하는 소련무기가 과연 존재하느냐의 문제는 계속해서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미국의 지상 발사 미사일을 소련측이 선제공격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최근의 미국 정치권에서 대두하는 것을 막지는 못하였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에 많은 사람들이 소망했던 안정적인 핵억제(nuclear deterrence)의 세계는 분명히 하나의 망상에 불과했던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위기상황에선 먼저 핵무기를 발사하는 것이 쌍방 중 어느 한쪽에 이익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 몇몇 이들에겐 희망이겠지만 ― 을 안고 20세기의 마지막 10년으로 향하고 있다. 미사일의 정확도가 증가한 것, 그리고 이에 따라 적국의 미사일 격납고나 지휘통제센터를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이 증가한 것은 이런 상황을 빚어낸 하나의 요인에 불과한 것이지만, 이는 하나의 결정적인 요인임에 분명하다.

이 논문은 극도의 정확도를 가진 탄도미사일의 개발을 가능하게 한 기술발전 과정을 탐구한다. 여기서 나의 촛점은 거의 미국의 미사일에만 한정될 것이다. 소련의 미사일 유도에 대해 공개된 기술적 정보는 극히 적고, 소련의 미사일 유도 기술을 만들어낸 기관의 구조 역시 명확하지 않다. 기관의 구조는 아마도 가장 중요한 요소일 텐데, 왜냐하면 기술 발전이 조직적, 정치적, 경제적인 문제들과 분리되어서 다뤄질 수 없다는 것이 이 논문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이 전제는 특히 미사일의 정확도 문제와 관련지어서는 다소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지금껏 많은 논자들은 미사일의 정확도 증가에 있어서 특별히 설명할 만한 것이 없다고 ― 적어도 사회적인 어떤 것은 없다고 ― 가정해 왔다. 나는 이렇게 단순화된 기술결정론적 견해를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관련된 기술적 영역들(주로 군부와 민간항공회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영역들 속에서 기술혁신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술적 변화가 반드시 아주 높은 정확도를 추구하는 방향을 취한 것은 아니었다.
 

기술시스템적 접근
 

복잡한 문제에 어느 정도의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서, 나는 토머스 P. 휴즈(Thomas P. Hughes)에 의해 개발된 기술시스템적 접근을 사용하였다. 나는 그 접근방법이 세 가지의 서로 관련된 이유 때문에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휴즈는 기술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분리해서 다루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다. 휴즈는 1983년에 출판한 자신의 책 Networks of Power에서 전기 공급 시스템의 성장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이 책에서 그는 성공했던 시스템 공학자(system builder)들이 동시에 기술적 문제들(예를 들어 전등의 필라멘트를 고안하는 것)과 경제적 문제들(기존의 가스 공급회사들과 가격면에서 경쟁할 필요), 정치적 문제들(전기 공급의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입법적인 틀)을 해결해야 했음을 보여 준다. 에디슨의 전등이나 골라드-깁스(Gaulard-Gibbs)의 변압기 같은 발명품들은 그 설계 속에 시스템 공학자들이 작업했던 전체적인 환경(경제적, 정치적 문제들을 포함한)의 흔적을 담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로 휴즈는 미시적인 것과 거시적인 것 ― 예컨대 특정한 실험실에서의 우선성 문제와 국가의 경제적인 상황 같은 ― 사이의 절대적인 구분 역시 거부한다. 여기서 미시적인 것과 거시적인 것 사이의 핵심적인 연결고리는 휴즈가 제안한 역돌출부(reverse salient)와 결정적 문제(critical problem)의 개념이다. 그가 제안하는 유비관계는 군사적인 것이다. 역돌출부란 시스템의 성장을 방해하는 어떤 것을 말하는데, 이는 마치 (대치중인 전선(戰線)에서) 전체적으로 밀리는 상황임에도 적군이 어떤 특정한 지점을 치고들어오는 것과 흡사한 것이다. 시스템 공학자들은, 마치 장군들이 주요 병력을 역돌출부에 집결시키듯이, 자신들의 노력을 역돌출부를 제거하는 것에 집중시킨다; 그들은 그 문제의 해결이 곧 역돌출부의 제거로 이어지는 '결정적 문제'들을 파악한다. 예컨대 에디슨은, 자신의 시스템에서 거시적인 영역에서의 결정적인 역돌출부였던 '구리 도선의 높은 가격과 이로 인한 가스등과의 가격 경쟁력 약화'를 '고저항(저전류) 전구 필라멘트의 발명'이라는 실험실상의 결정적인 문제로 환원시키고 있다.

하지만 환원이 항상 거시적인 것에서 미시적인 것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미시적인 것 역시 거시적인 것으로 환원 가능하다. 시스템 공학자들은 전등과 같이 원래 실험실 내에서의 탐구 대상이었던 것이 나라 전체로 전파될 수 있도록 주위의 사회를 변화시켰다. 여기에 휴즈의접근방법이 갖는 세번째의 장점이 있다: 즉, 성공적인 시스템 공학자들은 시스템과 그것이 발달하는 주변환경 사이에 엄격한 경계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시스템의 발전이 용이하게 되도록 주변환경의 틀을 짜려고 노력하며, 종종 전기 공급회사가 이전의 규제 기관을 역으로 통제하여 자신들을 보호하게 하였던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전의 주변환경을 시스템 속에서 용해시킨다.

휴즈의 시스템적 접근을 이런 식으로 읽어냄에 있어서, 나는 미셸 깔롱(Michel Callon)과 브루노 라투어(Bruno Latour), 존 로(John Law)의 영향을 받았다. 이 책에 수록된 논문들과 여타의 다른 글에서 나타나는 그들의 관점은 사회적/기술적, 거시적인 것/미시적인 것, 시스템/환경 사이의 엄격한 경계에 대한 휴즈의 암묵적인 거부를 더욱 분명한 것으로 만든다. 이는 시스템이나 네트워크가 단순하게 주어진 어떤 것으로, 다시말해 (마치 과거의 사회학에서 사용되었던 시스템적 접근에서 그러했듯이) 의문을 품을 여지가 없는 세계 내의 존재로 받아들여져서는 안됨을 강조한다; 그리고 '시스템'이라는 용어 역시 안정성이나 갈등의 결여를 내포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된다. 시스템은 일종의 구성물이며, 적절한 조건이 존재하는 경우에 한해서 상호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시스템이 그 구성요소들로 갑자기 분해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 행위자(actor)들은 시스템을 창조하고 유지시키며, 그들이 그것을 유지시켜 내지 못할 때 시스템은 소멸한다. 시스템의 안정성은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적대적인 힘 ― 사회적임과 동시에 자연적인 ― 앞에서 종종 아주 불확실한 성취에 그치고 만다.

역돌출부를 관련된 행위자들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주어진 어떤 것으로 보는 견해 역시 옳지 않다. 발전을 가로막는 것(=역돌출부)이 무엇인지에 대한 동의가 무엇을 성취하려 하는가에 대한 동의를 전제로 함은 명백할 것이다. 내가 뒤에 보이겠지만, 성취에 대한 동의는 자명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심지어 목표에 대해서는 서로간에 동의가 이루어졌다고 믿는 사람들조차도 종종 그들의 목표의 성취를 가로막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한 동의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현명하게도 휴즈는 병목(bottleneck) 현상과 같은 보다 기계적인 은유 대신에, 불가피한 혼란과 유동성, 전장(戰場)에 대한 부분적 정보 등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역돌출부'라는 용어를 선택했다. 이런 뒷궁리를 짜내는 지혜를 가지고서야 (어떤 때는 이렇게 해도 안 되지만) 발전에 대한 장벽의 본질에 대한 논란을 잠시나마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종종 상당히 합리적인 사람들이 어떤 상황의 기술적(혹은 군사적) 사실들을 조사한 후 그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는 경우가 생긴다. 하지만 만일 그들이 의견을 같이한다면, 이는 그들에게 던져진 상황의 효과로부터 얻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들이 상황 속으로 가지고 들어온 것 ― 그들이 받은 교육, 지니고 있는 전제, 상황에 대한 이해 관계 ― 으로부터 얻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원인-결과의 방향이 항상 역돌출부에서 결정적인 문제 쪽으로만 향하는 것이 아님을 밝혀두는 것도 의미있을 것이다. 결정적인 것으로 인정된 문제를 풀어내는 것은 상당한 보상에 대한 기대 ― 그것이 재정적인 것이건, 혹은 직업적 지위에 관한 것이건 간에 ― 를 수반한다. 따라서 자신이 풀어낼 수 있는 문제를 결정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역돌출부를 자신이 제거할 수 있는 특정한 장벽으로 보려는 자연스런 경향이 존재한다. "문제를 찾다가 해답을 발견한다"하는 말은 무척이나 상투적으로 들리지만, 기술 변화의 중요한 측면을 정확히 짚어내는 말이다. 만약 문제를 풀어내는 것에 대해 어떤 보상이 주어진다면, 그리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상이한 유형의 문제를 풀어 내는 것에 있어 다른 능력을 갖고 있다면, 어떤 문제가 보다 해답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생기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명백한 예를 들자면, 기술자들과 회계사들은 그들이 유능하게 풀어낼 수 있는 문제의 유형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들은 특정한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역돌출부가 그 본질에 있어 재정적인 것인지, 혹은 기술적인 것인지에 대해 종종 의견의 불일치를 보인다. 이와 유사하게, 서로 다른 숙련과 경험유형을 가진 기술자들은 기술적인 역돌출부가 예컨대 하드웨어적인 것인지 소프트웨어적인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달리할 수도 있다.

게다가, 무엇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생긴다. 시스템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것은 창의적인 노력을 투여할 가치가 있는 역돌출부인가, 아니면 단순히 처치곤란한 자연적 한계일 뿐인가? 여기서도 역시 불일치의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 보겠지만, 지금 주로 쓰이고 있는 (항공기·미사일) 유도 기술의 형태는 몇몇 사람들에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과학사와 과학사회학으로부터 우리는, 세계의 진정한 본질에 대한 상이한 믿음들이 존재했으며, 종종 이는 사회적으로 유형화된 방식으로 그러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믿음들은 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기술적 변화의 형태와 직접적인 관련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기술사학자나 기술사회학자만을 위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이 논문을 쓰는 데 있어 부분적으로 근거하고 있는 유도 기술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들 중 몇몇이 유사한 생각을 ― 물론 다른 용어를 사용해서이긴 했지만 ― 표현하는 것을 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잘 표현하느냐 하는 것과 그들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성공했는가 하는 것 사이에 거칠게나마 어떤 상관관계가 존재하는 듯이 보였다는 점이다. 여기에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기술자들은 사회학이나 여타의 사회과학을 공부할 시간을 거의 갖지 못한다. 그러나 성공한 기술자들은, 성공하기 위해서 금속이나 방정식을 잘 다루는 것 이상의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기술적인 사업은 동시에 사회적이고, 경제적이며, 정치적인 사업이기도 한 것이다. 존 로의 용어를 빌자면, 성공적인 기술적 활동은 불균질적인 공학(heterogeneous engineering)이다. 물론 어떨 때는 기술자들이 인간적인 문제나 조직상의 협력에 묶이는 것을 잊고 금속과 방정식만으로 시스템을 만들어내려 시도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기술자들은 종종 그들의 동료들이 "X가 뭔가 훌륭한 걸 하나 만들었는데 말야, 어찌된 일인지 아무런 주목을 못 받았어; 아무도 그것에 관심을 보이지 않더군."라고 수군거리는 그런 인물이 되곤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다른 기술자들은 불균질적인 공학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그것을 귀찮게 여긴다: 베르너 폰 브라운(Berner von Braun)의,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불평 ― "우리는 중력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지만, 그 지긋지긋한 문서처리에는 손들었다" ― 이 잘 보여주듯이. 하지만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에 상관없이, 기술적인 활동의 불균질성은 이미 기술적인 작업에서 불가피한 일부분이 되어 버렸다. 불균질성에 촛점을 맞추는 데 있어서, 기술에 대한 사회적 연구가 '기술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오래되고 모호한 ― 그렇다고 해서 하찮은 것은 아니지만 ― 논쟁에 우선적으로 기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해 둘 필요가 있겠다. 기술에 대한 사회적 연구는 성공적인 기술적 활동으로 간주되는 것의 결정요인들을 탐구한다.
 

미사일 유도에 대한 기술시스템적인 시각
 

아주 단순화된 수준에서는, 시스템적 접근을 미사일 유도에 적용한다는 것이 불합리하게 보일 것이다. 미사일 유도의 지배적 형태에 있어서 결정적인 것은 그것이 자기충족적(self-contained)이라는 점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관성 유도는 다른 형태의 유도·항행(航行) 형태가 일반적으로 필요로 하는 외부 입력에 의존하지 않는다. 예컨대, 현위치 측정을 위한 천체 관측은 불필요한데, 이 사실은 관성항법장치를 묘사하는 초기의 구호 ― "천문학을 벽장 속으로!" ― 를 만들어 냈다. 관성유도 혹은 관성항행은 항행체(미사일, 비행기, 잠수함 등등) 내에 탑재된 '관성측정장치'(inertial measurement unit)가 감지하는 가속도의 측정에 의해 가능해진다. 보통의 경우, 관성측정장치는 서로 수직을 이루고 있는 세 개의 가속변계(加速變計)를 포함한다. 이 가속변계들은, 일련의 자이로스코프와 피드백 제어에 의해 (항행체의 요동이나 방향전환에 무관하게) 어떤 특정한 방위(方位)를 유지하고 있는 '안정된 지지대' 위에 설치되어 있다. MX/Peacekeeper 미사일의 '진보된 관성기준시스템'(Advanced Inertial Reference System, AIRS)은 그러한 관성측정장치의 하나의 예 ― 보다 발달하고 복잡해진 ― 이다.

이런 식으로 관성측정장치는 감지되는 가속도를 측정하며, 이는 자이로스코프 덕분에 어떤 주어진 기준틀에 대한 값으로 표시될 수 있다. 한편 항행체에 탑재된 컴퓨터 ― 초기 시스템에서는 아날로그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강력한 디지탈 방식으로 바뀌었다 ― 는 지구 자기계의 변화된 값을 보정한다. 컴퓨터는 여기에 측정된 가속도값을 함께 고려하여 항행체의 속도를 얻어내며, 알려진 초기값에 근거하여 항행체의 위치를 알아낸다. 그 결과 시스템은 항행체의 위치에 대한 간단한 출력을 제공하거나(비행기의 항행의 경우) 혹은 항행체가 주어진 목표물로 향하는 데 필요한 보정값을 계산해 내거나(미사일 유도의 경우) 한다.

관성 유도를 보조하기 위해 추가적인 정보가 제공될 수도 있다. 최근의 순항 미사일은 컴퓨터에 저장된 '지도'와 비교할 수 있는 입력을 만들어 내기 위해 레이다 고도계를 사용한다. 트리덴트 Ⅰ 미사일은 천체의 위치를 추가 입력으로 받아들이며, 트리덴트 Ⅱ 역시 같은 방식을 채택할 예정으로 있다. 하지만 반복하건대, 아무런 보조장치가 없는 관성유도는 그 자체로 자기충족적이다. 이 점은 판매시에 강하게 어필하는 지점이 되어 왔으며(악천후나 적군의 전파방해 등에 영향받지 않으므로), 우리가 앞으로 보게 되는 바와 같이 그것이 현실화되는 가능성에 대한 주요한 반대의 원천이 되기도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미사일 유도는 휴즈의 보다 정교한 시스템 연구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전기 공급 시스템과는 상당히 다르다. 아마 전기 공급과 보다 유사한 것은 지상의 중계소나 인공위성으로부터의 무선 신호 수신에 의존하는 다양한 전파 항행 시스템들 ― 한때 관성 항행의 경쟁대상이기도 했던 ― 일 것이다. 이들은 비록 그 상호연결을 송전선이 아닌 전자기 복사에 의존하고 있긴 하지만, 물리적 네트워크임에는 분명하다; 이에 대한 군부의 강한 반대는 정확히 이 때문이었다. 전파 항행의 경우 전기 공급 네트워크의 경우처럼 지리적인 확산의 정도가 중요한 문제가 되는 반면, 관성 시스템의 경우에는 이를 내부적인 프로그래밍으로 해결하였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우리가 이 시스템들의 사회적인 측면으로 보다 명시적으로 접근해 보면 이 유비관계는 깨지기 시작한다. 전파 항행의 경우 그 기술적인 결과물이 사적인 성격을 지니기 어렵다 ― 이는 무선 통신의 초기 개척자들을 계속 따라다녔던 문제이기도 하다 ― 는 점이 지적된다. 따라서, 경제적 사업으로서 이는 전기 공급의 경우와는 다르며, 따라서 휴즈가 전기 공급에 있어서 부담 요인과 결부시켰던 독특한 사회-기술적(sociotechnical) 역동성은 전파 항행의 가장 두드러진 시스템 기술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에 우리가 시스템의 개념을 좁은 물리적 의미에만 한정한다면 이 개념은 대단히 빈곤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시스템을 고려해 봄으로써 우리가 다룰 주요 소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적어도 네 가지 방식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먼저 이는 우리에게 관성 유도가 그 작동에 있어 제한적인 의미에서만 자기충족적임을 일깨워 준다. 관성 유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미사일의 발사 위치, 목표물이 놓인 정확한 지점, 그리고 적어도 지구자기장의 상대적인 비율 등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한다. 이런 형태의 체계적인 연결을 통해서 명백히 중립적인 과학의 일부분 ― 특히 측지학(geodesy)과 지구물리학(geophysics) ― 이 핵심적인 군사적 중요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저공비행을 하는 순항 미사일의 출현으로 지역적인 중력장 이상에 대한 지식이 이전보다 훨씬 중요하게 된 것이 그 한 예이다 (고공비행을 하는 탄도미사일의 경우, 지역적인 중력장 이상은 미사일을 발사하는 지점 근처에서만 중요한데 이는 고도가 증가함에 따라 중력장 이상의 영향이 급격히 감소되기 때문이다). 나는 중력장에 대한 군사적 중요성이 증가함에 따라 세계 중력장 지도(World Gravity Map)의 출판이 계속 미루어져야 했다는 말을 들을 바 있다.

두번째로 지적할 점은 관성 유도 시스템 역시 하나의 시스템인 것은 분명하며, 미사일의 정확도는 시스템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가속변계나 자이로스코프, 탑재된 컴퓨터, 중력장 지도와 측지학적인 자료, 탄두가 다시 대기권에 진입할 때 생기는 일 ― 이 모든 것들이 정확도에 있어서 핵심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전체는 개개 요소들의 단순합과는 다른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강력한 디지탈 컴퓨터를 탑재하게 됨에 따라, 자이로스코프에서 나타나는 오류의 예상가능한 형태를 수학적으로 모형화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정확도에 대한 각각의 부분들의 서로 다른 기여 정도를 계산하는 것 ― 흔히 오차 산출(error budget)이라고 불리는데 ― 은 더 이상 각각의 부분들이 최종 결과와는 독립적으로 기여하는 정도를 산술적으로 합하는 형태가 될 수 없었다.

이것이 단순히 기술을 요구하는 문제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는 유도 기술을 만들어내고 관리하는 책임을 진 기관의 사회적 구성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복잡하고 값비싼 기술의 경우에, 노동의 분화는 불가피하다. 예를 들어 미국 해군의 미사일의 경우, 전략시스템 계획국(Strategic Systems Program Office)의 서로 다른 부서들이 미사일의 유도 시스템과 이를 탑재할 잠수함의 항행 시스템의 책임을 맡고 있고, 이와는 완전히 구별되는 민간 기구(MIT의 찰스 스타크 드레이퍼 연구소와 록웰 인터내셔널의 자동 유도제어 항해 시스템 부서)들이 각각의 설계를 맡고 있다. 그러나 두 시스템 모두 미사일의 정확도에 기여하고 있고, 트리덴트 미사일의 천체 위치 측정기가 잠수함의 항해 시스템에 적용되어 오차를 수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예에서 드러나듯이 이는 상호 상승적으로 작용한다. 이는 구성조직들이 서로 완전히 구분되는 하위목표를 가지고 상호간에 책임 소재를 분명히 구분하는 것이 아주 어려운 사회적 문제가 되었음을 뜻한다.

이는 바로 미사일 유도에 대한 기술시스템적 시각이 갖는 세번째의 장점으로 이어진다. 이 접근법은 기술적 문제들이 동시에 조직적이고 경제적이며 정치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이는 미사일의 기술적 특성 ― 예컨대 그것의 정확도 ― 에 대한 기대치를 정하는 의사결정과정에서 가장 잘 볼 수 있다. 물론 그런 결정들은 그것이 더욱 세부적인 설계상의 결정을 내리는 틀 구조의 중요한 일부분을 이룬다는 의미에서 기술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는 수많은 개인들의 경력뿐 아니라 특정 기업이나 프로젝트 담당 부서, 심지어 군대의 어느 한쪽 부서의 사활이 그것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조직적인 것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관련된 이해관계들은 종종 서로 충돌한다. 기술자들과 이들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조직은 보통 자신들의 특정한 기술을 완전하게 사용하는 것을 추구하며, 기술선택을 위해 필요한 특정한 조건의 설정에서 가능한 귀결점을 알고 있다. 반면 프로젝트 관리자들은 혁신적인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을 막고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제안은 거절하는 것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기술자들 중 한 명이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두 부류의 프로젝트 관리자들이 있죠 ― 보수적인 사람들하고 해고되는 사람들." 따라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복잡한 계산이 행해져야 한다. 1960년대에 있어 문제는 해군 함대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서 장기적으로 보아 선제핵공격이 가능한 미사일을 개발해 공군과 경쟁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해군 미사일로서의 독특한 역할을 추구하는 것이 좋은지 하는 것이었다. 결국 후자의 관점이 승리했고, 특히 포세이돈 미사일의 설계특성 ― 정확도가 아주 높은 편은 아닌, 비교적 작은 미사일의 대량구비 ― 에 이것이 반영되어 있다.

해군과 공군의 미사일 프로그램에서 초기에는 경제적인 고려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다. 해군 함대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해 쓴 1955년의 메모에서 해군 본부 사령관이었던 알리 버크 제독은 다음과 같이 간단히 썼다: "우리가 더 많은 자금을 필요로 한다면, 우린 그걸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방위 산업이 통상적인 상업적 압력으로부터 상당히 격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인터뷰했던 유도 기술자들은 기술적 결정이 동시에 경제적인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이는 소형 ICBM인 미지트맨 미사일에서 잘 드러난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이 미사일의 유도시스템 설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에서 경제적인 고려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이 미사일은 MX/Peacekeeper 미사일에 비해 훨씬 많은 수 ― MX/Peacekeeper의 50-100기에 비해 월등히 많은 600기 정도 ― 가 배치될 것으로 계획되고 있다.

미사일의 정확도와 같은 설계변수를 정하는 것은 한편으로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과연 격납고 속에 있는 소련 미사일을 파괴할 수 있는 미사일을 설계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미국 내에서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고, 이 논쟁에서 미사일의 정확도는 그 가능성 여부를 가름하는 문제였다. 대체적으로 국방 문제에 있어서의 강경파들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고, 온건파들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중반에 걸쳐 브룩스 상원의원과 맥긴타이어 상원의원에 의해 주도된 의회 로비활동은 선제핵공격의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기술적 발전을 반대했다. 이러한 반대가 얼마만큼 효과적이었는지를 정확히 평가하긴 어렵지만, 그 시기에 미사일의 정확도의 제고(提高)를 추진했던 사람들이 그것을 하나의 제약조건으로 느낀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이 논쟁은 군부 내에서도 약간의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적어도 1970년대 중반, 모든 전략 미사일에서 선제핵공격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국가정책이 결정적으로 돌아서기까지는 해군에서보다 공군에서 선제 핵공격에 대한 더 큰 열정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기술적인 것, 조직적인 것, 경제적인 것, 정치적인 것이 상호 얽혀 있는 것은 미사일 유도를 기술시스템적으로 바라보는 것의 네번째 장점 ― 즉, 불균질적인 공학의 필요성에 대한 강조 ― 로 이어진다. 여기서 찰스 스타크 드레이퍼(Charles Stark Draper)라는 인물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드레이퍼가 이끌던 그룹이 관성 유도와 항행을 탐구하는 미국 내의 유일한 그룹인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초기 연구는 노스아메리카 항공(록웰 인터내서널의 전신)의 자동 유도제어 부서와 베르너 폰 브라운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온 일련의 독일인 유도 기술자들과, (그리 확실친 않지만) 노드롭(Northrop) 항공사에 있던 기술자들 등등에 의해서 이미 수행되었다. 드레이퍼가 다른 많은 훌륭한 기술자와 과학자들 사이에서 두드러질 수 있었던 것에는 그의 불균질적인 공학의 역할이 컸다: 그의 유일한 라이벌은 자동 유도제어 부서의 존 R. 무어(John R. Moore)였다.

종종 어떤 새로운 기술을 추진하기 위해 필요한 불균질적인 공학은 그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한 느낌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파격적으로 새로운 기기는 이미 존재하는 시장을 찾지 않는다: 그 시장은 구성되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당면한 상황 속에서 드레이퍼와 초기 관성유도항행의 개척자들이 맞부딪친 문제는 이것이 아니었다. 2차 세계 대전에서의 폭격의 경험은 정확한 항행의 필요성을 충분히 드러나게 만들었고, 그에 따라 적군이나 날씨가 개입할 수 없는 기구의 군사적 필요성이 명백해졌다. 필요한 일은 기술의 필요성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실현가능성을 보이는 것이었다. 만약에 드레이퍼와 다른 기술자들이 이 일에 실패했다면, 관성 유도는 지금쯤 마치 우리가 반중력 차폐물(antigravity screen)의 예에서 보듯, 그것이 필요하다고 말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 왜냐하면 그것이 불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니까 ― 그런 기술이 되어 있을 것이다.

가속도의 이중적분에 의한 항행의 아이디어는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이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초기의 참고자료는 동물들이 어떻게 날아다니는가에 대해 논한 머피(Murphy)의 글이다. 하지만 그 실현가능성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반박이 제기되었다. 첫번째는 실제적인 문제로, 유도항행에 유용할 정도의 정확도를 가진 가속변계와 자이로스코프는 만들 수 없다는 것이었다. 두번째는 관성항행이 물리학 법칙을 위배하는 것이라는 반박이었는데, 특히 자기충족적인 계에서는 중력벡터의 변화로부터 가속도를 감지해 낼 수 없다는 주장 ― 일반상대성이론의 핵심적인 가정 ― 은 관성항행의 개념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맥스 슐러(Max Schuler)는 나중에 관성항행의 결정적인 이론적 근거를 놓은 것으로 평가된 논문에서, 가속도벡터의 적분에 의한 항행 개념을 어느 정도 내포하고 있는 아이디어를 '거의 불가능한 작업'이라고 묘사한 바 있다. 미국 내에 있던 기존의 자이로스코프 생산업자들은 관성항행에 필요한 정도의 정확도를 가진 자이로스코프를 생산하라는 제안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때 드레이퍼 자신도, 한 시간 비행한 후에 1마일 정도의 오차를 갖도록 하려면 당시보다 100배 정도 정확한 자이로스코프가 필요하다고 계산한 바 있다. 미 공군에서 원하는 바 ― 즉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폭탄이나 순항 미사일을 싣고 소련까지 날아가서, 10시간 비행 후 1마일 정도의 오차로 목표물을 명중시킬 수 있는 시스템 ― 를 성취해 내기 위해서는 자이로스코프의 기능이 1000배만큼 향상되어야 했다.

관성유도 기술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드레이퍼가 동원한 방법들은 놀라울 정도이다. 그가 이끌던 MIT 계측 연구소(MIT Instrumentation Laboratory) ― 1970년대 초에 MIT에서 분리된 후에는 찰스 스타크 드레이퍼 연구소로 알려졌던 ― 는 대학 내의 연구그룹이었기 때문에 재정적 원천이 비교적 넉넉하지 못한 편이었다. 따라서 연구소는 외부 자금의 지속적인 유입을 필요로 하였다. 하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대학 내에 속한 연구집단이라는 맥락은 도움이 되었다. 당시에 MIT는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는(지금도 그렇지만) 공과대학 중의 하나였고 전쟁 중의 성공적인 과업 수행으로 명성을 얻고 있었다. 따라서 MIT와의 관련성은 (MIT 내의 많은 사람들이 그 프로젝트에 회의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드레이퍼가 제안한 프로젝트와 드레이퍼 자신에게까지 상당한 신뢰를 주는 요인이 되었다. 한편으로 드레이퍼는 군부 내에서 전문적인 제언이나 상담 역할을 수없이 맡을 수 있었는데, 이는 명백한 재정적 이해관계를 가진 산업체의 상담역이 보다 의심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MIT의 졸업생들이 군부와 정계에서 많은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중요했던 것은 드레이퍼 밑에서 수학한 공군, 해군 장교들이었다. 드레이퍼는 자신이 2차 대전 때 수행한 사격조준기 개발작업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포함하여, 군부 내에 폭넓은 개별적 친분관계를 갖고 있었다. 핵심적인 계약은 종종 술자리에서 친구들 간의 협상으로 해결될 수 있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이런 일이 온당치 않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 가능성이 확립되지 않은 기술을 만들어 내는 데 이러한 과정은 필수적인 부분이며, 만일 보다 관료적인 환경이었다면 필요한 연구자금이 충당될 수 있었을지는 확실치 않다.

어떤 계기가 요구될 때, 드레이퍼는 즉각적으로, 또 직감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다. 관성항행의 불가능성에 대한 물리학자 조지 가모프(George Gamow)의 공격이 계속적인 군부의 지원을 위협하는 것으로 판단되자, 드레이퍼는 이미 성취된 과제들을 보고하는 기밀 회의를 열어 맞대응하였다. 그는 초보적인 관성항행 시스템으로 운항되는 비행기를 타고 대륙을 가로질러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또다른 회의에 참가하였는데, 이는 그 자신의 힘으로 회의를 가능하게 한 것임과 동시에 관성항행의 불가능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기반을 그 근저에서부터 허물어 버리는 효과를 가지는 것이었다. 이 분야의 작업 중 일부의 기밀 분류가 해제된 후에, 그는 후일의 비행에서 잘 알려진 TV 앵커맨인 에릭 세버레이드(Eric Sevareid)와 동승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가 한 일들 중의 상당수는 단순히 의례적인 것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군부에 있는 그의 후원자들을 방문할 때, 그는 일명 '박사의 연구비 청구서(Doc's dollar bills)' ― 최근 기기의 작동상태를 보여주는 지갑만한 크기의 그래프 (기밀유지를 위해 눈금은 그려지지 않은) ― 를 들고 다니곤 했는데, 이는 관성항행기기의 제작에 있어서 문제점들이 극복되고 있음을 후원자들에게 다시금 확신시키고 한편으로는 그 결과에 부정적인 사람들을 납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새로운 기술이 성공하려면 후원자들을 그 프로젝트에 붙들어 두는 것만 가지곤 부족하다. 그 시스템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 역시 종종 새로운 방식으로 작업하도록 설득되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연구소의 수위는, 만약에 그가 빗자루로 시험판(test table)을 건드렸을 경우 그것을 보고하도록 설득되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자이로스코프의 출력에서 설명될 수 없는 들쑥날쑥함이 발견될지도 모른다. 자이로스코프와 가속변계를 조립하는 사람들은 얼굴에 난 잔털이나 휴가 기간에 내재한 위험을 교육받아야 했다 ― 콧수염이나 햇볕에 탄 피부에서 떨어지는 작은 조각들이 민감한 기기에 치명적인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드레이퍼는 평상시의 그들의 작업이 아무 문제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그런 사람들에게 엄청난 노력을 쏟았다. 그리고 연구소 밖에서 관성항행 기기를 다루는 사람들 역시 (지침에 따라) 정확하게 행동하도록 설득해야 했다. (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후일의 책략은 여기 써 둘 만한 가치가 있다. 관성 장치에 대한 고의적인 위해(危害)를 우려한 미 해군 항공시스템 측은 그 장치들을 통상의 회색이나 검은색이 아닌 금빛으로 칠하였는데, 이는 성공적인 방편이었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역돌출부/결정적 문제의 역동성
 

만일 드레이퍼의 그룹이 자신들의 활동을 바로 앞의 몇 페이지에서 설명한 것에 국한시켰다면 그 프로젝트는 실패했을 것이다 (그것이 없었더라도 역시 실패했겠지만). 통상 기술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그러한 작업도 물론 동등하게 중요했다. 그것의 본질은 휴즈의 역돌출부/결정적 문제의 틀을 통해 잘 포착되고 있다.

처음부터 드레이퍼는 관성시스템에서의 역돌출부를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자신이 이끄는 그룹이 제대로 작동하는 관성시스템을 실제로 만들기에 앞서서 이 일을 수행하였다. 따라서 콘스탄트(Constant)가 말한 '미리 추정해 본 변칙사례(presumtive anomaly)' 개념 ― 이는 "과학적으로 도출된 가정에 의해서, 특정한 미래의 상황에서는 통상적인 시스템이 실패한다거나 완전히 다른 시스템이 더 잘 작동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상황을 지칭한다 ― 과는 다름에도 불구하고, 드레이퍼가 앞으로 만들어질 시스템에서 역돌출부를 파악하는 방식은 이와 동일한 유형을 취하고 있다.

초기의 분석에서 그는 가속변계보다는 자이로스코프를 문제의 핵심으로 지목했다. 내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자이로스코프는 드레이퍼가 당시에 생각하고 있던 시스템에 맞추려면 100배에서 1000배 정도의 기능 향상이 필요하였는데 반해, 가속변계의 경우에는 한 시간 비행 후에 1마일 이내의 오차를 갖기 위해서 (드레이퍼의 주장에 따르자면) 10배 정도의 기능향상이면 충분하였다. 따라서 계측 연구소의 초기 작업에서는 자이로스코프에 대한 연구가 우선시되었다. 195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 관심의 대상이 폭격기나 순항미사일에서 탄도미사일로 넘어가고 난 이후에야 가속변계의 발전에도 동등한 우선순위가 부여되었는데, 이는 가속변계가 순항미사일이나 폭격기에보다 탄도미사일에 훨씬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1947년쯤에는 잘 정의되고 강력한 자이로스코프의 개발 과정 ― 약간의 변화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 이 계측 연구소에서 이미 확립되어 있었다. 이는 부동(浮動)-1차원 자유도의 통합 자이로스코프라는 특정한 자이로스코프의 설계 유형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이 설계는 비록 드레이퍼 등에 의해서 분석적인 방식으로 옹호되긴 했지만 단순히 이론적인 선택은 아니었고, 드레이퍼가 2차 대전 당시 대포 제어시스템에 대한 작업에서 많이 경험했던 전형적인 설계였다. 자이로스코프 회전자를 진자 성분으로 교체하는 것을 포함한 비교적 간단한 변형에 의해서 1차원 자유도의 자이로스코프는 가속변계로 바뀌었다. 나중에 50년대에 이르면, 1차원 자유도의 부동 자이로스코프와 강한 친화도를 갖고 있는 두 가지의 보다 복잡한 기초적 가속변계 ― 즉, 진자 통합 자이로 가속변계(Pendulous Integrating Gyro Accelerometer, PIGA)와 펄스 통합 진자 가속변계(Pulsed Integrating Pendulous Accelerometer, PIPA)의 설계방식이 도입되었다.

과학사회학에서 잘 알려진 용어를 기술 연구 쪽으로 적용시키자면, 부동-1차원 자유도의 통합 자이로스코프는 미래의 발전에 대해 하나의 패러다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연구에 있어서의 공유된 틀이라는 넓은 의미에서의 패러다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작업의 모범사례(examplar)이자 자산으로서 기능하는 '구체적인 수수께끼-해답'을 가리키는, 보다 구체적이고 철학적으로 깊은 의미의 패러다임을 말한다. 최근들어 기술 영역에 패러다임의 개념을 적용시키는 데 상당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지만, 내가 아는 한 그 개념의 보다 구체적인 의미를 심도있게 다룬 저작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이는 유감스러운 일인데, 왜냐하면 나는 이제까지의 기술적 전통이 가져 온 일관성의 많은 부분이 공유된 모범사례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일관성은 결코 저절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지적 자산을 공유한다는 것은 그것을 발전시키는 유일한 길만을 상정하지는 않는다: 어떤 '공유된 틀'에 '묶여 있는' 그룹이라는 사고는 종종 기술적 궤도(technological trajectory)라는 잘못된 기계적 비유로 사람들을 끌고 가곤 한다.

드레이퍼 그룹의 기본적인 패러다임은 연속적인 목표지향적 개량과정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비록 세부적으로는 복잡하고 창의적이지만, 그 과정은 상당히 간단하게 묘사될 수 있다. 목적은 기기의 정확도를 계속해서 증가시키는 것이었다. 여기서 나는 '정확도'라는 용어를 자명한 어떤 성질을 가진 것으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는 정교한 테스트 절차 ― 이것은 테스트되는 기기가 무엇인가에 따라 달라지지만 ― 에 의해 결정되는 전체적인 변수들의 집합을 말하고자 하였다. 정확도의 증가를 가로막는 장애물과 역돌출부가 무엇인지 결정하고 이를 해결가능한 결정적 문제로 바꾸기 위한 부단한 시도가 경험적, 이론적 연구를 가리지 않고 행해졌다. 계측 연구소의 연구원들이 이 문제들을 풀어 내는 데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긴 했지만, 외부의 회사들(예를 들어 정밀 볼 베어링 분야에서)이나 MIT의 다른 부서들(예를 들어 금속공학과) 역시 문제 해결에 관여하였다. 그리고 종종 계측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결정적 문제의 해답을 '128번가 현상("Route 128" phenomenon)'에서 보이듯, 연구소 바깥으로부터 끌어들였다. 1965년에 이르면 계측 연구소로부터 파생되어 설립된 회사가 적어도 30개에 달했고, 연간 매출액 역시 1400만 달러에 이르렀다.

관성장치의 세부 설계의 문제에서, 이 '정상기술(normal technology)'의 과정의 핵심은 보수적인 동시에 강력하다는 점에서 '정상과학(normal science)'의 그것과 유사하다. 이는 드레이퍼 연구소가 최근 설계한 기기들 ― 예를 들어 MX 미사일에 사용되는 3세대 자이로스코프 ― 이 1940년대의 기본적인 설계와 대단히 유사하며, 그 이전의 기기들 역시 바로 이 기본적인 설계로부터 도출된 것이라는 점에서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이는 30년간의 창의적 노력의 결과로 세부적인 변형이나 개량이 축적되어 결국 엄청난 성능의 향상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강력하다고 할 수 있겠다. 가장 최근 기기의 성능에 대한 수치들은 물론 기밀로 분류되어 있지만, 드레이퍼가 밝힌 바에 따르면 시간당 원래 궤도에서 벗어나는 정도가 0.000015에서 0.0000015 사이라고 한다. 만일 이것이 실제로 성취되었다면, 이는 우리가 논의의 대상으로 삼은 기간 동안 5자리수의 성능 향상을 이루어 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금 이 논문의 출발점인 미사일 정확도의 증가 문제로 접근해 가고 있다. 자이로스코프와 가속변계의 성능이 향상된 것이 정확도 증가의 유일한 요인이 아님 ― 더욱 강력해진 컴퓨터의 탑재, 개선된 중력장 지도과 측지학상의 자료, 항행체가 대기권에 재진입할 때를 대비한 신소재 개발과 디자인의 개선 등등이 마찬가지로 언급되어야 한다 ― 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극히 중요한 요인임에는 틀림없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또 역돌출부와 결정적 문제는 단순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나의 앞서의 주장을 고려하면, 이러한 기술발전의 과정이 거의 드레이퍼 연구소에 의해서만 수행되었다는 사실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미국 내에서 이와 유사한 궤적을 밟아 온 곳은 벨 항공우주기업(Bell Aerospace Textron) 뿐이다. 물론 드레이퍼 연구소와 유사한 소련 내의 기관에서도 역시 같은 궤적이 반영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말하려는 바를 좀더 명확히 해 보도록 하겠다. 미국 내에서는 적어도 30년 이상에 걸쳐 관성기구의 발전이 최소한 8곳 이상의 연구소 ― 자동 유도제어 부서(Autonetics), 노드롭 항공사, 스페리(Sperry), 하니웰(Honeywell), 제너럴 자동차회사의 교류 점화플러그 부서(AC Spark Plug Division of General Motors), 케어폿(Kearfott), 리튼 산업(Litton), 그리고 벨 연구소 등등 ― 에서 진행되어 왔다; 그리고 유럽에도 몇 군데의 연구소들이 있다. 이 작업들 중 대부분은 역돌출부/결정적 문제의 형태를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드레이퍼 연구소에서와는 두 가지의 결정적인, 상호관련된 측면에서 상이했다. 먼저, 무엇을 역돌출부로 파악하는가가 동일하지 않았다. 두번째로, 다른 곳에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본적인 기기설계에 있어 많은 변화를 겪었다. 예를 들어 리튼 산업의 경우, 자이로스코프의 설계에서 처음에는 부동(浮動) 자이로스코프 ― 그 중에서도 2차원의 자유도를 가진 것을 주로 사용했다 ― 를 썼다가 '건조식의'(즉, 비부동형의) 자이로스코프를 거쳐 최근에는 레이저 자이로스코프를 쓰고 있다 (내가 벨 연구소를 부분적인 예외로 따로 분리시킨 이유는, 벨 사의 가속변계 설계가 상당히 긴 기간 동안 기본적인 디자인을 안정적으로 개량하는 방식을 취해 왔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문제 중 내가 말하려는 바와 보다 관련이 깊은 것은 첫번째 것이다. 왜 서로 다른 그룹들은 역돌출부를 서로 다르게 파악하는가? 이 물음에 대해서는 뚜렷한 답도 있고 보다 완화된 답도 있다. 그 중 뚜렷한 답은 이렇다: 서로 다른 그룹은 상이한 목표에 우선 순위를 부여하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서로 다른 것들을 진보에 대한 장벽으로 파악한다는 것. 드레이퍼 연구소에서는 정확도에 핵심적인 우선순위를 부여했지만, 일반적으로 다른 곳에서는 그러한 방식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의 목표의 구조는 종종, 성공적인 설계가 반드시 충족시켜야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을 필요까진 없는 정확도의 문턱값(threshold value) ― 예컨대, 1시간 동안 자이로스코프의 오차율이 0.01도 정도가 되도록 ― 을 설정하는 것과 신뢰도 증가, 경량화, 부피 감소, 생산 가능성 증가, 기기의 저가화 등등에 최대한 집중하는 것 2가지 모두를 포함했다. 여기서 우리가 드레이퍼 연구소는 높은 기술 수준에 바탕한 반면 다른 곳은 낮은 기술 수준에 근거했다고 주장하려는 건 결코 아닌데, 왜냐하면 다른 곳에서 추구하는 목표 역시 일반적으로 첨단기술로 간주되는 기구 ― 레이저 자이로스코프 같은 ― 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은 완전히 다른 목표를 설정함에 의해서까지는 아니더라도(신뢰도 증가나 경량화 등은 드레이퍼 연구소의 관심사이기도 했으니까) 최소한 서로 다른 목표에 상이한 우선순위를 부여함에 따라 빚어지는, 서로 다른 형태의 기술변화이다.

왜 다른 그룹들이 서로 다른 목표에 상이한 우선순위를 부여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대단히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여기서 완전히 다 다룰 수는 없다. 물론 그 결정적인 요인 가운데 하나는 특정의 성질을 갖는 기기를 필요로 하는 구조이다. 다음 절에서 보이겠지만, 유도 기술자들은 부분적으로만 이것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을 뿐이며, 따라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외부로부터 규정된 필요가 기술적인 해결을 필요로 하는 일련의 과제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이 과제들 중에서 전술미사일, 민간항공기, 대부분의 군용항공기와 최근의 순항미사일, 전략폭격기, 증속 로켓, 잠수함의 항해 시스템, 전략미사일 등등과 관련된 문제들을 찾아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조직들이 각각 다른 과제들을 맡아 특화하게 되었는데, 종종 한 조직이 하나 이상의 과제를 맡는 경우도 있었지만 3개 이상의 과제를 떠맡는 일은 거의 없었다. 최초의 전문적 특화는 우연적으로 결정되는 것에 가까왔지만 ― 한 곳에서는 계약을 따내고 다른 곳에서는 잃는 식으로 ― 일단 그것이 이루어지면, 특정한 과제에 적합한 불균질적인 공학의 방식이 발달하기 때문에 그것은 대단히 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우연에 의존하는 것 말고도 다른 문제들이 개입되었다. 그 대부분의 역사에 있어 주요 대기업들에 속하지 않고 대학에 속해 있었던 주요한 그룹 중 하나였던 드레이퍼 연구소가 높은 정확도를 추구하는 문제에 특화하게 된 것 ― 그 중에서도 특히 이를 탄도미사일에 응용하는 것 ― 은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었다. 미국의 대대적인 전략미사일 증강이 완화되기 시작한 1965년 이후에 이에 대한 시장이 줄어들기 시작한 반면, 민간의 관성장치 이용에 대한 시장이 발전하기 시작했고 군용항공기 시장 역시 상대적으로 강세를 유지했다. 특히 민간 부문과 과거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군용항공기 부문은 잠재적으로 높은 부가가치를 보장하는 영역으로 비쳐졌다. 하지만 이는 갈수록 높은 '입장료(entry price)'를 요구하는 영역이기도 하였다. 이윤에 대한 동기는 특히 기업들을 이쪽으로 기울게 만들었는데, 반면 '입장료', 즉 참가에 드는 비용이라는 장벽은 분명히 자기자신의 재원으로부터 대규모의 투자를 할 능력이 못되는 그룹들의 의욕을 꺾는 원인이 되었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드레이퍼 연구소의 소장이 된 로버트 더피(Robert Duffy)는 1972년 10월에 그가 목격한 상황의 논리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난 기기의 성능을 중요시하는 요구에서 높은 신뢰도에 대한 요구 ― 상업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소유하는 데 드는 낮은 비용 ― 로 강조점이 강하게 이동하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이 요구들이 상호 모순된다고 해석한 적은 없지만, 이러한 강조점의 변화는 예사롭지 않은 방식으로 우리 연구소에 영향을 끼쳤다. 기기의 성능에 대한 강조는 완화되기보다 오히려 날카로와졌는데, 이는 시장(특히 상업적인 시장)이 성능의 문제는 어느 정도 내팽개쳐 둔 채 비용이나 사용자 편의라는 목표 쪽으로 기업들을 끌고 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한편, 서로 다른 그룹이 역돌출부를 서로 다르게 파악하는 이유에 대한 좀더 완화된 대답은, 이 장의 처음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설사 동일한 목표에 동의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그것의 성취를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혹은 그것을 성취하는 최상의 수단은 무엇인지에 대해 반드시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의 흥미로운 예가 과연 관성시스템이 외부의 정보에 의해 보완되어야 하는가를 둘러싼 논쟁이다. 미국 내에서 이것은,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탄도미사일과 최근의 순항미사일을 둘러싸고 문제로 대두했다. 나는 여기서 탄도미사일이 높은 정확도를 갖도록 설계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을 말하는 게 아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높은 정확도라는 목표에는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사람들간에 발생한 논쟁이다. 나의 인터뷰 자료를 보면, 이 두 가지 경우 모두에 있어서 드레이퍼 연구소의 몇몇 성원들은 관성장치의 성능이 충분히 발전하기만 한다면 순수한 관성장치만으로도 요구되는 정확도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이 주장은 역시 두 가지 경우 모두에 있어서 다른 기술자들 ― 일부는 드레이퍼 연구소 외부에 있었던 ― 에 의해 성공적으로 반박되었는데, 이들은 관성 기구가 앞으로 더욱 발전한다고 해도 주요한 역돌출부를 제거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듯이 보였다. 따라서 순항미사일 프로그램에서의 초기 논쟁은 나에게, 더욱 정확한 관성장치를 주장하는 측과 중력 모델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는 측 사이의 논쟁인 것처럼 비쳤다. 설사 관성장치가 오차 없이 완벽하게 동작한다고 하더라도, 미사일이 저공·저속으로 비행하는 항로 위의 중력장에 대한 지식이 불완전하여 이로부터 오차가 발생한다면 요구되는 정확도의 수준을 달성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형확인 유도시스템(TERCOM)을 사용하여 관성시스템을 보완할 필요가 생기게 되는데, 만일 이것이 가능하다면 관성시스템이 그 자체로 높은 정확도를 가져야 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런 류의 논쟁의 가능성, 또 그 결과 역돌출부와 결정적 문제가 협상가능한 성격을 지니게 되는 것이 과학사회학자들을 조금도 놀라게 해선 안될 것이다. 이 영역의 많은 최근 연구들이 '해석상의 유연성(interpretative flexibility)'의 범위 ― 이성적인 사람들이 어떤 특정한 일련의 증거들로부터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에 대해서 의견을 달리할 수 있는(그리고 종종 달리하기도 하는), 그러한 범위 ― 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그런데 기술이 과학보다 더욱 실제적인(palpable) 의미 속에서 작업해야 한다는 사실로부터, 이런 해석상의 유연성은 기술의 경우에 더욱 제한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적어도 네 가지 이유 때문에 타당성을 상실한다. 먼저, 내가 생각하고 있는 종류의 불일치는 설계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작업의 표준은 (설계 과정으로) 소급되는 것이다. 두번째로, 과연 무엇을 '작동하는' 것으로 간주해야 하는지가 문제가 된다. 서로 다른 그룹은 이에 대한 상이한 생각을 가질 수 있으며, 심지어 대단히 힘들고 난해하며 테크니컬한 맥락에서도 논쟁은 발생할 수 있다. 세번째로, 기술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조건 외에도 종종 사회적·경제적인 조건을 포함한 일군의 조건들이 필요하며, 따라서 작업이 실패한 요인이 무엇인지는 자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네번째로, 기기가 작동한다는 공인된 사실로부터 설계 과정에서 취해진 모든 결정이 옳았다는 결론을 바로 끌어낼 수는 없다는 점이다. 예컨대, 트리덴트 Ⅰ은 관성유도 시스템을 보완하기 위해 항성 추적 장치(star tracker)를 장착하여 만들어졌다; 이 미사일은 광범한 테스트를 거쳤고, 그 결과 이것이 최소한 주어진 정확도의 요구조건을 만족시키며 심지어 그것을 능가하기도 한다는 사실은 전혀 이의없이 받아들여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1985년의 인터뷰에서 나는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는 박식한 유도기술자로부터) 항성 추적 장치가 사실상 정확도에 기여한 바가 없으며, 성가시고 부적절한 장치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접할 수 있었다.
 

시스템과 주변환경
 

이 논문의 초반부에서 나는 휴즈의 시스템적 접근이 갖는 장점들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이 중에서 세번째의 장점은, 시스템적 접근을 통해 기술시스템과 그 주변환경 사이의 경계선이 유동적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감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이는 시스템 공학자들이 시스템의 성장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주변환경을 그 속에 융해시키려고 어느 정도까지 노력하는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이 마지막 절에서 나는, 관성유도 기술자들 ― 특히 드레이퍼 연구소에 있던 ― 이 어느 정도까지 주변의 사회 속에 그것(=관성유도기술)을 필요로 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었으며, 그 결과 관성장치에 있어 궁극적인 정확도의 추구에 대한 지속적인 뒷받침을 가능하게 만들었나를 탐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의 초보적인 전제가 필요하다. 사실 나는, 시스템 공학자들이 주변환경을 형성할 수 있는 정도가 대단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설사 그것이 제한적이지 않다고 해도, 그 사실로 인해 시스템 공학자들이 비판받을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이 논문의 처음에 인용했던 글들로부터, 에디슨이나 파스퇴르 같은 과학기술의 위대한 '영웅'들 중 상당수가 실제로 (시스템에 맞는) 주변환경을 형성했고, 또 그렇게 해야 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필요를 만들어 내는 것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다; 도덕적·정치적 문제는 그 필요가 어떤 성격의 것인가와 관련되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학문적 관심의 대상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군사기술의 통제가능성이라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1969년에 미국 상원의 소위원회에서 증언하면서, 잭 루이나(Jack Ruina)는 "유도의 정확도 문제에 있어, 그것을 저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는 실험실 내에서 이루어지는 발전이며, 그 분야에서의 프로그램을 중단시킬 수 있는 방법 역시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지만, 지금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 심지어는 루이나가 이 말을 했던 시기에 있어서도 ― 정확한 것 같지는 않다. 유도의 정확성은 단순히 실험실 내의 발전의 문제가 아니며, 범위를 실험실 내부로 한정한다 하더라도 외부로부터의 영향에 무관해질 수 없다. 어떤 실험실 내부에서의 발전도 궁극적으로는 자족적이지 않다. 만일 주변환경이 적절하지 않거나 시스템 공학자들에 의해서 적절하게 만들어지지 못한다면, 실험실 내에서의 모든 발전의 궤적은 외부로부터의 영향을 상실하고 중단되어 버릴 것이다.

찰스 스타크 드레이퍼 자신이 직접 작성한 관성장치 발전의 연표를 보면 언제 이것이 문제로 대두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기기의 성능에 따라 관성시스템을 분류하여, 이를 네 세대로 구분했다. 제 1세대는 스페리(Sperry) 시기의, 항공기에 장착하는 자이로스코프 장치였다. 그리고 제 2세대는 폴라리스(Polaris) 미사일 시기에 나타난 미사일의 관성항행기술과 아폴로 계획, 그리고 대다수의 군용·민간항공기에 장착된 관성항행장치를 포함한다. 우리가 보아 온 바와 같이, 이런 종류의 기술에 대한 필요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과연 가능한가에 대한 것이었으며, 이 문제는 1950년대 말에 이르면 정리된 걸로 간주될 수 있다.

여기서 골치아픈 문제가 발생한다. 관성항행·관성유도와 관련된 대부분의 기업들은 다른 부문에서의 상당한 정도 기술발전이 이루어졌다는 것에 주목하면서, (관성항행 장치에서의) 이런 류의 정확도 수준(혹은 이것보다 한 자리수 정도 높은 정확도)에 만족하였다. 드레이퍼 같은 사람처럼 3세대 기술의 필요성을 사회 속에서 '만들어' 가면서 더욱 높은 정확도 쪽으로의 연구방향을 원했던 사람들은 1965년을 전후해서 대두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에 3세대 기술을 만들어 내려던 드레이퍼의 주요한 시도는 항공기(특히 민간항공기)의 운항과 항공통제 시스템에서 점차 대두하고 있던 문제에 촛점을 맞추었다. 1시간 비행 후 에 1마일 정도의 오차를 내는 수준의 2세대 관성항행기술은 대양횡단비행에는 적합했지만, 공항 주변에서는 기껏해야 다른 시스템에 대한 작은 보완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하였다. 드레이퍼 자신과 그의 연구소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더욱 정확한 관성기술이 항공운송시스템의 역돌출부 ― 특히 시간의 지연 ― 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성공하지 못했다. 민간항공사의 관성기술은 정확도에 관한 한 2세대 기술을 고집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순항미사일을 위한 관성기술을 파격적으로 향상시키자는 주장 역시 성공하지 못했다. 한편, 관성기술과 관련된 기업 ― 특히 하니웰(Honeywell) ― 에 있었던 몇몇 사람들은, 시간당 0.1마일의 오차만 허용하는 관성장치의 필요성을 정식화하기 위해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는 전략폭격기 ― 특히 순항미사일의 발사대로 이용되는 ― 에 요구되는 조건을 이용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공군 장관의 수준에서 로비활동을 벌인 결과 그들은 성공하였고, 이러한 특성을 가진 하니웰 시스템이 B-52 전략폭격기의 G,H-개조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은 잠시에 그쳤고, B-1 폭격기의 관성시스템을 위한 정확도의 요구는 심히 지체되어 수정된 2세대 시스템을 사용한 케어폿 사의 설계에 의해서야 충족되었다.

그 결과, 3세대 관성기기를 사용할 만한 (잠재적으로) 분명한 시장은 ICBM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강력한 선제핵공격 능력을 가진 미사일만이 이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지적될 수 있었다. 2세대 시스템은 도시를 파괴하는 보복공격용 미사일에 사용될 때에만 상당히 우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문제가 제기된다: 과연 그러한 선제핵공격 무기가 군사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은 자신들의 기술에 대한 시장을 창조하기 위해 기술자들이 만들어낸 것인가?

만약 이 물음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면, 이는 시스템적인 접근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미국의 핵 전략 추진이나 혹은 선제핵공격을 지향하는 정책 수립에 있어 유도 기술자들이 독립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아무런 증거도 갖고 있지 않다. 물론 내가 갖고 있는 자료가 다소 부실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유도 기술자들은 사실상 이 문제에 있어 미 공군에 로비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제핵공격이 필요한 것이라는 미 공군의 생각은 대단히 뿌리깊은 것이었으며 또한 상당히 오래된 것이기도 했다. 반면 선제핵공격에 대한 미 해군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높은 정확도에 대한 시장을 만들어 내려는 시도들 중에서 내가 알고 있는 하나의 분명한 사례를 보면, 거기서 사용된 (고정확도의 필요성에 대한) 논거는 직접적으로 국가적 전략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군 내부의 부서간 경쟁의식에서 비롯하고 있었다. 폴라리스 미사일의 조종 작업을 맡고 있었던 그룹에 돌려진 비밀문서에서, 드레이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함정에서 발사하는 탄도미사일은 잘 알려진 여러 가지 장점을 갖고 있지만, 만약 이것이 육상에서 발사하는 미사일보다 정확도 수준에서 떨어진다면 국가안보를 위한 경쟁에서 뒤쳐지게 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식의 사고가 1960년대에 이르면 해군 특수작전 기획국(Navy Special Projects Office)의 책임자들에 의해서 거부된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앞에서도 보았듯, 미사일의 정확도 면에서 공군과 경쟁하려고 하지 않았다.

따라서 3세대 기술이 MX 미사일과 트리덴트 Ⅱ 미사일이라는 대상에서 찾아낸 시장은 기술자(technologist)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간단히 말해 버릴 수는 없다. 선제핵공격이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그러면 미래에는 어떤가? 이미 1975년에 드레이퍼는 3세대 기기를 넘어선 4세대 기기 ― 3세대에 비해 아마도 2자리수 정도 성능이 향상될 ― 를 내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드레이퍼 보고서의 연례 보고서는 그러한 기기가 개발 중에 있음을 알려 주고 있다. 그런 기술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과연 조달할 수 있을 것인가?(현재에는 그 자금이 비교적 얼마 안되는 드레이퍼 연구소의 내부적인 연구개발 자금으로부터 충당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만일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그 기기가 사용될 것인가? 내가 수행한 인터뷰 중의 한 토막은 불균질적인 공학의 성격이 변화하고 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오래 전에, 그러니까 기기들이 그다지 정확하지 않았을 때에는, 사람들이 ― 여기서 사람들이란 잠재적인 구매자들이나 기업계 쪽의 사람들을 말하는데 ― 이렇게 말하곤 했죠: "이봐, 만약에 그걸 만들 수만 있다면 우리가 관심을 보이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라고요. 한 10년 전이나 그 이전에는 그게 표준적인 반응이었습니다. 지금은 표준적인 반응이 이거죠: "이봐, 당신네들이 그걸 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하지만 누가 그걸 필요로 하겠어?" 아시다시피, 이건 훨씬 더 극복하기가 어려운 문제죠.

이런 상황은 전략미사일 부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미사일의 정확도 증가가 불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관성장치의 오차가 역돌출부를 구성한다는 것에 대한 동의가 깨어졌음을 의미한다. 여러 해 동안 미국 공군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지위를 맡고 있었던 존 헤퍼(John Hepfer) 소장의 다음과 같은 코멘트는, 과연 공격할 만한 가치가 있는 뚜렷한 역돌출부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60년대에는... 오차를 가장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가속변계였습니다. 그것이 주요한 오차의 원인이 되었지요... 이제 가속변계의 오차를 0으로 낮추었다고 칩시다. 그래도 (전체 시스템의) 오차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젠 잡음의 수준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지요. 가속변계는 더 이상 오차의 주요한 원인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다른 오차의 원인들이 있고, 우리가 그걸 해결할 때마다 또다른 오차의 원인을 찾아내게 됩니다. 즉, 우리는 어디에나 200개에서 500개 정도의, 동등한 크기를 가진 오차의 원인들이 널려 있는 고지대에 와 있는 셈입니다. 그것들 각각을 밀어서 떨어뜨리려고 시도하다 보면 오차의 원천이 드러나게 되고, 사람들은 '우리가 이걸 해결할 수 있고 또 해결할 것이다'라고 말하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하는 순간, 당신은 그것이 거기 있던 수많은 것들 중의 하나에 불과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해결해 내는 것보다 더 많은 오차의 원인들을 발견해 내는 시기에 도달해 있습니다.

상황을 이렇게 파악하는 인물은 헤퍼 소장뿐만이 아니다. 그리고 관성장치를 더욱 개량함으로써 이렇게 인지된 물리적 난제들을 해결하고 미사일의 정확성을 높이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에 속한다. MX 미사일의 자이로스코프와 가속변계의 높은 정확도는 아주 값비싼 기술인데, 이는 전략시스템이 허용하는 높은 비용에 비추어서도 대단히 비싼 것이다. 헤퍼 소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훨씬 줄어든 비용을 가지고 동일한 정확도를 만들어내는 쪽으로 설계의 목적이 바뀌어야 하며, 실제로도 이렇게 바뀌고 있습니다." 드레이퍼 연구소의 데이빗 회그(David Hoeg)는 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물리적 장벽이 극복되어 왔다는 것에는 부정적인 답을 보였지만 경제적인 장벽은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장벽이라는 건 뚜렷하게 인식하기가 어렵습니다. 나는 자기충족적인 관성유도 무기 시스템이 가능하긴 할 것으로 믿지만, 누가 거기에 돈을 대겠습니까?"

장벽의 성격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4세대 기기의 발전 ― 실험실 내에서의 발전 ― 이 연구자금 부족이나 응용에 대한 회의적 시각으로 인해 중단될지도 모름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실험실 내에서의 호기심 충족에 그칠 것을 굳이 만들려고 할 기술자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기술의 점차적 발전에 의해 실용적으로 도달가능한 탄도미사일의 정확도의 (자연적·사회적) 한계에 대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논의가 다른 귀결을 낳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기존 기술로부터의 파격적인 이탈 ― 일종의 지상유도 방식으로서, 보통의 경우 미사일이 지구대기권에 재진입할 때 자유낙하궤도를 그리는 데 반해 이 기술은 대기권 재진입시에 미사일을 목적지까지 유도한다 ― 만이 결정적으로 정확도를 증가시키는 유일한 희망인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실험실 내에서의 발전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군부 일각에서는, 과연 지상유도기술이 적군의 방해에 약하다는 군사적 약점을 극복하고서 정확도를 담보할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있고, 또 지상유도 시스템은 대기권 재진입 로켓에 시스템의 중량이 더해짐으로써 그 대신 탄두의 크기를 줄여야 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아마도 미국이나 소련은 대규모로 지상유도방식을 병기창에 들여오기 전에 비행 테스트를 해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는 군축(arms control)이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이는 탄도미사일의 시험비행에 대한 포괄적 금지조처 ― 적절하게 취해진 부분적 금지조처 역시 마찬가지인데 ― 로 인해 미사일의 정확도가 더 이상 발전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조처가 도움이 되고, 또 바람직한 것이라면, 이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배제되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