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과학자로서의 물리학자
 

뿌리깊은 동인(動因)들에 의해 과학자들을 그려내는 하나의 전형(stereotype)이 창조되어 왔다:
때로는 숭고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종종 냉정하고 권위적이며 인류에 위협이 되기도 하는 존재로
서의 과학자, 즉 '미친 과학자'로서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스펜서 웨어트
 

지난 토요일 아침에 방영된 만화 쇼를 보니, 정신이 이상해진 한 과학자가 치명적인 "원자 로봇"을 가지고 인류 전체를 노예로 삼으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이러한 설정은 결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다. 지배와 파괴를 획책하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과학자들의 모습은 아이들이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만화책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성인들을 위한 픽션에서도 상당히 많이 나타난다. 아마 이야기책에서 그렇게 일관되게 악당으로 그려지는 전문직업은 달리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핵물리학자"라는 단어는 곧 괴상하고 사악한 인물을 연상시킬 것이다.

과학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의 측면에서나 미래의 과학자들을 키워내는 전망의 측면에 있어 상당히 나쁜 징조로 여겨지는 '미친 과학자'의 전형은 그 이미지의 역사를 추적해 봄으로써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고대로부터의 유산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20세기 전반기를 거치면서 놀라운 방식으로 재구성되었다. 이 재구성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그 이미지 속으로 흘러들어 그것에 지속적인 대중성을 부여했던 힘들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핵과학(nuclear science)의 이미지는 방사선이 발견된 직후인 20세기 초에 형성되기 시작했다. 실험실로부터 공표된 내용들은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할 정도로 놀랄 만한 것이었다. 먼저 라듐 화합물이 어둠 속에서도 영구히 빛을 발한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그 이전에는 이와 유사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뒤이어 방사선의 방출은 원소들의 변환(transmutation)을 수반하며 이 과정은 이전에 알려진 그 어떤 것보다도 훨씬 많은 양의 원자당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한편, 과학자들은 방사선이 살아 있는 생명체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피에르 퀴리(Pierre Curie)는 소량의 라듐으로도 쥐를 죽일 수 있음을 발견했는데, 자신은 1kg의 라듐을 방에 둔다고 해도 개의치 않을 것이라고 밝혀 기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만약 라듐이 범죄자들의 손에 들어간다면 커다란 위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피에르 퀴리와 마리 퀴리(Marie Curie) 부부를 비롯한 다른 과학자들은 그러한 경고에 덧붙여 문제는 방사선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오용 가능성에 있다는 점을 재차 확언했다. 적절한 주의를 기울이는 전문가들의 손에 놓이기만 한다면 방사선의 경이적인 힘은 모두에게 선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그것은 질병을 치료하는 데 당장 사용될 수 있을 것이며, 장차 산업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을 터였다.

이러한 생각들은 그 자체로도 놀라운 것이었지만, 몇몇 기자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라듐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했을 때, 신문들은 그 광선이 마치 마술적인 힘인 것처럼 보도했다. 방사선에 특정한 유형의 암을 줄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이 알려지자 몇몇 과학자들은 방사선이 다른 어떤 질병도 치유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암시했는데, 기자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방사선이 노화 증상을 멈출 수 있으며, 심지어 불사(不死)를 보장해 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사를 썼다. 어니스트 러더포드(Ernest Rutherford)와 함께 원자 변환 현상을 발견했던 화학자 프레드릭 소디(Frederick Soddy)는, 자신들의 발견이 고대 연금술사들이 실패했던 목표의 성취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대중들에게 얘기했다. 방사선은 끝없는 부를 창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만병통치약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현대판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 연금술사들이 비금속을 황금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믿고 찾아 헤매던 실체 ― 역주)'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오래지 않아 러더포드나 소디, 퀴리 부부 등의 원자과학자(atomic scientist)들은 과거에 존재했던 연금술사들보다 훨씬 더 위대한 '새로운 연금술사'로서 환호를 받았다. 그들을 숭배하는 기자들이 그들을 일컬어 실험실의 "마술사(wizard)"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는데, 이는 사람들이 과학자들을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던 역사적 전통들에 대한 분명한 힌트를 제공한다.
 

마술사(sorcerer)로서의 과학자
 

과학자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는 부분적으로 마술사들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진화되어 나왔다. 여기에 모든 사람들이 아주 어릴 적부터 알고 있는 인상적인 모습, 즉 마법에 관한 고대의 전설을 거쳐 선사 시대의 샤만(shaman)에까지 거슬러올라가는 하나의 모습이 있다. 그것은 교육받은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모두에 의해 똑같이 불신을 받아 온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해당하는 인물은 마치 부족의 마녀들이 그러리라고 믿어졌던 것처럼 역병이나 다른 사악한 것을 퍼뜨릴 수도 있었고, 중세의 마술사들이 그러리라고 믿어졌던 것처럼 악마를 불러올 수도 있었으며, 몇몇 전(前)단계-과학자들(proto-scientist, 이 말은 16-17세기의 과학혁명기를 거치면서 오늘날과 같은 근대과학의 모습이 생겨나기 이전에 자연에 대한 탐구를 했던 사람들을 지칭하는 듯하다 ― 역주)이 실제로 그러기도 했던 것처럼 단순히 이단적인 사상을 전파시킬 수도 있었다. 사람들은 사악한 생각이나 마술적인 행동으로 이웃들을 위협에 빠뜨릴지 모르는 오만함에 빠진 인물을 언제나 두려워해 왔다.

이러한 생각은 실존인물의 삶으로부터 그에 대한 증거를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장 악명높은 것은 자신이 악마적인 힘들을 통제한다고 큰소리쳤던 16세기의 떠돌이 방탕자 파우스트 박사(Dr. Faust)였다. 독실한 성직자들은 파우스트의 실제 경력을 흑마술사들의 전설과 함께 뒤섞어 전파했는데, 여기서 그들의 목표는 확립된 기독교 신앙에 의해 인도되지 않은 인문주의적 회의론자들과 과학자들의 발흥에 대항해 강한 경고를 남기는 것이었다. 많은 다른 의사(擬似)-과학자(quasiscientist)들도 사람들 사이에서 유사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 중 18세기 말에 활동했던 의사이자 최면술사였던 프란츠 메즈머(Franz Mesmer)는 특히 언급해 둘 만한데, 그는 질병을 치유하는 자신의 능력으로 수만 명에 달하는 추종자들을 끌어모았다. 그는 자신이 지닌 힘이 "자기(磁氣)" 과학에서 스스로 해낸 발견에 근거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지만, 당시의 의학적 권위자들은 메즈머에 대한 열광이 사회질서를 위협한다고 우려하였다.

19세기를 통해 파우스트적인 얘기들과 메즈머적인 열광은 널리 퍼지게 되었다. 하나의 전형이 모습을 바꾸어 다시 만들어지고 있었다. 신문에 닥치는 대로 글을 써서 입에 풀칠을 하는 필자들로부터 나다니엘 호돈(Nathaniel Hawthorne)에 이르는 대중 작가들은 마녀와 마술사의 옛날 얘기들을 변형시켜서 새로운 가공적 인물을 창조했다. 악마적인 힘과 과학적인 힘의 혼합으로 자기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메스머적인 "과학자"가 그것이었다. 이러한 전형은 광범하게 나타났다. 예를 들어 방사선이 발견되었던 바로 그 해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로 많이 팔린 책과 가장 인기있었던 순회 연극은 최면 광선으로 희생자들을 지배하는 과학자 악당 스벤갈리(Svengali)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그러한 인물들은 대체로 전설적인 연금술사나 마술사들이 지녔던 표면적 특징들, 예컨대 실험실의 각종 유리그릇들 같은 것들과 연관되었지만, 보다 핵심적인 특징들을 그들과 공유하기도 하였다. 즉, 전통적인 마술사들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인물들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로부터 동떨어져 있었고, 심지어는 위험한 비밀에 대한 탐구에 강박적으로 몰두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사랑을 의도적으로 피하기까지 했다. 그는 불경스런 오만함을 뽐냈고, 삶과 죽음을 좌우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런 사악한 인물들이 인류 전체가 아닌, 특정한 등장인물만을 위협하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으로 사회의 전체적인 모습이 바뀌어 가고 그 결과가 종종 나쁜 쪽으로 나타나게 되자 생각은 변화했다. 이전의 과학자-마술사(scientist-sorcerer)가 엄청난 위험을 몰고 오는 과학자-발명가(scientist-inventor)의 모습으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줄 베르느(Jules Verne)는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이러한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했다. 베르느 소설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깃발을 위하여 For the Flag』(1896)는 강력한 폭발물을 발명한 광기어린 화학자의 얘기인데, 그는 섬에 마련된 은신처에서 자신의 발명품을 이용해 섬을 공격하러 온 함대를 전멸시킨 후에 자폭하여 섬과 함께 사라진다. 이 소설이 기반한 전제들은 상당히 그럴듯하게 여겨졌던 것 같다: 베르느는 자신이 만들어낸 가공의 등장인물을 폭발물을 발명했던 실존 인물에 명백히 근거하고 있었는데, 그 발명가가 베르느를 즉각 명예훼손죄로 고소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과학에 의한 전인류적 규모의 파멸의 가능성을 최초로 제시한 것은 원자물리학이었다. 1903년경에 러더포드와 소디는 방사선이 원자에서 원자로 옮겨다니면서 전파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공개적으로 내놓았다. 그렇다면 실험실에서 방출된 모종의 방사선이 연쇄반응을 통해 밖으로 퍼져나가서 지구 전체를 가스로 바꿔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극적인 생각은 언론을 통해 금방 알려졌고 전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그리고 이는 저명한 과학자들이 간혹 유사한 생각을 반복해 언급함으로써 대중들의 뇌리에 지속적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가령 1921년에 화학자 발터 네른스트(Walther Nernst)는 독일의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인류는 화약으로 만들어진 섬 위에 살고 있는 원시적인 부족과 같은 존재로서 아직까지 프로메테우스가 불이라는 위험한 선물을 그들에게 가져다 주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1923년에 헨드릭 크레이머스(Hendrik A. Kramers)가 원자에 관해 저술한 널리 알려진 교재에서는 이런 생각을 한 단계 더 밀고 나아갔다. 그는 하늘에 나타나는 신성(新星)이 혹시 불운한 외계 생명체들의 '놀라운 지적 능력(super-wisdom)'의 결과로 생겨난 원자 에너지의 분출이 아닐까 궁금해했다. 1930년대가 되면 심지어 꼬마 아이들조차도 부주의한 실험자가 세계를 날려버릴지도 모른다는 위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가 되었다.

더욱 으스스했던 것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대재앙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폭탄 투척을 일삼는 무정부주의자들이 19세기 후반에 악명을 떨쳤는데, 대중들은 그들의 강력한 새 폭약을 과학에 연결시켰다. 적어도 한 편 이상의 소설에서, 자유의 이름을 빌어 자신이 만들어낸 끔찍한 장치로 세계를 엉망으로 만들려는 음모를 꾸미는 냉혹한 화학 전문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의 1908년 소설인 『펭귄 아일랜드 Penguin Island』에서는 사악한 화학자 대신 물리학에 정통한 테러리스트들이 등장해 포켓 사이즈의 원자 폭발물로 온 도시를 쑥밭으로 만든다.

위험한 과학자는 대체로 미치광이같이 그려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예를 들어 1938년에 나온 모험 소설인 『파멸의 날을 부르는 인간 The Doomsday Men』에는 삶이 오로지 고통일 뿐이며 따라서 세상을 당장 끝장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단정하는 광신적인 과학자가 등장한다. 그는 "마치 오렌지 껍질을 벗기는 것처럼, 단지 좀더 빠르게" 지구 표면을 날려버리게 될 원자 반응을 시작시킬 준비를 한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핵물리학자의 모습은 연극 <유럽을 뒤덮은 날개들 Wings over Europe>에서 가장 설득력있게 그려졌다. 비평적 성공을 거둔 이 연극은 1928년에 런던과 뉴욕에서 소규모로 처음 무대에 올려진 이래 1930년대에는 대학 연극집단들에 의해 종종 다시 공연되었다. 극의 중심에는 총명하지만 정서적으로 다소 불안정한 젊은 과학자가 있다. 그는 황금 시대를 만들 수 있는 힘의 원천인 원자 에너지를 이끌어내는 비밀을 자신이 발견했다고 영국 내각에 알렸다. 그러나 장관들은 단지 원소 변환이 금본위제 통화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을 놓고 안절부절하고 새로운 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전망에 대해 불순한 관심을 가질 뿐이었다. 자신의 순진한 이상주의가 짓밟히자, 젊은 과학자는 목적의식을 상실하고 세상은 사악한 것이라고 굳게 믿게 되어 세상을 먼지로 날려버릴 준비를 한다.

물론 이런 것이 과학자들이 그려졌던 유일한 방식은 아니었다. 20세기 전반기를 통해 대다수의 저술들은 과학자들을 인류 전체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숭고한 천재로서 긍정적으로 조명하였다. 많은 열성적인 잡지 기사들과 광고들에 따르면, 방사선이나 여타의 다른 과학적인 것들은 해악보다는 이익을 가져올 가능성이 월등히 높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핵물리학은 희망과 함께 점차로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과학적 경이(驚異)라는 전망에 굳게 몰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새로 나온 싸구려 SF 잡지들에서도 종종 영웅적 원자 발명가(atomic inventor)들과 사악한 발명가들이 같이 등장했다. 과학자들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에서 그것의 추악한 측면이 지속적으로 같이 나타났던 것은 어딘가로부터 압력이 지속적으로 주어진 결과였다.
 

압제자(tyrant)로서의 과학자
 

진보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에 가장 큰 타격을 가했던 것은 1차 세계대전이었다. 잠수함을 이용한 교전(交戰)으로부터 폭발물과 독가스의 생산에 이르기까지, 과학과 기술은 대량학살에서 명백히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전쟁이 끝난 후, 과학자들은 이미 명백해진 것의 확인을 위해 대중들에게 전쟁 중에 자신들이 해낸 일들에 대해 알리는 데 조바심을 냈고, 발전된 과학이 없이는 어떤 국가도 살아남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연구자금을 올리고 과학의 위신을 제고(提高)하는 것을 의도한 것이었고, 실제로도 목표 달성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아울러 대중들로 하여금 과학자들을 존경하기보다는 그들을 두려워하도록 부추길 수 있었다. 이미지는 실제 상황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이고, 과학자들이 실제로 무기를 설계하는 데 공헌한 이상 대중들은 자신들의 우려에 대한 정당한 이유를 갖고 있었다.

과학이 어떻게 전쟁의 양상을 바꾸어 놓을 것인가에 대해 새로운 불안감을 느낀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과학은 전쟁을 악화시키는 골칫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전쟁에 대한 해결책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었다. 많은 이들은 과학자들이 원자 에너지의 이용을 통해 전세계적인 번영을 가져옴으로써 전쟁의 경제적 원인들을 점차로 제거해 나갈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이미 그 존재를 예견하고 있었던 원자 폭탄과 같은 새로운 무기들이 나타남으로써 전쟁은 너무나 두려운 것이 될 것이고 따라서 전쟁을 벌이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이들도 있었다. 혹은 과학자들이 순수한 도덕적 전례를 따라 세계를 개혁시킬 것으로 기대되기도 하였다. 과학자들은 이미 자신들만의 국제적인 공동체, 평화를 애호하고 협동적이며 이성에 헌신하는 그런 공동체를 형성하지 않았던가?

상당수의 젊은 과학자들과 과학 저널리스트들―대부분 정치적으로 좌파적인 성향을 갖고 있던―은 사회를 재구성하는 적절한 방법이 과학적으로 훈련받은 사람들, 말하자면 자신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더 큰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들은 과학이 오직 자기 자신만을 부유하게 하기 위해 기술을 이용하는 자본가들의 손아귀에 쥐여 점점 쇠약해져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그 대신 과학지향적인(science-minded) 사람들에 의해 일들이 효율적으로 조직된다면 진보는 놀라울 정도로 빨라질 것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원자 에너지는 그들이 약속하는 수많은 경이들 중 단지 하나에 불과한 것이었다. 연극 <유럽을 뒤덮은 날개들>은 이러한 생각을 논리적인 극단까지 몰고 간다. 연극의 끝에서 원자 에너지의 비밀을 알아낸 일군의 과학자들은 원자 폭탄을 탑재한 거대한 초록색 비행기에 올라타고 세계의 주요 도시 상공에 떠서 "세계연합과학자연맹(League of United Scientists of the World)"의 의지를 강제로 관철시키려 한다.

과학에 통제권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모든 사람이 동의했던 것은 아니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초반에 독일의 대중 작가들은 냉혹한 과학적 분석이 직관적으로 파악된 삶의 총체성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문학 잡지에 실린 에세이들에서는 과학이 그 정의상 아름다움이나 도덕, 신성함 등의 관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과학은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쓸모없음을 넘어 해악을 끼치는 존재라고 단언했다. 한 프랑스 상원의원은 기술상의 획기적인 진보가 산업을 교란시켜 대공황을 초래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영국의 한 저명한 주교(主敎)는 사회가 변화를 조절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10년 동안 연구를 완전히 중지하는 기간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것은 오랜 역사를 지닌 논쟁이었지만, 세계대전과 공황을 거치면서 그 대립은 극단적인 상황까지 달아올랐다. 한편으로는 다른 이들보다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의 의견을 특히 존중하여 그들의 이상에 맞도록 사회를 재조직함으로써 상황을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주장한 몇몇의 인물들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통적으로 사회가 추구해야 할 이상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사람들―성직자들, 인문주의자들, 대중 작가들 등등―이 자신들의 세계가 위협받고 있다고 느낀 것은 당연했다. '불경스런 과학자들'에 대한 얘기들을 퍼뜨리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한 집단은 바로 이들이었다.

모든 과학적인 힘들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신비스런 것으로 널리 인식되었던 원자 에너지는 과학에 대한 비판 속으로 끌어들이기에 특히 적절했다. 원자 에너지를 거론했던 비판자들의 한 예로 미국의 이상주의적 법률가였던 레이먼드 포스딕(Raymond B. Fosdick)을 들 수 있다. 1928년에 나온 책 『새로운 문명 속의 오래된 야만 The Old Savage in the New Civilization』에서, 포스딕은 원자폭탄과 세계 멸망의 위험에 관해 과학자들로부터 자신이 들었던 경고들을 되풀이했다. 그는 마치 성냥을 가지고 불장난을 하는 어린아이와 같이 미개한 우리의 인간성으로는 도저히 기술이 지닌 힘들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과학자들에게는 주의를 덜 기울이면서, 과감하게 사회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인문주의자들, 즉 그 자신과 같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 테마는 대중문화 속에서는 보다 원초적인 수준에서―오래되었으며, 원형적이고, 조악한 것이라는 "원초적(primitive)"이라는 말의 본연의 의미에서―나타났다.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하나의 전형인, 세계 지배를 추구하는 오만한 압제자의 모습이 이제 점점 더 과학과 연관지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 중 특히 기억할 만한 것은 미국의 영화 연작(serial, 여기서 연작이란 매 편의 주인공은 같지만 각 편이 독자적인 클라이맥스를 가지면서 다음 편으로 이어지는 연재물을 말한다 ― 역주)들이다. 진 오트리(Gene Autry)는 원자 에너지로 가동되는 지하 도시로 잠입하여 라듐 광선으로 무장한 사악한 왕자와 싸움을 벌인다; 크래쉬 코리건(Crash Corrigan)은 "과학의 역사를 통틀어 발견된 최고의 파괴적인 힘인 원자"를 이용해 세계를 노예로 삼으려는 음모를 꾸미는 바다 밑의 통치자와 대결하여 승리한다; 그리고 플래쉬 고든(Flash Gordon)은 "방사선은 나를 우주의 황제로 만들어줄 것이다!"라고 호언해 온 그의 적수 밍(Ming)의 계획을 뒤엎기 위해 "원자로(atom furnace)"를 파괴한다. 물론 밍이나 그와 같은 류의 압제자들 자신이 항상 과학자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발전된 과학의 이용이 전체주의적인 악몽의 핵심적인 특징의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괴물로서의 과학자
 

위에서 언급한 사회적 테마 옆에는 보다 개인적인 테마가 숨어 있다. 이 역시 대중 영화들 속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테마가 되었는데, 1940년에 만들어진 호러 영화인 <사이클롭스 박사 Dr. Cyclops>를 하나의 예로 들 수 있겠다. 영화의 타이틀 역을 맡은 주인공은 "당신은 신의 영역에 간섭하려 하고 있어요!"라고 경고하는 동료의 말을 무시한 채, 놀랍도록 새로운 라듐 광선을 써서 세계를 개선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는 과학자이다. 일군의 방문객들이 그의 비밀을 발견하였을 때 그 과학자는 라듐 광선을 써서 방문객들을 생쥐 크기로 축소시켜 버린다. 이어 영화는 그 과학자와 축소되어 버린 희생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목숨을 건 싸움을 보여 준다. 여기서는 앞서의 경우들과는 달리, 세계를 지배하려는 독재자는 등장하지 않으며 단지 한 채의 가옥 안에서의 압제자를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과학자의 캐릭터―표면적으로는 선의를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에 가서는 무자비한 독재적 면모를 드러내는―는 널리 퍼져 있는 인간사에서의 문제, 즉 권력의 문제와 조응한다. 어린 시절에 겪는 부모와의 갈등으로부터 어른이 된 이후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은 권력을 지닌 인물이나 조직과 맺는 관계에 대처해야만 한다. 종종 권력은 위험할 정도로 아는 것이 많고 강력하며 다른 이들의 소망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을 지배하고 나아가 그들에게 해를 끼치려고까지 하는 은밀한 욕망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 속에서는 아니더라도 다른 이들에게서 감지해 온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터이다. 이러한 것들은 신비스런 지식과 힘을 지니고 멀리 실험실에서 은둔하고 있는 전형화된 과학자가 상징하기에 특히 적절한 위협들이 될 수 있다.

과학자들이 어떤 '비밀'을 추구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또하나의 원초적 테마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킨다. 위험스런 비밀에 관한 얘기들은 전세계 어디에서나 토착민들 사이에서 찾아볼 수 있고, 서구 문화에서는 아담과 이브, 프로메테우스, 블루비어드(Bluebeard, 프랑스 민간설화에 전해내려오는 인물로, 여섯 차례나 아내를 맞아들여 죽이고는 그 시체를 비밀의 방에 숨겨 두었는데 일곱번째 아내에게 들켜 그녀까지 죽이려 했으나 반대로 그녀의 형제들에게 살해당했다고 한다 ― 역주)의 아내, 마술사의 제자, 그 외 수천에 달하는 인물들이 금지된 지식을 좇다가 그것을 알게 됨으로써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이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비밀에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경고를 듣고 만약 그들이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을 경우 벌을 받을 것이라고 위협받는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부분적으로는 보편적인 경험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또한 미지의 어떤 것이 실제로 위험할 수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과학자들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를 둘러싼 마치 거미줄처럼 얽힌 우려들에 들어 있는 또하나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미지의 무언가 속으로 과감히 뛰어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과학자들이 맡은 바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테마들 중에서 가장 원초적인 것은 바로 그 위험이 취하는 형태, 즉 괴물의 창조이다. 괴상하고 무시무시한 피조물은 마술사들이 만들어낸 골렘(golem, 유태 전설에 전해내려오는 말로, 점토·나무 따위로 인간의 모습을 만들어서 생명을 불어넣은 인형을 말한다. 저절로 움직이는 자동인형, 일종의 인조인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 역주)이나 마녀들이 부리는 마귀(familiar)들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유산을 갖고 있지만, 20세기로 오게 되면 이는 일반적으로 과학―그 중에서도 특히 핵과학―과 연관되었다. 예를 들어 1931년에 아서 콤프튼(Arthur Compton)이 원자 에너지를 이끌어내는 작업에 거의 성공한 것 같다고 공표하자, 한 시민이 『뉴욕 타임즈 New York Times』에 근심에 찬 편지를 보냈다. 그 시민은 원자가 걷잡을 수 없는 통제불능 상태에 빠져 "인간을 파괴할 수 있는 '골렘'으로 바뀌지는 않을까요?"라고 물었다. 포스딕은 20세기 들어 새롭게 조명받게 된 이런 오래된 생각을 다음과 같이 좀더 일반적으로 표현했다: 모든 기술문명이 "그것 자신의 창조자를 살해할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괴물"이 되어 버리지는 않을까?

여기서의 괴물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었다.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의 다양한 판본들을 조사해 본 학자들은 작품의 저자들이 그 무시무시한 괴물을 과학자에 결부시키는 경향이 있음을 알아냈다. 최초의 판본인 메리 셸리(Mary Wollstonecraft Shelley)의 1817년 소설에 나오는 과학자는 그 자신의 창조물이 "무덤으로부터 놓여난 나 자신의 정신"이라고 소리쳤다. 19세기 초부터 지금까지 수백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프랑켄슈타인"이 과학자의 이름인지 괴물의 이름인지를 계속 혼동해 온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 괴상한 괴물은 타인을 지배하고 응징하려는 과학자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위험스런 등장인물이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두 부분으로 나뉘는 것은 서구의 문화적 전통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 19세기와 20세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은 마치 인간이 절반으로 쪼개질 수 있는 존재인 것처럼 말들을 하곤 했다. 즉, 엄격하고 합리적인 반쪽 측면이 음울한 충동을 지닌 다른 반쪽 측면을 불완전하게 통제하고 있는 상을 그린 것이다. 이런 생각은 픽션에 등장하는 과학자들이 감정을 억누르고 연구에만 몰두하려 시도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자신의 사악한 욕망이 그들 자신의 피조물을 통해 발현되는 것을 목도하게 되는 이야기들에서 중심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서구의 독특한 문화적 전통 위에서 성장한 관객들은 사이클롭스 박사 같은 과학자가 인간적인 감정을 조롱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가 나중에 통제불가능할 정도로 압제적이고 잔인한 면모를 보이더라도 그다지 놀라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야말로 미친 과학자의 광기니까.

딜레마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1936년 영화인 <보이지 않는 광선 The Invisible Ray>에서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1931년의 영화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에서 괴물 역을 맡아 유명해졌던 보리스 칼로프(Boris Karloff)가 맡았다. 이제 그는 역할을 바꾸어 천재 과학자인 루크 박사(Dr. Rukh)로 등장하는데, 그는 도시들을 박살내고 기적과도 같은 치료를 해내는 등의 기능들을 지닌 라듐 광선 발사기를 만들어낸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일종의 전염성 방사선에 감염되고, 그 결과 어둠 속에서도 빛을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죽일 수 있게 된다. 한편 그가 연구에 몰두해 있는 동안 그의 젊은 아내는 잊혀진 채 방치되어 있었는데, 그녀가 그를 버리고 떠나자 그는 잔인하게 날뛰기 시작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루크 박사의 어머니는 박사가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해독제 병을 깨뜨려 버리고, 박사는 결국 방사선 속에 녹아내리면서 불꽃 속에 사라진다.

영화를 제작했던 스튜디오는 이 모두가 언젠가 실현될지도 모르는 과학적 이론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사실 그 이미지들 속에서 리얼리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이미지들은 다른 경우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탐구해서는 안되는 비밀"(루크 박사의 어머니가 극중에서 한 말대로)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이전의 이미지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탐구에 대한 벌로 과학자 자신이 기괴한 괴물로 변하고 그가 사랑하던 모든 이들로부터 거부당해 결국 지옥불 속에서 죽어간다는 설정이 다를 뿐이다. 이 생각은 <보이지 않는 광선>의 아이디어―"나는 나 자신을 괴물로 만들어 버렸어!"―를 이용한 1941년의 『배트맨 Batman』 만화책에 나오는 살인자 라듐 교수(Professor Radium)에서 집약적으로 나타난다. 그러한 괴물은 우리가 지닌 사악한 충동이 스스로를 지배하게 내버려 두었을 때 우리 자신이 그렇게 변해 버릴지 모른다고 가장 두려워하게 되는 모습이었다. 이와 동시에 (여러 층위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강력한 상징으로서) 괴물의 모습은 전통적으로 금지된 비밀을 지나치게 깊게 파고드는 이들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형벌이기도 했다.
 

자기희생적인 과학자
 

1930년대의 과학자들이 자신들에 반대하는 모든 힘들을 분석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지적인 언어로 표현된 공격들에 대해서는 분명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예컨대 포스딕의 비판은 미국 원자과학자들의 대부격인 로버트 밀리컨(Robert Millikan)에 의해 공개적인 반박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생애를 통해 볼 때 과학은 해악보다 훨씬 더 많은 이익을 가져왔다고 지적하고 앞으로도 그러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밀리컨은 기존의 강력한 이미지에 도전하면서, 과학자가 "마치 조그만 악동과 같이" 실수로 세상을 날려버릴 수 있다는 식의 생각을 조롱했다.

밀리컨이나 러더포드와 같은 몇몇 과학자들은 파멸의 날에 대한 공포를 가라앉히려 노력하는 동시에, 원자과학의 힘에 대한 유토피아적 낙관 역시 제거하려 애썼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은 신문기자들을 제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왜냐하면 영국, 이태리, 프랑스, 독일, 미국, 소련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놀라운 원자 혁명(atomic revolution)이 조만간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몇몇 과학자들은 가능한 위험에 대한 경고를 계속하고 있었다. 예컨대 프레드릭 졸리오(Fr?d?ric Joliot)는 원소 인공변환의 발견으로 아내인 이렌느 퀴리(Ir?ne Curie)와 공동수상한 1935년의 노벨상 수상연설 자리를, 과학자들이 지구를 신성(新星)처럼 폭파시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경고를 남기는 데 이용했다. 그러나 동시에 졸리오는 원자 에너지가 가져올 수 있는 경이들에 대해 대중들에게 설파하는 것을 잊지 않았으며, 핵에 대한 연구가 최고 속도로 진행될 수 있도록 자신의 연구소에 배당되는 연구자금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지식을 갖추는 것이 무지한 것보다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그는 꿈에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인문주의적 비판자들조차도 내심으로는 과학의 가치를 부인하지 않았다. 예컨대 포스딕은 1939년까지 록펠러 재단(Rockefeller Foundation)의 운영책임을 공동으로 맡고 있었는데, 어니스트 로렌스(Ernest Lawrence)가 거대한 입자가속기(cyclotron)을 건설하기 위한 자금을 재단에 요청하자 포스딕은 이를 승인하는 쪽에 열성적으로 표를 던졌다. 그는 그 장치가 순수하고 불편부당한 과학의 도구이자, "인간 정신의 가장 고귀한 표현"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라고 보았다. 대중 일반에 대해 말하자면, 1939년까지 과학의 이미지는 여전히 두려움의 방향보다는 비합리적일 정도의 열망의 방향으로 더 많이 구부러져 있었다. SF에서 과학자 악당들이 등장하긴 했지만, 그에 비한다면 과학자 영웅들은 두세 배 가량 더 많이 등장하고 있었다. 잡지나 책들에 실리는 보통의 대중적 픽션에서 과학자들이 등장할 때, 그들은 단정하고 쓸모있는 인물들로 그려졌다. 잡지나 신문의 논픽션 기사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거의 칭찬 일색이었다. 과학자들은 종교와 공공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올바른 행위의 예들을 제공하고 있다고 밀리컨이 공개적으로 말했을 때, 이 말은 그다지 모순된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자신의 생애를 통틀어 진리의 탐구와 문명의 진보를 위해 눈에 띄게, 지침없이 헌신적으로 노력해 오지 않았던가?

1944년에 만들어져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영화 <퀴리 부인 Madame Curie>은 과학자들에 대한 다수 이미지(majority image)를 마치 핀 위에 앉은 나비와 같이 깔끔하게 포착해 내었다. 젊은 피에르와 마리 퀴리는 그들 자신을 위한 세속적인 권력이나 물질적인 보상은 결코 추구하지 않고 오직 순수한 진리의 빛만을 추구했다. 영화의 한 주요 장면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뽑아낸 최초의 라듐을 담은 접시 위에 몸을 굽히고 있는데, 그들의 얼굴은 라듐에서 나오는 부드러운 빛에 파묻혀 자신들이 막 발견해 낸, 선(善)을 위한 힘을 보며 황홀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과학자들에게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아울러 제시했다. 영화는 마리 퀴리가 초인적인 헌신성을 지니고 녹초가 될 때까지 연구를 계속하였으며, 삶과 죽음을 좌우하는 신비스런 힘들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그녀가 라듐으로부터 올 수 있는 암의 위험을 뒷전으로 하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는 마리 퀴리도 피에르 퀴리도 좀처럼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예컨대 깊은 인상을 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피에르가 죽었다는 사실을 마리가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말없이 초점이 없는 눈으로 얼어붙어 흐느끼지도 않고 며칠을 보낸다. 반면 실제 역사적 사실에서는, 마리의 친구들이 그녀를 남편의 시체 앞에 데려다 주었을 때 그녀는 열렬하게 그의 차가운 얼굴에 키스를 퍼붓고는 그의 몸에 매달려서 결국에는 친구들이 방에서 끌어내다시피 해야만 했으며, 고통받은 여느 사람들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영화를 보러 온 일반 대중에게는 그런 모습으로 묘사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실제 과학자의 이미지는 사악한 과학자의 전형과 많은 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실제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여러 해 동안에 걸쳐 강도높은 학습을 하고 종종 좌절감을 가져올 수 있는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함을 의미하였고, 이는 비범한 자제력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런 점은 싱클레어 루이스(Sinclair Lewis)가 1925년에 내놓은 소설인 『애로우스미스 Arrowsmith』와 같은 책에서 중심 테마로 나타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젊은 독자들에게 과학으로 향하는 어려운 길을 가도록 고무하는 데 일조한 바 있다. 몇몇 과학자들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학은 세계를 비인격적이고 감정이 배제된 전문용어를 써서 바라봄으로써 비로소 진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결과, 과학자들은 인간적인 감정에 가해지는 억압을 대변하기에 가장 적절한 집단이 되었다. 물론 실제 과학자들이 많은 경우에 동료이자 선생으로서 높이 인정받는, 온화하고 사교적인 유형의 인물이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문이나 잡지의 필자들에게 있어서 과학자는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위험에 빠뜨리고 부(富)를 조롱하는 등 일상적인 관심사들을 무시하는 기묘한 인물이자, 엄청난 비밀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비세속적인 "마술사"로 비쳤다. 영화 속에서 루크 박사와 퀴리 부인은 공히 엄청난 인내력을 가지고 감정을 엄격하게 통제하면서 밤낮없이 라듐에 관한 작업에 몰두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결국 한마디로 말하자면, 과학자는 마치 그들이 연구하는 원자 그 자체와 같은 존재―압축되어 있는 스프링과 같이 막대한 에너지를 그 속에 억눌러 놓고 있는―로 묘사되었다.

실제 핵과학자들이 픽션 속의 핵과학자들과 혼동되는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1936년에 이렌느 퀴리가 연구자금을 올려줄 것을 약속한 정당 쪽에 자신의 명성을 제공함으로써 프랑스 정계에 입문하였을 때, 한 풍자 만화는 그녀가 자신이 속한 당의 정적(政敵)들 사이를 차가운 태도로 걸으면서 손가락에서 죽음의 광선을 발사하여 그들을 제거하는 모습을 그렸다. 나쁜 과학자는 권력을 향한 욕망을 방치하여 걷잡을 수 없이 되도록 내버려두는 과학자인 데 반해, 좋은 과학자는 자기 통제를 유지하면서 사회적 야심을 포기하는 과학자였다. 과학자들은 이런 구분에 동의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렌느 퀴리 자신도 기자들에게 자신은 실험실의 정적을 더 좋아한다고 말하며 곧 정계에서 물러났다.

위에서 언급된 모든 생각들이나 신화들이 당시에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1930년대의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그것들이 중요하게 여겨졌을 것 같지는 않다. 가장 인상깊은 이미지들은 주로 싸구려 잡지에 실린 소설이나 호러 영화들에서 나타났는데, 이런 (예술)양식들은 젊은이들에게는 분명히 영향을 주었겠지만 분별있는 성인들이 관심을 가질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가장 기괴한 얘기들조차도 현실에 관해 뭔가 말해 주는 것이 있었다. 포스딕이 로렌스의 입자가속기를 두고 가장 순수하고 불편부당한 연구의 상징이라고 칭찬한 지 불과 2년 후에, 그 기기의 일부가 원자폭탄 제조를 위해 우라늄을 뽑아내는 시험 공장으로 탈바꿈했으니 말이다.
 

스파이로서의 과학자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을 때, 그 소식이 핵과학자의 전형적 이미지에 즉각적인 영향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그 대신, 이미 형성되어 있던 전형이 새롭게 부각되는 단계로 진입하였고 그것이 가졌던 감성적인 힘은 배가되었다. 히로시마에 폭탄이 떨어진 지 불과 몇 시간이 지난 후부터 라디오 방송에는 전문가들이 나와 무시무시한 힘들, 우주의 비밀, 그리고 파멸의 날에 대해 숨가쁘게 지껄여대기 시작했으며, 길거리에서 미국 상원 의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서 프랑켄슈타인의 이름이 들먹여졌다. 사실 그 이전 시기에 핵과학자들을 소재로 삼았던 얘기들은 그들이 영웅으로 묘사되었든지 악당으로 묘사되었든지 간에 심각한 주목을 받거나 신빙성을 획득하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1945년 8월 이후부터는 그 뒤얽힌 이미지 전체가 라디오의 영향권 내에 있는 모든 이들의 정신 상태에 있어 중요한 일부분을 구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대중적 반응은 충분한 근거를 지닌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원자 무기의 실제 존재가 막연한 공포에 새로운 타당성을 부여했기 때문이었다.

몇몇 집단들은 두려움과 공포의 느낌이 대중들 사이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대중적 이미지를 형성하려 노력했다. 먼저 사회적 움직임을 시작한 것은 핵과학자들이었는데, 원자폭탄의 섬광으로 인해 사회적 주목을 받음으로써 그들은 전례없을 정도로 두드러져 보이게 되었다. 물리학자들은 셀 수 없이 많은 저녁 식사나 클럽 모임, 정부 회의 등에 참석하도록 요청을 받았으며, 온갖 종류의 잡지로부터 글을 청탁받았고, "어린이 퀴즈(Quiz Kids)" 라디오 쇼부터 백악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서 발언해 줄 것을 요구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조만간에 실현될 놀라운 전망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데 이 기회를 이용했다. 핵무기에 대한 국제적 통제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몇몇 과학자들은 문명의 종말, 심지어 전 인류의 종말이 다가올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반면 다른 과학자들은 핵에 관한 연구가 어떻게 사막을 옥토로 바꾸어 놓을 것인지에 대해 얘기했다―여기에는 물론 자신들과 같은 과학자들의 연구가 재정적으로 적절한 후원을 받는다는 전제 하에서만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 이 모든 생각은 우주의 힘을 지배한다는 오래된 관념의 부활을 의미했다. 핵에너지에 관한 1946년의 의회 청문회를 연구했던 한 사회학자는, 심지어 상원의원들조차도 마치 옛날 사람들이 마술사를 무시무시한 초자연력을 장악한 존재로 바라보았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원자과학자들을 바라보았다고 결론지었다. 과학자들이 그러한 정도의 높은 지위를 누리게 된 것은 이전에 결코 없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마술사는 금지된 비밀을 지배하는 사람이었고, 이러한 오래된 생각은 원자과학자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심지어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퍼져 나갔다. 1945년 가을에 『뉴욕 타임즈 The New York Times』에 났던 기사들의 색인을 찾아보면 당시 원자 에너지에 관한 기사들 중 2/3 가량이 주로 국제적인, 혹은 다른 방식의 "통제"에 대해 다룬 것이었고, 이 중에서 약 절반 정도가 주로 "비밀 유지"에 관한 것이었다. 미국 라디오 네트워크의 방송 내용을 1947년 중엽에 요약해 모은 것을 보면, 원자 에너지에 대한 언급에서 앞서와 대략 같은 비율로 관심이 유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심지어 트루먼 대통령조차도 미국 정부가 우주의 신비에 대한 배타적인 소유권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원자폭탄의 "비밀"에 관해 수없이 많은 뉴스 칼럼, 라디오 쇼, 잡지의 기사, 소설들이 씌어졌는데, 여기서는 그 "비밀"이라는 것이 마치 어딘가의 금고 안에 들어 있는 한 장의 종이 위에 적힌 공식이나 되는 것처럼 간주하고 있었다.

미 의회는 원자 에너지의 비밀을 누설하는 자에 대해 사형을 부과할 수 있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적어도 원칙에 있어서는, 한 과학자가 자기 집에서 사적으로 행한 순수 연구의 결과를 친구에게 말해 주었다고 하더라도 법적으로 사형을 언도받을 수 있게 되었다. 뉴스에 보도된 스파이 얘기들, 예컨대 클라우스 푹스(Klaus Fuchs)의 국가반역 행위라거나 간첩 혐의로 기소되어 나중에 사형되었던 줄리우스 로젠버그(Julius Rosenberg)와 에델 로젠버그(Ethel Rosenberg) 부부의 재판과 같은 얘기들은 이런 분위기를 계속 몰고가도록 부추겼다. 그 결과로 생겨난 비밀 유출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사람들은 과학자들이었다. 비록 미국 원자과학자들 중에서 반역자로 판명이 난 사람이 아무도 없긴 했지만, 그들만큼 철저한 조사를 받은 집단은 달리 없었을 것이다. 의회 청문회에서 공산주의자로 판명이 난 사람들 가운데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이 반수 이상을 헤아렸고, 수백 명의 과학자들이 무자비하게 추적을 받아 그 중 상당수가 직업을 잃었으며 몇몇은 망명지에서 생을 마감하거나 자살하는 길을 택했다.

미국의 과학자들은 너무나 비민주적이어서 10여년 전에는 그들이 미처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들, 즉 평화시임에도 곳곳에 배치된 경비원들과 높은 담장, 잠겨진 금고, 친구들의 사생활을 꼬치꼬치 캐묻는 방문자들, 그리고 눈에 띄는 감시 등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런 경향은 새로 생긴 원자력위원회(Atomic Energy Commission, AEC)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1950년대 말까지 미국 정부는 AEC에 고용된 사람들과 연관이 있는 150000명의 사람들에 대해 상세한 조사를 벌였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조사 체계가 정부, 산업체, 심지어 대학의 많은 부서들에 스며들었다.

비밀 통제에 관한 집착은 핵 에너지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던 모든 다른 국가들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예컨대 소련에서는 핵분열 연구가 다름아닌 비밀경찰 장관 라브렌티 베리아(Lavrenty Beria)의 지휘 하에 맡겨졌다. 소련의 핵과학 연구소들은 베리아의 강제수용소 지역 내에서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격리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포로로 잡혀온 과학자들과 자유인인 과학자들이 함께 일하고 있었는데, 설사 자유인이라고 할지라도 선택의 폭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포로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흡사 로스 알라모스(Los Alamos)를 연상시키는 이 은폐된 시설에서, 담장과 경비원들은 프로젝트 책임자까지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행동에 제약을 두었으나 장소가 시베리아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높은 담장은 스파이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과학자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서라는 점이 명백해 보였다.

이런 생각은 픽션으로 옮겨졌다. 1950년대에 만들어진 많은 소련 영화와 미국 영화들에서 스파이와 반역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고, 아이들이 주로 보는 "원자 분대(The Atom Squad)"와 같은 텔레비전 쇼 역시 비슷한 얘기들을 안방에까지 끌어들였다. 이제 여기에 새로운 대중적 전형이 나타났다. 과학적 비밀을 손에 넣음으로써 사람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반역자가 그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과학적 비밀이란 원자 에너지의 비밀을 의미하는 경우가 반수를 넘었다.

이런 얘기들은 그 이전의 신비스런 이미지를 부추기는 또하나의 힘이 되었다. 예컨대 스파이들이 원자 에너지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어떤 사람을 납치하려 시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1950년대의 미국 영화 세 편 모두에서, 원자 에너지의 비밀을 쥐고 있는 문제의 인물은 <보이지 않는 광선>에서 칼로프가 연기했던 빛을 내뿜는 미친 과학자처럼 이미 사고를 당해 기괴한 방사선을 띄고 있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그리고 다른 스파이 영화를 보면, 카메라가 로스앤젤레스를 둘러싸고 있는 담장을 따라 수평으로 움직이면서 거기에 붙어 있는 "오염 구역"이라고 씌어진 표지판과 "제한 구역"이라고 씌어진 표지판을 차례로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방사선으로부터 오는 위험과 금지된 것을 알려고 추구하는 인물로부터 오는 위험이 합쳐진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과학자들은 괴상하고 한 가지 목적에만 전념하며 강력한 어떤 존재로서 정상적인 사회 바깥에서 작업하는 것으로 항상 그려져 왔고, 그러한 전형은 원자과학자들에 대해 저널리스트들이 쓴 기사들에서 계속 반복되었다. 헌신적이고 총명한 맨해턴 계획(Manhattan Project)의 과학자들이건 아니면 헌신적이고 총명한 반역자들이건 간에, 그들이 비밀스럽게 사회에 폭력적인 변화를 가하려는 경향을 지닌 것은 분명해 보였다. 스파이 선풍(spy craze)을 사람들이 "마녀 사냥"에 비유했을 때, 그들은 새로이 나타나고 있던 이러한 유형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얘기들은 종종 반사회적인 마술사의 전형보다 더 원초적인 수준으로까지 내려가기도 했는데, 예컨대 한 여성은 미국 상원의원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가 모두 산산조각나서 날아가기 전에 저 미친 과학자들이 . . . 원자폭탄을 만지작거리는 것을 제발 멈춰 주세요. 그들은 마치 새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고 있어요"라고 호소했다. 이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었으며, 예전에 밀리컨이 세상을 위험에 빠뜨리는 "조그만 악동"이라고 불렀던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생각이었다.

1950년에 만들어진 정교한 영국 영화 <정오까지 앞으로 7일 Seven Days to Noon>에서는 바로 그런 과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존 윌링던 박사(Dr. John Willingdon)는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 조력했던 인물로 마치 어린아이같이 순진한 물리학자인데, 그는 자신이 설계한 원자폭탄에 대해 걱정을 하기 시작하고 급기야 정신적인 붕괴 상태에 이른다. 가방에 폭탄을 훔쳐 달아나면서 윌링던은 만약 영국이 핵무기 폐기를 약속하지 않는다면 폭탄과 함께 자폭하여 런던 전체를 날려 버리겠다고 선언한다. 비록 미친 천재의 전형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 영화는 전반적인 분위기에서는 보통의 경찰 스릴러를 조금도 닮지 않았다. 미친 과학자가 리얼리즘의 세계로 한 발을 들여놓은 것이었다.

원자폭탄이 만들어진 이후부터, 핵과학자들에 대한 우려는 이제 과학기술 일반에 내재한 위험을 압축적으로 가장 잘 상징할 수 있는 방법이 되었다. 그것은 또한 마음 속 깊숙이 숨겨져 있던 가장 잔혹한 비밀들―금지된 비밀을 엿보는 것, 다른 이들을 지배하려는 욕망, 그리고 마치 윌링던과 같이 심지어 자기 자신이 살던 도시를 파괴해 버리려 드는 위험천만한 충동에 이르기까지―을 가장 잘 상징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이러한 연관들은 저절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개개인에 의해 형성된 것이었다. 신화적인 테마들을 반복적으로 보고 들어 왔던 보통의 시민들은 히로시마로부터 날아온 뉴스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친숙한 생각들을 이용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좀더 의도적으로 이미지들을 차용했다―비록 결과가 항상 의도했던 대로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놀라운 원자력이나 마술사와 같은 과학자에 관한 얘기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과학자들의 인도를 따르도록 만들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과학자들을 두려워하게 하고 그들을 통제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도록 만들 수도 있었다.

늦어도 1950년대 말쯤이 되면 이 중에서 두번째[과학자들을 두려워하여 그들을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 ― 역주]가 지배적인 경향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결국, 사람들이 핵무기의 등장에 의해 생겨난 두려움과 적대감을 언젠가 그것을 사용할지도 모르는 이들이나 그것의 사용에 조력을 제공한 이들에게로 전이시킨 것은 충분한 근거를 지닌 것이었다.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제기되었던 의문들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나타나게 되었고, 이러한 생각은 냉전체제 하의 끝없는 위협 속에서 지속적으로 전면에 유지되었다.
 

함의
 

'미친 과학자'의 전형을 역사적으로 살펴봄으로써 그것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는지에 대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다음의 한 가지는 명백하다: 과학자에 대해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깊고 다양한 뿌리들에 의존하고 있어서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것. 사람들이 기술의 진보를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하고 또 그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공격할 태세를 갖춘 핵무기들이 수없이 존재하는 한, 대중들이 과학이나 기술을 순수한 찬양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과학자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사회가 과학을 이용하는 방식에 있어 진정한 개선―군축 문제에서부터 시작해서―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오랜 시간을 요하는 그러한 작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미친 과학자'의 전형을 개선하려 직접 시도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과학자들을 헌신적인 기적 창조자(wonder-worker)로 내세우는 시도들은 마술사의 전형을 불러오기 십상이라는 사실이 이미 증명된 바 있다. 보다 겸손한 접근이 훨씬 좋을 것이다. 우선, 미친 과학자가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어떤 경우에도 과학자들이 직접적으로 불만을 토로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마땅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 이는 부당하게 전형이 만들어진 다른 집단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실제 과학자의 역사를 대중들에게 말해 주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즉, 문명을 진보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것에 대한 사적인 통제를 꾀하지는 않는 사람들, 자신들의 연구에 몰두하지만 일반적인 인간의 감정을 경멸하지는 않는 사람들, 지식을 추구하지만 유토피아와 파멸의 날을 결정하는 우주의 비밀을 지배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지는 않은 사람들로 과학자들을 그려낼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