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문제제기, 빗나간 대안
 
 

미국의 원로 지성사가 브루스 매즐리시가 쓴 『네번째 불연속』은 인간과 기계의 관계라는 흥미로운 역사적 주제를 사상사적으로 탐구하고 있는 저작이다. 이 책의 원저는 1993년에 출판되었는데, 실상 이 책에 담긴 핵심 주장은 그보다 26년 전에 발표된 동명의 짧은 논문(Bruce Mazlish, "The Fourth Discontinuity," Technology and Culture, 8[1967], pp. 1-15)에서 이미 제기된 바 있다. 이 책에서 매즐리시는 과거 자신이 썼던 논문의 문제의식을 유지하면서 논의의 폭을 확장하여 인간-동물-기계의 관계에 관한 전체적인 조망을 제공하려 시도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의 유래는 저자가 책의 서론에서 설명하고 있듯, 프로이트와 제롬 브루너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저서 『정신분석입문 강의』(1917)에서 인간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세 가지 역사적인 사건을 꼽은 적이 있다. 그 중 첫번째는 코페르니쿠스 혁명으로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고, 두번째는 다윈 혁명으로 인간이 보다 원시적인 생명 형태로부터 진화해 나왔음을 보여 주었으며, 세번째는 프로이트 자신이 일으킨 혁명으로 인간이 자기 자신의 마음(즉,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였다. 브루너는 이 각각을 세 가지의 연속이라는 개념으로 바꾸었는데, 물리적인 현상의 연속(혹은 지상계와 천상계의 연속), 인간과 동물의 연속,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의 연속(혹은 건강한 정신과 병든 정신의 연속)이 그것이다. 그러나 브루너에 따르면 이런 혁명들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깨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네번째" 불연속이 있다. 그것은 인간과 그가 만든 기계 사이의 불연속이다.

매즐리시의 관심은 바로 이 네번째 불연속을 제거하는 데 있다. 인간이 기계보다 특별하고 우월한 존재라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은 "산업 사회에서 기술을 불신하는 배경이 되"며, "이러한 불신은 인간이 자신이 만든 도구나 기계와 연속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을 방해한다"(p. 15)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매즐리시가 보기에 이는 비극적인 상황인데, 왜냐하면 "이런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만든 프랑켄슈타인을 놀라서 거부하거나 [기술의] '초인적 미덕(superhuman virtues)'을 맹목적으로 믿고 이것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양자택일만이 남게 되고, 이는 "산업화된 사회를 조화롭게 맞이하는 데"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p. 18).

매즐리시는 인간과 기계의 "연속"의 근거로, 인간의 진화가 도구(나아가 기계)의 사용 및 발전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 그리고 1950년대 이후 '컴퓨터-뇌 혁명'의 결과로 '이성(reason)'이 인간의 독점적인 소유물이 아님이 드러났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에 근거해 그는 인간의 본성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기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진화하는 것이며, 결국 인간과 기계는 공진화(co-evolution)의 길을 걸어 왔고 앞으로도 걸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의 지면은 이상에서 간략하게 소개한 논지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이론적·사상적 배경과 현재의 과학연구 동향에 대한 소개로 채워져 있다. I부와 II부는 역사적인 개관에 초점을 맞추는데, 데카르트의 기계적 철학과 라 메트리의 인간 기계론, 유럽인들에게 매혹과 공포를 동시에 불러일으켰던 자동인형(automata), 산업혁명기의 기계 도입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을 살펴보는 한편으로, 인간을 '특별한' 위치에서 끌어내렸던 다윈의 진화 이론,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이론 등을 차례로 섭렵한다. 이어 III부에서는 오늘날의 유전공학(biogenetics)과 인공지능 연구의 발전을 쫓아가면서 결론격으로 인간을 특징짓는 진정한 요소는 무엇인지, 그리고 기계 ― 컴퓨터와 로봇이 합쳐진 '컴봇(combot)' ― 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잠정적 답변을 시도함으로써 책을 마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책은 다소 구성이 산만하고 깊이는 부족하지만 방대한 주제를 비교적 요령있게 잘 요약해 담고 있으며(특히 I부와 II부에서), 인간과 기계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사상사적 개설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유용한 참고문헌이 될 만한 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또한 저자의 입장에 동의하는가의 여부와 무관하게, 현대 산업 사회에서의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만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는 점에서 논의의 출발점으로 의미있다고 생각된다(비록 대안의 제시에 이르는 III부에서의 논의가 초점이 없고 다소 안이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러나 이런 의의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논의 전개에는 중요한 결함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논평자들이 이미 비판한 바와 같이(예컨대 Technology and Culture, 35:4[1994], pp. 888-889에 실린 배리 카츠의 리뷰나 Nature, 367[February 17, 1994], p. 43에 실린 해리 콜린즈의 리뷰 참조), 매즐리시의 논의 속에는 기술의 발전이나 이에 대한 철학적·문학적 반응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경제적 힘들에 대한 서술이 신기할 정도로 완전히 빠져 있다. 이는 매즐리시가 기본적으로 지성사적 배경을 가진 학자라는 점을 접고 들어간다 하더라도 쉽게 보아넘길 문제가 아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산업혁명기를 다룬 4장에서, 저자는 이 시기가 "동물과 기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가 양자 비약을 이룬 시기"(p. 104)라고 정의하면서, 어떻게 직물 기계나 증기기관과 같은 기계들이 동물과 인간 노동력을 대체했고 이것이 '인간의 기계화'에 기여했는지를 서술한다. 그러나 여기서 그는 기계의 발명과 도입이 왜 일어났으며 그것이 누구의 이해관계에 봉사했는지와 같은 중요한 질문들을 전혀 다루지 않은 채, 마치 기계의 도입 및 확산이 자명하고 필연적인 과정의 일부이며 이에 맞서 (노동자가 아닌) '인간'이 역사의 물줄기를 빗나간 싸움 ― 러다이트(Luddite)들의 기계파괴 운동에서 볼 수 있는 ― 을 해나간 것처럼 그리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오늘날의 생명공학이나 컴퓨터-로봇 공학을 다룬 장들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저자 자신이 기술결정론을 믿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있음(p. 320)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서술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점과 관련해 필자는, 네번째 불연속의 극복을 통해 기계에 대한 맹신과 공포를 넘어서자는 매즐리시의 제언이 공허하고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는 인상을 지우기가 힘들었다. 매즐리시는 인간과 기계의 관계가 인간과 다른 인간의 관계를 그 속에 은폐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있는데, 이를 염두에 둔다면 기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종의 '존재론적 비약'을 과감하게 단행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물신화'를 타파하는 일일 것이다. 컴퓨터가 언젠가 '감정'과 독자적인 '의지'를 갖게 될 것이고 그때 우리는 기계와의 공존을 추구해야 한다는 SF적 미래상을 수용하는 것은, 일단 그 실현가능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문제의 해결에 별반 도움이 못될 것 같다. 그보다는 기계가 인간 사회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존재하며 인간이 막을 수 없는 내적인 발전 논리를 갖는다는 통념을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고, 아마도 이는 컴퓨터공학자나 미래학자의 몫이기보다는 기술사학자나 기술사회학자의 임무가 될 터이다.

결국 이 책은 여러 가지 흥미로운 내용과 도발적인 통찰을 곳곳에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애초에 제기했던 문제 ― 인간-기계의 현재적 관계에 대한 대안 제시 ― 의 측면에서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고 말해야 할 듯하다.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은 이런 점에 주의하면서 매즐리시의 논지를 비판적으로 소화할 필요가 있으며, 인공지능 연구에 대한 매즐리시의 낙관적 전망을 무조건 수용하기에 앞서 이와는 다른 입장들을 접해 봄으로써 균형잡힌 시각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출전: ≪서평문화≫ 43집(2001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