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과학기술이 사회와 맺는 관계를 살펴볼 때 빼놓을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면, 과거와는 달리 과학기술이 과학활동을 직업적으로 하지 않는 일반인들(laymen)과 대단히 활발한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야만 한다. 그 상호작용에는 다시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먼저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가 가속화되어 감에 따라 사회 속을 살아가는 일반인들의 일상생활(everyday life)이 과학기술의 산물들에 의해 심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개인용 컴퓨터(PC)의 도입으로 사람들의 작업방식이 바뀐다거나,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대형 기술사고에 의해서 사람들의 생명이 위협받는다거나 하는 것은 그 중 몇 가지 예에 불과하다. 그리고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엄청난 '사회적' 비용지출이 일어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즉, 일반인들은 세금을 납부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특정한 과학기술(예컨대 원전의 추가부설, 경부고속철도의 부설, 전자주민카드의 도입 등)의 개발에 동의한 셈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작용의 정도를 고려해 볼 때, 이제 과학기술은 더이상 과학기술자나 과학기술정책을 담당하는 이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상생활 속에서 직·간접적으로 과학기술과 만나게 되는 일반인들이 과학기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과학기술정책의 수립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일반인들의 과학기술 이해에 대해 과학자들이나 과학기술정책 담당자들, 즉 과학기술 엘리트들은 하나의 '전통적' 입장을 지니고 있었다. 이 입장은 한마디로, 과학기술 지식과 과학적 방법론은 많이 알면 알수록 '좋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은 이에 그다지 관심이 없으며, 따라서 과학기술에 대해 대단히 '무지'하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이러한 입장으로부터, 일반인들은 과학기술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판단할 능력이 없고, 이 능력의 향상을 위해서는 일반인들에게 과학기술 지식을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공급할 필요가 있다는 함의가 도출되었다. 요컨대 전통적 입장을 따르자면 과학기술은 대중화(popularization)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 이미 존재하는 과학문화재단이나 원자력문화재단 등의 과학대중화 단체들은 바로 이러한 입장과 그로부터 도출된 '필요'에 근거해서 생겨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전통적 입장은 1980년대 중반 이후로 점차 도전받고 있다. 전통적 입장에 대한 비판은 우선 '일반인들이 과학기술에 대해 관심이 없으며 무지하다'라는 판단이 과연 정당한가에서 출발한다. 비판자들은 과학적 언어로 기술된 공식적 과학지식(formal knowledge)을 잘 알지 못한다고 해서 일반인들이 과학에 대해 무지하다라고 판단내리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과학을 이해한다는 것이 반드시 과학지식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과학의 제도적 특성이나 그것이 갖는 사회적 함의 등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자나 원자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과학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이므로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 문제와 같은 사회적 쟁점들에 대해 판단할 수 없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그릇된 것이라고 비판자들은 주장한다.

그리고 '과학을 대중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 비판자들은 과학지식의 대중화가 곧 과학자나 과학기술적 구조물에 대한 신뢰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음을 지적한다. 과학자들이나 정책담당자들이 가정하는 바와는 달리, 과학은 사회에서 그 인식적인 권위 - 과학지식은 과학적이고 엄밀한 방법에 의해 도출되었으므로 '객관적'이라는 - 에 힘입어 자동적으로 신뢰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인들은 자신들의 구체적인 경험과 그로부터 도출된 지식에 의존하여 서로 다른 근거에서 과학에 신뢰 혹은 불신을 보낸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과학기술과 이를 다루는 전문가로서의 과학자들을 얼마만큼 신뢰하는가의 문제는 과거의 유사한 경험들에 대단히 크게 의존한다. 예컨대 과학자들이 계속해서 '안전하다'라는 진단을 내놓았던 핵발전소가 한번 사고를 일으켰다고 할 때, 이러한 상황 이후에 과학자들의 주장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이상의 논의에서 일반인들이 과학에 대해 무지하므로 과학지식을 공급받아야 하며, 이런 과정을 통해서 과학기술과 관련된 의사결정이 '합리화'될 것이라는 전통적 사고는 문제를 안고 있음이 드러났다. 결국 필요한 것은 일반인들의 '무지'에 대한 교정이 아니라 과학자·정책담당자들의 '엘리트적 사고방식'에 대한 교정이며, 일방적인 선전을 통해 과학기술의 수용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일상생활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과학기술적 사안을 두고 전문가와 일반인이 대화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출전: 『한국방송대학보』 1998년 7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