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사회와 맺는 관계는 대단히 복잡하고 다차원적이다. 그러나 아직 그 관계를 탐구하는 우리의 메타적인 인식 정도는 거기에 크게 못미치는 수준이다. 특히 과학기술의 발전이 사회에서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일반인들의 일상생활(everyday life)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또 그들이 과학기술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는지와 같은 중요한 이슈들에 대해 우리는 이제 막 이해의 첫발을 내딛었을 뿐이다. 그동안 여러 메타-과학적 학문분야들 -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사회학, 과학정책학 등의 - 은 전통적으로 과학지식의 도출 과정이나 과학자사회의 성격에만 초점을 맞추었을 뿐, 그 '외부'로는 탐구의 시선을 거의 돌리지 않아 왔다. 이는 특정한 과학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사회적' 비용지출이 이루어지며, 또한 바로 그 과학기술의 산물이 사회 속에 도입되면 사회 성원들 모두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게 된다는 점에서 과학기술이 결코 과학기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80년대 중반 이후, 과학기술자들이나 사회의 엘리트 계층이 아닌 '일반인'들이 과학기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작업, 즉 '과학기술의 대중적 이해(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 이하 PUS로 약칭)'라고 명명된 학문분야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상당히 시의적절한 것이었다. 물론 이쪽 방향의 연구가 80년대 중반에 와서야 비로소 시작된 것은 아니며 이전 시기에도 이와 유사한 관심이 간헐적으로 있긴 했지만, PUS 연구가 본격화된 것은 상호경쟁하는 몇 개의 연구 프로그램에 기반하여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어느 정도 제도화의 길로 접어든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로 보아야 할 것이다.
 

배경
 

PUS 연구가 이 시기에 들어와서 활발해진 것에는 그 배경을 이루는 몇몇 계기들이 있다. 먼저 환경오염과 핵발전 등으로 대표되는 '과학기술의 사회적 문제'들이 60년대 초·중반 이후 점차 대중적 관심영역에 자리잡게 된 점을 들어야 할 것이다. 그 결과,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에는 미국을 비롯한 구미 여러 나라들에서 다양한 과학기술적 이슈를 둘러싸고 숱한 대중적 차원의 논쟁이 벌어졌다. 핵발전소 건설에 의한 주위환경의 파괴 여부를 문제삼은 논쟁, 핵폐기물 처리장의 안전성을 둘러싼 논쟁, 새로운 공항 건설의 파급효과에 대해 지역주민들과 정부, 전문가들이 대립한 논쟁, 발암물질을 취급하는 작업장에서 어느 정도의 규제가 필요한가에 대해 이루어진 논쟁 등은 그 중 몇 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이 논쟁들 중 일부는 전문가들간의 의견대립의 형태를 띠는 기술적 차원의 논쟁으로 그치기도 하였으나 많은 경우 이해당사자인 일반인들이 직접 참여하는 대중적 차원의 논쟁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상황의 전개는 한편으로 사회과학자들에게 사회학적 탐구의 대상을 제공해 주었고, 다른 한편으로 정책수립자들에게 일반인들이 과학기술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들을 조사·탐구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사회적 배경과는 다소 독립적으로, 70년대 이후에 과학지식사회학의 성과물들이 지속적으로 축적된 사실도 PUS 분야의 성립에 중요한 배경 구실을 했다. 토머스 쿤(Thomas Kuhn)의 저작에 영향을 받은 배리 반즈(Barry Barnes), 데이빗 블로어(David Bloor), 해리 콜린즈(Harry Collins) 등의 학자들은 70년대부터 영국의 에딘버러 대학과 바스 대학을 중심으로 과학지식 그 자체와 그것의 생성 과정을 사회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 '새로운' 과학사회학을 제창하였다. 이들은 과학지식의 생성 과정이 과학자집단의 사회적 이해관계에 의해 영향받으며 과학적 논쟁의 종결은 과학자집단 사이의 협상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과학자들의 활동과 그 결과물로서의 과학지식이 '사회'로부터 분리된 어떤 것이라는 뿌리깊은 통념을 공격하였다. 이들의 주장은 '과학'과 '과학자'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능하게 하였고, 그 결과 대중적 논쟁의 영역에서 전문가/일반대중이라는 위계구도를 맥락의존적이고 상대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는 효과를 낳았다.
 

PUS 연구의 전사(前史)와 분야의 성립
 

한편, 사회 속의 일반인들이 과학기술에 대해 갖고 있는 이해의 정도에 주목해야 한다는 문제제기는 이미 1930년대부터 영미권의 좌파 과학자들과 운동집단 - 예컨대 홀데인(J.B.S. Haldane)같은 학자나 영국의 과학노동자연합(Association of Scientific Workers) - 들로부터 나온 바 있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근거하여 미국에서는 1950년대부터 대규모의 대중적 의식조사 사업이 '과학지표(Scientific Indicators)' 조사에 포함되어 실시되었다. 그리고 의식조사 사업은 70-80년대 이후 영국, 프랑스 등의 유럽국가들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PUS 분야의 성립에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은 아무래도 1985년에 영국 왕립학회(Royal Society)가 내놓은 연구보고서 The 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의 역할이 컸다. 이 보고서는 그것이 견지한 입장에서는 이전 시기에 비해 새로운 어떤 주장을 내놓지는 못했지만(보고서의 내용은 사회주의적인 색채가 제거된 것만 빼면 1940년대의 과학노동자연합의 제언과 대단히 유사했다), 과학기술정책 영역에서 PUS 연구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환기시켰고 이후의 PUS 연구들이 그곳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는 지점을 제공하였다. 이 보고서가 일으킨 파장의 결과로 1988년 영국에서는 경제 및 사회연구 자문회의(Economic and Social Research Council, ESRC)의 지원을 받은 대규모 의식조사 사업이 이루어졌다. 런던 과학박물관(Science Museum)과 옥스포드 대학 평생교육학과에서 주관한 이 조사사업은 관련 연구자들을 결집시키는 배경이 되었고, 또한 아래에서 보겠지만 PUS에 대한 상이한 관점들이 개진될 수 있는 계기로서의 구실을 했다. 그리고 이후 1992년 런던 과학박물관에서 발행하는 저널인 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가 창간됨으로써 PUS는 이제 하나의 연구분야로 정착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PUS 분야의 연구 프로그램들
 

PUS에 주목해야 한다는 문제제기의 전통은 상당히 오래 되었지만, 80년대 이전까지 그 문제제기는 대부분 거의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 내용은 1985년의 왕립학회 연구보고서에서도 다시금 반복되었는데,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1) 과학기술은 오늘날 문화적 이해의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2) 그럼에도 일반인들은 과학기술에 대해 별반 관심이 없으며, 그 결과 과학기술적인 지식이 대단히 부족하다, (3) 핵발전소나 유전공학의 경우와 같이 과학기술의 사회적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들은 대부분 일반인들이 과학기술적인 지식을 '잘못' 이해하거나 '무지한' 결과로 빚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4) 따라서 일반인들에게 충분한 과학기술 지식을 공급하는 것은 정책수립 과정에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민주주의에도 필수적인 것이다.

이상에서 정리한 문제의식은 크게 두 가지 방향의 실천으로 이어졌다. 먼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광범한 대중의식조사 작업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대중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과학지식과 과학적 방법을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고 있으며, 또한 과학기술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가 선행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서 과학대중화(popularization) 작업의 필요성이 제시되었다.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적 차원의 논쟁이 일어나는 것은 무지나 오해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판단되었기에, '일반인들에게 과학지식을 정확하고 쉽게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PUS에 대한 전통적인 입장에서는 계층별, 연령별, 직업별, 성별에 따라 다양한 과학적 이해도를 조사하는 유형의 연구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과학지식사회학의 연구성과를 흡수하고 과학기술과 관련된 대중적 차원의 논쟁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연구자들이 등장하면서 전통적 입장에 대한 도전이 일어났다. 특히 1988년에 브라이언 윈(Brian Wynne)은 기존의 전통적 입장이 '대중들에게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과학지식이 부족하다'라는 식의 진단을 내놓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이를 '결핍 모형(deficit model)'이라고 이름지어 비판을 정식화하였다. 먼저 그는 '과학'과 '대중'을 단일한 어떤 것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는 전통적 입장을 비판하고, '과학'은 이질적인 여러 실체들의 집합이며 '대중' 역시 다양한 이해관계를 지닌 '대중들(publics)'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어 그는 공식적 지식(formal knowledge)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일반인들의 과학적 이해 '수준'을 재단하였던 기존의 논의를 공격하면서 일반인들이 특정하고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과학기술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에 따르면 '과학적 이해'는 전문가들이 이해하고 있는 바대로의 과학지식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한정될 수 없는 것이며, 예컨대 과학의 제도적 특성이나 통제의 메커니즘, 사회적 함의 등을 이해하고 있는가를 의미할 수도 있는 것이다.

'상황 모형(context model)'이라고 이름붙여진 윈의 이러한 입장에 동조하는 연구자들 - 예컨대 앨런 어윈(Alan Irwin)과 같은 - 은 대규모 의식조사와 같은 방법론을 피하고,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특정한 일반인 집단이 과학에 대해 어떤 식의 이해를 보이고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를 탐구하는 지역적 사례연구의 방법론을 선호하였다. 이들이 수행한 사례연구들에는 생명공학 관련 입법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광우병을 둘러싼 논쟁, 새로운 의료기술에 대한 환자집단의 태도,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공장 설립을 둘러싼 공청회에서의 논쟁 등이 포함되는데, 특히 브라이언 윈이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직후에 영국 컴브리아(Cumbrian) 지방의 목양농(牧羊農)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사례연구가 널리 알려져 있다.
 

전망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현재 PUS 영역의 연구 프로그램은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뉘어 있다. '결핍 모형'의 주창자들은 자신들에게 가해진 비판을 일부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핍 모형'이 여전히 유용한 도구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따라서 '결핍 모형'과 '상황 모형' 간의 입장 차이가 다소 좁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연구방법론 - 대중적 의식조사 및 분석과 특정 맥락에서의 개별 사례연구 - 은 적어도 당분간은 PUS 영역 내에서 각축을 벌일 전망이다.

PUS는 그 속에 아직 일관되고 단일한 연구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는, 미완의 연구영역이다. 그리고 이 영역의 중요성은 앞으로 갈수록 더 배가될 전망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과학기술이 일반인들의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점점 커질 것이고, 그에 따라 과학기술에 대해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 어떠한 것인지가 갖는 의미도 더욱 커져 갈 것이기 때문이다.
 
 

출전: 『연세대 대학원신문』 1998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