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의 사람들은 기술의 발전이 보편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보편성'이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데, 하나는 기술의 발전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어떤 절대적인 기준, 시대와 장소를 가로지르는 기준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술 발전의 결과로 나타난 성과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균등한 혜택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따르면, 기술의 발전은 어떤 정해진 경로를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되고, 그 결과는 전체적으로 보아 불평등을 감소시켜 사회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된다. 기술의 발전 결과는 특정 계층이나 집단에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성과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될 수 있을 것이기에, 현재 존재하는 불평등은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점차로 사라질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믿어 왔다.

사회에서 줄곧 소수자(minority)의 지위를 점하고 있었던 여성이 기술의 발전과 어떠한 관계를 맺는지의 문제 역시 그동안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되었다. 사회학자들은 기술 발전에 힘입은 노동의 기계화·자동화의 결과, 직장에서는 남녀간의 성적 불평등이 줄어들고 가정에서는 여성들이 가사노동 부담으로부터 벗어나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도 이런 방향의 변화가 실제로 일어났다고 여겼고, 그 변화는 20세기를 통해 줄곧 계속되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로도 그런지는 의심이 간다. 과연 여성은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되었는가? 직장에서의 남녀불평등, 노동의 성별 분업은 진정으로 줄어들었는가? 이 물음에 대해서 선뜻 긍정하는 답을 내리기는 힘들다. 아마도 그 이유는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상황들이 간단히 그에 대한 반례를 제공해 주기 때문일 터이다. 만약 그렇다면 여기서 왜 사회학자들의 예측이 빗나갔을까, 그리고 기술 발전에 내포되어 있었던 잠재력 - 육체적인 노동을 더 쉽게 하고 노동시간을 줄여 줄 수 있는 - 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하고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좀더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변화 없는 변화 1: 가사기술(household technology)의 도입
 

먼저 기술 발전으로 인한 가정에서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자. 지난 한 세기 동안 가정에서 사용하는 가사도구들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전기의 도입으로 조명체계가 석유등 혹은 가스등에서 백열등이나 형광등으로 바뀐 것을 필두로 해서 전기 다리미, 전기 세탁기, 전기 냉장고, 진공 청소기 등 각종의 전기 기기들이 차례로 나타나 광범하게 도입되었고, 보일러를 이용하는 중앙난방 시스템과 온수 공급 시스템이 널리 확산되었다. 또한 대부분의 가정에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욕실이 구비되었고, 주방용 석탄 스토브가 가스나 석유, 전기를 이용하는 스토브로 바뀌었다. 가사도구는 아니지만 가정에서 이용할 수 있는 식료품의 수나 종류도 변화를 겪었는데, 식품 가공과 저장 기술의 발전에 따라 다양한 통조림, 즉석요리, 인스턴트 식품들이 식탁에 등장했고 일년 내내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모든 변화들이 미국에서는 20세기 초의 30년간, 그 중에서도 특히 '기술에 대한 열광'의 시기라고 일컫는 1920년대를 경과하면서 중산층 가정에서 급격하게 일어났다. 그 변화는 가히 "가정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폭과 깊이를 지닌 것이었다.

그렇다면 가정에 새로운 기술이 광범하게 도입된 결과는 어떤 것이었을까? 오래 전에 사회학자들은 이 물음에 대해 오늘날 하나의 '표준적' 해석이 된 설명을 내놓았다. 이들은 먼저 가사기술의 발전은 가사노동의 기계화·자동화를 수반해 여성들의 노동 부담을 현저하게 줄였다고 전제하고, 그 결과 여성들이 전통적으로 가정 내에서 부여받고 있었던 역할이 위기에 빠졌다고 주장했다. 산업화 이전의 전통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자급자족적인 대가족 경제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할 일'이 많았던 반면, 산업화 이후에는 가족의 규모가 줄어들고 가사노동의 부담이 경감되어 여성들이 할 일이 없어졌고 따라서 이들은 역할의 상실로 인한 '정체성의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회학자들은 20세기 중엽 이후 늘어난 이혼율과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가, 그리고 1960년대 이후 여성해방 운동의 발흥의 이유를 바로 기술 발전의 결과로 나타난 '정체성의 위기'에서 찾으려 하였다.

사회학자들의 '표준적' 해석은 얼핏 보기에는 설득력이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위력을 떨치고 있다 ("요즘 여자들이 집에서 하는 일이 뭐가 있어?"와 같은, 주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을 상기하자). 그러나 실제로 20세기 초반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들의 해석은 역사적 사실과는 그다지 잘 부합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가사기술의 도입이 붐을 이루었던 1920년대의 미국 중산층 가정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그 속에서 우리는 '가정의 현대화'의 이면에 가려진,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몇 가지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

먼저, 기술 도입의 결과 몇몇 일거리들이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수월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는 종종 작업 성취도에 있어서의 기준의 상승과 작업량의 증가를 수반하였다. 빨래와 다림질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터이다. 전기 세탁기는 분명 세탁통(laundry tub)에 엎드려 빨래를 일일이 비비고 문지르는 힘든 노동을 덜어 주었고, 전기 다리미는 주방의 스토브에 다리미를 뜨겁게 데워서 들고 움직일 필요를 제거해 주었다. 그러나 이 시기를 거치면서 가정에서의 청결도의 기준이 상승하였고 그 결과 빨래의 양이 엄청나게 증가했기 때문에 가정주부들이 가사노동에 투입하는 시간과 노력은 사실상 줄어들지 않았다. 이와 아울러 가사노동을 분담해서 수행하던 여러 사람들 - 집에 얹혀 사는 미혼의 아주머니, 아직 결혼하지 않은 딸들, 육아·빨래·요리 등의 일을 직업적으로 해 주었던 하인이나 서비스 업체 등 - 이 이 시기를 거치면서 점차 사라짐에 따라 이제 모든 가사노동이 주부 한 사람에게 의존하게 되었는데, 이런 변화는 주부에게 부과되는 일거리의 양을 사실상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또한 이 시기를 통해 주부들이 담당해야 할 몇몇 일거리들이 새롭게 나타났다.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이 일거리들은 많은 육체적 노동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고 신경을 써야만 하는 것이었다. 육아와 쇼핑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예컨대 1920년대의 미국 주부들은 자기 어머니 세대가 결코 꿈도 꾸어보지 않았을 일들 - 특별한 유아용 유동식을 준비하고, 우유병을 살균 소독하고, 아이들의 몸무게를 매일 재 보고, 아이들의 선생님과 자주 상담하고, 아이들을 차에 태워 댄싱 레슨이나 이브닝 파티 등에 데려다 주는 등 - 을 해야만 했다. 주부들은 이제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 영양학·전염병학·아동심리학에 정통해야만 했고, 쇼핑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도 각종의 쇼핑 가이드와 팜플렛, 여성지를 뒤적거려야 했다.

작업 성취도에서의 기준 상승과 새로운 일거리의 등장은 이와 연결되어 있는 이데올로기의 변화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1차 대전기를 전후해서 여성들이 가사노동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분명한 차이가 나타남을 볼 수 있는데, 강력한 '가족 이데올로기'가 나타난 것이 바로 이 때이다. 당시의 여성지를 보면 이 시기를 지나면서 가정주부가 수행하는 가사노동이 단순히 생존을 위해 해치워야 하는 일거리가 아니라 가족들을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 같은 것으로 미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사노동에 있어서의 작업성취 수준의 정도는 이제 가족들에 대한 사랑의 척도가 되었으며, 일정한 수준을 성취하지 못한 주부들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것으로 죄의식을 느끼도록 몰아세워졌다.

결국 1920년대를 거치면서 전례없었던 정도의 규모로 가정에 노동절약적 기술이 도입되었지만, 여러 가지 사회적·이데올로기적 요인들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가정주부의 가사노동을 사실상 줄여 주지는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기술의 도입으로 가사노동이 부분적으로 수월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가사 조력자들의 감소와 작업 성취도의 향상, 그리고 새로운 일거리들의 등장은 이런 경향을 상쇄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였고, 그 결과 '변화 없는 변화'가 초래되었던 것이다. 이런 판단은 1920년대뿐 아니라 이후의 시기에도 계속해서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예컨대 주부들이 가사노동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모하는지를 조사한 여러 연구들에 따르면 192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에 걸친 기간 동안 직업을 갖지 않은 가정주부들이 가사노동에 쓰는 시간은 시대가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남을 볼 수 있다. 결국 기술의 발전은 가정에서 여성의 해방을 가져오지는 못했던 것이다.
 

변화 없는 변화 2: 작업장에서의 새로운 기술 도입
 

만약 가정에서의 기술도입이 여성의 노동부담을 덜어 주는 데 그다지 기여하지 못했다면, 또 하나의 장소, 즉 직장에서는 어떠했을까? 우리는 18세기 말 산업혁명기 이래로 지금까지 공장, 사무실 등의 작업장에 많은 새로운 기술들이 도입되었으며, 이러한 추세는 20세기에 들어와서 더욱 가속화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은 여러 가지 결과를 가져왔지만, 그 중에서 두드러진 것은 사람이나 가축의 힘을 이용하던 많은 산업분야들에서 동력 기계가 도입되어 과거에 수행하기 힘들었던 노동을 하는 데 더 적은 인간의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몇몇 역사가들은 역시 다음과 같은, 오늘날 널리 퍼진 하나의 '표준적' 해석을 내놓았다. 그 해석은 요컨대, 과거에 일을 하는 데 물리적 힘이 필요했기 때문에 여성들이 수행하기 힘들었던 직업들이 기술 발전의 결과로 이들에게도 개방됨으로써 여성들이 다양한 직업들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라는 것이다. 실제로 20세기 들어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출이 광범하게 증가하였으며, 심지어 몇몇 직업들에서는 여성들이 남성들을 대체하여 노동력의 다수를 차지하게 된 것이 사실이고 보면 앞서의 표준적인 해석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역사적인 사례들을 살펴보면, 기술의 발전과 여성들의 노동 시장 진출 사이에는 서로 필연적인 상관관계가 드러나지 않는다. 먼저 기술의 발전, 그리고 그에 수반한 육체적 노동의 감소가 거의 없었는데도 여성들의 노동 시장 진입이 대거 일어난 산업분야들이 있다. 예컨대 여성들은 산업화 이전에도 힘든 육체적 노동을 요구하지 않았던 몇몇 직업들에서도 남성들을 대체하여 노동 시장에 진입했다 (예컨대, 19세기의 여송연(cigar) 제조업). 여성들은 심지어 중요한 기술적 변화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몇몇 직업들에서도 남성들을 대체했다 (예컨대, 초·중등학교 교사직). 또한 여성들은 기술 변화가 일어나긴 했지만 육체적 노동의 정도에는 아무런 차이도 가져오지 않은 몇몇 직업들에서도 남성들을 대체했다 (예컨대, 부기 작업). 이로부터 미루어 볼 때, 여성들이 노동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게 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기술 발전으로 인한 육체적 노동의 감소가 아닌, 다른 어떤 요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은 중요한 변수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노동력의 성별 구조를 결정하지 못한다.

반면, 새로운 기계의 도입으로 힘든 육체적 노동이 제거되었음에도 여성들이 남성들을 대체하여 노동 시장에 진출하지 않은 많은 분야들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조판 작업(typesetting)이 거의 완벽한 예가 될 터이다. 전통적으로 인쇄업 분야에서는 정해진 틀에 활자를 끼워맞추는 작업을 하는 숙련 식자공(植字工)이 거의 남성들이었고 여성들은 거의 없었는데, 그 이유는 여성들이 무거운 활자 케이스를 조판 작업대에서 인쇄기까지 들어 옮기기가 힘들 것으로 사람들이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자동 주조 식자기(linotype machine)가 도입된 이후 조판 과정에서 필요한 육체적 노동이 급격히 줄어들었음에도 조판 작업은 사실상 여전히 남성들의 전유물로 남아 있다. 조판 작업에 필요한 인간의 에너지가 타자치는 작업에 비해 보더라도 그다지 크지 않은 정도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지난 100년 동안 여성들의 노동 시장 참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인은 어떤 것이었을까? 기술의 발전보다 더 크게 기여한 요인이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경제적인 요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여성들은 거의 언제나 동일한 일을 하면서도 남성보다 적은 보수를 받았으며, 이러한 사실은 1960년대 이래 동일한 노동을 했을 경우에 동일한 임금을 줄 것을 법제화한 동일임금법(Equal Pay Act)이 많은 국가들에서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변화하지 않았다. 즉, 여성들은 더 적은 물리적 힘만 들여도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남성들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더 적은 임금을 받으며 일했기 때문에 남성들을 대체하게 된 것이었다.

육체적 노동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진출이 활발하지 않았던 산업 분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의 해석을 해 볼 수 있다. 이런 분야들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예컨대, 노조 조직화) 때문에 여성들을 더 적은 보수를 주면서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들의 진입이 봉쇄된 것이었다. 아울러 특정 분야에서 여성들의 노동 시장 진출이 가로막힌 또다른 중요한 이유로 문화적 요인을 들 수 있겠다. 즉, 작업장 내에 완고한 남성중심적 문화가 존재했기 때문에 여성들은, 설사 더 낮은 임금을 받는 것을 감수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기술 발전으로 인한 육체적 노동의 감소가 여성들에게 더 많은 직업으로의 길을 열어 주었다는 생각은 문자 그대로의 '가능성'에 그쳤다고 해야 할 것이다. 20세기 들어 많은 기술 혁신이 나타났고 이와 아울러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게 나타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가지 사건 사이의 필연적인 연관은 없으며 직업의 성별 분화는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여전히 많은 직업들이 남성중심성을 유지하면서 여성들의 진입을 막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통계수치를 하나 인용해 보면 이해에 도움이 될 듯하다. 1900년에는 모든 직업 분야들에서 여성과 남성의 분포가 임의적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는 직장을 지닌 여성의 66%가 남성 중심의 직업 영역으로 일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 후 60년이 지난 1960년에 같은 수치는 68.4%로, 사실상 거의 변화가 없음을 볼 수 있다.
 

기술 발전이 내포한 가능성, 그리고 그 한계
 

우리는 기술의 발전이 사회의 변화 방향을 지시하고 또 변화를 이끌고 간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기술의 발전이 제시해 주는 '가능성'을 단순한 가능성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가까운 미래에 곧 실현될 하나의 '현실'로 받아들인다. 또한 우리는 기술을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여긴다. 기술의 발전은 모든 이들에게 보편적인 복지를 가져올 것이며, 이에 따라 특히 사회적으로 소외된 소수에게 상대적으로 더 많은 혜택을 안겨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기술은 사회로부터 떨어져 존재하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도깨비방망이 같은 것이 아니다. 기술의 발전이 가정과 직장에서의 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살펴보면, 그것이 사회 속에 뿌리내린 가족 이데올로기나 성차별적인 문화를 넘어서 평등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사회구조에 순응한 측면이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기술 발전과 여성 해방 사이의 관계에서 볼 때, 새로운 기술의 도입은 기껏해야 '가능성'의 제시 정도를 넘어서지 못했던 것이다.

출전: 중앙교육 『블루논술 A+』 1998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