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방학중에 있었던 과학계의 주요 사건들 중에서 그 중요도 면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아무래도 세계과학회의(World Conference on Science)의 개최를 꼽아야 할 듯하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와 국제과학협회(ICSU)가 공동으로 주최하여 6월 26일부터 7월 1일까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이번 회의는 "21세기를 위한 과학: 새로운 다짐"을 주제로 내걸었으며 전세계 197개국 대표단을 포함하여 비정부기구, 학술단체 대표 등 2000여명이 참가하였다. 이번 세계과학회의는 과학기술이 사회에서 점차적으로 그 중요성 ― 긍정·부정 양자 모두의 의미에서 ― 을 더해 가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그것의 현주소와 쟁점들을 점검해 보고 이에 바탕하여 21세기 과학 발전의 청사진을 마련해 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다. 『네이처』와 『사이언스』는 회의의 중요도에 걸맞게 이 행사를 해설기사(Science, 9 July 1999, pp. 174-5)와 사설(Nature, 8 July 1999, p. 93; Science, 23 July 1999, p. 529) 등을 통해 비중있게 보도하였다. 특히 『네이처』는 올해 1월부터 매 호마다 한두 쪽씩을 할애해 준비 및 진행상황을 지속적으로 알리는 한편, 홈페이지(http://helix.nature.com/wcs)를 만들어 세계과학회의에서 논의될 의제에 대한 토론을 주도한 바 있다.

이번 회의의 참가자들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의 불평등, 과학연구의 윤리, 지적재산권, 여성의 과학참여, 과학정책에 대한 대중참여 증대와 같은 중요한 쟁점들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고 이로부터 도출된 결론은 <과학과 과학지식의 이용에 관한 선언>과 <과학의제―행동강령>이라는 두 개의 문서에 담겨 회의 폐막시에 제출되었다(이 문서의 국역본은 http://www.unesco.or.kr/wcs를 참조). 이 문서들은 입장에 따라서는 '당연하고 뻔한' 내용만을 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으며, 몇몇 쟁점들에 대한 서술에서는 실망스러운 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네이처』에서도 지적하고 있다시피 이번 세계과학회의의 공과는 거기서 도출된 결론이 어떤 미사여구로 치장되어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실질적인 효과를 지니는 후속조치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국내에서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주도하여 준비하고 있는 후속조치는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한편, 『사이언스』 7월 2일자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Science, 2 July 1999, pp. 23-24). 최근 국내에서도 사회적 쟁점으로 점차 부각되고 있는(예컨대 『한겨레』 7월 20일자에 실린 충북 영동군 상촌면 상도대리 관련기사를 보라) 고압송전선 전자기장의 암 유발 가능성에 대해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던 미국의 한 연구가 실은 데이터를 조작한 일종의 '과학적 사기'의 결과물이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은 7월 24일자 『뉴욕타임즈』에 다시 대서특필되었고 이를 인용한 연합통신 기사를 통해 국내에도 소개되었다(『한겨레』 7월 25일자 등). 언론은 이를 '돈에 팔린 과학자'로 매도했고(『중앙일보』 8월 2일자), 우리나라의 이해당사자인 한전측은 재빨리 이를 고압송전선의 '입증된 안전성'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대한매일』 8월 19일자 기고).

그러나 『사이언스』의 기사는 마치 이번 사건이 고압송전선의 위험성 논란에 쐐기를 박는 계기라도 된다는 식으로 기술했다는 점에서 과장된 점이 없지 않으며, 『뉴욕타임즈』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좀더 심각하다. 그나마 『사이언스』는 이 연구를 수행한 당사자인 로버트 리버디의 반론(Science, 16 July 1999, p. 337)을 게재했다는 점에서 다소 균형감각이 엿보인다고 하겠다. 고압송전선의 위험성 논쟁이 고작 한두 개 정도의 연구성과에 기반한 단순한 쟁점이 아니라는 사실은 몇 군데의 웹사이트만 들러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http://www.mcw.edu/gcrc/cop/powerlines-cancer-FAQ/toc.html, http://www.niehs.nih.gov/emfrapid, http://www.bioelectromagnetics.org). 과학기술과 관련되어 형성된 이와 같은 첨예한 쟁점에서는, 위험성이 '입증'되지 않았으므로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식의 강변이 아니라 '예방의 원칙'에 근거한 사회적 토론의 과정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출전: 『대학신문』 1999년 9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