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 과학계에 충격을 안겨주었던 하나의 '작은' 사건은 초, 중등 교과서를 위한 과학교육 표준에서 진화론과 빅뱅 이론을 포함해 지구의 연대기적 나이를 암시하는 모든 내용을 삭제할 것을 의결한 미 캔자스 주 교육위원회의 결정이었다. 20세기를 통틀어 지속된 창조-진화 논쟁의 역사에서 창조론 진영이 거둔 보기드문 '승리'로 평가되는 이번 결정에 대해 캔자스 주의 주지사와 6개 대학 총장들, 전미생물교사협회 등이 항의 성명을 내었고, 미국시민자유연합 등의 단체들은 법정소송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일부 언론보도에서 나타난 오해와는 달리 이번 결정이 진화론의 교육을 '금지'한 것은 아니며 지역 군 단위 교육위원회에서 이 지침을 받아들일 것인가의 여부를 다시 결정하는 절차가 남아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결정이 지니는 상징적인 의미와 그것이 몰고올 파급효과는 만만치 않은 것 같다. 그 의미를 반영이라도 하듯, 『사이언스』와 『네이처』는 이번 사건과 그것이 내포하는 함의를 자세히 보도했고(Science, 20 August 1999, pp. 1186-7; Nature, 19 August 1999, p. 697, 701), 대부분의 국내 언론 역시 이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체로 먼산 불구경하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정상적인' 중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다들 진리라고 믿고 있는 진화론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과학 교과서'에 어떤 내용을 수록할 것인가를 두고 사회적 논쟁을 벌인다는 것 역시 우리에겐 생소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또한 인구의 44%가 신의 창조론을, 40%가 신의 주도하에 진화가 이루어졌다는 '유신론적 진화론'을 각각 믿고 있다는 미국의 분위기와 이곳의 사정을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혹 창조론자들을 "미친 자들, 사기꾼들, 혹은 멍청이"로 몰아붙이거나 그들의 주장이 과학을 위협하는 "완전히 틀린 것으로 판명난 엉터리 주장"이라며 흥분하는 일부 과학자들에게 막연한 호감이 간다면, 그 전에 『네이처』의 전언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 『네이처』는 사설에서 이번 결정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면서도, 이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보다 건설적인 함의로 (1) 과학자들이 사회적 공공 영역에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며, (2) 과학을 사실(혹은 진리)의 묶음이 아니라 현재에도 진화하고 있는 일군의 지식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두 가지 사항을 제시한 바 있다(Nature, 19 August 1999, p. 697). 그리고 나서 창조-진화 논쟁이 위치한 맥락과 그것에 대한 해석의 역사를 다룬 글을 읽어보면 이 논쟁이 가져다주는 보다 일반적인 함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예컨대, 박희주, 「창조-진화 논쟁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한국과학사학회지』 21권 1호(1999), pp. 112-120를 보라).

올 상반기 과학 저널의 뉴스란을 연이어 장식한 최고의 화두는 두말할 나위없이 생명공학을 둘러싼 각종의 쟁점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유전자조작식품과 생명복제가 특히 관심의 초점이었는데, 이 중 윤리적 쟁점과 좀더 밀접히 닿아 있는 생명복제의 문제는 불치병의 치료나 장기이식과 연관된 의료상의 잠재적 혜택이냐, 생명이라는 절대적 기본 가치에 대한 존중이냐를 기본 대립축으로 놓고 미국과 유럽 양쪽에서 모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영국에서는 인간배아복제에 대해 블레어 정부가 최근 내린 금지조치가 과학자들의 비판에 직면했으며(New Scientist, 3 July, 1999, pp. 3-4; Nature, 1 July, 1999, p. 4), 미국에서는 배아 간세포(stem-cell) 연구에 연방정부의 자금을 지원할 것인지의 여부를 놓고 논쟁이 진행중이다(Nature, 8 July 1999, p. 96). 이 쟁점에 대해 최근(9/10∼13) 국내에서도 시민패널 주도의 '합의회의'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16명의 시민패널은 생명복제기술의 유용성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인간개체복제 및 인간배아복제 모두를 금지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놓아 이 문제를 둘러싼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의 과정을 열어 놓았다(시민패널 보고서 전문은 http://www.unesco.or.kr/cc에 올려져 있다).
 

출전: 『대학신문』 1999년 9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