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사회관계 논쟁에 관한 노트
 
 

도널드 맥켄지
 
 

아마도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도, 과학에 관계된 쟁점들이 현재 정치적 논쟁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냉전 체제가 다시금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 즈음하여 새로이 등장한 차세대 무기 시스템들 - 크루즈 미사일, 퍼싱 Ⅱ, 트라이던트, MX, SS20, 중성자탄 - 은 반전 운동이 대중적으로 부활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대처 정부는, 전기 산업이 이미 설비 과잉으로 인한 초과 생산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확대된 핵발전 계획을 계속해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극소반도체 전자공학에 기초하여 이룩된 새로운 정보기술로 인하여 대규모 실업이 나타날 위험이 더욱 커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전반적인 반동의 기운이 깊어감에 따라, 인종차별주의나 성차별주의 등과 같은 억압 형태가 자연스럽다는 것을 논증하기 위해 과학, 특히 사회생물학(sociobiology)에 의지하는 것이 정당성을 얻어 가고 있다.

그러나 좌파들은 자본주의 내에서의 과학의 역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발전에 의해 제기되는 첨예한 정치적 문제들에 다가가는 최상의 접근법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어떠한 합의점도 찾지 못하고 있다. 과학 자체는 좋은 것 또는 중립적인 것이며 자본주의가 과학을 잘못 사용하거나 그 발전을 지체시킴으로써 과학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낡은 교의가 아직도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자본주의와 과학 간의 연결이 오늘날 너무나 광범위한(massive) 것을 보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이 구조적으로 자본주의적이며 억압적인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흑인이 지성 면에서 선천적으로 열등하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과학을 이용하는 데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릇되고 반동적인 사이비 과학에 대항하여 '진정한' 사회주의적 과학을 내세워야 하는가? 아니면 우리는 모든 과학의 기본 개념들을 그것이 자라난 사회에 의해 필연적으로 규정된(patterned) 것으로 분석해야 하는가? 사회주의 운동은 과학자들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자신의 지식을 민중에게 봉사하는 데 쓰도록 우리가 설득해야 할 전문가로서인가, 아니면 억압적 관념의 공급자로서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으로서인가? 사회주의 과학은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과 다른 것인가? 다만 조직 방식과 자금원이 다를 뿐인가? 아니면 사회주의 과학은 질적으로 다른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가?

이 논문에서 나의 목적은 서로 경쟁하는 세 가지 주요 입장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첫번째 입장은 힐러리 로즈(Hilary Rose)와 스티븐 로즈(Stephen Rose)의 입장이다. 그들은 60년대 후반 영국에서 급진과학운동의 현단계가 시작된 이래 그 운동에 계속 관여해 왔다. 그리고 그들의 논문들, 특히 1979년의 『사회주의 연감 (Socialist Register)』에 실린 「급진 과학과 그 적들 (Radical Science and its Enemies)」은 논쟁에 대한 최근의 관심에 불을 지핀 불꽃이었다. 두번째 입장은 과학과 사회의 관련을 연구하는 지적인 전문 분야인 과학지식사회학의 입장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에딘버러 대학의 과학 연구 그룹(Science Studies Unit)의 배리 반즈(Barry Barnes)와 데이빗 블루어(David Bloor)의 연구에 촛점을 맞출 것인데, 왜냐하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 이 연구이고 또 그들과 관련된 '지식사회학의 강한 프로그램(strong programme of the sociology of knowledge)'이 현재 과학사회학에서 아마도 가장 큰 논쟁거리이기 때문이다. 세번째 입장은 『급진과학저널 (Radical Science Journal)』의 입장인데, 이 저널은 대부분의 현 논쟁의 화제가 되어 왔던 집단 출판물이다.

좁은 지면 관계상 서로 경쟁하는 입장들에 대한 정확한 요약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내가 지금부터 설명할 내용도 특징 묘사(caricature)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나는 이 논쟁과 관련된 몇몇 중요한 논문들의 내용이 명료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나 자신의 단순화된 해석을 이 논문들과 억지로 짜맞추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 글에서 몇몇 주요 쟁점과 내가 보기에 오해인 듯한 부분을 지적해 내고, 맑스주의 과학론과 그것이 정치적 실천과 맺는 관계의 미래에 대해 몇 가지 생각을 제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힐러리 로즈와 스티븐 로즈
 

논쟁과 관련된 그들의 최근 논문들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근래 몇 년 동안 널리 퍼진, 과학과 사회의 연관을 파악하는 한 가지 특정한 방식은 사실상 힘을 잃어가고 있으며 반동성을 내포한 것이다. 이 견해, 즉 '과잉성찰성(hyper-reflexivity)'은 과학과 사회의 연관을 너무나 강하게 묘사한다. 이 견해는 과학 지식의 상대적 자율성조차 부정하고, 과학을 그것이 자라난 사회의 단순한 상(像)으로 환원하며, 진리와 거짓, 과학과 이데올로기 사이의 경계선도 무너뜨린다. 이러한 견해는 몇몇 과학사회학자, 특히 '강한 프로그램'의 지지자들과 『급진과학저널』의 논문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왜 이러한 관점은 힘을 잃어가고 있는가? 간단히 말해, 힐러리 로즈와 스티븐 로즈는 이 견해에 따를 경우, 반동적인 과학들 - 예를 들어 옌센(Jensen)과 아이센크(Eysenck)의 IQ제도, 또는 사회생물학 - 을 좋은 과학과 대립하는 거짓, 이데올로기, 사이비 과학으로 공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만약 과학이 단지 그것이 자라난 사회의 반영(reflection)일 뿐이라면 우리가 IQ제도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은 이 제도가 자본주의 사회의 인종차별적이고 위계적인 구조를 반영한다는 것 뿐이다. 스티븐 로즈에 따르면, 우리가 IQ제도를 '사이비 과학의 이데올로기적 이용'이라는 이유로 제거하려고 해도 그러한 판단의 근거가 되는 우리의 과학적 신념이 그 자체로 우리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정치의 단순한 반영일 뿐이라면 우리는 그 제도를 제거할 수 없다. '과잉성찰성'에 의하면 모든 과학이 동등하게 실재성을 가지므로(all sciences are equally real) 우리는 사회생물학에 대항하여 '진정한 과학(real science)'을 요청할 수 없다.
 

지식사회학의 강한 프로그램
 

힐러리 로즈와 스티븐 로즈에 의하면 '과잉성찰성'의 토대는, 많은 근대 과학사회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상대주의'이다. '강한 프로그램'에서는 '진리의 기준이 상대화되어 사라져 버리고' 어떻게 해도 좋다(anything goes).

그렇지만 과학지식사회학이 상대주의적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악명 높은 '강한 프로그램'을 보다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주의'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아야만 한다.

스티븐 로즈와 힐러리 로즈는, 비록 충분히 설명하지는 않지만 두 가지 종류의 상대주의, 즉 철학적 상대주의(philosophical relativism)와 사회학적 상대주의(sociological relativism)를 언급한다. 이러한 구분은 지식사회학의 강한 프로그램에서 사실상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이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철학적 상대주의란 어떤 이론(또는 어떤 진술)의 진리값(truth value)이 그 이론이 속한 사회에 의존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철학적 상대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양자역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리이며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다른 종류의 물리학이 진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강한 프로그램의 지지자들이 이렇게 주장했던 적은 없다. 데이빗 블루어가 개괄한 바에 따르면 강한 프로그램의 핵심은 지식사회학에서의 설명이 "진리인가 거짓인가, 합리적인가 비합리적인가,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와 관련하여 치우침이 없어야(impartial) 하며 설명 방식이 대칭적인(symmetrical)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입장이 소위 사회학적 상대주의다.

사회학적 상대주의의 의미와 그것과 철학적 상대주의의 구별은 한 가지 예를 통해서 잘 설명될 수 있다. 17세기에는 두 가지 물질관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하나는 급진적인 분파의 '범신론적 유물론(pantheistic materialism)'인데, 우주가 영혼을 가지고 살아 있다고 묘사했다; 다른 하나는 보일(Boyle)과 뉴턴(Newton)의 '기계적 철학(mechanical philosophy)'으로서 우주를 외부의 힘에 맹목적으로 반응하는 수동적 물질로 묘사했다. 우리의 통상적인 과학관에 따르면 보일과 뉴턴이 그들의 반대파에 비해 '진리'에 더 가까이 접근했고, '더 합리적'이었다. 사회학적 상대주의가 제안하는 것은, 왜 이러한 서로 다른 이론들이 나타났고 또 왜 계속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설명할 때 그러한 판단은 제쳐두자는 것이다. 우리는 반대파의 '오류'에 대해서는 사회학적 설명을 유지하는 반면 보일/뉴턴의 입장은 '이성의 힘'으로 설명하는 식의 비대칭적인 설명에 대하여 의심해 보아야 한다.

이러한 태도가 현명하다는 점은 이 에피소드에 대한 최근의 역사적 연구를 통해서 밝혀지고 있다. 급진적 분파는 명확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사회적인 동시에 우주적인(cosmological) 평등주의자였고, 신과 그의 현세적 대리자를 이 땅에 모셔오는 것을 진정으로 추구하였다. 그러나 보일과 뉴턴주의자들 역시 마찬가지로 정치적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그 속에서 창조주인 능동적 신이 수동적 물질을 지배하는, 위계적인 우주를 건설했는데, 그들이 이런 우주를 만든 까닭은 사회의 위계 질서와 도덕적 권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사회학적 상대주의가 사회사(social history)와 과학사회학을 연구하기 위한 한 가지 전략이며, 철학적 상대주의와는 무관하다는 점이 분명히 인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질 이론에 대한 논쟁을 '치우침 없이' 또 '대칭적으로' 설명하는 것과, 뉴턴의 우주관이 윈스턴리(Winstanley)의 것보다 더 진리에 근접해 있다고(또는 그 반대로) 믿는 것은 서로 완전히 양립가능하다. 강한 프로그램의 지지자들이 진리에 대하여 토론하는 한, 그들은 어떤 이론의 진리성 문제와 그 이론이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가 또는 그 이론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가를 설명하는 문제를 명확히 분리한다. "어떤 사회 집단이 어떤 이론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이 그 이론을 진리로 만드는가?"라고 데이빗 블루어는 질문한다. "주어질 수 있는 유일한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급진과학저널』
 

그러나 모든 철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진리'라는 관념은 다루기 힘든 것이다. 우리의 매우 명확한 진리 개념들이 바탕으로 삼고 있던 모형을 『급진과학저널』이 거부한 것도 분명히 그런 경우다. 그 모형에 의하면 인식하는 사람은 세계를 수동적으로 바라보며 어떤 이론이 실재와 일치하는가를 판단하는 관점에서 이론들을 검사한다. 만약 그 이론이 [실재와] 일치할 경우 그 이론은 진리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거짓이다.

그 대신에, 『급진과학저널』은 과학을 노동 과정(labour process)으로 간주하자고 제안한다. 수동적으로 관조하는 개인이 진리를 발견한다는 모형은 과학자들이 생산수단을 가지고 노동하여 원료를 생산물로 변형시키는 모형으로 대치된다. 이 제안의 목적은 과학적 작업(scientific work)이 공장 노동과 똑같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껏해야 과장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노동 과정의 관점은 '정치적 분석의 실행(an exercise in political analysis)'으로 보아야 한다.
 

내가 위에서 제시한 노동 과정으로서 과학을 정의하는 것을 당신은 단순한 상투적인 문구(formula)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이 정의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당신 자신의 직업에 적용해 본다면 당신은 정치 투쟁의 진정한 기회를 생각하게 될 것이며 당신의 노동과 그밖의 투쟁 영역의 결합을 고려하게 될 것이다.

일반적인 노동 과정 정치학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분석은 영국에서는 상당히 새로운 것이다 - 즉, 기본적으로 노동 과정에 대한 사회주의 경제학자 학회(Conference of Socialist Economists)의 1976년 연례회의 이후의 일이다. 그렇지만 이 분석을 적용하면 "과학은 사회 관계이다(Science is Social Relations)"라는 밥 영(Bob Young)의 주장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분석을 적용하면서 나는 그 주장에 대한 한 가지의 가능한 해석만을 제시할 것이라는 점을 먼저 밝혀 두어야겠다. 그 주장에 대한 다른 해석 - 어떤 사회의 과학 지식은 자연에 투영된 그 사회의 지배적 사회 관계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는 - 도 있을 수 있지만, 내가 보기에 이 해석은 분명히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이 해석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논의할 것이다.

편의상 과학 지식의 단지 한 측면일 뿐인 '자연 법칙(law of nature)'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자 (물론 동일한 류의 분석이 '사실(fact)'에 대해서도 수행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은 사회 관계이다'라는 영의 주장에서 결정적인 동시에 많이 비판받는 부분은 '자연 법칙'의 지위가 맑스가 분석한 '상품'의 지위와 동일하다는 논증이다.

이 논증은 자연 법칙이 시장에서 매매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비록 오늘날 과학 정보가 그러한 의미에서도 더욱더 상품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보다 오히려 결정적인 점은 맑스에서 상품이 인간 노동의 '결정체'가 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냉장고라는 상품을 가격이 붙어 있는 어떤 '물건(thing)'으로 보는데 그것은 화폐라는 매개를 통하여 다른 물건과 교환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상품 안에는 인간 노동이 응결되어 있고 그 상품의 가치를 통해서 서로 다른 인간 노동들이 관계를 맺는다. "상품은 인간 자신의 노동이 갖는 사회적 성격을 노동 생산물 자체의 객관적 성격들로 보이게 만들거나, 이 물건들의 사회적인 자연 속성들(socio-natural properties)로 보이게끔 한다." 사회 관계들을 사물의 속성들로 응결시키는 이 과정은 맑스주의 전통에서 물신 숭배(fetishism) 또는 물상화(reification)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노동 과정의 관점이 제안하는 것은 우리가 자연 법칙을 상품과 유사한 것으로 간주하자는 것이다. 노동은 그것이 상품 속에 응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 법칙 속에도 응결된다. 이러한 언급은 기묘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매우 간단하다. 만약 우리가 과학을 (발견 과정이 아니라) 노동(work) 과정으로 생각한다면, 자연 법칙은 이 노동의 생산물이며, 실제의 과학은 과학자와 여타 사람들이 기존의 자원(지적인 또는 여타의)를 가지고 노동하는 과정이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지식의 상태가 변형된다. 다소 무미건조하게 말하자면, 자연 법칙은 생산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 법칙들을 우리가 발견해 낸 자연의 법칙들로 간주하는 것은 물신 숭배이다 - 즉, 그것은 우리의 노동의 결과물을 자연에 투영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과학 노동(labour) 과정이 조직되는 방식과 이 과정과 다른 노동 과정이 맺는 관계는 생산되는 지식에 틀림없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좀더 자세한 연구 없이는 이 영향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지만, 달리 조직된 노동이 다른 지식, 다른 자연 법칙을 생산한다는 것을 부정할 만한 선험적 근거가 없는 것은 분명하다.
 

자연
 

그러나 이 주장은 힐러리 로즈와 스티븐 로즈가 제기한 비판의 핵심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이 관념론의 한 형태에 굴복하는 것은 아닌가? 또 이렇게 주장하는 것이 자연을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일종의 '심령체(ectoplasm)'로 만드는 것은 아닌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이 문제를 따지는 가장 유용한 방식을 슈미트(Alfred Schmidt)가 『맑스에서의 자연 개념 (The Concept of Nature in Marx)』에서 제시하고 있다. 슈미트는 맑스에서 자연은 인간의 '의지나 의식 외부에 독립하여'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우리와 자연의 관계가 수동적인 것은 아니다: 노동과 실천을 통해서 우리는 자연을 전유하고 변형시킨다. 우리의 지식은 전유되지 않고 매개되지 않은 자연에 대한 지식이 아니며, 또 그럴 수도 없다. 오히려 이 지식은 (물리적·개념적 양자 모두의 의미에서) 노동이 가해진 자연의 지식이다. 슈미트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맑스는 개념을 대상 그 자체가 남기는 인상(impression)으로 간주하는 소박한 실재론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것을 사람들이 그러한 대상에 대하여 맺는, 역사적으로 매개된 관계의 반영(reflection)으로 파악했다.

비록 내가 좋아하지 않는 철학적 반향을 가진 용어들이기는 하지만, 자연-그-자체(nature-in-itself)와 우리를-위한-자연(nature-for-us)을 구분하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자연-그-자체라는 용어는 세계가 인간 존재에 선행하여 존재했고, 만약 핵 재난으로 우리가 멸망해도 세계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우리를-위한-자연은 우리의 과학이 묘사하는, 우리가 아는 자연은 전유된 자연이며 사회적으로 조직된 인간 노동의 생산물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레비도우(Les Levidow)는 그 요점을 간결하게 서술한다:
 

우리는 특정한 사회적 실천을 통해서만 자연을 알 수 있는데, 그러한 실천은 생산된 지식이 취하는 형태를 결정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결코 오로지 '물질적인' 어떤 세계, 혹은 순수히 탈-사회적인(a-social) 외부 세계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과학노동이 자연 그 자체에 대한 직접적이고 매개되지 않은 지식을 다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위의 지적은 여전히 용납되기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관점을 교정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은 논쟁 전체에 걸쳐 대체로 무시되어 왔던 문헌들, 즉 현대 과학에 대한 미시사회학 또는 민속지적 접근(ethnography)이라고 불리는 것들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문헌들에 속하는 최초의 논문들 가운데 하나에서 해리 콜린즈(Harry Collins)는 생생한 은유로 이 접근이 취하는 방향을 설명한다. 과학 지식은 보통 딱딱하고도 명료한 어떤 것이라고 여겨진다 - 우리는 어떻게 사물이 다른 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를 상상하기 어렵다. 그것은 '접착제가 마르고 끈이 떨어진' 병 속의 배와 유사하다.
 

병 속의 배는 이 세계의 자연 객체다. 그리고 그 과정을 돌이킬 방도가 없기 때문에, 배가 원래는 한 묶음의 나무 토막들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과학에 대한 미시사회학적 접근의 과제는 어떻게 배가 병 안에 들어갔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 미시사회학은 이미 받아들여진 사실들이 구성되는 과정으로 들어가 그 작업을 자세히 설명한다. 일련의 연구들 - 주로 현대물리학과 천체물리학을 대상으로 한 - 은 과학자가 자연-그-자체를 발견한다는 모형이 근대과학의 구조(texture)에 대한 표상으로서 얼마나 부적합한가를 보여주었다. 과학자들은 우리를-위한-자연을 소재로 작업하여, 그것을 만들어 내고, 그것에 대해 논쟁하고, (일반적으로는) 결국 그것에 합의한다.

불행히도 과학 노동 과정에 대한 이러한 매우 상세한 민속지학적 접근은 지금까지 맑스주의자의 관심을 끈 종류의 문제들에 대하여 대체로 무관심했다. 이 문헌들을 통해 과학 지식은 노동과 협상의 산물이라는 점은 증명되었지만, 이를 읽은 사람들은 대개 이러한 과정이 고립적으로 일어난다고 상상한다. 위계 질서, 성차별주의, 국가, 생산양식과 같은 개념들은 나타나지 않는 것이 보통이고, 그 결과 과학 노동의 조직화에 있어서의 이러한 측면들이 그 생산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이 문헌들에서 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 뒤에 숨어 있는 실험실로 들어가 보면, 그 관점은 근대과학의 생산 과정을 관통하기 시작한다. 다시 맑스의 상품 분석과 유사하게, 그 관점은 어떤 방식으로 유통 영역, 즉 출판된 논문들로 이루어진 공식적인 과학 문헌들이 과학 생산의 실질적인 사회 관계를 체계적으로 은폐하는지에 대해 보여주기 시작한다.
 

과학은 사회의 거울인가?
 

지금까지 나는 '과학은 사회 관계이다'라는 주장에 대한 단 한 가지 해석, 즉 과학은 사회적인 노동 과정이며 그 과정의 생산물(법칙, 사실, 기술) 속에는 사회적으로 조직된 노동이 응결되어 있다는 해석만을 살펴보았다. 또 한 가지 가능한 해석이란, 과학의 개념들은 과학이 자라난 사회 조직의 거울(mirror)이라는 것이다 - 즉, 어떤 사회의 과학은 자연 위에 투영된 그 사회의 사회 관계다.

두 가지 해석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첫번째 것은 작업의 계획이지 결론은 아니다. 그 해석은 구체적인 분석을 통해서 풍부화되고 신뢰성을 얻을 필요가 있다. 두번째 것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일종의 결론이다 - 그것은 만약 옳음이 밝혀진다면 과학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대단히 명료하게 해 줄 것이다. 예를 들어 그 해석은 왜 사회주의 과학이 다른지(왜냐하면 사회주의에서의 사회 관계가 자본주의와 다르기 때문에), 또 왜 달라야 하는지(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 관계를 반영하는(mirroring) 현대 과학은 그러한 사회 관계를 자연스런 관계로 간주하는 세계상을 제공하기 때문에)를 결정적으로 보여 준다.

그러므로 두번째 해석은 분명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몇몇 과학을 이해하는 도구로서 그 해석이 지닌 힘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 해석이 모든 과학을 포괄하는 일반성을 가질 수 있을지 의심스럽고 또 그 해석이 궁극적으로 맑스주의 과학론을 막다른 골목으로 끌고 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이러한 접근의 지적 계보는 사실 맑스주의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접근이 맑스주의에 대립한다는 선험적 근거도 없지만). 에밀 뒤르껭(Emile Durkheim)은 그의 저서 『원초적 분류 (Primitive Classification)』[마르셀 모스(Marcel Mauss)와 공저]와 『종교적 삶의 기본 형태 (The Elementary Form of Religious Life)』에서 사유의 개념 구조의 발전에 대한 이론을 제안한다 (비록 그가 근대과학에 그 이론을 적용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예를 들어 주니(Zuni) 인디언이 가지고 있는 공간 개념은 그들의 사회 조직과 정확히 대응한다: 즉, "세계의 분할(division)이 부족(pueblo) 내에서의 씨족(clan) 분할과 정확히 일치한다."

좀 더 최근에 들어서 맑스주의 과학론도 이러한 접근법으로 방향을 돌렸다. 알프레드 손-레쎌(Alfred Sohn-Rethel)은 그의 저서 『지식노동과 손노동: 인식론 비판 (Intellecture and Manual Labour: A Critique of Epistemology)』에서 매우 야심차게 순수 수학과 순수 과학의 개념 구조가 상품생산 사회의 핵심인 '교환 추상(exchange abstraction)'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증명하려 했다. 복잡한 논점을 조악하게 단순화하자면, (소위) 고전물리학의 기초가 되는 추상적·균질적·선형적·연속적인 시-공간 개념은, 상품 교환 관계 - 질을 양으로 환원하는 것, 그리고 보편적 등가물인 화폐의 형태 속에서 구체적이고 독특한 것들을 지워 버리는 것을 그 속에 포함하는 - 의 거울이 되는 것이다. 거칠게 말해, 우리는 손-레쎌이 옛 격언인 '시간은 돈이다'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기를 바란다고 말할 수 있다 - 즉, 우리의 시간 개념이 화폐 사용에서 비롯되었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손-레쎌의 책은 지금까지 받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비판적인 관심을 받을 가치가 있다. 나는 그의 논증에 대해서 제기될 수 있는 역사적인 내용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하나의 포괄적인 논점, 즉 과학은 사회의 거울이라는 일반적 명제와 관련된 점만을 살펴보려 한다.

그 테제는 어떤 매개고리 없이는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렵다. 왜 자연에 대한 사람들의 사고는 그 속에서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 관계에 의해 구속되는 것인가? 만약 사람들이 멍청이들이고, 자신들의 사회 경험에 수동적으로 제약되어 이 경험을 맹목적으로 자연에 투영시킨다고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구속 관계를 설명해야 한다.

그러한 매개고리가 제시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언뜻 머리에 떠오른다. 첫번째 가능성은 사람들이 자연에 대해서 사고할 때 사회 관계에서의 경험을 은유의 자원으로 사용한다는 것이고, 그 결과 그들의 이론화는 이러한 사회 관계를 어느 정도 반영한다는 것이다. 진화생물학의 역사 속에서 이런 예들은 풍부하게 찾아 볼 수 있다. 두번째 가능성은 사람들과 제도(institution)들이 종종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회 관계의 특정한 집합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이게 하는 데 이해관계를 지니고 자연에 대한 표상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예들은 물리학에서 심리학까지 모든 과학에 널려 있다.

이러한 방법 또는 이와 유사한 방법을 통해서 우리는, 왜 과학 지식이 그렇게 빈번히 사회 관계를 반영하고(mirror) 있는지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매개고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그러한 반영(mirroring)이 우연적인 것임을 지적해 준다. 과학이 언제나 사회 관계를 반영한다고 기대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결국, 거울 명제(mirror thesis)는 실제 역사의 풍부함을 부인한다. 뉴턴주의 과학은 그 수동적인 물질과 절대 시-공간 개념으로 볼 때 얼마간은 사회 관계를 반영하고 있지만 - 물론 단순히 상품 생산과 자본주의를 반영했다는 것은 아니다 - 뉴턴주의적 세계관에 맞서 투쟁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과학 지식들이 탄생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예컨대 빅토리아 시대의 과학적 자연사학자(scientific naturalist)들의 우주는 고전 역학의 기술적 성공에 못지 않게 물활론적인 반(反)뉴턴주의 전통에도 근거하고 있었다.
 

정치적 전략과 과학에 대한 분석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다소 추상적이었다. 이제는 과학에 대한 서로 다른 분석들과 서로 다른 좌파적 정치 전략 사이의 관계로 말을 돌릴 때다.

먼저 지식사회학의 강한 프로그램에서의 그 관계를 살펴보자. 이 프로그램은 일종의 학문적인(academic) 입장이다 (나는 이 용어를 경멸적인 어조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사용한다; 이 입장의 지지자들도 자기 자신의 입장이 학문적인 것이라는 데 대해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 입장은 과학의 사회사를 기술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이 입장이 보여주는 사회학적 상대주의는 그러한 목적을 위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회학적 상대주의를 채택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잘못 기술될 것이다.

그래서 이 입장은 좌파적 전략을 제공하기 위해 계획된 어떠한 분석과도 접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힐러리 로즈와 스티븐 로즈,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급진과학저널』은 모두 이 입장이 사실상 그러한 분석에 대한 장애물이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나는 그렇게 확신하지 않는다. 이 입장의 몇몇 지지자들, 특히 데이빗 블루어가 그 입장을 과학주의적인 수사로 포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수사는 원칙적으로 그 입장의 방법론적 핵심과 분리될 수 있을 것 같고, 그 입장과 연결된 구체적인 연구는 맑스주의 과학론에 유용한 자원을 제공한다. 맑스주의 과학론이 문제로 삼아야 할 지점은 그 입장의 지지자들이 과학에 접근하는 방법인 사회학적 상대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이들 저술들 중 몇몇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회와 사회 구조, 사회적 행동에 대한 관점이다.

『급진과학저널』과 힐러리 로즈와 스티븐 로즈는 좌파적 실천과 명백하게 관련된 분석을 제공한다. 1970년대 초반의 저술에서 힐러리 로즈와 스티븐 로즈는 급진과학운동의 행동을 위한 세 가지 의제를 개괄했다. 이들 중 두번째와 세번째 것은 다음과 같다.
 

현존하는 체제 내에서 대항 과학(contra-science)을 창출하려는 시도 (속에서)... 우리는 과학자들이 민중에게 봉사하게끔 만들려는 과학과 기술이 부르주아 문화에서 유래한 것이고, 또 이 문화 속에 남아 있으려는 경향을 지닌 것임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민중을 위한 과학을 만드는 투쟁 과정에서 과학 그 자체도 변형될 것이다.
이러한 변형은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의 장벽의 파괴를 수반한다; 기존의 퇴색한(degraded) 신화를 대신하여 진정한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연구실 내에서의 노동의 사회주의적 형태는 연구실의 개방을 수반해야만 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자연에 물리적으로나 개념적으로 관계하는 수단들을 내용과 형식 면에서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창조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나는 진정으로 다른 대항 과학을 창조하고 전문성의 장벽을 파괴하는 목적에 대해서는 사회주의자들이 심각하게 반대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주의자로서 우리의 공통의 기반은 분명히 강조되어야 하며 우리는 그 기반을 우리의 이론과 실천 모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로즈 부부의 의제들 중 첫번째 것 - 즉, 자본주의 과학의 이데올로기적 구성 요소들에 대한 체계적 탐구 - 에 대해서는 의견의 불일치가 있다. 스티븐 로즈와 『급진과학저널』의 레비도우가 IQ제도에 접근하는 서로 다른 방식에서 볼 수 있듯이, 전략에 있어서의 날카로운 차이가 존재한다. 스티븐 로즈는 IQ제도를 과학의 울타리 밖으로 추방하고자 한다. IQ제도는 "과학 연구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보면 점성술이나 사이언톨로지(scientology, 허바드(L. Ron Hubbard)가 제창한 정신 요법과 능력 개발의 방법으로 현재 신흥 종교화되어 있음 - 역주)과 비교될 만하다. 그러나 그것의 이데올로기적 가치는 이 터무니 없는 학문들 이상으로 심대한 사회적 반향을 불러 일으킨다." 반면, 레비도우는 IQ제도를 (자본주의) 과학의 전형으로 받아들이자고 제안한다: 그는 "...[IQ] 측정이란 과학의 자본주의적 내용과 형식을 얼마나 쪽집게처럼 잘 보여주는가?"라고 묻는다.

그렇다면 견해의 차이는 특정 '이데올로기들'의 과학적 정당성을 부인하려는 전략과, 레비도우의 말을 빌면 '자본주의의 사회적 재생산 전체를 탈신화화하려는 작업의 출발점으로 과학의 자본주의적 내용과 형식을 폭로함으로써 과학을 결정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추구하는 전략 사이에 존재한다. 두 전략 모두 매력과 위험을 지니고 있다. 첫번째 전략의 매력은 이를테면, 국민 전선(National Front, 영국의 극우 정당 - 역주)이 IQ제도를 이용하는 것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이 전략이 즉각 쓸모가 있다는 점이다. 이 전략의 위험성은 이러한 방식으로 특정 분야를 과학에서 배제하는 것을 추구할 경우, 자신도 모르게 나머지 [과학] 분야들의 정당성을 강화시켜 주고 전문가로서의 과학자의 이미지를 뒷받침해 줄 수 있다는 점이다 - 달리 말하자면 로즈 부부의 의제들에서 첫째 항목에 대한 추구는 둘째, 세째에 대한 추구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급진과학저널』의 입장의 매력은 자본주의 하에서의 삶의 모든 측면에 대한 총체적 비판으로 종합될 수 있는 잠재력에 있다. 그리고 위험성은 비판에서의 그러한 포괄성 때문에 종종 그 비판이 일상의 투쟁과 매우 동떨어진 것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다수의 상식적인 가정에 대한 철저한 거부 때문에 『급진과학저널』의 입장을 과학사회학과 맑스주의 이론에 정통한 사람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 양식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로부터, 지적 엘리트주의에 대한 비판이 쉽게 이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엘리트주의가 되는 아이러니가 도출된다.

그러나 노동 과정 분석 - 아직까지 이 분석은 『급진과학저널』의 지면에서조차 그 적용을 모색하기 시작한 정도에 불과하지만 - 은 아마도 이러한 위험을 피할 방도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이러한 접근법이 무엇인가를 의미하려 한다면, 이 접근법은 분명히 과학 노동자의 일상 경험에 근거하고 또 그것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구체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급진과학저널』의 논문들은, 예컨대 생물학 실험실의 생활, 낙태를 한 여성, 세베소 참사(Seveso disaster) 등의 실질적인 경험을 논의할 때 가장 읽기 쉬웠고 정치적인 면에서도 가장 직접적인 관련성을 가졌다.

궁극적으로 과학에 대한 서로 다른 분석들의 평가 기준은, 이 분석들이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줌과 동시에 우리의 투쟁을 인도할 도구로서 얼마나 적합한가에 달려 있다. 내 느낌에 1980년대의 조건에서는 노동 과정 분석이 과학 대 이데올로기의 접근법보다 더 도움을 주는 것으로 판명될 것 같다. 한번 더 반복하자면 후자는 억압적인 사회 관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정당화하려는 점증하는 시도, 예컨대 가부장제부터 자가 거주(owner-occupation)까지의 모든 것의 불가피함을 논증하기 위해 사회생물학을 사용하는 등의 시도에 저항하는 데 유용하다. 이미 확립된 기존의 과학 분야들이 그러한 결론을 보증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은, 그러한 분야들을 '진리'의 창고라고 묘사하거나 그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전혀 오류가 없는 전문가라는 것을 의미하지만 않는다면, 분명히 무해하다.

그러나 단순히 정당화의 형식만이 변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본은 노동에 대한 물질적 지배의 형식을 재조직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로 그것이 바로 대처주의(Thatcherism)와 통화주의(monetarism)가 의미하는 바이다. 그러나 과학기술도 역시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북아일랜드(Ulster)에서, 그리고 점차로 영국 본토에서도 이용되고 있는 명백한 '정치적 통제의 기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정보처리 기술이 사무직 노동자의 노동 과정에 대한 통제와 관련된 쟁점을 제기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인식되고 있다 - 예컨대 워드 프로세서는 타이핑 노동에 대한 통제를 더욱더 증가시키려는 자본의 시도를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핵발전 계획의 회계 관리상의 미숙한 점이 드러남에 따라, 이 프로그램이 실제로는 광부들이 지닌 산업적 영향력을 실질적으로 감소시키려는 저의를 가진 것임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군비 경쟁의 급격한 상승도, 비록 좀더 거리가 멀어 보이긴 하지만, 통제와 관계있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다른 분야들, 예컨대 강압적인 피임 형태, 유전공학, 심지어는 장기 이식까지도 머지않아 유사한 중요성을 가질지도 모른다.

'과학 대 이데올로기'는 이러한 쟁점들을 다룰 실마리를 우리에게 제공하지 못한다. 만약 이데올로기를 반동적인 사회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증명가능한 오류로 정의한다면, 당신은 고체물리학, 핵물리학, 내분비학, 분자생물학(위에서 제시한 부류의 기술들이 근거로 삼는 과학의 유형) 내에서 이데올로기를 폭로하기란 어려운 일임을 알게 될 것이다. 반면, 이러한 분야들이 다른 노동과정과 특정하게 연결되어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된 노동과정의 산물이라고 보는 관점은 훨씬 더 그럴듯하고, 정치 투쟁을 개시하는 데 있어 훨씬 더 생산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아직까지 이러한 성공적인 사례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러나 두 가지 서로 별개의 작업을 같이 본다면 내가 말하려는 바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을 듯하다. 마이크 헤일즈(Mike Hales)는 최근의 CSE 문고에서 제국 화학 회사(Imperial Chemical Industry)에서의 '사고작업(thinkwork)'에 대한 그의 경험에 관해 이야기한다. 화학 엔지니어나 여타 유사한 '구상 노동자(conceptual worker)'들이 무엇을 하는가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설계자의 주요한 기능은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를 구체적인 형태로 철저하게 사고하는 데 있다. 그 목표는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를 산 노동(공정 노동자들(process workers), 정비 노동자들, 생산 관리자들)과 죽은 노동(작업 공장(process plant), 온라인 컴퓨터, 정비 공장, 화학 생산물) 간의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연관의 물질적 형태 속에 확장하거나 새롭게 구현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이렇다:
 

설계자의 죽은 구상노동은 무미건조하고 도전의 여지가 없이 설계된 노동 과정 속에서 산 노동과 대립한다: 명확한 것(당신이 그것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도록 우리가 이미 명확히 한 것)을 행하든지, 아니면 그러한 상황 속에 봉합된 사회적·역사적 조건들을 해명하라 - 그리고 그것은 당신의 여가 시간에 하라, 왜냐하면 당신은 생각하라고 보수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이크 헤일즈의 책은 이러한 '선행구상화(preconceptualisation)' 과정의 근거가 되는 실제 과학 속으로 우리를 데려가지는 못한다. 그러나 조나단 슬랙(Jonathan Slack)이 10년 전에 썼으나 그동안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유기화학에 대한 논문은 이것이 어떤 식으로 가능한가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슬랙은 최근의 화학지식이 고속, 고산출, 단일산물 반응을 강조하고 있는 예를 들면서 생산에서의 요구가 화학지식을 조직한다고 주장한다. 슬랙의 개략적인 분석은 좀더 발전할 필요가 있으며, 화학지식을 조직하는 것은 단순히 생산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노동 통제에 대한 모든 요구까지도 함께)임을 보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우리는 화학과 화학공학에 대한 노동과정 분석의 단초 - 화학에서의 구상노동자를 위한 정치가 생산적으로 출발할 수 있는 지점이 어딘지를 보여줄 - 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분석은 쉽지 않다. 이 분석은 기술적인 인공물과 과학적 사실 양자 모두의 자명성(taken-for-grantedness)에 도전한다. 우리가 '사실(facts)'이란 말의 어원적 의미가 라틴어로 '행하여진 것' 또는 '만들어진 것'을 가리키는 'factum'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상당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맑스의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첫번째 테제의 방향성을 되찾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오직 이러한 방식으로 연구함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
 

지금까지 존재해 왔던 모든 유물론의 중요한 결함은... 대상, 실재, 감성을 객체 또는 관조의 형식 속에서만 받아들이고 인간의 감성적 행위, 실천으로, 즉 주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