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동안 '과학대중화'와 관련된 책들이 부쩍 늘어난 듯하다. 번역서들의 수가 많아지고 종류가 다변화된 것은 물론이고, 예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국내 학자들의 저서도 속속 등장해 커다란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많은 수의 집필진이 참여하여 여러 과학기술 분야들의 주요한 연구개발 동향이나 전망을 망라하는 형태의 대중화 작업들이 종종 눈에 띈다. 이런 경향이 나타나게 된 이유는 대입 논술의 자연과학 쪽 주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교양서적의 필요성이 대두된 탓도 있겠고, '밀레니엄'을 명목으로 지난 백년 혹은 천년을 정리하고 돌아보는 '행사'를 각 분야마다 치러온 점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 과학대중화 작업이 새삼 주목받게 된 배경에는, 근래들어 과학과 대중의 상호관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대중의 과학이해(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의 중요성과 의미가 전례없이 강조되어 온 맥락이 자리잡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은 일반대중의 구체적인 일상 속에까지 직접적이고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동시에 과학기술 역시 사회(의 일반대중)로부터의 막대한 지원이 없이는 연구개발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 점차 인식되면서, 과학계 내에서 그간 줄곧 '질낮은' 작업으로 치부되어 왔던 과학대중화에 대한 사고가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이다.
주로 교육 관련 서적들을 출판해 온 푸른나무에서 작년 말에 내놓은 『과학이 세계관을 바꾼다』는 앞서 설명한 여러 가지 맥락에 대체로 들어맞는 책으로 볼 수 있겠다. 이 책은 크게 '과학의 수수께끼' '핵심 기술' '과학과 인간'의 3부로 구성되어 모두 15개의 세부주제에 대한 글을 싣고 있다. 각 세부주제에 대한 글은 그 분야에 대해 국내에서 저술활동을 활발히 해온 전문가들이 주로 집필했는데, 「우주의 기원과 미래」 「물질의 근원」 「생명의 기원」 등과 같이 대중과학 서적들에서 낯익은 '전통적' 주제들에서부터 「생명공학」 「정보기술」 「나노기술」 등의 첨단기술 분야들에 대한 소개까지를 포괄하였다. 글들의 집필방식이나 가독성에는 다소 편차가 있으나 대체로 해당 주제에 대해 평이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되며, 상당수의 글들은 해당 주제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과학사적 접근을 병행하고 있다.
여기서 이채로왔던 것은, 보통 이런 류의 책들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생태계 복구(정책)」 「과학기술과 여성」 「생명윤리」 등의 '사회적' 내용을 다룬 글을 별도의 세부주제로 설정하여 인문사회과학자들이 집필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이는 과학의 내용 그 자체만을 주로 다루어 온 종래의 과학대중화 저술에 비해, 과학이 놓인 사회적 맥락이나 그것을 둘러싼 윤리적 쟁점들까지 포괄함으로써 과학에 대한 좀더 폭넓은 이해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시도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이 책은 몇 가지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우선 서문이나 머리말, 후기 등이 일체 없이 15편의 글만 달랑 싣고 있는데, 이는 다소 의아한 일이기도 할뿐더러 책의 기획의도나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없게 한다는 점에서 불만스럽다. 그리고 과학사를 공부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상당수의 글들에서 과학사적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는 점은 반갑게 느껴졌지만 짧은 지면의 한계 때문인지 그것이 다분히 피상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어 다소 아쉬웠다. 또한, 앞에서도 지적했듯 이 책이 「과학기술과 여성」 「생명윤리」와 같은 주제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로 생각되지만, 이런 주제들이 여타의 주제들과 조화를 이루기보다는 마치 곁다리처럼 한두 개 '끼워넣어진'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크게 아쉬운 부분이다. 예컨대 이 책에는 최근의 생명과학·생명공학과 직접 관련된 세부주제가 세 개(「생명공학」 「질병 치료」 「노화와 수명 연장」)나 포함되어 있는데, 사실 이 모든 세부주제와 관련해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생명윤리」가 마치 별개의 분야인 양 따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연구개발은 과학자, 윤리는 생명윤리학자의 몫'이라는 식의 잘못된 인상을 독자들에게 심어줄 수 있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서로 이질적인 주제들을 한 권의 대중과학 서적
내에 포괄해 보려는 이 책의 시도는 가치있는 것이었지만, 진정한 학제적 접근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와 같은 학제적 접근을 대중과학 서적
속에 구현하는 것은 종종 인문사회과학자와 자연과학·공학자들의 긴밀한 협동작업과
토론을 필요로 할 것이고, 따라서 쉬 이루어지기는 힘들지 모른다. 그러나 과학대중화
혹은 '대중의 과학이해'가 새삼 부각된 저간의 사정을 감안해 본다면, 이는
더 이상 미뤄둘 수만은 없는 작업일 것이다.
출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소식지 『자연과학』 10호(2001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