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동안 '과학대중화'를 둘러싼 관심이 상당히 커졌다. 서점가에 나가 보면 과학의 내용을 이런저런 형태로 쉽게 풀어쓴 책들이 과거보다 훨씬 더 많아졌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이며, 저명한 과학자들이 나서 일반인을 상대로 강연을 하거나 각 지역별로 어린이나 청소년을 주 대상으로 하는 과학 축전들이 열리는 빈도도 과거에 비해 부쩍 잦아졌다. 또한 많은 과학기술 관련 단체나 기관의 웹사이트에서도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공간을 별도로 두고 있다.
이런 변화가 나타난 배경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을 터이다. 먼저 2-3년 전부터 문제로 부각된 '이공계 위기' 담론을 꼽을 수 있다. 한참 과학에 관심을 가져야 할 청소년들이 어렵고 딱딱한 과학의 내용에 흥미를 붙이지 못하면서 이공계 진학률이 떨어졌다는 식의 설명이 설득력을 얻은 것이다(이것이 '이공계 위기'에 대한 적절한 해법인가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러한 당장의 이유 말고 또다른 하나의 배경에 주목해 보려 하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과학기술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의 증가이다.
과학기술 관련 갈등의 증가가 과학대중화 담론으로 연결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약간 설명이 필요할 듯싶다. 이는 핵, 환경, 생명공학, 정보 프라이버시 등 과학기술과 관련해 최근 자주 발생하고 있는 사회적 논쟁들을 과학자나 정책결정자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들 정책'전문가' 집단은 과학기술 문제에 관한 대중논쟁이 일어나는 이유를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무지'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즉, 일반대중은 과학기술에 대해 '뭘 잘 모르는' 상태에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특정한 과학기술의 도입이나 관련 시설의 입지를 반대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핵폐기장 부지 선정이나 인간 배아복제 허용 여부를 둘러싸고 벌어진 최근의 논쟁들에서 과학자나 정책관료들이 보여준 반응은 이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러한 상황의 타개를 위해 과학기술의 내용을 일반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과학대중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통해 '불필요한' 과학기술 대중논쟁이 미연에 방지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과학기술학(STS)의 한 세부분야인 대중의 과학이해(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의 최근 연구성과들에 따르면, 일견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사고방식에는 수많은 허점들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일반대중이 교과서적인 과학지식을 잘 모른다고 해서 그들이 과학에 '무지'하다고 봐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과학 활동은 교과서에 나오는 잘 정의된 일군의 지식들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실행중인 과학은 다양한 불확실한 요소를 그 속에 포괄하는 활동이며, 또한 오늘날의 과학은 단순한 지식체계가 아니라 하나의 강력한 사회제도로서 영향을 미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일반대중의 과학 이해는 과학 활동에 내재한 불확실성에 대한 이해, 사회제도로서의 과학에 대한 이해 등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으며, 이런 점에서 일반대중이 과학에 반드시 '무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대중의 과학이해에서는 많은 경우 '지식'의 측면보다 '신뢰'의 측면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다. 이는 곧, 과학기술에 관한 지식의 양이 그것에 대한 대중의 태도를 결정짓는 것이 아님을 말해 준다. 즉, 과학기술과 이를 둘러싼 사회제도들에 대해 대중의 신뢰를 궁극적으로 얻어내지 못하는 이상, 과학대중화를 통해 아무리 많은 지식을 전달한다고 해도 특정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반대와 거부감은 수그러들지 않으며 과학기술 논쟁을 '해결'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영국을 강타한 광우병 파동이나 유전자변형(GM)식품을 둘러싼 최근의 논쟁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과학대중화를 통해 과학적 소양(scientific literacy)의
증대를 이룸으로써 장기적으로 과학기술과 관련된 사회적 논쟁을 예방 내지
제거하겠다는 생각은 정책전문가들의 희망사항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그러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지식의 증대가 아닌 신뢰의 증대가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뢰의 증대를 위해서는 더 많은 위로부터의 대중화나 일방적
홍보가 아니라 더 많은 아래로부터의 참여와 권한 이양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과학대중화 활동을 지원하는
대신, 더 많은 참여의 기회를 만드는 방향으로의 전환을 꾀하는 것이 아닐까?
출전: ≪KAIST신문≫ 2004년
11월 3일자 [http://www.kaisttimes.com/view.asp?gisa_number=30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