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에서 과학 관련 담론의 유통은 학술적 차원과 대중적 차원, 그 어느 쪽을 보더라도 그리 썩 활성화되어 있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 소통 공간, 즉 글을 써서 발표하고 이를 매개로 토론이 오갈 수 있는 마당을 제공하는 지면의 상대적 부재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흔히 과학기술학(STS)으로 총칭되는 학제적 분야들의 발전은 한국에서 아직 일천한 수준이며 제도화의 정도도 낮아, 관련 학술지의 수도 많지 않거니와 그나마 『한국과학사학회지』를 제외하고는 창간 후 1-2년 지난 것이 대부분인 형편이다. 또한 '과학대중화'를 명시적으로 내세운 교양서나 잡지들을 제외하면 과학 관련 담론이 유통될 수 있는 대중적 지면은 그야말로 손꼽을 정도이며, 주류 언론매체들의 무관심 역시 이에 한몫해 왔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런 상황에서 그간 『자연과학』이 그려 온 궤적은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이 글을 읽을 이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자연과학』은 애초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동문들을 위한 '소식지'로 첫 발을 디뎠다. 그러나 1998년 가을에 나온 5호부터는 '과학전쟁'을 필두로 흥미로운 특집들을 연이어 기획해 단순한 소식 전달 차원을 뛰어넘은 과학 관련 담론의 소통 공간과 논쟁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자임해 왔다. 평자는 그간 이어졌던 '과학대중화' '과학과 윤리' '과학과 종교' '과학과 예술' 등의 특집들이 해당 주제에 대한 좋은 읽을거리를 제공함과 동시에 학술적 토론의 활성화에도 기여한 측면이 컸다고 생각하며, 이런 평자의 견해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믿는다.

이번에 궁리에서 새로 나온 이 책은 그간의 『자연과학』의 특집 중 '과학과 윤리' '과학과 종교'에 포함되었던 글들을 엮어 만든 것으로, 『자연과학』의 독자층을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동문들에게서 일반 독자층까지로 넓히고자 하는 시도인 셈이다. 이 책은 원래의 특집에 실렸던 글들 을 '자연과학 연구의 윤리' '현대 사회 속에서의 자연과학' '과학과 종교의 관계' '과학과 종교의 대화' '종교는 인간 복제를 어떻게 보는가'의 5부로 재구성하면서 그 중 1부에 편자의 글 한 편을 새로 덧붙였다. 책의 구성은 "비슷한 주제에 관하여 출간된 그 어떤 책보다 폭넓은 분석을 담았다"(p. 9)는 편자의 자부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분야과 상이한 입장의 필진들을 망라하고 있어, 과연 지금의 시점에서 '과학·종교·윤리의 대화'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의 출발점으로 크게 의미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편자는 서문에서, "때로는 서로 동의하고 또 때로는 서로 부딪[치는] . . . 이 모든 견해를 한데 묶어 한목소리를 내도록 노력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서로 다른 목소리 모두에 귀를 기울일 때"(p. 9)라고 생각한다는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고, 이런 편자의 견해는 책 전체의 구성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평자는 이런 견해에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원래 『자연과학』의 특집 글들을 단순히 재배열하는 데 그친 책의 구성이 지나치게 평면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평자는 책의 1부와 3부에 글을 쓴 필자들이 해당 특집에 실린 다른 글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상당히 궁금했는데, 자신과 입장을 달리하는 글에 대한 다른 필자의 짧은 논평과 (가능하다면) 원 필자의 재논평을 특집 글과 나란히 실었더라면 훨씬 더 입체적인 구성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책의 4부와 5부에 실린 글들은 다양한 종교들 ― 전통 종교와 무속까지를 포함하는 ― 이 환경, 생명윤리, 인간복제 등의 '현대적' 쟁점들에 관해 견해를 밝힌다는 점에서 이채롭긴 했지만, 다양한 견해들의 충돌이 두드러진 1, 2, 3부와 달리 개별 종교의 입장을 병렬적으로 제시하는 데 그침으로써 책의 유기적인 구성에는 별반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년간의 『자연과학』의 성과물이 단행본 형태로 출간된 것은 평자에게 크게 반가운 일이었다는 점을 꼭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과학대중화' '과학과 예술'과 같은 다른 특집들(그리고 『자연과학』이 앞으로 만들어 나갈 또다른 특집들)도 수정, 보완을 거쳐 단행본으로 선보이기를 기대해 본다.
 
 

출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소식지 『자연과학』 12호(2002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