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의 신화는 계속된다
- 픽션에 나타난 생명과학 이미지
프랑켄슈타인, 아니 좀더 정확하게는 메리 셸리의 1818년 소설 『프랑켄슈타인』에 나오는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그가 만들어낸 '괴물'은 대중문화 속에서의 숱한 재현을 통해 오늘날 대중의 뇌리 속에 깊이 자리잡게 된 강력한 아이콘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프랑켄슈타인』은 최초 출간 이래 130여 권의 소설, 50편 이상의 연재소설, 40편 이상의 영화, 80회 이상의 연극 상연, 그리고 600편 이상의 만화책(신문만화 제외)으로 각색·번안되어 보이고, 읽히고, 들려졌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프랑켄슈타인은 원작 소설의 핵심은 나름대로 보존하되 그 한계를 벗어나 "제 나름의 삶을 갖는" 하나의 '신화'로 자리잡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삶의 전 영역에서 '응용'되는 일종의 보편화된 개념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신화화의 결과, 많은 사람들은 정작 원작 소설인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고, 그것이 어떤 맥락 속에서 배태되었는지, 또 그런 텍스트와 맥락의 상호작용이 어떤 현재적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 셸리에 대한 최근의 연구들은 바로 이런 점에 주목하였는데, 특히 『프랑켄슈타인』을 가능케 한 당시의 '과학적' 맥락을 자세히 밝혀내고 있다. 이에 따르면 불과 20세에 불과했던 셸리가 당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고 후대에까지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 소설을 쓸 수 있게 된 것에는 당시의 '과학' 연구 ― 특히 실험생물학(experimental biology)의 발전 ― 에 대해 그녀가 폭넓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녀는 "언젠가 인간이 생명을 창조할 것"이라고 믿었던 에라스무스 다윈(찰스 다윈의 조부)의 이론에 대해 토론하기도 했고,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모델이었다는 설이 제기되기도 한)의 『화학철학원리』도 읽었으며, 시체에 전기자극을 가해 '운동'을 하게끔 만드는 당시 유행했던 '실험'들에 대해서도, 의학교육을 위해 교수형당한 죄수의 시체를 해부하는 관행과 묘지에서 간혹 시체가 도둑맞기도 한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프랑켄슈타인』은 예전부터 존재하던 신화의 요소를 차용한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의 결과이기도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당대의 (생명)'과학' 지식 및 실행과 이를 둘러싼 사회적 우려들이 작가적 상상력과 상호작용한 결과물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프랑켄슈타인』은 생명과학의 발전과 대중매체 속의 이미지가 상호작용하는 이후의 과정에 하나의 중요한 전례를 제공했으며, (부분적으로는) 바로 그 때문에 대중문화의 강력한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1896년에 H. G. 웰즈가 쓴 소설인 『모로 박사의 섬』은 19세기 후반의 생명에 대한 기계적 이해, 외과적 처치법의 향상, 그리고 찰스 다윈의 진화 이론이 합쳐져 빚어낸 산물로 이해할 수 있으며, 1932년에 출간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의 아이디어는 실험실에서 생명체를 창조해낼 수 있다고 믿었던 20세기 초 일부 생물학자들의 '프랑켄슈타인적' 사고에 포드주의적 대량생산 방식(컨베이어 벨트로 대표되는)의 도입이라는 사회적 배경이 맞물리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1970년대에 들어오면 DNA를 자르고 다시 붙이는 DNA 재조합
기법의 등장으로 생명체를 유전적으로 조작·변형하여 자연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것이 현실 속에서 가능해졌다. 이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유전자조작된 생명체의 환경방출에 대한 대중적 논쟁을 촉발시켰고,
그 속에서 프랑켄슈타인의 그림자는 새롭게 변형된 형태로 부활했다. 특히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픽션 속에 나타나는 생명과학·공학의 이미지는 과거로부터 익숙한
프랑켄슈타인적 틀과 유전공학으로 인해 새롭게 등장한 쟁점들을 뒤섞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역대 영화화 중에서 셸리의 원작에 가장 가깝다는 평을 들었던
케네스 브래너의 <프랑켄슈타인>(1994), 1980년대초의 고생물 DNA 연구에서
힌트를 얻은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쥬라기 공원』(1992)과 그 영화화(1993),
앞서도 언급했던 웰즈의 소설을 유전공학과 관련된 설정을 빌어 업데이트한
<닥터 모로의 DNA>(1996) 등이 그러한 예들이며, 유전자조작 생물체의 환경방출
위험성에 대한 우려를 표출한 <미믹>(1997), <딥 블루 씨>(1999) 등도
이 틀을 따르고 있다. 『프랑켄슈타인』의 신화는 그것이 담고 있는 메시지와
텍스트-맥락의 상호작용 형태 모두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 참고문헌 △ 주일우, 「프랑켄슈타인,
흔들리는 근대」(1998) △ Jon Turney, Frankenstein's Footsteps: Science,
Genetics and Popular Culture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8)
△ 제레미 리프킨, 『바이오테크 시대』(민음사, 1999)
출전: 『이공대저널』 2001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