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지형도' 속에 나타난 과학자의 역할과 책임
- 미친 과학자 이미지의 사회사
 
 

자, 문제 한가지. 만약 당신에게 종이와 펜을 주면서 과학자의 모습을 직접 그려보라고 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그릴 것 같은가? 추측컨대, 당신이 그린 그 사람은 아마도 남성일 것이고, 안경을 썼고, 흰 가운을 입었으며, 손에 시험관을 들었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으며, 백발이거나 대머리인, 다소 특이한 인상일 것이다. 그림으로 나타낼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은 사회로부터 동떨어져 있고, 사람들에 대해 무관심하며, 비밀스럽고,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며, 심지어는 미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정형화된 과학자의 이미지는 1950년대 이후 각국에서 일반인들, 특히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행된 설문조사에서 공통적으로 반복해 나타났다. 이러한 이미지의 형성에는 대중매체, 그 중에서도 만화나 영화 등의 시각매체에 재현된 과학자의 모습이 큰 영향을 끼쳤는데, 그 모습을 일반화해 흔히 '미친 과학자(mad scientist)'라는 이름으로 부르곤 한다. 미친 과학자의 전형은 만화나 영화의 여러 장르에 걸쳐 광범하게 나타나지만, 그 모습이 가장 두드러진 것은 아무래도 호러 영화 장르라고 볼 수 있겠다. 1931년부터 1984년까지 개봉한 1000여 편의 호러 영화를 분석한 앤드루 튜더의 연구에 따르면, 그 중 1/4 이상이 과학을 재난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 꼽고 있었다고 한다. 즉, 20세기를 관통하는 '공포의 지형도(landscape of fear)'에서 '미쳐버린' 과학과 과학자는 줄곧 빼놓을 수 없는 주역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튜더의 연구에서 흥미로운 점은, 과학과 과학자가 계속 위협적인 존재로 그려져 왔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이미지가 시대 상황에 따라 변화를 겪어 왔다는 사실이다. 그는 미친 과학자의 이미지가 크게 3단계로 변천해 왔다고 분석한다. 첫번째 단계는 미국에서 호러 영화가 본격적인 장르로 자리잡은 1930-40년대로, 1931년에 처음으로 영화화된 <프랑켄슈타인>을 필두로 일군의 프랑켄슈타인 영화들이 제작되면서 미친 과학자 영화의 전성기를 이루었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미친 과학자 '개인'의 행동이 가장 중요했는데, 그들은 원래부터 자신의 목표만을 추구하는 사악한 인물이거나 과학 연구에 지나치게 몰두하다가 정신적으로 '망가진' 인물로 그려졌다. 여기서 과학 연구는 근본적으로 혼란을 야기하고 무자비한 야망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 본성상 생명에 대한 위협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번째 단계인 1950년대에 이르면 문제의 초점은 과학자가 아닌 과학 그 자체로 이동하게 된다. 과학의 지식과 실행은 여전히 '괴물' ― 거대한 개미, 방사선을 먹는 괴물, 고질라, 파리와 합성된 인간 ― 을 만들어낼 수 있는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었지만, 그런 괴물은 미친 과학자의 용의주도한 창조물이 아니라 핵실험 등에 의한 우연한 산물로 그려졌다. 과학자들은 사악하거나 강박적이기보다는 단지 연구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거나 이를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과학은 금기시된 지식으로서 과학자들을 타락시키는 그 무엇이 아니라 보다 일상적인 것이자 그 자체로 불확실하고 위험성을 내포한 일거리로 제시되었다.

마지막으로 과학의 일상화가 더욱 진행된 1970년대 후반 이후의 세번째 단계가 되면 역설적으로 과학과 과학자들의 비중은 크게 감소했다. 이제 과학은 그 본성에 의해 놀라움과 두려움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미치광이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들 중 하나일 뿐으로 인식되었고, 한때 과학자의 지나친 과학적 야심 혹은 지식의 개인적 오용(誤用)의 결과였던 것이 이제는 군대, 정부, 다국적기업과 같은 거대 관료조직의 활동 ― 베트남전에 사용할 비밀 군사무기의 개발, 화학물질의 은밀한 배출에 의한 오염, 문제에 대한 은폐 책략 ― 의 귀결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와 함께 과학 '그 자체'와 과학자들은 무대의 전면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러한 이미지의 변천사는 처음에 제시했던 미친 과학자의 정형화된 모습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다양한 문제들을 제기한다. 호러 영화에서 나타나는 과학(자)의 모습은 여전히 느슨하게나마 '미친 과학(자)'로 통칭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려내는 과학자의 위치와 역할은 과학을 둘러싼 제도적 환경, (과학자를 포함하는) 전문가에 대한 사회의 기대가 변화함에 따라 크게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는 변화한 상황 속에서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의 문제를 아울러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 참고문헌 △ 최정숙·송진웅, 「과학/비과학 전공 예비초등교사의 과학자에 대한 이미지」, 『기초과학연구(대구대)』 15권 1호(1998) △ 스펜서 웨어트, 「미친 과학자로서의 물리학자」(1988) △ Andrew Tudor, "Seeing the Worst Side of Science," Nature, 340 (24 August, 1989)
 
 

출전: 『이공대저널』 2001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