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기술시스템의 진화과정

토머스 휴즈

기술시스템(technological systems)의 정의
 

기술시스템은 그 속에 문제해결에 기여하는 복잡다단한 구성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구성요소들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임과 동시에 사회를 형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술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들로는 우선 유형(有形)의 인공물들(physical artifacts)이 있는데, 예컨대 전기조명 및 공급 시스템에서 터보 발전기나 변압기, 송전선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기술시스템은 생산공장이나 설비 회사, 투자 은행과 같은 조직(organization)들 역시 그 속에 포함한다. 그리고 기술시스템은 흔히 '과학적'인 것으로 딱지가 붙여진 요소들, 즉 책이나 논문, 대학의 강의나 연구 계획 등도 포괄하고 있다. 규제 법률과 같은 법적인 장치들도 역시 기술시스템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심지어는 석탄 광산과 같은 자연자원까지도, 그것이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시스템 내부에서 기능하도록 틀지워지기 때문에 역시 시스템의 구성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다.

시스템의 구성요소로 기능하는 유형, 무형의 인공물들은 다른 인공물들과 상호 작용하며, 이 모두는 시스템 전체의 목표에 직접적으로, 혹은 다른 구성요소들을 통해서 기여하게 된다. 만일 하나의 구성요소가 시스템에서 제거되거나 그 성질이 바뀐다면 시스템 내부의 다른 요소들도 그에 따라 성질이 바뀌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전기 조명/공급 시스템에서 저항이나 부하의 변화는 전송, 배전, 발전 파트의 구성요소들에 이를 보상하기 위한 변화를 가져온다. 그리고 투자 은행의 전략 변화가 전기기구 생산업자의 판매행위에 영향을 미친다는 반복되는 증거가 있다면, 이 둘은 체계적인(systematic) 상호관계를 갖는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즉, 어느 한쪽의 전략 변화가 다른 쪽의 전략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예컨대 투자 은행이 어떤 특정한 생산업자가 발전소들을 매수하는 것에 체계적으로 자금을 지원한 후, 생산업자 측과 회사를 공동 소유하고 겸직 임원진을 둘 수도 있다. 전기공급 시스템 내부의 (유형의) 인공물들이 직류전기(dc)에서 교류전기(ac)에 맞게 바뀐 것과 거의 같은 시기에 기술학교의 교과과정의 강조점이 직류에서 교류의 연구 쪽으로 넘어갔다면, 이 둘의 사이에도 역시 체계적인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여러 경로를 통해 설명될 수 있는데) 강의하는 교수들이 설비회사나 전기기구 생산업자의 정규적인 상담역일 수도 있고, 기술학교의 졸업생들이 공장의 엔지니어나 관리책임자가 되었을 수도 있으며, 공장의 관리책임자나 엔지니어가 기술학교의 이사진으로 옮겨왔을 수도 있다.

기술시스템의 구성요소들은 시스템 공학자(system builder)들과 그 조력자들에 의해 발명되고 개발되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구성된 인공물들(socially constructed artifacts)이 된다. 전기 조명/공급 시스템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발전기와 송전선뿐만 아니라 전기기구 생산회사나 설비 지주회사와 같은 조직적 형태까지도 발명하고 개발해 냈다. 폭넓은 경험을 지닌 재능있는 시스템 공학자들은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조직까지도 발명해 낼 수 있었지만, 시스템이 발전해 나감에 따라 이 책임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나누어 맡게 되었다. 시스템 공학자가 갖는 우선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는 다양함으로부터 단일함을, 다원주의에 맞서 중앙집중화를, 혼란으로부터 일관됨을 구성해 내고 강제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러한 구성은 종종 그 대신에 쓰일 수 있는 시스템의 파괴를 수반한다. 구성작업을 하고 있는 시스템 공학자들은 존 로(John Law)가 말한 "불균질적 엔지니어(heterogeneous engineers)"와 유사하다.

기술시스템의 구성요소들은 서로 상호작용하므로 그 각각의 특성은 시스템 전체 속에서만 제대로 파악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직 도표에서 볼 수 있는 전기조명과 전력설비 회사의 관리구조는 시스템 내부에서 기능하는 하드웨어나 인공물의 특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반면, 기술시스템 내의 관리자들은 종종 관리의 구조나 그 조직적 형태를 뒷받침하는 기술적 요소들을 선택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기업의) 관리구조는 시스템 내에서 발전소의 특정한 경제적 고려(economic mix)를 반영하며, 발전소에서 행해지는 여러 가지 고려들을 늘어놓아 보면 이는 관리구조와 유사하다. 공장에서의 기술적 시스템(technical system)의 구조는 공장의 사업전략과 상호작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유사한 구조와 전략들이 기술시스템을 구성하며 그것의 스타일에 기여하기도 한다.

보통 '사회적'인 것으로 파악되는 조직적 요소들 역시 기술시스템 내에서 시스템 공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인공물(artifact)이기 때문에, 사회적인 요인들을 기술시스템의 환경, 혹은 그것의 맥락이라고 부르는 통상의 관습은 피해야 할 것이다. 이것의 함의는 학자들이 '기술의 사회적 맥락'이라거나 '기술변화의 사회적 배경'이라고 말할 때 적용된다. 일반적으로 기술시스템은 시스템 관리자의 통제 아래 놓이지 않은, 다루기 어려운 요인들을 그 주변환경으로 갖고 있는데, 이 요인들이 조직적인 성격의 것들은 아니다. 그리고 주변환경 속의 한 요인(예컨대, 에너지 공급)이 시스템의 통제 아래에 놓이게 된다면, 그것은 시스템의 여타 구성요소들과 상호관계를 갖는 시스템의 구성요소가 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술시스템은 주변환경을 점차로 시스템 속에 융합시켜 넣게 되고, 이를 통해 자유경쟁시장과 같은 불확실성의 원천들을 제거해 버린다. 아마도 시스템 통제에 있어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전혀 주변환경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닫힌 시스템의 경우일 것이다. 닫힌 시스템, 혹은 주변환경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시스템의 경우, 관리자들은 불확실성과 '자유'를 제거해 버리기 위해 관료제(bureaucracy)와 동일작업의 반복(routinization), 그리고 탈숙련화(deskilling) 등에 의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시스템 관리자들의 특징인, 알려진 사실로부터의 일반화(extrapolation)에 의지한 예측이 보다 더 보다 현실에 가까와질 수 있다.

한편, 열린 기술시스템에는 두 가지 종류의 주변환경이 관계한다: 즉, 기술시스템에 영향을 주는 종류와 기술시스템에 의해 영향을 받는 종류가 그것이다. 이 중 어느 경우에도 시스템과 환경간의 상호작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일방적인 영향만이 있을 뿐이다. 시스템에 영향을 주는 환경적인 요소들은 시스템의 통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시스템의 구성요소들로 간주될 수 없다. 그리고 시스템에 의존하는 환경적 요소들 역시 시스템과 상호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시스템의 구성요소로 볼 수 없다. 화석연료의 공급은 전기 조명/공급 시스템이 그것에 의해 영향을 받는 환경적 요소의 예이다. 전기기구 생산업자가 전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설비회사의 경우에는, 만일 그것이 생산업자 측의 전략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고 단지 생산물만 받아와야 한다면 시스템에 의존적인 환경적 요소의 일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소유관계가 의존성의 확실한 척도는 아닌데, 왜냐하면 생산업자가 설비에 맞추어 생산할 물건들을 설계하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소유권이 생산업자에 있는 설비회사는 시스템 내부에서 상호작용을 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기술시스템은 이용가능하고 적절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문제를 해결하거나 목표를 달성한다; 여기서 '문제'란 유용하거나 바람직하다 ― 적어도 기술시스템을 설계하거나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 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물질세계를 재조직화하는 것과 가장 큰 관련이 있다. 하지만 풀어야 할 문제가 해답으로서의 기술시스템보다 더 나중에 나타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전기설비 회사가 광고나 여타의 판매전략을 통해서 전기수요가 낮은 시간대에 주로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가정용 전기기구의 필요를 촉진할 수도 있다. 여기서 제시된 문제풀이 시스템(problem-solving system)으로서의 기술의 정의는 부분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예술이나 건축, 의학, 심지어는 유희에 있어서의 문제풀이와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제한을 둠으로써 촛점을 맞추고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즉, 기술은 보통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물질세계를 재조직화하는 것과 관련된 활동이다.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기술을, 문제풀이를 위해 예비된 "상비적인 준비물(standing reserve)"이자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으로 이용가능하도록 세계를 조직화하는 활동으로 정의하였다. 세계를 조직화하고 그럼으로써 그것의 본질을 밝히려는 이러한 인간의 도전 활동을 하이데거는 '틀지우기(enframing)'라고 불렀다.

기술시스템은 인공물 및 인간들로 구성된 운전자(operator)들에 의해 실행되는 통제의 한계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 전기 조명/공급 시스템에서 예를 들자면, 통신과 통제를 위한 인공물들을 갖추고 전력전송 담당자들을 두고 있는 전력전송본부(load-dispatching center)는 시스템 내부의 발전소나 송전·배전선을 관리하는 주요 통제 본부로서의 구실을 한다. 하지만 전력전송본부는 설비회사의 관리구조까지를 포함하는 위계적 통제시스템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그 관리구조는 다시, 다른 설비회사나 은행, 생산업자, 심지어 규제기구까지를 그 속에 포괄하는 지주회사(holding company)의 통제에 종속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또 전기설비회사는 한 지역을 포괄하고 중앙집중적으로 통제되는 전기 조명/공급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다른 종류의 설비회사들과 상호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지역 전력시스템은 종종 석탄 채광 회사와 실제적·조직적으로 통합되어 있으며, 전력과 전기조명을 사용하는 생산공장과 통합되기도 한다. 이런 일은 양차 대전 사이의 루르(Ruhr) 지역에서 흔한 일이었다. 시스템들은 (마치 러시아의 부활절 달걀처럼) 위계적으로 일련의 시스템들과 하위시스템들의 반복되는 유형 속에 위치하게 된다.

발명가들, 산업체연구소에서 일하는 과학자들, 엔지니어들, 관리자들, 재정담당자들, 노동자들은 시스템 내에 존재하는 구성요소이긴 하지만 인공물은 아니다. 이들은 시스템 공학자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스템 내부의 개인들과 집단들은 인공물이 갖고 있지 못한 일정정도의 자유를 갖는다. 하지만, 하지만 현대의 시스템 공학자들은 시스템 내부의 노동자들이나 행정직 종사자들의 자발적인 역할을 축소시키기 위해서 관료화, 탈숙련화, 반복화를 추진하는 경향을 가져 왔다. 20세기 초반에 프레드릭 테일러(Frederick W. Taylor)는 자신의 과학적 관리 프로그램(scietific-management program)을 통해서 노동력을 마치 생산체계 내부의 생명이 없는 요소인 양 취급하면서 그것의 조직화를 시도했다. 보다 최근에 몇몇 시스템 공학자들은 노동자들에 시스템 내부의 노동의 요소들을 정의할 기회를 주는 시스템을 고안하였다. 여기서 자발적인 행동의 기회는 노동자들이 시스템 내부에서 기능할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의 기능을 정의할 때 생긴다. 기술시스템 내에서 사람들이 행하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기능은, 시스템을 발명하고, 고안하고, 발전시키는 명시적인 역할을 일단 접어둔다면, 시스템의 작동과 시스템의 목적 사이의 되먹임 고리(feedback loop)를 완성시키고 그 과정을 통해 시스템 작동시의 오류들을 교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시스템 내에서 사람들이 누리는 자유의 정도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틀에 맞춰 행하는 활동과는 반대로, 기술시스템의 성숙도나 규모, 혹은 자율성에 의해 좌우된다 (이는 뒤에 보여질 것이다). 오래된 시스템은 나이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점점 적응능력이 떨어지지만, 시스템이 반드시 계속 약해지거나 자취를 감춰 버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높은 모멘텀(momentum)을 지닌 대규모 시스템은 사회 속의 다른 시스템이나 집단이나 개인들에게 다소 약한 결정론(soft determinism)적인 영향을 행사할 수도 있다.

기술시스템의 발명가들, 조직가들, 관리자들은 대체로 위계적인 조직을 선호하기 때문에 시스템은 시간이 갈수록 위계적 구조로 향하는 경향을 갖는다. 따라서 하나의 시스템을 정의하고 묘사하려는 사람은 관심의 대상이 되는 분석의 수준, 혹은 하위시스템의 수준을 미리 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예를 들어, 상호작용하는 유형(有形)의 인공물들을 시스템이라 지칭할 수도 있고, 인공물들 및 상호작용하는 조직을 합쳐서 그렇게 부를 수도 있다. 전기공급 시스템에서 터보 발전기는 터빈이나 발전기 등의 구성요소를 갖는 시스템으로 볼 수 있다. 한편 터빈이나 발전기 같은 인공물들은 다시 그 속에 구성요소들을 갖는 시스템으로 분석될 수 있다. 따라서 시스템을 분석하는 사람들은 다음을 명백히 언급하거나 적어도 마음속에서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 즉, 관심의 대상이 되는 시스템은 그 자신의 하위시스템들을 포괄하는 하나의 시스템일 수도 있고 하위시스템들일 수도 있다. 대규모 기술시스템의 분석에서는 하위시스템들을 따로 떼내어 파악한 후, 그 각각을 이해와 분석의 편의를 위해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일이 종종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식의 분석은 '실재'라는 구조물을 부숴버리게 되고, 그 결과 시스템의 작동에 대한 부분적인(게다가 종종 왜곡된) 분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위계적인 시스템을 정의하고 묘사하려는 사람이 자신의 분석대상을 유형의 인공물에서부터 세계체제(world system)에 이르는 분석 수준 중에서 무엇으로 정하는가 하는 문제는 분명히 정치적인 것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전기 조명/공급 시스템이 외부조건이나 사회적 비용을 분석의 대상으로부터 제외시키는 식으로 정의될 수도 있다. 공학도들을 위한 교과서들은 종종 기술시스템을 기술적(technical)인 구성요소들로 한정시키며, 따라서 학생들에게 시스템의 성장과 관리의 문제가 깔끔하게 경계지어질 수 있고, 종종 경멸적으로 '정치적'이라는 딱지가 붙여지는 문제들은 그것으로부터 제외된다는 잘못된 인상을 남기고 있다. 한편 생산시스템을 다루는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종종 기술적인 요인들을 외재적인 것으로 취급한다. 그리고 몇몇 사회과학자들은 분석과 추상의 수준을 지나치게 끌어올려 시스템의 기술적(technical) 내용이 무엇인가는 거의 문제삼지도 않는다.

하나의 기술시스템은 그 입력과 출력을 갖는다. 종종 이 입출력은 그 전체가 하나의 이름 아래 포괄되기도 한다. 예컨대, 전기 조명/공급 시스템에서는 열 혹은 기계적 에너지가 일차적인 입력이고 전기 에너지가 그에 대한 출력으로 간주될 수 있다. 시스템 내에는 하위 시스템들이 내부적인 입력과 출력, 혹은 엔지니어들이 인터페이스(interface)라고 부르는 것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시스템 내에서 전기기구 생산회사는 시스템 내의 전기설비회사로부터 전기에너지를 (그 에너지원으로) 취하고, 전기설비회사에 발전 장비들을 공급한다. 마찬가지로 전기기구 생산회사는 전기설비회사의 이윤으로부터 수입을 얻을 수도 있고, 설비회사에 장비를 판매함으로써 수입을 얻을 수도 있으며, 이를 다시 설비회사에 재투자할 수도 있다. 이 양자는 설계와 실제작동이라는 목표에 장비들이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두고 정보를 교환할 수도 있다. 투자은행은 생산회사나 설비회사에 대한 투자로부터 이윤을 얻을 수 있으며, 다시 이 회사들에 투자할 수도 있다. 전기 조명/공급 시스템에 대한 재정적 혹은 기술적(technical) 정보들이 상호교환될 수도 있다. 위에 주어진 예들에서, 각 회사들의 지휘·관리·통제를 담당하는 임원진들은 서로 중복되어 있을 수도 있다.
 

진화의 유형(Pattern of Evolution)
 

현대의 대규모 기술시스템들은 다소 느슨하게 정의된 하나의 유형을 따라 진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수많은 시스템들의 역사, 특히 1870년에서 1940년 사이에 전기 조명/공급 시스템의 역사는 이 글에서 묘사된 진화의 유형들을 잘 보여 준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대부분의(most)"라거나 "대다수(the majority)"과 같은, 정량적인 성격의 표현을 쓰기에는 표본의 수가 충분치 않다. 다만 현대 기술시스템들의 역사에서 추려낸 적절한 사례들 ― 이들 중 많은 부분이 전기 조명/공급 시스템에서 나온 것인데 ― 이 나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예증할 뿐이다. 나는 진화의 유형을 묘사하기 위해 상호관련된 많은 개념들을 사용할 것이다. 예를 들어 역돌출부(reverse salient)의 개념은 이 글에서 사용된 시스템의 개념과 연관시킬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기술적 스타일(technological style)의 개념은 기술이전(technology transfer)의 개념과 관련지어져야 한다. 나는 '모형(model)'이라는 말보다 '유형(pattern)'이라는 용어를 선호하는데, 왜냐하면 '유형'이라는 은유에는 앞서 언급한 다소의 느슨함과 더불어 문제 해결을 향한 경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시된 유형은 19세기 말에 그 기원을 둔 많은 시스템들의 예에서 볼 수 있는, 진화하고 확장해 나가는 시스템들에 적용되는 것이다. 시스템의 복잡성이 증가함에 따라 구성요소의 수나 통제상의 문제들은 증가한다. 통제상의 문제들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면 통제의 위기가 닥치기도 한다. 대규모 컴퓨터의 도입은 이에 대한 부분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시스템이 확장하려는 경향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설명이 주어질 것이다. 반면 역사를 통해 보면 수축하는 시스템의 예도 무수히 많은데, 이들과의 비교·대조를 통해서 시스템의 성장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질 것이다. 시스템을 다루는 역사가들은 찰스 다윈(Charles Darwin) 뿐만 아니라 에드워드 기븐스(Edward Gibbons)의 저작도 참고해야 할 것이다.

진화(혹은 확장)하는 시스템의 궤적은 다음의 행위들이 주된 축을 이루는 일련의 단계들로 나타내어질 수 있다. 즉 ① 발명(invention), ② 개발(development), ③ 혁신(innovation), ④ 기술이전(transfer), ⑤ 성장 및 경쟁, 그리고 공고화(growth, competition, and consolidation). 어떤 시스템이 성숙하게 되면, 그 시스템은 스타일과 모멘텀을 획득한다. 이 글에서 스타일은 기술이전과 관련지어서 논의되며, 모멘텀은 성장 및 경쟁, 공고화를 다룬 절이 끝난 다음에 비로소 논의될 것이다. 기술시스템의 역사에 있어서 여러 단계들은 반드시 순서대로 등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단계들은 서로 겹쳐지거나 거꾸로 진행할 수도 있다. 발명과 개발, 혁신이 있은 후에 다시 추가적인 발명이 있을 수도 있다. 기술이전은 반드시 혁신이 일어난 직후에 나타나야 하는 것은 아니며, 시스템의 역사에서 다른 부분에 나타날 수도 있다. 한번 더 강조하지만, 발명, 개발, 혁신, 기술이전, 성장, 경쟁, 공고화 등의 단계들은 시스템의 역사 속에서 나타날 수 있으며 실제로도 나타나지만, 반드시 이 순서대로 나타날 필요는 없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제시된 일련의 단계들 각각에서 위의 활동들 중 하나 이상이 두드러져 보이기 때문에 하나의 유형을 식별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단계들은 각각의 단계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어떤 종류의 시스템 공학자인가에 따라서도 구분될 수 있다. 발명과 개발 단계에서는 발명가-기업가(inventor-entrepreneur)가 결정적 문제(critical problem)들을 해결하며, 혁신, 경쟁, 성장 단계에서는 관리자-기업가(manager-entrepreneur)가 주요 결정들을 내리고, 마지막으로 공고화와 합리화 단계에서는 (특히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금융자본가-기업가(financier-entrepreneur)와 상담역의 엔지니어들이 종종 시스템의 성장 및 모멘텀과 관련된 결정적 문제들을 풀어 낸다. 기술이전 단계에서는 새로운 환경에의 적응이 어느 정도로 필요한가에 따라서 발명가-기업가나 관리자-기업가 중 어느 쪽이 주도권을 행사하는가가 정해진다. 시스템 공학자들의 작업이 그 성격상 전문가들이 갖는 속성보다는 변화에 기여하는 다양한 일들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나는 이들을 지칭하는 데 '기업가'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여기서 에디슨(Thomas A. Edison)을 발명가-기업가로서의 최초의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체계적으로 발명을 하는 것 외에 그는 자신의 발명이 실제로 사용되기 위해 필요한 관리·재정상의 문제들을 풀어 나갔다. 하지만 청년 발명가로서의 그는 여전히 발명에 뜻을 두고 있었다. 에디슨보다 좀더 전문적이고 전업적인 발명가이자 한편으로 기업가이기도 했던 엘머 스페리(Elmer Sperry)는 관리나 재정의 문제가 자신이 사랑하는 발명들을 실제로 쓰이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 인정하긴 했지만 이를 지긋지긋하게 여겼다.
 

발명(Invention) 단계

지주회사나 발전소, 그리고 백열전구 등은 모두 발명품들이다. 발명가와 관리자, 그리고 금융자본가는 각각 시스템의 구성요소들 중 일부를 발명한다. 발명 활동은 종종 시스템이 따르는 궤적 중에서 발명 단계에서 이루어지지만 다른 단계에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발명은 보수적(conservative)인 것일 수도 있고 파격적(radical)인 것일 수도 있다. 발명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발명들은 파격적인 성격의 것들인데, 이는 이 발명들이 새로운 시스템의 시작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면 보수적인 성격의 발명은 주로 경쟁의 단계나 시스템의 성장 단계에서 두드러지는데, 이 발명들은 기존의 시스템을 향상시키거나 확장시키는 데 기여한다. 파격적인 발명들은 기존 기술시스템 ― 대규모 조직에 의해 지배될 뿐 아니라 그것에 체계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에 의해 재정적으로 뒷받침되는 ― 의 성장에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존의 조직들이 파격적 발명을 양성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파격적(radical)'이라는 말이 통상의 용례에서처럼 '중대한 사회적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파격적인 발명이 보수적인 발명에 비해 반드시 많은 사회적 결과를 낳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쓰인 '파격적인 발명'이라는 말은 기존의 시스템의 구성요소가 되기 어려운 발명을 의미한다.

전문직업적인 독립발명가들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친 기간이 유달리 파격적인 발명이 많은 시기임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이 해낸 발명 중 많은 부분이 주요한 기술시스템들을 새로이 출발시켰는데, 이들은 나중에 대회사들의 수중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난 후 이 시스템들은 안정화되고 모멘텀을 얻었다. 독립발명가들과 나중에 새로운 회사조직에 의해 지배받게 되는 대규모 기술시스템들의 씨를 뿌린 그들의 파격적 발명들의 대표적인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과 전화, 에디슨과 전기 조명/공급 시스템, 찰스 파슨스(Charles Parsons) & 칼 구스타프 패트릭 드 라발(Karl Gustaf Patrik de Laval)과 증기터빈, 라이트(Wright) 형제와 비행기, 마르코니(Marconi)와 무선전신, 안슈츠-캠프(H. Anschutz-Kaempfe) & 엘머 스페리와 자이로콤파스 유도제어 시스템, 페르디난드 폰 쩨펠린(Ferdinand von Zeppelin)과 비행선, 그리고 프랭크 휘틀(Frank Whittle)과 제트 엔진 등등. 전통적으로 앞에 열거된 발명들은 그와 병기되어 있는 발명가들의 업적으로 인정되어 왔지만, 다른 많은 독립발명가들 역시 새로운 시스템의 출발에 중요하게 기여했음을 강조해 두어야겠다. 예를 들어, 독일의 프리드리히 하젤반더(Friedrich Haselwander), 미국의 브래들리(C.S. Bradley), 스웨덴의 요나스 뵌스트룀(Jonas Wenstroem)은 테슬라(Nikola Tesla)와 거의 같은 시기에 다상 시스템(polyphase system)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다; 그리고 영국의 발명가였던 조셉 스완(Joseph Swan)은 비록 백열 전등 시스템 전체를 개발해 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오래 견디는 백열전구 필라멘트의 개발 공적에 대해서만큼은 에디슨과 나누어 가져야 한다.

비록 파격적인 발명들이 새로운 시스템을 출발시키기는 하지만, 이들은 혁신 단계에까지 이르지 못했던 이전 시기의 유사한 발명들을 개량한 것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실패한' 발명들은 역사가들에게 풍부한 탐구의 소재를 제공해 주고 있다. 몇몇의 주요한 기술시스템의 성립에 기여했던 엘머 스페리는 파격적인 것까지를 포함한 자신의 모든 발명이 다른 이들의 이전 시기 업적들을 개량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대다수의 독립발명가들이 과거의 특허를 찾아보는 일에 열중했다는 사실이 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독립적인(independent)' 혹은 '전문직업적인(professional)' 같은 용어들은 '발명가'의 개념에 상당한 복잡성을 부여한다. 산업체연구소 혹은 정부연구소와 같은 조직의 제약에 얽매이지 않음으로써 독립발명가들은 자신들이 발명을 통해 해답을 찾고자 하는 문제들을 폭넓게 선택할 수 있었다. 독립발명가들은 많은 경우에 자기 자신의 연구 설비나 연구소를 갖고 있었는데, 이들은 정부연구소나 산업체연구소의 경우에서와는 달리 기존의 시스템에 얽매여 있지 않았다. 한편, 모든 독립발명가들이 "전문직업적인" 것은 아니었다; 전문직업적인 발명가들은 오랜 기간 동안 상업적으로 성공한 일련의 발명들을 해냄으로써 자신의 발명 활동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했다. 전문직업적 발명가들은 비록 상담의 댓가로 보수를 받긴 했지만, 정기적인 수당을 받는 피고용인으로서의 지위에 있지는 않았다. 벨의 경우에서 보듯 전문직업적이지 않은 많은 발명가들은 몇몇의 주요한 발명들로부터 막대한 수입을 일단 얻은 다음에는 발명가로서의 삶을 그만두고 여생을 편히 즐기는 쪽을 택했다. 엘머 스페리, 엘리후 톰슨(Elihu Thomson), 에드워드 웨스튼(Edward Weston), 토머스 에디슨, 니콜라 테슬라 등의 발명가들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친 긴 기간 동안 계속해서 전문직업적인 발명가로서 남아 있었던 대표적인 예들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왕성하게 활동했던 독립발명가들은 주로 파격적인 발명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그 이유는 한편으로는 명백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모호한 것이기도 하다. 앞에 언급한 바와 같이, 그들은 임무에 묶여 있어 관성적인 움직임이 강한 조직들에서처럼 문제 선택에 있어 제약을 받지는 않았다. 그들은 숙고를 거쳐 회사 내의 공학 관련부서나 산업체 연구소에 있는 연구개발 팀에서 선택할 것 같은 문제들은 피했다. 심리적으로 볼 때, 독립발명가들은 국외인(outsider)으로서의 마음 상태를 지니고 있었고, 주요한 기술적 전환을 이루어냈을 때의 전율에 가까운 기쁨을 추구하였다. 그들은 종종 점진적인 향상이 아닌, 극적인 돌파를 성취해내곤 하였다. 독립발명가인 엘머 스페리의 말을 빌어 보자: "만약에 내가 평생 동안 발전기에만 매달렸다면 아마 그 기계의 효율을 6∼7% 올리는 정도의 작은 기여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기를 필요로 하는 기구 중에는 400∼500% 정도의 효율향상이 가능한 분야들이 많다. 난 차라리 그런 일을 하고 싶다." 그런 돌파를 성취해내기 위해서 독립발명가들은 스스로를 대규모 조직들로부터 떼어 놓으려 노력했다. 그들은 기존 기술에 투자하고 있는 대규모 조직들이 그 성격상 조직의 모멘텀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바로 그 조직들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기술적 세계의 현상태(status quo)에 도전할지도 모르는 그런 발명들을 키워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파격적인 발명은 많은 경우에 있어 노동자들과 엔지니어들, 관리자들의 숙련을 감소시키며, 이미 행해진 재정적 투자를 무화시켜 버리고, 전체적으로 보아서는 대규모 조직 내에서 긴장을 조성한다. 대규모 조직들은 종종 파격적인 발명 제안을 기술적으로(technically) 조악하고 경제적으로 위험하다는 이유를 들어 거부하는데, 사실 이러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그들이 새롭고 파격적인 발명의 속성을 잘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1920년대에 세계 유수의 석유 회사들 중 몇몇은 프랑스의 발명가 유진 줄 오드리(Eugene Joules Houdry)이 제안한, 촉매를 이용해서 가솔린을 정제하는 파격적으로 새로운 방법을 거부하였다. 기존 회사들에 고용된 공학자들은 오드리에 의해 개발된 과정에서 정교한 기술적 세부과정이 빠져 있고 아직 미해결된 공학적 문제들이 남아 있다는 이유를 들어 그들의 거부결정을 정당화하였다. 분명히 그들은 이러한 일이 개발단계에 있는 파격적 발명에 흔히 나타나는 특징이라는 것은 고려에 넣지 않았을 것이다. 1930년대에 혁신적이며 비교적 소규모이고 독립적인 미국 정유회사 선 오일(Sun Oil Company)에서의 개발 과정을 거친 후, 오드리가 개발해 낸 정제과정은 주어진 원유로부터 정제되는 가솔린의 상당 부분을 생산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정유산업 전체의 부러움을 사고 하나의 모델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오드리와 같은 독립발명가들은 큰 기업의 공학 관련부서나 산업체연구소에 있는 발명가나 과학자들에 비해 볼 때 문제 선택에 있어서 더 많은 자유를 갖고 있었지만, 동시에 문제 선택에 더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몇몇의 두드러진 사례에서 보면, 종종 강단에 선 학자들이 19세기 말∼20세기 초의 독립발명가들에게 문제 선택에 대해 조언해 주기도 했다. 찰스 홀(Charles Hall)은 그의 과학담당교수가 "세계는 알루미늄의 실용적 제련법을 개발해 낼 발명가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자극을 받았다. 또 오스트리아의 그라츠 공과대학(Graz Polytechnic)의 한 교수는 니콜라 테슬라에게 후일 다상 전기 시스템로 결실을 맺게 되는 연구를 시작하도록 격려하였다. 한편 뮌헨 공과대학(Munich Polytechnic)의 카를 폰 린데(Carl von Linde) 교수는 자신의 제자인 루돌프 디젤(Rudolf Diesel)에게 문제를 정의해 줌으로써 나중에 이것이 디젤 엔진의 발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코넬 대학(Cornell University)의 물리학 교수인 윌리엄 앤쏘니(William A. Anthony)는 엘머 스페리에게 몇 가지 문제들의 틀을 열거해 주어 스페리의 주요한 첫번째 특허에 도움을 주었다. 이는 학자들이 (독립발명가들처럼) 산업체에 얽매여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기술·과학 문헌들을 널리 접하기 때문에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널리 퍼진 생각과는 달리 발명가들도 자신의 연구성과물을 발표하는 활동을 한다. 그들은 특허출원의 형태로 발표하기도 하며, 특허를 받은 자신의 발명에 대한 설명을 기술저널에 싣기도 한다. 기술논문들은 발명가들에 의해 직접 쓰여지거나 공동작업을 하는 기술저널리스트에 의해 쓰여지는데, 여기에는 발명의 상업적 가치에 대한 인지와 그에 대한 공표도 담겨 있다. 특허출원의 형태를 통해서건, 아니면 기술논문의 형태를 통해서건 간에 발표활동 그 자체는 발명가 공동체에 발명행위가 있었음을 알리는 구실을 한다. 그 결과 공동체 전체는 주의를 요하는 문제들을 인지하게 된다. 하나의 특허나 발명이 어떤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인 경우는 거의 없으며, 따라서 경험있는 발명가들은 발표된 발명행위와 관련된 어떤 근본문제가 (자신이 생각해 낸 방법을 포함해) 다양한 특허출원가능한 방법으로 풀릴 수 있음을 인식한다. 결국 발명가들은 출원되는 특허나 여러 발표물들에 계속해서 보조를 맞추어 감으로써 문제영역을 인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로부터 왜 특허가 일정한 기간에 걸치는 동안 특정한 문제영역 주위에서 많이 나타나게 되는가가 설명될 수 있다.

전문직업적인 발명가들이 문제를 선택하는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회사의 공학관련 부서나 산업체연구소에서 작업하고 있는 문제들을 피하는 과정에서 독립발명가들은 스스로의 문제선택의 폭을 좁힌다. 독립발명가들은 종종 많은 다른 사람들을 좌절시킨 매력적인 문제의 도전을 받아들여 자신의 문제를 선택하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에게 특별한 재능이 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실패한 곳에서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들은 어떤 정해진 필요에 의해서 강하게 추동되기보다는, 문제풀이 그 자체를 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에서 원초적인 즐거움을 느낀다. 발성법 교사이자 청각장애 전문가였던 벨은 음향 현상과 전기 현상간의 유사성을 깨닫고, 전신산업이 요구하는 보수적 성격의 문제인 다중전신기 문제에 집중하라는 친구들과 조언자들의 말을 뿌리치고 '말하는 전신기(speaking telegraph)' 개발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독립발명가였던 엘리사 그레이(Elisha Gray)도 역시 다중전신 문제에 대해 작업하고 있었고 말하는 전신기의 가능성도 발견하였지만, 그는 벨과는 달리 보수적인 결정을 내리고 다중전신 문제에 집중하였다.

독립적인 전업발명가들은 문제 선택의 자유를 갖고 있었지만, 한편으론 조직적인 재정지원의 부담으로부터의 자유라는 그다지 즐겁지 않은 일까지 떠맡아야 했다. 이에 대한 그들의 해결방안은 아주 뛰어난 것이었다. 19세기 말을 전후한 시기에 독립발명가들은 종종 지적재산권과 돈을 서로 맞바꾸었다. 특허가 본질적으로 법적 소송을 걸 수 있는 허가 같은 것으로 인식되고, 대회사들이 독립발명가들을 법적 소송에 끌어들여 재정적 파산으로 몰고갈 정도의 재원을 확보하기 이전의 시기에는, 독립발명가들이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특허의 형태를 빌어 재산으로 전환시킬 수 있었다. 일단 특허를 취득하고 나면, 그들은 자신의 지적 재산권을 다른 이들에게 다른 형태의 재산(주로 돈)을 받고 팔아넘겼다. 종종 발명가와 재정가가 각각 모아 온 특허와 돈을 공동 출자하여 그 특허를 이용하기 위한 회사를 설립하고 주식을 나누어 갖는 경우도 있었다. 민주적인 가치가 널리 퍼진 미국에서는 자수성가한 발명가가 재정가의 부정하게 벌어들인 수입을 끌어들이는 것이 성취에만 눈이 먼 행위로 평가받곤 했다.

1차 대전 이전에 점점 심해지던 군비경쟁(특히 해군 쪽의) 속에서, 발명가들은 이제 개발자금을 얻어내기 위해 정부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비행기, 무선전신, 대포 제어, 그리고 높은 기술수준을 필요로 하는 다른 인공물들을 납품하는 계약을 정부와 맺고 자금을 얻어냈다. 정부는 실험적 설계 수준에 있는 몇몇 모델에 대해 자금을 지원하는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나오는 수입을 가지고 발명가들은 계속적인 개발과정에 투자하였다. 군부 측과 계약을 맺기 위해 많은 발명가들은 재정가들과 제휴하여 작은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 소규모의 회사가 번창하여 발명가가 자신의 발명품에 대한 부담에 얽매이는 경우도 간혹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회사는 망했고 발명가는 다시 독립을 추구해야 하는 상황이 재연되었다. 한편으로 독립발명가들은 기술상담역을 전담하는 회사를 만들거나 자기 자신의(혹은 다른 사람의) 발명품을 개발하는 소규모의 연구개발회사를 조직함으로써 자금을 끌어내기도 했다. 아마도 자금 문제와 발명가의 자유 사이의 화해불가능한 관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발명가가 수년간에 걸쳐 충분한 특허를 확보하고 이로부터 발명에 재투자할 지속적인 수입을 확보하는 경우일 것이다. 투자는 종종 작업장이나 연구실 설비들, 그리고 연구조력자들에게 행해졌는데, 이는 널리 퍼진 신화와는 달리 독립발명가들이 반드시 '고독한' 발명가는 아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파격적인 발명의 여러 측면 중에서 아직껏 문제 선택이나 자금 조달 등의 문제에 비해 연구가 많이 진행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사실 이 부분이 핵심적인 측면인데, 바로 '영감 혹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Eureka!" moment)'이다. 발명과 발견의 심리적 측면에 대해 도움을 줄 만한 문헌들은 많이 있지만, 여기에는 이론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풍부한 발명사례 연구들이 빠져 있다. 발명가들은 자신들의 영감의 순간들을 거의 말로 표현한 적이 없다. 하지만 추적해 봄직한 몇몇의 가능성있는(하지만 아직까지는 탐구된 바가 없는) 화두들은 존재한다. 종종 발명가들은 자신들의 발명을 은유(metaphor)나 유비(analogy)를 써서 설명하곤 한다. '유비'라는 발명품을 통해서 발명가들은 아는 것에서 모르는 것으로 옮아갈 수 있다. 발명가들은 특정한 체계나 과정을 발전시킬 때, 처음에는 그것을 추상적인 개념으로(아마도 시각적인 형태로) 형성하고 나중에 가서 그로부터 일반화된 해답을 이끌어내는 경우가 많다. 발명가들은 이렇게 '유비'라는 개념으로 무장함으로써 이미 해답이 마련되어 있는 문제를 찾아나서는 것이다. 하지만 발명의 바로 그 '순간'에 대한 이러한 단서들은 아직 제대로 연구된 바가 없다. 기술사가들과 기술사회학자들은 창조의 행위, 즉 발명을 탐구하는 것에 있어 심리학자들과 보조를 맞추어야 할 것이다.
 

개발(development) 단계

파격적인 발명은 그것이 성공적으로 개발되면 기술시스템으로 발전하게 된다. 여기서 한 사람의 발명가가 어떤 기술시스템의 성립에서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거의 모든 발명을 해내는 경우가 있다; 나아가 같은 발명가가 자신의 발명이 혁신의 단계에 이르거나 새로운 기술시스템으로 결실을 맺을 때까지 개발과정을 장악할지도 모른다. 만일 한 사람의 발명가가 일련의 파격적 발명들과 그것의 개발 과정 전체를 책임지고 있다면, 그(녀)는 발명가-기업가(inventor-entrepreneur)라는 칭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

개발 단계는 기술의 사회적 구성(social construction of technology)이 명료하게 드러나게 되는 단계이다. 발명을 혁신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을 통해, 발명가-기업가와 그 조력자들은 자신들의 발명에 그것이 실제 세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특성들을 불어넣는다. 하나의 발명은 발명가의 머릿속에서 구성되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환경에서만 기능할 수 있는 비교적 단순한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하여 다양한 요인들과 힘들이 꿰뚫고 있는 복잡한 환경 속에서 기능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변모해 가게 된다. 이를 위해 발명가는 실험(혹은 테스트) 환경을 점차로 복잡하게, 또 그것이 혁신 단계에서 맞부딪히게 될 실제 세계와 점차 비슷해지도록 구성해 간다. 예를 들어 엘머 스페리는 자신이 고안한 자이로스코프를 이용한 선박의 수평유지장치(gyro ship stabilizer)의 개념을 방정식으로 써 본 후에, 그 개념을 단진자와 실험실용 자이로스코프로 구성된 모형 배의 형태로 구체화시켰다. 그런 다음에 그는 발명을 다시 설계하고 그것을 좀더 복잡하게 만들어서 (단진자를 사용할 때는 고려할 수 없었던) 바다나 선박의 실제사정과 관련된 변수들을 보다 많이 고려에 넣은 환경 속에서 실험해 보았다. 시간이 지나자 그 모형은 (스페리의 견해에 따르자면) 실제 세계의 변수들에도 적응가능한 수준의 복잡성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는 미 해군이 제공한 구축함에 자신의 선박 수평유지장치를 설치하여 실험해 보았다. 하나의 발명을 과학적인 추상 수준에까지 단순·간략화시켜 수학 공식이나 모형을 가지고 실험해 봄으로써, 나중에 비용이 많이 드는 실제규모의 실험이나 궁극적인 실제사용을 시도해 보기 전에 소규모의 투자와 실패를 겪어 볼 수 있는 것이다.

독립적인 발명가-기업가들이 자신의 발명 속에 그것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기타 등등의 특성들을 부여한 예는 무수히 많다. 에디슨은 당시 가스등의 비용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있었고, 이는 그 자신의 전기조명 시스템을 (경쟁력을 갖도록) 고안하는 데 있어 깊은 영향을 끼쳤다. 1880년대 초 영국에서 뤼시엥 골라드(Lucien Gaulard)와 존 깁스(John Gibbs)는 변압기를 발명하였는데, 이 변압기는 1882년의 전기조명법(Electric Lighting Act)이 요구하는 대로 출력전압이 변화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의 안정성을 직접 유지해야 하는 비행기 조종사들의 심리적, 생리적 문제들을 주의깊게 고려하여 비행기를 설계하였다. 데이비드 노블(David Noble)에 따르면 디지털 공작기계 시스템은 그 설계 속에 관리자 계층의 이해관계를 담고 있다.

시스템에 다양한 특성들이 부여됨에 따라서 새로운 문제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파격적인 발명을 해낸 발명가-기업가는 개발 단계 전반에 걸쳐서 발명 작업을 계속해야만 한다. 개발 과정에서의 문제선택은 비교적 쉬운데, 이는 개발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이 이미 발명되어 있는 시스템의 구성요소들 사이의 체계적인 관계로부터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개발과정에서 발명가가 구성요소들 중 하나의 특성을 변화시킨다면, 그는 이에 맞추어 관련된 다른 구성요소들의 특성 역시 바꾸어야 할 것이다. 개발 단계에서 이렇게 구성요소들의 특성을 조화시키는 과정은 종종 그 자체로 특허가능한 발명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구성된 특허군(群) 전체는 종종 하나의 복잡한 시스템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대규모 회사에서는 하나의 시스템을 발명하고 개발하는 게 있어 하위프로젝트나 문제들을 해결하는 임무를 다른 종류의 전문가들에게 부여하기도 한다.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 전기회사가 테슬라의 다상(多相) 전력전송 시스템을 개발하는 과정을 보면, 테슬라가 상담역으로 고용되기는 했지만 결국 그 시스템을 실제로 사용되도록 만든 사람들은 웨스팅하우스 사의 재능있는 엔지니어 집단이었다. 물리학자들(특히 대학 내에 자리잡은)은 간혹 엔지니어들보다 더 발명 쪽에 유능함을 보이기도 하는데, 사실 엔지니어들은 발명보다 개발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선호하고 그쪽에 재능을 보이는 수가 많다. 2차 대전 전까지 대학 내의 물리학자들은 상대적으로 조직적인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왔고, 여러 개의 대형 프로젝트들 ― 메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방사 연구소(Radiation Laboratory)와 아더 콤프튼(Authur Compton)의 지휘 아래 있던 시카고 대학의 맨해턴 프로젝트 연구소(Manhattan Project laboratory), 그리고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지휘 아래 있었던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Los Alamos laboratory) ― 이 운영되었던 2차 대전 중에도 이러한 사고틀은 여전히 유지되었다. 반면, 엔지니어들은 19세기 말 이래로 대규모 기업체들과 관련되어 있거나, 혹은 대학 내에 자리잡은 엔지니어들의 경우에는 연구할 문제를 정하는 데 있어 산업체 쪽에 의지하고 있었다.

엔지니어들과 과학자들간의 관계, 그리고 기술과 과학간의 관계는 오랫동안 역사가들(특히 과학사가들)의 관심을 사로잡아 왔다. 하지만 시스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 둘간의 구분은 모호해진다. 공식적으로 과학 영역에서 교육받았고 '과학적'이라는 딱지가 붙여진 연구방법을 사용하려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발명이나 기술개발 쪽에 투신한 사람의 예는 무수히 많다. 공식적으로 과학 영역에서 교육받은 엔지니어들과 발명가들은 그 때 얻은 지식과 방법을 자신이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시스템의 창조 및 개발과 관련된 문제풀이(problem solving)에 감성적으로, 또 지적으로 경도된 사람들은 관료들의 지휘만 없다면 학문분과간 경계를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혁신(Innovation) 단계

이제 혁신 단계에 이르면 기술적으로 복잡한 시스템이 드러나게 된다. 발명가-기업가는 관련된 엔지니어들이나 산업체 과학자들, 그리고 그 생산품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다른 발명가들과 함께, 이미 발명과 개발 과정을 거친 유형의 구성요소들을 엮어 생산, 판매, 서비스 설비회사 등으로 구성된 하나의 복잡한 시스템을 만들어 낸다. 한편 발명가-기업가는 종종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는 대신, 기존의 회사들이 그 생산품을 만들거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들을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치는 기간 동안 대부분의 독립 전업발명가들은 자기 자신의 생산, 판매, 서비스 설비회사를 설립했는데, 이는 파격적인 발명의 경우에 기존 생산회사들이 새로운 기계나 생산과정, 생산조직을 생산에 도입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었다. 독립적인 발명가-기업가들은 자신의 발명과 체계적으로 관련된 생산과정을 도입하고자 했기 때문에 직접 생산에 뛰어드는 편을 택했다. 그들은 종종 생산물뿐만 아니라 그에 적합한 생산과정까지도 발명하고 개발했다. 반면에 만약 그 발명이 보수적인 성격의 것이었다면, 즉 그 본질상 당시에 진행중이던 시스템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면, 그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던 생산회사들은 그 발명을 생산에 투입하는 것에 관심을 보였을 것이다.

예를 들어 조지 이스트맨(George Eastman)은 그 자신과 자신의 파트너인 윌리엄 홀 워커(William Hall Walker)가 같이 발명한 사진 기구에 쓰이는 기계의 발명과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스트맨은 건판 시스템(dry-plate system)을 개발하는 한편, 유리판을 계속해서 젤라틴 감광유제로 코팅시켜 주는 기계를 발명해 1880년에 특허를 받았다. 그리고 난 후 이스트맨은 워커와 함께 사진용 필름과 두루마리 필름걸이 시스템(roll holder system)의 발명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유리판을 사용하던 기존의 시스템을 대체하려 하였다. 나중에 이스트맨은 생산 기계의 설계에 집중하였고 그 동안 워커는 카메라의 발명과 개발에 주의를 쏟았다. 1884년 가을에 두 사람은 필름걸이 기계장치와 필름을 개발함과 동시에 생산 기계를 개발해 냈다. 한편 이스트맨은 자신의 발명 분야의 재능을 코닥(Kodak) 아마추어 사진 시스템의 개발에 필요한 생산 기계를 설계하는 데 바치기도 했다.

에디슨은 생산과 그 활용이 포함된 복잡한 시스템의 도입과정 전체를 장악한 발명가-기업가의 고전적인 사례이다. 에디슨은 그와 관련되어 있었던 발명가들이나 관리자들, 재정가들의 도움을 얻긴 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그 복잡한 사업 전체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있었다. 1882년의 시점에서 에디슨이 세운 회사들의 조직 체계도를 보면 복잡한 기술시스템 전체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 그 회사들 중 몇몇을 들어 보자면, 에디슨의 발명과 특허, 전기조명 시스템의 개발, 그것의 등록(licensing) 등에 재정적인 지원을 하기 위해 세워진 에디슨 전등 회사(Edison Electric Light Company), 에디슨이 만든 최초의 도시 전기조명 설비회사인 뉴욕 에디슨 전기조명 회사(Edison Electric Illuminating Company of New York), 에디슨의 특허에 근거해 발전기를 생산해 내는 에디슨 기계 생산회사(Edison Machine Works), 에디슨의 시스템에 필요한, 지하에 묻을 도선을 생산해 내는 에디슨 전기 튜브 회사(Edison Electric Tube Company), 그리고 에디슨 전구 생산회사(Edison Lamp Works) 등이 있다. 에디슨이 백열전등 시스템의 발명에 착수했을 때에는, 그 자신도 후에 사업이 이렇게까지 복잡해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스트맨이나 에디슨과 같은 시스템 공학자들은 자신들의 통제 하에 있는 시스템의 규모를 키우고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시스템의) 주변환경을 축소시키려고 노력한다. 에디슨 시스템의 경우 그것이 혁신 단계에 이르자, 에디슨 전등 회사가 특허를 내어 에디슨 관련회사들에서 제조한 설비들을 주로 이용하던 곳인 전기설비회사들이 시스템 내부로 통합되었다. 특허 보유 회사(에디슨 전등 회사)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일군의 투자가들이 최초의 에디슨 도시 설비회사인 뉴욕 에디슨 전기조명회사의 소유권마저도 장악하였다. 에디슨 회사들의 소유주들은 다른 전기 설비회사들에도 각종 설비를 제공해 주는 댓가로 회사의 주식을 받아 소유권을 장악했고, 결국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소유·통제되는 도시 설비회사들을 포함하는 에디슨 제국을 건설했다. 나중에 독일의 대규모 생산회사들도 이러한 방침을 따랐다. 생산회사들이 원료공급과 상품수요를 담당하는 조직들을 흡수하는 이러한 과정에서 보면 시스템의 외부와 내부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어진다. 미셸 깔롱(Michel Callon) 역시 행위자 그물망(actor network)에 대한 분석한 자신의 글에서 이러한 이분법을 비판한 바 있다.

일단 혁신 단계가 지나고 나면, 발명가-기업가들은 점차 활동의 중심적 위치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 중 몇몇은 자신들의 특허에 근거해 설립되어 성공한 회사에 남아 있을 수도 있지만, 보통의 경우 그들은 사업에서 관리자-기업가(manager-entrepreneur)로 변신하지는 못한다. 50여년에 걸쳐 모두 696개의 특허를 취득한 미국의 중요한 발명가 엘리후 톰슨(1853-1937)의 예를 들어 보자. 그는 자신의 특허에 기반해 설립된 전기기구 생산회사인 톰슨-휴스턴 회사(Thomson-Houston company)의 연구책임자가 되었다. 나중에 그는 톰슨-휴스턴회사와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 회사(Edison General Electric company)가 1892년에 합병해서 설립된 제너럴 일렉트릭 회사(General Electric company, GE)에서 수석연구자이자 발명가로서 일했다. 하지만 톰슨의 관점은 여전히 발명가의 그것이었고, 톰슨과 제너럴 일렉트릭을 장악한 관리자-기업가들 간의 관점대립은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해졌다. 초기 GE의 수뇌였던 찰스 코핀(Charles A. Coffin)의 경우에서 보듯이, 이 둘간의 외교적인 협상을 통해 연구소와 회사 본부와의 갈등이 조정될 수 있었다. 혁신 단계를 지나고 나면 점차로 관리자-기업가가 발명가의 지위를 대체하여 주된 역돌출부(reverse salient)에 대응하고 그와 관련된 결정적 문제(critical problem)들을 풀어내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기술이전(Technology Transfer)

기술이전은 기술시스템이 진화해 나가는 과정 중 어느 단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혁신 단계 바로 다음에 기술이전이 일어날 때 기술이전과 관련된 가장 흥미로운 측면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기술시스템이 시간이 지나면서 모멘텀을 얻음에 따라 발생하는 복잡한 문제들이 이 시기에는 없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하나의 시스템은 그것이 특정한 어떤 시간과 장소에서 살아남는 데 적절한 특성들을 그 속에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다른 시간이나 다른 환경 속으로 이전시키는 것에는 종종 여러 겹의 어려움이 생기게 된다. 하나의 시스템은 그것이 이전될 때 다른 시간과 장소의 특성에 적응(adaptation)할 필요가 있으므로, 여기서 기술이전과 적응의 개념은 상호 연관된다. 기술이전을 분석하는 역사가들은 적응의 개념 외에도 기술이전 양식(modes of transfer)에 강조점을 두어 왔다.

이러한 적응과정이 내포하는 여러 측면들은 변압기의 초기 역사에서 나온 에피소드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뤼시엥 골라드와 존 깁스는 영국의 전기조명 관련입법에 맞는 특성을 지닌 변압기를 발명해 냈다. 그들은 수 차례의 테스트를 거친 후, 1880년대 초에는 자신들의 변압기가 영국에서 앞으로 영구히 사용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1884년에 잘 알려진 헝가리의 전기기구 생산회사인 간쯔 앤 컴퍼니(Ganz and Company)에 소속된 두 명의 엔지니어들 ― 오토 티투스 블래티(Otto Titus Bl?thy)와 찰스 지퍼놉스키(Charles Zipernowski) ― 이 이탈리아 뚜랭(Turin) 시의 전시회에서 그 변압기를 보게 되었다. 헝가리에는 골라드-깁스의 기구에 포함된 복잡한 특성을 필요로 하는 전기 관련입법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이 변압기를 간쯔 사의 시스템과 헝가리의 조건에 맞게 다시 설계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탄생한 변압기는 세계에서 가장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변압기라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러한 호평은 잘못된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그 변압기는 헝가리의 조건에 맞는 것이지 전세계 어느 곳에나 잘 맞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역시 웨스팅하우스 사가 골라드-깁스의 변압기 얘기를 전해 듣고 그 특허를 사들인 후 그것을 미국의 조건에 맞게 적응시켰다. 웨스팅하우스 사는 독립발명가인 윌리엄 스탠리(William Stanley)를 고용하여 골라드-깁스의 변압기에 근거해 전력전송에서의 변압기 시스템을 개발하도록 하였다. 이어서 웨스팅하우스 사의 공학 담당자들은 (미국적인 특성인) 대규모 시장을 고려하여 변압기와 그 생산과정을 대량생산에 맞도록 함으로써 그 시스템에 미국적인 스타일을 부여했다.

골라드-깁스 변압기의 사례는 기술이전과 그 적응에 있어서 해당국가의 입법과 시장이 하나의 결정적인 요소로 기능함을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지리학적인 요소와 사회적인 요소도 역시 중요하다. 골라드와 깁스의 경우에는 이전되고 적응되는 것이 유형의 물체(즉, 변압기)였다. 반면, 기술시스템 전체가 이전되는 경우에는 조직적인 요소도 역시 이전된다. 기술이전에는 성공한 것과 실패한 것 모두를 포함하는 다양한 경우들이 있을 수 있다. 이전되는 요소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또 이전되는 기술시스템이 그 발전에서 어느 단계에 와 있느냐에 따라서 이전되는 것이 생산품일 수도 있고 어떤 회사 전체일 수도 있으며, 이전의 주체도 발명가나 엔지니어, 관리자, 혹은 그 밖의 전문인 등으로 바뀔 수 있다.
 

기술 스타일(Technological Style)

기술이전이라는 주제에 대한 탐구는 손쉽게 '기술 스타일'의 문제로 이어진다. 적응이라는 것이 상이한 환경에 대한 일종의 대응에 해당하며, 환경에의 적응은 결국 스타일로 귀결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는 당연할 것이다. 건축사가들과 예술사가들은 오랫동안 스타일의 개념을 사용해 왔다. 1915년에 하인리히 뵐플린(Heinrich Woelfflin)이 예술에서 스타일의 발전 문제를 논했을 때, 그는 예술과 건축에서의 스타일이 개인적·국가적 특성을 갖는다고 인정한 바 있다. 반면에 스타일의 개념은 국가적·인종적 특성이나 하나의 시대정신(Zeitgeist)과 무관하게 발전시킬 수도 있다. 요즘에는 예술사가들과 건축사가들이 스타일의 개념을 보다 조심스럽게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쿠블러(G. Kubler)의 말을 빌자면 "스타일이란 마치 무지개와도 같아서, 우리가 태양과 비구름 사이에 잠시 멈추었을 때만 언뜻 볼 수 있을 뿐이고 나중에 무지개를 보았다고 생각되는 장소에 가 보면 사라져 버리고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사가들과 기술사회학자들은 스타일이라는 관념을 사용하는 데 있어 유리한 점을 안고 있다. 이는 그들이 예술사가들과는 달리 오랜 기간에 걸쳐 확립된 스타일의 개념을 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술사의 경우에 '르네상스 전성기 때의 스타일'이나 '바로크적인 스타일' 같이 잘 확립된 스타일들이 존재하면, 이는 당장 눈에 띄는 구별점을 모호하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역사가들이나 사회학자들은 시스템 공학자들이 마치 예술가들이나 건축가들처럼 창조적인 선택의 폭을 갖는다는 점을 암시하기 위해서 스타일의 개념을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기술) 스타일의 개념은 기술의 사회적 구성론(social construction of technology)의 그것과 잘 들어맞는다. 예를 들어, 성모를 그림으로 그리는 데 있어 유일하게 가장 좋은 방법이란 없다. 마찬가지로 발전기를 설계하는 유일하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도 없다. 경험이 없는 엔지니어들이나 전문적인 기술지식이 없는 보통사람들은, 마치 설계를 하는 모든 사람이 휘그적인 관점에서 찾아헤매는 이상적인 발전기 같은 것이 있는 것처럼 가정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기술은 시간과 장소에 맞는, '적정한' 것이어야 한다 ― 이 말이 반드시 기술은 작고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타일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은 그 수가 많으며 종류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1917년의 격렬한 볼셰비키 혁명과 신생국가로서의 불안한 출발을 거친 소련은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빠른 기술을 필요로 하게 되었는데, 이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체제 전체에 어떤 특권적인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엘머 스페리는 자신이 발명한 자이로컴퍼스를 독일 것과 비교해 본 후, 자신의 발명품이 추상적인 작동 표준을 추구하는 독일 것에 비해 기능적인 요구를 더욱 충족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더 실용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그의 결론은 독일적인 '스타일'에 대해 언급한 것이었다. 전세계를 돌면서 지역적인 규모의 전력 공급 시스템을 설계했던 영국의 상담 엔지니어인 찰스 메츠(Charles Merz)는 1909년에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어떤 지역에 있어서건 전력 공급의 문제는... 전적으로 그 지역의 조건에 좌우되는 것이다."

스타일의 개념이 기술에 적용되면 이는 기술이 단순히 과학의 응용 및 경제학에 지나지 않는다는 잘못된 관념 ― 약 10년 전까지만 해도 공과대학에서 가르쳐지던 교의인 ― 과 맞서게 된다. 옴의 법칙과 줄의 법칙, 여러 요인들의 입력, 그리고 단위비용 등이 기술의 형태를 충분히 설명해 줄 수는 없다. 기술의 사회적 형성과 기술스타일의 개념을 통해 역사가들과 사회학자들, 그리고 (아마도) 기술작업의 실무자들은 기술에 대한 환원론적 분석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스타일의 개념은 비교사(comparative history)의 서술을 용이하게 한다. 역사가들은 예컨대 전력 공급과 같은 특정한 기술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다른 특성을 갖는 것에 대한 설명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20세기에 들어서면 더욱 흥미로와진다. 왜냐하면 20세기에는 특허의 국제적 유통, 기술(technical) 및 과학 관련서적의 국제적인 유통, 기술(technical) 상품과 서비스의 국제적 무역, 전문가들의 이민, 기술이전 조약들, 그리고 여타 다양한 양식의 지식이나 인공물의 교환 등등으로 말미암아 각 지역의 기술을 설계하는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국제적 기술 창고(international pool of technology)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국제적 기술 창고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고, 또 공학에서는 여러 법칙이나 방정식을 써서 지역이나 시간에 관계없이 항상 성립하는, 이상적이고 고도로 추상화된 전기 시스템 ― 기전력, 저항, 축전기, 코일 등등으로 구성되는 ― 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흥미로운 문제에 마주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전기조명·전력생산 시스템은 시간에 따라서, 지역에 따라서, 또 심지어는 국가에 따라서 그 특성이 달라지는가'라는.

우리는 기술 스타일의 다양함의 예를 20세기에 들어서서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1920년의 시점에서 런던, 파리, 베를린, 시카고 4개 도시의 전기공급망을 그림으로 나타내 본다면 도시에 따라서 발전소의 규모나 숫자, 위치 등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도시들 간에 생산되는 조명이나 전력의 양(정량적인 단위로 표현된 출력값)이 서로 달랐다는 점이 아니라, 조명과 전력이 생산·전송·배전되는 방식이 상이했다는 점이다. (경제사가들은 정량적인 값에만 집중함으로써 종종 스타일에 있어서의 다양성을 감지하지 못하는 맹점을 안고 있다.) 예를 들어 베를린에는 6개 정도의 대규모 발전소가 있었던 반면, 런던에는 50개가 넘는 소규모의 발전소들이 전력생산을 담당했다. 소규모 발전소를 많이 두는 런던 스타일과 대규모 발전소 몇 개를 두는 베를린 스타일은 각각의 도시에서 이후에도 수십년간 지속되었다.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런던이 베를린에 비해 기술적으로(technically) 뒤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두 도시의 전력공급 스타일이 이렇게 서로 다른 것에 대한 주요한 이유는 근본적인 정치적 가치체계를 표현하고 있는 런던과 베를린의 규제 법령으로부터 찾아야 한다. 런던 사람들은 시의 자치구에 전기 조명과 공급을 조절할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지역 행정기관의 전통적인 권력을 보호하려 든 반면, 베를린 사람들은 베를린 시 당국에 조절 능력을 일임함으로써 중앙집중화된 권력기구를 옹호하였다.

그리고 기술 스타일을 형성하는 또다른 요인으로 자연적 지리조건을 들 수 있다. 전통적으로 정의되어 내려오는 지역들은 그 구분 기준이 대부분 지리적인 조건(산맥이나 강, 분지 등등)에 의한 것이고, 이러한 지리적 조건들은 기술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지역적인 기술 스타일의 개념은 국가적인 스타일보다 훨씬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규제 법령이 국가적인 차원에 적용될 때에는 지역적인 기술 스타일이 국가적인 스타일로 통합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1926년에 영국에서 국가 전력망 법안(National Grid)이 생겨나기 전까지는 지역적으로 독특한 전력 시스템의 스타일이 있었다 ― 런던은 북동부 해안의 도시들과는 그 스타일에 있어 서로 달랐다. 하지만 스타일을 유발하는 다른 요인들보다 규제 법령의 역할이 강해짐에 따라 전력망은 더욱 국가적인 스타일로 이어지게 되었다.

특정한 지역이나 국가에 고유한 역사적 경험도 역시 기술 스타일을 구성하는 요인이 된다. 예컨대, 1차 대전 중의 독일에서는 구리가 부족했기 때문에 발전소 설계자들이 구리를 절약하기 위해서 발전기의 규모를 크게, 그리고 수는 적게 되도록 설계하였다. 이 때 얻어진 경험, 혹은 획득된 스타일은 구리의 심각한 부족 문제가 해소된 전쟁 후에도 계속 유지되었다. 1차 대전 후 맺어진 베르사이유 조약의 결과로 독일이 석탄(hard coal) 생산 지역을 상실하고 배상금 명목으로 석탄의 수입을 요구받게 되자, 전력 시스템 공학자들은 점차로 역청탄(soft coal)의 사용으로 돌아서게 되었는데 일단 그 기술이 익혀지고 난 후에는 이러한 특성이 계속 유지되었다. 루르(Ruhr) 지방과 콜로뉴(Cologne) 지방이 1차 세계대전 이후에 갈탄과 대규모 발전설비에 의존하는 기술 스타일을 갖게 된 사실을 만족스럽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건들을 보지 않으면 안된다.

기술 스타일은 전기 조명·공급 외의 기술에도 적용가능한 개념이며 역사가들 외의 여타 전문가들에게도 유용한 개념이다. 루이스 헌터(Louis Hunter)는 허드슨 강과 미시시피 강의 증기선 사이의 흥미로운 대조점을 지적한 바 있다. 에다 크라나키스(Eda Kranakis)는 프랑스에서 공학의 "학문적 스타일(academic style)"에 대해 쓴 적이 있고, 에드윈 레이튼(Edwin Layton)은 19세기에 수차의 설계에 있어 미국과 프랑스가 어떻게 달랐는지를 대조하여 설명하였다. 1950년대에 미국의 대중들은 미국과 유럽의 자동차의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심지어 소련과 미국의 우주선이 그 설계에 있어 대조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최근에 메리 캘더(Mary Kaldor)는 20세기에 있어 군사기술의 바로크적 스타일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한스 디터 헬리게(Hans Dieter Hellige)는 스타일 개념이 내포한 풍부함과 복잡성을 인지하고, 기술적인 설계에 대한 환원적 접근에 맞서는 데 스타일 개념이 유용함을 지적한 후, 엔지니어들의 교육과정에 스타일의 개념을 도입할 것을 주장하였다.
 

시스템의 성장(Growth), 경쟁(Competetion) 및 공고화(Consolidation) 단계

기술사가들은 대규모 시스템의 성장을 기술해 왔지만 그 성장의 원인을 깊이 탐구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이들은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 같은 개념이나 개인적 권력욕, 조직적인 확장욕구 등과 같은 동기들을 사용한 설명을 써서 그 모순을 가려 왔다. 하지만 만약에 '규모의 경제'라는 말이 더 큰 용기(用器) ― 예를 들어 탱크나 보일러, 용광로 같은 ― 를 사용함으로써 물질이나 열에너지를 저장해 두는 것을 뜻한다면, 그 큰 용기가 용량만큼 제대로 사용되지 못할 때 경제성은 상실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규모의 경제'라는 말로 단순히 생산되거나 서비스되는 단위들의 수를 지칭한다면, 이는 공장이나 조직의 능력과 시간에 걸친 산출량의 배분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되며, 따라서 그 경제성이 적절하게 평가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떤 발전소가 매달 과거보다 2배로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도록 확장되었다고 할 때, 그 증가된 부하가 하루 중 어떤 특정한 시간대에만 집중적으로 걸린다면 오히려 전력의 단위 가격은 올라갈 수도 있다. 만약에 조직이 더욱 대규모화하여 관리자들에게 더욱 큰 영향과 통제를 미치게 된다면, 관료적인 일상의 반복 속에서 개개인의 독창적인 문제제기가 상실될 수 있는 명백한 가능성은 무시된다. 오래 전에, 레오 톨스토이(Leo Tolstoy)는 『전쟁과 평화』에서 이렇게 주장한 바 있다: 러시아 침공을 감행하는 나폴레옹은 거대한 프랑스 군대의 압도적인 모멘텀과 모든 면에서 강력하고 승리만을 거듭하는 황제로서의 이미지 때문에 결국 일개 보병이 갖는 정도의 행동의 자유밖에 누리지 못할 것이라고. 소규모의 회사나 군대는 대규모 회사나 군대에서처럼 개개인의 독창성을 억누르지는 않는다.

몇몇 기술 시스템 설계자들은 이러한 모순을 고려에 넣어 왔다. 발전소의 설계자들은 대규모의 발전소를 하나 지을 것인지, 아니면 보다 작은 발전소 여럿을 오랜 기간에 걸쳐서 지을 것인지를 결정한다. 이 중 후자의 선택은 부하의 증가 가능성이 계속 커지는 경우에 적합하다. 전기 설비회사의 관리자들과 운영자들은 부하가 그 출력에 있어서 극단적인 최고점과 최저점을 갖지 않도록 애쓴다 (이는 곧 사용가능한 용량이 사용되고 있지 않음을 뜻하므로). 과거에 소규모 전기 설비회사의 관리자들은 종종 대규모 회사가 자신들의 시스템을 흡수하는 것에 반대해 싸웠는데, 이는 대규모 조직 속에 포섭되면 관료주의가 자신들의 권한 행사를 축소시킬 것이라고 그들이 내다보았기 때문이었다. 1900년경부터 국가 전력망 법안이 발효되는 1926년 사이의 런던에 번창했던 소규모이고 기술적으로 진보적이며 이윤율이 높았던 발전소나 전기 설비회사들을 보면, 대규모의 산출량이나 조직적인 규모가 높은 이윤율과 개인적 권력 획득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대규모 회사들에 의해 흡수된 소규모 설비회사들의 상층부 관리자들은 대부분 관료적 체계 속에서 중간관리층의 한구석에 끼어 종속적인 역할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산업국가들에서 기술시스템은 전기, 전화, 무선전신, 군수, 자동차 산업의 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확장하는 경향을 가진다. 이러한 성장에 대한 주된 설명으로서 지금껏 기술사가, 경제사가, 사업사가들이 거의 주목하지 않았던 것을 들면 높은 다양성(diversity)과 부하율(load factor), 그리고 적절한 경제적 혼합(economic mix)을 향한 요구가 있다. 이 설명은 특히 20세기의 기술시스템에 있어 더욱 잘 들어맞는데, 이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자본 투자로부터의 나오는 이윤에 회계사들이나 관리자들이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기 때문이다. 부하율이라는 개념은 지금 많은 시스템들에 적용되고 있지만, 원래는 19세기 말 전기설비 산업에서 유래한 개념이었다. 부하율은 어떤 특정한 기간 동안의 평균 출력과 가능한 최대 출력 사이의 비를 말한다. 부하율은 보통 그래프나 곡선으로 표현되며, 24시간 동안에 걸쳐 발전기와 발전소, 전기 설비 시스템의 출력을 추적한다. 곡선은 대체로 기상 시간 전의 이른 아침에 최저점을 그리며, 사업체·산업체에서 전력을 아직 사용하고 가정에서는 전등을 켜고 교외통근자들이 전기로 작동하는 교통수단을 집중적으로 이용하는 초저녁 쯤에 최고점을 나타낸다. 발전기나 발전소, 전기설비 회사의 최대 용량(이는 사용량의 최고점보다는 커야 한다)을 그래프로 나타낸 후 실제 부하 곡선의 부침(浮沈)을 이와 함께 그려 놓으면 최대 용량이 실제로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를 확실히 볼 수 있다. 이 개념을 이용하는 많은 기술시스템들이 자본집약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부하율을 나타내는 부하 곡선, 바꾸어 말해 투하자본의 이용 정도와 이로부터 도출되는 단위비용은 결국 투하한 자본으로부터 나오는 이윤을 나타내는 척도가 된다.

부하율이 반드시 성장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소규모의 기술시스템도 출력 쪽에서의 부하(혹은 시장)가 다양화되어 있기만 하다면 높은 부하율을 가질 수 있다. 전력 시스템의 경우, 부하는 개개 이용자들이 서로 다른 시간에 전력 사용의 최고점을 갖는다면(예컨대 몇몇은 늦은 저녁에, 다른 몇몇은 이른 아침에, 하는 식으로) 아주 바람직한 방향으로 '다양화'되는 것이다. 만약에 앞서와 같은 경우가 아닐 때에는, 기술시스템의 관리자들은 보다 바람직한 부하와 다양성을 얻기 위해 시스템을 확장시키려고 노력하게 된다. 시간대에 따라 다른 가격을 적용하여 최저점을 끌어올리고 최고점을 낮춤으로써 부하의 편중을 조절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시스템을 보다 넓은 지리적인 지역으로 확장하면 산업체에 걸리는 부하, 주거지역에 걸리는 부하, 교통수단 운용에 걸리는 부하 등 서로 다른 종류의 부하들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성은 증가하고 부하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부하를 관리할 수 있는 기회가 커지게 된다. 20세기를 통해 볼 때, 다양성을 증가시키기 위한 확장과 높은 부하율을 위한 관리는 전기설비 산업의 확장에 있어 주된 동인(動因)이 되어 왔다.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아마도 부하율이 자본집약적 기술시스템의 성장에 대한 가장 주요한 설명을 제공할 것이다.

전력 시스템의 관리자들은 또한 경제적 혼합(economic mix)의 향상을 추구한다. 예를 들자면, 이러한 추구의 결과 석탄 광산 근처의 평원에 위치한 발전소와 멀리 떨어진 고산 지대에 위치한 발전소가 서로 연결될 수도 있다. 독일의 루르 계곡에 위치한 전기설비 회사인 라인-베스트팔렌 전기회사(Rheinisch-Westfalisches Elektrizitatswerk)는 1920년대에 수백 마일을 확장하여 시스템이 남쪽의 알프스 산맥에까지 닿게 하였다. 그 결과, 봄이 와서 눈이 녹은 후에는 알프스로부터 값이 싼 수력발전을 끌어다 쓰고 다른 때에는 루르 지방에서 보다 덜 경제적인 화력 발전을 쓰는 방식이 가능하게 되었다. 특정 지역의 발전소의 출력의 경우에도, 덜 효율적인 것이 시스템 내에서 부하의 최고점 근처에 이르렀을 때를 담당하도록 하고 보다 효율적인 것이 지속적인 기본 부하를 담당하도록 함으로써 역시 혼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급속히 확장하는 전력 시스템을 책임지고 있는 엔지니어-관리자들이 부하율이나 경제적 혼합, 부하의 관리 같은 문제들 ― 명료하면서도 영민함을 요구하는 수수께끼풀이(puzzle-solving)의 측면이 강한 ― 에 지적으로 매혹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권한 강화나 이윤의 증가와 같은 전통적인 동기들에 보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깔끔한 수수께끼풀이는 이윤의 증가, 시장의 장악, 조직의 강화 등과 연결되어 사고된다.

시스템이 성장해 나감에 따라 다른 종류의 문제들이 커지게 되는데 이들 중 몇몇은 "역돌출부(reverse salient)"로 파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여기서 보수적인 발명이 이 문제를 풀어낸다 (반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파격적인 발명은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낸다). 보통 돌출부(salient)라 함은 기하학적 도형이나 최전방의 전선(戰線), 혹은 기상(氣象)에서의 전선(前線) 등에서 튀어나온 부분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기술시스템이 확장하면 '역'돌출부가 나타나게 된다. 역돌출부란 시스템 내에서 다른 요소들에 비해 뒤처져 있거나 다른 요소들과 제대로 상호작용을 해내지 못하는 요소를 말한다. '역돌출부'라는 용어가 불균등하고 복잡한 변화를 암시하기 때문에, 이 은유는 병목 현상(bottleneck)과 같은 보다 고정적이고 시각적인 개념보다 시스템에 더욱 적합하다. 역돌출부라는 용어를 확장하는 시스템 내에서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하는 요소들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다른 개념들, 예컨대 지연요소(drag)라거나 가능성의 한계(limits to potential), 전면에 등장하는 문제점(emergent friction), 시스템의 효율(systemic efficiency) 등의 용어들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전기 시스템에서 엔지니어들은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발전기의 특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시스템 내의 요소들, 예컨대 전동기 같은 것 역시 그것이 발전기와 잘 맞물려 기능할 수 있도록 특성(저항이나 전압, 전류 등등)을 변화시켜 주어야 한다. 이러한 일이 행해질 때까지는 전동기가 역돌출부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어떤 생산시스템에서 하나의 생산단위가 그 산출량을 증가시키게 되면 그 시스템 내의 다른 모든 단위들 역시 시스템 전체의 산출량에 효율적으로 기여하도록 수정되어야 한다. 이 중에서 뒤처져 있는 요소들이 변화되기 전까지는 그 요소들 역시 역돌출부로 남아 있게 된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진행되던 기간에 관찰자들은 직물 산업에서 방직(weaving)과 방적(spinning) 사이에 불균형이 존재함을 알아챘고, 발명가들은 뒤처진 요소들의 산출량을 올리고 나아가 전체 시스템의 산출량을 증가시키는 발명을 해냄으로써 역돌출부에 응답했다. 성숙기에 다다른, 복잡한 기술시스템에서는 조직화의 필요가 역돌출부로 대두할 수도 있다. 1920년대에 관리자-기업가들은 수평적·수직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설비회사들의 구성이나 관리, 재정 등 전체적인 업무를 담당할 조직적인 형태가 필요함을 절감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해 적절한 지주 회사의 형태를 발명해 냄으로써 역돌출부는 제거되었다.

확장하고 있는 시스템을 총괄하고 있는 기업가들이나 조직들은 정기적으로 역돌출부의 등장 여부를 점검하는데, 종종 역돌출부를 찾아내는 데 비용 분석(cost-accounting)의 기교를 동원하기도 한다. 일단 역돌출부를 파악하고 난 후 그것이 본질적으로 하나의 기계나 기구, 과정, 혹은 그것들을 묘사·설명하는 이론이나 조직된 지식의 문제라고 판단되면, 조직들은 기술담당 부서나 자체 연구소에 그 상황을 해결하라고 지시한다. 기술부서 혹은 연구소에는 관련된 숙련의 전통을 지니고 있는 기술관련 실무자들의 집단이 있다. 발명가 집단은 역돌출부가 나타난 장소에 집결하게 되는데, 이는 어떤 산업에서 다수의 기업들이 거의 동시에 역돌출부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발명가들(엔지니어들이거나 산업체 과학자들)은 역돌출부를, 그 문제를 풀어 내었을 때 역돌출부를 제거할 수 있는 일련의 결정적 문제(critical problem)들의 집합으로 정의한다. 역돌출부는 종종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등장하며, 결정적 문제들의 정의 및 그 해결은 (보수를 받지 못하는) 자발적인 행위에 의해 이루어질 수도 있다. 만약 역돌출부가 그 성격상 조직적인 것이거나 재정적인 것이라면,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는 개인이나 실무자 집단은 창의적인 해결책을 들고 나타나는 전문관리자나 재정가가 될 것이다. 시스템의 성장에 있어 단계별로 나타나는 역돌출부들은 각각 그에 적합한 유형의 문제 해결사들 ― 발명가, 엔지니어, 관리자, 재정가, 법률 문제 쪽에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 등등 ― 을 요구하게 된다.

20세기 초의 1/4분기 동안 그 수가 급격히 불어난 산업체 연구소들은 보수적인 발명에 특히 효과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산업체 연구소는 발명을 일상화(routinize)시켰다, 1차 대전 이전에 바이엘(Bayer) 연구소의 연구 지휘를 담당했던 화학자 칼 뒤스베르크(Carl Duisberg)는, 산업체 연구소에서의 발명을 "천재의 번득임을 전혀 찾아볼 여지가 없는" 성격의 것이라고 적절하게 특징지었다. 산업체 연구소의 홍보부서나 스스로의 지위를 높여야 하는 산업체 연구소의 과학자들은, 독립발명가들의 경우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자신들이 독립발명가들 대신 발명 작업을 떠맡은 것이라는 논리를 펴면서 대중들이나 관리자들, 산업체의 소유주들을 설득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실제의 기술적 변화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는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이와는 반대로, 상당수의 증거들은 파격적인 발명의 대부분이 아직 독립발명가들로부터 나오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임무지향적인 연구소들은 성장하고 있는 시스템에 기득권을 지니고 있는 산업체나 정부기관에 종속되어 있고, 따라서 보수적인 성격의 기능향상이나 역돌출부에 대응하는 발명을 해냄으로써 자신이 속해 있는 산업체나 정부기관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선구적인 산업체 연구소들의 초기 문제 선택을 눈여겨 보면 보수적인 발명에 대한 강한 집착과 파격적인 발명에 대한 상대적인 무관심을 알아챌 수 있다. 1907년에 벨 전화 시스템(Bell Telephone System)이 웨스턴 일렉트릭 회사(Western Electric Company)와 미국전신전화(American Telephone & Telegraph, AT&T)에서의 연구활동을 통합시킨 후, 그곳에서 일하던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은 대륙횡단 전화선을 개설하려고 시도하는 와중에 나타난 역돌출부를 해결하는 데 집중했다. 신호의 감쇠나 에너지의 손실이 주요한 역돌출부인 것으로 판명되었고,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은 장하 코일(loading coil)을 발명해 냄으로써 신호의 감쇠를 줄일 수 있었다. 그 후 1911년경에는 전송선에 보다 향상된 신호반복기를 도입하는 것이 연구개발팀의 주된 문제로 부상했다. 제너럴 일렉트릭 연구소의 엔지니어들과 과학자들은 연구소가 설립된 무렵인 1900년경에 전기조명·전력생산 시스템에서 나타난 역돌출부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었는데, 이 중에는 백열전구의 필라멘트와 진공의 향상, 수은증기를 넣은 전구의 기능향상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연구주제 선택에 있어 예외적인 자유를 부여받았던 GE의 뛰어난 과학자 어빙 랭뮈어(Irving Langmuir)의 경우에도, 회사가 생산라인을 확장하려는 시기에 직면한 실제응용상의 문제들을 외면하지는 못했다. 연구소의 소장이었던 윌리스 휘트니(Willis R. Whitney)는 "사업목표에 대한 책임성(responsiveness to business needs)"의 원칙을 추구해 나갔다.

역돌출부가 기존 시스템의 맥락 속에서 해결될 수 없을 때, 그 문제는 파격적인 성격의 것이 되었다. 즉, 그 문제의 해결을 통해 기존의 시스템과 경쟁하는 새로운 시스템이 나타날 수 있었다. 에드워드 콘스탄트(Edward Constant)는 기존의 잘 확립되어 있는 시스템 속에서 "미리 추정해 본 변칙사례(presumptve anomaly)"가 확인됨으로써 이로부터 새로운 시스템이 나타나게 되는 사례들을 제시한 바 있다. 콘스탄트의 말에 따르면, 과학적으로 도출된 가정에 의해서 "특정한 미래의 상황에서는 통상적인 시스템이 실패한다거나 완전히 다른 시스템이 더 잘 작동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올 때 '미리 추정해 본 변칙사례'가 생겨나는 것이다. 여기서 '미리 추정해 본 변칙사례'는 '미리 추정해 본 역돌출부'와 유사하지만, 그것을 파악하는 데 있어 과학의 역할을 적절하게 강조한 것은 콘스탄트의 공적이다. 콘스탄트는 자신의 연구에서 '미리 추정해 본 변칙사례'의 두드러진 예가 1920년대 말에 나타났다고 말한다. 기체역학의 연구결과, 당시 쓰이던 피스톤 엔진-프로펠러 시스템은 앞으로 예상되는 음속 가까이에서의 비행에서 제대로 동작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타났던 것이다. 프랭크 휘틀(Frank Whittle), 한스 폰 오헤인(Hans von Ohain), 헤르베르트 바그너(Herbert Wagner), 헬무트 쉘프(Helmut Shelp) 등의 발명가들은 터보제트 엔진을 개발해 냄으로써 이에 응답하였는데, 이 중 처음의 3명은 새로운 엔진의 고안을 생각해 내었을 때 독립발명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1880년대 초에 직류 전기 시스템의 성장을 총괄하고 있던 에디슨과 그 조력자들은 역돌출부의 해결에 실패하였고, 파격적인 발명을 해내어 그것에 응답한 다른 발명가들과 엔지니어들은 교류 시스템을 만들어 내었다. 이로부터 "시스템간의 전쟁(battle of the systems)"이 이 둘간에 계속되어 1890년대에 절정에 달했는데, 이 전쟁은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 두 시스템의 상호연결을 가능하게 해 주는 기구의 발명으로 이어지는 성격의 것이었다. 이러한 전동기-발전기 세트나 변압기, 회전 변류기(rotary converter)들은 백열등이나 아크등, 공장에 쓰이는 유도 전동기(induction motor), 전차에 쓰이는 직류 전동기 등등의 불균질적(heterogeneous)인 부하들을 상호연결시켜서 하나의 포괄적인 시스템 ― 몇몇의 표준화된 다상 발전기들에 의해서 전기가 공급되고, 고전압의 전송선과 저전압의 배전선으로 상호연결되어 있는 ― 을 만들어 냈다. 1890년대에 있었던 포괄적인 전력 시스템의 설계와 초기화 작업은 그보다 약 10여년 후에 AT&T가 기존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전화 네트워크를 도입한 것에 비할 만하며, 또한 최근 들어 컴퓨터 생산회사들이 다양한 시스템들의 상호연결을 추구하면서 내놓은 설계와도 유사하다. 인공물들간의 이러한 연결은 경쟁하는 시스템들 각각을 뒷받침하는 설비회사나 생산회사들의 조직적인 연결과 동시에 일어난다. 교류 시스템에 기반하고 있던 톰슨-휴스턴 회사는 직류 시스템을 사용하는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 회사와 1893년에 통합하였다. 양차대전 사이의 기간에 이르면 산업국가들 전체에 걸쳐 전기조명·전력생산 시스템의 공고화가 이루어져, 미국과 독일에서는 각각 두 개의 거대한 생산회사 ― 미국에서는 제너럴 일렉트릭과 웨스팅하우스, 독일에서는 Allgemeine Elektrizitats-Gesellschaft와 Siemens ― 가 전기기구의 생산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와 유사하게, 거대한 지역 설비회사들이 전기공급 영역을 지배했다. 그리고 표준전압이나 주파수, 전기기구의 특성과 같은 기술적(technical) 하드웨어들에 대해 산업 전체에 걸친 표준화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20세기 초가 되면 전화 시스템과 자동차 생산 시스템에서도 이와 유사한 기업간의 합병과 표준화가 일어나게 된다.
 

모멘텀(Momentum)

기술시스템은 오랜 기간의 성장과 공고화를 거친 다음에도 자율적(autonomous)인 것이 되지는 않는다; 대신 그것은 모멘텀을 가지게 된다. 기술시스템은 그 속에 수많은 기술적(technical)·조직적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어떤 특정한 방향이나 목표를 가지고 있고, 지속적인 속도로 성장해 나간다. 높은 수준의 모멘텀은 관찰자들로 하여금 종종 기술시스템이 자율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고 가정하게 한다. 다시말해, 성숙한 시스템은 운동에 있어서의 관성과 유사한 성질을 갖는다. 기술시스템에서 이러한 관성을 만들어 내는 것은 시스템에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조직과 사람들이다. 생산회사들, 공공·민간 설비회사들, 산업연구소와 정부출연연구소, 투자기관과 은행들, 기술(technical)학회와 과학학회의 분파들, 교육기관 내의 학과들, 규제기관들 등등은 현대적인 전기조명·전력생산 시스템에 모멘텀을 실어 주는 데 모두 크게 기여했다. 발명가, 엔지니어, 과학자, 관리자, 소유주, 투자가, 재정가, 공무원, 정치가들은 종종 시스템의 성장과 유지에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 특정한 기술적 실무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실무자들 집단(특히 엔지니어들)은 자신들이 관련되어 있는 시스템을 유지시킴으로써 탈숙련화를 피하려고 한다. 미셸 깔롱에 의해 정의된 행위자 그물망 역시 시스템의 모멘텀을 증가시킨다. 모멘텀과 관련된 개념으로는 기득권(vested interests), 고정자산(fixed assets), 이미 쓰여진 비용(sunk costs) 등을 들 수 있다.

시스템 내에 있는 인공물들과 지식의 지속성(durability)은 모멘텀의 개념과 유사한 물리적 은유인 궤적(trajectory)의 개념을 제시한다. 현대의 자본집약적인 시스템들은 지속적인 유형의 인공물들을 수없이 포함하고 있다. 노동집약적인 시스템에서는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것이 모멘텀을 줄이지만, 반면 자본집약적인 시스템에서는 기계와 생산과정에 투여한 자본과 이해관계를 '해고'할 수 없다. 지속적인 유형의 인공물들은 과거에 그것들이 처음 설계될 때 획득한, 사회적으로 구성된 그것의 특성들을 미래에도 계속 투영한다. 이는 주변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이미 획득된 특성이 계속 살아남는 것과 유사하다.

자본집약적이고 상환이 불가능한 인공물들이 갖는 모멘텀은 '시스템간의 전쟁' 후 교류전기 시스템이 승리했음에도 직류 시스템이 계속 살아남은 것에 대한 설명을 일부 제공해 준다. 그리고 독일의 화학회사인 바디쉬 아닐린 & 소다 공장(Badische Anilyn- und Soda-Fabrik, BASF)에서 1910년과 1940년 사이에 고온, 고압, 촉매-수소반응 인공물들이 살아남은 것 역시 모멘텀과 궤적의 또다른 예를 제공한다. BASF의 경우에, 1차 대전 중의 질소고정 설비들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수소반응 과정에 대해 정통하게 된 일군의 핵심적인 엔지니어 및 과학자 집단은 그들의 지식과 기존의 설비를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 기간의 메탄올 생산과 나찌 통치기간의 가솔린 합성에 계속 이용하였다.

1910년에서 1930년까지의 기간에 시스템 공학자들은 산업화된 서구사회에서 전기조명·전력생산 시스템이 모멘텀을 얻어 가는 데 막대한 공헌을 했다. 루르 지방의 대부호 휴고 스티네스(Hugo Stinnes), 독일 제너럴 일렉트릭(Germany General Electric, AEG)을 연이어 책임졌던 에밀 라데나우(Emile Rathenau)와 발터 라데나우(Walther Rathenau), 바바리아 지방의 지역 설비회사인 바이에른 공작소(Bayernwerk)를 세우는 데 조력한 오스카 폰 밀러(Oskar von Miller) 등의 사람들은 복잡다양한 경험과 능력들 ― 특히 공학, 재정, 관리, 정치 부문에서의 ― 을 결합시켜 거대한 독일 내 시스템을 건설하였다. 시스템 설계의 미학적 측면에 특히 매료되었던 발터 폰 라데나우는 1909년에 만족한 듯이 이렇게 말했다: "서로 안면이 있는 300명의 사람들 ― 그 중에 라데나우 자신도 끼어 있는 ― 이 유럽대륙 전체의 경제적 운명을 책임지고 있다." 1907년에 그의 AEG 시스템은 "의심할 여지 없이 중앙집중적인 통제 하에 있고 중앙집중적인 조직을 갖고 있는 유럽 최대의 산업단위 결합체였다." 영국에서는 상담 엔지니어 찰스 메츠가 영국 최대의 전기공급 네트워크인 북동부 전기 공급 회사(Northeastern Electric Supply Company)의 성장을 관장하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북서부 설비회사(Middle West Utilities Company)의 새뮤엘 인술(Samuel Insull)과 Electric Bond and Share(제너럴 일렉트릭과 관련된 설비 지주회사)의 S.Z. 미첼(S.Z. Mitchell), 스톤 앤 웹스터 사(Stone & Webster)의 찰스 스톤(Charles Stone)과 에드윈 웹스터(Edwin Webster) 등이 지도적인 시스템 설계자의 대열에 속해 있었다.

이 중에서 스톤과 웹스터의 그것이 모범적인 시스템이 되었다. 두 사람은 1880년에 메사추세츠 공과대학을 졸업한 직후, 소규모의 상담 엔지니어링 회사를 차려 발전기나 전동기, 그리고 다른 설비들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의 상담역이 되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얼마 후 투자 은행가인 J.P. 모건(J.P. Morgan)은 이 두 명의 젊은이들이 발전기 설계와 설비회사 운영에 전문가인 것을 알고, 자신이 투자한 다수의 거의 망하다시피 한 설비회사들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에 대해 자문해 줄 것을 이들에게 요청했다. 설비회사들의 상황을 조사해 보고 난 후, 이들은 설비산업 전체에 걸쳐 널리 퍼져 있는 가장 중요한 역돌출부를 파악해 내고 이를 제거하는 전문가가 되었다. 스톤과 웹스터는 그 문제점이 정확하게 진단된 (망해 가는) 설비회사에 신중하게 투자할 경우 종종 막대한 향상과 이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1910년경 설비회사들에 돈을 대고 그것들을 건설하고 관리하는 쪽으로 완전히 투신하였다. 그 결과 재정적으로, 기술적으로(technically), 또 관리의 측면에서 상호연관된(심지어 전송선에 의해서 물리적으로 상호연결되기까지 한) 스톤과 웹스터의 시스템은 미국 각지에서 작동하게 되었다. 1920년대에 스톤과 웹스터는 시스템 내의 재정적, 관리적 결합도를 더욱 높이기 위해 지주회사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설비 지주회사들이 서구사회에 널리 퍼졌다. 이들 중 몇몇은 시스템 내의 발전소들에 연료를 공급해 주는 석탄 채광 회사와 관련되어 있었고, 다른 몇몇은 설비회사에 쓰이는 장비를 만드는 전기기구 제조회사를 포함하고 있었다. 또 다른 몇몇은 장기 계약관계나 임원진의 상호 연결, 주식의 매입 등등을 통해서 전기의 주된 고객들인 제조공장이나 운송회사들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독일에서는 지방정부가 민간투자가들과 함께 설비회사의 소유권을 공유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를 통해서 시스템 내부로 편입된 지방정부는 동시에 규제자이자 소유주로서의 역할을 했다.

이렇게 거대하고 높은 모멘텀을 지닌 시스템이 전기설비회사의 영역에만 국한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헨리 포드와 그 조력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자동차 생산 시스템은 높은 모멘텀을 지닌 시스템의 고전적인 사례이다. 상호연결된 생산라인이나 조립공정이 진행되는 공장, 원자재 생산공장, 부품을 운송하고 취급하는 네트워크, 연구개발 설비, 그리고 배급 및 판매 담당회사들 등은 원자재로부터 완성된 차에까지 이르는 흐름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서로 조정되어 전체 포드 시스템을 구성하였다. 생산과 배급의 상호연결, 그리고 높은 산출량 혹은 처리량을 가진 시스템 내부로 생산·배급이 통합되는 현상은 20세기 초 화학산업에서도 역시 일어났다.

양차 대전기 사이의 기간에 높은 모멘텀을 지닌 시스템들은 소위 '자율적인 기술'을 등장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시스템 내부의 움직임이 그 시스템의 발전 경로를 이끌고 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이는 불확실성을 줄이기를 원하는 관리자들이나 시스템의 수행능력 증가를 계획하고 설계하는 엔지니어들을 기쁘게 했다. 예를 들어, 1900년 이후가 되면 전기소비의 증가율은 매년 6% 정도로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시스템들은 외부요인이나 환경으로부터의 영향을 받지 않는, 닫힌 시스템인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시스템들은 그 속에 포함되지 않은 환경요인들의 힘을 축소시켜 버렸다. 환경요인들을 통제하는 사람들은 시스템으로부터 나오는 권력을 이용한 공작이나 광고, 금전적 영향들에 종속되어 시스템이 추구하는 가치와 목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기술의 자율성이라는 외관은 대단히 기만적인 것임이 증명되어 왔다. 예를 들어서 1차대전 기간과 그 직후의 기간을 거치면서 영국의 전력 시스템의 발전 방향과 그 특성은 눈에 두드러질 정도로 바뀌었다. 1차 대전 전의 영국의 시스템은 미국이나 산업화된 독일의 그것과 비교해 보았을 때 비정상적일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그래서 다른 지역의 설비회사 운영자들은 영국의 시스템이 후진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 영국적인 스타일은 널리 퍼져 있는 영국의 정치적 가치체계 및 그 가치체계를 표현하는 규제법령과 잘 일치하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영국인들은 지역정부의 권력에 높은 가치를 부여해 왔고(특히 런던의 경우), 전기설비회사들은 소규모의 정치적 관할구의 한계 내에 묶여 있었다. 하지만 특히 1차 대전을 거치면서 영국이 점하고 있던 산업적 우위가 손실되었음이 점차 명백하게 드러나게 되자 영국 내에서 오랫동안 널리 위력을 떨치던 정치적·경제적 가치들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1차 대전 중에 의회는 지역정부가 보이는 민감한 반응을 무시하고 소규모 전기시스템의 상호연결을 강제로 시행해서 부하율을 높이고 부족한 자원을 절약하려 시도하였다. 전쟁의 승리와 함께 전쟁 중에 내려진 조처들은 포기될 수도 있었지만,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은 전쟁 중에 성취한 효율성이 평화시의 산업복구에 필요한 조건이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그 결과, 1926년에는 지역정부가 유지해 온 전통보다 전력생산 시스템 내부의 기술적 변화에 더 높은 우선권이 주어졌다. 의회는 최초의 국가적 전력망을 만드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령을 제정하였다. 정치적 권력이 시스템 내부의 동력을 눌렀던 것이다.

2차대전이 끝나자 (특히 미국의) 설비회사의 관리자들은 원자로가 시스템 발전의 유형 속으로 쉽게 통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잘못 생각했다. 하지만 원자력발전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 역돌출부를 내포하고 있었다. 2차 대전 이래로 석유 공급의 변화나 환경보호 운동집단의 등장, 그리고 발전설비의 효율성을 증가시키는 기술적(technical) 장비의 효율 저하 등등의 변화들은 전기설비회사의 관리자들이 지니고 있던 모멘텀나 기술적 궤적에 대한 사고에 도전해 왔다.

시스템의 모멘텀이 붕괴하는 이러한 사례들을 볼 때, 역사가들과 사회학자들은 진화하는 시스템의 개념이나 유형을 발견법적인 도구로서만 사용해야 하며, 시스템 관리자들은 그 개념 및 유형을 예측의 모델로서의 사용으로 제한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멘텀은 '자율성'보다는 유용한 개념이다. 모멘텀의 개념은 기술의 사회적 구성의 원칙과 모순되지 않으며, 기술결정론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뒷받침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은유는 구조적인 요인들과 우연적인 사건들 모두를 포괄하고 있다.
 

결론
 

이 글에서는 성장 혹은 진화하는 시스템의 유형을 다루었다. 한편 역사 속에서 보면 다른 무수한 기술시스템들은 정체의 단계에 도달했다가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예를 들어 19세기를 보면, 운하나 가스등 시스템은 정체로 접어들었다가 쇠퇴하였다. 기술사가들과 기술사회학자들은 기술시스템의 역사에서 그런 측면에도 적용가능한 유형과 개념들을 찾아 연구를 계속 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