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진, 『야누스의 과학 - 20세기 과학기술의 사회사』(사계절, 2008)
 


 
 

< 목  차 >
 

서문

1. 현대과학의 특징
- 20세기 거대과학의 탄생과 유산

2. 핵과학의 발전과 원자폭탄의 개발

3. 원자력발전의 기원과 성쇠
- 핵에너지의 '평화적'이용이 걸어온 길

4. 디지털 컴퓨터의 등장과 PC 혁명 (1)
- 군사적 연구개발의 주도, 1943~1968

5. 디지털 컴퓨터의 등장과 PC 혁명 (2)
- 새로운 컴퓨터 이용방식의 부상과 PC 혁명, 1969~1984

6. 인터넷의 등장과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

7. 냉전이 잉태한 우주개발 경쟁

8. 합성살충제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9. 오존층 파괴 논쟁, 전지구적 환경문제의 시작

10. 지구온난화의 길고 굴곡진 역사

11. 환경호르몬이 제기하는 새로운 위협
- '내분비 저해 가설'의 기원과 현재

12. 생명공학 혁명과 대중 논쟁

13. 망원경의 거대화와 천문학의 거대과학화

14. 판구조론 혁명과 냉전 시기의 지구과학

15. 세상의 반, 여성과학자의 좌절과 도전

16. 21세기의 과학기술
- 과학의 상업화와 새로운 위험

 
 

< 서  문 >
 

오늘날의 사회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일반 시민들에게 과학은 어떤 이미지로 다가갈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과학이란 세상사에 무관심한 채 실험실에 틀어박힌 과학자들이 자연 속에 '숨겨진' 심오한 진리를 추구하는 활동 정도로 이해되고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과학과 과학자의 이미지는 어린이나 청소년을 주로 대상으로 하는 과학자 '위인' 전기들에서 그려지는 과학자들의 천재적이고 비범한 면모에 의해 만들어지고 강화된다. 이런 이미지는 과학에 관해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두 가지 관념으로 이어진다. 과학이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의 다른 영역들과는 유리된 비세속적이며 초월적인 활동이라는 인식이 그 중 하나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과학은 사회로부터 '오염'되지 않은 확실하고 믿을만한 지식을 제공한다는 생각이 다른 하나다.

그러나 이러한 널리 퍼진 이미지와는 달리, 오늘날의 과학은 사회적 진공 상태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급격하게 성장한 데는 20세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국가(특히 군대)로부터의 막대한 재정적 지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 과학이 발전하면서 생겨난 새로운 정치적·사회적·환경적 문제들은 그것의 원인과 해결 방안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촉발시켰는데, 과학은 그러한 논쟁 속에서 중요하면서도 복잡미묘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현대과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몇몇 사건들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

원자탄 개발에서 디지털 컴퓨터의 발전, 전지구적 환경문제의 부상에서 생명공학 혁명에 이르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다루면서 나는 크게 두 가지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먼저 20세기의 과학 발전에서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냉전, 그리고 이를 계기로 본격화된 정부의 지원이 과학 활동의 규모와 성격을 엄청나게 바꿔놓았음을 보여주려 애썼다. 2차대전 이후 정부, 특히 군대의 연구비 지원이 미친 영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숙이 여러 세부 분야의 과학 활동 속에 스며들어 있다. 이러한 경향은 1970년대 이후부터 기업의 지원으로 점차 대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다시 이전 시기에 나타나지 않았던 새로운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둘째로 과학의 발전과 함께 나타나는 수많은 논쟁들의 존재에 주목했다. 이러한 논쟁들은 과학 이론을 둘러싼 과학계 내부의 논쟁일 수도 있고, 과학이 미치는 사회적·환경적 영향을 둘러싼 사회 일반의 논쟁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양쪽 모두일 수도 있다. 과학이 확실한 지식을 제공해 준다는 흔한 선입견과는 달리 이런 논쟁들이 손쉽게 해결되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우며, 특히 20세기 후반 들어 과학과 연관된 사회적 논쟁에 고도의 불확실성이 개입하면서 일견 간단해 보이는 문제에 대해서도 정답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오늘날 과학이 다양한 사회적·환경적 문제에 대해 '쉽고 빠른' 답을 제시해줄 수 없게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     *     *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내가 서울시립대에서 「자연과학개론」 강의를 처음 맡았던 2001년 2학기로 거슬러올라간다. 자연과학개론은 그 이전까지 과학사나 기술사 관련 교과목을 주로 맡았던 내게 다소 부담스럽고 생소한 과목이었다. 이 과목을 어떻게 강의해야 할지 나름의 상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첫 학기에는 흔히 하는 것처럼 물리학, 화학, 생물학, 천문학, 지구과학 등 여러 과학 분야에서 중요한 과학 이론들을 추려 설명하는, 말 그대로의 '개론' 강의를 했다. 그런데 첫 학기를 마치고 나서, 강의를 한 나도 수업을 들은 학생들(대부분 문과 계열)도 썩 만족스럽지 못한 시간을 보냈음을 이내 알게 되었다. 학생들은 고등학교 과학 수업 시간으로 잠시 '타임슬립'을 한 것 같았다며 별로 재미가 없었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고, 나 역시 왜 그런 과학 이론들을 대부분 비전공자들로 구성된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는지 스스로도 정당화가 잘 되질 않았다. 그래서 다음 학기 강의부터는 과학 이론도 어느 정도 강의하되 오늘날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여러 에피소드를 다룸으로써 자연과학개론을 좀 더 '재미있게' 만들어보려는 시도를 했고, 학생들로부터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과목 이름인 자연과학'개론'과는 어떤 의미에서 조금 멀어졌지만, 과학 분야를 전공하지 않는 학생들이 과학에 대해 알아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내용과는 조금 더 가까워진, 그런 강의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이 책은 서울시립대에서 내가 여러 학기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며 틀을 잡았던 강의 내용에 뿌리를 두고 있다. 본문 가운데 3/4 정도는 2005년부터 2006년에 걸쳐 한 논술교재의 청탁을 받고 강의 내용을 정리해 연재했던 칼럼을 수정, 보완한 것이고 나머지는 단행본을 위해 새로 쓴 것들이다. 연원이 오래된 책이니만치 감사를 표하고 싶은 사람이 없을 수 없다. 우선 서울시립대, 한국기술교육대, 성공회대 등에서 내 강의를 듣고 적절한 피드백을 통해 내용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준 수많은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올 초 웹진 <크로스로드> 청탁을 계기로 처음 만나 이런 책의 출간을 권유해 주시고 또 사계절출판사를 소개해 주신 이권우 선생님, 또 게으른 내게 지속적인 '채찍질'을 가해 원고를 지금과 같은 형태로 만들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사계절출판사의 조건형 씨께도 감사를 드린다. 원고를 마무리지은 후에도 여러 모로 부족하고 아쉬운 점들은 이후 개정판 등을 통해 보완할 수 있기를 기약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