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국의 형성: 과학, 기술, 그리고 담합자본주의의 등장』 서문
 
 

데이빗 노블
 
 

현대를 살아가는 미국인들은 그 속에서 모든 것들이 변화하지만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그런 세계에 직면해 있다. 오늘날의 시장을 특징짓는 새로움을 향한 끝없는 질주는 기술적으로 앞서가는 삶을 점차로 약속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은 기존의 삶의 양태가 지속되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사회를 예언하는 듯이 보였던 각각의 주요한 과학적 진보들은 오히려 그것을 생산한 구 질서의 공고함과 강인함을 확인해 주었을 뿐이다. 새롭고 대담하게 보이는 파격적 시도들은 모두 이미 익숙해져 버린 길을 따르는 것으로 귀결되어 버렸다. 이 책은 이러한 기묘한 상황 - 대단히 역동적이지만 아무 곳으로도 향하고 있지 않은 사회(a remarkably dynamic society that goes nowhere) - 을 설명해 보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이다.

19세기 산업자본주의의 하나의 산물에 불과했던 사적 대기업(private corporation)은 어떻게 산업자본주의의 또다른 산물 - 어쩌면 그 자체보다도 더 강력할지도 모르는 - 이었던 과학기술(scientific technology)의 발전을 자극하고 그것을 자기 내부로 끌어들일 수 있었을까? 비교적 정적(靜的)이고 따라서 시대에 뒤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자본주의의 사회구조가 과거의 모든 자취, 모든 기억들을 휩쓸고 가 버린 사회적 생산의 혁명을 견뎌낸 - 혹은 그것에 의해 오히려 강화된 - 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본 연구는 현대 미국을 형성시킨 두 가지 힘, 즉 과학기술과 담합자본주의(corporate capitalism)의 상호연관된 역사를 이 둘의 공통된 매개인 현대 공학(modern engineering)에 촛점을 맞춤으로써 추적한다. 동시에, 이 연구는 지금껏 오랫동안 사회이론가들을 사로잡아 온 거대한 물음들 - 즉, 사회발전은 어느 정도로 기술상의 진보에 빚지고 있는가, 또한 이 둘은 어떤 방식으로 상호연관되어 있는가 - 을 새로이 제기하고자 한다.

오늘날 대다수의 역사가들에게 있어 다소 조악한 결정론이 역사적 설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역사가들은 대규모 공장의 등장이나 교육기관의 발달, 윤리의 변화 등을 설명함에 있어서 현대적인 기술(modern technology)의 요구를 이 모두의 원인이 되는 요소로 파악해 왔다. 하지만 그들은 바로 그 기술적인 요구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연구를 수행하지 않았고, 그 결과 현대적 기술은 그 실체가 모호한 허깨비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 즉, 역사가들이 역사적 발전을 설명할 때 써먹을 수 있는 편리하면서도 모호한 도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예를 들자면, 20세기와 19세기를 구분하는 주된 특징은 현대적 기술이 존재했다는 사실 그 자체 - 사실 이러한 기술은 두 세기 모두에 존재했었다 - 보다는, 특정한 어떤 영역(즉, 기술적 영역)에서의 활동이 사회 전체의 활동을 규정하는 정도가 얼마나 달라졌는가에서 찾아야 한다.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19세기의 기술(technics)상의 혁명이, 과학과 유용한 기예(useful arts)의 결합을 거치면서, 20세기의 기술사회(technological society)로 이어지는 과정은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좋을까? 기술상의 혁명(revolution in technics)이 사회혁명(social revolution)을 낳은 것일까?

기술적인 활동의 확장과 더불어 생겨난 무수한 사회적 변화들을 동어반복적으로 설명하는 것 - 즉, 그것들의 원인을 기술적 활동의 본질적 성격(그것은 확장한다!)에 돌려 버리는 것 - 은 이제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최근 사회분석의 표준적인 도구는 현대적 기술을 그 자체의 삶이 있는 것처럼 - 다시말해 그것을 풀어놓은 사회를 거꾸로 자양분으로 삼아 내부적인 동력을 갖는 것으로 - 보는 것이다. 현대적 기술은 그 자체에 내재한 논리에 따라 추동되고 인간 활동(의식적인 활동과 무의식적인 활동 모두를 포괄하는)을 통해 작동하면서, 궁극적으로는 그것 자체를 낳은 의식적 행위를 능가하여 결국 인간이 메커니즘 속에서 기능적인 역할만을 담당하는 사회를 창출해 낸다. 사실 인간에 의한 피조물이 그 창조자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관점 - 현대적 신화의 공통된 테마이기도 한 - 에는 진실의 핵심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은유가 미묘한 방식으로 역사를 대체해 버릴 때, 즉 사회적 과정의 풍부한 복잡성이 형식적인 기술의 냉혹한 논리로 환원되어 버릴 때 문제가 발생한다. 사람들이 실제로 사는 세상으로부터 인위적으로 추상된 그런 개념은 기술 그 자체는 물론이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한 사회까지도 왜곡시키게 된다.

불행히도 이러한 손쉬운 역사적 설명은 지금 널리 쓰이고 있으며, '기술'과 '사회'(혹은 '문화')가 마치 서로 완전히 다른 물질로 만들어진 것인 양 이 둘을 구분하는 통상의 개념적 관습에 의해 나날이 강화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개념틀 안에서는, 사회는 인간적인 모든 것들을 담고 있는 것이고 기술은 인간적인 것이 아닌 '무언가'로 파악되기 때문에, 결국 그 어느 인간과도 무관한 역사적 힘이 인간들의 일에 영향을 준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주1) 물론 모든 사회이론가들이 이렇게까지 심한 건 아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기술의 역할에 대한 고전맑스주의의 관점은 이보다 복잡미묘하며 설득력이 있다. 여기서 사회(사회적 관계들)와 기술(생산력) 사이의 근본적 관계는 변증법적인 것으로, 이 둘은 구분되는 존재이긴 하지만 결국에는 단일한 사회적 생산과정의 서로 다른 측면을 가리키는 것이다. 새로이 등장한 자본주의의 계급간 사회관계(social relations)가 사회적 잉여의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한, 이는 이 사회관계를 한편으론 반영하고 다른 한편으론 강화시키는 보다 정교한 생산력(forces of production)의 발전 역시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역으로 바로 이 생산력은 실제적인 사회적 생산활동의 변형 - 보다 인간적인 사회질서의 기반을 서서히 쌓아 감으로써 기존의 사회관계에 도전하게 되는 물질적 변화 - 을 가져온다. 사회적 생산의 역사적 과정은 생산력과 사회관계 사이의 이러한 상호관계를 포괄하고 있다; 즉, 사회는 자기 자신을 위해 생산하면서 이와 동시에 자기 자신과 그 작업 관습, 조직들, 사람들 사이의 관계들, 현실에 대한 주류적 이해 등을 생산하고 또 재생산하는 것이다. 결국 맑스의 기술-사회 변화 이론에서 결정적인 요소는 생산력 발전이 갖는 이중적인 중요성이다: 생산력 발전은 기존의 사회관계를 강화시키지만 한편으론 그것의 기반을 약화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관계와 생산력은 서로 조응하지만 한편으론 서로 모순되기도 한다.

맑스의 관점에 따르면, 산업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회적 생산의 속도가 자본축적을 위한 경쟁과 보다 강력하고 이윤율이 높은 생산수단에 대한 요구 때문에 점점 가속화된다. 이러한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특정한 자본주의적 사회관계, 즉 자본가의 생산수단(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포함해서) 소유와 잉여생산물의 사적인 전유에 기반한 사회관계는 정교한 생산력 - 과학적이고 노동절약적이며, 사회적으로 통합된 - 의 급속한 발전 역시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역으로 이러한 새로운 생산력은 새로운 사회질서의 도래를 약속한다. 이 새로운 사회질서는 과잉생산, 경제적 위기, 낭비적인 경쟁, 다수에 대한 소수의 일상적인 착취, 아무 생각없는 세부노동, 육체적인 고역 등의 자본주의적인 충격(trauma)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의한 생산수단의 공동소유, 협동기업, 사회적 필요의 충족을 위한 자원의 합리적인 배분, 사회적 개인들의 완전한 인간적 발달 등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따라서 이러한 새로운 생산력에 비추어 보면 자본주의적인 관계들은 점차 시대착오적인 것 - 보다 원시적(primitive)인 과거가 남긴 경직되고 억압적인 흔적임과 동시에, 앞으로의 사회 발전에 장애가 되는 것 - 으로 보이게 된다. 여기에 필수조건인 피착취계급의 혁명적 의식 - 이 자체는 사회적 생산의 현실태와 잠재태 사이의 불균형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나타난다 - 이 주어지면, 모순은 혁명으로 분출하고 낡은 자본주의적 외피는 벗겨진다. 맑스 자신의 말을 빌자면, "사회적 단위들의 발전에서 서로 다른 두 가지 측면인 생산력과 사회관계는 자본의 입장에서는 단순한 수단 - 자본이 제한된 물적토대 위에서 생산하는 수단 - 에 불과한 것이지만, 실은 이것이야말로 그 토대를 하늘 높이 날려버리는 물질적 전제조건이 되는 것이다."(주2)

현대 기술에 대해 맑스가 취한 본질적으로 해방적인 관점은 기술관료적 입장을 갖고 있었던 베블렌(Thorstein Veblen)에게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베블렌에게 있어서 산업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모순은 수지맞는 장사(business)와 산업(industry) 사이의 모순이자, 가격 체계(price system)과 엔지니어 간의 모순이었으며, 비합리적인 시장의 논리와 지극히 합리적인 과학의 논리(작업에 기울이는 단순하고도 숭고한 열정과 연관되어 있는) 사이의 모순이기도 하였다. 기존질서에 비판적이었던 많은 동시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베블렌은 과학적 산업이 점하고 있는 우위가 궁극에는 시장 사회가 전복되는 사회적 혁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 사의 수석 엔지니어이자 독일에서 이주해 온 사회민주주의자였던 찰스 스타인메츠(Charles Steinmetz) 역시 이러한 생각을 (다소 변형된 형태이긴 하지만) 공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당시로 볼 때 보기드문 현상은 아니었다. 그는 거대한 회사(corporate firm)들이 급격히 부상하는 것이 생산수단의 합리적 재조직화와 중앙집중화로 해석될 수 있다고 보았으며, 따라서 이는 사회주의로 가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전주곡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주3)

하지만 다른 20세기의 관찰자들은 현대 기술의 해방적 잠재성에 대해 이와 같은 열렬한 믿음을 보이지 않았다. 막스 베버(Max Weber)와 보다 최근의 자끄 엘룰(Jacques Ellul)은, 기술진보에 의해서 자본주의가 소멸하거나 적어도 상당히 쇠퇴할지도 모른다는 점에는 동의하였지만, 기술진보 그 자체 - 기술(technique)과 기능적 관료제의 불가피한 발전의 결과로 생겨나는 - 가 이성을 마비시키는 도구성의 그물을 직조하면서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변형을 가져올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 이들에 의하면 현대의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것은 자본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자본주의에 의해 그 틀이 짜인 현대의 기술적·관리적 생산구조이다. 이와 유사하게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는, 서양문명의 역사를 통해 볼 때 기술발전(및 이와 상관관계를 갖는 전쟁)에 대한 부당한 강조가 인간사회에서 동등하게 중요한 다른 행위들을 희생시키면서 이루어져 왔음을 설득력있게 주장하였다. 그 결과 수많은 인간의 능력들이 쇠퇴하였으며, 기계의 신화에 깊이 사로잡혀 인간이 그것에 복종하게 되는 일이 생겨났다고 멈포드는 주장하였다.(주4)

한편, 또다른 비판자들은 기술진보에 대한 이러한 회의적 견해를 고전맑스주의 이론과 결합시키려고 노력해 왔다. 예를 들어 게오르그 루카치(Georg Luk?cs)는 현대의 자본주의적 생산이 노동자들의 정신에 미치는, 신비화시키고 의식을 마비시키는 효과 - 일찌기 맑스에 의해 묘사된 소외(alienation)와 물신화(reification)의 이중적 과정 - 를 분석함으로써, 요구되는 생산력 발전이 성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충분할 정도의 혁명적 의식이 유럽에서 나타나지 않았는가를 설명하려고 시도하였다.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와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Adorno)는 20세기의 권위주의(authoritarianism)적 체제의 근원을 자본주의의 역사에서뿐만 아니라 계몽사조기의 과학혁명에서도 찾으려고 하였다. 허버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는 이러한 딜레마를 다른 누구보다도 분명히 인식하고, 이에 정면으로 맞선 인물이다. 그는 베버가 합리화(rationalization)의 개념을 몰역사적으로 사용한 것을 비판하고, (마치 자기 자신에게 다짐이라도 하듯) 현대 기술 내부에 존재했던 요구들이 자본주의적 지배에 맞게 고도로 정교화된 형태로 이미 현실화되었음을 주장하면서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기술이 해방의 도구가 되지 않고 오로지 계급 헤게모니를 위한 도구로만 쓰이게 되었는가? 그는 다른 곳에서 쓰기를, "지금 위기에 처한 것은 다름아닌 기술진보(technical progress)와 산업의 발전을 가능하게 한 제도(institution)간의 양립가능성이다"라고 했다. 무엇이 사회관계와 생산력간의 근본적인 모순을 구성하는가? 표면으로 돌출해야 마땅한 이 둘간의 긴장관계가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오히려 "기술진보가 부자유를 영속화시키고 강화시키는 도구로 사용되"며, 유일하게 "새로운 점"이라고는 "이 비합리적인 사업(entertrise) 속에 합리성이 넘쳐흐르는 것"이라는 기묘한 현상은 대체 어떻게 일어난 것인가? 바로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던져진 물음들이다.(주5)

본 연구는 동시에 발생한 두 개의 사건, 즉 현대적 기술의 출현과 담합자본주의의 부상을 미국 내의 사회적 생산(social production)이라는 동일한 과정의 상이한 두 가지 측면으로 파악하고 이를 탐구한다. 필자는 생산력과 사회관계 사이에 엄격한 구분을 두지 않고, 맑스가 그랬듯이 이 둘을 근본적으로 상호연관된 것으로 파악한다: 즉, 이들 중 하나를 연구하는 것은 곧 다른 하나를 연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기술은 인간의 역사에서 단순히 추동력의 구실만 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은 그 자체로 인간적인 어떤 것이다(For technology is not simply a driving force in human history, it is something in itself human); 그리고 기술은 단순히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어떤 것이 아니라 인간들로 '구성되는' 것이다(it is not merely man-made, but made of men). 기술을 축적된 과학지식과 기술적 숙련, 도구들, 논리적 습관들, 사람들이 만들어낸 생산물들 등등의 결합으로 적절히 설명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기술은 항상 이것 이상의 그 무엇이며 정보나 논리, 사물들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다. 기술은 특정한 이해관계와 목표를 지니고, 특정한 사회적·역사적 맥락 속에서 다양한 활동들을 벌여 나가는 사람들 그 자체이다. 마르쿠제가 관측한 바와 같이, "우리는 인간들 개개인에 대한 기술의 영향이나 효과를 따져묻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미 그 자체로 기술을 구성하는 일부분이며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는 기계를 발명하거나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에만 한정되는 얘기가 아니라, 그것의 응용과 활용의 방향을 정하는 하나의 사회집단으로서의 '사람들'에도 역시 해당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생산 양식(mode of production)이자 기계 시대(the machine age)를 특징짓는 도구, 기구, 고안물들의 총체로서의 기술은 이와 동시에, 사회적 관계들을 조직하고 영속화(혹은 변화)시키는 양식이며, 널리 퍼져 있는 사고 및 행동 유형들의 표현이며, 통제와 지배의 수단이기도 한 것이다."(주6) 그 본질에 있어 인간을 이미 내포하는 현상인 기술은, 따라서 하나의 사회적 과정이다; 기술은 사회 외부에서 단순히 사회 발전을 자극하는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사회 발전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새로운 생산활동 유형에 맞게 사람들을 준비시키고 동원시키고 그것에 길들게 하는 것, 사회적 투자 모형을 다시 설정하는 것, 사회제도들을 재구조화하는 것, 그리고 궁극에는 사회적 관계들을 다시 정의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게다가 기술이라고 불리는 이 사회적 과정은 그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 속에서 독립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사회 전체의 발전의 한 중요한 측면일 뿐이다.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와 동시에 기술을 구성하는 인간적 요소들도 되기 때문에, 기술은 그 자신을 생산해 내고 유지시키는 특정한 사회질서의 윤곽을 필연적으로 그 속에 반영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이 관여된 모든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기술은 저절로 진보해 나가지 않는다. 기술은 그것을 끌고 가는 주관적 요소들을 포함하며,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다른 이들과의 투쟁을 거쳐 확보한 특정한 형태를 내포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 그리고 이와 병행하는 사회 발전은 사물들과 물리적인 자연법칙 사이의 기계적 관계들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지만, 이와 아울러 그 발전을 바라보는 전망의 폭과 그 발전을 가능하게 한 특정한 사회질서에 대한 관념에 의해서도 결정되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이 역사적인 실체[기술]는 항상 그 속에 필연성(necessity)뿐만 아니라 일련의 가능성(possibility)들 - 특정의 사람들이, 사회적 궤적에 대한 특정한 관념에 따라서, 특정한 목적을 위해 유지하고 있는 - 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주된 테제는 미국에서 현대 기술의 등장과정이 담합자본주의가 부상하게 되는 과정과 사실상 동일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 둘은 모두 산업자본주의의 운동방식(modus operandi)의 변화에 기여하였다. 전자는 과학을 생산과정에 끌어들임으로써 무제한의 생산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을 제공하였고, 후자는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경쟁시장경제가 내포하는 파괴적 경향을 생산, 분배, 가격의 조절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제거하였다. 하지만 이들 중 그 어느 것도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적인 사회관계, 즉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자본가와 생존을 위한 임금을 벌기 위해 노동을 팔아야 하는 노동자 사이에 성립하는 관계를 넘어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러한 관계와 이에 의해 뒷받침되는 이데올로기는 앞서 언급한 이중적 과정에 의해 더욱 심화되었고, 자본주의는 변화에 의해 약해진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강화되었다. 마르쿠제의 표현을 빌자면, "불평등과 노예 상태의 재생산" 위에 단지 "기술이라는 베일(technological veil)"이 드리워졌을 뿐인 것이다.(주7)

본 연구는 이 '변화 없는 변화(change without change)'를 설명하려 시도하고 있다. 필자는 생산력의 비약적인 진보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사회관계가 여전히 온존되고 있는 현상을, 이러한 기술적 진보의 원천인 현대 공학(modern engineering)의 본질과 관련하여 부분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주8) 왜냐하면 현대 공학의 최우선적 담지자로서 19세기 말 미국에서 등장한 전문직업화된 엔지니어 집단이 다른 한편으로는 회사자본(corporate capital)의 대리인으로서의 역할도 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엔지니어들은 논리적으로 일관된 "기술적 이성(technical reason)"의 명령에 따라 맹목적으로 '인류 공동의 사업'의 진보를 위해 최전선에서 노력하는 따위의 시도는 애초부터 하지도 않았다. 엔지니어들은 자신들의 작업이 회사의 성장과 안정, 통제(corporate growth, stability, and control)라는 역사적 임무를 띤 것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개발해 낸 기술이 진보해 감에 따라, 그들이 일하던 과학에 입각한 대기업(science-based industrial corporation)들 역시 진보해 갔다.

여기서 엔지니어들은 한 발 더 나아가서 자신들의 기술적인 작업을 회사 내부의 사회관계(corporate social relations)에 대한 강조와 뒤섞어 놓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관심사를 기술적(technical)인 문제에 한정하지 않았으며, 의식적으로 노동력을 조직하고 담합자본주의에 요구되는 사회적 관습을 배양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주9) 한마디로 말해, 그들은 하나의 새로운(사실은 낡은) 사회질서 - 사적인 회사(private corporation)들에 의해 지배되고, 조절된 과학기술의 진보에 기반하는 - 를 고안하는 데 투신했던 것이다. 사회적 생산의 변증법에서 양 극단, 즉 생산력과 사회관계, 산업과 사업, 공학과 가격 체계 각각의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관계는, 회사의 이익에 봉사하는 공학(corporate engineering)의 사고틀 속에서 관리(management)라는 미명 아래 붕괴해 버렸다.

이 책의 전반부에서는 맑스의 표현을 빌자면 "현대의 기업이 과학을 노동과는 구별되는 하나의 생산력으로 전화시키고 그것을 자본의 이해에 복무하도록 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여기서는 세 개의 상호교차하는 경로 - 과학에 직접기반한 산업의 등장, 기술교육(technical education)의 발전, 그리고 전문직업화된 엔지니어들의 등장 - 을 따라 과학과 유용한 기예(useful arts)의 자본주의적 결합과정을 추적하며, 이와 동시에 앞서 언급한 19세기의 세 가지 발전 각각이 어떻게 담합자본주의적인 사회적 생산(corporate social production)으로서의 기술의 사회적 과정을 반영하고 그것에 기여했는가를 보여 준다. 19세기 말에 이르면, 기업병합(consolidation)과 특허권의 독점, 기업합동(merger) 등을 거쳐 과학에 직접기반한 전기·화학산업 분야는 몇몇의 거대기업들에 의해 지배받게 된다. 교육과정과 활동자격 부여(licensing)에 대한 통제를 통해, 전문직업화된 엔지니어들은 과학기술 관련 작업에 대한 독점적인 권한을 얻었다. 그리고 기술영역에서 잘 훈련된 사람들을 다수 고용함으로써 대기업(industrial corporation)들은 전문직업화된 엔지니어들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확보했다 (마르쿠제는 이를 보고, 이 엔지니어들은 "스스로의 합리성을 좇아서, 이윤이 생기는 곳에 그들의 합리성을 위치시키는 사람들 뒤를 따른다"고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현대의 기술은 계급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상이 되었고, 달리는 담합자본주의의 심장부가 되었다.(주10)

게다가 몇몇 엔지니어들은 계급통제에 있어 이런 식의 객관적인 참여만 하는 정도를 넘어섰다. 기술학교들의 교육담당자로서, 전문학회들의 지도격인 인사로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과학에 기반해 새로이 등장한 대기업(industrial corporation)들의 관리자이자 실무책임자로서, 엔지니어들은 그 속에 자신들이 가담한 다양한 활동들이 하나의 통합된 전체를 이룬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회사(corporation)들과 기술학교들, 그리고 전문직업화된 엔지니어들을 생겨나게 한 19세기의 사회적 생산의 과정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것이 '회사원리에 기반한 개혁(corporate reform)'의 세계관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 책의 후반부는 이러한 새로운 관념에 따라 미국을 형성(design)해 나가고, 대기업들의 재정지원을 받는(corporate-sponcered) 현대 기술의 진보를 위한 기구(apparatus)를 만들어 나가고, 동시에 담합자본주의의 안정과 성장을 보장하기 위해 20세기에 의례껏 행해지는 행위들(twentieth-century routine)의 유형을 확립해 나가는 엔지니어들의 일련의 노력들을 보여 준다.(주11) 그들의 수행한 작업들은 아주 광범위하게 걸쳐 있는데, 여기에는 산업적·과학적 표준화(standardization) 작업, 특허 개혁, 산업연구와 대학연구의 조직, 그리고 공립학교와 고등교육의 변형 등이 포함된다.

모든 인간 활동이 그렇듯이, 이러한 개혁을 추진하는 사람들[corporate reformer]의 작업도 사전 계획에 따라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개혁은 공장에서, 정부청사에서, 법정에서, 학교에서, 거리에서 진행되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치열한 투쟁의 형태를 띠었다. 하지만 개혁을 시도한 엔지니어들에게는 반대파들이 결여한 몇몇 중요한 이점들이 있었다. 우선 그들은 새로이 등장한 대기업 내부에서, 그리고 미국 내의 부유한 엘리트들 간에 형성된 정치적·경제적·사회적·가족적 유대 속에서 높아진 지위를 누리고 있었고, 이에 기반한 사회적 권력과 특권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과학'이라는 기치 아래서 전진함으로써 반대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는 점 역시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회사에 고용된 엔지니어(corporate engineers)들은 자신들이 공장이나 실험실에서 작업하는 것만큼, 사회개혁의 영역에서도 체계적으로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기에) 과학적으로 전진해 나갔다. 그들의 특정한 목적이 무엇이었건 간에, 그들은 과학의 권위를 빌어 방향을 추구해 나갔고 과학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방어했다.

따라서 충분히 예상가능한 바와 같이, 그들이 현대 기술이라는 사회적 생산과정을 인지했을 때, 그들은 동시에 자신들의 힘으로 사회적 생산의 기술(technology of social production), 즉, 현대의 "과학적" 관리법(modern "scientific" management)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이는 이 책의 마지막 장(章)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과학영역에서 훈련을 받고 대규모 회사 속에서 키워진 이 엔지니어들은 현대적 관리(modern management) 속에서 담합자본주의의 요구와 과학기술을 융합시켜 하나의 공식적 체계(formal system)를 만들어 냈다. 공학의 초점이 자연적인 영역에서 사회적인 영역으로, 또 생산력에서 사회관계로 이동하는 것을 잘 보여 주는 이 현대적 관리라는 개념은, 이 둘 모두를 회사원리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corporate society)의 테두리 내에 들어맞게 함으로써 이 둘 사이의 긴장을 완화시키려는 의도적인 노력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게다가 이 엔지니어들이 산업 내부의 관리자가 됨에 따라 사적 자본은 현대 기술의 등장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고, 관리 전문가들은 객관적인 과학의 승인을 자본의 힘에 부여하였다. 작동하고 있는 생산기계 뿐만 아니라 대기업의 전체적인 관료적 운영까지도 효율적이고 잘 운영되는 기제(mechanism) - 바로 기술적 이성(technical reason)의 구현체인 - 의 가면을 쓰고 있음을 보라. 이에 대한 개별적인 반대는 "비합리적인(irrational)" 것으로 비칠 따름이다.

따라서 이 책은 무엇보다도 기술이라는 베일(technological veil)을 벗겨내려는 시도로서 그 중요성을 갖는다. 기술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세상을 사람들의 손가락 끝에 갖다나르고 있는데, 사람들은 오히려 갈수록 기술이라는 것에 정확히 손끝을 갖다대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현대 기술이 사회 생활의 지배적인 한 측면이 되자, 널리 퍼진 신화가 진화해 나온 것이다. '역사 속에서 인간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제 1운동인(prime mover)'과 같이 주어지는, 기술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널리 퍼진 시기가, 실은 현대 기술이라는 사회적 과정이 사적인 회사자본(private corporate capital)이라는 특정한 형태를 띠는 인간권력의 의도적인 통제 아래 들어가기 시작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은 다분히 역설적이다.

저절로 작동하는 시장의 요구, 전문직업화와 세분화, 합리화된 관리, 그리고 대기업의 기술인력 독점 등등의 현상들은 역사 속에서 '자율적인 힘으로서의 기술'이라는 관념이 나타나게 되는 것에 기여한 요소들이다. 만약 사회적 분석이, 드러나 보이는 기술적 필연성의 배후를 꿰뚫어 보지 않고 현실에 대한 이런 식의 관념만을 반복하기만 한다면, 이는 점점 더 일반적인 신화에 기여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모호해져 버린 특정한 사회관계를 강화시키게 될 것이다. 이 연구는 기술에 대한 신화화된 관념을 그것이 추상되어 나온 실제 행위와 다시 통합하고, 은유 대신에 다시 역사를 대입함으로써 기술을 다시 인간적인 결과물로 드러내려는 하나의 시도로서 의미를 가질 것이다.
 
 
 
 

<  각   주  >

(주1) 이러한 사고습관은 역사가들에게 중요한 것인데, 이는 역사 그 자체에 대한 설명으로서가 아니라 역사 서술에 있어서 반복되는 양상인 '역사의 신화화'에 대한 하나의 예로서 그러하다. 이러한 사례들을 연구하는 것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역사적 기록들의 틈새를 메꾸어 나가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역사가들에 의해서 이러한 오류가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신화의 외피를 벗겨내고, 역사를 초인간적(super-human) 혹은 비인간적(non-human) 요인이 아닌 인간적 요인들로 조리있게 설명해 내고, 또 역사가 필연성에 전적으로 지배되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자유에 의해서 지배되는 영역이기도 함을 보여주는 것 - 이것이야말로 역사가들의 최우선적인 과제이다. 역사가들은 사람들이 과거에 어떻게 역사를 형성해 왔는가를 묘사함으로써, 지금 현재에도 역시 사람들이 역사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주2) Karl Marx, Grundrisse, translated by Martin Nicolaus (New York: Vintage Books, 1973), p.706.

(주3) Thorstein Veblen, The Engineers and the Price System (New York: B.W.Huebsch, 1921) 을 보라. 이 책에 대한 가치있는 언급으로는, Edwin Layton, "Veblen and the Engineers," American Quarterly, Spring 1962, pp.64-72 이 있다. 그리고 Charles Steinmetz, America and the New Epoch (New York: Harper and Brothers, 1916) 도 볼 것.

(주4) Hans Gerth and C. Wright Mills, eds., From Max Weber: Essays in Sociolog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46) 와 Jacques Ellul, The Technological Society (New York: Alfred A. Knopf, 1964), 그리고 Lewis Mumford, Technics and Civilization (New York: Harcourt, Brace, Jovanovich, 1934) 와 The Myth of the Machine, 2 vols. (New York: Harcourt, Brace, Jovanovich, 1967,1970) 등을 볼 것.

(주5) Georg Lukacs, History and Class Consciousness (Cambridge: MIT Press, 1968) 에 실린 논문 "Class Consciousness" 와 "Reification and the Consciousness of the Proletariat" 를 보라.

그리고 Max Horkheimer and Theodor Adorno, Dialectic of Enlightenment (New York: Herder and Herder, 1972) 를 볼 것. 이에 대해 토론한 구하기 쉬운 책으로는 William Leiss, The Domination of Nature (New York: George Braziller, 1972) 과 호르크하이머의 고전 Eclipse of Reas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1947) 등이 있다.

여기에 인용된 마르쿠제의 견해에 대해서는 Herbert Marcuse, Negations (Boston: Beacon Press, 1968)에 실린 논문 "Industrialization and Capitalism in the Work of Max Weber" 과 Marcuse, One-Dimensional Man (Boston: Beacon Press, 1964)를 볼 것. 인용부분은 One-Dimensional Man의 29쪽과 32쪽이다. 그리고 Jurgen Habermas, Toward a Rational Society (Boston: Beacon Press, 1970) 에 수록된 하버마스의 논문 "Technology as Ideology" 을 참고하라.

(주6) Herbert Marcuse, "Some Social Implications of Modern Technology," Studies in Philosophy and Social Science, IX (1941), p. 414.

(주7) Marcuse, One-Dimensional Man, p. 32.

(주8) 이 주장이 뭔가 거창한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엔지니어들은 사업과 과학 양자 모두의 담지자이기 때문에, 그들이 기술적(technical)인 작업을 할 때 자본주의 체제의 명령과 기술발전에 내포된 사회적 잠재성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관계를 해소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에게 있어 기술이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본주의를 강화시키는 수단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기술진보가 어떤 유형을 취하는가의 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기술은 자본주의적 요구에 긴밀히 조응하면서 진화해 나가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엔지니어들이 이 점에 있어 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그 결과 기술진보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사회로의 약속을 담지 않게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엔지니어들이 자신들의 전문적 행위의 영역을 점차로 확장해 의도적으로 담합자본주의의 사회관계들을 유지·강화하고, 노동자들로 하여금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시스템에 맞서게 하기보다는 시스템 내에서 일하도록 부추기게 된 것은 부분적으로 앞서의 이유에 기인하는 것이다. 엔지니어들의 노력이라는 요인만으로는 미국에서 자본주의가 살아남은 사실을 설명할 수 없음을 여기서 말해 두어야겠다. 다른 요인들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미국이 점차 군사적으로 주도적인 위치를 점함에 따라 비약적인 경제 성장이 가능했으며, 이에 따라 전세계적인 시장과 산업자원에 대한 접근이 용이했다는 점; 경제의 정치화(politicization of the economy) 현상과 경제안정을 가능하게 하는 힘으로서의 국가의 중요성이 부상한 점; 그리고 광고를 통해 의도적으로 소비문화(consumer culture)를 조장함으로써 잠재적인 혁명 에너지를 흡수·제거한 점 등등. 물론 이 다양한 요인들의 상대적인 경중(輕重)을 가리기 위해서 (자연과학에서와 같은) "통제된 실험(controlled experiement)"을 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필자는, 충분히 만족스런 설명을 하기 위해서 현대의 대기업(corporate industry)의 등장에서 엔지니어들의 역할이 반드시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으로 필자의 주장을 한정하려 한다.

(주9) 따라서 엔지니어들은 과학기술과 담합자본주의의 상호연관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두 가지 방식으로 작업하였다: 그 중 하나는 기계와 생산과정의 설계자로서 수행하는 기술적(technical)인 작업 그 자체이고, 다른 하나는 관리자로서, 교육담당자로서, 사회개혁가로서 수행하는 보다 폭넓은 활동들이다. 이 책에서는 이 중 후자 쪽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필자가 지금 진행중인 또다른 연구에서는 기술적(technical)인 작업 그 자체(특히 자동화된 기계장치의 발전)를 보다 세밀하게 다루려 한다. 이 연구는 노동력의 관리 통제와 같은 기술외적인(extra-technical) 고려가 어떻게 기계의 고안과 이용에 영향을 끼치는지를 정확히 알아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10) Karl Marx, Capital (Chicago: Charles H. Kerr and Co., 1926), I, p. 397; Marcuse, "Some Social Implications of Modern Technology," p. 424.

(주11) 윌리엄 애플맨 윌리엄스(William Appleman Williams)가 우리에게 일깨워 준 바를 되살려, 책의 머리에 강조해 두고 싶은 것이 있다. 이 책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목적을 미리 인지하고 행동하는 것은 '음모(conspiracy)'와는 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