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데어에서 버지니아 슬림까지(역주 1): 미국 사회에서의 여성과 기술
 

루쓰 코완
 

'미국 사회에서의 여성과 기술'이라는 주제를 두고 지난 200년간을 돌아보는 글을 써 달라는 제안이 처음 내게 들어왔을 때,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과연 기술변화에 대한 여성의 경험이 남성의 경험과 두드러지게 달랐을까? 철도의 도입이나 베세머 제강법(Bessemer process)의 발명, 수확기의 확산 등이 남성인구와 여성인구에 대해 각각 다른 영향을 미쳤을까? 지금까지 나온 대부분의 미국 기술사(혹은 좀더 넓게 서양 기술사) 책들을 읽어 봐서는 중요한 [성적] 차이가 존재했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주제는 아마도 전혀 문제거리가 되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여러 달 동안 이 문제를 놓고 숙고했고, 그 결과 지금까지의 기술사에서 여성의 관점이 빠져 있었던 것은 역사적 실재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를 서술했던 역사가들의 문제였다는 결론에 점차로 도달하게 되었다. 여성과 기술이 맺는 관계는 적어도 네 가지의 중요한 의미에서 남성과 기술이 맺는 관계와 차이를 보인다. 나는 지금부터 이들 각각을 차례로 살펴볼 것이다. 지난 200년간을 회고하는 대부분의 글들이 그렇겠지만, 아래에서 내가 말하는 것은 최종적인 어떤 것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연구방향을 시사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미리 말해 둔다.
 

아이들을 출산하고 양육하는 사람으로서의 여성
 

여성은 월경을 하고 출산을 하고 수유를 한다; 반면 남성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과정들에 영향을 주는 어떠한 기술도 남성보다는 여성에 대해 더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런 기술에는 많은 종류가 있고, 그들 중 일부는 대단히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페서리(pessary), 생리대, 탐폰(tampon), 다양한 자궁내 피임기구들, 분만용 마취제, 고무 젖꼭지, 우유병 살균소독기, 저온살균된 농축우유 등등. 심리학자들은 앞서의 세 가지 과정들 ― 월경, 출산, 수유 ― 이 개개인의 심리적 발달 과정에서 근본적으로 중요한 경험이 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따라서 기술사를 공부하는 분별있는 학생이라면 그런 과정들에 대한 기술적 개입의 역사가 상당히 세부적인 내용까지 알려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 분별있는 학생은 물론 틀렸다. 표준적인 기술사 책들 ― 싱어(Singer)의 책, 크란쯔버그(Kranzberg)와 퍼셸(Pursell)의 책, 도마(Daumas)의 책, 기디언(Giedien)의 책, 그리고 심지어 퍼거슨(Ferguson)의 참고문헌 목록에 이르기까지(역주 2) ― 의 색인들에서는, 예컨대 아기 우유병과 같은 중요한 문화적 인공물에 관해서 단 한 차례의 언급도 찾아볼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기본적인 생물학적 과정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고, 무수한 아기들과 어머니들이 겪는 인간적 경험을 근본적으로 변형시켰으며, 저개발국들에 수출되어 상대적으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서구 기술 중 하나인 간단한 도구, 즉 아기 우유병(그에 따라다니는 우유배달 시스템(!)까지를 포함해서)을 보게 된다 ― 그러나 그 간단한 도구는 우리의 기술사에서 아직까지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연구자들이 아기 우유병에 대해 마땅히 물어봄직한 일군의 질문들이 있다. 그것은 얼마나 오랫동안 서구 문화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었는가? 어머니의 젖을 줄 수 없을 때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 우유병을 이용했고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 유모를 썼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우유병의 사용이 널리 확산되는 과정에서 보다 중요한 결정요인은 어느 것이었는가, 우유 기술의 변화인가 아니면 병을 만드는 기술의 변화인가? 우유병을 만들어 판 사람은 누구이며, 얼마 정도의 가격에, 누구에게 팔았는가? 서로 다른 사회계층이나 민족집단(ethnicity)에 속한 어머니들은 이에 대해 각각 어떻게 반응했는가? 1920년대와 30년대에 소아과 의사들과 산부인과 의사들에 의해 널리 보고된, "모유가 충분치 않은(not enough milk)" 현상은 당시 안전한 아기 우유병이 등장한 것과 연결될 수 있는가? 어느 쪽이 원인이고 어느 쪽이 결과인가?

다른 예와 질문들을 들어서 이런 얘기를 계속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 이 정도면 나의 논점은 분명해졌을 것이다: 즉, 독특하게 여성적인 기술들을 다룬 역사는, 피임기술의 역사라는 유일한 예외를 제외한다면, 아직 서술된 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아이 양육의 기술 ―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 자동적으로 여성에게 한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언급되지 않은 많은 사회적 계약들에 의해 상당히 효과적으로 여성에게만 부과되어 왔다 ― 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자전거가 성인들의 수송에 미친 영향보다 유모차가 유아들의 수송에 미친 영향이 훨씬 더 지속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유모차에 대해서보다는 자전거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개인의 성격형성 과정에서 화장실을 사용하는 [유년기의] 훈련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과정에 연관된 다양한 기술들(값싼 흡수 재질, 부드러운 천을 댄 가구들, 기저귀 대여업(diaper services), 마루바닥을 완전히 덮는 카펫, 종이 기저귀 등등)에 의해 화장실 훈련의 관습들이 영향을 받았는지의 여부에 대해 조금도 아는 바가 없다. 어린이 침대(crib), 아기 놀이터(playpen), 이가 날 때의 아기 입에 물려주는 고리(teething ring), 흔들요람(cradle)과 같은 인공물들은 수확기나 동력 직기(織機)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문화와 자기 인식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임에도, 우리는 그것들의 역사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다. 물론 기술사(history of technology)는 새로운 연구영역이고, 따라서 연구자들이 그 동안 많은 여성적 기술들을 무시해 왔다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대체로 여성을 기술변화의 담지자로 간주하지 않으며, 가정이 기술변화의 장소라고 생각지도 않는다(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여성이 그곳에 거주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 가정들은 모두 틀렸다; 아담(Adam)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그 자손들은 그걸 잊어버리고 말았던 모양이다.
 

노동자로서의 여성
 

여성들은 일찍부터 미국의 시장경제의 일부분으로 편입되어 있었다. 식민지 시기에 그들은 예컨대, 소를 돌보고, 분만할 때 아기를 받아내고, 선술집을 운영하고, 신문을 발행하고, 장식달린 옷에 수를 놓았다. 산업화 시기에 접어들면서 그들은 직물 기계를 만지고, 종이 봉투를 접고, 시가(cigar)를 포장하고, 농작물의 수확을 돕고, 빨래를 하고, 장식달린 옷에 수를 놓는 등의 일을 했다. 자동화의 도래와 함께 그들은 이제 천공카드에 구멍을 뚫고, 전화교환대를 지키고, 쿠키를 포장하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환자들을 돌보고, 장식달린 옷에 수를 놓는 등속의 일들을 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을 하면서 그들은 때로는 토지의 형태로, 때로는 상품의 형태로, 때로는 현금으로 자신의 노동에 대한 보수를 지급받아 왔다.

그러나 여성노동자는 남성노동자와 다르다. 그리고 그 차이는 여성들 자신의 입장에서 보거나, 아니면 여성과 미국의 기술적 질서(technological order)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려는 시도에서 보거나 간에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여성에게 있어 그들의 삶을 규정짓는 경제적 사실들은 마치 그들에 관한 해부학적 사실[즉, 그들이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는 사실 - 역주]과 거의 등가일 정도로 결정론적인 것이었다; 그러한 경제적 사실들은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너무나 널리 퍼져 있어서 거의 보편적인 공리라고 불러도 무방할 지경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1) 동일한 일을 할 경우, 여성은 거의 언제나 남성보다 적은 보수를 받는다; (2) 집합적으로 판단할 때, 여성이 남성과 동일한 일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즉, 직무들이 성에 따라 유형화되어 있다); 그리고 (3) 여성들은 거의 언제나 자신들이 노동 인구에 일시적으로 참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주위의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로 생각한다.

노동자로서의 여성이 지닌 이러한 특성들은 산업화 시기 이전부터 유래한다; 이 특성들은 심지어 미국 경제가 현금에 의해 지배되기 이전에도 여성들의 삶을 규정짓는 경제적 사실이었다. 성에 따른 직무의 유형화는 초기의 제임스타운(Jamestown) 정착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으며, 가계 경제(household economy)가 공동체 경제(communal economy)를 완전히 대체하기 전에도 존재했다: 예컨대, 미혼이거나 가난한 여자들은 공동체 내부의 상점에서 세탁부로 일해 물건을 얻었던 반면, 토지를 할당받지 못한 남자들은 요리사나 빵굽는 사람으로 일했다. 동일한 노동에 대해 차등적인 보수를 받는 것 역시 초기 정착지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특성이었다: 메릴랜드(Maryland)로 정착하러 왔던 모험가들은, 그들이 함께 데리고 온 남자 하인 1명당 100에이커, 여자 하인 1명당 60에이커씩의 토지를 각각 할당받았다; 살렘(Salem)과 플리머스(Plymouth)에서 자유인[계약제 하인(indentured servant)가 아니라는 의미임 - 역주]인 미혼 남자는 요구할 경우에 토지를 할당받을 수 있었지만, 정착 초기의 몇 년이 지나고 나서는 미혼 여자는 토지를 할당받을 수 없었다; 미국에서 여성에게 동등한 경제적 권리를 부여하려는 최초의 시도는 1619년에 버지니아 주 하원 의회가 제출한 청원서일 터인데, 이 청원서에는 플랜테이션 건설에서 남편과 아내의 노동이 똑같이 중요하므로 이들 각각이 동등한 몫의 토지를 할당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이 노동 인구의 일시적인 구성원일 뿐이라고 간주하는 것 역시 당시의 많은 사례들로부터 볼 수 있다: 예컨대 여자아이가 계약제 노동이나 견습 일을 하도록 "집 밖으로 보내어졌을" 때 노동력을 공급받은 사람들이 아이에게 일(trade)을 가르쳐 주도록 요구받은 경우는 드물었다는 사실이나, 식민지 시기에 기업을 소유하고 운영했던 여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기업을 처음 설립했던 남자의 미망인이었는데, 이들은 그러한 근거에서만 자신들이 계속해서 고객들에게 단골로 남을 만하다고 의식적으로 선전했다는 사실 등이 그렇다. 딸을 둔 부모들은 자식들이 가사 일 이외의 어떤 일거리에 대해 알 필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다; 젊은 여자들은 미혼인 동안에는 자기 자신을 부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혼 후에는 유급의 일자리가 불필요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 될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결혼한 여자들은 남편이 죽거나 불구가 되지 않는 이상 유급의 일자리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그렇다 ― 산업화와 노조 조직화(unionization), 그리고 자동화의 물결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1964년에는 동일임금법(Equal Pay Act)을 제정하여 여성이 행한 동일한 노동에 대해서 동일한 보수를 지급하는 것을 법제화하려 했으나, 1973년까지도 여전히 여성들은 동일한 직종 분류에 속해 있는 남성들이 받는 보수의 37.8%에서 63.6% 정도밖에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력 기술의 발달로 수천에 이르는 직종들에서 수행되는 일이 수월해지고 간단해졌음에도, 노동시장은 여전히 성별로 유형화된 직업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 노동자의 "물리적 힘"이 얼마나 크고 작은지가 더이상 유효한 판단기준이 되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예를 들어, 뉴욕의 의류 산업에서 아직까지도 남자는 재단을 하고 여자는 재봉틀을 돌린다. 따라서 공장주가 고용할 노동자를 찾기 위해 노동시장에 들어간다고 할 때, 그는 숙련된 재단사를 찾을 경우와 숙련된 미싱공을 찾을 경우에 서로 완전히 다른 별개의 시장 ― 각각 독자적인 가격구조와 수요-공급 유형을 지닌 ― 에 진입하는 셈이 된다. 노동시장의 성별 유형화를 통계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1900년에서 1960년 사이에 남성이 노동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몇몇 직종들에서 여성 노동인구가 대거 도입되어 여성 중심의 직종으로 되는 변화가 나타났지만(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역방향의 변화를 일으킨 직종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성별 유형화의 정도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1900년에는 모든 직종 분야들에서 여성과 남성의 분포가 임의적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는 직장을 지닌 여성의 66%가 남성 중심의 영역으로 직업을 옮겨야만 했다; 1960년에 그 수치는 68.4%였다. (덧붙이자면, 1960년에 인종별 직무 유형화의 정도를 나타내는 앞서의 수치는 46.7%였다.)

그리고 여성들이, 자기 자신에 의해서건 아니면 다른 이들에 의해서건 간에, 노동 인구의 항상적인 구성원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식민지 시기에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사실이다. 젊은 여자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면 직장을 떠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위해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훈련을 받는 데 투자하려 하지 않는다. 고용주들도 같은 상황을 예상하기 때문에 여성들의 직업교육에 투자하려 들지 않는다 ― 그리고 그들의 의심에는 사실 상당한 통계적 근거가 있다; 여성들의 노동력 참가 비율은 18세에서 25세 사이에 급격하게 떨어지는데, 이 기간은 대부분의 여성들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이러한 태도들이 누적된 결과는 이렇다: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덜 숙련되어 있고 책임이 적은, 따라서 결국 보수가 적은 직무에 자리잡는 것을 더 선호하게 되고, 고용주들은 여성들을 그냥 그곳에 계속 두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노동자로서의 여성들이 지니는 이러한 세 가지 특성들 ― 여성들이 더 적게 받고 일하고, 성별 유형화의 결과로 많은 직업들이 그들에게 개방되어 있지 않으며, 그들이 노동 인구의 일시적인 구성원이라는(따라서 조직화하거나 노동조합으로 끌어들이기 힘들다는) 사실 ― 은 기술변화가 일어나는 속도(rates)에 대한 어떠한 논의에서도 주목할 만한 중요성을 지닌다. 비록 지금까지 이런 맥락에서는 거의 주목받지 못하긴 했지만 말이다. 우리는 어떤 주어진 산업이나 지역에서 기술변화를 유발하는 핵심적인 결정요인 중 하나로 노동력의 가격이나 이용가능성에 대해 고려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노동력의 가격이나 이용가능성이 노동력의 성별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하는 것에는 익숙치 않다. 노동자들의 성별이 기술변화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아래에 제시될, 서로 상당히 다른 두 가지 사례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첫번째 사례는 19세기 후반의 시가(cigar) 공업인데, 이것은 여성노동자들을 이용할 수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기술변화가 가속화된 경우에 해당한다. 19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시가를 생산하는 장소는 [가내공업 수준을 넘어] 공장(factory)으로 옮겨졌지만, 여전히 생산품은 남성 숙련노동자들 ― 대부분 스페인, 쿠바, 독일 출신의 ― 에 의해 완전히 수제품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1869년에 뉴욕의 시가 공업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했는데, 이에 대한 보복으로 몇몇 제조업자들은 고향에서 시가 만드는 작업에 종사하던 보헤미아 여자들의 이민을 추진했다. 이 여자들은 그들이 대체한 남자들만큼 숙련되어 있지는 못했고, 시가의 꼴을 만들기 위해 간단한 틀잡이 도구(molding tool)를 사용해야 했다. 또한 이들은 가정에서 일하는 것에 익숙했는데, 이는 곧 이들을 쉽게 차가(借家)생산 시스템(tenement system of manufacture)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뜻했고 고용주들에게는 이 방식이 훨씬 싸게 먹혔다. 여성노동자들을 이용하는 것은 파업을 파괴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그 이후 프랑스-프러시아 전쟁으로 보헤미아의 시가 산업이 붕괴하자 더 많은 여성 시가 노동자들이 이민을 오게 되었다. 1870년대와 1880년대를 걸쳐 뉴욕과 다른 곳들에서 또다른 남성 시가 노동자들의 파업이 있었는데, 그 결과 일부 제조업자들은 완전히 차가 시스템으로 전환하거나 여성노동자들도 작동시킬 수 있는 간단한 기계류(이 역시 유럽으로부터 기원한)를 도입하게 되었다. 이 경우에 여성노동자들이 선택된 이유는, 그들이 시가 만드는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더 적은 보수를 받고 일하고 [노조]조직화도 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뉴욕의 한 시가 제조업자가 1895년에 말한 바와 같이, ". . . 이제 수작업은 거의 사라졌다. 흡입 작업대(suction table)는 사실상 시가를 싸는 겉잎을 자르는 도구 이상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비용 절감에 이용될 수 있었다. 비용 절감에 더 크게 기여했던 것은, 그것을 가지고 작업하는 사람들이 전부 여자들이었다는 점이다."

이와는 다소 상반되는 사례가 20세기 여성의류 공업의 경우이다; 여기서는 여성노동자들의 존재 때문에 기술변화가 지체되었다. 19세기 말, 재봉틀이 최초로 중앙 동력원(증기기관이나 전기)에 연결되는 기술혁신이 일어난 이후에는 재봉틀을 돌리는 과정에서는 기술도입으로 인한 변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다소 기묘한 일인데, 여성의류 공업이 대단히 경쟁이 치열한 분야였다는 점, 그리고 재봉 일에 보조적인 다른 과정들 ― 예컨대 재단이나 다리미질 ― 에서는 상당한 기술변화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재봉 과정은 잠재적으로는 자동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지만, 제조업자들에게 자동화를 추진할 동기부여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자동화에 수반하는] 비용이 대단히 높았고 많은 회사들이 아주 소규모였기 때문이지만, 또다른 이유는 재봉틀을 돌리는 노동자들이 여성들이었으며 전통적 문화 속에서 재봉 일은 여성들이 기꺼이 하려 드는 일이었다는 점에 기인한다. 여성의류 공업은 다양한 부류의 상당히 숙련된 이민 여성들의 잇따른 물결에 의해 일할 사람들이 충원되어 왔다: 19세기 중엽에는 시골의 생활에서 탈출하기 위해 도시로 나온 미국의 농장 출신의 소녀들이 있었고, 그리고 나서는 이탈리아와 동유럽에서 이민온 여자들, 그 다음에는 남부에서 온 흑인 여자들, 푸에르토리코 여자들, 그리고 지금은 중국 여자들까지로 이어지고 있다. 이 여자들은 숙련 정도가 높았고 여성의류 공업은 여러 해 동안에 걸쳐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재봉틀 돌리는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임금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다른 숙련된 기계 조작자들에게 지급되는 임금보다 턱없이 낮았다. 그 결과, 재봉 과정과 관련된 기술은 거의 정적인 상태로 남아 있게 되었다.

한편, 노동자로서의 여성이 갖는 앞서의 특성들이 미국의 기술적 질서와 상호작용을 하는 또다른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여성노동과 기술의 관계에 대한 뿌리깊은 통념(shibboleth) 중 하나와 마주치게 된다. 먼저 지난 한 세기 동안 전체 노동 인구에서 여성의 수가 광범하게 증가한 것은 사실이며, 이 기간을 거치면서 몇몇 직업들(서기 일 같은 것)은 구성원들의 성별이 거의 완전히 바뀌었다. 그리고 같은 기간 동안 동력 기계가 많은 영역에 도입되어, 과거에 하기 힘들었던 노동을 하는 데 있어 더 적은 인간의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 것 역시 사실이다. 이상의 두 가지 사실을 조합하여, 역사가들과 일반인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해 내었다: 과거에 일을 하는 데 물리적 힘이 필요했기 때문에 여성들에게는 닫혀 있었던 노동영역들이 기술변화의 결과로 여성들에게 개방됨으로써 여성들이 노동력에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 라고 말이다. 이 결론은 거의 전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여성들은 산업화 이전에도 힘든 육체적 노동을 요구하지 않았던 몇몇 직업들에서도 남성노동자들을 대체했다(예컨대, 시가 제조업); 여성들은 심지어 중요한 기술적 변화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몇몇 직업들에서도 남성들을 대체했다(예컨대, 교사 직); 그리고 여성들은 기술변화가 일어나긴 했지만 육체적 노동에는 아무런 차이도 가져오지 않은 몇몇 직업들에서도 남성들을 대체했다(예컨대, 부기 작업). 이 모든 사례들에서 결정적인 요인은 육체적 노동이 아니라 [노동력의] 가격이었다; 여성들은 더 적은 보수를 받으면서 일했기 때문에 남성들을 대체하게 된 것이었다.

반면, 새로운 기계의 도입으로 노동방식이 변형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남성들을 대체하지 않은 많은 분야들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조판 작업(typesetting)이 완벽한 예가 될 것이다. 식민지 시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소수의 여성 식자공(植字工)들은 항상 존재했지만, 그들은 가장 규모가 작은 작업장 ― 많은 경우에 가족 소유로 되어 있던 ― 에서 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조판 작업은 19세기에 일반적으로 견습 과정을 통해 숙련을 습득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여자들은 견습공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쨌든, 여자들은 조판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없을 것으로 널리 믿어졌는데, 그 이유는 여자들이 무거운 활자 케이스를 조판 작업대에서 인쇄기까지 들어 옮길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여성 조판공들은 파업을 파괴하거나 임금을 삭감하기 위해 종종 고용되었고, 이런 관행 때문에 이들은 19세기 초에 생겨난 조판공 노조에서 인기가 없었다. 1887년에는 자동 주조 식자기(linotype machine)가 도입되었는데, 그 이후로는 조판 일이 타자치는 일과 비교했을 때 그보다 훨씬 더 힘들거나 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계의 다양한 개량형들이 등장했고 보다 최근에는 사진 식자기가 등장함으로써 일은 훨씬 더 쉬워졌다 ― 그러나 아직까지 여전히 이 영역은 남성들이 절대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19세기 후반에 여성들이 조판공 노조에 들어오도록 허용된 이후 여성 조판공들은 정해진 임금률(scale)에 따라 보수를 받으면서 일하는 조건에 동의하였는데, 이는 곧 고용주들이 이들을 고용할 유인(誘引)이 사라지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한 노동자 보호를 위한 노동법들이 나타나게 되면서 여성의 야간노동은 대단히 엄격하게 규제를 받게 되었는데, 대부분의 조판 노동은 신문을 편집하는 작업이어서 야간에 일해야 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여성들은 조판공이 되려는 생각을 품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기술변화는 여성들에게 있어 불확실한 축복(mixed blessing) 이상의 그 어떤 것이 되지는 못했다. 여성들에게 (생물학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들어맞는 많은 직업들이 그들에게 개방되었지만, 이 직업들 중 많은 것들은 최저의 숙련과 임금 수준을 가진 것이었고 여성들이 (어떤 이유에서건 간에) 남성들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 일하고 자기 자신을 노동 인구에서 주변적 성원으로 취급하는 것을 묵인하는 한 앞으로도 그곳에 머물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정주부로서의 여성
 

남성과 여성은 모두 가정에서 거주하지만, 오직 여성만이 그곳에 자신의 "자리"를 갖고 있다 ― 그리고 이는 여성들의 삶이 기술과 맺는 상호작용을 남성들의 그것과는 다르게 만드는 또하나의 중요한 사실이다. 우리가 거주하는 가정, 우리가 가지고 일하는 가사 도구들, 그리고 가정에서 노동이 조직되는 방식 모두는 지난 수십년간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변화의 성격과 그 변화가 가정에서 일하는 사람들(압도적으로 여성이 다수인데)에게 가져온 영향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가늠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가정에서 행해지던 몇몇 일거리들은 사라졌지만(예컨대, 양탄자를 두드려 터는 것), 다른 일거리들이 그것을 대체했다(예컨대, 리놀륨 바닥을 왁스칠해 닦는 것). 몇몇 일거리들은 더 수월해졌지만(예컨대, 빨래하는 것), 과거보다 더 자주 행해지게 되었다; 시트를 세척해서 다림질하는 일은 과거보다 더 적은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게 되었지만, 각 가정에서 매주 세척되는 시트의 수는 엄청나게 증가했다. 몇몇 일거리들은 명백히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함과 동시에 더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 되었다: 예컨대 쇼핑이 그렇다. 가정에서 만들어지던 것들 중 많은 것들이 시장으로 이전됨에 따라서 가정에서 할 필요가 있는 일은 분명히 줄어들었지만(예컨대, 야채류를 병조림해 두는 것), 하인이 적어지고 가정에서 거주하는 미혼여성이 적어지고 가족당 자녀의 수가 적어짐에 따라서 가사노동을 할 일손도 줄어들었다. 결국 전체적으로 보면, 기껏해야 모호하고 이중적인 그림밖에 그려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점은 언급할 가치가 있다. 실제로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가사노동에서 이루어진 그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가정은 우리 문화 속의 다른 생산의 장소들에 비해 볼 때 훨씬 더 성공적으로 산업화의 물결을 견뎌 왔다는 것이다. 남성들의 노동은 중앙집중화의 과정을 겪어 왔지만, 여성들의 노동은 여전히 [각 가정에] 분산된 채로 남아 있다. 수백만 명의 미국 여성들은 매일 밤마다 수백만의 개별 가정에서 수백만 개의 스토브를 이용해서 저녁식사를 요리하고 있다 ― 이 무시무시한 광경은 어떤 합리적인 기술관료(technocrat)라도 정신병원에 보내기에 충분할 것으로 생각되는데도, 내가 이어 논의할 어떤 이유 때문에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저 어딘가에 있는 가사노동의 나라에서는 매일의 노동 시간(working day) 중 대부분을 놀려 두는 조그만 공장들이 있다; 거기에는 한 달에 겨우 한두 번 정도 사용되는, 고도로 기계화된 값비싼 장비들이 있다; 거기에는 8온스[1온스는 31.104g - 역주]나 12온스의 상하지 않는(nonperishable) 식품류를 사기 위해 매주 장을 보러 나오는 소비의 단위들이 있다. 또한 그곳에는 직무 규정도, 시간 기록 기계도, 그리고 심지어 봉급도 없는 노동자들이 있다. 가내 공업은 여전히 멀쩡하게 살아 있으며, 도시의 교외에서 특히 번창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이 질문에 대해 간단한 답변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나는 그에 대한 답변을 구성하는 몇몇 요소가 될 수 있을 듯한 것들을 여기서 거칠게나마 늘어놓아 보려 한다. 아래에서 제시하는 요소들은 특별한 순서로 배열된 것은 아니며, 각각의 요소들에 상대적으로 얼마만큼의 비중이 주어져야 하는지, 또 어떤 것이 원인이며 어떤 것이 결과인지 등도 확실치 않음을 미리 말해 둔다. 먼저 들 수 있는 점은, 19세기 중엽 이래로 미국인들은 가정을 사람들이 기술적 질서로부터 물러나 쉴 수 있는 장소로 이상화해 왔다는 것이다: 여기서 '안식처(retreat)'라는 것은 그 정의상, 어떤 사람이 그로부터 달아나고자 하는 곳의 특성을 지녀서는 안되기 마련이다. 가정 개혁가(domestic reformer)들 ― 이들 중 대부분이 여성인데, 캐더린 비처(Catherine Beecher), 엘렌 스왈로우 리처즈(Ellen Swallow Richards), 샬럿 퍼킨스 길먼(Charlotte Perkins Gilman), 크리스틴 프레드릭(Christine Frederick), 릴리안 길브레스(Lillian Gilbreth) 등이 얼른 떠오른다 ― 은 가정에서의 효율 증대와 가정의 현대화를 종종 옹호하였지만, 일반대중은 그러한 사고가 가져올 수 있는 결정적인 어떤 부수적 상황에 대해 적대감을 보였다. 카페테리아[셀프 서비스로 운영되는 간이 식당 - 역주]가 아닌, 농장의 주방이 오랫동안 미국인들의 신화적인 동경의 대상이 되어 왔다. 어떤 가정들에서는 최신의 번쩍거리는 설비들을 효율성이 아닌,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구입하였다; 그러한 경우에 가정에만 묶여 있는 전업주부의 존재는 그녀가 작동시키는 전자 레인지(microwave oven)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증거가 되었다. 반면 다른 가정들에서는 사회적 지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기술집약적이지 않은 다른 노동(가구를 분해소제한다거나, 정원에 야채를 키운다거나, 아이들을 차에 태워서 바래다 준다거나 등등)을 할 수 있도록 가정주부를 자유롭게 만들어 주기 위해 현대적 설비가 이용되었고, 그 결과는 전체적인 효율의 증가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1920년대라는 아주 짧은 시기를 제외한다면, 미국의 주방을 꾸미는 데 이용된 가장 인기있었던 실내장식은 단연코 "초기 미국풍(Early American)"의 것이었다; 가정에서의 효율성 문제에 대한 우리의 양면적 태도는 식기 세척기가 "시골풍의" 장식장 안에 들어 있거나 냉장고가 가식적으로 보이는 "나무" 판벽널로 장식된 벽과 마주보고 있을 때 상징적으로 가장 잘 드러난다. 가사노동 영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대략 20세기의 처음 30년 동안 일어난)의 어떤 측면을 보더라도 매일매일 가정주부가 전업적으로 종사할 것을 요구하는, 근본적으로 비효율적인 가정 운영 방식은 계속 유지되었고, 그것을 유지하고 있는가의 여부가 개개 미국 가정이 갖는 상징적인 질적 수준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이와 연결된 사실로 들 수 있는 것은 다시한번 19세기 중엽 이래로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가정의 꼬뮌화(communalization)를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따라서 비(非)-미국적인 것으로 간주했다는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가정의 기능들 중 일부를 지역공동체(commune)에 맡기려는 반복적인 시도가 있었고, 이는 특히 20세기 초의 처음 20년간 정점에 달했다 ― 이 때 많은 지역에서 지역공동체 단위로 운영되는 통조림 공장(cannery), 세탁소, 부엌이 나타났으며, 탁아소(nursery school)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이 모든 시도들은 이를 뒷받침해 주는 지역적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아 실패로 돌아갔다.

가정용으로 발명되거나 개발된 가사도구들은 이들을 다른 도구들과 구별시켜 주는 대단히 특수한 특징들을 갖고 있다. 먼저 이 도구들 중 많은 것들은 애초에 가정용이 아닌, 상업용으로 개발되었다: 자동 세탁기, 진공청소기, 소형 모터, 냉장고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도구들 대부분은 관련된 일[즉, 가사노동]과 밀접한 연결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개발된 것이 아니었다; [도구들을 만들어낸] 발명가들은 대부분 남성이었고 [이를 사용하는] 가정주부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이에 더해서, 많은 가사도구들은 그것을 통해 수행되는 일과는 거의 아무런 관계가 없는 판촉 기교들을 이용해서 시장에서 판매되었다. 이러한 세 가지 요인들로부터, 만약 여성들이 기술혁신 과정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들이 개발한 가사도구들은 가사노동을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변형시킨 그런 가사도구들과는 달랐을 것이라는 가정을 해볼 수 있다.

따라서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혹은 구조적인 것일지도 모르는 어떤 이유들 때문에 미국 가정들은 미국 기업들과는 달리 산업적 질서(industrial order)의 일부 속으로 편입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그들이 권력을 갖고 있는지 그렇지 못한지에 무관하게,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그리고 그것을 바랐던 사람들은 사회 속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수가 많지 못했거나 힘을 키우지 못했다.
 

반(反)기술주의자(antitechnocrat)로서의 여성
 

이제 마지막이자 앞서와 다소 연관된 한 가지 점만이 남았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그 문화 생활 대부분을 통해 볼 때 실용성의 나라, 실제적 지식(know-how)의 나라, 발명에 재주가 있는 양키들(Yankee ingenuity)의 나라로 이상화되어 왔다. 지구상에 있는 다른 어떤 나라도 기술적 질서의 영향을 이렇게 많이 받지는 않았으며, 또한 기술적 질서에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토록 자랑스러워하지는 않았다. 미국 문화에서는 의사들과 엔지니어들이 문화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반면, 시인들과 예술가들은 문화의 주변부로 내몰려 있다.

만약에 실용성과 실제적 지식, 그리고 차 밑에 들어가서 손을 기꺼이 더럽힐 용의가 있는지의 여부를 진정한 미국인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표식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지금껏 미국 인구의 절반을 약간 넘는 수의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비(非)-미국적(un-American)으로 되게끔 교육시켜 온 셈이 된다. 여기서 내가 언급한 사람들은, 두말할 나위 없이, 여성들이다. 우리는 남자들로 하여금 지배(mastery)의 위업을 숭배하도록 사회화시키는 반면, 여자들은 복종의 미덕을 우러러보도록 사회화시킨다. 남자들은 강하고, 여자들은 연약하다. 남자들은 자연을 지배하게끔 되어 있고, 여자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게끔 되어 있다. 남자들은 합리적이고, 여자들은 비합리적이다. 남자들은 실제에 밝은 반면, 여자들은 실제에 어둡다. 남자아이들은 집짓기 블럭을 가지고 놀고, 여자아이들은 인형을 가지고 논다. 남자들은 집을 짓고, 여자들은 그 속에 거주한다. 남자들은 능동적이고, 여자들은 수동적이다. 남자들은 수학에 능하고, 여자들은 문학에 능하다. 만약 뭔가가 망가졌다면, 아빠가 고쳐줄 것이다. 만약 정서적인 충격을 받았다면, 엄마가 달래줄 것이다. 우리는 남자들이 기술적 질서를 선택하도록 훈련시키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여자들이 그것으로부터 멀어지도록 훈련을 시켜 왔다.

위에서 언급한 이분법적 사고들은 수동적이고 낭만적인 19세기 빅토리아 조 여성의 전형이 가장 위세를 떨치던 시기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1960년대에 미국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이들이 과학과 기술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를 조사한 흥미로운 연구결과에 따르면, 여대생들은 장래에 어떤 직업을 가질지를 계획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엔지니어가 될 수도 있다는 관념에 좀처럼 동화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의미심장하게도) 자신이 엔지니어가 되려고 했을 때 주위의 남자 동료들이나 부모가 대단히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따라서 엔지니어나 발명가, 숙련 기계공, 착암기 조작자(jackhammer operator)가 되기를 원하는 여성들은 자신의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그들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깊이 각인된 어떤 관념들을 억눌러야만 했다. 그리고 극히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그런 싸움을 받아들일 용기를 갖고 있었다. 여성들이 기술 변화를 가져오는 데 있어서 지금껏 그렇게 미미한 역할만을 해 왔던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여성 엔지니어나 발명가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것이다.

한편 반대로, 최근 들어 "반(反)과학", "반(反)기술"적 태도가 급격히 고양된 것은 여성들의 정치의식이 거의 같은 시기에 분출한 것과 대단히 강한 조응 관계를 지닐지 모른다. 물론 초음속여객기(SST), 핵발전소, 동물 실험 등에 대해 반대하여 제기된 목소리들 전부가 여성들의 것이었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 중 놀라울 정도로 많은 수가 여성들의 것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앤 더글러스(Ann Douglas)는 최근 19세기 미국 문화의 "여성화(feminization)" 현상에 대해 정교하게 분석한 저서를 내놓았는데, 이 책에서 그녀는 17세기와 18세기에 미국 이데올로기의 근간을 제공했던 "완고한(tough-minded)" 신학적 태도에 맞서 교육받고 교양을 갖춘 여성들과 자유주의적인 남성 성직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함께 싸운 결과, 19세기를 거치면서 그러한 신학적 태도는 점차로 엷어졌고 결국 사라지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이 두 집단이 모두 구시대의 신학이 산출해 낸, 발흥하는 자본주의 경제로부터 자신들이 배제되고 있다는 점을 자각하였고, 이런 배제에 분개하여 자본주의 경제와 신학 모두에 맞서 싸웠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더글러스의 분석을 20세기에까지 계속 밀어붙여 적용하고 싶은 유혹을 억누르기란 대단히 어렵다. 만약 우리가 오늘날 19세기의 그것과 유사한 미국 문화의 여성화를 경험하고 있다면, 현재의 적대감이 맞추어진 초점은 과학-기술관료주의적 국가(scientific-technocratic state)의 완고한 이데올로기가 될 터이다.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그 국가의 주변부에서만 활동해 왔으므로, 그들이 이 사실에 분개하고 또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것에 맞서 싸우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성들은 그동안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로서 과학기술을 경험해 왔다 ― 그리고 모든 마케팅 전문가들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소비자들은 짜증이 날 정도로 변덕스러운 인구집단이다. 여성들은 자기 자신을 주관성(subjectivity)의 소유자로 사고하도록 훈련받아 왔기 때문에 이들이 객관성(objectivity)의 깃발에 대해 그다지 많은 헌신성을 보일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우리의 정치와 경제 생활에서 적극적이고 강력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함에 따라, 이제 우리는 그들이 정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오는, 과학기술에 대한 언급되지 않은 적대감이 수반한 행동들을 발견하고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
 

(역주 1) 버지니아 데어(Virginia Dare)는 신대륙에서 태어난 최초의 영국인 아이의 이름이다. 그녀는 일군의 정착민들이 로노크 섬(Roanoke Island)에 정착한 직후인 1587년 8월 18일에 한 영국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녀는 정착민들을 싣고 온 배가 보급을 위해서 영국으로 되돌아간 사이 남아 있던 정착민들과 함께 실종되어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한편 버지니아 슬림(Virginia Slim)은 여성을 주요 소비자층으로 설정하여 개발·시판된 담배의 이름으로 가늘고 길쭉한 생김새를 갖고 있다. 버지니아 슬림은 통상적인 '여성적' 이미지 내지는 가치에 호소하여 판매전략에서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결국, 제목에서 말하는 '버지니아 데어에서 버지니아 슬림까지'란 '미국의 역사에서 여성의 독특한 경험이 의미있어지는 경우의 A부터 Z까지' 정도로 이해하면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역주 2) 코완이 여기서 예로 들고 있는 책들은 대체로 여러 권으로 구성된 서양기술사 통사로서, 1960-70년대에 저술된 노작들이다. 각각에 대한 서지사항은 다음과 같다: Charles Singer, E.J. Holmyard, A.R. Hall, T.I. Williams, and T.K. Derry, eds., A History of Technology, 7 vols. (Oxford, 1954-78); Melvin Kranzberg and Carroll W. Pursell, Jr., eds., Technology in Western Civilization, 2 vols. (New York, 1967); Maurice Daumas, Histoire generale des techniques, 5 vols. (Paris, 1962-79); Siegfried Giedion, Mechanization Takes Command (New York, 1948); Eugene S. Ferguson, Bibliography of the History of Technology (Cambridge, 1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