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rt Essays

원고지 10-20매 가량의 짧은 칼럼들입니다. 주제는 그야말로 잡다한데, 특정한 기획을 잡아 글을 연재한 것도 있습니다. 실린 매체들도 인터넷신문에서 학보, 월간지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STS 이론 & 과학기술 민주화

  ·  '필요한 만큼만' 과학기술 쓰기 (1996.9)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 짧은 글입니다.
  ·  대중의 과학이해: '과학기술'과 '대중'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조망 (1998.5)
제가 '영화 속의 과학기술 이미지'와 함께 줄곧 관심을 가지고 글을 써온 또다른 영역인 '대중의 과학이해(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 PUS)'의 최근 연구동향에 대해 정리해본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과학기술의 대중적 이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  일반인들은 과학기술에 대해 무지한가? (1998.7)
위의 글을 원고지 10매 가량으로 축약한 것입니다. 『방통대 학보』의 '과학에세이'란에 실렸습니다.
  ·  과학기술의 일상성, 그 함의 - 자판기 이야기 (1998.11)
기술적 인공물들을 대할 때 일상적으로 흔히 겪는 경험 속에서 어떤 기술사회학적 통찰을 얻어낼 수 있는지를 써본 글입니다. 원래는 얼핏 떠올랐던 아이디어를 통신 게시판에 끄적여 두었던 것인데, 나중에 정리해서 『방통대 학보』의 '과학에세이'에 실었습니다.
  ·  '대중의 과학이해'와 기술영향평가의 새로운 방향 (1998.11)
1998년 2학기에 『연세춘추』에 4회에 걸쳐 연재되었던 과학기술사회학 특집에서 마지막 네번째로 실린 글입니다. '대중의 과학이해'의 연구성과를 다시한번 정리하면서 이를 '구성적 기술영향평가'의 문제의식과 접목시키려 시도했습니다.
  ·  거대과학의 맥락에서 바라본 인간게놈 프로젝트 (2000.6)
인간게놈을 해독한 초안(rough draft)가 발표된 때에 맞춰 『동아일보』에서 내놓은 특집면에 포함된 글입니다. 인간게놈 프로젝트를 '거대과학(big science)'의 맥락에서 볼 때,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짧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  비공식적 시민참여 모델로서의 과학기술 논쟁 (2000.11)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제도연구위원회의 "과학기술정책의 시민참여 모델" 연구발표회(2000.11.25)에서 발표한 글로, 11월 초의 한국과학사학회 발표문에서 정리했던 내용에 기반해 과학기술 논쟁을 시민참여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어떤 의의가 있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본 것입니다.
  ·  과학기술학 연구와 과학기술 민주화 (2001.8)
연세대 대학원신문의 청탁으로 쓴 글로, 과학기술사회학, 대중의 과학이해(PUS)에 관해 짧게 리뷰하고 과학기술 민주화의 필요성에 대해 정리한 것입니다. 예전에 썼던 여러 글들을 재정리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두 문화' 논쟁의 현재적 의미 (2002.12)
포항공대신문에서 '두 문화'와 이공계위기의 관계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청탁을 해와서 쓴 글입니다. 실은 이 둘간에 별다른 연관이 없으며, 이공계위기의 근원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내용의 핵심입니다.^^
  ·  과학대중화와 과학에 대한 신뢰 (2004.10)
시민참여연구센터의 부탁으로 KAIST신문에 쓴 PUS와 관련된 짧은 글입니다.
  ·  현대과학기술에 내재한 불확실성과 위험 ― 컬럼비아호 폭발사고와 복제양 돌리 사망에 부쳐 (2003.2)
  ·  부안 핵폐기장 논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2003.8)
연세대 대학원신문에 쓴 칼럼입니다. 첫번째 글은 컬럼비아호 폭발에 관해 ≪프레시안≫에 썼던 칼럼과 복제양 돌리의 사망 사건을 묶어 과학기술의 불확실성과 위험을 강조해 써본 것이고, 두번째 글은 아래 ≪창비웹진≫에 썼던 핵폐기장 부지 선정과정의 문제점을 다시 정리해 본 것입니다.
  ·  핵폐기장 부지 선정, 이대로 좋은가? (2003.7)
  ·  상이한 위험 인식의 첨예한 대립 - 핵폐기장 부지 선정, 이대로 좋은가? (2) (2003.8)
  ·  『회의적 환경주의자』에 내포된 네 가지 문제점 (2003.10)
  ·  영국의 유전자조작식품 대중논쟁 -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2003.12)
  ·  나노기술 - 꿈인가, 악몽인가? (2004.4)
≪창비웹진≫의 "과학수상" 코너에 연재했던 칼럼입니다. 원래 월간으로 싣기로 했다가 역량이 안되어 격월간으로, 나중에는 거의 계간으로 가다가 결국 자진해서 그만 쓰겠다는 의사를 알려드렸습니다.-_- 시사적인 주제로 한달에 한번씩 글을 쓴다는 게 참 어렵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됐네요.
  ·  황우석 교수 언론보도의 문제점 (2005.6)
  ·  황우석 관련 언론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2005.9)
5월 20일의 황우석 교수 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 발표와 관련된 언론의 보도 태도를 Dorothy Nelkin의 논의에 기대어 비판적으로 조명한 글(들)입니다. 처음 것은 ≪프레시안≫에 소개글과 함께 원문 그대로 실렸고 나중에 <시민과학>에 축약해 실었습니다. 두번째 것은 처음 글의 논지를 확장하고 분량을 늘려 ≪환경과생명≫에 실었던 글을 다시 축약하고 개 복제에 대한 논평을 덧붙여 완성한 글입니다. 이 글은 <함께사는길>에 실렸습니다.
  ·  수돗물 불소화 사업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들 (2005.9)
최근 사실상의 강제실시 법안 제출로 인해 논란을 빚고 있는 수돗물 불소화 사업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내용은 과학사회학자 Brian Martin의 입장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습니다.
  ·  불임시술과 난자기증 정책의 국제비교 (2005.11)
  ·  난자기증 정책의 국제비교 (2005.12)
  ·  헤르만-브라흐 사건 (2005.12)
  ·  헤르만-브라흐 사건에서 배워야 할 것들 (2005.12)
2005년 말 '황우석 사태'의 와중에서 썼던 글들입니다. 첫번째 글은 여성주의저널 <일다>의 청탁으로 11월 21일경에 썼던 글의 초고이고, 두번째 글은 이것의 분량을 줄이고 내용을 업데이트해 12월 6일에 완성한 버전입니다. 세번째 글은 독일의 대형 기만행위 사건을 통해 한국의 상황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하려는 의도에서 백과사전 항목의 틀을 빌어 정리해본 글이고(12월 14일 완성), 마지막 글은 윗 글의 분량을 줄여 <프레시안>과 <시민과학>에 기고한 버전입니다.
  ·  황우석 사건과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대응 (2006.4)  
  ·  생명공학의 문제점에 대한 '무감각' (2006.5)  
  ·  중국 과학계의 부정행위 폭로 - 한국 과학을 위한 반면교사? (2006.8)  
역시 황우석 사건의 여진 속에서 연구 부정행위와 그것의 배경이 되는 '풍토'에 대해 여러 모로 생각해본 글들입니다. 첫번째는 황우석 사건을 비롯해 최근 터져나온 일련의 연구 부정행위에 대해 서구 과학계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리뷰한 것이고, 세번째는 지난 1년 동안 중국에서 연이어 발생한 부정행위 사건들을 황우석 사건과의 유사성에 초점을 맞춰 리뷰한 것입니다. 둘 다 <시민과학>에 실렸던 글이구요. 두번째는 <한겨레>에 실렸던 짧은 글로, 황우석 사건의 배경이 된 한국의 문화적 풍토에 대해 간단하게 써 보았습니다.

  공동연재: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의 "과학기술@사회"

  ·  Welcome to the Citisci's World!!! (연재 1회, 2003.1)
  ·  거대복합기술에 내재한 불확실성과 위험 ― 컬럼비아호는 '왜' 폭발했을까? (연재 6회, 2003.2)
  ·  유인우주비행의 미래와 위험천만한 NASA의 핵추진 로켓 계획 (연재 7회, 2003.3)
  ·  비외른 롬보르의 숨은 의도 (연재 18회, 번역, 2003.10)
  ·  피기도 전에 시들어 버린 시민참여 제도 (연재 19회, 2003.12) [with 한재각]
  ·  논문표절='국가적 망신'? ― 과학에서의 기만행위를 다시 생각한다 (연재 21회, 2004.2)
  ·  한국의 줄기세포 스타연구자들이 윤리적인 의혹을 받고 있다 (연재 23회, 번역보론, 2004.5) [with ?] 
  ·  한국 복제 연구자들의 위기 (연재 24회, 번역, 2004.5) [with 김병수] 

우연한 기회로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연재하게 된 칼럼입니다. 저를 포함해 모두 5명(강양구, 김명진, 김병수, 김병윤, 안성우)이 한 주씩 돌아가면서 집필을 맡고, 초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해 수정한 후 완성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칼럼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첫번째 연재분을 보시면 대충 짐작하실 수 있을 테구요. 이곳에는 연재분 중에서 제가 쓰거나 번역했던 것들을 올려 둘 예정인데, 분량이 과도해 다소 줄여 실었던 것들은 축약하기 이전 버전으로 올려두겠습니다. 연재분 전체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시길...

서평

  ·  기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 『우리에게 기술이란 무엇인가』서평 (1999.1)

월간 『우리교육』에 실린 '21세기를 조망하는 31권의 책들' 기획에 포함되었던 글입니다. 1996년 초에 출간되어 기술사회학 및 대안과학기술운동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었던 『우리에게 기술이란 무엇인가』(녹두, 1995)에 대한 서평 형식을 취했습니다. 글을 읽을 독자들이 STS 쪽에 거의 사전지식이 없는 이들일 거라는 전제 하에, 책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것보다는 기술사회학의 핵심 교의들을 정리하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  『생산력과 문화로서의 과학기술』서평 (1999.10)
1999년에 출간된 홍성욱 선배의 논문집에 대한 서평입니다. 도서정보지인 『그날에서 책읽기』에 실린다는 점을 감안해서 책의 논문들을 소개하고 배경을 설명하는 데 치중했습니다.
  ·  『과학이 세계관을 바꾼다』서평 (2001.2)
2000년 말에 나온 과학대중서인 『과학이 세계관을 바꾼다』에 대한 서평입니다. 주로 PUS의 관점에서 이 책의 장점과 한계를 조명해 보았습니다.
  ·  『네번째 불연속 -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서평 (2001.8)
원로 사상사가인 브루스 매즐리시의 독특한 저작 『네번째 불연속』에 대한 서평입니다. 기술사 전공자의 입장에서 매즐리시의 논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려 해 보았습니다.
  ·  『과학·종교·윤리의 대화』서평 (2002.3)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소식지인 『자연과학』의 특집 글들을 엮은 단행본에 대한 짧은 서평입니다.
  ·  『수상한 과학』서평 (2004.3)
전방욱 교수의 책 『수상한 과학』에 대한 매우 짧은 서평입니다.
  ·  고전 사상가와 현재적 쟁점의 흥미로운 결합 - '아이콘 시리즈'의 과학도서들을 보고 (2005.1) 
『토마스 쿤과 과학전쟁』이 속한 '아이콘 시리즈'에서 STS와 관련된 주제를 다룬 일곱 권의 책을 읽고 쓴 주제서평입니다.
  ·  유전자결정론의 맹신이 몰고올 파국에 대한 경고 - 『나쁜 과학』서평 (2005.8)
영국의 생명공학 반대 운동가인 매완 호의 저작『나쁜 과학』에 대한 서평입니다. 읽기에 쉽지 않은 내용을 담은 책임을 감안해 저자의 논지를 '소개'하는 데 치중했습니다.
  ·  Amercian Genesis (T.P. Hughes) 서평 (2006.2)
미국의 기술사학자 토머스 휴즈의 주요 저서 중 하나인 American Genesis에 대한 짧은 서평입니다. 휴즈의 기술시스템론과 그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  과학은 천사도 악마도 아닌 '골렘'이다 - 『골렘』서평 (2006.2)
과학사회학의 주요 사례연구를 소개하는 콜린스와 핀치의 대중적 저작인 『골렘』에 대한 서평입니다. 이 책이 황우석 사태와 연관해 주목을 많이 받았기에 서평에서도 그런 지점에 대한 언급을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연재기획: "과학기술과 문화"

  ·  과학기술자 이미지의 신화화 (1997.3)
  ·  테크노포비아는 '극복'의 대상인가? (1997.4)
  ·  번개불에 콩 구워먹기 - 우리의 기술문화는? (1997.5)
  ·  과학기술자는 어떻게 사회화되고 저항하는가 - 과기노운의 문제설정에 대한 문화적 비판 (1997.6)
  ·  대형기술사고와 시뮬라시옹의 논리 (1997.9)
  ·  기술결정'론'을 다시 생각한다 (1997.10)
  ·  '두 문화' 들여다보기 (1997.11)
  ·  당신의 미래상을 치환하라! - 미래는 정해진 '타임 테이블'을 따라 우리에게 오는가 (1997.12)

1997년 한 해 동안 『공대저널』에 8차례에 걸쳐 연재되었던 칼럼입니다. '과학기술과 문화'라는 두리뭉실한 기획으로 연재를 생각하게 된 계기를 먼저 좀 밝혀야 할 것 같군요. 개인적으로 원래 학부 때는 과학기술학회 일을 하다가 학부 졸업할 무렵부터 대중문화, 특히 그 중에서도 영화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어 1995년 여름까지는 주로 그런 쪽에서 소모임을 만들어 세미나도 하고 학내에서 영화제도 개최하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1996년 말부터 1997년 초까지 겨울방학 기간 동안 공대저널 사람들과 함께 '대중문화의 이론과 운동'를 주제로 세미나를 했었는데, 이 기획은 바로 그 세미나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미나에서 읽은 문화이론가들의 주장과 재차 발을 들여놓게 된 STS 관련 이론 및 실천들 사이에 접점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과학기술과 문화'를 주제로 기존에 나왔던 글들에 대한 실망이나 반발 같은 것도 좀 작용했던 것 같고... 하여간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시작했고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봐도 쓸만해 보이는 글들을 몇 개 쓰기도 했는데, 뒷심이 딸렸는지 연재 막판에 가서 태작들을 양산하고 말았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쓴 글들 중에서 가장 애착이 많이 가는 글들임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아마 가장 장기간의 연재였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는지도 모르죠.

대중매체 속의 과학기술 이미지

  ·  <아폴로 13>: 거대과학기술체계의 '성공적 실패' (1995.9)

1994년에 대학원에 들어온 이후 이런 주제로는 사실상 처음 써봤던 글입니다. 당시 여름방학 동안 과학기술사회학 세미나를 하면서 여러 글들을 읽었는데(그 때 라투르의 글을 처음 읽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때 주워들었던 걸 영화평에 한번 '응용'해 봤던 거죠. 서울대 『공대저널』의 '영화프리즘' 란에 실렸는데, 글에도 썼다시피 영화평이라기보다는 영화의 장면들을 인용한 기술사회학 논의 내지는 거대과학기술 비판쯤 되는 성격의 글입니다.
  ·  <신세기 에반게리온>: 불확실한 과학기술, 오만한 인간, 파괴되는 인간성 (1998.3)
  ·  <월러스와 그로밋>: '양날의 칼'에서 일상 속에 숨은 '테크노포비아'로 (1998.4)
  ·  <킹덤>: 부조리한 공간 속의 비합리적인 과학자집단 (1998.5)
이 세 편의 글은 '대중영화 텍스트 속의 과학기술 이미지'라는 기획 하에 1998년 1학기 동안『연세과학』에 연재했던 것입니다. 1996년 1학기의 서강대 제 2대학 강의 이후 '영화 속의 과학기술'이라는 주제로 다소 긴 글을 두어 편 쓴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정리했던 핵심 주장들('dystopia', 'mad scientist', 'unpredictable & uncontrollable')을 당시 화제가 되고 있었던 영화들에 적용시켜 보자는 것이 애초의 의도였습니다. 당시 '뜨고 있던' 영화들을 고르는 데까지는 성공했던 것 같은데, 글을 쓰면서 기획의도를 제대로 관철시켰는지는 다소 미지수군요.
  ·  영화 속의 과학기술 이미지 (1998.6)
'영화 속의 과학기술'에서 내세웠던 핵심 주장을 원고지 10매로 압축해 정리한 것입니다. 『방통대 학보』의 '과학에세이'란에 실렸고, 거의 같은 내용이 연세대 『자치신문연합』1998년 6월호에도 실렸습니다.
  ·  <나우시카>와 『나우시카』- 자연은 인간이 만든 것인가? (2001.3)
  ·  『프랑켄슈타인』의 신화는 계속된다 - 픽션 속의 생명과학 이미지 (2001.4)
  ·  '공포의 지형도' 속에 나타난 과학자의 역할과 책임 - 미친 과학자 이미지의 사회사 (2001.5)
  ·  기계를 바라보는 '어두운' 시선 - 역사 속에 나타난 인간과 기계의 관계 (2001.6)
2001년 1학기 동안 '대중매체 속의 과학기술'이라는 제목으로 서울대 『이공대저널』에 연재했던 칼럼입니다. 1999년까지 주로 했던 얘기들을 업데이트하고 이론적으로 정교화하면서 분석 대상을 영화에서 만화까지 넓혀 보려 했지만 뜻대로 잘 된 것 같지는 않군요... 연재기간이 짧아지면서 원래 생각했던 주제들 중 일부는 써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아쉽군요.
  ·  <매트릭스 리로디드>: 기계와 '가상'공간에 대한 시각의 확장 (2003.6)
  ·  참신한 발상과 확장된 전개, 그리고 안이한 결말 - <매트릭스 3부작> (2003.12)
과학기술 이미지라는 측면에서 <매트릭스> 3부작을 분석해 본 글들입니다. 첫번째 것은 ≪네트워커≫ 창간호의 '영화 속 사이버세상'이라는 코너에 실렸고, 두번째 것은 SK Telecom에서 발간하는 웹진 ≪IT≫에 실렸습니다.
  ·  '영화 속 과학기술 이미지'와의 질긴 악연, 그리고 DVD를 위한 '변명' - 연재를 시작하며 (2003.4)
  ·  대중적 상상력 속의 인간복제 - <브라질에서 온 소년> (2003.7)
  ·  독성폐기물 유출 피해에 맞서는 지역 주민의 활동 - <시빌 액션> (2003.8)
  ·  핵발전소 사고 속의 무기력한 과학기술자 - <차이나 신드롬> (2003.10)
  ·  인기 TV 시리즈의 외전에 등장한 나노기술 - <카우보이 비밥 극장판> (2003.12)
  ·  과학과 종교, 과학과 비과학의 흐릿한 경계 - <콘택트> (2004.2)
  ·  과학을 하는 '여성적 방식'은 과연 존재하는가? - <정글 속의 고릴라> (2004.4)
  ·  핵무기, 인류 절멸에 대한 강력한 경고 - <핵전략 사령부> (2004.6)
  ·  감시기술 속에 갇힌 과학기술자의 자화상 - <컨버세이션> (2005.1)
  ·  냉전, 마초주의, 유인 우주비행의 미혹 - <필사의 도전> (2005.8)
  ·  다가올(온) 미래, 다가오지 않을 미래 - <가타카> (2005.10)
  ·  유용한 '교육적 도구'인가, 현실도피적 왜곡인가 - <투모로우> (2005.12)
  ·  '세속화'된 과학, 신비감이 거세된 복제인간 - <아일랜드> (2006.2)
  ·  60년대적인, 너무나 60년대적인 - <에이 아이> (2006.4)  
  ·  비밀주의 과학 속, 내부고발자의 고단한 삶 - <인사이더> (2006.6)  
  ·  "미치고, 나쁘고, 위험한" 과학자의 전형 - <리애니메이터> (2006.8)  
2003년 4월부터 시민과학센터의 월간지인 『시민과학』에 '과학기술영화 DVD파일'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하고 있는 칼럼입니다. 앞서 이 주제로 썼던 글들의 문제의식을 확장하면서 구체적인 영화들에 대한 분석을 해보려 합니다. 칼럼 전체의 문제의식은 첫번째 연재분을 보시면 됩니다.
  ·  대전사이언스페스티발 '영화 속의 과학기술' 상영회 자료집 ver 1.0 (2003.8)
8월 중순에 대전사이언스페스티발 행사의 일부로 과기노조가 주관한 '영화 속의 과학기술' 영화제가 열렸습니다. 제가 이 행사의 프로그래밍과 자료 준비를 맡아 모두 열 편의 영화를 선정하고 각 영화마다 생각해 볼만한 내용을 2쪽 내외로 쓰는 일을 했는데요, 그 자료집을 여기 올려둡니다. 준비기간이 충분치 않아 글의 내용에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그동안 생각만 줄곧 해오던 작업을 한번 정리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이쪽 방향의 글을 계속 써나갈 때 기초자료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과학기술정책

  ·  과학기술론의 관점에서 바라본 과학기술정책 비판 (1996.11)
  ·  '과학기술정책 비판'에 대한 재고찰 (1997.11)

사실 과학기술정책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쓴 적은 별로 없습니다. 여기 있는 두 편의 짧은 글이 전부인 셈인데요. 먼저 첫번째 글은 『연세과학』의 과학기술정책 특집연재 중 하나로 실렸던 것으로, 과학기술사회학의 성과에 비추어 주류 과학기술정책의 패러다임을 비판하는 '평이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글은 과학기술정책을 직접 전공하는 친구와의 논쟁 경험에 바탕해 첫번째 글을 자아비판하면서 써본 글입니다. 과학기술정책의 전제들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유의미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책의 울타리 속에 갇혀서는 안되며 그 외부로부터의 '운동'을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충 이런 논지의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정책에 대한 저의 생각은 지금도 그 지점에서 변함이 없는 것 같군요.

과학기술운동론

  ·  유나바머 '삐딱하게' 읽기: 혹은, 내가 어떻게 유나바머에 대한 '떨떠름한' 생각을 지우고 대안을 고민하게 되었는가 (1996.10)

1996년 초, '유나바머'로 알려진 테어도르 카진스키가 체포되고 곧 이어 국내에 그의 '유나마버 선언문'이 번역되어 나오면서 그의 주장이 내포한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놓고 상당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 글은 '유나바머 선언문'을 읽고 나서 개인적으로 든 생각들을 정리해 본 것입니다. 일종의 독서감상문이라고 해야 될까요. 네오-러다이즘(neo-Luddism)의 유의미성을 인정하지만 이를 썩 달가와하지 않는 제 생각이 녹아 있습니다.
  ·  복제양과 과학기술운동 (1997.3)
『대학신문』에 기고한 아주 짧은 글로, 복제양 돌리의 등장 이후 그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학내 과학기술운동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와 함께 대안적 과기운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을 담으려 했습니다.
  ·  '지금-여기'에서의 과학기술을 넘어서는, '대안적' 과학기술을 위해 (1998.5)
  ·  '과학기술 민주화 운동'이란 무엇인가 (1999.3)
제가 생각하는 대안적 과학기술운동(즉 '과학기술 민주화 운동')의 현실적 토대와 운동방향에 대해 정리해본 글입니다. 두 글이 작성의 시점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거의 유사합니다.
  ·  조직구조의 변천으로 본 시민과학센터 5년 (2002.11)
제가 지난 몇 년간 활동을 같이 해온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의 5주년 총회에 맞추어 짧게 정리해본 시민과학센터 조직변화의 역사입니다.

과학계 동향 리뷰

  ·  세계과학회의와 고압선 (1999.9)
  ·  과학교육에서의 진화론, 그리고 생명복제기술 합의회의 (1999.9)
  ·  유럽에서의 농업 생명공학 논쟁 (1999.10)
  ·  "왜 과학계에는 여성이 그토록 적은가?" (1999.11)

『대학신문』에 있던 선배의 권유로 우연한 기회에 쓰게 되었던 칼럼들입니다. 지난 한 달 동안의 과학계의 동향을 Nature, Science, New Scientist, Scientific American 등의 과학 저널에 실린 기사를 중심으로 해서 정리하는 일을 맡았던 거죠. 어차피 새로운 과학상의 발견이나 성과들에 대한 테크니컬한 내용을 리뷰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별로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로 과학기술과 관련된 사회적 쟁점들을 리뷰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 때의 경험을 통해 과학 저널에 실린 기사들이나 그것이 취하고 있는 입장들이 상당히 흥미롭고 적어도 경청할 만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항생제내성 세균의 위협 (2002.6)
시립대 자연과학개론 강의를 하기 위해 읽었던 이런저런 글들을 한번 정리해 볼 생각으로 써본 글입니다. 하지만 주제의 특수성 때문인지 제 나름의 관점이라는 것을 세우지 못한 채 그냥 다양한 사실들의 나열에 그친 느낌이라 아쉽네요.
  ·  과학계 강타한 '역사상 최대' 기만행위 사건 (2002.11)
2002년 9월에 미국에서 공식발표된 벨 연구소 연구원 얀 헨드릭 쇤의 부정행위 사건의 전모와 그 파장 및 함의에 대해 정리해본 글입니다.
  ·  영국의 GM작물 재배허용, 그 속에 숨은 쟁점 (2004.6)
≪창비웹진≫에 썼던 '영국의 유전자식품 대중논쟁'이라는 글의 후속편 내지 후일담에 해당하는 글입니다. 2004년 초에 영국 정부가 자국 내 GM작물 경작을 허용하게 된 배경과 그 속에 내포된 유전자오염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실험실안전

  ·  '실험실안전'과 시민의 권리 (2000.3)
  ·  시민운동의 관점에서 바라본 실험실안전운동 (2000.4)

1999년 하반기에 시작된 실험실안전 운동에 나름대로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고 대중적인 인지를 높여 보려는 목적으로 쓴 글들입니다. 과학사 및 과학지식사회학에서의 '실험실'에 대한 논의과 실험실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사례들을 두 개의 축으로 해서 서술되었습니다.